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제1장 — 탄차(炭車)가 멈춘 자리
황봉수는 일흔두 살이었다.
그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그는 자신의 기억이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
현재 자신이 서 있는 땅의 지층(地層)임을 알았다.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다만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갈 뿐이다.
그날도 그는 새벽 수영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11월의 아침, 은행나무 잎이 노랗게 쌓인 골목길을 걸으며 그는 문득 멈추었다.
아무 이유 없이.
아니, 정확히는 이유를 알 수 없이.
그의 코끝에 무연탄 냄새가 스쳤다.
냄새란 이상한 것이다.
눈도, 귀도 속일 수 있지만,
냄새는 시간을 통째로 끌어당긴다.
황봉수는 눈을 감았다.
눈꺼풀 안쪽으로 어둠이 펼쳐지는가 싶더니,
곧 흙빛 산마을이 떠올랐다.
강원도 정선, 탄광촌.
그가 일곱 살이던 해.
아버지는 갑을병(甲乙丙) 세 교대로 탄광에 들어갔다.
새벽, 낮, 저녁 — 아버지의 몸에는 늘 검은 그늘이 배어 있었다.
그 탄광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갱도 붕괴였다.
탄차가 평소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면,
마을 사람들은 도로 가에 나와 그 차가 어디에 설지를 지켜보았다.
그날 밤, 탄차는 그의 집 앞에 섰다.
문이 열렸을 때, 아버지의 왼쪽 다리는 짓눌려 있었다.
진통제라고는 소주병뿐이었다.
전화는 이장 댁에 하나뿐이었고,
3주 동안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리고 아버지의 다리를 자르겠다는 병원의 통보가 왔다.
어머니는 한참을 침묵했다.
그러고는 말했다. 자르지 마세요.
황봉수는 그 말을 평생 기억했다.
자르지 마세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일흔이 넘어서야 그는 비로소 이해했다.
그것은 결단이 아니었다.
그것은 신뢰였다.
잘라내지 않아도 살아남을 것이라는
— 논리가 아닌 — 어떤 믿음.
온 가족은 보따리를 싸서 의정부로 이사했다.
월세방을 전전했다.
보증금이 바닥나면 또 다른 월세로,
또 다른 골목으로.
황봉수는 그 이사의 기억이 지금도 발바닥에 남아 있다고 생각했다.
닳고 닳은 고무신의 감촉으로.
은행잎이 그의 발등에 내려앉았다.
황봉수는 다시 걸었다.
냄새는 사라졌지만,
무언가가 그의 가슴 한쪽에 남아 있었다.
오래된 광산 같은 것 —
아직 꺼내지 않은, 검고 단단한 것.
제2장 — 선자(申善子)라는 이름
황봉수에게는 누나가 있었다.
황명희.
그녀는 공부를 잘했다. 시골 학교에서 항상 수석이었다.
그러나 가정 형편이 나빠지면서 그녀는 강제로 야간학교로 전학해야 했고,
낮에는 봉제공장에서 일했다.
손이 빠르고 정확했다.
공장 반장은 그녀를 아꼈다.
그러나 그 아낌이 그녀를 구하지는 못했다.
어느 날 밤, 크게 싸움이 일어났다.
황봉수는 자신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다만 다음 날 아침,
누나의 방이 비어 있었다.
이불이 반듯하게 개켜져 있었다는 것만 기억한다.
그것이 더 서러웠다.
그후 누나의 소식은 없었다.
황봉수가 신학교 2학년이던 10월,
헌병대가 수업 중에 찾아왔다.
주소지 변경을 하지 않아 입대 통지서가 옛날 집으로만 갔던 것이다.
그는 부모님께 인사도 못 하고 논산으로 끌려갔다.
강원도 양구에서 군 복무를 마치고 첫 휴가를 나왔을 때,
온 가족이 상다리가 부러질 만큼 음식을 차렸다.
그 첫 숟가락을 뜨는 순간,
어머니가 울음을 터뜨렸다.
누나 얘기를 꺼내지 않았지만,
그 울음에는 누나가 있었다.
제대 무렵, 편지 한 통이 왔다.
항공 봉투에 'From Thailand'라고 적혀 있었다.
열어보니 누나였다.
나 잘 있으니 찾지 말라고. 단 두 줄.
어머니는 황봉수에게 비행기 표를 끊어 주었다.
어디 있는지도 모르지만, 찾아오라고.
방콕 공항에 내린 황봉수는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나라 한가운데 서 있었다.
그가 아는 태국어는 없었다.
택시 기사에게 'Korean Church'라고 말했다.
기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30분을 달렸다.
그런데 도착한 곳은 한국 대사관이었다.
황봉수는 웃음도 울음도 나오지 않았다.
그냥 걸었다. 대사관 뒤편으로.
거기에 교회가 두 개 있다는 말을 들었다.
첫 번째 교회, 두 번째 교회.
그는 두 번째 교회 문을 두드렸다.
목사님이 물었다. 누구를 찾느냐.
황봉수는 말했다. 황명희를 찾는다고.
호적 이름은 따로 있을지도 모른다고 —
황명자라는 이름으로 등록되어 있을 수도 있다고.
이름을 잘못 올린 것이었다.
목사님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황명희라면 우리 교회 나오고 있어.
도착한 지 두 시간 만이었다.
형제는 태국 땅에서 서럽게 울었다.
오래, 말없이. 누나는 아시아나 항공에 취직해 일하고 있었다.
그녀의 손은 여전히 정확하고 빠른 손이었다.
봉제공장 때부터 쌓아온 그 손이.
황봉수는 귀국길에 오르며 생각했다.
내가 찾은 것이 누나인가,
아니면 길인가.
어쩌면 그 둘은 같은 것이었다.
제3장 — 야곱의 돌베개
그로부터 사십 년이 흘렀다.
황봉수는 이제 명예교수였다.
대학 강단에서 30년을 가르쳤다.
학생들에게 지식을 전했고, 논문을 썼고,
학술지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그것들이 멀어지는 것을 느꼈다.
지식은 여전히 쌓였지만,
무언가 중요한 것이 그 사이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딸은 미국에 있었다.
사위와 두 손녀딸과 함께. 카카오톡으로 종종 손녀들 얼굴을 보았다.
손녀들이 웃을 때마다 황봉수의 가슴에 무언가 따뜻하고도 쓸쓸한 것이 동시에 올라왔다.
그게 무엇인지는 정확히 말할 수 없었다.
아내는 3년 전에 떠났다.
긴 투병 끝에.
그녀가 없는 집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는데,
모든 것이 달랐다.
아침에 커피를 끓일 때,
텔레비전을 끌 때,
현관 불을 켤 때
— 그 모든 순간에 그녀의 부재가 있었다.
부재는 소음보다 시끄러웠다.
황봉수는 매일 새벽 수영장에 갔다.
물속에서만 잠잠했다.
물은 공평했다.
일흔 살의 몸도,
이십 살의 몸도 같은 저항 속에서 헤엄쳐야 했다.
물속에서 그는 잠시 나이를 잊었다.
그날 설교를 들은 것은 우연이었다.
아니, 지금 생각하면 그 어떤 것도 단순한 우연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교회 친구가 보내준 영상 하나.
방콕한인교회 신상태 목사의 새벽 설교.
황봉수는 지하철 안에서 이어폰을 꽂고 그것을 틀었다.
설교는 야곱의 이야기로 흘렀다.
형에게 쫓겨 광야로 도망치던 야곱.
날이 저물어 돌을 베개 삼아 누운 자리.
그 허허로운 땅에서 야곱은 꿈을 꾸었다.
하늘과 땅을 잇는 사닥다리.
천사들이 오르내리는 빛의 계단.
그리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야곱의 고백.
"정녕 여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황봉수는 지하철 안에서 눈물이 나올 뻔했다.
참았다. 옆자리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 그 눈물의 정체를 아직 모르기 때문이었다.
슬픔인지, 안도인지,
아니면 오래된 죄책감인지.
정녕 여기에도.
이 광야에도.
이 탄차가 멈춘 밤에도.
이 방콕 공항의 두 시간에도.
이 아내 없는 아침에도.
황봉수는 지하철이 역에 닿는 것도 몰랐다.
문이 열리고, 닫히고, 다시 달렸다.
제4장 — 비가 올 때 올라가다
설교에는 또 다른 이야기가 있었다.
목사는 태국에서 평균 나이 65세 이상의 선교팀을 이끌고
치앙마이 산골 마을로 올라가려 했다.
그런데 비가 왔다. 길이 막혔다.
산사태가 났다.
사흘 동안 세 번 시도했고,
세 번 돌아왔다.
그 사흘 내내 목사는 하나님 앞에 분을 토했다고 했다.
웬 비입니까. 이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고 넷째 날, 겨우 산을 올랐다.
마을에 도착했을 때, 교장 스님이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비를 몰고 와 주셔서.
3개월 동안 비가 없어서 곡식이 죽고,
짐승이 죽고, 사람도 물을 구하기 어려웠다는 것.
한국 선교팀이 오기로 한 바로 그날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는 것.
황봉수는 이 대목에서 이어폰을 뺐다.
창밖을 보았다.
지하철이 지하로 들어가는 구간이어서 창은 검은 터널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 검은 유리에 자신의 얼굴이 비쳤다.
노인이었다.
황봉수는 자신이 노인임을 잊고 살았다.
더 정확히는,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검은 유리 속 얼굴은 정직했다.
흰 머리, 깊은 주름,
조금 처진 눈꺼풀.
그것이 자신이었다.
그러나 그 얼굴은 무너진 얼굴이 아니었다.
황봉수는 생각했다.
나도 오래 기도했다.
아내의 병이 낫기를.
딸이 곁에 있기를.
학문으로 쌓은 것들이 조금 더 의미 있기를.
그런데 기도와 정반대의 방향으로 삶은 흘렀다.
아내는 가고, 딸은 멀리 있고,
학문은 쌓였지만 마음은 비었다.
그 비가 — 사흘 동안 저주처럼 내리던 그 비가 —
실은 은혜였다는 것.
황봉수는 그것이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막힌다고 여긴 그 시간 동안,
다른 곳이 촉촉해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보지 못하는 방향으로.
이어폰을 다시 꽂았다.
설교는 계속되고 있었다.
"내가 보면 얼마나 본다고,
내가 알면 얼마나 안다고."
황봉수는 그 말을 메모장에 받아 적었다.
오래된 메모 습관이었다.
중요한 것은 적는다.
그래야 도망가지 않는다.
제5장 —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되다
황봉수는 그날 밤 오래 앉아 있었다.
책상 위에는 오래된 사진 한 장이 있었다.
흑백 사진.
강원도 탄광촌 골목,
어머니와 아버지와 누나와 황봉수.
황봉수는 기억할 수 없을 만큼 어린 나이였지만,
사진 속 그는 웃고 있었다.
아버지의 왼쪽 다리는 목발에 기대어 있었다.
그 사진을 처음 본 것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였다.
어머니의 서랍 안에 접어서 넣어 두었던 것.
황봉수는 그 사진을 꺼내며 오래 울었다.
그리고 책상 위에 올려 두었다.
치우지 않았다.
설교에서 목사는 야곱의 서원을 이야기했다.
야곱은 사닥다리 꿈을 꾸고 아침에 눈을 뜬 후,
베고 자던 돌을 세워 기둥으로 삼았다.
그리고 고백했다.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되리라.
돌은 돌이다.
야곱이 베개로 삼았던,
딱딱하고 아무런 가치 없는 돌.
그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된다는 것은 논리가 아니다.
그것은 믿음이 만들어낸 고백이다.
황봉수는 사진을 바라보았다.
그 흑백 사진 속의 탄광촌,
그 가난, 그 고통,
그 아버지의 목발
— 그것이 그의 베개였다.
그가 어릴 때 베고 누웠던 돌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무엇이 되었는가.
그는 그 가난에서 도망치기 위해 공부했고,
그 공부가 그를 교수로 만들었다.
그 쓸쓸함에서 도망치기 위해 학문에 빠졌고,
그 학문이 그를 생각하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 아버지의 목발 소리가 그로 하여금 걷는 일을 두려워하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매일 수영장으로 발길을 옮기게 했다.
돌이 변하여 하나님의 전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이런 것이 아닐까.
고통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고통이 의미로 변환되는 것.
상처가 치유되는 것이 아니라,
상처가 깊이로 바뀌는 것.
탄차가 집 앞에 서던 그 밤이,
지금 이 밤의 무게를 견디게 하는 기둥이 되는 것.
황봉수는 사진 위에 손을 얹었다.
차갑고 매끄러운 종이의 감촉.
아버지. 어머니. 누나.
그들 모두 지금은 없다.
아버지는 오래전에 갔고,
어머니는 혈액암으로 갔고,
누나는 미국 어딘가에서 이제 늙어가고 있다.
아내도 없다.
그러나 그들이 없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의 안에 있었다.
그의 기억 속에,
그의 습관 속에,
그의 새벽 수영 속에.
정녕 여기에도.
이 고요하고 쓸쓸한 책상 앞에도.
제6장 — 정녕 여기에도
다음 날 아침,
황봉수는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다.
창문을 열었다.
11월의 새벽 공기가 들어왔다.
차가웠다. 그러나 그 차가움이 좋았다.
살아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하는 종류의 차가움이었다.
그는 커피를 끓이며 창밖을 보았다.
가로등이 아직 켜져 있었다.
그 아래로 은행잎들이 바람에 흩어지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골목길.
고요한 이른 새벽.
황봉수는 생각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답이 왔다. 여기에.
여기 — 이 부엌, 이 커피잔,
이 가로등 빛, 이 은행잎.
딸이 멀리 있고 아내가 없고 아버지의 목발 소리가
기억 속에 있는 이 자리.
이 특별하지 않은,
그러나 내가 지금 숨 쉬고 있는 이 자리.
그는 처음으로 이 자리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니, 더 정확히는 —
이 자리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설교에서 목사는 어머니의 마지막 말을 전했다.
항암 무균실에서,
마스크를 쓴 아들에게 어머니가 말했다.
아들, 하나님이 보내신 곳에서 열심히 사역하거라.
이 자리에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
황봉수는 그 말이 자신에게도 닿는 것을 느꼈다.
이 자리에 살아 계신다.
탄차가 멈춘 자리에도.
방콕 공항 두 시간의 기다림에도.
기도와 정반대로 흘러간 시간에도.
아내의 마지막 숨이 있던 그 병실에도.
그리고 지금 이 부엌에도.
황봉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따뜻했다.
그 온기가 목에서 가슴으로 내려갔다.
아주 천천히.
그는 책상으로 가서 흑백 사진 앞에 앉았다.
그리고 오랫동안 그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아버지의 목발,
어머니의 손,
누나의 웃음,
어린 자신의 눈.
그 모든 것이 여기 있었다.
사라진 것이 아니라,
지층처럼, 깊이 남아 있었다.
황봉수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조용히,
아주 오래간만에,
감사 기도를 드렸다.
화려한 언어가 없었다.
긴 문장도 없었다.
다만 한 마디.
"정녕 여기에도."
가로등이 꺼졌다.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
은행잎들이 골목 위로 다시 날렸다.
황봉수는 눈을 뜨고 일어나 수영 가방을 들었다.
문을 열고 나섰다.
차가운 공기, 노란 잎,
아직 어스름한 하늘.
그는 걸었다.
느리게,
그러나 멈추지 않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