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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1장 19-26절. 바울이 성전에서 결례를 행함
19절. 바울이 문안하고 하나님이 자기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이방 가운데서 하신 일을 낱낱이 말하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fter he had greeted them, he began to relate one by one the things which God had done among the Gentiles through his ministry.
바울이 문안하고
καὶ ἀσπασάμενος αὐτοὺς,
and having greeted them,
직역하면 ‘그가 그들에게 문안하고’란 뜻입니다.
‘문안하고’(ἀσπασάμενο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greeted) 과거에 문안한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낱낱이 말하니
ἐξηγεῖτο καθ’ ἓν ἕκαστον
he began to relate by one each
‘말하니’(ἐξηγεῖτο)는 미완료과거로서(he began to relate) 말하기 시작해서 계속 말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이 자기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이방 가운데서 하신 일을
ὧν ἐποίησεν ὁ Θεὸς ἐν τοῖς ἔθνεσιν διὰ τῆς διακονίας αὐτοῦ.
the things did the God among the gentiles through the ministry of him
‘하신’(ἐποίησεν)은 부정과거로서(did) 과거에 행하신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1. 바울이 문안하고
바울은 불신 유대인들에게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에게도 문안 인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살아왔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이 25년 전에 예루살렘 교인들을 심하게 핍박했고, 이방인에게 전도한 다음에 할례와 유대인의 규례(정결 의식과 절기와 성전 제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주장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바울이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구제 헌금을 가지고 왔기 때문에, 예루살렘 교인들과 장로들까지도 만나서 반갑게 문안 인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실로 감개무량한 일이었습니다.
이처럼 사랑의 선물(구제 헌금)은 원수 된 관계를 화목하게 만드는 역할을 했습니다.
마치 이것은 딸을 도적질해간 사위가 장인어른에게 집 한 채를 사드리니까 25년 만에 장인이 인사를 받아주고 사위로 인정해주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구제 헌금을 통해서 예루살렘 교회 장로들에게 예수 믿는 사람이고 또 복음 전도자로 인정을 받은 셈입니다.
이처럼 예루살렘 교회 장로들이 바울의 문안 인사를 받아준 것은 이제야 바울을 핍박자가 아닌 형제로 용서해주고, 받아준다는 의미입니다.
과거에 얼마나 바울의 핍박에 대한 원한이 사무쳤으면, 25년 후에야 바울을 용서하고 형제로 받아주었겠습니까?
이처럼 아무리 예수님을 믿었지만, 극심한 박해에 대해서는 용서하고 받아주기가 쉽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면 손양원 목사님이 아들들을 죽인 공산당을 용서하고 양자 삼은 것은 정말 사랑의 원자탄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원수 된 우리를 이렇게 용서하시고 사랑하셨습니다.
2. 하나님이 자기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이방 가운데서 하신 일을 낱낱이 말하니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 장로들에게 과거의 핍박 죄를 용서받고, 장로들과 동일하게 예수 믿는 신자로 인정을 받자, 곧바로 하나님이 자기를 통해서 이방인들을 예수 믿게 하고, 또 많은 이방인 교회를 설립하게 하신 사건들을 낱낱이 보고 했습니다.
즉 1차 전도 여행을 통해서 갈라디아 지방의 교회들인 구브로 교회, 비시디아 안디옥 교회, 이고니온 교회, 루스드라 교회, 더베 교회를 설립하신 사건들을 보고 했습니다.
그러나 1차 전도를 통해서 교회들이 설립된 것은 이미 사도행전 15장 4절에서 보고를 받아서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2차 전도 여행을 통해서 빌립보 교회, 데살로니가 교회, 베뢰아 교회, 아덴 교회, 고린도 교회, 겐그레아 교회를 설립하게 하신 사건들을 보고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2차 선교의 결과도 이미 예루살렘 교회에서 알고서, 고린도 교회에 게바파를 파송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은 사도행전 18장 22절에서 2차 전도 여행을 마치면서 가이사랴에 가서 예루살렘 교회의 안부를 물었기 때문에, 이미 예루살렘 교회도 간접적으로 바울의 2차 선교 결과를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3차 선교 여행을 통해서 하나님이 에베소에 전도하게 하시고, 에베소 교회를 설립하시며, 놀라운 표적들을 나타내신 사건에 대해서는 예루살렘 교회 장로들이 바울을 통해서 처음 들었을 것입니다.
아무튼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사역을 통해서 이방인들을 예수 믿게 하고, 많은 교회들을 설립하게 하신 사건들을 직접 생생하게 예루살렘 교회 장로들에게 간증 보고를 했습니다.
이 보고를 들은 예루살렘 교회 장로들은 처음에 오순절 날 성령께서 임하시고 예루살렘에 놀라운 전도의 역사를 일으키신 과거의 체험들을 기억하면서, 하나님이 이방인들도 구원 얻는 회개 주신 것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이러한 바울의 간증 보고는 예루살렘 교회 장로들이 더 이상 이방인 교인들에게 할례를 받게 하거나 율법의 규례를 지키라고 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서 바울파와 반바울파의 대립 문제를 구제 헌금과 바울의 간증을 통해서 해결하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입니다.
이런 구제 헌금이 아니었다면, 바울이 예루살렘 교회 장로들에게 이러한 이방인 전도의 간증 설교를 할 기회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절호의 찬스를 마련하기 위해서 바울은 이방인 교회들로부터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구제 헌금을 모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바울의 간증 설교는 유대인들이 섬기고 있는 하나님이 바로 이방인을 구원해주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위대한 설교였습니다.
얼마 전에도 미국과 같이 흑백 차별이 심한 곳에서는 백인들이 믿는 하나님은 하얀 하나님이고, 흑인들이 믿는 하나님은 검은 하나님일 것이라고 극단적인 차별을 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구제 헌금과 생생한 간증 설교를 통해서 예루살렘 교회의 장로들은 드디어 자기들을 구원해주신 하나님이 바로 개 같은 이방인들도 구원해주신 하나님인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교회의 장로들은 바울의 간증 보고를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20절. 그들이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바울더러 이르되 형제여 그대도 보는 바에 유대인 중에 믿는 자 수만 명이 있으니 다 율법에 열성을 가진 자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when they heard it they began glorifying God; and they said to him, "You see, brother, how many thousands there are among the Jews of those who have believed, and they are all zealous for the Law;
그들이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οἱ δὲ ἀκούσαντες, ἐδόξαζον τὸν Θεόν,
those then having heard, began glorifying the God
‘듣고’(ἀκούσαντε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heard) 확실히 들은 과거의 사실을 가리킵니다.
‘영광 돌리고’(ἐδόξαζον)는 미완료과거로서(began glorifying) 영광 돌리기 시작해서 계속 영광 돌리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바울더러 이르되
εἶπάν τε αὐτῷ
they said then to him
직역하면 ‘그들이 그에게 말했다’는 뜻입니다.
‘이르되’(εἶπάν)는 부정과거로서(they said) 그들이 확실하게 말한 모습을 가리킵니다.
형제여 그대도 보는 바에
Θεωρεῖς, ἀδελφέ,
you see brother
‘보는 바에’(Θεωρεῖς)는 현재형입니다(you see).
유대인 중에 믿는 자 수만 명이 있으니
πόσαι μυριάδες εἰσὶν ἐν τοῖς Ἰουδαίοις τῶν πεπιστευκότων,
how many myriads there are among the Jews of the having believed
‘믿는’(πεπιστευκότων)은 완료분사로서(having believed) 이미 믿은 것을 가리킵니다.
‘있으니’(εἰσὶν)는 현재형입니다(there are).
다 율법에 열성을 가진 자라.
καὶ πάντες ζηλωταὶ τοῦ νόμου ὑπάρχουσιν·
and all zealous ones for the law are
여기 동사(ὑπάρχουσιν)는 현재형입니다(are).
1. 그들이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1) 예루살렘 교회 장로들은 바울의 이방인 선교 보고를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전에는 바울의 전도사역을 마치 반율법적인 사역처럼 여겼던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이 하나님이 바울의 전도사역을 통해서 예루살렘 교회의 유대인들처럼 이방인들도 회개와 중생의 은혜 주신 것을 깨닫고, 바울과 이방인의 하나님이 예루살렘 교회의 하나님과 동일한 하나님인 줄 인정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사실 유대인들은 요나처럼 유대인들만 하나님의 백성이고, 이방인들은 더러운 개처럼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사마리아인들과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바울의 선교 보고를 듣고, 하나님이 이방인에게도 구원 얻는 믿음 주신 것을 깨닫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고정관념을 깨뜨린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교회 장로들은 이방인 교회로부터 사랑의 구제 헌금을 받고, 또 바울의 생생한 선교 보고를 듣고서, 이방인은 절대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렸던 것입니다.
(2) 그러나 이런 고정관념을 생각 속에서 깨뜨린다는 것과 실제 생활 속에서 철저하게 변화시켜 나간다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 명절 때 조상에게 제사 지내는 것이 우상숭배라는 것을 머리로는 잘 알지만, 실제로 가족과 친척들 사이에서 제사 때 절을 하고, 제사에 참여하는 성도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성도들은 제사 때 절하면서 속으로는 하나님께 절한다고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새벽예배 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실제로는 밤에 늦게 자는 습관 때문에 새벽에 못 나오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또한 술 담배를 끊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실제로 술 담배 습관을 못 끊습니다.
뿐만 아니라 원수도 사랑하고 모든 사람과 화목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실제로는 헐뜯고 미워하는 것을 많이 봅니다.
이처럼 고정관념을 깨뜨린다는 것이 생각으로 인정하는 것과 실제 생활 속에서 변화를 일으키는 것과는 큰 차이가 납니다.
그래서 야고보 장로는 야고보서에서 믿음만 가지고는 안 되고, 실제 행위로 실천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예컨대 굶주린 형제를 보고 도와주어야 하겠다는 생각만 해서는 안 되고, 실제로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야고보서 2:14-17.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이처럼 마음에 믿음을 갖는 것과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3) 그래서 예루살렘 교회 장로들은 바울의 선교 간증을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지만, 실제로는 율법주의자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성전에 가서 결례 제사를 행하라는 타협안을 바울에게 제시했습니다.
즉 자기들은 받아주겠지만, 과격한 율법주의자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성전에 가서 결례 제사를 지내라고 한 것입니다.
이것은 생각으로 고정관념을 깨뜨렸지만, 실생활에서 고정관념을 바꾸지 못한 타협주의였습니다.
2. 바울더러 이르되 형제여 그대도 보는 바에 유대인 중에 믿는 자 수만 명이 있으니 다 율법에 열성을 가진 자라
예루살렘 교회 장로들이 바울에게 예루살렘 교인들 중에 율법에 열성적인 신자들이 많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장로들은 이 율법주의 신자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바울에게 성전에 가서 구약식으로 결례 제사를 드리라고 권했습니다.
이것은 장로들이 복음 진리를 확실히 깨닫지 못한 타협주의였습니다.
정말 장로들이 바울이 전한 복음 진리를 올바로 깨닫고, 이방인들도 율법이나 할례나 결례 제사가 필요 없이 오직 믿음으로 완전한 구원 얻는 것을 확신했다면, 예루살렘 교회의 율법주의자들을 설득했어야 옳습니다.
그런데 장로들은 바울이 전한 복음주의 신앙을 인정하면서 이방인에게 구원을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으면서도, 자신들이 지도하는 예루살렘 교회 율법주의 신자들을 설득하지 않고, 오히려 바울에게 타협적으로 율법주의자들에게 잘 보이라고 했습니다.
원래 바울은 이런 율법주의자들에 대한 타협적인 태도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책망을 했습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2장 11-14절에 말씀한 대로 베드로가 안디옥 교회에서 이방인 신자들과 식사하고 있다가, 예루살렘 교회에서 율법주의 신자들이 오니까, 베드로가 안디옥 교회 이방인 신자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떠나가는 것을 보고, 바울이 베드로를 여지없이 책망했습니다.
이렇게 타협주의에 대해서 여지없이 책망했던 바울이 예루살렘 교회의 장로들에게 대해서는 단호하지 못하고, 타협하는 나약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바울의 모습은 신앙적으로 타협했다기보다는, 예루살렘 교회와 이방인 교회가 화목하도록 하기 위한 일종의 ‘포용 주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바울은 복음을 전할 때,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이방인에게는 이방인처럼 처신했습니다.
고린도전서 9:21.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이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그런데 이처럼 바울이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을 얻기 위해서 성전에 가서 결례 제사를 드렸는데, 문제는 불신 유대인들이 오해해서 바울이 이방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간 줄로 착각해서 바울을 때리고 죽이려고 데모를 일으켰습니다.
21절. 네가 이방에 있는 모든 유대인을 가르치되 모세를 배반하고 아들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말고 또 관습을 지키지 말라 한다 함을 그들이 들었도다.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they have been told about you, that you are teaching all the Jews who are among the Gentiles to forsake Moses, telling them not to circumcise their children nor to walk according to the customs.
그들이 들었도다.
κατηχήθησαν δὲ περὶ σοῦ
they have been informed now about you
직역하면 ‘그들이 너에 관해서 들었도다’는 뜻입니다.
‘들었도다’(κατηχήθησαν)는 부정과거 수동태로서(they have been informed) 과거에 확실히 들은 사실을 가리킵니다.
네가---가르치되 모세를 배반하고
ὅτι ἀποστασίαν διδάσκεις ἀπὸ Μωϋσέως
that apostasy you teach from Moses
직역하면 ‘모세로부터 배교를 네가 가르친다는 것을’ (그들이 들었도다)이란 뜻입니다.
‘네가 가르친다’(διδάσκεις)는 현재형으로서(you teach) 항상 가르치고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네가 이방에 있는 모든 유대인을
τοὺς κατὰ τὰ ἔθνη πάντας Ἰουδαίους,
those among the gentiles all Jews
아들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말고
λέγων μὴ περιτέμνειν αὐτοὺς τὰ τέκνα
telling not to circumcise them the children
직역하면 ‘아들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말라고 말하면서’ (가르치는 것을)란 뜻입니다.
‘할례를 행하지 말라고’에서 동사(περιτέμνειν)는 현재 부정사형 동사이고(to circumcise), ‘말하면서’(λέγων)는 현재분사입니다(telling).
또 관습을 지키지 말라 한다 함을
μηδὲ τοῖς ἔθεσιν περιπατεῖν.
nor in the customs to walk
직역하면 ‘관습 가운데서 살지 말라고’란 뜻입니다.
‘살지 말라고’에서 동사(περιπατεῖν)는 현재 부정사형 동사입니다(to walk).
1. 바울이 이방인 지역에 가서 전도할 때, 먼저 유대인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에게 전도했습니다.
(1) 그런데 바울이 가는 곳마다 유대인들은 바울의 복음 전도를 배척하고, 바울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즉 1차 전도 여행 때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유대인들이 반대했고, 이고니온에서 돌을 들어 치려고 했고, 루스드라에서는 유대인들이 바울에게 돌을 던져 죽었다가 살아났습니다.
2차 전도 여행 때도 데살로니가에서 유대인들이 죽이려 하니까 베뢰아로 도망갔는데, 베뢰아까지 와서 죽이려고 하니까 밤에 도망을 갔으며, 고린도에서는 유대인들이 바울을 총독에게 고소하여 죽이려고 했습니다.
3차 전도 여행 때는 에베소에서 유대인들이 아데미 우상숭배자들과 합세하여 데모하고 바울을 죽이려고 했으나, 서기장의 중재로 살아났습니다.
이처럼 바울은 가는 곳마다 유대인들에게 배척을 받고 죽음의 위협을 당했습니다.
이렇게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배척당한 이유는 바울이 예수만 믿으면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유대교인들처럼 할례받을 필요가 없고, 모세의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고, 성전 제사나 절기나 정결 규례들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불신 유대인들의 반대가 예루살렘 교회의 율법주의 성도들에게까지 소문이 들렸다는 것입니다.
이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을 믿었어도 유대교인들처럼 할례나 모세 율법이나 성전 제사나 절기나 결례를 다 지키는 성도들이었습니다.
단지 불신 유대인들과 다른 것은 예수님이 바로 유대인들이 기다리던 메시아라고 믿은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유대교와 기독교는 완전히 다른 것으로서, 예수님을 믿은 성도들에게는 유대교의 핵심 교리인 할례나 모세 율법이나 성전 제사나 절기나 정결 규례가 필요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이미 십자가 보혈로 모든 죄를 용서하셨기 때문에, 예수님만 믿고 말씀과 기도로 거룩한 생활을 하면 되는 것이지, 무슨 성전 제사나 할례나 모세 율법이나 절기나 정결 규례가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예루살렘 교회의 유대인 신자들은 유대교와 기독교의 중간 ‘혼합주의’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모세를 최고로 생각했지만 사실 바울은 모세보다 더 위대한 사도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모세가 전한 규례를 변경시킨다고 하니까, 유대인들은 모세를 우상시해서 모세를 무시한 바울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바울은 모세보다 더 위대한 사도입니다.
심지어 예수님도 성전을 헐고 모세의 규례를 고친다고 했다는 비방과 고소를 당했습니다.
사도행전 6:14. 그의 말에 이 나사렛 예수가 이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 함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거늘
(2) 그러나 유대교인들이 비방하는 말이 과장된 것이기는 하지만, 실상 옳은 말이기도 합니다.
즉 예수님이 당신의 피로써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으므로, 더 이상 성전 제사가 필요 없고, 또 모세의 율법으로 정죄하는 유대교를 예수님이 속죄함과 정죄에서 해방받는 구원의 길을 제시하셨으므로, 율법의 정죄를 고친다는 말도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닙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성전을 헐고, 모세의 율법을 고친다는 말이나, 바울이 21장 28절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율법과 성전을 비방한다는 말이 과장된 말이기는 하지만 올바른 말이기도 합니다.
22절. 그러면 어찌할꼬. 그들이 필연 그대가 온 것을 들으리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What, then, is to be done? They will certainly hear that you have come.
그러면 어찌할꼬.
τί οὖν ἐστιν;
what then is it?
한글 번역은 좋은 번역입니다.
여기 동사(ἐστιν)는 현재형입니다(is it).
그들이 필연 그대가 온 것을 들으리니
πάντως ἀκούσονται ὅτι ἐλήλυθας.
certainly they will hear that you have come
‘그대가 온 것을’에서 동사(ἐλήλυθας)는 완료형으로서(you have come) 이미 온 것을 가리키고, ‘그들이 들으리니’(ἀκούσονται)는 미래형입니다(they will hear).
1. 바울이 예루살렘에 도착한 시기가 오순절 절기입니다 (행 20:16).
(1) 그래서 세계 각처에서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모여들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불신 유대인들이 바울에게 반유대교주의자라고 비방하는 말을 예루살렘 교회의 율법주의 신자들도 들을 것이란 말입니다.
자기들끼리는 불신 유대인과 교인 유대인들이 서로 친척이고 친구이기 때문입니다.
하여튼 예루살렘 교회의 율법주의자들은 예수 믿는 것만 다르지, 불신 유대인들과 차이가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2) 그렇기 때문에 불신 유대인들처럼 예루살렘 교회의 율법주의자들도 바울을 못 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교회의 야고보 장로와 지도자 장로들은 바울에게 율법주의자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결례를 행하라고 타협안을 제시했던 것입니다.
23절. 우리가 말하는 이대로 하라. 서원한 네 사람이 우리에게 있으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Therefore do this that we tell you. We have four men who are under a vow;
우리가 말하는 이대로 하라.
τοῦτο οὖν ποίησον, ὅ σοι λέγομεν·
this therefore do, what to you we say
직역하면 ‘그러므로 너는 우리가 너에게 말하는 이대로 하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말한’(λέγομεν)는 현재형이고(we say), ‘하라’(ποίησον)는 부정과거 명령형으로서(do) 단호히 행하라는 뜻입니다.
네 사람이 우리에게 있으니
εἰσὶν ἡμῖν ἄνδρες τέσσαρες εὐχὴν ἔχοντες ἐφ’ ἑαυτῶν·
there are with us men four
여기 동사(εἰσὶν)는 현재형입니다(there are).
서원한
εὐχὴν ἔχοντες ἐφ’ ἑαυτῶν·
vow having on themselves
직역하면 ‘자신에 대한 서원을 가지고 있는’이란 뜻입니다.
여기 동사(ἔχοντες)는 현재분사입니다(having).
1. 야고보와 장로들은 바울에게 율법주의자들에게 잘 보이려는 타협안을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실상 이 때 장로들이 바울이 전하는 은혜의 복음을 정말 철저하게 깨달았다면,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답게 율법주의 교인들을 설득했어야 옳습니다.
그런데 머리로 잠시 은혜받는 것과 실생활에서 습관을 바꾸는 것은 크게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머리와 가슴은 거리가 30센티밖에 안 되지만, 30년만큼 거리가 멀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유교의 제사 문제도 신자들은 제사가 잘못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실제로는 제사 때 절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새벽기도가 좋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실제로 밤에 늦게 자고 새벽에 안 나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또한 술 담배가 나쁜 것인 줄 잘 알면서도 실제로 술 담배를 끊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리고 사람들과 원수 지지 않고 화목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실제로 만나면 화목하지 못하고 원수 시 하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이렇게 아는 것과 실제로 행동하는 것은 큰 차이가 납니다.
그래서 야고보서에는 믿음을 행위로 실천할 때 참된 믿음인 것을 입증한다고 강조했습니다.
2. 서원한 네 사람이 우리에게 있으니
예루살렘 교회에는 아직도 나실인 서원을 하고 결례를 행하려는 사람들이 4명이나 있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믿고 거룩한 생활을 하는 신약시대 교인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예루살렘 교회에는 유대교의 관습을 그대로 지키는 신자들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이 나실인의 서원은 신앙생활을 잘해보고자 하는 사람이 구약시대의 삼손처럼 나실인 서원을 해서 술을 먹지 않고, 머리털을 깎지 않고, 시체를 만지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헌신한 사람으로 살고자 서약하는 것을 말합니다.
삼손뿐만 아니라, 사무엘도 그랬고, 세례 요한도 그랬습니다.
사무엘상 1:11. 한나가 서원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아들을 주시면 그의 평생에 삭도를 머리에 대지 않겠나이다.
이처럼 일정 기간 나실인 서원을 하면, 시작할 때 머리를 깎아서 제단에 드렸고, 끝날 때 다시 머리털을 밀어서 제단에 바쳤습니다.
뿐만 아니라 머리털을 바칠 때, 양 세 마리를 드려서 하나는 속죄 제물로, 하나는 번제물로, 하나는 화목제물로 드렸습니다.
그러면서 머리털은 화목제물을 드릴 때, 불에 태웠던 것입니다.
24절. 그들을 데리고 함께 결례를 행하고 그들을 위하여 비용을 내어 머리를 깎게 하라. 그러면 모든 사람이 그대에 대하여 들은 것이 사실이 아니고 그대도 율법을 지켜 행하는 줄로 알 것이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take them and purify yourself along with them, and pay their expenses so that they may shave their heads; and all will know that there is nothing to the things which they have been told about you, but that you yourself also walk orderly, keeping the Law.
그들을 데리고
τούτους παραλαβὼν
these (men) having taken
‘데리고’(παραλαβὼν)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taken) 확실히 함께 데리고 가는 것을 가리킵니다.
함께 결례를 행하고
ἁγνίσθητι σὺν αὐτοῖς,
be purified with them
‘결례를 행하고’(ἁγνίσθητι)는 부정과거 명령형 수동태로서(be purified) 직역하면 ‘그들과 함께 정결케 되어라’는 뜻입니다.
그들을 위하여 비용을 내어
καὶ δαπάνησον ἐπ’ αὐτοῖς
and bear expense for them
‘비용을 내어’(δαπάνησον)도 부정과거 명령형으로서(bear expense) 단호하게 비용을 부담하라는 말입니다.
머리를 깎게 하라.
ἵνα ξυρήσονται τὴν κεφαλήν,
so that they will shave the head
직역하면 ‘그들이 머리를 깎을 수 있도록’ (비용을 대라)는 뜻입니다.
여기 동사(ξυρήσονται)는 미래형입니다(they will shave).
그러면 모든 사람이 그대에 대하여 들은 것이 사실이 아니고--알 것이라.
καὶ γνώσονται πάντες ὅτι ὧν κατήχηνται περὶ σοῦ οὐδέν ἐστιν,
and they will know all that of which they have been informed about you nothing is
직역하면 ‘그러면 그들이 너에 대해서 들은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을 그들이 알 것이다’는 뜻입니다.
‘들은’(κατήχηνται)은 완료 수동태로서(they have been informed) 이미 들은 것을 가리키고, ‘사실이 아니고’에서 동사(ἐστιν)는 현재형이고(is), ‘그들이 알 것이다’(γνώσονται)는 미래형입니다(they will know).
그대도 율법을 지켜 행하는 줄로.
ἀλλὰ στοιχεῖς καὶ αὐτὸς, φυλάσσων τὸν νόμον.
but you walk orderly also yourself, keeping the law
직역하면 ‘그대도 역시 율법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것을’ (그들이 알 것이라)는 뜻입니다.
‘지켜’(φυλάσσων)는 현재분사이고(keeping), ‘행하는’(στοιχεῖς)은 현재형이고(you walk orderly) 원형(στοιχέω)은 ‘정렬되어 있다, 규칙대로 걸어가다’(to be in rows, fig. to walk by rule)란 뜻입니다.
1. 그들을 데리고 함께 결례를 행하고 그들을 위하여 비용을 내어 머리를 깎게 하라
(1) 예루살렘 교회 장로들은 바울에게 4명의 나실인 서원자들을 데리고 가서 바울이 결례 비용을 대라는 것입니다.
즉 네 사람의 머리털을 빡빡 미는 데 드는 비용과 양 3마리씩 5명(바울을 포함)을 위해서 속죄제, 번제, 화목제를 드릴 비용을 대라는 것입니다.
이 비용은 900만 원은 되었습니다. (2024년 기준)
그런데 당시 유대인들은 제사 비용 대는 것을 크게 선한 일로 칭찬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에 바울이 유대교의 규례를 비방한다는 오해를 풀기 위해서 이런 결례 제사를 바울이 실천하고, 또 제사 비용까지 대납하면, 불신 유대인이나 율법주의 교인들이 바울에 대한 오해를 해소할 것이란 타협안이었습니다.
(2) 그러나 이런 타협안은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려는 어리석은 촌극에 불과했습니다.
워낙 바울이 세계 각처에서 유대교를 비방하고 다녔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성전에서 결례 제사를 행한다고 유대인들의 깊은 오해가 해소될 리 만무했습니다.
오히려 바울이 평소에 하지 않는 성전 제사 행위를 하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바울이 고의적으로 성전을 모독하는 것으로 오해를 해서 바울을 죽이려고 폭동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3)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일정하게 행동을 해야지, 평소에 하지 않던 행동을 하면, 사람들에게 오해를 사게 됩니다.
예를 들면 평소에 한 번도 집안 청소를 하지 않던 딸이 어쩌다 청소를 하면, 뭐 돈 달라고 그러냐고 이상하게 오해를 사게 됩니다.
그리고 평소에 항상 늦게 들어오던 남편이 어쩌다 일찍 들어오면, 오히려 어디가 아픈가 하거나 해가 서쪽에서 떴다고 말합니다.
교회에서도 평소에 새벽예배에 한 번도 안 빠지던 분이 새벽에 안 나오면, 어디가 아픈가 하고 걱정을 합니다.
반대로 평소에 새벽예배에 한 번도 안 나오던 사람이 갑자기 새벽예배에 나오면 가정에 무슨 어려운 일이 생겼나 오히려 걱정을 합니다.
이처럼 바울이 평소에는 유대교를 비난했었는데, 갑자기 성전에 가서 결례 제사들을 행한다고 하니까, 유대인들이 바울을 오해해서 바울이 성전을 모독하려고 그런다고 폭동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2. 그러면 모든 사람이 그대에 대하여 들은 것이 사실이 아니고 그대도 율법을 지켜 행하는 줄로 알 것이라
(1) 당시에 유대인들은 신 불신을 막론하고 바울이 성전과 율법을 무시한다고 화가 나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루살렘 교회 장로들은 바울에게 성전에 가서 율법대로 결례를 행하는 모습을 보여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에 대한 비방이 사실이 아니고, 거짓말인 것을 알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즉 바울이 성전을 존중하고 율법을 지켜 행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타협안은 진정한 바울의 모습이 아닙니다.
즉 바울은 예수님이 성전 제사를 완성하셨고, 율법의 정죄를 예수님의 피로써 다 해결하셨다는 은혜의 복음 전도자였습니다.
이 때 바울은 장로들의 타협안을 따를 것이 아니라, 장로들에게도 예수님이 성전 제사를 완성하셨고, 율법의 정죄로부터 자유와 해방을 주셨다고 복음을 전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장로들의 타협주의에 타협하고 말았습니다.
과거에 베드로에게는 외식한다고 책망을 했던 바울인데(갈라디아 2장), 장로들에게는 타협을 했습니다.
이 장로들은 처음에 예루살렘 교회가 시작되었을 때, 오순절에 성령 받고 온갖 핍박 속에서도 불타는 열정으로 전도했던 그런 초심을 잃어버리고, 유대교인들과 타협하는 차가운 신앙으로 변질되어 버렸습니다.
오순절 때나 27년 후인 AD 57년이나 유대교인들이 위협과 핍박하는 것은 변함이 없는데, 오직 예루살렘 교회의 장로들의 신앙은 차갑게 변질되고 타협주의로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해보면, 예루살렘 교회가 유대교 사회에서 살아가려면, 이런 타협주의로 가지 않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바울마저도 이방인 교회와 예루살렘 교회의 화목을 위해서 그리고, 바울 자신을 거짓 사도라고 모함하는 율법주의자들과 화목하기 위해서 타협주의로 가고 말았습니다.
(2)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타협주의를 가만두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타협주의로 가는 바울에게 오히려 유대교인들이 폭동을 일으켜서 재판을 받게 하고, 유대교의 고위직분자들 앞에서 복음을 전하게 만드셨습니다.
25절. 주를 믿는 이방인에게는 우리가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피할 것을 결의하고 편지하였느니라 하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But concerning the Gentiles who have believed, we wrote, having decided that they should abstain from meat sacrificed to idols and from blood and from what is strangled and from fornication.“
주를 믿는 이방인에게는
περὶ δὲ τῶν πεπιστευκότων ἐθνῶν
about but those having believed of the gentiles
직역하면 ‘그러나 믿은 이방인들에게는’이란 뜻입니다.
‘믿는’(πεπιστευκότων)은 완료분사로서(having believed) 이미 믿은 것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피할 것을 결의하고 편지하였느니라 하니
ἡμεῖς ἐπεστείλαμεν, κρίναντες φυλάσσεσθαι αὐτοὺς
we wrote, having adjudged to keep from them
직역하면 ‘그들이 피하도록 결의하였고, 우리가 편지 했노라’는 뜻입니다.
‘피하도록’(φυλάσσεσθαι)은 현재 부정사형 동사이고(to keep from), ‘결의하고’(κρίναντε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adjudged) 확실하게 결의한 과거의 사실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편지했노라’에서 ‘우리가’(ἡμεῖς)가 강조되어 있고, 동사(ἐπεστείλαμεν)는 부정과거로서(wrote) 과거에 확실히 편지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τό τε εἰδωλόθυτον, καὶ αἷμα, καὶ πνικτὸν, καὶ πορνείαν.
the things both sacrificed idols, and blood, and what is strangled, and sexual immorality
1. 주를 믿는 이방인 성도들에게 4가지 사항을 결의해서 지키도록 한 것은 이미 15장 예루살렘 총회에서 결의한 내용입니다.
즉 사도행전 15장 5절에서 예루살렘 교회의 율법주의자들이 이방인 신자들에게 모세의 율법을 지키게 하고 할례를 받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바울과 바나바와 베드로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주장했습니다. (행 15:11)
그러자 회의의 회장 되는 야고보 장로가 이방인 신자들에게 할례나 율법을 강요하지 말고, 4가지 사항만 준수하게 하자고 타협안을 제시했습니다.
그런데 21장 25절에서 다시 야고보 장로는 15장 예루살렘 회의의 결의사항을 다시 반복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야고보는 이미 바울이 알고 있는 사항을 다시 반복했을까요?
그것은 예루살렘 교회가 이방인 교회들을 지도하는 위치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과거에 예루살렘 총회 때 야고보 장로 자기가 이방인 성도들에게 지시한 것처럼, 지금 바울도 야고보 장로의 지시에 따라야 한다는 것을 암시하는 말입니다.
여기서 바울은 야고보 장로에게 대항하지 못하고, 무릎을 꿇고 맙니다.
지금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서 세계 각처에 많은 교회들을 세웠고, 하나님께서 베드로보다 더 크게 표적들을 행하게 하시고, 수많은 유대교인들의 위협도 이겨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실상 예루살렘 교회의 야고보 장로와 비교도 되지 않는 위대한 사도였습니다.
복음 진리도 야고보 장로가 깨닫지 못한 깊은 진리들을 많이 알고 성경을 기록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바울은 갈라디아서, 데살로니가 전후서, 고린도 전후서, 로마서를 기록한 위대한 사도였습니다.
그런데 감히 야고보 장로가 바울에게 결례를 행하라고 지시하고 있습니다.
실상 바울은 모세보다도 위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요 예수님의 친동생인 야고보 장로에게 눌려버립니다.
이 때 바울은 베드로를 책망하던 그 기세는 어디로 가버리고, 야고보 장로에게 굴복을 당하고 맙니다.
참 안타까운 장면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바울의 굴복이라고 하기보다는 바울이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를 얻고자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이방인에게는 이방인처럼 대하는 바울의 ‘포용주의’(관용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9:18-24.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에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이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26절. 바울이 이 사람들을 데리고 이튿날 그들과 함께 결례를 행하고 성전에 들어가서 각 사람을 위하여 제사 드릴 때까지의 결례 기간이 만기된 것을 신고하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Then Paul took the men, and the next day, purifying himself along with them, went into the temple giving notice of the completion of the days of purification, until the sacrifice was offered for each one of them.
바울이 이 사람들을 데리고
τότε ὁ Παῦλος, παραλαβὼν τοὺς ἄνδρας,
then the Paul, having taken the men,
‘데리고’(παραλαβὼν)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taken) 데리고 간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이튿날 그들과 함께 결례를 행하고
τῇ ἐχομένῃ ἡμέρᾳ σὺν αὐτοῖς, ἁγνισθεὶς,
on the following day with them, having been purified,
‘결례를 행하고’(ἁγνισθεὶς)는 부정과거 분사 수동태로서(having been purified) 결례를 행한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성전에 들어가서
εἰσῄει εἰς τὸ ἱερόν,
he was entering into the temple
‘들어가서’(εἰσῄει)는 미완료과거로서(he was entering) 성전에 걸어 들어가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결례 기간이 만기된 것을 신고하니라.
διαγγέλλων τὴν ἐκπλήρωσιν τῶν ἡμερῶν τοῦ ἁγνισμοῦ,
declaring the fulfillment of the days of the purification
직역하면 ‘결례의 날들이 완성된 것을 선언하면서’란 뜻입니다.
‘신고하니라’(διαγγέλλων)는 현재분사로서(declaring), 원형(διαγγέλλω)는 ‘널리 선포하다, 소식을 전파하다, 알리다’(announce throughout (the world), spread the news of, give notice of)는 뜻입니다.
각 사람을 위하여 제사 드릴 때까지의
ἕως οὗ προσηνέχθη ὑπὲρ ἑνὸς ἑκάστου αὐτῶν ἡ προσφορά.
until that was offered for one each of them the sacrifice
직역하면 ‘그들 중 각 사람을 위해서 제사가 드려진 때까지’란 뜻입니다.
‘드려진’(προσηνέχθη)은 부정과거 수동태로서(was offered) 과거에 제사가 확실히 드려진 것을 가리키고, 좀 더 풀어서 말하면 ‘결례의 날들이 완성된 것을 선포하고, 마침내 제사를 드려서 마쳤다’는 뜻입니다.
즉 여기서 부정과거는 최종 결과를 완성했다는 뜻입니다( The aorist contemplates the final result). Linguistic Key. 321.
1. 바울이 야고보 장로의 말을 듣고 바로 이튿날 나실인 서원을 한 예루살렘 교회 성도 네 사람을 데리고, 성전에 가서 결례를 행했습니다.
즉 바울이 자기까지 다섯 사람의 결례 비용(약 900만원)을 대서 속죄제, 번제, 화목제를 드리고, 머리털도 제단 숯불에 태웠습니다.
(1) 결례의 만기 된 것을 고했다는 것은 나실인의 서원은 일정 기간(일주일) 이행하는데, 그 서원 기간이 끝나면, 나실인 서원을 한 사람이 성전에 가서 제사장 앞과 많은 사람 앞에서 이제 나실인 서원 기간이 끝났기 때문에, 이후에는 평민으로 살아가고 자유롭게 처신한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알린 것을 가리킵니다.
다른 사람들이 저 사람은 나실인인데, 마음대로 머리를 깎고 술도 먹고, 시체도 만진다는 비난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동안 속죄 제물과 번제물과 화목제물을 드려서 제사장이 제사를 드리게 하면 끝납니다.
이 제물은 날마다 드리는 것이 아니고, 제사장이 일주일 안에 세 가지 제사를 드리면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바울이 야고보 장로의 타협안을 듣고, 네 사람의 비용까지 드려서 결례를 시작하고, 제사장과 여러 사람들 앞에서 서원이 만기된 것을 공포하고, 일주일 동안 결례를 행하는 것까지는 잘 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3차 전도 여행 때 아시아의 에베소에서 전도했는데, 그 때 아데미 우상 숭배자들과 함께 폭동을 일으켰던(행 19:33) 유대교인들이 오순절을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왔는데, 이 사람들이 다시 바울을 죽이려고 폭동을 일으키고 맙니다.
(2) 그러므로 아무리 인간적 방법으로 타협주의로 가려고 하지만, 역사적인 사실은 숨길 수 없습니다.
진실은 밝혀집니다.
그래서 바울은 재판을 받으면서 율법주의와의 타협이 아닌 진정한 복음 신앙을 예루살렘과 가이사랴에 있는 백성들과 고관들에게 모두 전파합니다.
(3) <정결 규례>=결례
유대인의 생활 규범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정결 규례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식사 전에 팔을 씻지 않는다고 유대인들에게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혈루병 여인이 예수님의 옷 가에 손을 댐으로써 깨끗함을 얻었고, 나병환자들이 예수님께 치료를 받고 제사장에게 가서 보여서 자신의 몸이 치료되었음을 확인받았는데, 혈루병자나 나병환자나 소경이나 앉은뱅이나 귀머거리나 각종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정결 규례상 부정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10장에서 하나님은 베드로에게 환상을 보여주시면서 하나님이 모든 음식을 깨끗케 하셨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실상 레위기 11장에 나오는 부정한 음식에 대한 정결 규례가 바뀌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이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과 입에서 나오는 말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하셨습니다( 마태 15장 17절).
그리고 모든 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것으로 다 깨끗하고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진다고 했습니다.
디모데전서 4:3-5.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폐하라 할터이나 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
또한 사도행전 15장에서 예루살렘 총회는 이방인에게 정결 규례를 강요하지 말고, 간단한 4가지 정결 규례만(피음식, 제사 음식, 목매 죽인 고기, 음행) 지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사도행전 21장 26절에서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의 말을 따라서 결례를 행했습니다.
이 때 바울이 행한 결례가 무엇일까요?
네, 바울이 행한 결례는 정결 규례로서, 구약에는 여러 가지 경우에 결례를 행하라고 했습니다.
레위기 11-15장에 이 정결 규례가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즉 레위기 11장에는 부정한 음식을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쪽발 되지 않고 새김질하지 못하는 짐승은 부정하고, 날개를 가졌으나 날지 못하는 새는 부정하고, 물고기 중에 비늘과 지느러미가 없는 것은 부정하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부정한 음식을 먹지 못하고, 이것들에 접촉하면 부정하게 되어서 몸을 씻어야 한다고 정결 규정을 말씀했습니다.
레위기 12장에는 산모가 아들 딸을 낳았을 때, 한 달 혹은 두 달 부정하게 되고, 그 후에 결례를 행해야 정결하게 되었습니다.
즉 아들을 낳으면 33일 부정하고, 딸을 낳으면 66일 부정한데, 각각 결례를 행하고 일주일 후에 성전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번제로 어린양을 드리고, 속죄제로 산비둘기( 가난한 자는 집비둘기)를 드려야 했습니다.
레위기 13-14장에는 문둥병(전염성 피부병)에 대한 정결 규례가 나와 있습니다.
즉 13장은 문둥병인가 피부병인가를 진찰하는 방법이 기록되어 있고, 14장에는 정결케 하는 제사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문둥병자는 진영 밖에 나가서 살아야 하는데, 병이 나았으면, 먼저 제사장에게 가서 진찰을 통해서 확증을 받은 후, 살아있는 새 두 마리를 가지고 가서 한 마리는 흐르는 물에서 잡고, 다른 한 마리는 날려 보내면서 결례를 행하고, 그 후에 성전에 가서 어린 수양 둘과 어린 암양 하나로(가난한 사람은 어린 수양 하나와 비둘기 새끼로)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레위기 14장 43절 이하에는 가옥에 발생한 문둥병(전염성 피부병)에 대한 정결 규례가 나와 있습니다.
즉 가옥에 발생한 문둥병이 나았을 때는 두 마리의 새를 흐르는 물에 가지고 가서 하나는 잡아서 피를 가옥에 뿌리고, 하나는 날려 보내는 것으로 결례를 행했습니다.
레위기 15장에는 남자의 설정과 여자의 월경으로 인한 유출병을 정결케 하는 규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유출병자가 앉은 자리나 옷이나 만진 음식이나 뱉은 침조차도 모든 것을 부정하게 만들었습니다.
정결 규례는 7일 동안 몸과 옷을 빨아야 하고, 비둘기 두 마리를 제사장에게 가지고 가서 하나는 속죄제로 하나는 번제로 드려야 했습니다.
다만 혼자서 설정한 경우나 성관계로 설정한 경우에 정액이 묻은 남녀의 몸이나 의복은 모두 부정하기 때문에, 물로 씻어서 저녁 때까지 부정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이런 설정이나 성관계가 하나님 앞에 죄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속죄제를 드릴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월경한 여인도 그가 앉은 자리나 접촉한 모든 것이 부정하므로 물로 씻고, 저녁까지 부정한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런데 생리 기간이 지났는데도 계속 하혈을 하면, 하혈이 그친 후에도 일주일간 부정하고, 8일째는 비둘기 두 마리를 가지고 제사장에게 가서 하나는 속죄제로 하나는 번제로 드려야 정하게 되었습니다.
민수기 19장에는 시체를 만진 자의 정결 규례가 나와 있습니다.
광야에서 장정만 60만 명이고, 전체는 약 300만 명이 행진했는데, 하루에 평균 100명씩 장사를 지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체를 만진 자가 정결케 되는 규례를 주셨습니다.
즉 시체를 만진 자들은 특별하게 제조된 잿물로 정결하게 씻었습니다.
이 특별한 잿물은 암송아지와 백향목과 우슬초와 홍색실을 함께 태운 재로 만든 잿물입니다.
그래서 이 잿물을 흐르는 물과 섞어서 부정한 사람에게 뿌리면 정결하게 되었습니다.
민수기 6장에는 나실인의 정결 규례가 나와 있습니다.
즉 나실인은 서원한 기간 동안에 술을 먹지 말고, 머리털을 밀지 말고, 시체를 만지지 말아야 합니다.
만일 서원한 기간 중에 부정하게 되었으면, 7일째에 머리를 다시 밀고, 비둘기 두 마리로 제사를 드린 후에 다시 서원 기간을 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실인 서원 기간이 끝나면, 세 마리 양으로 속죄제와 번제와 화목제를 드려야 합니다.
화목제를 드릴 때는 자기 머리털을 다 깎아서 화목제 불에 태워드려야 합니다.
바울은 일찍이 사도행전 18장 18절에 겐그레아에서 나실인 서원을 하고, 머리를 깎았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21장 23-26절에서 바울은 4명의 서원자와 자기까지 5명의 나실인 서원자들의 결례 비용을 대납했습니다.
그러므로 양 3마리× 5명 = 양 15 마리(양 1마리 60만원) = 900만 원의 비용을 대납했다는 뜻입니다.
당시에 유대인 사회에서는 이런 제사 비용을 대납하면 상당히 의인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떤 경우에도 복음 진리를 위해서 타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유교나 불교나 천주교나 이슬람교나 이단들에게 타협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신앙의 자유를 누리시고, 성령님의 충만한 은혜 가운데서 날마다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