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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성산 사랑 원문보기 글쓴이: 호현낙선
부활 신앙이 주는 변화 요 20:24-29, 빌 3:10~16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날인 부활절은, 기독교의 가장 큰 축제의 날입니다. 기독교 최대의 신비는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에게서 탄생하신 것과, 죽은 지 3일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사신 부활 사건입니다. 부활의 사건은 어떤 종교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오직 기독교만이 가지고 있는 유일무이한 사건입니다. 유사 이래 인간 문화역사는 죽음을 이겨 보려고 도전해 왔고 또 죽음을 부인하려는 노력을 계속해 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죽음을 정복하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래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는 약속을 성취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 신앙을 가진 성도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생명의 승리를 믿고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은 그 사건을 목격한 사람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고, 변화를 가져다주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본문에 나오는 도마의 변화입니다. 부활을 경험하기 전의 도마의 신앙은, 그 당시나 오늘날 부활을 믿지 못하는 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부활절을 맞아 두 본문을 중심으로 “부활 신앙이 주는 변화”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영적 세계의 무지로 부활 신앙을 갖지 못한 신자의 모습이 있습니다.
복음서 본문 요20:25에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가로되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인간의 경험이나 지식으로는 이해하고 믿기가 절대 불가능한 것입니다. 왜냐 하면 부활은 기적이요, 영적 안목을 가진 자만이 볼 수 있고, 믿을 수 있는 신비의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부활 신앙을 가지기 전 헬라어로 디두모라고 하는 도마는 꼬치꼬치 캐묻고 따지기를 잘하며, 의심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두뇌 구조가 복잡하여 신앙을 받아드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찬 후에 ‘내가 너희를 위해 처소를 예비하러 간다.’는 말씀을 하셨을 때 도마가 나서서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요14:5). 예수님께서 영적인 말씀을 하는데, 도마는 어느 길을 가야 하는지 모른다고, 엉뚱한 소리를 했습니다.
누구나 영적 안목이 열리지 아니하면 영적인 말씀을 깨닫지 못하게 됩니다. 이를 테면 예수님을 찾아 온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없다’고 말씀을 하셨을 때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하면서 영적 말씀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지으리라’는 말씀의 영적 의미를 깨닫지 못한 자들이 몇 년을 거쳐 지은 성전을 사흘 만에 짓는다고 허풍을 떠는 자로 오해를 하기도 했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양식이 있다’고 말씀 하셨을 때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주님의 양식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누가 선생님께 먹을 것을 같다 주었는가’라고 인간적으로 생각했습니다. 제자들이 주님께서 몇 차례 십자가의 수난 후 사흘 만에 다시 사실 것에 대한 말씀을 잊고 믿지 않았던 것도 믿음으로 받을 만큼 그들의 영적 안목이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부활 신앙을 가지기 전 도마는 의심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의심은 진리를 받아 드리는데 큰 방해가 됩니다. 본문을 보면 다른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다 증거 하는데 유독 도마만은 믿지를 않았습니다. 다른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하는 자리에 도마만 빠져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다 목격하였다면 따라 믿을만한데 의심 많은 도마는 믿기를 완강히 거절하며 “…내가 그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25절).했습니다.
영적 세계에 무지하여 불신하고 의심하는 자들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것을 어떻게 믿느냐’,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을 어떻게 믿느냐’,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믿느냐’, ‘어떻게 홍해가 갈라질 수 있으며,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될 수 있느냐’고 의심 하면서 믿지 않습니다. 도마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의심 많은 도마에게 주께서 부활하신 지 8일이 지나던 날 도마도 함께 있는 곳에 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요20:27). 하셨습니다. 도마처럼 인간적인 생각에 메어 영적인 세계에 대한 무지로 의심하고 불신하는 자들이 되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2.부활 신앙은 성도의 삶을 변화시킵니다.
성도가 성령의 도우시는 은혜로 영적인 안목이 열리고, 듣는 귀와 깨닫는 마음을 가지게 되면 신앙의 차원이 달라지고, 마음이 달라지고, 언행이 달라집니다.
먼저, 부활을 믿는 자는 평강의 복을 받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후에 제자들은 불안에 떨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한동안 돌아다니지도 못하고 한 집에 모여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들어오셔서 하신 첫마디가 바로 "평강이 있을지어다." 즉 "샬롬"입니다. 비록 저들이 예수를 부인하고 도망간 적이 있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책망하지 아니하고 "샬롬"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지금도 우리의 현실이 어렵고 힘든 일들이 일어나고, 도처에 위험과 불안이 도사리고 있지만 부활을 믿는 성도들에게 주님이 주시는 기쁨과 평강이 있습니다.
다음에 강하고 담대한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자기들도 로마 군인들에게 체포되어 죽게 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면서 문을 닫아걸고 숨어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주님께서 예고하신 대로 두려워하면서 세 번이나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그들이 부활의 주님을 만난 후 주님의 분부를 따라 한 마음으로 기도 하다가 오순절 약속하신 성령 충만을 받은 후 매 맞는 것, 옥에 갇히는 것,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히 부활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위협하는 자들이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부활의 증인으로 살다가 기쁨으로 박해를 받고, 순교를 당했습니다.
또한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삽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난 도마는 그제 서야 ‘나의 주님이시오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 때 주님은 본문 9절에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하셨습니다. 그 때부터 도마는 의심을 버리고 확고한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늘도 부활하신 주님이 나와 여러분에게 말씀하십니다.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세종대왕이나 이순신을 보지 못했어도 역사적 실존에 대해 1%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전해 듣고 그대로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바로 그런 겁니다. 예수님을 보지 못했지만 그분을 보고 체험한 사람들이 남긴 성경 말씀을 통해 얼마든지 믿고 따를 수 있는 겁니다. 사도 베드로는 벧전1:8-9에서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했습니다. 의심은 불신앙을 낳게 되고, 불신앙은 패망을 가져옵니다.
그리고 하늘 소망 가운데 승리하는 자로 삽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을 때 믿고 따르던 자들은 예수도 패배자로 끝났고, 따라서 우리도 실패했다고 실망하여 모두들 흩어졌습니다. 무엇이 제자들을 패배자로 만들었습니까? 불신앙과 의심의 죄가 그들을 그리고 우리를 패배자로 만듭니다. 믿음의 패배자, 사명의 패배자, 천국 소망의 패배자, 죄와 사단과 세상과의 싸움에서 패배자가 됩니다.
그러나 부활신앙을 가지게 되면 하늘 소망 가운데 승리자가 됩니다. 도마의 사역과 생애에 관하여는 그 이후 성경의 기록에서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3세기의 교회사가인 유세비우스와 제롬 등의 기록에 의하면 도마는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이 있던 날 성령 충만함을 받고 A.D. 52년부터 20년간 인도에 가서 선교활동을 하다가 순교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인도의 남동쪽 해안도시인 Mylapore에는 도마의 무덤으로 알려진 곳이 있으며, 그 곳에 도마를 기념하는 교회당이 세워져 있기도 합니다.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다 영광스런 순교자가 된 것입니다. 부활의 주님은 성도들을 향하여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고 하십니다. 우리 모두 부활신앙으로 무장하여 평강의 복을 받고, 강하고 담대하게 되며,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승리하는 자들이 됩시다.
3.성도는 부활의 영광에 이르려고 힘써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서신서 본문 빌3:10-11에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라고 했습니다. 부활은 헬라어로 아나시스타스(anasistas)로서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망으로부터 일어나신 것입니다. 부활은 신앙의 근거입니다. 부활이 사라지면 신앙도 사라지고 부활이 확실해지면 신앙은 점점 강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확고한 부활 신앙의 터 위에 서서 부활의 은혜를 체험하고 증거 하는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다메섹에서 빛 가운데 나타나신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삼층 천의 말로 할 수없는 놀라운 하늘나라 영광의 세계를 목격하고 체험한 사람입니다. 그가 그런 은혜 체험을 통해 알게 된 영광의 부활에 참여할 수만 있다면 어떤 고난과 희생을 당한다 할지라도 참고 견디겠노라고 고백합니다. 본문에 그는 영광의 부활에 이르기 위한 몇 가지 노력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먼저 그리스도의 죽음을 본받는 노력입니다. 본문 10절에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했습니다. 고난이 없이는 죽음도 없고, 죽음이 없이는 부활도 없습니다. 만일 예수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모면하기 위해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제자들과 함께 도망쳐 버리셨다면 유대인의 왕이 될 수도 있었고, 종교 교주도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십자가도 없었고, 부활도 없었고,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받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하늘 보좌 우편의 영광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해 죽음을 정복하시고, 부활의 영광을 맞보신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주님의 죽으심을 본받아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는다’했고, ‘나는 날마다 죽노라’했으며,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다음에 힘껏 달려가는 노력입니다. 본문 12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했습니다. 여기서 ‘좇아가노라’의 헬라어 '디오코'는 '추적한다.'라는 의미로 사냥이나 달리기 경주에서 사용된 용어로 대단히 적극적이고 열심히 노력하는 강한 표현으로 그리스도를 배우고 닮아가고자 하는 바울의 진지한 노력을 뜻합니다. 그의 서신서를 보면 신앙을 경주자로, 군사로 비유했습니다. 마라톤 선수가 42.195km를 달리면서 놀거나 걷거나 딴 짓을 하면 안 됩니다.
오늘 우리도 사도 바울처럼 ‘좇아가노라’의 ‘디오코’라는 단어처럼 적극적이고 열심을 다하여 달려야 합니다. 힘껏, 최선을 다하여, 땀을 흘리면서 달려야 합니다.
그리고 부름의 상을 바라보며 끝까지 달려야 합니다. 본문 14절에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했습니다. 바울이 생명을 걸고 달려가며 힘쓴 목적은 부활 후에 주시는 하늘나라 상급이었습니다. 그리스의 운동 경기자들은 10개월가량 고된 훈련을 받았다고 합니다. 음식과 오락, 수면에 있어서 절제했습니다. 몇 분밖에 안 되는 경기를 위해 몇 년 동안 자기와 싸우며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였습니다. 그 결과 영광이 있었습니다. 영광은 자기와의 싸움인 절제 뒤에 비로소 따라 오는 것입니다. 세상에 없어질 영광과 상급을 위해서도 그런 노력을 기울이는데, 하늘의 영원한 영광과 상급을 위해서 인내로써 끝까지 달려가 주님과 함께 영원한 영광에 이르는 성도들이 됩시다.
부활절을 맞아 두 본문을 중심으로 “부활 신앙이 주는 변화”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영적 세계의 무지로 부활 신앙을 갖지 못한 신자의 모습이 있습니다.
◆.부활 신앙은 성도의 삶을 변화시킵니다.
◆.성도는 부활의 영광에 이르려고 힘써야 합니다. 아멘.
<2021. 04. 01. 호현낙선. https://cafe.daum.net/sungsansa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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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성산 사랑 원문보기 글쓴이: 호현낙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