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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뇌를 잠재우는 무릉계곡, 두타산-청옥산을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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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개요 ○ 산행장소 : 태백산권(댓재-두타산-청옥산-고적대-백복령) ○ 산행일자 : 2012년 06월 02일~03일(토~일)/맑음 ○ 산행참석 : 하루, 낙동산악회 ○ 산행코스 : 댓재-통골재-두타산-박달재-문바위재-청옥산-연칠성령-고적대-갈미봉-이기령-상월산-원방재-백복령 ○ 산행시간 : 12시간(약 28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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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일지 10:20 구포 도시철도 3번출구 11:06 언양휴게소(06월 02일) 02:50~03:00 댓재(805m)(06월 03일) 03:10 이정표(댓재정상 0.52km - 댓재옛길/상사전리 3.38km - 두타산 6.1km) 03:20 햇댓등 이정표(댓재 0.9km - 두타산 5.2km) 댓재에 도착해서 산행준비를 하는데 산행하기에 알맞은 날씨를 보인다. 다행스럽다. 백두대간 산줄기에서 제일 길고 어렵다는 구간이 댓재에서 백복령구간인데 산행거리와 산행시간이 만만치가 않다. <햇댓등> 표지석과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햇댓등은 산신각에서 산신제를 지낼 때 山神이 강신하기 가장 좋은 곳에 횟대를 세우고 山神을 맞이하는 의식을 치뤗는데 여 기서 말하는 횟대란 대나무(生竹)를 말하며, 두개의 대나무를 잘라서 통째로 세우고 꼭대기에 오색천을 걸었다. 횟대는 경상도와 이북 그리고 강원도에서는 "햇대"로 변음된 사투리로 "햇댓등"의 지명은 "댓재"와 합성하여 "햇댓"이라 한 것 으로 보이며, 등(登)은 산줄기에서 전망하기 좋게 뛰어 나온 부분을 말하는 것으로 두타산과 청옥산은 물론이고 주변의 산군 을 모두 바라볼 수 있는 이상적인 곳으로 보아 세곳의 뜻을 합성하여 "햇댓등"이라 지명한 것으로 판단된다.
03:30 이정표(댓재 1.0km - 두타산 5.1km) 03:38 이정표(댓재 1.4km - 두타산 4.7km) 04:00 이정표(댓재 2.2km - 두타산 3.9km) 04:13 이정표(댓재 2.8km - 두타산 3.3km) 04:25 이정표(댓재 3.6km - 두타산 2.5km) 04:33 통골재 이정표(댓재 3.9km - 통골하산길 - 두타산 2.2km) 04:57 이정표(통골 0.9km - 두타산 1.3km) 05:22~05:28 두타산頭陀山(1353m) 이정표(댓재/삼척 - 무릉계곡 관리사무소 6.1km - 청옥산 3.7km) 119표지판 - 두타산코스(1-10) 05:36 119표지판 - 두타산코스(1-11) 05:39 119표지판 - 두타산코스(1-12) 05:45 119표지판 - 두타산코스(1-13) 05:49 119표지판 - 두타산코스(1-14) 05:53 이정표(두타산 1.3km - 박달령 0.9km) 119표지판 - 두타산코스(1-15) 06:07 박달재朴達嶺 이정표(두타산 2.3km - 무릉계곡 관리사무소 5.6km - 청옥산 1.3km) 119표지판-박달령코스(2-10) 햇댓등에서 대간길은 왼쪽의 울창한 관목사이로 가파르게 내려가면서 몇개의 이정표와 통골재를 어둠속에서 지나치고 두타 산에 올라서니 여명이 밝아오는데, 정상의 넓은터에는 무덤 1기가 헬기장과 함께 있으며, 무릉계곡방향 내림길에는 <두타샘 물 30m> 표지판이 걸려있다. 두타산은 부처가 누워있는 형상으로 박달령을 사이에 두고 청옥산과 마주하고 서 있다. 울창한 수림과 기암절벽에 노송이 뿌 리를 내려 산세가 수려한 두타산은 강원도 국민관광지 1호로 지정돼 있다. 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지금은 삼화사, 관음암, 천은사가 남아 있지만 10여개의 사찰이 있다는 옛기록으로 보아 무릉계 는 불교가 크게 번성했던 두타의 도량이었던 같다. 정상석 사진을 찍고 <청옥산 3.7km> 이정표를 따라 왼쪽 내림길로 대간길을 이어가는데 119표지판이 군데군데 설치되어 있 어 유용하다. 박달령에 도착했는데 이정표가 정상석을 대신하고 있다. 박달령은 "밝달"에서 온 말로 "밝"은 광명을 비추는 높고 큰 산을 의미하고 "달"은 산과 들을 뜻하는 말로 청옥산과 두타산을 합하여 광명을 주는 맑고 큰 산이라 하여 두산을 연결하는 안부를 박달령으로 부른 것으로 보인다.
06:12 문바위재 이정표(두타산 2.5km - 청옥산 1.1km) 119표지판-박달령코스(2-11) 06:38 학등 이정표(두타산 3.7km - 무릉계곡 관리사무소 6.7km - 청옥산 50m) 119표지판-박달령코스(2-14) 06:39~06:43 청옥산(1404m) 이정표(박달재 1.3km/두타산 3.7km/무릉계곡 관리사무소 6.7km - 연칠성령 1.3km/고적대 2.3km) 119표지판-청옥산코스(3-10) 박달령을 거쳐 문바위재와 무릉계곡으로 하산길이 있는 이정표 세워진 학등을 지나 청옥산 정상에 도착하니 넓은 공터의 헬 기장에 비박하는 산객들의 텐트가 울긋불긋하다. 청옥산은 정상석이 두개이다. 인 청옥에서 온 지명이라 하기도 하고 임진왜란 때 유생들이 의병들의 정신이 죽지 안했다는 뜻으로 "청옥산"이라 했다고 하 기도 하고 동해시 쪽에서 바라보는 산세가 "푸르다"고 하여 청옥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청옥산 주봉에 있던 소나무는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경복궁을 중건하기 위한 대들보용 목재로 사용되었다. 산 아래 샘이 있고 정상부는 넓은 공터가 있어 고적대와 함께 야생화의 천국을 이루고 있으며, 특히 바위솔이 군락을 이루는 곳이라 대간꾼들의 비박장소로 인기가 높은 곳이다.
06:45 119표지판-청옥산코스(3-11) 06:50 119표지판-청옥산코스(3-12) 06:53 119표지판-청옥산코스(3-13) 06:55 이정표(청옥산 0.8km - 연칠성령 0.5km) 07:02~07:17 연칠성령蓮七星嶺/아침 이정표(청옥산 1.3km - 고적대 1.0km) 청옥산 정상에서 오른쪽 통신중계기 방향의 <연칠성령 1.3km/고적대 2.3km> 이정표를 따라 내림길을 이어가면 몇개의 119 표지판을 지나치고 연칠성령에 도착하여 아침 겸 다리쉼을 한다. 연칠성령은 하장면과 삼화동을 넘나들던 고개로 험준한 산세여서 난출령(難出領)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정상부는 "망경대"라 하고 인조원년 명재상 택당 "이식"이 중봉산 단교암으로 은퇴하였을 때 이곳에 올라 서울을 바라보며 망경 한 곳이라 한다. 다른 일설은 하늘에 계신 칠성님께 이어지는 고개로 보기도 하고, 사원터에서 하장면 방향으로 늘어선 일곱개의 봉우리에서 온 말로 보기도 한다.
07:20 119표지판-연칠성령코스(4-11) 07:25 이정표(연칠성령 0.5km - 고적대 0.5km) 07:29 이정표(연칠성령 0.7km - 고적대 0.3km) 119표지판-연칠성령코스(4-12) 07:33 119표지판-연칠성령코스(4-14) 07:43 고적대高積臺(1354m) 이정표(청옥산/두타산 - 백복령/무릉계곡 관리사무소 7.7km) 연칠성령을 지나 만나는 암릉 오름길을 우회하다가 바위지대로 마루금 능선에 올라서니 지나온 대간 산줄기가 병풍처럼 펼 쳐져 보이고 바윗길을 로프를 붙잡으며 올라서니 좁은 공터에 고적대 정상석이 기다리고 있다. 고적대에서 진행방향의 오른쪽 내림길로 간다.
08:05 고적대 삼거리 이정표(고적대 1.2km/두타산 7.2km/청옥산 3.5km - 무릉계곡 관리사무소 6.5km - 백복령) 08:36 갈미봉葛味峰(1260m) 이정표(고적대 - 괘병산/수병산 - 이기령) 고적대를 내려서면 안개때문에 날씨가 흐리지만 주변 조망이 팔방으로 펼쳐진다. 고적대 삼거리를 지나 수병산 갈림길이 있 는 갈미봉에 도착해 기념사진을 남긴다. 갈미봉은 전국적으로 같은 이름이 많이 있다. 모두 같은 어원으로 쓰인 것으로 보이며 "갈"은 나누다(分)와 "미"는 山을 뜻하 니 두개의 봉우리를 말한다.(갈미봉은 두개의 봉우리를 가지고 있으며 그 중에 높은 봉우리에 이름 붙인다) "갈비봉" 역시 갈미봉에서 온 말로 "비"와 "봉"에 이끌려 "미"가 "비"로 변형되어 "갈비봉"이 된 것이다. 여기의 갈미봉은 수병산과 함께 두개의 봉우리를 이룬다. 갈미봉에서 진행방향의 <이기령> 이정표를 따라 오른쪽으로 간다.
09:17 쉼터/샘터 09:36 이정표(고적대 5.5km - 이기령 1.1km) 09:58 이기령耳基領/야영장/임도 이정표(고적대 6.6km/옹달샘 150m - 임계 부수베리 5.8km - 동해이기동 6.5km - 백봉령 10km) 10:29 상월산(970m)/삼각점/헬기장 이정표(이기령 1.0km - 백봉령 9.1km) 10:50 상월산上月山(970m)/부산낙동산악회 표지판 고적대에서 이기령까지는 능선이 완만한 오르내림의 연속이다. 이기령에 도착전의 두개의 쉼터 의자가 놓여있는 샘터에서 식수를 보충하고 등로를 이어가면 산길은 걷기 좋게 돌을 깔아놓은 정비된 길이며 쉼터의자 두개가 있는 이기령에 도착한다. 왼쪽으로 임도와 함께 야영장 표지판이 있다. 이기령은 동기(銅基)의 순수 우리말로 구리터가 있던 마을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구리터"의 중간 자음인 ㄹ이 탈락되어 "구이터"가 되고 "구이"가 "귀"로 축약되어 귀이(耳)로 표기 되었다. 구리터의 구리는 "동"이니 자연스럽게 동(銅)이고 터는 기 (基)이니 銅基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재"를 뜻하는 嶺을 넘어 가니 그 이름도 찬란한 이기령이 되었다. <백봉령 10km> 이정표를 따라 산길을 치고 오르기 시작하면 상월산 정상 이정표가 설치된 헬기장과 함께 삼각점이 나타나 는데 실제의 상월산은 20여분 더 산길을 진행해야 한다. 낙동산악회에서 설치한 상월산 표지판이 있다. 상월산에 대한 유래는 찾을 길이 없었다. 다만 국어사전에서 上月은 지난 달의 옛말로 뜻하지만 여기서는 "떠 오르는 달을 맞 이하는 산"으로 보고 싶다.
11:29 원방재 이정표(고적대 10.17km - 백봉령 7.09km) 12:40 헬기장 이정표(원방재 2.09km - 백봉령 5.0km) 13:33 이정표(원방재 3.59km - 백봉령 3.50km) 14:02 이정표(원방재 4.69km - 백봉령 2.40km) 14:30 이정표(원방재 5.79km - 백봉령 1.30km) 14:49 송전철탑 14:55 백봉령(775m) 상월산 정상에서 약 30분을 진행해 원방재에 내려서는데 왼쪽으로 임도가 보인다. 원방재에 대한 유래가 없어 사전을 찾아보니 "원방"은 "먼 지방" 또는 "먼 곳"을 뜻 하는 것으로 보아 먼 거리의 고개를 힘들게 넘나들던 사람들의 애환이 만들어 낸 지명이 구전으로 전해져온 순수 우리말로 보인다. 진행방향으로 다시 오르기 시작한다. 넓은 헬기장을 지나 걷기좋은 완만한 능선의 오르내림이 계속 이어지지만 지친 산객의 다리는 피곤하고 쉽지않은 대간길의 마지막에 지쳐가고 있다. 철탑을 지나 산길을 내려서면서 백복령에 도착한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강릉에 48개, 삼척에 40개의 소금가마가 있었다고 한다. 서해에서 올라오는 남한강의 소금길 은 충북의 단양에서 다시 육지로 올라와 기껏 영월쯤에 닿아 멈추었고, 정선 땅은 올곧게 강릉과 삼척에서 나는 동해의 소금 을 의지하여 살았다. 백복령은 바로 그 삼척에서 소금이 넘어오는 소중한 길목이었다. 백복령의 정확한 이름에 대하여는 누구에게 물어도 선뜻 일러주는 이가 없다. 늘 즐산길 열어가시고 나날이 좋은날 되이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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