望鄕月夜酒
[보오쿄오츠키요자케]
唱: 渡辺 要
作詞: 水木れいじ 作曲: すがあきら 編曲: 伊戶のりお
토 및 譯 : 마루
1 =========================
와스레… 와스레라레요카 후루사토와
忘れ… 忘れられよか ふるさとは
잊을 수… 잊을 수 있을까 고향은
카모메무레토부 키타노미나토마치
かもめ群れ飛ぶ 北の漁師町(みなとまち)
갈매기 떼 나는 북녘포구 마을
마부타토지레바 키코에테쿠루요
まぶたとじれば 聞こえてくるよ
눈을 감으면 들려오누나
타이료오마츠리노 얀슈우노우타가……
大漁まつりの ヤン衆の歌が……
풍어 기원제의 어부들 노래가……
아아 요에바요우호도 카에리타이
あゝ 酔えば酔うほど 帰りたい
아아 취하면 취할수록 돌아가고파
오토코나미다노 보오쿄오츠키요자케
男なみだの 望郷月夜酒
남자의 눈물 고향 그리는 달밤의 술
부지카 탓샤카 요ー 이토시노츠마코
無事か 達者か ョー 愛しの妻子
무사한지 잘 있는지 요ー 그리운 처자식
하레테 이츠마타 아에루
晴れて いつまた 逢える
떳떳이 언제 또 만나나
2 =========================
나쿠나… 나쿠나나게쿠나 카게보오시
泣くな… 泣くな嘆くな 影法師(かげぼうし)
울지 마… 울지 마 한탄하지 마 그림자여
오토코닷타라 쇼오부나겐나
男だったら 勝負投げンなよ
사나이라면 승부를 피하지 마라
카타오도야시타 야타이노아니키
肩をどやした 屋台の兄貴
어깨를 치는 포장마차의 형님
시미테우레시이 미치노쿠나마리……
しみて嬉しい みちのくなまり……
살갑게 스며드는 미치노쿠 사투리……
아아 이키가토케아우 나와노렌
あゝ 意気がとけあう 縄のれん
아아 의기 투합 되는 선술집
아스오마토오카 보오쿄오츠키요자케
明日(あす)を待とうか 望郷月夜酒
내일을 기다릴까 고향 그리는 달밤의 술
3 =========================
야마노하타케쟈 링고노하나가
裏山(やま)の畑じゃ リンゴの花が
뒷산 밭에는 사과 꽃이
사이테이루다로 무카시노마마니……
咲いているだろ 昔のままに……
피어있겠지 옛적 그대로……
아아 욘데토도카누 오후쿠로니
あゝ 呼んで届かぬ おふくろに
아아 불러도 대답 없는 어머니께
와비루코코로노 보오쿄오츠키요자케
詫びるこころの 望郷月夜酒
용서를 비는 마음 고향 그리는 달밤의 술
注
みちのく[陸奥]미치노쿠
옛 지명. 지금의 岩手[이와테]· 福島[후쿠시마]· 宮城[미야기]·青森[아오모리]의 네 현[縣].
望鄕月夜酒-渡辺要 発売日期 : 2011.10.05 <05:02>
가수소개
이름: 渡辺 要 [わたなべ かなめ 와타나베 카나메] 日本의 가수
본명:
생일: 1950년11월23일 혈액형: 0형
출신: 香川県高松市 出身
취미:
특기:
중학교를 졸업한 후 고향인 카가와현 다카마츠시[香川県 高松市]에서 나와 나고야[名古屋]에서 취직.
간판 가게, 이불 가게, 재봉틀 상점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가 10대 후반부터 오사카의
스시[초밥] 가게에서 1년 반 정도 수련. 다카마츠[高松]에서 스시 가게 「要鮨」를 개업한 것은 20세 때.
대학에 다니던 사촌에게 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젊은 나이에 독립하게 된 원동력이었다고.
한창때에는 7개의 점포를 두고, 스시 장인으로서 천황과 황후를 위해 스시를 헌상하고 다카마츠 축제
이벤트로 236m의 긴 초밥을 만든 경험도 보유.
언제나처럼 초밥을 만들고 있을 때 도쿄에서 왔다는 한 손님이 바로 작사가 겸 작곡가인
이시자카 마사오[石坂まさを-いしざか まさを, 本名:澤ノ井龍二]였는데 와타나베의 노래를 듣고
"좋은 소질을 가지고 있다. 가수가 되라."고 열정적으로 말했다고 함.
결국 그 한마디가 가수가 된 계기라고.
< 팬들 앞에서 초밥 만들기 시범을 보이는 가수 渡辺 要>
처음에는 ‘가수를 해서 먹고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과 잘되고 있는 스시 가게를 버리고까지 해야
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도 많았으며 또한 가수에 대한 동경은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노래 공부를
한 적도 없고 가수가 되기 위한 방법도 몰랐으나, 결국 이시자카[石坂]의 강한 권유로 1992년 5월
당시 국민적 아이돌이었던 젊은 스모선수 貴花田[貴乃花 光司-제65대 요코즈나]의
응원가 「若と貴」로 데뷔. 데뷔 초에는 CD가 팔리지 않아 빚도 늘었으나(일본에서는 보편적으로
음반회사가 가수의 CD판매를 위한 지원을 해주지 않음.) 희망을 버리지는 않았는데 1994년 1월
요시모토 흥업[吉本興業]의 엔카 가수 제 1호가 되었지만[2004년 독립] 상황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고
함.
그러나 "팬들을 잡고 싶다."는 생각으로 자신의 노래를 들어준 사람, 한번 만난 사람 등 한 사람
한 사람에게서 명함을 달라고 하여 꼭 감사편지를 보냈고 지금도 그 명함이 몇 천 장이 되며
감사편지 보내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고 함. 1996년 6월 일본인 엔카 가수로는 처음으로
파리 음악축제에 출장. 와타나베의 집에는 작사가 もず唱平로부터 보낸 한 장의 엽서가 액자에
들어가 벽에 걸려 있는데 "인생을 노래하는 가수가 되십시오."라고 쓰여 있다고.
1997년 2월 「ごんたの海」(作詞:もず唱平, 作曲:三山敏, 編曲:桜庭伸幸)를 낼 때의 만남이 계기라고 함.
2007년 5월 발매된 「大間崎漁歌/望郷みれん」(作詩・水木れいじ、作曲・岡千秋、編曲・伊戸のりお)으로
일본 크라운 히트상과 감투상을 수상했고 도쿄에서 열린 수상식에서 대선배인
기타지마 사부로[北島三郎]로부터 「카나메, 여기까지 잘 왔네.」라고 하늘을 날 듯한 찬사를 들었는데
1994年에 나온 「男意気」(作詞・石坂まさを、編曲・大場吉信)의 작곡을 맡았던
기타지마[北島: 필명 하라 죠오지原譲二]와의 인연이 있었기 때문.
「大間崎漁歌」는 작사는 水木れいじ, 작곡은 오카 치아키[岡千秋], 편곡은
이토 노리오[伊戸のりお]인데 제작에 앞서 치바시[千葉市]의 요리점 「魚喜」 2층에서 와타나베를
비롯한 제작진이 모여 제작 정책과 곡의 내용을 새벽까지 이야기했다고.
"당시는 이미 아내, 아이와도 헤어져있었고 아이는 언젠가 반드시 메이저 가수가 되어 큰 무대에 서는
모습을 봐 주었으면 하는 목표로 그때까지 도정 등 나의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이야기를 들은 岡千秋는 감동하는 것이 있었는지 "혼신을 다하여 좋은 노래를 만들어 주겠다."고 했으며
그런 힘이 담긴 「大間崎漁歌」는 팔렸고 이것이 와타나베를 부각시키는 큰 전환점이 되었다고 함.
「大間崎漁歌」와 「女のちぎり」의 2작품이 연속으로 크라운 히트상 수상.
그를 응원하는 동료 가수도 적지 않은데 그중 한 명인 中村美律子[나카무라 미츠코]는
2010년 7월 7일에 출시된 와타나베의 노래 「人生男節」에 맞춰 옷을 3 벌이나 선물했다고.
현재 크라운 레코드 소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