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은 만큼 베풀 줄 아는 강, 회룡포
-글. 전미경
달궈진 노을이 강물 위에 온기를 띄운다. 강은 자신의 나이테를 빛의 파장으로 새기며 말없이 흐름을 이어간다.
모래톱을 헤집으며 강의 등줄기에 추억을 얹어 낙동강을 향해 유유히 흐르고 있다.
자연의 경이로움은 멈춤 없는 감탄을 자아내기에 분주하다. 드넓은 하늘 아래 정직한 물줄기와 조화를 이룬 금빛 모래, 강의 허리를 감싸 안은 비룡산이 천혜의 경관을 자랑하고 있다. 회룡포에 서서, 눈으로 귀로 가슴을 열어 정독하지 않고선 알 수 없는 절세의 풍경이다. 여행객의 발걸음이 이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국가지정 명승 제16호인 회룡포, 한반도 최고의 물돌이로 손꼽히는 육지 속 섬마을이다. 마치 용이 마을을 크게 한 바퀴 휘감아 돌아가는 형상을 띠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물길이 수천 년을 휘감아 돌고 돈 덕에 제일의 물돌이를 자랑하고 있다. 오고 가는 세월의 무게에도 아랑곳없이 한결같은 모습으로 사연을 품은 회룡포, 세상을 향해 나아가기 전 어머니의 품속 같은 아늑함이 전해지는 곳이다. 어떤 투정을 부려도 그냥 말없이 받아 줄 것만 같은 넉넉함이 서린 회룡포는 누구에게나 마음의 고향이기도 하다.
내 것이 아닌 것을 멀리 찾아서
휘돌아 감은 그 세월이 얼마이더냐
물설고 낯설은 어느 하늘 아래
빈 배로 나 서 있구나
세월아 그 욕심 더해가는
이 세상이 싫어 싫더라
나 이제 그곳으로 돌아가련다
내 마음 받아 주는 곳
아~ 어머니 품속 같은 그곳
회룡포로 돌아가련다
(회룡포 / 고경환 곡 / 강민주 노래 / 저작물 사용허가 KOMCA 승인필)
회룡포의 노랫말이다.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원곡자의 애절한 음색이 굽이굽이 강물 위로 번져나가듯 뭉클함이 전해진다. 본향을 향한 그 마음과 마주한다. 가사를 음미하다 보면 세상 향한 모든 욕심이 한낱 물거품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강의 원형은 어디에 견주어도 손색없을 만큼 보존 상태가 양호하기에 생태계의 낙원으로 불리곤 한다. 힘들고 지칠 때마다 그저 말없이 안아주는 곳 회룡포, 낙동강 지류인 내성천이 350도 돌아나가며 그 너른 품을 내어주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회룡포는 내성천을 기반으로 하는 모든 생명체와 함께 굽이도는 물줄기를 무대로, 오늘도 쉼 없이 흐르고 또 흐른다. 생명의 근간이 되는 모래톱은 강을 모태로 살아가는 생명체의 안식처로서 그 역할을 담당해 왔기에 모래가 사라져가는 지금의 현실에 비추어보면 회룡포 최고의 자랑이기도 하다. 기후변화와 환경오염이 증가하는 가운데 드넓게 펼쳐진 모래톱은 그 존재만으로도 보물적 가치가 충분하다고 볼 수 있다. 익숙한 것이 편안한 이유는 늘 보아왔던, 그래서 앞으로도 그 모습이 더 오래도록 간직될 거라는 기대 때문일 것이다.
강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강의 유속에 더해진 고단한 생의 통증을 만나게 된다. 세상의 시끄러운 소리가 황톳빛으로 물들어 갈 때 자정 능력이 되기까지의 기다림은 참기 힘든 절제의 시간이었다. 물살의 리듬은 듣기에 편안한 음정으로 거듭나고자 쉼 없이 자신을 연마하며 쉼표를 찍고 붙임줄을 이어갔을 터, 진리를 위한 그 길은 순한 흐름을 위해 어제에 이어 오늘도 분주히 걸음을 옮기고 있다.
열린 시간 앞에는 늘 기다림이 먼저였다. 소용돌이치는 세상을 견디지 못해 아파하고 좌절하는 동안 강물은 스스로 지탱할 만큼만 길을 열고 나머지는 순리에 몸을 맡겼다. 최고의 화음은 자신의 소리를 다지고 걸러내는 작업이다. 아무리 뛰어난 음이라도 혼자만으로는 화음을 이룰 수 없기에 강은 양어깨에 짊어진 무게를 내려놓으며 다듬어지는 훈련으로 자신을 매만지곤 했다. 그리고 천상의 소리를 만들어냈다. 언제 어느 때 찾아가도 넉넉함으로 다가오는 회룡포, 품은 만큼 베풀 줄 아는 강의 이력이다.
넉넉한 젖줄에 기대어, 모래를 서식지로 살아가는 수많은 생명체와 마주한다. 자연은 즐기는 자의 몫인 만큼 가슴에 품는 대로 자신의 것이 되나 보다. 물길 따라 헤엄쳐나가는 물고기 떼를 한참이나 넋 놓고 들여다본다. 혼을 다해 물살을 가르는 고기 떼다. 두 손으로 잽싸게 그 물고기를 움켜쥐지만, 손아귀에 들어오는 건 아무것도 없다. 눈으로 귀로 가슴에 담으면 될 일을 괜한 욕심을 부렸나 보다.
작은 물고기의 몸짓에서조차 삶의 이치를 배운다. 남의 것을 탐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길만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이다. 우리의 삶 역시 욕심대로 다 채워갈 수 없음은 비우고 내려놓기와의 조율 때문일 것이다. 공수래공수거,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는 생인 것을...
강물 위를 가로지르는 뿅뿅다리에 오른다. 강의 흐름을 가감 없이 몸으로 느끼는 현재진행형과 마주한다. 다리란 이음의 뜻도 있지만, 두 지점이 맞닿은 소통의 무대이기도 하다. 섬과 육지를 잇고, 사람과 자연을 잇는 접점, 회룡포를 바라보며 함께 호흡하는 순간이다. 강은 세상 변화에 빠르고 느림을 탓하는 대신 숙명에 몸을 의지할 뿐이다. 아픔만큼 성장하는 이치를 회룡포 굽이도는 강물은 흐르면서 말해주고 있다.
비룡산 중턱 회룡포 전망대인 회룡대에 올라 내성천을 바라보면 한 폭의 그림이 펼쳐진다. 강은 사계절 내내 같은 장소에서 같은 모습으로 흘러갔지만 찾아드는 발걸음은 세대를 아울러 쉼 없이 변화를 이어갔다. 회룡포 물줄기가 급변하는 세상에 저당 잡히지 않고 본연의 모습 그대로를 지켜나가고 있는 것 같아 괜스레 마음이 든든해지기도 한다.
기억도 숙성해 추억을 불러내는 것일까? 지금껏 가슴에 품어오던 무언가가 꿈틀거리듯 솟구침이 일어난다. 설렘 같기도 하고, 기다림 같기도 한 두근거림이 마음을 꽉 채운다. 누구에게나 가슴에 품어오던, 본향을 향한 그리움일 테다. 어쩌면 우리는 회룡포 굽이도는 강에서 잃어버린 고향을 만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저무는 하루를 잘라 가슴에 품어오던 강은 주변 정세에는 관심이 없는 듯 의연한 모습이다. 둥근 원을 그리며 묵묵히 제 길만을 고집하고 있다. 늘 그래왔듯 자신이 새겨놓은 물길을 향해 흐름을 이어가며 모든 걸 수용하는 눈치이다. 그 모습에는 참고 기다리는 여유도 함께 자리하고 있다. 회룡포 굽이도는 강줄기는 오만한 자의 무례를 자르고 주눅 든 이의 마음을 다독일 줄도 안다. 강물 위로 드러날 수 없었던 여린 속내, 강의 깊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일은 마음의 순화를 불러오는 일이었기에 온전한 내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가을이 시작되면서 회룡포를 찾는 이들의 발걸음이 그 수를 더하고 있다. 초록이 수고를 내려놓으며 결실을 거둬들이는 동안 함께 한 모든 것이 아름다운 계절이다. 물돌이 안, 주민이라야 고작 9가구 16명이 전부지만 지금껏 회룡포를 다녀간 걸음과 앞으로 찾아올 걸음에 관심이 가는 이유는 한국의 그랜드 캐니언으로서 자연경관을 그대로 보존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회룡포의 사계는 언제나 특별함으로 다가온다. 봄의 기운을 시작으로 왕성한 여름을 맞고, 땀의 대가로 결실을 보면서 우리의 삶 역시도 애쓴 만큼 수확을 가져올 거라는 기대를 얹는다.
그리움으로 뒤덮인 고향을 소환하고 싶다면 회룡포로 찾아올 일이다. 기억의 실타래에 매달린 추억이 한 올씩 풀어질 터, 어머니 품처럼 모든 걸 따뜻이 품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