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22:21
하나님의 허락이 떨어지자 발람은 여행을 서두릅니다. ‘이르는 말만 준행하라’
는 경고는 안중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나귀까지 동원하여 엄히 경고하셔야 했어요.
나귀보다 못한 인간이 될 수 있기에 스스로 각성하도록 일깨우신 것입니다.
발람에게 행하신 일을 통해 배워야 할 점은 무엇인가?
-
흔히 우리는 종교개혁자라고 하면 마르틴 루터를 떠올리게 됩니다. 그러나
얀 후스는 마르틴 루터보다 100년 앞서 종교개혁을 주도한 인물입니다.
우리에게 '몰다우'라는 곡으로 잘 알려진 체코의 국민주의 작곡가 스메타나는
바로 '얀 후스'의 개혁사상을 '나의 조국'이라고 제목이 붙은 그의 교향곡에
-
담아내기도 했습니다. 체코 프라하를 아시나요? 저는 영화로만 보았습니다.
프라하 구시가지 한가운데에 동상이 있답니다. 마치 중앙청 앞, 세종로 거리에
이순신 장군의 동상을 지나쳐 버릴 수 없는 것처럼, 프라하의 한 복판에는
후스의 동상이 있습니다. 바로 그 밑에 후스가 죽음으로까지 열렬히 외쳤던
-
‘진리가 승리 한다.’는 문 귀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여, 진리를 들으라,
진리를 전하라, 진리를 따르라!'는 후스의 외침이었습니다. 그럼 그 진리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리스 철학에서 말하는 의미에서의 진리가 아니라,
성경에서 증언되는 진리, 곧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후스는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고 사제가 되어 체코
프라하에 있는 베들레헴 교회에서 말씀을 전하였고 또한 찰스 대학에서
신학을 가르쳤습니다. 당시는 중세 교회가 점차로 부패해 지면서 교회의
본래의 모습을 상실해 가던 때였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권위를 드높이고
-
사람들이 그 앞에서 위압감을 느끼도록 교회의 건물을 크게 세웠습니다.
지금까지 유럽에 남아있는 훌륭한 교회 건축물들은 모두 그 당시에 지어진
것입니다. 교황은 해(sun), 국왕은 달에 비유될 정도로 교황과 교회의 위세가
드높았던 중세교회는 로마의 바티칸에 베드로 성당을 지어 교회의 권위를
-
만방에 과시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건축 비용을 충당할 길이 없었고,
또한 그리스도교 역사상 저질러진 가장 추악한 십자군 전쟁의 비용을 충당
하기 위하여 면죄부가 판매되었습니다. 급기야 이러한 방법으로 많은 부를
축적해 가던 중세교회는 교회 본연의 모습을 상실하고 부패해 버려 가는데,
-
이러한 상황에서 후스는 교회가 저지르는 이런 엄청난 죄악을 외면하지 않고,
교회의 개혁을 부르짖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개혁의 소리가 기득권을
장악하던 교회 지도자와 이들과 결탁한 정치 지도자들에게 달가울 리 없었을
것입니다. 드디어 후스는 교회 재판에 회부되었고, 자신에 대한 아무런 변호를
-
할 기회가 주어지지도 않은 채 이단이라는 명목으로 화형에 처해 지게
되었습니다. 몇 번에 걸친 회유의 유혹도 있었습니다. 지금이라도 잘못을
시인하면 목숨만은 살려 주겠다는 식으로 후스가 비판하던 모든 소리들을
철회하라는 요청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후스는 담대히 해야 할 말을 함으로써
-
죽음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후스는 산 채로 화형을 당하는 가장 극심한
형벌을 당해야만 했습니다. 우리가 조금만 데어도 얼마나 아픕니까! 그러니
화형 당할 때의 고통이란 가히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16 세기에 종교 개혁을 일으켰던 인물들은 각기 다른 모습의 죽음을 맞이
-
했습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루터와 칼뱅은 노쇠현상으로 자연스런 죽음을
맞이한 반면, 츠빙글리라는 스위스의 종교 개혁자는 개혁을 반대하는
가톨릭교도와의 전투에서 전사하였습니다. 최근 로마 교황청은 후스에게
내려진 콘스탄츠 공의회의 당시 결정이 부당하였다는 것을 시인한 적이
-
있습니다. 종교개혁의 샛별인 후스가 억울한 죽음을 맞은 뒤 약 600여년이
지나서 역사는 그 진실을 밝혀 준 것이었습니다. 역사가 진실을 밝혀 준다는
것을 우리는 여러 차원에서 보게 되지만 후스의 사건은 우리에게 그러한
사실을 또 한 번 확증하여 주는 좋은 예입니다.
-
어제 모압 왕 발락의 명을 받고 발람에게 저주를 명하자 하나님께서 개입
하시어 발람을 막았는데 발락이 두 번째 초청을 하자, 하나님의 뜻을 알아볼
테니 기다리라고 했습니다(19). 밤에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나타나시어
가로되 하나님께서 이르신 말만 준행하라고 하셨습니다(20).
-
이윽고 길 떠나는 발람에게(21) 어찌된 일인지 하나님께서 길을 막았습니다.
(22)그러나 발람은 그 주의 천사를 보지 못하고, 단지 발람의 나귀만이 그
주의 천사를 알아보았습니다. 그래서 나귀는 발람이 이 길을 제대로 걸어
나아가지 못하도록 평소와는 달리 발람을 편하게 인도하지 않고 발람을
벽에 부딪히게도 하고 주저앉히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라도 하여 그의
주인 발람이 하나님의 뜻을 거역 지 않고 모압 사람들과 길을 떠나지 않게
하려던 것입니다. 그러나 발람은 나귀의 이러한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였고,
나귀가 보게 된 주의 천사가 길을 막고 서 있음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
결국 발람은 나귀를 지팡이로 때리고 칼이 있었더라면 그 나귀를 죽여 버렸을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때 주님에 의해 입이 열려진 나귀가 주인을 깨달음으로
인도합니다. 그제서 야 비로소 발람은 두 눈이 열려서 앞에 주의 천사가 서
있음을 보게 됩니다. 주의 천사에 설명을 듣고 난 연후에야 발람은 자기가
-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행동할 번했다는 것과 그것을 자신의 나귀가
막아주게 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뉘우치게 되었지요.
이것이 발람과 그의 나귀이야기입니다. 자기가 칼을 들어 죽이려 했던
나귀 때문에 자신이 여호와의 사자에게 죽음을 면했음을 알게 됩니다.
-
본문에서 가장 핵심적인 메시지는 성도들이 바로 발람의 나귀와 같은 역할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발람과 같이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일을 할
적에 또한 당시 교회의 최고 지도자인 교황이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할 때, 일반 평신도가 오히려 깨어 일어나 발람과 같이 잘못된 길로 들어
-
서려고 하는 것을 막아 주어야 할 것입니다.
당시 후스는 일반 신도들도 성서를 직접 읽고 그 뜻을 이해하게 도왔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모두에게 쉽고 간편하게 다가가게 하기 위하여 어려운
라틴어로부터 각자의 모국어로 성서를 번역한 것은 종교 개혁자들이 가장
-
역점을 두고 우선적으로 시행한 일이었습니다. 종교개혁 이전까지는 사제만이,
교육받은 소수의 특권층만이 성서를 읽고 이해하였습니다. 대다수의 평신도
들은 무지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이 담긴 성서를 직접 읽고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제들은 복음의 빛을 가리고, 마치 자신들의 이익과
-
이권에 관련된 말씀들을 전하면서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처럼 왜곡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엄청난 잘못을 종교 개혁자들이 바로 잡아갔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가 어느 특정인, 어느 특정 계층 사람들만의 독점물일
수 없다는 것이 종교 개혁자들의 핵심사상입니다. 모두가 직접 하나님의
-
말씀을 듣고 그 뜻을 이해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둔 것이 바로 종교 개혁자
들의 소중한 작업이었습니다. 읽기 쉬운 각국의 모국어로 번역된 성서는 그
당시 발명된 인쇄술에 힘입어 대중에게 확산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후스는 봉건 영주들과 기득권자들과 손을 잡고 종교개혁을 이끌어 나갔던
-
루터와는 달리 억압당하는 자들과 끝까지 연대하며 개혁을 시도했었습니다.
후스를 따르고 그의 뜻에 동조한 무리가운데는 많은 여성들도 있었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결혼이 법적으로
허락되지 않은 당시 교회 지도자들의 숨겨진 아내와 애인노릇을 하던 많은
-
창녀들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후스의 추종자인 여성들의 활약은 대단한 것
이었고,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열렬히 장터와 거리에서 전파
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후스 추종자 여성들에 대해 조사를 하러 나왔던
그 당시 로마 교황청의 한 관리는 한 보고서에서 이렇게 쓰기도 합니다.
-
이 여성들이 바티칸에 앉아있는 교황보다 성서를 더 잘 이해하고 하나님
말씀의 참 뜻을 더 잘 알고 있다고 말입니다. 이렇게 해서 성경이 오늘날
내 손에까지 들어온 것입니다. 또한 얀 후스와 같은 인물은 그러한 종교개혁을
수행하고자 자기의 생명까지 바쳐야 했던 것입니다. 교회의 권위, 인간적 권위
-
앞에 굴복하지 않고, 오로지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고 힘을
얻었던 것이고, 그리스도 자체가 승리한다는 믿음은 그를 화형도 두렵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개혁교회 전통을 가진 신앙인들입니다.
종교 개혁자들이 소중하게 이루어낸 이러한 개혁교회 전통의 유산을 우리는
-
이어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당하게 되는 불의,
인간이 인간을 억압하는 불의에 우리는 침묵만 하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후스의 구호가 된 말씀, 진리가 승리한다는 그 믿음 위에 우리도 굳건히 서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이 그리스도교가 승리하여야 한다는 것으로 오해
-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개혁을 지향하고 실현하여 가는 데에는 남녀
성도의 구별, 연령의 구별, 인종간의, 계층 간의 구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발람의 나귀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지도자가 깨어나지 못할 때,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이 깨어나지 못할 때, 우리들은 더 한층 분발하여
-
분별력을 지닌 나귀의 역할을 해야 할 것입니다.
마음의 순종을 원하시는 하나님, 언제든 무엇으로 일깨우시는 하나님,
나귀를 통해 눈이 열린 발람, 주여, 저도 후스처럼 깨어 살게 하소서.
나귀와 관련된 소동을 통해 가르치시려는 바는 무엇인가?
-
나귀가 여호와의 사자를 보다(21-27)
발람과 나귀의 대화(28-30)
발람과 여호와의 사자의 대화(31-35)
-
발람이 아침에 일어나서(21a)
자기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21b)
모압 고관들과 함께 가니(21c)
그가 감으로 말미암아(22a)
-
하나님이 진노하시므로(22b)
여호와의 사자가 그를 막으려고 길에 서니라(22c)
발람은 자기 나귀를 탔고(22d)
그의 두 종은 그와 함께 있더니(22e)
-
나귀가(23a)
여호와의 사자가 칼을 빼어(23b)
손에 들고 길에 선 것을 보고(23c)
길에서 벗어나 밭으로 들어간지라(23d)
-
발람이 나귀를 길로 돌이키려고 채찍질하니(23e)
여호와의 사자는(24a)
포도원 사이 좁은 길에 섰고(24b)
좌우에는 담이 있더라(24c)
-
나귀가 여호와의 사자를 보고(25a)
몸을 담에 대고(25b)
발람의 발을 그 담에 짓누르매(25c)
발람이 다시 채찍질하니(25d)
-
여호와의 사자가 더 나아가서(26a)
좌우로 피할 데 없는 좁은 곳에 선지라(26b)
나귀가 여호와의 사자를 보고(27a)
발람 밑에 엎드리니(27b)
-
발람이 노하여(27c)
자기 지팡이로 나귀를 때리는지라(27d)
여호와께서 나귀 입을 여시니(28a)
발람에게 이르되(28b)
-
내가 당신에게 무엇을 하였기에(28c)
나를 이같이 세 번을 때리느냐(28d)
발람이 나귀에게 말하되(29a)
네가 나를 거역하기 때문이니(29b)
-
내 손에 칼이 있었더면 곧 너를 죽였으리라(29c)
나귀가 발람에게 이르되(30a)
나는 당신이 오늘까지(30b)
당신의 일생 동안 탄 나귀가 아니냐(30c)
-
내가 언제 당신에게 이같이 하는 버릇이 있었더냐 (30d)
그가 말하되 없었느니라(30d)
그 때에(31a)
여호와께서 발람의 눈을 밝히시매(31b)
-
여호와의 사자가 손에 칼을 빼들고 길에 선 것을(31c)
그가 보고 머리를 숙이고 엎드리니(31d)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32a)
너는 어찌하여 네 나귀를 이같이 세 번 때렸느냐(32b)
-
보라 내 앞에서 네 길이 사악하므로(32c)
내가 너를 막으려고 나왔더니(32d)
나귀가 나를 보고(33a)
이같이 세 번을 돌이켜 내 앞에서 피하였느니라(33b)
-
나귀가 만일 돌이켜 나를 피하지 아니하였더라면(33c)
내가 벌써 너를 죽이고 나귀는 살렸으리라(33d)
발람이 여호와의 사자에게 말하되(34a)
내가 범죄하였나이다(34b)
-
당신이 나를 막으려고 길에 서신 줄을(34c)
내가 알지 못하였나이다(34d)
당신이 이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면(34e)
나는 돌아가겠나이다(34f)
-
여호와의 사자가 발람에게 이르되(35a)
그 사람들과 함께 가라(35b)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말할지니라(35c)
발람이 발락의 고관들과 함께 가니라(35d)
-
발람에게 진노하시다_be angry with Balaam_
나귀를 통해 말씀하시다_speak through a donkey
발람에게 사명을 다시 주시다_to give Balaam a new mission
-
마음의 순종을 원하시는 주님,
발락과 발람이 너무도 많은 이 시대에 누가 발람이 되어야 하는 것도
중요하고, 왜 발람이 저 모양인가를 비판하는 것도 중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가 발람도 될 수가 있고 발락도 될 수
있나이다. 주님, 그렇더라도 스스로에게 발람의 나귀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는가를 겸허히 물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 만인제사장설을 오늘의
한반도에서 계승하고, 발전시키고, 실현시킬 수 있는 길이고 가능성이라
봅니다. 정치, 사회, 종교 각 부분에서 판단력을 잃고 헤매는 발람에게
잘못됨을 깨우쳐 줄 수 있는 나귀의 역할을 하는 성도가 되기를 원합니다.
2023.5.4.thu. Cl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