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전라도닷컴>
<김진수의 약초산책 85>
신경안정, 간보호, 항암 - 황칠나무(楓荷梨)
신경쇠약증은 평소 스트레스가 많아 잠을 못 이루고, 일상이 답답하고 불안하며, 집착과 사려, 소화불량, 어지럼증, 긴장, 피로, 무기력, 강박, 편두통, 월경불순, 관절통, 심계항진 등이 따르는 질환이다. 이러한 병의 원인을 한의에서는 보통 간과 심장에서 찾는다. 간의 기운이 막혀 정지가 원활하지 못하거나(肝鬱), 칠정(七情, 喜怒憂思悲驚恐)에 심이 상한 것(心鬱)이 원인이므로 맥진을 통해 전신 기혈의 출입승강, 오장육부의 허와 실, 한열(寒熱)의 치우침을 살펴서 몸을 편안하게 조절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즉 우리 몸에 음혈(陰血)이 부족하게 되면 정기(正氣)가 손상되어 차차 허열(虛熱)이 발생하고 이것이 오래 되면 허번(虛煩)하여 신경이 예민해지고 쉽게 흥분하며 가슴이 뛰는 병적 상태로 깊어지기 때문이다.
간의 성질은 원래 조달을 좋아하고 억울을 싫어한다. 전신에 혈과 진액을 잘 흐르게 함으로써 항상 정지를 밝고 상쾌하게 이끌고 싶어 한다. 그런데 이것이 제약을 받으면 울결이 발생하고 간화(肝火)로 전변하여 기가 경락에 체하거나 장부에 맺히게 되는 것인데, 성격이 민감하거나 내향적일수록 신경 정신적 병성으로 이환되기 쉽다. 이때 항우울제나 항불안제 같은 약물에 의존하면 신체반응을 더디게 하는 과한 진정작용으로 무기력, 졸음, 기억력감소, 감정반응둔화, 식욕부진, 불면 같은 2차 반동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한방에서는 스트레스와 정서불안, 신경쇠약을 다스리는 생약처방으로, 간기울결을 해소하는 시호와 간과 비위를 조화하고 간혈과 진액을 보충하는 작약 당귀 창출 맥문동 그리고 심장과 뇌를 안정하는 복령 원지 백자인 천마 등을 활용한다. 예컨대 <풍하이 10, 당귀 천궁 작약 원지 천마 복령 각 5, 시호 생지황(숙지황) 연자육 백자인 각 3, 감초 대조 생강 각 1>을 기본방으로 하여 기력이 많이 부족하면 황기 5를, 담이 많으면 반하 3, 기의 순환이 고르지 못하면 지실 자소엽 각 2, 근육이 뭉치면 모과 갈근 각 5의 추가로 치료할 수 있다.
황칠나무는 두릅나뭇과에 속한 상록활엽교목이다. 우리나라에 1종이 자라는데 완도, 흑산도, 거문도, 제주도 등 주로 따뜻한 서남해안에 분포한다. ‘황칠’이란 이 나무의 껍질에 상처를 내면 맑은 황금빛 진액이 흐르는데 이것을 모아 천연도료로 사용하였던 것에서 유래한다. 황칠나무의 한문 생약명은 풍하이(楓荷梨)이다. 뿌리와 가지를 약용부위로 하지만 잎 수피 수액 열매도 모두 약으로 쓰인다. 맛은 달고 쓰며 성미는 평하고 따뜻하다. 잎 뿌리 줄기는 겨울에 거두고, 수액은 여름에 채취한다. 간 심 비경으로 들어가 안신정지(安神定志, 정신을 맑게 하고 마음을 안정시킴), 거풍제습통락(祛風除濕通絡, 풍사와 습사를 제거해 경락을 통하게 함), 활혈장근(活血壯筋, 혈행을 촉진하여 근육을 강화함), 윤장통변(潤腸通便, 장을 부드럽게 하여 대변을 통하게 함), 서근활혈(舒筋活血, 근육을 풀고 혈액순환을 좋게 함)과 풍습비통(風濕痺痛, 류머티즘에 의한 사지마비 저림증 전근증 통증 등), 반신불수(半身不垂, 중풍 등 반신을 쓰지 못하는 증)를 치료하는바 이러한 효능은 알츠하이머나 파킨슨병과 같은 퇴행성뇌신경질환의 치료에도 적용된다.
풍하이에 대한 현대약리학적 인식은 보다 상세하다. 풍하이에는 신경안정물질인 안식향(安息香, 벤조인나무의 수지)이 풍부하여 스트레스나 만성피로, 담, 울기, 만성통증 등을 해소하며, 면역담당세포인 T림프구의 활성을 증진하여 면역체계를 강화한다. 잎에서 추출한 베타시토스테롤 성분은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여 혈당을 강하한다. 주요 함유성분인 베튤린, 사포닌, 플라보노이드는 항암에 관여하는 물질로 그 가치가 인정되었으며, 멜라닌 합성저해 활성물질도 가지고 있어 자외선으로부터 피부세포를 보호한다. 그밖에 알레르기, 동맥경화, 전립선비대증을 완화하며, 뼈세포의 증식을 촉진시켜 경조직에서 발생하는 골다공증과 치주질환을 개선하는 효능도 잘 알려졌다. 황칠나무의 노란 수액은 소화를 돕고 구토와 설사를 완화하며, 저밀도콜레스테롤과 트리글리세린(중성지방)의 수치를 용량 비례적으로 감소시킨다.
황칠나무는 오갈피나무와 같은 파낙스계열(Dendropanax morbiferus)로 학명이 곧 질병(morbi)을 가져가는(ferus) 만병통치(panax) 식물(Dendro)인 약나무이다. 흔히 ‘인삼나무’로 부르기도 하는데 인삼은 보통 음성체질에, 오가피는 양성체질에 사용하지만 풍하이는 원만하여 이를 가리지 않아도 된다. 질이 순하여 무리 없이 보할 수 있고 기혈을 잘 돌게 하여 통증을 가라앉힐 수 있으며 심장과 뇌를 안정하여 마음을 고를 수 있으니 노인에게도 잘 맞는 약재라 할 수 있다.
풍하이는 이와 같이 유효 함유성분이 다양하여 그 적응증의 폭도 넓다. 필요에 따라 단방 또는 간편복방으로 장기복용이 가능한 약재이다. 남부지역이라면 누구나 한 그루 쯤 뜰에 심어둘만한 장한 약나무이다.*
꽃
열매
잎
잎, 꽃
줄기
온포기
잎(약재)
줄기(약재/풍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