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여울마을
강 문 석
바다를 접한 절벽 위에 올망졸망 들어선 집들 사이로 경사진 골목길이 미로처럼 얽혀있다. 마을 집들에서 야트막한 담장 너머로 바다를 바라보며 산다면 어떤 마음이 들까. 절벽 밑에선 연신 파도가 철썩이고 시원한 바닷바람까지 불어온다. 전란 때 피란민들이 옹기종기 모여 지은 평범한 집들이지만 푸른 바다가 들어 이국적인 풍광을 연출한다. 수직으로 내리 쬐지만 아직은 따갑지 않은 초여름 햇볕이 녹진한 섬마을 공기를 산뜻하게 말려주면서 예쁜 골목길에 몰린 사람들을 흥분에 들뜨게 만든다.
골목길 계단은 가파르지만 옛길 그대로여서 오히려 정겨움이 묻어나는 듯하다. 알록달록한 벽화들로 가득한 골목에서 사진을 찍는 여행객들에게 담이 낮은 주민들은 초상권 침해라는 주장도 편단다. 이런 주민은 불편하다면서 영업 시작 전 밖에서 줄서서 기다리지 말라는 경고까지 내보내는 모양이다. 영화「변호인」과 「범죄와의 전쟁」 그리고 「암수살인」과 「무한도전」,「공개수배」 그리고 드라마「딴따라」와 「드림」까지 모두 이곳에서 촬영했단다. 그동안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풍광이라는 방문객들의 입소문이 영화 제작자들을 불러들였을 것이다.
흰여울마을은 11년 전 낡은 가옥들을 리모델링하면서 영도의 정취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독창적인 문화예술마을로 다시 태어났다. 마을이 새롭게 바뀌자 곧바로 지중해의 산토리니에 빗대 '한국의 산토리니'란 이름이 붙었다. 황홀할 정도로 빼어난 입지조건이 그런 변화를 불러왔으리라. 문화란 그 지역 자연과 어우러진 삶의 형태가 세월 따라 고유한 색깔과 특성을 띠면서 발전하지 않았던가. 산토리니는 척박하면서도 가파른 바위섬이지만 유럽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결혼여행지이자 세계적인 부호와 유명인사들의 별장이 몰려있는 섬이다.
깎아지른 절벽 위에 제비집처럼 붙은 산토리니 주택들은 흰색 벽과 지중해 물빛을 닮은 푸른색 창문과 지붕 딱 두 가지 색만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 아래로는 감청색 지중해 물빛인 바다가 자리하고 위로는 코발트빛을 띤 구름이 어우러져 섬은 한 폭의 그림으로 다가왔다. 이처럼 집을 예쁘게 꾸며서 호텔과 민박을 운영하고 카페와 식당 각종 기념품 가게를 열어 관광객을 불러들이고 있었다. 살인적인 더위에도 여행객은 절벽을 따라 두 사람이 겨우 지나칠 수 있는 좁은 골목을 걸으며 눈앞에 펼쳐지는 풍광에 감탄사를 연발하는 것이었다.
사실 흰여울마을 자연은 산토리니보다 더 뛰어나다 할 수 있다. 봉래산 아름다운 숲길은 산토리니가 가지지 못한 자산이 아닐 수 없다. 햇살에 따라 시시각각 색깔을 바꾸는 바다 풍광과 마주보이는 송도 암남공원을 지나 멀리 몰운대 뒤로 떨어지는 해넘이 풍경도 꿈처럼 아름답다는 산토리니 일몰에 뒤지지 않는다. 또한 송도와 충무동 남포동을 아우르는 남항 야경은 얼마나 황홀하던가.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가파르고 꼬불꼬불한 골목길을 그대로 살려 작은 카페와 공방 갤러리를 만들어 영도 풍광을 담은 사진과 그림에 탐방객이 몰리고 있는 것이다.
흰여울마을 밑 해변 영도갈맷길의 또 다른 이름은 절영해안로. 고무소재로 만든 바닥이 평탄하면서도 폭신하여 많은 사람들이 걷기운동 삼매경에라도 빠진 듯하다. 무지개색깔로 아름답게 난간을 칠한 절영해안로는 국토부가 선정한 '경관이 수려한 해안길'에도 들었다. 전국 52개 해안누리길 중 부산에선 해운대 삼포길과 사하 몰운대길이 함께 뽑혔고 그 중에서도 절영해안로는 베스트5에 이름을 올렸다고 한다. 산책로에서 조망하는 바다경관은 더없이 평화롭고 시원하다. 이곳을 프러포즈하기 좋은 장소라는 소문도 이 때문이 아닐까 싶다.
피아노계단에 발을 딛자 끝이 까마득하다. 목제 데크계단을 다 내려서면 바로 해안산책로와 수십억이나 들여 뚫었다는 암반터널이 나타난다. 해안 산책로 끝 피아노계단에서 빨강 파랑 노랑 등 색색이 칠해진 피아노계단을 배경삼아 사진을 찍으면 바로 영화의 한 장면이 된다. 여행 후 흔하게 듣는 “어딜 가도 남는 건 사진뿐이더라”는 말을 의식이라도 했는지 터널 안엔 포토존까지 마련되어 있다. 이곳에서 제대로 포즈를 잡고 찍으면 예쁜 추억사진을 남길 수 있다. 좋은 데이트의 필수조건도 멋진 사진을 남기는 것이라 하지 않던가.
여행지에서 종종 아름다운 지명을 맞닥뜨리면 더욱 그 풍광에 몰입하게 된다. 이름에 걸맞은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 흰여울마을도 그래서 며칠 사이에 두 차례나 찾았다. 두번째 날은 쨍쨍하던 하늘에서 게릴라성 폭우까지 퍼붓는 바람에 카메라 장비와 함께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기도 했다. ‘흰여울’이란 봉래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마치 흰 눈이 내리는 모습 같아 붙여진 이름이라니 화산암으로 이뤄진 계곡이라 여울물이 하얗게 흘러내리는 상상은 어렵지 않게 할 수가 있다.
서른 전후로 3년 반 근무한 영도변전소가 흰여울마을에서 가까운 남항동에 있었다. 당시 남항동은 자갈치를 오가는 정기여객선이 있을 정도로 영도의 교통중심이었고 국립수산진흥원도 이곳에 있었다. 변전소에서 바라보는 봉래산은 늘 탄광지대처럼 검은 빛깔을 띠고 있었다. 일제가 산의 나무를 수탈해간 것으로도 모자라 산 이름마저도 고갈산으로 바꾼 걸 당시엔 알 수가 없었다. 크고 작은 화산석이 산중턱까지 흘러내린 산을 바라보노라면 조림으로 산을 가꾸기도 어려울 거란 생각이 들었다.
오늘날 흰여울마을 아래 해변 산책로는 당시 이송도로 불렸고 변전소에선 걸어서도 가까운 편이었다. 소나무도 없는데 이송도란 이름을 붙인 것도, 환락가 남포동 쪽에서 데이트 족들이 이곳으로 몰려든다는 사실도 당시로선 이해난망이었다. 절벽 아래 자갈밭 해변만 봤지 주위와 어우러진 비경을 제대로 보질 못했던 것. 무역량이 늘어나면서 앞바다엔 외국에서 도착한 컨테이너 화물선들이 가득했었다. 화물을 내리기 위해 대기하는 선박들로 밤마다 묘박지 전체가 휘황찬란했던 풍광은 부산신항이 생길 때까지 계속되었다.
살아오면서 영도에서 숙박까지 하면서 치룬 크고 작은 행사들도 섬이 아름다워 찾았을 것이다.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부산웅변인단체의 임시수도 당시의 상공부연수원 세미나와 온천성당 레지오 단체의 함지골청소년수련원 피정이었다. 당시 MBC 라디오 ‘자갈치아지매’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S와 뒤에 금배지를 달았던 H가 동연배로서 나의 좌우에 붙어 앉아 환하게 웃는 사진만 남았을뿐 연수원 위치가 어디였는지 알 수가 없다. 친목단체에서 수시로 영도에서 벌인 만찬행사장도 흰여울마을 지나면 바로 나오는 목장원이었다.
7년 전 여름, 남포동에서 바라본 봉래산이 하얀 안개로 뒤덮여 신비스러운 풍광을 연출하고 있었다. 바다를 접한 부산이라 해무가 잦은 건 알지만 안개가 이런 형상까지 만들어낼 줄은 몰랐다. 바다 위에 끼는 안개는 차가운 바닷물과 더운 육지 공기가 만나 해수면 가까이에 안개가 퍼지는 자연현상으로 큰비가 내릴 때는 더욱 많이 생성된다. 보통 해무가 아침이나 저녁 무렵에 발생하는 것과는 달리 그날은 한낮에 생겼던 것이다. 카메라 노출이나 감도에 신경 쓰지 않고도 그날 신비로운 장면을 담아낼 수 있었다.
영도의 옛 이름은 절영도. '절영'은 그림자가 끊어진다는 뜻이다. 조선시대까지 절영도는 말 방목지로 유명했다. 섬이라 맹수로부터 말을 보호하기도 용이했고 따뜻한 기온이라 목초지도 그만큼 많았던 것이다. 자연히 영도 방목지엔 나라에서 키우는 명마도 많았으며 그 명마들은 워낙 빨리 달려서 그림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래서 명마는 '절영마'라는 이름을 얻었다. 한창 푸르던 날 봄 이송도에서 포즈를 취한 흑백사진이 남아있다. 사람은 촌티를 벗지 못했지만 자연은 태곳적 신비감마저 안겨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