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덕성당(合德聖堂) 또는 당진합덕성당(唐津合德聖堂)은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1998년 7월 28일에 대한민국의 충청남도의 기념물
1890년 충청남도 예산군 고덕면 상궁리에 양촌성당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었다,
합덕성당은 성소 못자리로도 유명하다. 사제 30명, 수녀 54명 수사5명(수사 수녀는 1990년 통계)을 배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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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의 종탑이 쌍탑으로 되어있는 것이 특징인 이 성당은
3개의 출입구와 창들이 모두 무지개 모양을 이루고 있다.
외벽은 붉은 벽돌로, 창둘레와 종탑의 각 모서리는 회색벽돌로 쌓았다.
창 아래와 종탑의 각각 면에는 회색벽돌로 마름모형의 장식을 하였다.
뒷뜰에는 성직자 묘지가 있다.
첫번째 묘지는 이 매스트르(1808-1857) 신부 묘이다.
성 김대건, 최양업, 최방제 신학생의 스승이었다.
1852년 우리나라에 입국하여 전교하다가 황무실 공소에서 선종하신 분이다.
두번째 무덤은 홍병철(랑드르, 1828-1863)신부 묘이다
1861년 우리 나라에 입국, 전교하다가 병사하였다.
세번째 무덤은 백문필(패랭, 1885-1950)신부인데 1921년 부터 1950년 피납되기까지 계셨다.
현 성당 건물을 지은분이다. 1950년 성모승천 대축일 전날 축일 준비를 위해 고해성사를
집전하다가 납치되었는데 시신은 현재 대전 사정공원 애국지사 묘에 묻혀 있다.
네번째 무덤은 심재덕(마르코, 1908-1945) 신부인데 1942-1945년까지 백문필 신부 보좌로 있다 병사하였다.
전신은 1890년(고종 27)에 설립된 양촌성당(충청남도 예산군 고덕면 상궁리)인데,
초대본당주임 퀴를리에(Curlier, J. J. L.)신부가 1899년 현 위치에 120평의 대지를 매입,
한옥성당을 건축하고 이전하여 합덕성당으로 그 명칭을 바꾸었다.
그 뒤 7대주임 페랭(Perrin, P., 白文弼)신부가 1929년 현재 건물인 벽돌조의 고딕성당을
신축하였는데, 1960년 신 합덕성당이 분할되어 독립함으로써 명칭이 합덕성당에서
구 합덕성당으로 변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합덕지방은 일찍부터 천주교의 사적지로 알려졌으며, 1866년 병인박해 때 다블뤼(Daveluy,
M. A. N.)주교를 비롯한 여러 선교사들이 체포되기 전 피신하였던 곳이 현 구합덕성당의
신리공소(新里公所)로, 당시의 유물들이 보존되어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81115 (목) 순례 시간 : 오후 2시 20분 ~ 오후 3시
점심은 성당 입구에 있는 서야분식 식당에서 백반정식을 아주
맛있게 먹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