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마을지명은 우리말 고유어에서 유래하지만, 처음부터 ‘한자어’로 작명되는 경우가 있다. 성촌(成村) 당시에 특별 역할을 했던
곳이거나 특별한 시설과 사정이 있었던 곳이다. '관아, 역원, 방축, 防城, 창고, 서원' 등이 있었을 수 있다.
- 저수지 시설 방축(防築), 축내(築內), 축동(築洞) 그 마을 이름에 '소 축(丑)' 자가
있다하여 "뒷산 형국이 소(牛) 형국이다"는 식으로 풀이할 일이 아니다. 축(築) 대신에 더 편한 丑을 쓴 것에 불과하다. 그 마을에
관아(官衙), 방성(防城) 역마(驛馬) 용도의 저수시설 또는 방죽 등이 있다. 그 防築리 안쪽을 '內洞, 內村, 안골, 골안'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이런 현상은 전국적으로 나타난다. 장흥읍 築內(벽사역), 대덕읍 신월3구 築內, 장평면 築內, 부산면 내안1구 防築 마을 등이
그러하다. 단 부산 내안(內鞍)마을의 안(鞍)은 말안장을 지칭함을 구별해야 한다.
- 치소(治所) 곁에 있는 마을 방촌(傍村) 어떤 治所가 있던 곳의 '옆(곁) 마을'을 가리킨다. '곁
傍'자를 쓴다. 바꾸어 말하면, 傍村 마을 가까이에 治所가 있었음을 말해준다. 또 治所 부근이 확장되면서 分洞 파생된 마을로도 볼 수
있겠다. ‘장흥읍성 방촌(傍村), 관산(고읍방) 방촌(傍村), 유치 오동안 방촌, 안양향 방촌’ 등이 있다. 여기서 장흥 부내방
승방촌(勝榜村), 용산면 김방정(金榜停)은 유념해야 한다, ‘곁 방(傍)’이 아닌 ‘방 방(榜)’을 쓴다.
- 관아 부속시설, 창고 마을 고실(庫實), 장내(薔內)고실(庫實) 고곡(庫谷)은 창고가 있었다는
것이고, 장내(薔內)는 '담장을 둘러친 안쪽'으로 '담안(둠안)'이라고도 한다. 여기 ‘담’이라 함은 그 무슨 '관아, 창고9곡물,
무기)' 등을 둘러싼 경계 시설을 뜻할 것. 때로는 그 ‘담(둠)’을 ‘원(圓)’으로 표기되기도 한다. 그러니 '고실, 장내'는 그 옛
마을이 행정중심지 역할을 했었음을 시사해준다. 1918년까지는 남하면사무소가 있던 용산 계산(桂山), 즉 옛 사월방(坊) 지역에 그런 사례가
있다. 계산(桂山)리는 <장흥읍지 정묘지>에 안 나오며, 나중에 ‘율리, 사월, 신기, 동백, 장내, 고실’ 등을 합한
것이다.
- 원(院)자로 된 마을 원(院)자 마을을 두고 ‘고을 원님이 있던 곳’으로 무작정 풀이하면 안
된다.역원(驛院), 서원(書院)이 있거나 또는 그 부속시설인 경우가 많다. 우리 지역 '벽사도 찰방驛'에 부속된 작은 驛院들도 해당한다.
‘장흥읍 원두(원도), 용산면 원등, 원기, 장동 만수원’의 원(院)이나, 마(馬)와 결합되는 ‘마정, 삼마정’의 정(亭)도 그런
사례이다.
- 기타 유념할 사례 ‘관덕(觀德)’은 관덕정(觀德亭)에서 유래한 것이고, 그 관덕(觀德) 출처는
예기(禮記)의 “사자소이관덕성야(射者所以觀盛德也)”이다. 전국적으로 그 사례가 많으며, 장흥읍 관덕 마을 역시 ‘벽사 찰방역 활터 관덕정’이
있었던 곳, ‘동백(冬柏)’은 동백나무가 많아 동백이라 할 수도 있지만, 우리말 ‘뒷(北,後) 잣(城, 山)’을 ‘동백(冬柏)’으로 옮겼을
가능성이 높다. ‘이곡(梨谷)’은 배나무가 많은 골짜기가 아니라, 배미(논배미)가 있는 골짜기를 말하며, ‘사곡(蛇谷) 호계(虎溪,범계)’와
통한다. ‘대덕 거정(巨井)’은 지금이야 거정(巨井) 표기이지만, 원래는 ‘큰 샘’이 아닌 ‘들판에 있는 샘’으로 한때
거정(들샘,擧井)으로 표기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