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세계평화안보 문학축전 대통령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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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아쇠 없는 세계
황종권
세상의 모든 총들이 방아쇠가 없다면
탄약 창고엔 탄약대신 읽어야할 시집이 가득하다면
행운을 접어놓는 평화가 갑자기 침침해진다면
군인들은 이제 군화를 벗어던지고
그냥 가거나 오는 것도 없는 국경의 밤을 생각할지도
방아쇠 없는 총에겐 가늠쇠가 없고
총구가 없고 결론은 그냥 총이 하나의 만년필이 되었다는 거
나는 만년필로 금방사라지는 것들을 봐버렸다
볕이 범람하는 창의 자명함을 이해할 수도 있고
한 모금의 커피가 주는 아름다운 질문을 받아적기도 했다
나는 만년필이 누군가의 목숨을 가져간다 해도
의심하지 않는다 재가 된 구름들이 밀려온다
적막이 된 만년필 앞에서 나는 불에 타는 것들을 생각했다
비가 내린다 누군가 책을 베끼고 있는 소리다
멀리 가는 군화들이 그림자를 짚는 소리다
더 이상 죽은 자가 없으니까 만년필은 썩어
싹이 나고 줄기가 잘 자랐다
격발은 이렇게 명료한데,
어떤 총성소리는 자유를 상징한다는데
더 이상 테러리스트가 없는 이 극명한 세상
시 쓰는 것이야말로 누군가를 격발시키는 일
검지 없는 자들은 죄인들이었지만
나는 방아쇠 없는 이 세계가 좋아서 매일 입안에 침을 고이게 했다
― 『당신의 등은 엎드려 울기에 좋았다』, 천년의시작, 2018
* 황종권 시인 : 1984년 여수 섬달천에서 출생. 2010년 경상일보 신춘문예 당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차세대 예술 인력에 선정되어 작품 활동 시작.
안양예술고등학교와 대구경화여자고등학교 시 창작 수업.
제18회 여수해양문학상 대상 수상. 2018년 아르코창작기금 수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