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나타1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
화요일입니다. 화목을 위한 날입니다. 화목하며 삽시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나니” (고린도전서 10:13절 말씀)
1. 오늘도 당신에게 밀려오는 유혹을 어떻게 하실 것입니까?
이 말씀은 아주 유명한 말씀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들으면 이렇게 생각합니다. ‘아, 하나님은 우리에게 감당할 만큼만 시험을 주시는구나’ 나는 이 말씀에 공감하지만 한글 번역의 기초가 되었던 영문 성경은 사실 좀 다른 뉘앙스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No temptation has overtaken you except what is common to mankind ‘너희들을 넘어뜨렸던 시험은 사람(인류)에게 공통적인(일반적인) 시험 외에는 없었다.’ 즉, 너희들이 넘어진 이유는 특별한 시험이 아니라, 누구나 받을 수 있는 시험이라는 말입니다. 이 말을 한 배경을 앞 절의 구절들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1절부터 10절까지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한 경고를 말하고 있습니다. 특히 5절에는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또한, 7절부터 10절까지는 우리가 본보기로서 받아들여야 할 사항들에 대해 말씀해주십니다. 우상숭배(7절), 음행(8절), 하나님을 시험하기(9절), 원망하기(10절)을 하지 말라고 경고하십니다. 즉, 13절에서 ‘너희들을 넘어뜨렸던 시험(유혹)’은 이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했던 죄악들, 우상숭배와 음행,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 원망하는 것들에 대한 유혹 때문에 너희들도 넘어질까 조심하라(12절) 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신앙의 깊이가 있다는 스스로 여기는 사람들이 자주 하는 실수는 자신이 평범한 죄악으로부터는 멀리 떨어져 있다고 안심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신앙의 깊이가 있는 사람도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평범한 유혹에도 크게 실패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교만하지 말고 늘 겸손하고 가난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감당할만큼의 시험을 주신다는 단락은 13절 뒤에 나옵니다.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여기에서도 주의해야 할 사실은, 우리에게 유혹이 없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시험’이라는 단어는 ‘유혹’이라는 단어로 해석함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시험이 아닌 사람의 욕심으로 인해 당하는 시험인 ‘유혹’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견딜 수 없는 유혹에 빠지도록 두지 않으시며 (not let you be tempted),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인내할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신실함을 믿으며 오늘도 유혹에 잘 견디며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2. 하나님께서는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약속하시나요?
고린도전서 10:13은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이 성경 말씀은 멋진 원칙을 가르칩니다. 우리가 만일 하나님께 속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삶 속에 우리가 견딜 수 없는 어려움이 닥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길에 닥치는 모든 유혹과 시험에서,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신실하게 지키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시험을 견딜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죄에 항복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크리스천으로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격려를 받습니다.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마태복음 6:13)라는 기도는 응답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약속들이 우리가 절대로 문제에 직면하지 않을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요한복음 16:33a)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대한 해답은 예수님의 다음 말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요한복음 16:33b).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은 새로운 지역으로 복음을 전하러 갔을 때 심한 시련을 겪었습니다. 다음은 바울의 증언입니다. “우리가…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고린도후서 1:8-9). 이 말씀은 마치 바울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을 넘어서는 “심한” 시험을 당했다는 것처럼 들립니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또 다른 진리를 알려줍니다. 시험과 유혹을 견디는 우리의 힘은 우리 스스로에게서 오지 않고,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이는 바울이 말한 것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고린도후서 1:9). 바울은 하나님의 건지심을 바라며 (10절) 계속해서 주님께 찬양 드리고, 교회가 하는 기도의 효과를 강조합니다 (11절). 우리 삶에 닥치는 그 어떤 것, 우리를 유혹하는 그 어떤 것, 우리에게 닥치는 그 어떤 비극도,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극복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 안에서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적 승리를 성취할 수 있습니다. 삶은 쉽지 않습니다. 사실 우리는 “도망칠 길”을 필요로 합니다. 삶은 어렵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약속 안에서 그것을 당당히 직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로마서 8:37).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요한일서 5:4). 세상의 시험과 유혹을 “이긴다”는 것은 마치 다윗이 하나님의 힘으로 골리앗을 이겼듯이, 그것을 이기는 것입니다. 사악한 계획과 기분 나쁜 상황은 우리를 이기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이 내가 어릴 때부터 여러 번 나를 괴롭혔으나 나를 이기지 못하였도다” (시편 129:2). 우리의 시험에는 목적이 있으며, 우리는 하나님의 갑옷과 기도의 특권을 가지고 있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시험이 우리의 믿음을 이기지 못하도록 지키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의 지위는 확고한 것이고, 우리는 시험을 온전히 통과할 것입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로마서 8:38-39).
3. 시험의 유익은 무엇일까요?
첫째는 우리를 겸손하게 합니다.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합니다. 어떤 성도가 세 번이나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견딜 수 없는 갈등에 빠졌습니다. 수술은 한번 받고 안 받아야 합니다. 같은 병으로 세 번이나 수술을 받고 병실에 누워 있는 이 사람은 자기 속에 원망과 울분이 가득 차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수술을 한 번도 받지 않고 사는 사람이 많은데 나는 무엇 때문에, 무엇이 잘못되어서 세 번이나 수술 받는가? 의사도 원망스럽고 병원도 원망스럽고 병원을 소개해 준 친구도 원망스러워 견딜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도리가 없습니다. 이것은 현실입니다. 그런 가운데 이 사람이 전에 생각하지 못했던 생각을 하나 가졌습니다. ‘왜 내가 세 번이나 수술을 받는가?’ ‘하나님이 내게 무엇을 가르쳐 주시려고 내게 고난을 주시는가?’ 하고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돌아보니 자신이 원망과 낙심, 열등감, 자학증을 앓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신앙생활을 돌아볼 때 그는 하나님 밖에서 살았고 한 번도 하나님을 의지 해 본적이 없고 자기 힘으로 잘난 척 하고 살았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그 추함, 못남, 망가져 있는 모습, 수술만 세 번 받는 것이 아니라 자기 속 사람이 하나님 앞에 엉망으로 망가져 있는 내면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는 원망하고 짜증 부리던 그 병상에서 하나님을 부르고 회개하고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그 성도는 영과 육이 회복을 받는 축복을 입었습니다. 시험은 첫째로 우리를 겸손하게 합니다. 우리를 돌아보게 합니다. “너희는 원망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 원망은 끝없이 남을 깔보고 자신의 교만함을 집착하는 것입니다. 원망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두 번째, 하나님을 의지하게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 앞에 나아가 부르짖게 만듭니다. 시험 당한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시험당할 때 하나님께 부르짖는 자세로 돌아서면 희망이 있습니다. 시험을 당했는데도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을 줄 모르면 점점 더 악화됩니다. 그리고 버릴 것을 버리고 붙잡을 것을 붙잡아야 합니다. 육의 것을 버리고 영의 것을 잡아야 합니다. 세상 것을 버리고 살아 계신 여호와를 붙잡아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시험을 주시는 것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주님이 마지막으로 기도하러 가시는 밤에 제자들을 데리고 갔습니다. 주님이 기도하시는 그 지점에 베드로, 야고보, 요한, 세 제자를 데리고 갔습니다. 주께서 기도하시고 제자들이 있는 곳을 와 보니 졸고 있었습니다. 흔들어 깨워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다시 가서 기도하고 돌아와 보니 또 졸고 있었습니다.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구나, 깨어 기도하라” 또 깨웠습니다. 다시 나아가 기도하는데 제자들은 여전히 졸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제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것이 혹시 우리의 신앙생활 하는 자세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주일날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이 성령으로 우리에게 찾아오십니다. 주일날은 내가 깨어 있는 것 같은데 평일은 내가 졸고 있지 않는가? 주님이 오셔서 깨울 때는 깨는데 주님 가시고 나면 또 졸고 있는 제자들의 모습이 오늘 우리 신앙생활의 자화상이 아닌가? 우리가 하나님을 얼마나 실제적으로 의지하고 사는가? ‘나는 하나님과 멀어지면 한순간도 견디지 못합니다’ 라는 영적인 긴장이 과연 여러분들에게 얼마나 절실합니까?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는 온갖 시험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시험은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16장 33절에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겼기 때문에 예수님과 하나된 나도 이기는 것입니다. 예수가 부활 하셨기 때문에 예수 안에서 나도 부활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성도의 영광과 축복과 영생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성도의 종착점은 영원한 영생이 보장되어 있습니다. 영원한 해피엔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