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 (제10회 / 이명자)
2. 어머니의 반란
“재민아, 재민아.” 한평생 다소곳함을 지켰던 어머니의 물기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였다. 그 즈음은 과격한 날이 거의 없었다. 내가 삼년 동안 말썽 없이
좋은 성적으로 중학교를 졸업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더 좋은 성적을 원했지만 육십 명중(이 십 명 씩 한 학년에 세 반이 있었다.) 육등이라는 성적에 앞으로
더욱 분발하여 일등의 고지에 올라서도록 명을 내렸을 뿐이었다. 나는 집에 있는 동안 한눈 한번 팔지
않고 아버지를 도왔다. 아버지는 내게 가게를 맡기고 밖 앗 일을 보기도 했다. 대단히 진전된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더 좋은 소식은
방학 한 달이 지나자 나의 진로를 다시 헤랄드로 돌아가게 해준 것이었다. 단 조건이 있었다. 조건쯤이야 얼마든지.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고 억지로 가두어 두었던
해방의 종소리(환청이 아니었다.)가 내 귀에 아스라이 들려오는데
아버지가 천 가지 조건을 내놓는다고 해도 덥석 받아드려야 하지 않겠는가. 아버지의 조건은 이랬다. 고등학생이 된 이상 일류대학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 그러기 위해 내가 계속 헤랄드 사립학교에 남아 공부해도 좋을 가치를 기필코 이루어 내야 한다는 것. 아버지의 희망을 무참하게 만들지 말라는 조건이었다. 마지막으로 몹쓸
것에 한눈팔지 말라는 것. 나는 가슴이 뜨끔했지만 무엇이 몹쓸 것인지의 지적이 없어서 두말없이 아버지의
조건을 받아들였다. 꼭 그렇게 해내고야 말리라, 하는 오기까지
치밀어 올랐다. 진심이었다. 하루, 하루가 날마다 좋게 지나가고
있었다. 아무리 좋은 하루하루라고, 마약장이가 어떻게
그토록 쉽게 마약을 참아내는가는 제발 묻지 말았으면 한다. 어떤 길이든 어떤 곳에나 있기 마련이니까. 나에게는 대단히 강한 참을성도 있다. 이것만은 분명히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다. 어머니의 참을성은 기네스북에 올리고도 남을 만 했으니까. 그런 어머니가 내 귀에 대고 슬픈 목소리로 나를 불렀던 것이다. 나는 섬찟한 예감이 내 두 팔뚝에 일어나는 걸 느꼈다. 팔에 으스스 한기가 돋아났으니까. 내가 모르는 큰 일이 일어났거나
앞으로 일어날 것 같은 목소리의 뉘앙스가 불길했다. 어머니도 매일매일 조용한 우리 집의 평화를 알고
있었을 텐데, 나를 바라보는 눈에도 물기가 가득 차있었다. “어머니, 무슨 일이에요?” 나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냥 한번 불러 본거란다.” 점심식사를 끝내고 아버지를 도우러 가게로 나가려는 내 앞을 가로막고 어머니는
생전 안 하던 모습을 내게 보인 것이었다. 이상도 해라. 허지만
그냥 한번 불러 본거란다 라니.....
‘아무 일도 아니구나, 내가 갑자기
왜 예민했지.’ 나는 어머니를 등지고 집을 나와 발걸음도 가벼웠다. 나는
이미 행복한 미래를 보장받은 터라 무슨 일이 있거나 없거나 어머니의 일은 어머니가 알아서..... 어머니에게
무슨 일이 있겠는가. 어머니는 내가 기억하는 한 한 번도 아버지와 의견충돌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충돌은 언제나 아버지로 시작하여 아버지로 끝났으니까. 그러니 내
기억에 어머니는 자신의 의견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그런데 뭔가 찜찜했다. 명색이 하나뿐인 아들이란 게, 해서 말이지. 나는 기억을 더듬어 보기로 했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을까? 그럴 리가. 어제는 오래 만에 우리가족 모두 한 마음이었다. 나의 앞길을 환히
제시해 주는 아버지와, 아버지의 뜻을 맞장구치는 어머니와(나는
분명 그렇게 느꼈으니까.) 아버지의 뜻을 감지덕지하는 나. 아무문제가
없었다. 나는 길을 걸으면서 첩첩이 쌓인 기억의 미로 속으로 계속 들어가 봤다. 언제 적 것인지 기억 저편 별로 뚜렷하지는 않지만 어머니를
향해 ‘당신이 뭘 안다고 나대는 거야.’ 숫 사자가 일격에 암컷 사자를 찍어 누르려고 온 몸의 신경
줄을 한데 모아 으르렁 포효하는 것처럼 아버지의 목소리가 거침없었다. 나는 그때 어머니는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인가 보다 나처럼, 했다. 기억속의
어머니는? 수치심으로 인하여 어둠속에서도 얼굴이 빨개진 어머니는 주위에 앉아 있는 친지들을 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어둠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치명적인 아버지의 목소리만 여운을 끌고 친지들도 곧장 어둠속으로 사라져버렸다. 다른 장면이 쏜살같이 뒤를 이어 나타났다. ‘당신은 반찬 투정이
좀 심한 편이에요.’ 라고 어머니가 중얼거렸다. 정말이지
들릴락 말락 했다. 아이고, 어머니가 크게 잘못했나? 귀도 밝은 아버지는 냅다 밥상을 둘러 엎어버렸다. 그때 아마도 나는
여섯 살 때였으리라. 놀란 내가 울음보를 터트리는 장면이 기억에 뚜렷이 남아있다. 소리도 우렁차게 엉엉 울어댔으니까. 어머니는, 울음보를 터트린 나를 껴안고 내방으로 들어가 굳어진 얼굴로 나를 잠재우던 어머니. 내가 울음을 그치고 잠이 들 때까지 어머니의 표정은 굳어진 체로였다.
나는
그날 밤의 아버지도 무서웠고 어머니도 무서웠다는 생각뿐이었다. 다음날 아침에는 모든 것이 말짱했으니까
말이지. 아버지는 나를 학교에 데려다 주면서 ‘재민아 오늘도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선생님 말씀을 한 마디 한 마디 모두 기억해야한다.’ 학교 앞에 내려 주면서 날마다
빠짐없이 하던 말을 어젯밤 그 난리를 치고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식이었다. 그래서 나는 어젯밤의 난리를
그 다음날 아침 학교 가는 길에 잊었을 것이다. 어머니도 물론 그날 밤의 난리를 잊었을 것이다. 잊었다면, 왜 지금 새삼스레 내 눈앞에 나타나는 것일까. 그 기억이 어젯밤의 일처럼 말이지. 그러나
나는 해답을 찾지 못한 체 줄줄이 엮이어 나타나는 기억 속에서도 아무런 이상기류를 발견해내지 못하고 가게에 당도했다. 가게는 바빴다. 아버지는 나를 카운터에 세우자마자 도매상에 간다며
서둘러 나갔다. 나는 아버지의 변화를 보고 있노라면 묘한 갈등에 시달렸다. 직원 한사람 쓰지 않고 일 년 내내 혼자 일을 하던 아버지 나를 한 번도 카운터에 세우지 않았던 아버지(언제나 아버지와 내가 함께 카운터를 지켰다.) 나는 그런 것이 우리
집의 사는 방법으로 알았다. 아버지의 키는 189센티미터였고
건장한 체구의 소유자였고 아직 한 번도 병원에 간 적이 없었다. 한 번도 교통사고나 교통티켓을 받아
본적이 없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대하면서 자신의 가게에서 한 번도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가게를 뻔질나게
드나드는 불량아들 중독자들 거리를 떠도는 집 없는 천사들 하루의 일과에 스트레스를 받아 화를 짊어지고 사는 일반인들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 그 누구하고도 언성을 높인 적이 없었다. 이렇게 사회생활의 달인
같던 아버지가 나에게 두말없이 가게를 맡기다니 아버지와 똑 같은 189센티미터의 키를 보유하고 열다섯
살 치고는 건장한 체구를 붕어빵처럼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나라고 해도 가게에 들어오기만 하면 훔치려 드는 흑인 재크에게 나는 여러 번 언성을 높였다. 아버지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아버지를 빚으면서 완벽을 추구하는
신들의 손길이 서로 우위를 다투면서 자신들의 실력을 몽땅 아버지에게 쏟아 부운 탓일까? 그렇지
않고서야 어디, 밖에서는 사회생활의 달인 집에서는 달인의 껍질을 씻어내 버리기 위해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짙은 비누냄새를 풍기면서 하는 샤워 어머니와 내게는 도벽처럼 날마다 우리가 알 수없는 자신의 어떤 이상을 향해 서슴없이 주입시키려 드는 행동들, 정말 알 수 없었다. 어머니도 나는 알 수 없었다.
키가 자그마한(155센티미터) 어머니는 자동차를 운전 할 줄 몰랐고 아버지의 점심식사를
나르기 위해 가게에 가는 것이 전부였다. 아버지가 행하는 굴욕적인 언어와 행동들은 어머니에게는 하등의
문제가 되지 않았을까. 지금도 나는 환청에 깜짝깜짝 놀라서 눈을 뜨면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여 다시 잠 못 이루는데. 어머니는 어른이라 다른가. 그럴 것이 다. 난리가 난 다음 날 아침은 언제나 말짱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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