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운 / 김애란 / 문학과 지성사
8편의 단편이 묶인 책이다. 문득 텔레비전에서 방영하는 드라마가 떠오른다. 특별한 작품이 아니더라도 대부분이 상류 그것도 최상류층에 관한 이야기다. 그런 삶을 동경하는 일반 시청자에게 대리 만족을 주거나 그들의 삶이 뭐 그런 것이지 않으냐를 보여주므로 당신의 삶이 힘들겠지만 불행한것 만은 아니다라는 메세지를 통해 위로를 얻으리라는 갸륵한 마음에서 기획된 것이라 믿고 싶다. 소설집의 이야기는 보통이라고 보이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거나 조금 아래 단계에 머무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류를 이룬다. 사람의 등급를 나눈다는 것이 짜증 나는 일이지만 어쩌랴...
내용과 어울리지 않게 마지막은 교훈적인 내용으로 갈무리된다. 타인으로부터 아픔을 당해봐야 나도 다른 이에게 아픔을 주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일까
43. 그렇게 쉬운 생각을 그동안 왜 한 번도 하지 못한 건지 당혹스러웠다.
사람이 사건에 닥치지 않고 어떤 깨달음을 얻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깨달음이란 몇 개의 글자 속에 있거나 잘 짜인 머릿 속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어지럽게 흩어진 마음속 깊은 곳에 눈물로 침전된 것이지 않을까
재개발 지역 A 바로 옆에 위치한 장미 빌라에 사는 새댁에게 출산 날짜가 다가왔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벌레를 쫓다가 폐물이 들어 있는 상자를 밖으로 떨어뜨린다. 시간은 새벽 1시. 남편은 야근 중이다. 중요한 물건이라 직접 찾으러 재개발 현장으로 들어간다. 수많은 벌레를 본다. 충격에 깜짝 놀라고 양수가 터져 흘러 신발이 흥건하다. 이 사태를 새댁을 어떻게 처리할 수 있을까. 핸드폰은 집에 두고 나왔다. 어차피 남편의 핸드폰은 꺼져 있을 것이다.
81. 나는 콘크리트 조각을 쥐었다. 멀리 보이는 장미발라는, 모텔과 교회는, 아파트는 여전히 평화로워 보였고, 나는 이 출산이 성공적일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우리는 함께 산다고 늘 말하지만, 함께 산다는 것은 함께 있는 시간에 한한 것일 뿐 실제로 함께 사는 것은 아니다.
재개발 지역의 4 층 아파트에서 산다. 모두 떠나고 모자만이 남은 집. 평생 용접을 하셨던 아버지는 타워크레인 꼭대기에서 밀린 임금을 달라고 농성하던 중 실족하여 돌아가셨다. 비가 끊임없이 온다. 홍수가 나고 아파트도 물에 잠겼다. 밤새 돌아가신 어머니를 급조한 배에 태우고 탈출한다. 가도 가도 불어난 물뿐이다. 음식을 구하려다 이불로 감싼 굳은 엄마의 몸은 물에 떠내려간다. 스티로폼에 의지하여 떠내려가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그 타워크레인, 그 골리앗 크레인에 올라 몸을 의지한다.
악몽이다. 이야기는 짧은 단문들로 엮여있어 읽는 동안 숨이 가쁘다. 이런 상황은 현실에서 가능하지 않다. 노아의 홍수와 다를 바 없다. 홍수가 난 곳, 물에 떠내려가면서 보이는 것은 골리앗 타워뿐이다. 전 국토가 공사장이었다는 주인공의 깨달음을 통해, 그 공사장은 모두 물속으로 잠기고, 물 위로 뾰족 솟은 크레인만 보이는 수중도시. 주인공이 느끼는 세상은 눈물로 덮인 도시요 세계인 것이다. 슬픔의 눈물은 온 세상을 덮고도 남으리라.
약간 모자란 듯 보이는 용대. 어머니의 시골집도 사기로 날려버리고 서울로 상경하여 택시 운전을 한다. 한 기사 식당에서 조선족 여인을 만나 결혼을 하지만 그 여인은 이내 위암으로 병사한다. 아내가 중국어 공부를 하라고 녹음해준 수많은 카세트테이프를 그녀가 죽은 뒤에도 듣는다. 자신보다 한참 어리지만, 불법체류자의 신분을 벗어나기 위해 자신을 이용했는지 진실로 자기를 어떻게 생각했을지 궁금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녀가 남겨 놓은 테이프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을 알게 되어 기쁩니다."
168. 제 자리는 어디입니까? / 여기서 멉니까?
우리 사회에 약자가 서 있는 곳은 어디인가? 또한, 그들이 서야 할 곳은 어디이며, 그곳에 이르기 위해 얼마나 더 가야 하는가? 묻는 듯하다. 약자들은 언제나 약자들과 함께 뒹굴고 강자들은 그들의 모임을 유지하는데, 온 힘을 쏟는다. 그 거리는 쉽게 좁혀지지 않을 듯 하다. 하지만 그들이 거하는 곳은 거짓에 어두운 밤이지만 여긴 꿈을 가지고 노래가 나오는 흥겨운 곳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득하게 느껴진다.
여성 공항 청소부의 추석을 앞둔 24시간 이야기다. 공항 청소부의 눈으로 보이는 공항의 모습이 그려진다. 갑자기 동료 청소부가 몸이 좋지 않아 결근한다는 소리를 듣고 그녀는 그 일을 자기가 하겠다고 한다. 왜?를 다루고 있다. 그녀의 머리는 심한 원형탈모증으로 정상적인 사람의 모습이 아니다.
나름 직장에서 인정받고 스스로 자신감도 넘치는 29세 여자가 친구 결혼식에 가는 하루를 그린 이야기다. 가는 길에 난생 처음으로 손톱관리를 받으러 들리는 네일아트숍, 평소에는 그 안의 여자들이 태만하다고 느꼈지만, 서비스를 받고 난 후, 다른 사람이 자신의 손톱을 봐주기를 원하는 입장된다. 4센티와 9센티의 힐 중이 어느 것을 신어야 할지 고민으로 시작된 하루는 물집 잡힌 발로 기우뚱거리며 남산에서 내려오는 모습으로 마감된다.
210. 안도할 만한 기준을 얻는 데 얼마나 많은 비용이 들었던지.
짧은 이야기이지만 생각할 거리가 적지 않다. 소설 속의 이야기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삶을 글로 표현하고 읽어보면 마찬가지로 생각할 내용이 가득 할 것이다. 요는 우리가 우리의 삶을 반추해볼 기회를 소설을 통해서 갖는다는 것이다. 나는 남자이지만 여자의 삶을 통해서 삶을 되돌아볼 수 있다.
대학 단짝인 두 여자가 동남아 여행을 하면서 겪는 갈등을 그린 이야기다. 언어 문제로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의지하는 관계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한 사람은 부담이, 다른 한 사람에그는 자존심의 문제가 내면에서 자라기 시작한다. 자라던 불만은 터지고 만다. 작가는 그 이유가 성격이라고 단정한다. 제목이 호텔 이름인 까닭은, 서윤이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서 들린 호텔의 이름이다. 그 호텔에서 투숙하면 원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여행객들 사이에 전해진다. 서윤은 자신을 길러준 할머니를 본다. 죽어서도 계속 폐지를 줍고 있는 할머니를 보며 눈물을 감추지 못한다.
253. 달콤한 과육으로 싸여 있지만 단단한 씨를 갖고 있는 아이
254. 두려움을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식은 두려움을 깔보는 거... 서윤의 경우, 두려움을 이기는 제일 좋은 방식은 두려움을 경험하는 거라 여기는 편이었다.
281. "교수님들 세대는 가난이 미담처럼 다뤄지는데 우리한테는 비밀과 수치가 돼버린 것 같아"
271. 은지와 서윤은 각자의 불만에 대해 터놓고 얘기해본 적이 없었다.
작은 틈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더 크게 벌어지고 만다. 날이 추워지면 사이의 물기가 얼어 더 벌어지듯 관계가 냉랭해지고 시간이 지나면서 둘 사이는 더 어려워진다. 관계를 회복하는 방법은 공기를 따스하게 데우거나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이야기 해야한다. 다치지 않게 날카로움은 감추고, 가까운 관계일수록 더욱 그리해야 한다. 그러나 가까운 관계일 수록 더 편하게 흉기를 드러내는 것이 쉬운가 보다.
다단계의 늪에 빠져 피폐해진 몸과 영혼을 가진 서른의 한 여자가 그 늪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자기 대신 제자를 늪에 밀어넣고 슬퍼하고 있다. 그 제자는 그 늪에서 허우적거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한다. 지금 식물인간이 되어 병원에 있다. 소설은 그 서른 살의 여자가 대입 준비하면서 고시촌에 있을 때, 등을 마주하고 공부하던 5살 위의 언니에게 쓴 편지 형식의 이야기이다. 작은행동으로 그녀에게 힘이 되었던 언니, 그 언니는 임용고시에 번번이 떨어졌지만 결혼하여 아기를 낳았고 최근에 장수(이수 삼수를 넘어 8수 이상의) 끝에 임용되었다. 등 뒤에서 공부하던 후배가 떠올랐으나 연락처를 몰라 그녀가 다녔을 재학의 과사무실로 소포를 보낸다. 서른 살의 여자가 소포를 풀면서 살아왔던 삶을 회상하는 이야기다.
290. 그 안에는 훌륭해지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아도 보통의 기준에 다다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여자들이 많았지요. 무엇이 보통인지는 모르지만, 그저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는 곳 언저리에 금이라도 한번 밟아보려 애쓰는 사람들이요요.
297. '너는 자라 내가 되겠지···· 겨우 내가 되겠지'
316. 어쩌다, 나, 이런 사람이 됐는지 모르겠어요.
평범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운이 좋은 것인지. 다들 열심히 사는데 누구는 왜 인생이 이렇게 꼬이는지. 어떤 이는 다른 이에게 의지가 되고 힘이 되는데 왜 어떤 이는 그렇지 못한지. 왜 누구를 만나지 말아야 하는지, 그 일을 하지 말아야 했는지 과거를 부정의 의미로 돌아보는 사람의 과거는 어떠한 것인지 생각하게 한다. 모두 열심히 살았는데. 두려움은 나를 타인으로부터 분리하게 하고 그 분리는 나도, 타인도 어려움에 빠지게 한다. 도대체 어떤 환경이 사람을 사람으로부터 분리하도록 강요하는가. 서른 즈음에 이런 편지를 써야만하는 사람에게 모든 책임을 물어야 할까.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한 개인이 아닌 한 사회가 피해를 보는 것이 자명하다면 그것에 대한 책임을 한 개인에게만 묻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생각한다. 사회는 그 구성원이 그 사회에서 올바르게 자리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