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종 29년 임진(1892, 광서18)
3월 26일(갑신) 맑음
좌목
29-03-26[35]
경무대에서 관학 유생의 응제를 방외를 통틀어 시취할 때 행 도승지 이재순 등이 입시하였다
○ 오시(午時).
상이 왕세자와 경무대(景武臺)에 나아가 관학 유생(館學儒生)의 응제(應製)를 방외를 통틀어 시취하였다. 이때 입시한 행 도승지 이재순(李載純), 행 좌승지 박용대(朴容大), 행 우승지 윤용식(尹容植), 좌부승지 민영주(閔泳柱), 우부승지 조만승(曺萬承), 동부승지 이해창(李海昌), 가주서 김태욱(金泰郁)ㆍ이희화(李喜和), 기주관 이인형(李寅衡), 별겸춘추 윤두병(尹斗炳), 검교직제학 김성근(金聲根)ㆍ홍순형(洪淳馨)ㆍ김규홍(金奎弘)ㆍ김종한(金宗漢), 검교직각 이용태(李容泰)ㆍ박창서(朴昌緖), 검교대교 김석규(金錫圭)ㆍ김만수(金晩秀)ㆍ김한제(金翰濟)ㆍ오정근(吳正根), 원임 대교 민형식(閔衡植), 교리 박돈양(朴暾陽), 부수찬 이경직(李庚稙)이 차례로 시립하였다.
때가 되자, 통례가 막차(幕次)에서 나오기를 무릎 꿇고 계청하니, 상이 포과익선관(布裹翼善冠), 포원령포(布圓領袍), 포과오서대(布裹烏犀帶), 백피화(白皮靴) 차림으로 여(輿)를 타고 광림문을 나갔다. 약방 제조 이돈하(李敦夏)와 부제조 이재순이 앞으로 나와 아뢰기를,
“아침 일찍 수고로이 거둥하셨는데 성상의 체후는 어떠하십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한결같다.”
하였다. 이어 신무문(神武門)을 나가 경무대로 나아갔다. 통례가 여에서 내릴 것을 무릎 꿇고 계청하니, 상이 여에서 내려 어좌(御座)에 올랐다. 왕세자가 시좌하였다. 이재순이 아뢰기를,
“표신을 내어 포성(布城)을 연 다음 유생들을 시장(試場)에 들어오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상이 그렇게 하라고 하였다. 이재순이 아뢰기를,
“시위와 종승 가운데에서 시관으로 낙점받은 사람이 있는데, 내려가서 일체 예를 행하도록 합니까?”
하니, 상이 그렇게 하라고 하였다. 인의의 인도로 독권관인 판중추부사 심순택(沈舜澤), 행 상호군 정기회(鄭基會), 행 이조판서 이승오(李承五), 독판교섭통상사무(督辦交涉通商事務) 민종묵(閔種默), 행 시강원 보덕 김영덕(金永悳), 독판내무부사(督辦內務府事) 이완용(李完用), 행 호군 윤헌(尹)과 대독관인 행 부호군 조만승(曺萬承)ㆍ유진필(兪鎭弼)ㆍ김천수(金天洙)ㆍ정세원(鄭世源)ㆍ김학수(金鶴洙), 전한(典翰) 민영기(閔泳琦), 이조 정랑 심상진(沈相璡), 설서 민영복(閔泳復), 부사정 서상훈(徐相勛), 홍문관 정자 오형근(吳衡根)이 사배례(四拜禮)를 행하고 들어와서 자리에 나아갔다.
상이 제(題)를 ‘문체는 부(賦), 시제는 치중화 천지위언 만물육언(致中和天地位焉萬物育焉), 시간은 신시(申時)까지’라고 쓰도록 명하니, 정기회와 이승오가 무릎 꿇고 쓴 다음 읽어 아뢰었다. 서상훈 등이 받들고 나가 제를 내걸었다. 전교하기를,
“시위한 군병, 배위한 군병, 배립한 군병에게 각각 그 군영으로 하여금 건호궤하도록 하라.”
하였다. 전교하기를,
“환궁은 자내(自內)의 예(例)로 할 것이니, 해방은 그리 알라.”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과차는 편전에서 하도록 대령하라.”
하였다. 이어 어좌에서 내려와 대내(大內)로 돌아갔다. 이재순이 표신을 내어 계엄을 풀기를 청하였다. 신하들이 차례로 잠시 물러났다.
상이 건청궁(乾淸宮)에 나아가 과차하였다. 이때 입시한 심순택 등이 차례로 자리에 나아갔다. 상이 이르기를,
“고시(考試)하라.”
하니, 심순택이 고시하였다. 전교하기를,
“빈객, 별운검, 병조의 당상, 당상 각신, 당상 춘방, 당상 대독관, 입시한 승지를 모두 독권관으로 더 차하하고, 당하 각신, 당하 춘방, 입직한 옥당을 모두 대독관으로 더 차하하여 나누어 고시하게 하라.”
하였다. 이재순이 몇 사람을 뽑을지에 대해 여쭈니, 상이 100인을 뽑으라고 명하였다. 심순택이 편차(編次)를 마치고 나서 아뢰기를,
“등차를 쓰는 일은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3장은 정삼하(正三下)로 쓰고, 17장은 초삼하(草三下)로 쓰고, 그 나머지는 모두 차상(次上)이라고 쓰라.”
하였다. 심순택이 등차를 썼다. 이재순이 아뢰기를,
“시권을 읽는 것은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대독관이 읽으라.”
하였다. 오형근이 첫째 장(張)을 읽어 일곱째 구(句)에 이르니, 상이 그만두라고 명하였다. 이재순이 아뢰기를,
“봉미를 뜯는 것은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한림이 봉미를 뜯으라.”
하였다. 윤두병이 봉미를 뜯은 다음 읽어 아뢰었다. 상이 쓰라고 명하고 전교하기를,
“관학 유생의 응제에서 부(賦)에 수석으로 삼하일(三下一)을 맞은 유학 현동건(玄東健), 삼하이(三下二)를 맞은 유학 양도옥(梁燾鈺), 삼하삼(三下三)을 맞은 유학 최우락(崔禹洛)은 모두 직부전시(直赴殿試)하게 하고, 그 다음 초삼하를 맞은 유학 홍우성(洪祐性)ㆍ장석하(張錫夏)ㆍ김상일(金相一)ㆍ육용필(陸用弼)ㆍ윤승국(尹承國)ㆍ전헌(全櫶)ㆍ박승봉(朴勝鳳)은 모두 진사시의 방목(榜目) 끝에 붙여 주고, 그 다음 초삼하를 맞은 진사 이주응(李周應) 등 10인은 모두 직부회시(直赴會試)하게 하고, 그 다음 차상을 맞은 유학 민완식(閔完植) 등 20인에게는 모두 2분을 주고, 그 다음 차상을 맞은 유학 이억(李億) 등 20인에게는 모두 1분을 주고, 그 다음 차상을 맞은 유학 이달원(李達元) 등 20인은 모두 감시(監試) 초시(初試)의 방목 끝에 붙여 주고, 그 다음 차상을 맞은 유학 이계주(李繼冑) 등 20인에게는 각각《규장전운》1건(件)을 사급하라.”
하였다. 또 쓰라고 명하고 전교하기를,
“입격한 유생은 내일 대령하라.”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대신은 먼저 물러가라.”
하였다. 또 시관에게 먼저 물러가라고 명하고 이어 사관에게 자리로 돌아가라고 명하였다. 또 물러가라고 명하니, 승지와 사관이 차례로 물러나왔다.
[주D-001]치중화 천지위언 만물육언(致中和天地位焉萬物育焉) : 이것은《중용(中庸)》1장에 나오는 구절로, 중(中)과 화(和)를 지극히 하면 천지가 제자리를 편안히 하고 만물이 잘 생육(生育)될 것이라는 뜻이다.

[原文]
승정원일기 138책 (탈초본 3019책) 고종 29년 3월 26일 갑신 31/31 기사 1892년 光緖(淸/德宗)18년
○ 壬辰三月二十六日午時, 上與王世子, 詣景武臺。 館學儒生應製, 通方外試取入侍時, 行都承旨李載純, 行左承旨朴容大, 行右承旨尹容植, 左副承旨閔泳柱, 右副承旨曺萬承, 同副承旨李海昌, 假注書金泰郁·李喜和, 記注官李寅衡, 別兼春秋尹斗炳, 檢校直提學金聲根·洪淳馨·金奎弘·金宗漢, 檢校直閣李容泰·朴昌緖, 檢校待敎金錫圭·金晩秀·金翰濟·吳正根, 原任待敎閔衡植, 校理朴暾陽, 副修撰李庚稙, 以次侍立。 時至, 通禮跪啓請出次, 上具布裹翼善冠·布圓領袍·布裹烏犀帶·白皮靴, 乘輿出廣臨門。 藥房提調李敦夏, 副提調李載純, 進前奏曰, 侵早勞動, 聖體, 若何? 上曰, 一樣矣。 仍出神武門, 詣景武臺, 通禮跪啓請降輿, 上降輿陞座, 王世子侍坐。 載純奏曰, 出標信開布城, 儒生使之入場, 何如? 上可之。 載純曰, 侍衛從陞中, 有試官蒙點人, 使之下去一體行禮乎? 上可之。 引儀引讀券官判府事沈舜澤, 行上護軍鄭基會, 行吏曹判書李承五, 督辦交涉通商事務閔種默, 行侍講院輔德金永悳, 督辦內務府事李完用, 行護軍尹KC02652, 對讀官行副護軍曺萬承·兪鎭弼·金天洙·鄭世源·金鶴洙, 典翰閔泳琦, 吏曹正郞沈相璡, 說書閔泳復, 副司正徐相勛, 弘文正字吳衡根, 行四拜入就位。 上命書題賦, 致中和天地位焉萬物育焉。 限申時。 基會·承五跪書讀奏訖。 相勛等捧出懸題。 傳曰, 侍衛·陪衛與排立軍兵, 令各其營乾犒饋。 傳曰, 還宮當自內爲之矣。 該房知悉。 上曰, 科次便殿待令, 仍降座還內。 載純請出標信解嚴, 諸臣以次權退。 上御乾淸宮科次入侍時, 舜澤等, 以次就位。 上曰, 考試, 舜澤考試。 傳曰, 賓客·別雲劍·兵曹堂上·堂上閣臣·春坊·堂上對讀官·入侍承旨, 竝讀券官加差下, 堂下閣臣·春坊入直玉堂, 竝對讀官加差下, 使之分考。 載純稟取幾人, 上命取百人。 舜澤編次訖曰, 書等何以爲之乎? 上曰, 三張書正字三下十七張, 書草三下, 其餘竝書次上。 舜澤書等訖。 載純曰, 讀券何以爲之乎? 上曰, 對讀官讀之。 衡根讀第一張第七句, 上命止之。 載純曰, 坼封何以爲之乎? 上曰, 翰林坼封。 斗炳坼封讀奏訖。 上命書傳敎曰, 館學儒生應製賦居首三下一幼學玄東健, 三下二幼學梁燾鈺, 三下三幼學崔禹洛, 竝直赴殿試, 之次草三下幼學洪祐性·張錫夏·金相一·陸用弼·尹承國·全櫶·朴勝鳳, 竝付之進士榜末, 之次草三下, 進士李周應等十人, 竝直赴會試, 之次次上幼學閔完植等二十人, 竝給二分, 之次次上幼學李億等二十人, 竝給一人[分], 之次次上幼學李達元等二十人, 竝付之監試初試榜末, 之次次上幼學李繼胄等二十人, 各奎章全韻一件賜給。 又命書傳敎曰, 入格儒生明日待令。 上曰, 大臣先退, 又命試官先退。 仍命史官就座。 又命退, 承史以次退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