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김포평야에 아파트들이 잘 자라고 있다 // 논과 밭을 일군다는 일은 / 가능한 한 땅에 수평을 잡는 일 / 바다에서의 삶은 말 그대로 수평에서의 삶 / 수천 년 걸쳐 만들어진 농토에 // 수직의 아파트 건물이 들어서고 있다 / 농촌을 모방하는 도시의 문명 / 엘리베이터와 계단 통로, 그 수직의 골목 // 잊었는가 바벨탑 / 보라 한 건물을 쌓아 올린 언어의 벽돌 / (중략) / 그렇게 수평이 수직을 다 모방하게 되는 날 / 온 세상은 거대한 하나의 탑이 되고 말리라”(함민복, “김포평야”).
함민복 시인은 김포평야에서 논이 사라지고 아파트가 들어서는 모습을 보며 바벨탑을 떠올립니다. 수평적 삶의 형태가 수직으로 대체되는 현실을 경고합니다. 우리는 지금 모든 것을 더 높이, 더 빠르게 쌓아 올리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 나오는 바벨탑은 인간의 힘만으로 하늘에 닿으려던 교만의 결말을 보여 줍니다. 그들은 하느님 없이도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언어가 뒤섞이고 온 땅으로 흩어진 그들처럼, 현대 문명 또한 하느님 없이 모든 것을 이루려고 한다면 소통의 단절과 파멸을 맞이할 것입니다.
그 반면 제2독서와 복음은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성령께서 오시어 우리를 도와주시리라고 전합니다. 바벨탑에서 흩어졌던 인류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다시 하나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 나라의 논밭을 일구어야 합니다. 수직으로 쌓기보다 수평을 잡아야 합니다. 서로 형제자매라 부르고, 피조물과 함께하며,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는 수평의 관계. 이 모든 것은 성령을 통해서 가능합니다. 오늘, 바벨탑이 아니라 오순절 다락방으로 성령께 나아갑시다.
(권순호 알베르토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