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장
시인 이백이, 봄밤에 복사꽃이 핀 동산에서 형제들과 놀이를 펼친 일을 기록한 글인 「춘야도리원서春夜桃李園序」에,
아름다운 잔칫상을 벌여 꽃 아래 앉아 開瓊筵以坐花
새 깃으로 장식한 술잔을 날려 달빛에 취한다 飛羽觴而醉月
라는 구절이 있다.
또 소동파도 「춘야春夜」라는 시에서 이렇게 읊었다.
봄 밤 한순간은 천금에 값하느니 春宵一刻直千金
꽃향기 그윽한데 달도 밝아라 花有淸香月有陰
누대에 울리던 노랫가락 잦아드는데 歌管樓臺聲寂寂
그네 있는 뜨락의 밤은 깊어만 가네 鞦韆院落夜沈沈
옛 시인들은 이처럼 달밤의 풍류를 읊으며 즐겼다. 그래서 음풍농월吟風弄月이란 말이 생겼고, 줄인 말 풍월이 시구詩句를 뜻하게도 되었다.
이와 같이 달밤에 선비들이 모여 각기 시를 지어 견주며 즐기는 것을 망월장望月場이라 하였다. 이처럼 달밤에 시재詩才를 겨루는 망월장과 달리, 대낮[白日]에 시재를 겨루는 것을 백일장白日場이라 일렀다.
그 유래는 1414년태종 14년 7월 17일에, 태종이 성균관 명륜당에서 성균관 유생 500여 명에게, 시무책時務策을 물어 시험을 본 데서 생긴 것이다. 이때 시각을 유시酉時 오후 5시~7시로 정했기로, 대낮이란 뜻의 백일白日을 붙인 것이다.
이 백일장은 관리임용과는 무관하게 유생들의 학업을 장려하고, 그들에게 명예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준다는 데 그 뜻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