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양이를 부탁해]
#1. 인천항 (밖/오후)
철조망에 일반인의 출입을 금하는 안내판이 붙어있는게 보인다. 그옆으로 여고교복을 입은 혜주(20), 지영(20), 태희(20), 쌍둥이 비류(20)와 온조(20)가 철조망을 뛰어넘고 있다.
달려가는 아이들의 모습앞에 거대한 선박과 물류들이 싸여있는 인천항의 모습이 넓게 펼쳐진다. 자기들끼리 뭐가 그리 좋은지 어디서나 왁자지껄하다.
태희는 소형카메라로 항구의 모습을 찍는다. 항구의 모습이 스틸이미지로 찰칵거린다.
혜주
야! 우리둘이 한 장 찍어봐
혜주와 지영은 서로 끌어안고 볼을 맞대고 포즈를 취한다. 사진을 찍는 태희
태희
나는 여기 배경으로 이렇게 찍어줘
커다란 배 앞에서 폼을 잡는 태희, 태희 뒤로 휙들어와 카메라에 찍히는 비류와 온조
혜주
이제 한방 남았는데?
태희
우리 다같이 한방 찍자.
혜주
오~케이! 쫌만 기다려 타이머 맞추고.
카메라를 조작해 놓는 혜주,
아이들은 측면으로 나란히 서서 서로의 허리를 잡은 아줌마 포즈로 사진이 찍히길 기다린다.
혜주, 웃으며 급히 뛰어가 아이들 가운데를 밀고 선다.
소리를 내며 돌아가기 시작하는 카메라.
긴장하며 카메라가 찍히길 기다리는 아이들.
타이머가 거의 다 돌아간 순간, 갑자기 카메라 앞에 커다랗고 뚱뚱한 고양이가 천천히 지나간다. 당황해서 고양이에게 비키라고 소리지르는 아이들.
아이들
안돼! 야~ 비켜!! 뭐야~
찰칵- 카메라를 바라보는 고양이에 가려 사진화면에는 아이들의 팔, 다리만이 겨우 보인다.
TITLE IN : 고양이를 부탁해!
#2. 증권사 (안/아침)
아직은 아무도 출근하지 않은 빈 사무실의 블라인드를 젖히자 테헤란로가 한 눈에 보인다.
혜주는 팔짱을 끼고 커다란 의자에 앉아있다. 유니폼 치마가 매우 짧다.
그때 문 열리며 말끔한 정장차림의 여성 애널리스트 미연(31)이 큰 서류가방에 신문, 샌드위치와 커피를 들고 들어온다. 혜주는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미연에게 인사한다.
혜주
나오셨어요? 오후에나 출근하신다고 ...
미연
좀 쉬었다가 나오려다가 그냥 나왔어, 에이취! 차라리 일찍 퇴근하는 게 나을거 같아서.
혜주
근데 감기 걸리셨나봐요.
미연
일찍 출근하네, 집이 어디랬지?
혜주
인천이요,
미연
서울까지 오려면 두시간은 걸리겠네? 이거 혜주씨가 갖다놓은 거야?
혜주
네 안계신 동안 거래된 자료예요
미연, 책상위의 자료를 펼쳐보다가 가방을 뒤적거린다.
미연
번번히 고마워서 어쩌지? 이거 선물,
미연이 내미는 조그만 선물을 두 손으로 공손히 받는 혜주.
혜주는 자기 책상에 앉아 미연이 선물한 자그마한 향수병들을 디카프리오의 배경화면이 보이는 컴퓨터 모니터위에 죽 붙여좋는다.
#3. 성당 복도 (안/오전)
아치형 창문의 스태인드클라스로 겨울빛이 들어오는 긴 복도에 서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태희와 수녀의 모습이 보인다.
태희
억지로 운게 아니예요. 그치만 참아야겠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어요. 뭐라고 말은 못하겠지만 내가 그애를 이해할 수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구요. 그애랑 내가 다를게 하나도 없구나 그런게 느껴졌다구요
수녀
눈물이 나온다고 언제나 우니? 네가 그 아이를 위한다면 그렇게 울어선 안돼, 네가 그러는건 너를 위한 거지 그 애를 위한 게 아냐
태희
그건 동정심은 아니예요, 아니 동정심이라도 좋아요, 세상에는 동정심조차 없는 사람들도 많잖아요.
그때 누군가 문을 열고 수녀님을 찾는다.
누군가(V.O)
수녀님 전화왔는데요,
수녀
오늘은 이 정도로 마치고 다음에 또 얘기하자
수녀가 급히 사무실로 들어가고 태희는 잠시 무엇을 할지 망설인다.
#4. 만수공단 (밖/오후)
오래된 기계들과 철근들이 쌓여있는 낡은 창고들과 공장들이 있는 공단지역을 걸어가는 지영이의 모습이 보인다. 인적이 드물고 한적하다.
사장(V.O)
다른 데는 좀 알아봤니?
지영(V.O)
시간이 없어서 아직 못 알아봤어요.
사장(V.O)
다음주에 기계들을 처분하면 그때 밀린 월급을 보내주마, 그동안 수고했다.
공단거리를 걷던 지영이 드럼통 뒤로 다가간다. 숨어있는 새끼 고양이에게 손을 내민다.
고양이를 안아서 버스 쪽으로 뛰어가는 지영.
#5. 지영집 앞 (밖/해질녘)
나물이 든 그릇을 머리에 인 할머니와 고양이를 안은 지영이가 골목안으로 들어온다.
할머니
고양이는 영물이라서 집에 두면 안좋다.
지영
그건 다 미신이야
할머니
니 할애비가 호랭이띠라서 괭이가 버텨내지도 못해, 갖다버려.
지영집 근처 담벼락에는 몇몇 사람들이 조악한 벽화를 색칠하고 있다. 지영이 유심히 본다.
할머니
빨리 봄이 와야지 산에 가서 달래도 캐고 냉이도 캐고....
할머니의 나물이야기가 끝이없다. 집으로 들어간다.
#6. 지영집 (안/밤)
다락방으로 올라오는 지영, 다락방은 일어서지 못할 정도로 천정이 낮고 비좁다.
지영이 우유를 따라서 고양이 앞에 놓아준다. 맛있게 먹는 고양이의 머리를 만져주는 지영
지영
티티! 맘에들어? 이제부터 니이름은 티티야 티티.
지영이는 아주 오래된 낡은 초록색 유리로 된 스탠드를 켜놓고 모눈종이에 여러 가지 단순한 무늬와 색깔을 채워넣는다. 텍스타일 디자인과 비슷한 그림들이다.
#7. 태희집 (안/밤)
거실에서 태희의 엄마, 아빠와 오빠와 올케언니, 두 조카, 동생 태식이 모두 모여 식사중이다. 텔레비젼 소리와 아이들 소리로 집안은 왁자지껄하다.
태희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다.
올케
아가씨 오셨어요?
아빠
온 가족이 모여 저녁 먹자고 분명히 말했는데 이제 들어와?
엄마
쟤 오늘 봉사하는 날이잖아요, 배고플텐데 빨리 와서 먹어.
올케
어쩌나 아가씨, 밥이 떨어졌네요.
태식
사회에 봉사씩이나 하는데 밥은 먹여줘야 되는거 아냐?
태희
야! 신경꺼
아빠
밥때 못 맞췄으면 굶어야지 밥은 무슨 밥, 배부르고 등따시니깐 지 앞가림도 못하면서 남일에나 정신팔구 다니구.
태희
나두 밥생각 없으니깐 걱정마.
태희가 자기 방문앞에 서서 열쇠로 방문을 연다. 어째 잘 안열린다. 방으로 들어간다.
아빠
그렇게 꼭꼭 쳐닫고 살면 곰팡이 냄새 안나냐?
가족들의 웃는 소리가 들린다. 방으로 들어온 태희 시끄러운 웃음소리가 들리자 음악을 켠다.
#8. 일식점 (안/밤)
회식중인 증권사 직원들이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며 음식을 먹고 있다.
혜주는 사람들의 젓가락이랑 수저랑 다 놓아주고 음식 날라오는거 도와주고 그런다.
한쪽에서는 미연의 외국 체험담이 한창이다.
직원들
정말 잿빛도시야 밍밍해, 음식도 특별한 거 없구 새콤달콤한 맛이 없는 무뚝뚝한 사람같아.
저도 지난 겨울에 갔었거든요, 공항에서 담배피고 싶어서 혼났죠. 얘네는 뭐든 잘 지키는 나라구나 그게 느껴지더라구요.
근데 왜 거기 스튜어디스들은 하나같이 생긴 게 그렇죠? 예쁜 여자들을 하나도 못 봤어요.
우리랑은 사람뽑는 기준이 틀리지.
그래도 서비스직인데 좀 예쁘고 젊은 애들 쓰면 안되나?
한번 건의해보지 그래.
그래도 뭐니뭐니해도 서울만큼 놀기좋은 도시도 없어요.
사람들 틈 속에서 연신 웃고 장단 맞춰주는 혜주가 빛나보인다. 술도 잘 받아먹는다.
혜주는 남자직원 박민규(28)의 술잔을 얼른 채워준다.
혜주 화장실에 가려는 듯 일어난다.
웃던 얼굴로 일어서 나오며 얼굴 근육을 푸는 혜주, 눈에 식염수를 넣는다.
#9. 혜주집 앞 (밖/아침)
쨍그랑- 혜주네 집 창문 유리창이 깨진다.
부모님이 싸우는 소리를 뒤로하고 대문을 거칠게 쾅닫고 나오는 혜주,
대문을 나와 골목을 돌아서는데 어떤 승용차가 검게 폭파한 채 고철덩어리가 되어있다.
혜주는 무심하게 지나치다가 잠시 돌아본다.
#10. 동인천역 (밖/아침)
개찰구를 지나 멈춰있는 국철에 올라타는 혜주와 사람들. 잠시후 국철문이 닫힌다.
국철이 빠져나가는 역사풍경이 인천항과 함께 원경으로 보여진다.
#11. 국철안 (안/아침)
달리는 국철운전석에서 본 철로, 정차중인 국철로 서서히 모여드는 사람들,사람들을 태운 국철이 서서히 역사를 빠져나가는 이미지들이 보인다.
혜주가 작은 목소리로 따라 읽는 실용영어문장들이 보인다. 덮히는 책
아직은 그리 사람이 많지않은 이른 국철안, 이어폰을 꽂고 영어공부중인 혜주가 보인다. 혜주는 핸드폰을 꺼내 문자메시지를 휘이익 만든다. “8시 라쿠카라차 선물없음 죽음이야 메시지 전송중”이라는 글자가 만들어진다.
#12. 증권사 (안/오후)
혜주, 화려하게 포장된 장미꽃 스무송이와 향수를 들고 카드를 펼쳐보고있다.
옆직원
남자친구가 보냈나봐... 좋겠네.
여직원2
스무송이 장미에 향수? 이젠 키스선물만 남았네.
박민규
너의 스무번째 생일을 축하해. 난 언제나 니 곁에 있을거야, 재용?
혜주 뒤에서 카드를 크게 읽는 박민규, 혜주는 카드를 덮는다.
혜주
박대리님!
박민규
어떤 놈이야? 내 허락도 없이 우리 혜주씨한테 찝적대는 놈이.. 어, 오늘 생일이었어? 말을 하지. 선물도 준비 못했잖아. 가만 있자... 오늘 나랑 영화나 볼까?
옆직원
꽃배달까지 왔는데 약속이 없겠어요?
혜주
아니에요, 저 오늘 약속 없어요.
박민규
그치? 그럼 오늘 나랑 영화보는 거다. 약속했다~
옆직원
박대리님, 혜주씨 한테만 너무 유난한 거 아니에요?
직원
혜주씨! 여기 음료수 좀 갖다줄래?
쟁반에 음료수를 들고 회의실앞에 서는 혜주, 유리너머 회의실 안에는 애널리스트 미연이 주가전망에 대한 방송인터뷰 촬영을 하고 있다. 혜주는 창으로 미연이 인터뷰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핸드폰을 들고 통화중이다.
혜주
갑자기 이거이거 지금 당장 해야한다 그러니 난들 어쩌니? 요즘 장이 안좋아서 회사분위기도 안좋구, 내가 뭐 힘이 있니? 제 생일이라서 안되는데요 그럴 수는 없잖아, 야 미안해~ 애들한테는 니가 다시 연락좀 해줘라. 응?
#13. 맥반석체험실 (안/오후)
태희는 카운터에 앉아 들어온 손님에게 옷장 열쇠와 실내복을 주고 계산을 한다.
한 손님이 음료수를 달라고 부른다.
태희
잔깐만요...도대체 왜 맨날 내가 전화해야 되는거니? 일일이 연락해서 약속잡는 것도 꽤 신경 쓰이는 일이야 ......난 뭐 한가한 줄 알아?
태희는 비류와 온조에게 전화한다.
태희
혜주가 일때메 오늘 생일파티 미루자는데? ..선물은 샀어? ...어 그래 이따 놀러갈께.
태희, 지영의 회사로 전화한다.
태희
서지영씨좀 부탁합니다. 그만둬요? 언제요? ...아, 네.. 핸드폰으로 해볼께요.
태희
지금 맥반석 새로 나오니깐 들어들 가세요
태희, 음료수를 들고 체험실안으로 들어간다. 불가마에서 맥반석이 굉음을 내며 서서히 나온다. 실내복을 입은 손님들이 하나둘씩 맥반석앞으로 가서 손을 들고 죽 서있는 모습이 보인다. 태희, 손님에게 음료수를 내민다.
손님
아가씨 생각에는 이걸 하는게 효험이 있기는 한거유. 얼마나 해야 효능이 나타나?
태희
원적외선이 나와서 혈액순환에 좋다는데 전 잘 모르겠어요. 맨날 여기서 낮잠 자는데 별 차이를 못느끼겠던데요. 저 아줌마가 매일 오거든요? 저 아줌마한테 물어보셔요
태희아빠가 개량식 한복이 들어있는 봉투를 카운터에 펼쳐놓으며 태희를 부른다.
아빠
갈아 입어봐.
태희
이걸 입으라고?
아빠
다른데도 다 이걸 입고 있는데 보기 좋더라, 손님들에게 신뢰감도 주고.
태희
난 절대 안 입어, 내 스타일도 아닌 옷을 어떻게 입어,
#14. 비류와 온조집 (안,밖/오후)
현관문을 두드리는 태희가 보인다.
태희
야, 빨리 열어, 나 춥단말야
안에서 우당탕탕 소리가 들린다.
비류와 온조
잠깐만 기다려
뒤돌아 기다리는 태희, 현관문이 열리더니 독수리와 킹콩가면을 쓴 비류와 온조가 서있다. 놀라는 태희
태희
야 뭐야
웃으며 가면을 벗는 비류와 온조, 둘이 똑같이 생겼다.
지저분한 거실에 아주 작은 배한척이 놓여있다. 비류와 온조는 배에 마주앉아 낚싯줄에 구슬을 꿰고 있다. 비류와 온조가 만드는 악세사리의 재료들이 여기저기 쌓여있다. 구슬, 깃털, 작은 인형들, 스팽글, 반짝이는 천...
태희도 옆에서 낚싯줄에다 구슬을 꿰어 넣는다.
비류
낄 때 눈이 사팔이 되지않게 주의해야 돼
태희
이거하고 있으니깐 어째 마음이 착해지는거 같다...니넨 돈 모아서 가게 낼거니?
온조
가게는 따분하잖아, 마음대로 돌아 다니지도 못하구
태희
니네들 장사하는데나 따라다닐까? 시간은 많고 할일은 없고 궁금한건 많구.
비류
뭐가 그렇게 궁금한데? 궁금한게 있으면 학교에 가야지.
태희
그럼 어디 대학에 가야하나?.... 이건 뭐야?
태희, 앨범에 끼어있는 샴쌍둥이 태아사진을 꺼내본다.
비류
우리엄마 말에 의하면 나랑 온조랑 태어났을 때 몸이 그렇게 붙어 있었다는거야. 그래서 낳자마자는 위험해서 나누지 못하고 조금 자란 다음 둘로 나누었대.
태희
그럼 너희 둘은 하나였던 거야? 이상하다. 둘의 몸이 이렇게 붙어 있었다니.
낯선 표정으로 비류,온조와 사진속의 샴쌍둥이 사진을 번갈아보는 태희,
초인종이 울린다.
집배원(V.O)
국제소포 왔습니다.
#15. 북성동 차이나타운 (밖/오후)
비류와 온조, 커다랗게 포장된 소포를 들고 이국적인 북성동 언덕을 올라오고 있다.
동네는 조용하고 인적도 드물다. 붉게 치장한 중국음식점이 몇 개 보인다.
둘은 어느집 앞에 서서 초인종을 누른다. 대문 앞에는 붉은 중국 부적이 붙어있다.
비류
외할아버지, 저희요 비류와 온존데요, 엄마가 외할머니 선물을 보내셨거든요.
할아버지
난 딸 없다.(중국어)
온조
외할아버지가 딸이 없으면 우리엄마는 누구예요?
할아버지
난 모른다.(중국어)
비류
이거 안 받으실 거예요?
온조
너무 무거워서 다시 가져갈 수도 없다구요, 그냥 여기다가 놓고 갈게요.
비류와 온조, 인터폰에 귀를 대고 있다. 비류가 온조에게 그냥 가자는 눈짓을 한다.
비류
그럼 저희는 갈게요,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만수무강하시라고 엄마가 전해달래요. 안녕히 계셔요.
비류와 온조, 문 앞에 선물을 세워놓은 채 줄행랑을 친다.
온조
할아버진 언제쯤 화가 풀리시려나?
비류
알수없지, 아까 올라오다 본 학교있지? 우리 거기서 물건 좀 팔다갈까?
온조
그럴까?
비류와 온조, 학교앞에서 작은 가방을 펼쳐놓고 악세사리를 팔고 있다. 교복을 입은 몇몇의 초등학생들 구경하고 있다.
비류
저희가 직접 만든거예요
온조
최고의 낚싯줄로 만들어서 절대 끊어지지 않아요.
아이
좀 깍아주셔요
비류가 온조를 툭 친다.
온조
우리 둘 중 누가 언니인지 맞추면 깍아줄게
#16. 증권사 (안/오후)
몇몇직원이 납작이 엎드려 기어다니며 바닥을 유심히 보고 있다.
한쪽눈을 감은 혜주 눈앞에 발이 다가온다. 혜주 올려다 보면 박민규다.
혜주 일어서 감은 눈을 번쩍뜬다.
박민규
혜주씨, 어쩌지? 오늘 영화보기로 한거 나중으로 미뤄야겠는데? 급한 일이 생겨서 말야..언제가 좋을까?
혜주
저야 뭐...늘 오픈이죠.
박민규
그럼 약속 나중에 다시 잡자. 미안~
혜주는 윙크를 하며 저쪽으로 가는 박민규를 한참 바라본다. 한쪽눈을 감는 혜주
옆직원
찾았다.
콘택트 렌즈를 손끝에 얹고 있는 옆자리직원이 보인다.
#17. 카페 (안/밤)
성냥불이 켜지고 케이크에 꽂혀있는 두 개의 초에 불이 붙는다.혜주는 모자를 벗어놓는다.
혜주
그래서 다시 내가 팀장님께 얘기를 했지, 친구들이 섭섭해한다 그렇게 말했더니 친구들이 그렇게 중요하니 그러시잖아? 그래서 그럼요 그랬지, 그랬더니 그럼 내일 하라구 그러시지 뭐야, 근데 두 개만 꽂으니깐 어째 스무 살이 아니라 두 살 같다.
비류와 온조, 태희, 지영, 모두 생일케익을 앞에 놓고 앉아있다.
핸드폰 다섯개가 안테나를 뺀 채 탁자위에 나란히 놓여있다.
스피커에서 생일 축하음악이 흘러 나온다. 혜주가 생일케익 촛불을 끄자 아이들 박수치고 샴페인 뿌려대고 그런다.
작은 선물을 꺼내 혜주에게 주는 태희.
태희
생일축하해! 니가 사달라고 말한 거 그거 맞지?
혜주
맞아, 정말 고마워. 가끔 이런색 발라보고 싶을때가 있거든
까만색립스틱이다. 비류와 온조 립스틱을 꺼내 발라본다.
아이들
마녀같애
비류와 온조의 선물을 뜯어보는 혜주.
혜주
이건 뭐야?
온조와 비류
뽕뽀로뽕뽕뽕~
혜주
뽕브라?
생일카드를 펼쳐보는 혜주.
“올해안에 가슴 키워서 꼭 그거 한 번 해봐”라고 써있다. 한바탕 웃는 아이들.
지영이가 손수 그린 그림이 붙어있는 상자 하나를 올려놓는다. 궁금해하는 아이들.
비류와 온조
와~ 크다. 뭐야?
상자를 열다가 그림을 찢고마는 혜주. 상자를 열고 짧게 비명을 지르는 혜주.
상자 안에는 빨간 리본을 멘 고양이가 앉아있다.
혜주
이거 나 주는 거야? 너무 귀엽다. 태어난지 얼마나 된거야?
지영
이름은 티티야
비류
티티? 이름이 어째 좀 그렇다.그지?
온조
음 많이
고양이를 안고있는 혜주의 핸드폰이 울린다. 핸드폰을 받는 혜주.
혜주
야! 니가 여긴 뭐하러 오니?
태희
누구? 재용이? 오라 그래.
비류와 온조
재용이 보고싶어.
혜주
비류와 온조가 너보고 싶어 죽겠단다.
태희는 선물상자에 붙어있는 찢겨진 그림을 본다.
태희
이거 니가 그린거니? 멋있다. 근데 그릴려면 좀 지루하겠다.
#18. 카페 화장실 (안/밤)
화장실로 들어와 노크하고 붉어진 얼굴에 파우더를 바르는 혜주의 얼굴이 거울에 비친다.
화장실을 나온 지영. 세면대로 와 손을 씻는다. 지영과 혜주의 얼굴이 거울속에 겹쳐있다.
혜주
너 그럼 요새 집에 있는 거야?
지영
응.
혜주
매일 뭐하는데?
지영
유학가면 어떨까 생각중이야. 우리나라에서는 디자인공부해도 결국 다 외국으로 유학들 가잖아.
혜주 웃으며 화장실로 들어간다.
혜주(V.O)
유학은 뭐 아무나 가니? 돈이 있어야 가지.
지영. 거울을 보다가 혜주의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밖으로 나가버린다.
혜주(V.O)
그러지 말고 내가 일자리 알아봐 줄테니깐 빨리 돈이나 벌어, 그래서 학원이라도 다녀보든지 알았어? 야 서지영!
#19. 까페 (안/밤)
지영이는 비류,온조와 함께 홀에서 춤을 추고 있다.
테이블에 앉아있는 재용(20)이는 새끼고양이를 만지고있다.
태희, 담배를 피며 혜주의 가죽장갑과 모자를 써보고 있다.
재용
몸에도 나쁜걸 뭐하러 그렇게 피워대냐? 정말 인류의 미래가 걱정돼, .. 더군다나 니네들은 엄마가 될 사람들이잖아
태희
치, 넌 혜주 어디가 그렇게 좋은거니?
재용
...예쁘잖아, 나는 세상에서 혜주만큼 예쁜애를 본적이 없어
태희
고양이 좋아해?
재용
...예쁘쟎아, 고양이를 좋아하는 남자는 좋은 여자를 얻을수 있다는 속담을 믿거든
태희
그런 속담이 있어?
혜주, 자리로 돌아온다.
태희
어때? 어울려?
혜주
참아줘, 제발...
태희
이거 언제 산거야? 예쁘다 못보던건데
슬며시 모자를 벗어 의자에 내려놓는 태희.
혜주
야 재수생, 넌 무슨과 갈지 정했어?
혜주가 담배를 피려하는데 담배가 떨어졌다. 혜주 재용이를 보며,
혜주
야, 담배 좀 사와.
재용, 재빨리 담배사러 간다.
#20. 신포동 지하보도 (안/밤)
언덕이 있는 긴 지하보도, 수위아저씨가 철문을 내리고 있다. 아저씨는 빨리 지나 가라고 소리친다. 아이들 철문을 닫는 지하보도를 향해 열심히 뛰어간다.
서로 인사하며 헤어지는 아이들.
아이들
잘가, 생일 축하해, 재용아 힘내! 잘해봐!
아이들, 혜주와 재용만 남긴채 웃으며 몰려간다.
#21. 혜주집 앞 (밖/밤)
고양이를 안은 혜주와 혜주의 보따리를 든 재용이 걷고있다.
혜주
넌 친구지 애인이 아냐, 알았어? 명심해. 제발 착각 좀 하지말라구.
재용
나 이제 갈래, 혜주야 생일 축하해
혜주에게 선물 보따리를 준다. 뒤돌아가는 재용에게 소리치는 혜주.
혜주
야, 그리구 너 제발 콧털 좀 깎고 다녀라. 응?
혜주
티티야 춥지?
재용을 바라보던 혜주, 고양이를 코트사이로 넣는다.
#22. 동인천역사 앞 (밖/아침)
출근하는 직장인들이 보이는 역사앞에 혜주가 고양이를 안고 서있다.
저 멀리서 지영이가 오는게 보인다.
지영
야! 꼭두새벽부터 사람을 오라가라 해야겠어?
혜주
어제는 별 생각없이 받았는데 내가 키울 조건이 아니거든. 곧 이사도 가야되고말야
지영이는 혜주가 내미는 고양이를 받는다.
지영
니가 원래 그렇지 뭐.
혜주
근데 얘말야, 조그만게 왜그렇게 똥을 많이 싸니? 나 회사 늦겠다. 언제 우리 회사 근처로 놀러와 맛있는거 사줄께.
지영
언제?
혜주
언제든
혜주, 서둘러 역사로 들어간다. 지영이는 고양이를 안고 시계를 보며 하품을 한다.
#23. 극장 (안,밖/오전)
상영중인 영화의 화면이 보인다.
지영이는 앉아 잠을 자고 있다. 지영이의 무릎에 안겨 고양이도 자고 있다.
영화가 끝나고 몇몇 사람들이 일어나 나간다. 계속 잠자고 있는 지영.
청소하는 극장 관리인이 커다란 크레딧화면을 뒤로하고 지영이를 흔들어 깨운다.
극장 관리인
영화를 보러와서 왜 잠을 자, 영화를 봐야지.
지영
아저씨가 무슨 상관이예요.
극장관리인
잠은 집에서 자야지 왜 극장에서 자냐고. 영화 끝났으니깐 빨리 나가
아저씨는 지영이를 일으켜 세운다. 지영은 아저씨의 손을 밀치며 고양이를 들고 일어난다.
극장 관리인
이건 또 뭐야?
지영, 고양이를 안고 극장을 나온다.
극장앞에 있는 생활정보지를 들고 구인란을 본다.
#24. 증권사 (안/오후)
수화기를 드는 브로커들의 빠른 손놀림들,
시시각각 지수의 변화를 알리는 각종 그래프들이 떠있는 모니터들,
혜주. 메모지를 들고 책상들을 오가며 직원들의 점심주문을 받고 있다.
박민규, 주문처리를 받아줄 오퍼레이터를 찾는데 자리가 비어있다.
혜주 망설이며 비어있는 자리에 앉는다.
박민규
한국통신 2만주 7만7천8백원 매수.
혜주 복창하며 키보드를 친다. 혜주 모니터를 바라본다. O.K사인을 보내는 혜주
박민규
제대로 된거야?
혜주
그런 것 같아요
박민규
코드번호는 어떻게 외웠어?
혜주
증권사 다니는데 그 정돈 알아야죠.
그때 여직원1이 사무실로 들어온다. 혜주는 일어나 박민규 옆에 선다.
박민규
장중에 이렇게 자리를 비워도 되는거야?
여직원1
화장실도 못가요?
혜주
대리님 식사?
박민규
오늘 메뉴가 뭐야
혜주
중국음식이요
박민규
난 알지? 혜주씨랑 같은거
혜주 웃으며 메모할 때 지영에게 전화온다.
혜주
야, 미리 전화도 안하고 오면 어떡해... 증권사에 점심시간이 어딨어.....아냐, 거기 역에 커피숍있지? 거기서 기다려 잠깐 내려갈께
직원
혜주씨 거기 팩스 온거 좀 뽑아다 줄래?
대답하며 재빠르게 팩스로 가서 팩스를 뽑는 혜주
#25. 역삼역내 카페 (안.밖/오후)
지하철을 타는 사람들이 오가는게 한눈에 보이는 창가에 앉아있는 지영이 보인다.
한참을 앉아있던 지영이 일어나 커피숍을 나와 지하철 계단을 내려간다.
그때 바쁘게 커피숍으로 들어가는 혜주.
지하철을 기다리는 지영이 보이고 위에는 커피숍에서 나와 전화하는 혜주가 보인다. 계단을 사이에 두고 위,아래서 통화를 하는 두아이
혜주
어디야?
지영
인천으로 가는 중이야
혜주
내가 월요일은 제일 바쁜날이라고 말했잖아
지영
그럼 그냥가라고 하지 왜 한시간이나 사람을 기다리게 해
혜주
잠깐 얼굴이나 볼려고 그랬지
지영
일이나 잘해
지영, 마침 도착하는 지하철에 오른다. 지하철이 떠난다.
#26. 맥반석체험실 (안/오후)
카운터에 앉아 책을 읽고있는 태희에게 아빠가 맥반석체험실 새단장 안내지를 준다. 카운터의 태희앞에 여객터미널 배 출항 시간표를 붙인다.
아빠
이거 보고 있다가 배가 올 때마다 터미날입구에 가서 나눠줘, 여관보다 싸구 그래서 보따리장사들이 선호를 한다더라.
태희
이런다고 장사가 되겠어?
태희에게 전화온다.
태희
누구? 너가 웬일이야? .... 음 알았어 그러지 뭐.
#27. 시내버스 (안,밖/ 오후)
사람이 별로 없는 버스에 앉아 전화하는 지영, 집수리와 관련된 스티커를 들고있다.
지영
그런 방법말고는 없나요? 네, 그럼 나중에 다시 전화드릴께요.
그때 버스에 오르던 아줌마, 지영에게 아는 체를 한다.
통장아줌마
지영이 아니니? 할머니 할아버지는 잘 계시고?
지영, 아줌마에게 자리를 양보한다.
지영
네... 아줌마 저 아무거나 일자리 좀 소개해주셔요.
통장아줌마
나야 뭐 파출부 자리밖에 모르지.
지영
그런거라두 괜잖아요, 꼭 좀 부탁드려요. 저 지금 내려야되요.
통장아줌마
어디든 한번 알아보마.
창밖에 태희가 서있는게 보인다. 지영이 버스에서 내려 태희에게 간다.
태희
어디서 오는거야?
태희는 손에 전단 한 뭉치를 들었다.
#28. 여객터미널 (안,밖/오후)
태희와 지영, 작고 낡은 터미널에서 사람들에게 전단을 나줘주고 있다. 터미널 안은 보따리상들의 하역과 이동으로 분주하다. 바닥에 앉아 국밥 먹는 아줌마, 짐을 나르는 사람들의 모습, 알아듣지 못할 말로 시끌벅적한 터미널을 뒤로하고 지영과 태희는 나온다.
태희
너 덕분에 빨리끝났는데? 참 까먹기 전에 줄께.. 여기
지영
언제까지 갚아야돼?
태희
돈 생기면 갚어, 근데 뭐 할려구 그래?
지영
전에 일하던 데서 아직 입금이 안돼서 그래, 돈 생기면 금방 갚아주께, 그런 착한 표정 좀 짓지마 너무 싫으니깐,
#29. 육교 (밖/오후)
태희와 지영은 육교를 오르며 이야기한다.
태희
너가 전화해서 의외였어.
지영
내가 그렇게 전화를 안했나?
태희
우리 다 모일 때는 맨날 내가 연락하지, 너는 나한테 한번도 먼저 전화한 적 없었어.
지영
그랬나?
태희
졸업하니깐 친구들하고 자꾸 멀어지는거 그게 제일 섭섭해, 학교 다닐 때가 진짜 좋았는데. 매일 만나다가 떨어져 지내니깐 이젠 만나도 할 얘기도 없어지구 말야
두아이가 육교 중간쯤을 걸어 가고 있을때 육교 반대편에서 이상하게 차려입은 거지 아줌마가 다가온다. 거지 아줌마 미친 듯이 중얼거리며 사람들을 건드린다.
나란히 가는 지영이와 태희 사이를 가르며 알아 듣지 못할 말을 하며 지나간다. 아줌마의 눈이 무섭다. 지영이는 빤히 아줌마를 쳐다본다.
두아이는 아줌마를 슬금슬금 피해 육교를 내려온다.
육교 건너에 거지 아줌마가 보인다.
#30. 인천 가정법원 앞 (밖/오후)
잘차려 입은 성깔 있어 보이는 혜주의 엄마가 탄 자가용과 혜주아빠의 영업용택시가 보인다. 혜주와 언니 미주(24)가 서있다. 엄마의 자가용이 멈춰있다,
미주
됐어, 그냥 여기 어디서 혜주랑 밥먹고 갈래.
아빠의 택시가 서서히 다가온다.
미주
먼저 가세요
두대의 자동차가 나란히 법원을 빠져나가는게 보인다.
혜주와 미주는 자동차들이 빽빽하게 서있는 가정법원 주차장을 요리저리 빠져나간다.
혜주
난 다른 애들이 우리 엄마, 아빠 이혼했어 그러면서 울고 그러길래 부모가 이혼하는 게 굉장히 슬픈일인줄 알았는데 별 느낌 없다, 언니야 너는 어떠니 ?
미주
아직 실감이 안나서 그래.
혜주
그래도 생각보다 빨리 끝나더라. 난 애들 만나고 들어갈래 언니 먼저 들어가
#31. 만석부두 (밖/오후)
좁은 골목으로 돌아서면 작은 목선들이 들어와 있는 인적이 없는 부둣가다.
지영
아까 그 아줌마처럼 거지가 될까봐 무서워,
태희
글쎄 난 무섭다는 생각은 별로 안해봤구, 가끔 그런 사람들보면 궁금해서 따라가보고 싶기는 해, 뭐하면서 지내는지, 아무런 미련없이 자유롭게 떠돌아 다닐수 있는건 좋은 일 아냐?
지영
과연 자유로울까? 전혀 좋을거 같지 않은데? 어떤일이 생길지 어떻게 알아, 게다가 우리는 여잔데,
태희
너 보기보다 겁 많구나?
부두에 서서히 물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태희와 지영, 함께 부두가를 말없이 걷는다. 지영의 핸드폰이 울린다.
지영
무슨 일이야?......나 지금 바뻐... 그래
지영의 굳은 얼굴을 보고있는 태희에게도 전화온다.
태희
어,누구좀 만나고 있어, 그냥 아는 친구...난 너가 모르는 친구도 있음 안되니?...알았어, 이따 전화 할께
태희, 지영 잠시 침묵한다.
태희
혹시 너두 혜주?
지영
음..
#32. 핸드폰 대리점 (안,밖/밤)
작은 상점들이 있는 길가를 걷던 지영, 진열된 핸드폰들을 유심히 보다가 가게안으로 들어간다.
지영
번호는 그대로 하고 기기만 바꿀려고요
직원
골라보셔요
직원, 여러 가지 핸드폰을 진열대에서 꺼내 놓으며 핸드폰들의 장점을 설명한다.
#33. 맥반석체험실 앞 (밖/밤)
“원조 으뜸맥반석체험실”이라는 붉은 간판이 정말 크다. 그리고 글씨도 크다.
아빠와 태희, 간판 올리는걸 보고 있다.
아빠가 태희에게 다가온다. 태희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팔짱끼고 간판을 올려다본다.
아빠
어떠냐? 저걸 달면 가게가 눈에 확 띄겠지? 보기 좋지?
저만치서 혜주가 태희아빠에게 인사를 하며 걸어온다.
태희
어? 너 웬일이야?
혜주
차타고 지나가는데 너 서있는게 보이더라고, 야! 간판 되게 크다.
태희
떡 먹을래?
혜주
떡까지 했어? 우리 어디 딴데 가자
간판이 새로 걸리고 불이 들어온다. 워낙 커서 어두운 주변에 오직 간판만 보인다.
#34. 지영집 (안/밤)
어두운 방안은 할머니가 뭐든 주어와서 여기저기 쌓아놓은 잡동사니로 가득하다. 할아버지는 TV에서 하는 사극을 크게 틀어놓고 보고 있다. 할머니는 미싱질을 한다. 천조각들을 조각조각 이어서 누더기 이불을 만든다. 바구니에 기운 양말이 가득 있는걸 본 지영이 속상해서 할머니에게 화를 낸다.
지영
이런걸 요즘 누가 신는다고 이러는 거야. 양말 한 켤레에 얼마나 한다고.
할머니
뭐든지 아껴써야 잘 살지.
지영
우리가 뭐 아낄게 있기나 한가. 할아버지 소리좀 줄여
천정 한가운데서 흙더미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다가 천정의 가운데 부분이 점점 내려온다. 지붕을 올려다보던 지영, 실뭉텅이를 하나 만진다.
지영은 다락방으로 와 고양이를 안는다.
지영
잘놀았어?
고양이는 지영이의 얼굴을 핥는다. 고양이에게 실뭉텅이를 준다. 실뭉텅이로 노는 고양이.
지영 새로 산 핸드폰의 착신음악들을 고양이에게 들려준다.
지영이 그림을 한 장 완성한다. 할머니가 기운 누더기 이불같이 여러 가지 색의 네모들이 겹쳐진 이미지의 그림이다. 지영이는 놀고있는 고양이를 안아 발에 물감을 묻힌다. 완성된 그림에 고양이 발자국을 꾹 눌러 찍는다.
지영
앞으로 다 그린 거에는 니 발자국 낙관을 찍어줄게
지영, 고양이 발자국을 몇장의 그림에 찍는다. 고양이 꿈틀댄다.
#35. 던킨도너츠가게 (안/밤)
태희, 혜주와 도너츠를 먹고 있다.
꼬장하고 번듯하게 생긴 할아버지가 가방을 어깨에 매고 껌팔러 들어온다.
태희
...사실은 지영이 만났었어. 나한테 돈좀 꿔달라고 연락이 왔었거든
혜주
어쩐지...너 지영이한테 그렇게 잘해주지마, 넌 사람들 부탁 거절도 못하구 맨날 그렇게 살다가 사람들한테 이용만 당한다구.
태희
그게 뭐 나쁘니? 사람들에게 내가 소용이 있다는 건 좋은일이지 뭘그래?
혜주
너가 아직 세상의 쓴맛을 못 봐서 그래.
태희
너나 쓴맛 많이보구 살어.
혜주
지영이 니돈 절대 안갚을걸? 나두 전에 몇번 돈 꿔준 적 있었는데 한번두 못 받았어.
태희
진짜 돈이 없었나보지,
태희앞에 선 할아버지 껌을 내밀자 태희는 통화하며 무의식적으로 손을 내젓는다.
태희
나.. 주상이랑 어떡할까?
혜주
그 뇌성마비시인? 어떡하긴 뭘 어떡해, 너 언제 철들려고 그러니? 애매한 동정심하고 사랑은 달라, 하여튼 철딱서니 없어가지구 말야,
태희
나 진짜 걔 좋아해, 맘에 든다구
할아버지는 가게 안의 아무도 껌을 안 사자 큰소리로 화를 내고 밖으로 나간다.
태희, 고개를 돌려 밖을 내다본다.
#36. 주상의 방 (안/오후)
태희는 주상(20)이 불러주는 시를 타자기로 받아치고 있다. 태희는 주상이의 말에 온힘을 기울여 듣고있다. 주상은 몸을 가누는 것조차 힘든 1급 뇌성마비 장애인이다.
태희
니말대로 타자 치는 소리는 좋아, 그치만 시를 컴퓨터로 치면 안된다는 건 쓸데없는 고집이라고 봐.
주상
그래야 너도 만날 수 있잖아.
주상을 쳐다보는 태희, 주상이 태희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
태희
왜? 내 얼굴에 뭐 묻었어?
주상, 고개를 끄덕인다.
태희
어디?
태희 얼굴을 이리저리 만져본다. 주상이 웃는다.
#37. 혜주집 (안/오후)
혜주와 미주는 이삿짐을 나른다. 재용이가 도와주고 있다.
혜주
언니야 서울 시민이 된 기분이 어떠니? 내가 제일 싫어하든게 뭔지 아니? 밤에 돌아올 때 전철 안에 진동하는 돼지갈비 냄새랑 술 냄새. 정말 생각만 해도 지겨워.
미주
나 이번 발령 때 여수로 가게 될지도 몰라.
혜주
진짜야?
혜주, 미주를 보다가 뻘춤하게 서있는 재용을 본다.
혜주
너 이제 가야지 뭐해?
재용
가라구?
혜주
그럼? 여기서 살거야?
재용이가 인사하고 간다.
미주
아니 밥이라도 먹구 가야지 재용아!...너 진짜 못됐다.
혜주
내가 도와 달랜 거 아냐, 자기 오늘 할 일없다고 운동 삼아 짐나르고 싶다고 했다구.
혜주 벽에 세계 지도를 붙여놓는다.
인천에서 서울로 그려지는 선, 도시명에 동그라미 쳐놓는다.
그때 화장실에서 언니 미주의 오바이트 소리가 들린다.
혜주
언니야 어디 아파?
#38. 산부인과 복도 (안/오후)
사과를 우지직 우지직 씹어먹으면서 병원 복도를 거니는 혜주,
복도에 붙어있는 자궁과 태아의 모습이 그려진 그림들과 피임의 여러 가지 방법들이 쓰여있는 포스터들의 이미지가 짧게 깜박깜박 페이드된다.
초음파기계에 찍힌 조물락거리는 아이의 모습이 모니터로 보인다.
혜주, 카운터의 간호원에게 간다.
혜주
저기요 물어보고 싶은게 있는데요.
간호원, 하던 일을 멈추고 혜주를 본다.
혜주
저기 여자가 영원히 아이를 가지지 않으려면 어떤 수술을 해야해요? 비용은 얼마나 들죠?
미주가 휠체어를 타고 수술복을 입은 모습으로 간호원과 나온다.
혜주, 회복실로 미주를 데리고 간다.
#39. 산부인과 회복실 (안/오후)
몇몇 여자들이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다. 나이가 유난히 많아 보이는 아줌마도 있다.
혜주는 미주를 침대에 눕히며 소근거린다.
혜주
두시간쯤 있으면 마취 풀리고 괜찮아 진대, 아프지는 않았어? 괜잖아? 언니 힘없어 할 필요 없어, 제대로 키우지도 못할 애를 낳아서 뭐해. 낙태하는게 무슨 죄도 아니고
아줌마
아가씨들, 이 수술 자주하면 머리 나빠져.
회복실 아주머니들 웃는다. 미주도 웃는다.
#40. 지영집 (안/밤)
전화를 하고 있는 지영,
지영
한번 와서 보시기나 하셔요. 이런건 주인집이 고쳐줘야 한다구요. 여보세요 여보세요..
지영 전화를 내려놓는다.
할머니
뭐라든?
지영
이참에 아주 이사를 가래. 할머니 우리도 이사갈까?
천정에서 흙가루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 천정의 가운데부분이 많이 내려왔다. 흙이 떨어진다. 방바닥에 대야를 가져다 놓았다.
지영
이부자리를 저쪽으로 옮겨야 되겠어.
지영, 누워있는 할아버지의 이불을 끌어당긴다.
할아버지
지영아, 산에는 절대 가지 마라, 니 아비 산에서 죽은거 알고있지?
지영
알았어 산에 안가.
할아버지
너 태어났을 때 니 애비는 우리 지영이가 여왕이 될거라고 했었는데.
다락방으로 올라오는 지영,
지영이의 그림 위에 겨우 날개짓하는 커다란 나방이 보인다. 지영은 나방을 유심히 본다. 지영이 고양이를 본다. 야옹.
지영
이거 너가 한짓이지? 근데 겨울에도 나방이 있니?
지영이 다락방 창문을 열고 나방을 후- 불어 날려보낸다. 고양이 티티 창밖으로 나간다.
#41. 지영집 지붕(밖/밤)
지영, 다락방 창문밖으로 나온다. 저쪽에서 고양이가 유유히 지붕위로 올라가는게 보인다.
지영
티티야 이리와, 이리 오라니깐.
지영이가 조심스럽게 지붕을 걷는다. 티티를 잡으려고 다가가는 지영, 움푹 파여져있는 무너져 내리는 지붕사이로 티티가 들어간다.
지영
야 너 이리 안나와?
지영, 지붕에 앉아 티티를 꺼내려고 하는게 보인다.
#42. 면접실 (안/오후)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커다란 빈방, 지영이 면접보는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작은 목소리로 면접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두런거린다. 지영이 허밍으로 노래를 낮게 부르며 면접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면접관
운전은 할 줄 아나?
지영
아니요.
면접관
전화정도는 받을수있어야 하는데 영어는 좀 하나?
지영
아니요.
면접관
컴퓨터는?
지영
학교에서 기본적인거 배우기는 했지만 잘은 못해요.
면접관
그럼 술은 잘먹나?
면접심사관들 웃는다.
면접관
그럼 영업부는 안되겠고, 경리부밖에 없는데 여기보니깐 부모님이 모두 안계시는 걸로 되어있는데...
지영
네, 할머니 할아버지랑 사는데요
면접관
어린나이에 고생이 많겠군 그래, 경리로 일할려면 보증을 서줄 직계가족이 필요한데,
#43. 지하보도 (밖/오후)
지영이 지하보도를 걷고 있다.
책가방을 멘 꼬마 아이들이 피리를 불며 걸어간다.
불협화음으로 들리는 피리소리를 뚫고 바쁘게 걸어가는 지영.
#44. 지영집 (안/밤)
지영, 자신의 머리에 염색약을 바른다. 고양이의 흰 다리털에 염색약을 묻힌다.
지영
너도 해줄까?
고양이는 염색약 묻은걸 핥아 닦아낸다.
책상위에 그리다 만 소용돌이치는 모눈종이가 보인다.
#45. 동인천역사앞(밖/밤)
좌판을 펴놓고 장사하고 있는 비류와 온조가 보인다. 몇몇 여자아이들이 악세사리를 구경하고 있다. 사람들 사이로 재용이가 한 여자아이와 웃으면서 지나가고 있다.
온조
쟤 재용이 아니니?
비류와 온조
재용아! 김재용!
돌아보며 어색하게 오는 재용, 평소보다 잘 차려입은 모습
비류
너 오늘 좀 달라보인다?
온조
쟨 누구야? 예쁜데?
좀 떨어져서 새침하게 서있는 여자아이,
재용
그냥 아는 후배
비류
너 남고 나왔잖아?
재용
학원 같이 다니는 애야, 아무 사이도 아냐, 나중에 보자, 혜주한테 말하지마
여자아이와 황급히 떠나는 재용
비류
좀 이상하지?
온조
음 많이
핸드폰이 울린다. 동시에 받는 비류,온조
#46. 전화중인 아이들 (안,밖/밤)
아이들이 각자 전화하는 모습이 보여지다가 프래임이 4개로 나누어진다.
(태희방) 태희, 전화하고 있다.
태희
나는 뭐 한가해서 맨날 너희한테 연락하고 이러는 줄 아니?
(동인천역사앞) 전화하는 비류와 온조
비류와 온조
일요일에는 장사해야 되는데...
태희
혜주가 일요일밖에 안된다니 어떡하니,
(지영집) 지영이는 다락방에서 통화중이다.
지영
글쎄,잘 모르겠다.
태희
한달에 한번씩은 만나줘야 우정이 유지되지, 이러다가 금방 우리 우정 금 간다구.
비류와 온조
꼭 그래야 돼?... 알았어 그러지 뭐.
(편의점) 혜주는 물건을 사고 나오고 있다.
혜주
근데 인천까지 언제가니..니네가 서울로 오면 안돼? 그러지말고 우리집으로 놀러와라
태희
넷이 서울로 가는게 낫냐, 너 하나가 인천으로 오는게 더 낫냐?
혜주
너희 넷이 서울로 오는거... 알았어 농담이야...주말에 집정리 좀 할려고 했는데
지영
혜주네 집까지 가야돼면 난 안가
비류와 온조
월미도? 가본지 오래됐는데 좋아
#47. 월미도 (밖/오후)
다른 아이들은 인형뽑기를 하고 있고 머리를 노랗게 염색한 지영이가 책을 읽고 있다.
혜주가 다가온다.
혜주
무슨 책을 그렇게 열심히 보고있어? 뭐야?
지영
어 그냥.
혜주가 책의 표지를 보려고 한다. 지영은 혜주의 손을 뿌리치며 책을 가방에 넣는다. 혜주 기분이 나쁘다. 혜주와 지영, 서로 어색하게 앉아있다.
비류, 온조는 뽑은 인형을 들고 온다. 둘은 혜주를 보자 양 옆에 앉는다.
비류
우리 저번에 재용이 봤다
온조
어떤 여자애랑 가고 있던데?
혜주
그래서?
비류
그냥 그랬다구, 근데 그 여자애 무지 귀엽더라
온조
재용이랑 정말 잘 어울리던데?
혜주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옆에서는 미얀마인들이 태희에게 같이 놀자고 말을 걸며 태희를 따라온다.
미얀마인들
나 한국사람 좋아, 나 한국여자 사랑해
태희
한국말 잘하네요. 어디서 오셨어요?
미얀마인
미얀마
태희
야 미얀마가 어디있는거니?
비류와 온조
버마,버마.
태희
어쩔까? 같이 놀자는데?
혜주는 태희의 말에 다른쪽으로 간다. 다른아이들 따라간다.
태희
왜 재미있을거 같은데 같이 놀아보자.
혜주
야 공돌이들하고 뭘 놀아.
아이들 순간 지영이를 본다.
지영
나 이제 공장 안다녀.
혜주
태희야, 넌 동남아 타입인가봐, 왜그렇게 동남아 남자들이 꼬이니?
비류
심심해
온조
이제 뭐하지?
할 일없이 늘어진 다섯아이가 천천히 거리를 걸어간다. 아이들의 걷는 속도 다다르다.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하며 걸어간다. 혜주는 저만치 앞에 가며 아이들을 보기도 한다.
그때 아주 센바람이 불어온다. 간판이 흔들리고 상점의 옷이 날리고 휴지통이 덜컹거리며 봉지들이 여기저기 날라 다닌다. 머리카락이 부서지듯 날린다.
아이들 옷을 여미며 날아가 버릴 것같다고 소리를 지른다. 서로의 옷자락을 잡는다.
아이들
얘들아 나 좀 붙잡아줘
아이들, 버스정류장에 나란히 서있다. 저마다 다른곳을 바라보고 있다.
버스정류장에 도착한 버스가 아이들의 모습을 가린다. 버스에 함께 우루루 올라타는 아이들
#48. 의류상가 ‘두타’ (안,밖/밤)
사람들이 많은 상가의 좁은 복도 사이로 옷을 구경하는 다섯 아이들의 모습이 보인다.
혜주는 앞장서서 옷을 고르느라 정신이 없다. 혜주는 이미 여러개의 쇼핑백을 들고 있다.
비류와 온조는 만화 캐릭터들이 프린트 되어있는 가게에 멈추고 세아이들은 계속간다.
비류,온조는 만화의상들을 입어보고있다.
이옷 저옷 만져보고 가격표도 확인하는 혜주, 지영이는 그런 혜주를 본다.
주인
아가씨, 그거 해, 아가씨 입으면 잘 어울리겠다.
혜주
입어봐도 돼죠?
혜주, 옷을 입고 거울을 본다. 태희가 혜주의 쇼핑백들을 들어준다. 혜주가 지영이를 본다
혜주
이거 어때? 살까?
지영
촌스러워
혜주.기분이 나쁘다.
태희
또 살려구?
혜주
갖고싶은게 계속 보이는데 어떡해
지영이 다른 쪽으로 가자 태희도 따라간다.
혜주
이거 얼마에 주실거예요?
태희는 지영이를 따라가다가 잡기류를 파는 가게에서 칼을 보고 멈춘다.
지영이는 외부로 나가는 출입구를 찾는다.
혜주는 계산을 마치고 두리번거리며 아이들을 찾는다. 아이들이 아무도 없다. 혼자 돌아다니며 옷구경한다. 전화를 받는 혜주.
혜주
어디야?
맥가이버 칼을 하나 사는 태희, 혜주에게 전화하면서 가고있는데 비류가 보인다.
태희
넌 어딘데? 야 온조야!
비류
나 비류야.
태희
온조는?
비류
나도 모르겠어.
혜주가 전화하며 걷는다.
혜주
거의 다왔으니깐 그럼 거기 그대로 있어... 아니야 거기 있어 내가 갈게.
혜주는 가다가 온조를 만난다.
혜주
야 비류야.
온조
나 온조야, 비류 어딨어?
혜주
저기 입구쪽에 태희랑 있대.
혜주와 온조, 나란히 입구쪽으로 걸어간다. 그러나 아이들은 없다.
혜주
여기 입구쪽에 있겠다더니 어디간거야.
온조
반대쪽 입구로 간거아냐?
혜주, 다시 태희에게 전화한다.
혜주
아까 우리 들어온 입구 있지? 우린 거기 있는데 너흰 어디야?
태희와 걷던 비류가 저쪽에 멀리있는 온조를 발견한다.
함께 모인 비류, 온조, 태희, 혜주는 입구쪽으로 나온다.
태희
근데 지영이는?
아이들 서로 모르겠다고 고개를 젖는다.
혜주
저기있네.
아이들 쳐다보면 위쪽 1층 에스컬레이터 입구 쪽에 지영이가 서있는게 보인다.
아이들 지영이를 부르며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상가 바깥쪽으로 나간다.
#49. 두타광장 앞 (밖/밤)
지영이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오는 아이들을 보고 뒤돌아선다.
동대문의 의류상가 네온사인들이 번쩍번쩍한다. 젊은 여자애들의 물결로 인산인해다,
한쪽에서는 펌프가 한창이다. 댄싱팀의 무대에 환호하는 젊은 여자아이들의 모습이 보인다.
다섯 아이들 구경하며 사람들 틈을 가로질러 다닌다.
지영
나 먼저 갈래,
혜주
넌 왜 왼종일 뚱한 얼굴이야?
지영
그래서 오기 싫다고 했잖아
혜주
누가 널 억지로 끌고 왔니?
지영이 혜주를 쏘아보다가 빠른 걸음으로 뒤돌아 간다. 태희, 지영일 따라간다.
태희
지영아, 애들하고 같이가자.
지영
나 기분도 안좋은데 괜히 왔나봐, 더 놀다가 와.
지영이는 급히 지하철역사를 향해가고 남아있는 아이들에게 다시 온 태희.
혜주
니들이 서울까지 왔는데, 내가 쏠게, 뭐 좀 먹고 가자.
#50. 국철 안 (안/밤)
지영이 어두운 지하철을 타고 있다. 용산역 쯤에서 전등이 갑자기 나가고 컴컴해진다.
이내 들어오는 전등,
#51. 동대문역사 (안/밤)
혜주와 태희, 마주서서 얘기중이다.
태희
야 너 지영이한테 자꾸 왜그래?
혜주
맨날 자기만 특별한 척하구 말야,
태희
옛날에는 너희둘 제일 친한 사이였잖아.
혜주
너 요즘 진짜 지영이랑 친해졌나본데 응?
태희
지영이가 요즘 어떤지 알기나 해? 넌 너가 필요할 때만 친구지? 너 한번이라두 친구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적 있어? 너한텐 도대체 뭐가 중요한거야?
혜주
옷이다 왜?
지하철이 떠난다.
비류와 온조
야 저거 막차인가 봐.
비류와 온조, 태희 모두 열심히 뛰어가지만 지하철은 벌써 떠났다.
#52. 동대문역사 (밖/밤)
역사밖으로 빠져 나오는 아이들, 옷들이 들어있는 쇼핑봉지들을 손에 손에 들고 전철역으로 버스정류장으로 뛰어다닌다.
#53. 동인천역사 (밖/밤)
지영이 나오는데 돈이 모자라서 삐 소리가 난다. 매표검사원이 다가온다.
지영
아저씨 600원인지 알았어요. 지금 돈이 한푼도 없는데 어떡하죠?
검사원이 웃는다.
매표검사원
어떡하긴 뭘 어떡해? 몸으로 때워야지.
지영이 검사원의 말을 듣고 황당하다. 부글부글 속이 끓는다. 경멸하는 듯한 얼굴로 가운데 손가락을 내민다.
지영
몸으로 때우는게 어떤거야? 자 이거면 돼?
지영, 검사원을 팍 밀치고 빠르게 역사를 빠져나간다.
#54. 지영집 (안,밖/밤)
천정은 점점 내려와 무너져 내릴 듯 방을 위협한다. 지영, 할머니 할아버지와 밥을 먹는다. 할머니는 커다란 총각김치를 베어먹지 못해 고생한다.
지영
칼로 잘라 먹으면 되잖아.
지영이 부엌에서 칼을 들고 나온다. 밖에서 지영이를 부르는 소리가난다.
지영
통장아줌마가 웬일이셔요?
통장아줌마
쓰레기 봉투 주러 왔지, 근데 아직도 일자리 못 얻었니?
#55. 통근버스 (안,밖/아침)
신공항으로 가는 통근버스에 앉아있는 통장아줌마와 지영.
통장아줌마
여기가 다 좋은데 교통이 너무 불편해서 나두 소개시켜주기가 좀 그랬지.
지영
전 괜찮아요.
통장아줌마
일단 다녀보다가 더 좋은데가 생기면 옮겨 음?
지영
고마워요.
창밖에는 넓은 갯벌이 펼쳐져있다. 통근버스가 서서히 공사중인 인천 신공항으로 들어선다.
#56. 혜주집 (안/오후)
미주는 커다란 가방에 짐을 챙긴다.
미주
세금은 다 이 통장으로 자동이체되게 해놨으니깐 이거 잘 가지고 있고, 나갈땐 꼭 창문까지 다 잠그고 나가고...
혜주
주말마다 온다며 뭘 그래? 영영 떠나는 사람처럼..
미주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가끔 엄마, 아빠한테 전화 좀 하구 그래, 이거 선물.
미주언니 로버트강아지를 꺼내보인다.
혜주
언니야 내가 돈 많이 벌어서 언니는 일하지 않고 편하게 살게 해줄게, 나만 믿어
혜주
우리 내년 여름엔 휴가맞춰서 같이 놀러가자
혜주와 미주, 돌아다니며 멍멍거리는 로버트강아지를 보며 웃는다.
#57. 강남고속버스터미날 센트럴시티 (안,밖/오후)
미주와 혜주, 재용이 커다란 가방을 들고 터미널로 들어선다.
떠나기 직전인 고속버스앞에 서있는 혜주와 미주. 재용이는 가방을 차의 짐칸에 싣는다.
미주
고마워 재용아, 너답지않게 무슨 배웅을 나온다고 해서, 재용이만 성가시게 하고..
혜주
멋있잖아, 떠나는 차보고 손 흔들어주고, 언니야 전화 자주해야 돼.
혜주는 미주를 안는다. 고속버스에 오르는 미주에게 손을 흔드는 두사람
미주
그래 알았어.
터미널을 걷던 재용이와 혜주, 상점에서 헬륨풍선을 산다.
풍선을 들고 목소리를 변조시키며 웃는 혜주
혜주
야! 야! 너 우리집 갈래? 맛있는거 해주께...근데 너 또 머리 이발소에서 깎았지? 티가나요 티가 미장원에서 자르라고 몇번이나 말해야 알겠니?
재용
챙피하니깐 그러지
혜주
담에 내가 같이 가줄께,
#58. 혜주집 (안/밤)
한쪽에서 컴퓨터를 고치고 있는 재용, 요리하는 혜주
혜주
다 고쳤어?
재용
좀 더 봐야 알겠는데?
혜주
자 먹자
작은 식탁에는 간이접시에 수저받침까지 수많은 접시들이 세트로 빼곡히 놓여있다.
혜주 냄비 두껑을 열면 라면이 보인다. 작은 접시에 라면을 덜어주는 혜주
재용
다른애들은 어떻게 지내?
혜주
몰라, 지영이가 백수되더니 태희랑 자주 만나나봐
재용
왜, 애들이랑 싸웠냐?
혜주
요즘은 만나도 재미가 없어, 학교 다닐때야 학교가 싫고 선생들이 미우니깐 같이 욕하는 재미에 놀았는데...너야말로 오늘은 데이트 없나보지?
재용
아? 걔?... 그냥 학원친구야...같은 동네살아서 그날 같이 간거뿐이야
혜주
누가 물어봤어?
#59. 신공항 식당 (안/오전)
지영이 기내식을 만드는 거대한 기계들이 움직여 돌아가는 식당에서 유니폼을 입고 일하고 있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음악이 들리고 기계가 하나 둘 멈추면 일하던 사람들이 우루루 모자와 마스크를 벗는다. 지영이도 마스크와 모자를 벗는다.
#60. 시내버스 (안/오후)
태희, 버스에 올라탄 아저씨에게 일곱가지 색깔의 칫솔이 들어있는 세트를 구입한다.
태희, 혜주에게 전화중이다.
태희
아무일도 없다 왜? 꼭 무슨일이 있어야 전화하니? 넌 매일 나한테 전화하면서 내가 먼저 전화하면 안되는 거니?
혜주
나 지금 바뻐 .
태희
너 지영이한테 사과했어?
혜주
야! 뭐 대단히 큰 잘못을 했다구 사과까지 하니? 지금 마감시간이라서 바쁘니깐 이따 밤에 통화하자
#61. 증권사 (안/오후)
태희에게 온 전화를 끊은 혜주,
컴퓨터에 붙여있는 교복입은 친구들과 함께 찍은 스티커 사진이 떨어지려고 하는 것을 본다. 손톱으로 다시 붙여놓는다.
혜주는 바쁘게 체결확인서를 이메일로 보내주고 있다. 마감 직전의 사무실은 분주하다.
#62. 지영집 앞 (밖/해질녁)
태희, 주소를 들고 두리번거리며 지영이네 집을 찾고있다.
낯설기만 한 빈민가의 좁은 골목들을 헤매는 태희가 보인다.
지영이네 집앞까지 왔다. 담장에 그려진 벽화는 빨간 스프레이로 낙서가 되어있다.
태희, 주소를 확인하고 문을 살짝 열고 안을 드려다 본다.
태희
계세요, 여기가 지영이네 집인가요?
#63. 인천신공항 청사 (안,밖/해질녘)
지영이 캄캄하고 조용한 공사중인 공항청사를 걷고 있다.
지영이 뒤로 운항 시험중인 비행기가 굉음을 내며 활주로를 달려 이륙한다.
핸드폰 삐삐거린다. 문자메시지“나 태희야 연락 좀 주라”
#64. 지영집 (안/밤)
태희, 방 한쪽에 앉아있다. 내려앉은 천정을 한참 바라본다. 누워있는 할아버지가 보인다.
태희, 벽에 걸려있는 낡은 인천풍경이 담긴 사진을 바라본다.
할머니가 커다란 왕만두가 담긴 접시를 들고 들어온다. 태희에게 만두를 권하는 할머니.
할머니
우리 지영이 친구가 집에 놀러온건 처음이네, 참하게도 생겼지
태희, 만두를 받아 먹는다. 태희가 다먹자 할머니는 다시 하나를 준다. 억지로 하나를 더 먹는 태희. 다시 만두를 권하는 할머니
태희
전 이제 됐어요 할머니도 좀 드셔요
할머니 자꾸 만두를 권한다. 다시 먹는다.
#65. 지영집 앞 (밖/밤)
소화가 영 안되는 태희, 지영집 앞에 기대고 서있다. 지영이 저쪽에서 온다.
지영
너 여기 웬일이야?
태희
그냥 너가 뭐하고 살고있나 궁금해서 방문한 거야. 같이 산책이나 할까하고.
#66. 자유공원 (밖/밤)
둘은 어두운 밤거리를 말없이 걷는다.
나무 잔가지들의 그림자만이 검게 아스팔트 위를 가로질러 무늬를 만들고 있다.
태희
왜 전화도 안하니? 몇번이나 메시지 남겼는데...
지영
그동안 일이 좀 많았어
태희
혜주 일은 너무 담아두지마....너가 할머니, 할아버지랑 사는지 몰랐어.
지영 풋하고 웃는다.
지영과 태희, 돌아다니다가 식당의 주방이 보이는 골목 구석에 앉는다. 음식을 만드는 소리와 음악소리가 흘러나온다. 태희,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인다.
지영
나두 하나 줄래? ...니가 담배 피는게 좋아보여서
지영, 담배 한모금을 빨더니 쿨럭거린다.
태희
언니가 피는걸 한번 봐... 이렇게
둘이 담배 연기를 내뱉는다.
태희
그림은 잘돼가?
지영은 자신이 색칠한 그림을 한 장 꺼내준다. 작은 무늬들이 가득 그려져있다.
태희
나 주는거야? 고마워, 근데 넌 풍경화나 초상화 같은건 안그리니?
지영
난 그런건 싫더라구
태희는 주머니에서 아까 버스에서 산 칫솔을 꺼내 지영에게 선물한다.
태희
이게 요일 칫솔이거든? 매일 바꿔가며 이닦으면 기분이 좋아질거야
지영
월,화,수,목,금,토,일 이렇게?
태희
아니 월,화,수,목,금,토,일 이렇게
지영
넌 앞으로 뭐할거니? 졸업하고 일년이나 별일 안했잖아.
태희
너 혹시 워킹 홀리데이라는 말 들어봤니?
지영
아니 그게 뭔데?
태희
신문에서 봤는데 호주에서 공짜로 일자리도 소개시켜주고 영어공부도 시켜주고 그러는 거라는데? 괜찮겠지?
지영
설마 그런게 있을라구. 아무나 할 수 있는 거래?
태희
거기는 땅은 넓은데 사람은 별루 없으니깐 하는 거겠지.
지영
그런게 진짜 있다면 나두 가구싶다,
#67. 태희집 마당 (밖/밤)
마당에 있는 비닐하우스의 채소와 화초들을 돌보고 있는 아빠, 대문을 들어서는 태희.
아빠
어딜 그렇게 쏴 돌아 다녀? 어디서 온종일 수다나 떨게 뻔하면서.
태희
여자들은 그 어떤 진지한 이야기를 해도 수다가 된다니깐.
아빠
우리 딸 이리와봐.
태희
왜 또 그래?
아빠
너같이 못생겨서 어디 시집이나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태희
짚신도 다 제 짝이 있대.
아빠
너같은 애를 내가 평생 데리고 살아야 될까봐 걱정이 태산이다.
태희
걱정마 그런일 없을테니깐.... 아빠 나도 공부해서 대학갈래.
비닐하우스에는 여러 화초들이 꽃을 피우고 있다. 아빠는 정성스럽게 분갈이를 하고 물도 주고 난초들을 윤기나게 닦는다.
아빠
난 공부하겠다는 걸 말린 일은 없다. 너가 공부만 잘했으면 대학이 아니라 박사까지 시켜주었을거다.
태희
그러니깐 이제 열심히 공부할거야.
아빠
그럼 가게는 누가보고? 대학갈거면 진작부터 공부를 잘했어야지, 가게 지키다가 시집이나 가. 요즘 봐라 석박사들도 다 장사에 뛰어드는 판에...그리구 넌 나 닮아서 공부는 안돼, 우리가문은 대대로 머리가 나뻐서 공부로 성공한 놈은 한놈도 없어
태희, 할말이 없다. 아빠를 본다.
아빠
그래서 무슨 과 가고싶은데?
태희
정치인이 되면 어떨까? 사람들을 위해 좋은일을 많이 하고 싶어
아빠
차라리 개그맨을 하는게 어떠냐?
태희
예?
아빠
너 사람 웃기는 소리 잘하잖니?
#68. 태희집 (안/밤)
태희는 리모콘을 들고 혜주와 통화중이다. 텔레비젼에는 개그맨들이 나와서 웃기는 프로그램을 하고 있다. 다른채널로 돌리면 텔레비젼 뉴스에서 정치인들이 모여있는게 보인다.
태희, 손가락을 계속 움직여 뉴스와 개그프로를 번갈아 가며 돌려본다.
태희
나 스튜어디스 되면 어떨까?
혜주 엄청 웃는다.
혜주
그게 하고싶다고 아무나 되니? 외모가 중요하니까, 키도 커야 하구.
태희
그거 무슨 뜻이야?
혜주
나니까 솔직히 얘기해 주는 거야, 너한텐 어떤 과가 좋을까?
태희
뭔가 의미있는 걸 할려구, 그리고 내가 좋아할 수도 있는..
태희는 텔레비젼을 끈다.
혜주
그런 막연한 생각으로 어떻게 공부를 하겠니?
태희
넌 왜 남들이 뭔가 하려고 계획을 세우면 맨날 무시 하니?
혜주
너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사회생활을 오래한 언니 말을 들어, 무역학과나 정보처리과 그런데 가...내 가 이십 평생에 범한 가장 큰 실수가 뭐라고 생각하는지 아니? 별 생각도 없이 여상에 간거. 인천에서 제일 좋은 여상 나오면 뭐해,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데.. 그치만 후회는 안해. 대학간 애들보다 4년을 벌었다고 생각하지, 대학 안 가구 성공할거야...그래서 여기저기 출장도 가고말야...
#69. 증권사 화장실 (안/오전)
혜주는 거울 앞에 서서 콘택트 렌즈를 빼고 있다.
렌즈를 자세히 보는 혜주, 한쪽 끝이 찢어져 있다. 혜주, 렌즈를 수돗물에 씻어버린다.
거울을 쳐다보는 혜주. 뿌옇게 형상만 보일 뿐 거의 안보인다.
#70. 증권사 (안/오전)
과장이 새로 온 두 명의 여대생 인턴사원을 소개하고 있다.
여대생들이 차례로 자기소개를 하고 인사를 하자 과장되게 큰 박수를 치는 박민규.
안경을 낀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혜주.
옆자리 직원이 그런 혜주를 유심히 쳐다본다.
옆직원
혜주씨가 안경 쓴 거 처음 본다. 근데 눈이 정말 나쁜가 보네?
박민규, 인턴들을 끌고 혜주 앞을 지나간다.
박민규
역시 우리학교 후배들이라 지성에다가 미모까지....혜주씨, 우리 마실 것 좀 주라, 어~ 이게 누구야? 안경때메 못 알아 보겠는데? 눈이 새우젓같이 보이는데? 하하하
혜주는 고개를 들지 못한다.
#71. 아셈 안경점 (안,밖/오후)
유니폼을 입은 채 시력검사용 안경을 쓴 혜주의 모습.
주인
한번 일어나서 걸어봐요 어지럽진 않죠?
안경점안을 걸어보던 혜주는 창 밖으로 지나가는 박민규와 인턴사원들을 본다. 안경점 안의 혜주를 못보고 떠들썩하게 지나가는 사람들.
#72. 증권사 복도 (안/오후)
자판기에서 콜라 캔을 뽑던 혜주, 화장실로 들어가는 박민규를 발견한다.
콜라를 열심히 마구 흔들어대는 혜주. 화장실에서 박민규가 나온다.
박민규
왜 안경 계속 쓰고있지 벌써 벗었어, 재미있던데 하하하?
혜주
박대리님, 이거 드세요.
박민규
어? 왜이래?
혜주
좋아하면 뭐든 주고싶어지는거 아니겠어요?
박민규
어?...암튼 고마워. 잘 마실게, 역시 혜주씨밖에 없다니까.
박민규에게 콜라를 건네주고 스르륵 뒤돌아서는 혜주.
박민규가 콜라 뚜껑을 딴다. 팍- 넘쳐흐르는 콜라, 소리치는 박민규
혜주 웃으며 사무실로 들어간다.
#73. 훼미리 레스토랑 (안/밤)
테이블에 앉아 메뉴판을 들고 뭘 먹을까 고르는 태희와 동생 태식. 시간이 많이 걸린다.
태희는 종업원에게 요리의 재료와 요리방법 등을 자세하게 물어본다.
아빠는 태희가 들고 있는 메뉴판을 빼앗아 종업원에게 건네준다.
아빠
아무거나 여기서 제일 많이 팔리는 걸로 자네가 골라줘봐.
종업원
손님, 이건 어떨까요? 이것도 손님들이 많이 찾으시구요.
아빠
대충 자네가 알아서 줘, 물론 맛없으면 자네가 책임져야지.
종업원 당황하며 돌아간다.
아빠
비싸기만 한게 뭐 먹을 수나 있게 나오겠냐? 태식아 어디든 가서 뭘 먹어야 할지 모를 때는 제일 많이 팔리는걸 시켜, 그러면 안심이다.
태희
아빠 때리는 거만 폭력이 아냐, 이것도 인권을 무시하는 폭력이라구.
아빠
종업원한테 미안하니깐 그러지. 쪼잔하게 메뉴판들고 몇 분씩 고르는 인간치고 난놈을 못 봤어, 태식아 아무거나 주는 대로 잘먹겠습니다 그런 놈들이 되도 뭐가 되는 거야.
태식
아버지, 전 원래 아무거나 잘 먹어요. 걱정마셔요.
#74. 주상의 방 (안/오후)
주상이가 없는 방에 혼자 앉아 있는 태희, 입술에 화장품을 바르고 있다. 주상이 들어오자 얼른 가방에 화장품을 넣는다.
태희, 타자기에서 종이를 빼내 파일에 끼워 넣는다.
태희
정말 많이도 썼다. 이젠 시집으로 묶어도 되겠는데?
주상, 태희옆에 가까이 와 앉아 파일을 넘겨 본다. 주상을 의식하는 태희,
태희
정말 너가 부럽다. 대단해..이렇게 뭔가를 해내다니 내가 다 뿌듯하다.
주상, 태희입술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주상
니 입술이...
태희
왜?
주상
예뻐서...
#75. 도서관 (안/오후)
태희,도서관에 앉아 대입관련 책들을 뒤적이고 있다.
수학문제에 밑줄을 쳐가며 반복해서 읽어보는 태희, 도무지 무슨 얘긴지 알수가 없다.
바지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작게 통화하며 밖으로 나간다.
#76. 안과 수술실 (안/오후)
수술대에 올라서며 태희와 통화하는 혜주.
혜주
언니가 못 온다니 어쩌니.. 그럼 하나 사와, 이따 돈줄께, 예쁜걸루, 덕분에 서울나들이 하고 좋지 뭘 그래.
핸드폰을 놓고 수술대위에 눕는 혜주, 레이저기계가 가동된다. 공기주머니가 머리를 고정한다. 기계가 눈꺼풀을 고정한다. 혜주 눈을 부릅뜬다.
의사
자 빨간 점만 보는 겁니다.
혜주
네.
빨간 구멍이 보인다.
의사
이제 쏩니다.
눈에 붉은 레이저 빛이 쏘여지며 각막이 소프트렌즈처럼 투명하게 벗겨진다.
#77. 거리 노점상 앞 (밖/오후)
태희는 길거리 리어커에서 선글라스를 하나 고른다.
태희
어저씨 이거 주세요
#78. 강남성형거리 (밖/오후)
혜주, 양쪽 눈에 안대를 하고 있다. 그 위에 태희가 가져온 붉은색 선글라스를 낀다.
눈이 그려져있는 웃기게 생긴 만화 선글라스다.
태희의 손이 이끄는 대로 따라 다니는 혜주, 마치 장님 같다. 둘이 걷는 거리에는 온통 성형외과의 간판들이 즐비하다.
혜주
이거 무슨 색이야?
태희
음 검은색.
태희 웃는다.
태희
아프지는 않어?
혜주
별루, 이따 저녁쯤 마취 풀리면 그때부터 아프대. 레이저로 각막 태울 때 냄새났어, 고기타는 냄새랑 비슷하더라, 이젠 손톱 길러 볼 수 있겠다. 맨날 렌즈 찢어져서 손톱을 기를수가 있어야지.
태희
그럼 겨우 손톱 기르려고 수술한 거야? 부작용 생기면 검은 눈동자가 하얗게 변한다는 말도 못 들어봤어?
혜주
내몸을 바꿀 수 있는데까지 바꿔 볼테야 몸은 만들기 나름이라구. 다음엔 여기 광대뼈 깎고 턱도 고칠거다, 친구야 나 배고파 뭐 먹구 가자. 뭐 매운거 먹구싶다.
태희
넌 너가 필요할때만 친구지? 음?
혜주는 애교를 부리면서 태희에게 매달린다. 태희, 어색한 모습으로 혜주의 옆모습을 본다.
#79. 태희집 (안/밤)
태희가 화장실에서 씻고 나온다.
태희엄마, 아무도 없는 어두운 거실옆 식탁의자에 앉아 환하게 불켜진 전자렌지가 돌아가는 것을 쳐다보고 있다. 식탁위에는 두 개의 약사발이 놓여있다.
태희
엄마 뭐해?
엄마
약 덮이지
태희
그걸 뭘 그렇게 쳐다보고 있냐고
엄마
너도 먹을래?
태희가 방으로 들어간다. 엄마는 계속 전자렌지가 돌아가는걸 보고 있다.
전자렌지안의 그릇이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게 길게 보인다.
#80. 강가 (밖/오후)
카메라의 시점으로 배가 강기슭의 갈대들을 서서히 헤쳐나가는 이미지들이 보인다.
배의 뱃머리가 서서히 보인다. 뱃머리에는 작은 파란 깃발이 꽂혀있다.
태희(V.O)
난 그냥 계속 돌아다니고 싶어, 어떤 곳이든 한곳에서 머물러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답답해...계속 배를 타고 물처럼 흘러 다니면서 사는 거지...어디에도 멈추지 않으면서 말야.. 배안에 이렇게 누워서 하늘에 지나가는 구름도 보고 책도 읽고 말야
#81. 비류와 온조집 (안,밖/밤)
거실에 있는 배에 누워있는 태희, 감고있던 눈을 뜬다.
한쪽방에서 혜주가 거울을 보며 옷을 갈아입고 있다.
혜주
야! 그럼 난 니가 지나가는 강옆에 그림같은 전원주택에서 살고 있을테니깐 지나가다가 들려 알았지? 야, 말이 되는 소릴해라, 그렇다고 집을 나가냐? 니네 짠돌이 아빠때메 그래? 독립이랑 가출은 다르다고...
태희
내가 언제 아빠가 싫어서 집을 나가겠다구 했니? 엄마, 아빠가 싫다고 울면서 집을 나가는 건 십대에나 하는 짓이지 그건 너무 시시하잖아. 난 그 이상의 이유를 찾겠다는 거지. 뭔가를 찾고싶다고
혜주
그 뭔가가 뭔데?
태희
아직은 모르지
혜주
난리 났어 진짜, 누구나 가정문제로 집을 나가는 거잖아, 집에서 행복하고 만족한다면 왜 나가고 싶겠어? 안그래? 너같은 딸 나을까봐 걱정된다 진짜
차이니스트레스를 입고 거실로 나오는 혜주
혜주
어때? 예쁘지? 근데 이거 너무 짧지? 니네들 엄마 키가 너희들만 한가보다?
혜주는 음식을 만들고 있는 비류와 온조에게 간다. 둘은 떡볶이를 만들고 있다.
비류와 온조
잘 어울리는데?
지영이가 술을 사가지고 들어온다. 태희가 문을 열어준다. 아이들 떡볶이를 내온다.
지영
밖에 되게 추워
혜주
소주도 사왔니?
지영, 들은 채도 않는다. 혜주는 지영를 흘겨본다. 떡볶이를 허겁지겁 먹는 아이들
혜주
난 떡볶이만 보면 태희랑 처음 친구되던 날 생각나더라
비류와 온조
왜?
혜주
나랑 지영이랑 일미분식에서 떡볶이 먹고있는데 얘가 씩씩거리면서 혼자 들어와서 떡볶이를 시켜 먹는거야, 내가 넌 왜 혼자먹니 하니깐 자긴 떡볶이가 너무 좋은데 찬미가 먹기 싫다고 해서 화내고 혼자 들어왔다나? 그래서 내가 같이 먹자고 했지, 너 그때 진짜 웃겼던거 아니?
태희
걔가 떡볶이를 무지 싫어한다는 얘길 했을땐 정말 하늘이 노래지더라구
빙그르르 돌아가는 소주병이 보이고 지목당한 태희에게 혜주는 폭탄주를 만들어 준다.
아이들, 원샷을 부추긴다. 태희는 단숨에 잔을 비운다.
다시 병을 돌린다. 이번에는 지영이에게 병머리가 향해진다. 다시 원샷을 외치는 아이들,
그때 갑자기 정전된다. 어~ 뭐야
커텐을 열어 바깥을 살펴보는 태희, 비류와 온조는 촛불을 켜고 향을 피운다.
태희
동네가 다 정전인가봐
지영
보름달 덕분에 불빛하나 없는데도 밝은데?
온조
니네 그거 알아? 보름달 뜬 밤에 미래의 자기 배우자를 보는 방법?
현관문이 열리더니 하얀천을 두르고 머리를 산발로 푸른 혜주가 나온다.
뒤따라서 커다란 거울과 식칼을 들고 나오는 잠옷차림의 아이들, 비류가 현관문에 신발을 걸쳐놓는다. 아이들이 동물인형 슬리퍼를 신고 철제계단을 올라간다.
태희
담배가지고 올라갈게
태희, 담배를 들고 나오다가 끼워져있는 신발을 빼고 현관문을 닫아 놓는다.
옥상으로 올라온 아이들, 잘못 세워놓은 거울이 깨진다. 깨진 거울을 대충 맞춰 놓는다.
비류
거울에 보름달이 담기도록 놓아야 해
혜주
멋있는 사람이 보여야 할텐데
혜주에게 식칼을 주는 온조, 긴장된 표정으로 식칼을 입에 무는 혜주
온조
어떤 여자가 이걸하다가 대머리 아저씨가 나타나서 깜짝놀라는 바람에 칼을 거울위로 떨어뜨렸대, 나중에 선을 보러 나갔는데 글쎄 얼굴에 칼자국이 난 대머리 아저씨가 앉아있더래
태희
재용이가 보이는거 아냐?
혜주
어우 야 절대 안돼
동그랗게 모여앉아 눈을 감는 아이들, 비류와 온조는 열을 센다. 동시에 눈을 뜨는 아이들, 긴장된 표정으로 거울을 들여다본다. 달이 깨진 거울조각들 때문에 여러개로 보인다.
혜주
뭐야
비류
이상하다, 혹시 소복을 안입어서 그런가?
온조
혜주가 미래의 배우자가 없는거 아냐? 우리둘이 한번 해볼까? 괜찮은 쌍둥이 형제가 나타날지도 모르잖아
비류
그럴까?
지영
니네 애들처럼 이걸 진짜 믿은거야?
혜주
추워. 이러다가 결혼은 켜녕 그전에 얼어죽겠다. 들어가자
아이들이 옥상을 내려가고 비류와 온조는 달을 향해 두팔을 펴고 서있다
온조
우리는 나온김에 달의 정기를 좀 쐬다가 갈게
어두운 동네에 불이 켜진다. 다른집보다 높은곳에 위치한 덕분에 동네가 한눈에 보인다.
닫힌 현관문앞에 나란히 앉아 흰천을 둘러쓰고 앉아있는 아이들
혜주
다리에 감각이 없어, 니가 아까 입어 보겠다고 할 때 벗어줄걸 그랬다
태희
마음 좀 곱게 써라 응?
혜주
누구때메 이렇게 된건데? 어떻게 이러고 내일까지 기다리냐고..
비류
.. 얘들아 좋은 생각이 났어
비류, 마당에 세워져있는 커다란 삽을 쳐바본다.
삽과 쓰레받이를 들고 마당에 있는 흙을 파고 있는 아이들이 보인다.
혜주는 흰천을 둘러쓰고 담배를 피며 혼자 현관문앞에 앉아있다.
비류
야 땀나니깐 안추워, 너두 일루와
지영
우리 나중에 이렇게 모여서 살면 좋겠다. 어디 무인도같은데서
혜주
같이 모여서 산다는게 얼마나 힘든건데
지영
너나 힘들지 우리는 힘 안들어
태희
니네 둘 오늘은 싸우지좀 마 응?
마당에 커다랗게 흙이 싸여있고 그위에 삽들이 꽂혀있다. 신문지로 아이들이 판 구덩이가 덮여있고 아이들 모두 구덩이 안에 들어가 앉아있다.
혜주(V.O)
너 아직까지 삐졌구나? 속은 좁아가지구, 야, 내가 잘못했으니까 고만 삐져. 내가 니 일자리도 알아보고 있어...
지영(V.O)
너 뭐야? 어딜 치구 그래?
혜주(V.O)
너야말로 왜그래?
지영(V.O)
니가 신경 안써줘도 살만해.
혜주(V.O)
살만하긴 뭐가 살만해, 식당에서 일한다며....
지영(V.O)
그러는 넌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는데?
비류(V.O)
사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얘기지만 혜주가 증권사에 들어간건 미스테리중의 미스테리야
온조(V.O)
맞아, 공부는 지영이가 더 잘했는데.. 지영이만 떨어지고 말야
비류(V.O)
맞어, 뭔가 비리가 있었을거야.
태희(V.O)
야! 지금 얘네들 싸우라고 기름 붓는거니?
태희의 소리에 모두들 잠시 침묵한다. 조용한 침묵을 깨는 비류의 조심스런 목소리
비류(V.O)
생각보다 따뜻하다
온조(V.O)
그렇지? 이래서 두더지들은 겨울에 땅굴에서 지내나봐
아이들, 갑자기 웃음을 터트린다. 덮여있는 신문지가 들썩거린다.
(인써트) 고양이가 지영방 창가에 앉아 밖을 내다보고 있다.
#82. 비류와 온조집 (안/오후)
지영이 일어나 거실의 붉은 커튼을 조금 열자 밝은 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아이들은 바닥에 뒹글며 자고 있다. 비류와 온조는 둘이 안고 자고 있다.
메모를 남기는 지영 “나 먼저 간다 재미있게 잘 놀았어”
잠을 깬 혜주가 어둠 속에서 지영이를 보고 있다.
지영이도 혜주를 한참 보며 밖으로 나간다.
#83. 지영집 앞 (밖/오후)
골목으로 접어드는 지영의 옆으로 병원차가 앵 소리를 내며 지나간다. 지영이 집으로 들어가는 길목은 한없이 길게만 느껴진다. 아무리 걸어도 그대로 제자리걸음인 것처럼, 담벼락도 이상하게 휘어 보인다.
지영 골목을 돌아서자 낯선 풍경이다. 앞이 펑 뚫려있다. 집 천정이 무너져 집이 내려앉아 있다. 집은 폐허더미가 되어있다. 시멘트덩이와 집의 골조가 뒤섞여있다.
사람들이 몰려서서 구경하고 있고 경찰들이 왔다갔다한다.
한 입 베어먹은 이빨자국이 있는 총각김치가 시멘트 사이로 보인다.
한 경찰이 뚜벅뚜벅 걸어와 빨래 줄에 매달린 옷들 사이에서 청바지를 든다. 청바지의 주머니에서 물에 불어 뭉쳐있는 종이조각을 펼쳐든다. 지영이의 그림이 그려져있는 모눈종이다.
희미하게 보이는 글씨: 죽고싶다 죽이고싶다.
고양이가 지영에게 달려온다.
#84. 영안실 간이 장의식장 (안/밤)
조그맣게 차려진 빈소에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영정사진이 놓여있다.
지영이는 고양이를 안고 아주 무심한 표정으로 앉아있다. 태희가 복도 의자에 앉아있다. 경찰 한명이 지영이를 부른다. 지영이 일어나 나온다.
경찰
너가 유일한 유족이라 참고인 조서를 써야되는데 같이 경찰서로 가줘야겠어.
지영, 고양이를 데리고 태희에게 온다.
지영
티티 좀 맡아줄래?
태희는 고양이를 받는다.
#85. 태희집 지하실 (안/밤)
고양이를 안고 열쇠로 대문을 열고 마당으로 들어온 태희, 현관문앞에 서서 거실안을 들여다본다. 거실에는 가족들이 모여 앉아 과일을 먹으며 큰소리로 웃고 있다.
집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현관앞에 쭈그려 앉아있는 태희,
고양이가 태희 품속을 빠져나간다. 태희, 거실쪽을 보며 조심조심 고양이를 찾는다.
태희
야 티티야 어딨니?
티티가 지하실쪽에서 야옹거린다. 지하실로 서서히 이끌리듯 내려가는 태희, 열린 지하실안에서 고양이가 살짝 보인다. 지하실로 들어온 태희, 백열등의 스위치를 찾아서 켠다.
지하실은 어둡고 여러 가지 짐들이 가득하다. 고양이를 찾아 안아주는 태희
태희
티티야 춥겠지만 당분간 여기서 살아야겠다. 미안해
고양이 잠자리를 마련해주려고 상자랑 바닥에 깔 것을 찾다가 여러개의 가방이 한쪽에 쌓여있는 걸 쓰러뜨린다. 우루루 떨어지는 가방들. 놀라서 후두둑 달아나는 고양이
#86. 경찰서 (안/오후)
지영이는 형사에게 취조받으면서 아무말도 하지 않는다. 지영얼굴이 반쯤 어둠속에 가려져있다. 지영 앞에는 지영이가 집에서 색칠하던 그림들과 일기장이 놓여있다.
형사
지붕이 무너지고 있었는데 왜 고치지를 않았어?
그날은 왜 집에 들어가지 않은거지?
야 노랑머리! 평소에도 외박을 자주해?
할머니 할아버지를 마지막 본게 몇시야?
평소에 할머니, 할아버지와의 관계는 어땠지?
지영이는 고개를 숙이고 대답을 안하고 있다.
형사
그냥 참고사항이니깐 편하게 말해도 돼, 이렇게 말 안하면 변사자 검시에 존속살인혐의에 우리까지 복잡해진다고 ...
#87. 주상의 방 (안/오후)
타자로 친 시의 글씨가 보여진다.
“그애를 기다리며...
그애가 방금 집으로 갔다.
다시 그애가 올 때까지는 기다리는 시간이다“
주상은 타자를 치는 태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타이밍을 놓친다.
태희
이젠 끝이야?
주상
아니..
태희
너 요즘 창작열이 왕성하구나?
주상
유난히 큰 발소리, 내가 외계인처럼 생겼다며 놀리는 큰 웃음소리, 그애를 만져보고싶다
태희는 더 이상 타자를 못치고 주상을 바라본다. 태희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주상
배고파?
태희
아니 긴장하면 원래 그래....어디를 제일 만져보고 싶어?
#88. 분류심사원 복도 (안/오후)
커다란 자물쇠가 매달린 철문이 열린다.
교도관에 이끌려 지영과 몇몇아이들이 양손이 묶인 채 포승줄에 매달려 어둡고 깊은 분류심사원 복도로 들어간다. 철문이 쾅 닫힌다. 지영옆에는 키가 작은 윤애(15)가 있다.
#89. 분류심사원 강당 (안/오후)
지영이 다른 원생들과 함께 분류심사원의 규율과 프로그램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다.
교도관
여러분은 여기있는 한달동안 적성검사와 심리검사등을 받고 분류처분을 받게 됩니다. 아무런 사고없이 잘못을 뉘우치고 반성의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아이들의 책상앞에 빨간색 추리닝이 담겨있는 소쿠리들이 놓여있다. 교도관들 일어서라고 한다. 아이들이 하나, 둘하며 동시에 함께 일어난다. 교도관들 옷을 갈아입으라고 한다. 지영이 옷을 갈아입는다. 옆의 윤애도 옷을 갈아입는다.
윤애
처음이죠? 너무 겁먹지 마요, 전 이번이 세번짼데 얌전히만 있으면 지낼만해요
#90. 태희집 (안/밤)
태희는 침대에 얼굴을 묻고 있다. 낮의 주상이 일 때문에 마음이 혼란스럽다.
수건을 둘러 쓴 조카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조카
고모, 할머니가 오래.
태희
알았으니까 나가.
이번엔 태식이가 부른다. 태희 대답대신 방문을 잠그고 전등을 끈다. 쿵쾅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태식이가 문을 두드린다.
태식
야! 아빠가 만두 드시고 싶데, 빨리 가서 사와
태희
나중에, 아님 먹고 싶은 사람이 사오든지.
태식
지금 사오래.
태희
니가 가면 되잖아.
태식
나는 공부하잖아.
태희
새언니한테 가라구 해.
태식
지금 애들 목욕시키잖아.
태희
엄마는?
태식
엄마는 통화중이셔.
태희
나두 지금 사색중이라구.
태식
그러니까 니가 가야지 놀고 있는건 너 하나뿐이잖아.
#91. 만두집 앞 (밖/밤)
커다란 뚜껑을 열자 김이 나는 왕만두들이 보여진다. 왕만두들을 쳐다보는 태희,
태희 만두가 들어있는 봉지를 받아들고 터덜터덜 걸어간다. 핸드폰이 온다.
태희
알았어, 지금 만두 들고 가는 중이라니깐.
태희 눈이 서서히 내리는 밤거리를 걷는다.
#92. 지영집 앞 (밖/밤)
태희, 무너진 지영집 앞에까지 왔다. 서서 흰눈이 덮인 무너진 집을 보고 있다.
무너진 집이 더욱 을씨년스러워 보인다.
#93. 분류심사원 생활실 (안/오전)
아이들 둥그렇게 모여앉아 책을 읽거나 작문을 하며 상담을 기다리고 있다.
지영이는 두꺼운 책에 낙서같은 그림을 그리고 있다.
지영옆의 윤애는 학을 접고 있다.
한쪽 상담실에서 아이가 하나 나오고 호명하자 다른 아이가 들어간다.
윤애, 상담실로 들어가는 아이를 보고 지영을 툭친다.
윤애
지금 상담가는 쟤있죠? 조심해요, 머리에 이가 바글바글해요. 머리카락에 석회가 하애요
지영, 웃음을 터뜨린다
윤애
어? 웃을줄도 아네? 언니 벙어린 줄 알았어요...언니라고 불러도 돼죠? 맨날 언니하나 있었으면 했는데, 언니 인상이 참 좋아요
#94. 경찰서 (안/오후)
태희, 지영이를 조사했던 형사앞에 서있다.
형사
걔가 아직 미성년이라서 분류심사원으로 일단 이송되었을걸?
태희
거기는 어떻게 가는데요?
형사
걔는 왜 찾는데?
태희
제 친구인데요. 한번 가볼려구요
형사
너 몇살이야? 아마 미성년은 가도 면회 안될걸? 내가 손 한번 써줄까?
태희
저는 성년지났어요.
#95. 증권사 (안/오후)
혜주, 태희와 통화하며 인터넷으로 가슴키우는 기계를 주문한다.
혜주
어떻게 될거 같아? 진짜 지영이가 관련이 있긴 있는거야
태희
관련은 무슨 관련, 그걸 말이라구 하니?
혜주
근데 말은 왜 안하는거야? 걔속은 진짜 알수가 있어야지
태희
암튼 이따 만나서 얘기해보자
혜주
난 안돼, 팀장님이 시킨일이 아직 끝나지가 않아서 못가
테희
그럼 금요일에는 갈수 있어?
생각에 잠기는 혜주, 물건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고개를 숙이고 줍는다. 구두를 잠깐 벗은 혜주의 발이 꼼지락거린다. 다른 전화가 온다.
혜주
회사는 어쩌고... 잠깐만 기다려.
혜주, 태희의 전화를 대기 중으로 돌려놓고 다른 국선 번호를 누른다. 외국인에게 걸려온 전화다. 혜주는 매끄럽게 전화를 잘 받는다. 미연에게 전화를 연결해주는 혜주에게 미연이 자료를 가져오라고 한다.
혜주, 태희의 전화를 잊은 듯 그냥 가버린다. 전화기에서 깜빡이는 태희의 번호.
태희
야 신혜주!
미연에게 자료를 내미는 혜주.
미연
영어는 언제 배웠어?
혜주
원래 영어 공부하는거 좋아했거든요.
미연
혜주씨는 대학 안가? 다른 고졸 사원들은 다 야간대학 다니던데.
혜주
여기서 더 많이 배울수 있는거 아니예요? 어디까지나 실전이 중요하잖아요. 팀장님한테 배우죠 뭐... 팀장님은 제가 하는 일이 가치있는 일이라는 느낌이 들게 해주셔서 뭐든 돕고싶어요.
미연
하지만 학위도 필요하지. 평생 잔심부름이나 하는 저부가가치인간으로 살 순 없잖아.
#96. 동인천역사 앞 (밖/밤)
사람들이 오가는 역사 앞에서 비류와 온조가 악세사리를 팔고 있다.
비류
왜 지영이가 말을 안하는 걸까?
온조
글쎄.. 누구나 말하기 싫을 때가 있잖아.
저쪽에서 태희가 온다.
비류와 온조
혜주는 간대?
태희
혜주는 회사일때메 어렵데
비류와 온조
혜주가 안가면 우리도 안갈래
한번은 가봐야겠지만 감옥은 무서워.
우리는 경찰만 봐도 온몸에 소름이 돋는걸?
#97. 증권사 (안/밤)
혜주는 사람들이 모두 퇴근한 커다란 사무실에서 밤늦도록 미연을 도와 일하고 있다.
혜주는 핸드폰으로 태희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낸다. “함께 못가서 미안~ 잘 다녀와 지영이한테 안부 전해줘, 메시지전송중”이라는 문자메시지가 흘러간다.
#98. 분류심사원 접견실 (안/오후)
지영이를 면회 온 태희, 핸드폰을 보여준다.
태희
이거 봐 혜주가 보낸 메시지, 일이 매일 바쁜가 봐, 비류와 온조는 여전히 구슬꿰고.
한참을 말을 안하고 마주있는 두아이
태희
지영아 니가 도끼로 사람을 찍어죽였다고 해도 난 니편이야, 이유가 있어서 그러는거라고 생각해, 근데 말 안하면 입에 가시가 돋히거나 뭐 그러지는 않니?....형사아저씨가 그냥 형식적으로 조사하는 거였다는데, 니가 말을 하도 안해서 니 상황이 자꾸 나빠져 가는거 같애, 빨리 나와야지.
지영, 어렵게 입을 뗀다.
지영
나가도 갈데도 없는데 뭐...
태희, 갑작스런 지영이의 말에 놀란다.
#99. 분류심사원 침실 (안/밤)
여러명의 원생들이 자고있는 어두운 방에서 눈을 뜨고 지영이가 보인다. 윤애는 지영이 옆에 바짝 붙어서 자고있다. 창밖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린다.
지영, 조심스럽게 일어나 창밖의 고양이를 본다.
#100. 주상의 방 (안/오후)
주상이는 몸이 안좋아 보인다. 혈색도 안좋고 쾌활하지도 않다.
타자 글씨가 보인다. 빠르게 시를 받아치는 태희.
“엄마는 나 때문에 울지만 나는 나 때문에 눈물 흘린다.
나의 몸은 자꾸 미끄러져내린다.
나는 방바닥에 껌처럼 붙어있다“
주상
야 빨리 좀 해.
태희
너 어디 아프니? 왜 신경질을 내구 그래.
다시 시를 불러주는 주상, 주상이를 보기만 하는 태희.
주상
모두들 가고 오지만 나는 늘 기다린다.
사람들은 움직이고 나는 잠을 잔다.
나는 언제나 잠자고 있는 기분이다.
주상, 씩씩 큰 숨을 쉬며 식은땀을 흘린다.
태희
주상아 오늘 시는 너같지가 않아.
#101. 성당 복도 (안/오후)
태희와 수녀, 복도에서 얘기한다. 태희는 무척 흥분한 상태이다.
태희
그런 짓이라뇨? 우리가 무슨 나쁜 일이라도 했다는 건가요?
수녀
당분간 그애한테 안가는게 좋겠다. 그게 걔한테 어떤 영향을 줄지 생각해봤어야지, 막말로 그애랑 결혼이라도 할거야?
태희
사귄다고 누구나 결혼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 얘기도 했어요, 난 아직 너랑 계속 사귈자신이 없고 결혼은 생각도 안해봤다 그래도 좋냐니깐 좋다고 했어요, 그래서 한거예요, 뭐가 잘못됐나요?
수녀
지금 주상인 몹시 불안한 상태야 정상이 아니라구.
태희
저두 지금 정상은 아니예요, 사랑에 빠지면 누구나 정상이 아니죠, 더군다나 우리 둘다 처음이었는데.
#102. 분류심사원 상담실 (안/오후)
상담원과 나란히 앉아있는 지영, 지영눈에서 눈물이 후두둑 떨어진다.
지영
할머니.할아버지는....
지영 말을 시작하려다가 울음이 복받친다.
상담원
할머니 할아버지가 왜? 오늘도 말 안하면 넌 소년원으로 보내져, 전과자가 되는거라고
지영, 울면서 말을 시작한다.
지영
내가 있었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어요. 이사도 못가고...그래도 나하나만 바라보면서....내가 너무 싫어요. 나만 살았다는게 너무 죄스러워요..할머니한테 매일 소리지르고 짜증내고...다죽고 차라리 고아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고아가 되었는데 기분이 좋지않아요. 하루에 열번도 더 할머니 할아버지가 빨리 죽게해달라고 빌었는데...내가 죽인거예요...
지영의 터진 울음이 멈추지 않는다.
#103. 증권사 복도 (안/오후)
자판기앞에서 커피를 마시며 한참을 창을 내다보고 서있는 혜주의 뒷모습이 보인다. 지나가던 옆직원이 혜주의 등을 툭 친다.
옆직원
괜찮아?
혜주
네
옆직원
사회생활하다보면 그럴수도 있는거야, 그냥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
옆직원이 가고 혜주의 가늘게 울고있는 뒷모습이 보인다.
옆직원(v.o)
혜주씨 팀장님이 찾으셔
혜주
네
혜주 돌아서 큰숨을 들어마시며 눈물을 닦는다.
#104. 증권사 (안/오후)
혜주가 여대생 인턴들과 대화하는 미연의 사무실로 들어온다.
미연은 쪽지에 메모를 한다. “스타킹, 생리대, 건전지, 바디비누, 아세톤, 경제전문잡지”
미연
성과에 따라 인정받을 수 있고 인정받으면 몸값도 바로 올라가는게 장점이야, 이 바닥이 워낙 소문이 빨라서 분석이 좀 괜찮다 싶으면 누구 작품인지 업계에 금방 퍼지거든, 잠깐만.
미연은 구입목록이 적힌 쪽지를 혜주에게 준다.
미연
나가는 길에 부탁 좀 하나 하려구. 이런 사적인 일은 시키면 안되는데.. 미처 준비를 못해서 그래, 미안~ 여기 백화점 카드.
혜주
아니에요. 뭐 더 시키실 일은 없으셔요?
웃으며 사무실을 나오는 혜주.
#105. 아셈오락실 (안/오후)
혜주, 사람도 별로 없는 커다란 오락실에서 혼자 음악에 맞춰 디디알을 한다.
디디알 기계위의 지갑과 쪽지가 흔들린다. 열심히 뛰는 혜주, 모니터의 화살표들이 보이고 점수가 계속 올라간다.
#106. 분류심사원 복도 (안/오후)
지영과 원생들 이열로 줄을 서서 빙글빙글 복도를 뛰고 있다.
달리던 아이들은 한쪽 복도바닥에 고여있는 물웅덩이 근처만 가면 살짝 살짝 건너뛴다.
지영이도 발을 길게 벌려 물웅덩이를 건너뛴다.
#107. 분류심사원 생활실 (안/오후)
다른 원생들과 함께 둥글게 앉아있는 지영
지영은 두꺼운 책을 한장 한장 넘기며 여백에 뭔가 그리고 있다.
윤애가 작은 쪽지를 전해준다. 지영이가 펼치면 전화번호가 적혀있다.
윤애
내 전화번호야, 언니 나 잊지마
지영, 웃으며 윤애에게 책을 손가락으로 흝어보인다. 나비가 날개짓하며 꽃에게 가는게 쭈욱 애니메이션처럼 보여진다.
#108. 테헤란로 포스코 앞 (밖/오후)
나비가 날아가는 텔레비젼 화면이 잠깐 지나간다.
사람들이 없는 휑한 거리에 좌판을 펴놓은 비류와 온조. 둘 다 무지하게 지루한 표정으로 포터블 텔레비젼으로 만화를 보고있다.
온조
춥다. 우리 그만 들어갈까?
비류
그럴까?
좌판 가방을 챙기는 비류와 온조.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남자 쌍둥이가 손을 꼭 붙잡고 좌판 앞으로 온다.
악세사리를 만져보는 남자쌍둥이. 별 게 없는지 그냥 간다.
온조
이건 운명이야!
비류
너두 그렇게 생각해?
서로 쳐다보며 감탄하는 비류와 온조.
비류
쫓아가자!
황급히 좌판을 정리하는 비류와 온조. 남자쌍둥이 형제를 쫓아간다.
#109. 도서관 (안/오후)
태희, 주상에게 편지를 쓰려한다. “외계인에게”라고 쓰여있는 종이,
태희 책상에서 일어나 도서관 여기저기를 돌아다닌다.
그러다가 책들이 산처럼 싸여있는 열람실에 가게된다.
커다란 열람실에는 먼지 묻은 책들과 고요만이 가득하다. 책장사이를 기웃기웃 돌아다닌다.
책꽂이에서 책 몇권을 꺼내 뒤적여 본다.
책을 펼치면 볼펜으로 밑줄이 쳐진 어느 한페이지가 보인다.
태희, 책을 읽다가 그 페이지를 북-뜯는다.
#110. 태희집 (안/밤)
어두운 주방에서 냉장고 불빛앞에 앉아 냉장고를 정리하는 엄마가 보인다.
엄마는 말라빠져 쪼글쪼글해진 과일과 검게 상한 고기 덩어리들을 꺼내놓고 냉장고 청소를 하고 있다. 태희, 엄마뒤의 의자에 앉아 보고있다.
태희
엄마는 왜 뭐든지 한꺼번에 왕창 사서 다 썩게 만드는 거야?
엄마
정말 모자랄 만큼 적게 산다고 생각해서 사는데도 그래.
태희
엄만 손이 너무 켜, 엄마, 엄마는 왜 아빠랑 결혼했어?
엄마
좋으니까 했지.
태희
지금도 좋아?
엄마
아빠는 가족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잖아.. 왜? 뭐가 궁금한데?
엄마, 웃는다. 말라비틀어진 귤의 껍질을 벗겨보는 태희,
#111. 태희집 지하실 (안/밤)
지하실 창에서 밖을 내다보는 고양이 티티가 보인다.
태희 손에 여러장의 사용하지 않은 기차표가 들고 있다. 30년전 기차표가 보인다.
열려있는 가방안에는 70년대에 유행했을 법한 화려한 원피스와 구두, 흰장갑이 가지런히 들어있다. 태희, 한참을 바라본다.
태희, 가방안의 짐들을 꺼내 한쪽에 가지런히 놓고 빈 가방을 든다.
낡고 먼지 가득한 옛날 가방이다.
#112. 호프집 (안/밤)
고졸 여직원1,2,3과 혜주, 술을 마시고 있다. 혜주는 벌써 꽤 취했다.
여직원들, 회사 사람들을 흉보며 웃고 떠들며 수다중이다.
여직원들
핸드폰이 얼마나 한다고 그걸 안사고 외근 나갈때마다 내걸 빌려가는거야 내참
오과장, 오늘 하루 커피심부름을 열한번 시킨거 알어?
누가 회사에 커피타러 들어왔는지 아나?
혜주
좋은게 좋은거지, 커피좀 타면 어때요? 그런거에 민감한건 일종의 콤플렉스라구. 콤.플.렉.스, 그러니깐 저부가가치 인간이란 얘길 듣는거예요.
여직원2
얘 왜 여태 여기 있는거니? 여직원회 회비도 안내는 애가.
혜주
알았어, 가면 되잖아.
자리에서 비틀거리며 일어서는 혜주.
혜주
언니들, 나 너무 미워하지마.
가방들고 비틀거리며 호프집을 빠져나간다.
#113. 태희집 (안/밤)
식빵에 잼을 발라 은박지로 싸고 있는 태희. 맥가이버칼, 사전, 지도, 초, 지탕담배, 후레쉬, 나침반, 밧줄, 에프킬라, 달걀 등을 보자기에 펴놓고 정성스레 가방을 싼다. 돈뭉치도 가방에 그럴듯하게 숨겨 넣는다. 노끈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책 몇권도 묶는다.
커다란 액자사진의 일부분을 칼로 파낸다.
자신의 방문을 불을 켜놓은채 열어놓고 불꺼진 어두운 거실로 나온다.
액자를 거실의 벽에 걸어놓는다. 태희는 한손에 책 뭉치, 한손엔 커다란 가방을 들고 현관으로 나간다.
커다란 가족사진에 태희의 모습이 하얗게 파여져있다.
#114. 호프집 앞 (밖/밤)
술에 취해 입구에 쭈그려 앉아 담배를 피는 혜주의 모습이 보인다.
혜주, 정신이 오락가락한다. 화려한 간판들이 현란하다.
저쪽에서 재용이 핸드폰을 들고 단숨에 혜주에게 달려온다.
재용이에게 쓰러지며 안기는 혜주,
재용
괜찮아?
혜주
내가 외로울 때 달려오는 건 너뿐이구나, 너 나랑 할래?
재용이는 혜주가 들고있던 담배를 쿨럭거리며 핀다.
재용
이러지마, 난 너의 친구가 되주고 싶을 뿐이야, 넌 친구도 하나 없는 애잖아.
혜주
야!
혜주, 재용이를 끌어당겨 키스한다.
#115. 태희집 마당 (밖/밤)
태희, 고양이를 안고 마당의 비닐하우스에 불을 붙인다. 비닐에 서서히 불이 붙는다. 활활 이글거리는 불, 비닐이 타버리고 내부가 보인다.
태희는 가방과 책, 고양이를 들고 대문 밖으로 나간다.
현관문과 대문을 열어놓은채 집을 빠져나가는 태희의 모습이 보인다.
#116. 혜주집 (안/밤)
월드뉴스가 나오는 텔레비젼이 켜져있다.
옷을 입은채로 침대에서 자던 혜주가 뒤척이며 잠에서 깬다.
침대위에는 핸드백과 통신주문한 가슴커지는 기구가 펼쳐져 있다.
냉장고와 여는 혜주. 물이 없다. 혜주, 태희에게 전화한다.
혜주
태희야, 속쓰리고 배고파, 우리집에 놀러와라.....뭐? 진짜야?...야 어쩔려구 그래....
혜주는 전화기를 들고 한참 태희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있다.
#117. 비류와 온조집 (안/밤)
비류와 온조, 구슬꿰면서 TV를 보고있다.
마침 TV에서 <들고양이의 역습>이라는 보도프로그램을 한다. 집나간 고양이들이 야생에서 서로를 잡아먹으면서 지낸다는 충격적인 내용,
비류
배고프면 저럴 수도 있는거 아냐?
온조
너두 배고프면 날 잡아먹어 알았지?
초인종이 울리고 태희가 고양이와 가방을 들고 서있다.
비류와 온조는 난처한 얼굴로 고양이를 본다.
#118. 편의점 (안,밖/밤)
물을 넣은 사발면과 김치와 생수를 들고 밖이 보이는 테이블로 오는 혜주,
테이블에는 모자를 쓴 남자(23)가 커다란 베낭을 옆에 두고 라면을 먹고 있다.
혜주를 유심히 보는 남자, 혜주 왜그러나 싶다.
남자
저... 김치 좀 먹어도 될까요?
혜주
네? 에
김치를 건네주는 혜주, 김치를 덜어먹는 남자, 국물까지 다 마시더니
남자
저... 물 좀 마시면 안될까요?
라면을 먹던 혜주 웃는다. 남자도 미안한 듯 웃는다. 직원들이 편의점앞의 트럭에서 내린 물건들을 편의점안으로 들여놓는다. 라면을 먹는 혜주와 남자의 모습위로 편의점 트럭이 지나간다.
#119. 분류심사원 앞 (밖/새벽)
태희 어딘지 모를 곳에 쭈그리고 앉아있다. 두꺼운 장갑 낀 손으로 담배를 피운다.
책을 후레쉬로 밝히며 읽는다. 작은 라디오를 꺼내 틀어놓는다. 음악소리가 들린다.
날이 서서히 밝아온다.
커다란 철문이 열리고 분류심사원에서 몇몇 아이들과 지영이가 나온다.
태희, 지영의 발 밑에 달걀하나를 놓아준다. 몇몇 달걀을 밟는 발이 보인다.
태희
꽉 밟어.
지영, 달걀을 밟는다. 달걀이 부서진다. 지영과 태희, 웃으며 포옹을 한다.
태희
내가 졸업하고 나서 일년동안 아빠한테 돈 한푼 안받고 일했거든, 나 정도로 일하면 얼마를 받는지 알아보고 딱 그만큼만 가지고 나왔어.
지영
근데 어디로 가?
태희
가면서 생각하지 뭐, 티티는 비류랑 온조에게 부탁했어, 걔네들이라면 잘 키워 줄거야.
둘이 걸어가는 모습위로 경쾌한 음악이 흐르고 엔딩 크레딧 뜬다.
<끝>
첫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