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 ‘라바’ ‘마레’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해! 이렇게 기록이 번역이 되어 있는데, 이 말은 ‘입을 열어 말을 하기 시작하다.’라고 써 놓고, 이걸 ‘열매 맺다.’ 이렇게 써요. 생육이란 말이에요, 이것이. 너희들 이제 됐잖아요? 그 안에 ‘데무트’를 갖고 있고, ‘엘로힘’을 갖고 있어요. 진리로 갖고 있어요. 그 씨를 갖고 있다고요. 그 하나를 갖고 있다고요. 그러면 입을 열어 말을 해야죠. 그걸 뭐라고 그러냐면 성경이 ‘열매’라고 그래요. 그래서 주님이 뭐라고 그럽니까? ‘야, 좋은 열매 맺어야지~’ 그래놓고 ‘야, 어떻게 안에 들어 있는 게 좋지 않은데, 입에서 나오는 말이 어떻게 좋니?’ 이런다고요. 주님도 말을 ‘열매’라고 한다고요.
그런데 여기서도 보면, ‘너희들 열매 맺어야 돼~’ 어떻게? ‘입을 열어서 말하기 시작해~’ 입을 열어서 말하기 시작하는 그 소리를, ‘열매’라고 그래요. ‘생육해라! 그리고 번성해라.’ 뭘 말할까요? ‘시작해! 성전을 말하기 시작해!’ 그러는 거예요. ‘네 안에 있는 그거! 참 그 하늘을 말하기 시작해!’ 그리고 이것을 ‘충분해!’ 이렇게 이야기해요. ‘그걸로 충분해! 그것 말고 다른 것으로는 너희들이 담을 능력도 없을 뿐만 아니라, 줄 수도 없어. 그걸로 충분해!’ 그러면 그걸 뭐라고 그래요? ‘마레’ ‘진리를 가르치는 사람,’ ‘진리를 가르치는 하나님’ 이렇게 써 놓고 ‘완성!’ 이렇게 읽어요. ‘너희들은 그걸 갖고 생육하고, 열매를 맺고, 입을 열어서 말을 하고,’ 무슨 말? ‘그 말을, 그 성전을 말해!’ 그리고 그 진리를 말하는, 가르치는 이가 되라는 거예요.
그럼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면, 그 앞에 나열되었던, 공중의 새라든지, 땅에 기는 것들이라든지, 뭐 이런 부정한 것들, 바다의 물고기라든지, 이런 것들이, 그 위엣 것으로 이제 밝혀지겠죠, 이들에 의해서? 그럼 그것들이 땅에서 나오는 거예요. 그것들은 곧 우리를 가리키기기도 하고, 이 세상 모든 것들, 그런 것들이 진의로 밝혀지는 거예요. 그러면 거기에서 용서가 일어나는 것 아닙니까? ‘부정(不淨)한 거 아니에요, 당신은요!’ 이렇게.
그래서 주님이 욥바의 베드로에게, ‘야 그게 왜 부정한 거야?’ ‘부정한 거죠. 율법에서 다 부정하다고 그런 거 아니에요?’ 그랬더니 뭐라고 그래요. 하나님이. ‘아니, 내가 정(靜)한 것을 주려고 부정(不淨)하게 준 거잖아? 그러면 내가 이제 네가 뭔지 알았으면, 그건 너한테 정한 게 되어야지, 아직도 넌 그걸 부정하다고 그래? 내가 깨끗하다는데.’ 이렇게 이야기한단 말예요. 율법에서는 부정한 것으로 줘놓고.
그러면 보세요. 생육하고 번성하면, 자, 땅에서, 그러면 ‘카바쉬’ 이게 ‘정복하다’ 이런 말이에요. 그리고 이게 ‘라다’가 ‘다스려라.’ 물고기를, ‘다그’를, 그리고 공중의 새를, 기는 것들을, 그러면 다 끝났어요. 한번 보세요. 여러분, 미가서 7장 19절로 한번 가보세요. 그러면 정복이 뭔지 이제 알거 아니에요, 그죠?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해요. 완성이라는 게 뭔지를 알면, 그게 그걸 정복하는 거야라고 하는데, 정복이 뭔지 한번 보란 말예요. 미가서 7장 19절.
(미가서 7:19)
19 다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
여기서 ‘죄악’이라는 그 말이 ‘아본’인데요. ‘아본’은 이 아래의 것! 눈에 보이는 아래의 것! 이런 말이에요. 그런데 그렇게 써 놓고, ‘죄악’이라고 그래요. 눈에 보이는 아래의 것! 그걸 그대로 받아 버리면 그게 거짓이고, 그게 죄악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그걸 발로 밟으신데요. 그런데 거기서 쓴 말이 ‘정복하다, 카바쉬’란 말예요. 그런데 ‘카바쉬’란 말이 뭐냐면? ‘아래의 것으로 전환해준 그 성전을 그게 뭔지 분석하여 가르치다’ 이런 말이거든요. 그렇게 써 놓고 ‘정복하다’ 그래요. 그러면 죄악을 정복하다, 죄악을 짓밟았다, 죄악을 발로 밟으셨다는 말이 ‘카바쉬’ ‘아본’인데, 그 말을 다 풀어버리면? 눈에 보이는 아랫것들을, 그렇게 전환하여 준 그것을, 성전으로, 참 성전으로, 하늘로 분석하여 가르치면, 그걸 ‘이김’이라고 써요. 그래서 계시록에서 ‘이겨라! 이겨라! 이겨라! 이겨라!’가 그 ‘이김’을 이야기 하는 거예요. 눈에 보이는 나타난 그것을, 그 위엣 것으로 깨달아 알아, 그것을 그 진리로 덧입히라는 거예요. 그러면 그걸 ‘카바쉬, 이김’이라고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이 이렇게 얘기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3절.
(고린도전서 15:53-54)
53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이 말이에요.)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54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이걸 ‘니코스, 니케, 니카오’ ‘이기다’라고 하는 거예요. 이긴다! ‘아래의 것, 죽어야 할 것, 부정한 것, 어두운 것! 그것이 그게 아닌 걸로 옷을 입어!’ 그걸 ‘이긴다’라고 한단 말예요. 그렇게 되면 생육과 번성과 충만과 다스림과 정복이 완료되는 거죠. 그게 셋째 날의 약속이었잖아요? ‘내가 선악과로, 씨를 가진, 열매로 일하는 그 열매 나무로 나오게 할 거고, 푸른 풀에 씨를 담고야 말거야!’ 그랬잖아요? 그러면 그렇게 담겨진 자들이 바로 이거를 그렇게 알아 진리로 알아, ‘그게 그거지~’라고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면, ‘그게 정복이다!’라고 하는 거예요. 그게 이기는 거야! 하는 거죠. 그러니까 여러분은 그렇게 이겨야 되는 거예요.
그러면 그 ‘오탐’들(하나님이 완성한 진리), 그들에게 뭘 준다고 그래요? 양식으로. 보세요. 창세기 1장 29절.
(창세기 1:29)
29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양식이) 되리라
이 양식이라는 말, ‘오크라’라는 말인데요, 이 양식이라는 말이 무슨 말이냐면? ‘하나님이 아랫것으로 준 것을, 가르치는 말’ 이렇게 써 놓고, 이걸 ‘양식’이라고 그래요. ‘하나님이 아랫것으로 준 그것들을, 이게 뭔지를, ‘가르쳐, 라메드’ 가르치는 그 말’을, 성경이 ‘양식!’ 그런다니까요.
그러면 여러분의 양식은 뭐예요? 그 말이란 말예요. 예수그리스도의 입으로 나온, 그 말이, 생명나무 실과였던 것처럼, 여러분의 입에서 나오는, 그 말이 바로 양식인 거예요. 그런데 씨 맺는 모든 풀싹, 그리고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 ‘모든’이라고 써 놓고, 나무는 단수예요. 왜 그럴까요, 여러분? 선악과, 생명나무, 두 나무처럼 보이지만, 그건 한 나무라는 거예요. 이 나무로 이걸 알면 되는 거지~, 두 나무가 따로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모든, 콜’이라고 써 놓고 나무는 단수예요, 또.
그러면 뭐예요? 여러분이 그 선악과 그 율법! 그 아래의 것을 가지고 그 진리를 이제 말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여러분이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죠? 그리고 씨를 씨 뿌리는 풀이기도 하죠? 그죠? 그걸 양식이래요. 그러면 여러분 자신이 양식이네! 그게 바로 ‘내가 죽어, 너를 살린다.’라는 개념인 거예요. 예수님이 ‘내 살과 피를 네가 먹어라’라는 건 ‘내가 네 양식이다.’라는 건, 그래서 초대 교회 때는, ‘저 놈들은 사람들을 잡아먹는 인간들’이라고 그렇게 오해를 받았다니까요. 하도 예수님이 자기를 먹으라고 그래서. 그러니까 먹으라는 게, 그 안에 들어 있는 그 말을 먹으라는 거예요. 그걸 양식으로 주겠다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