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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산악회 계획에 따라 '강산리 → 팔영산 곡강 분기점 → 선녀봉 → 성주봉 삼거리 → 1봉 유영봉 왕복 → 2봉 성주봉 → 3봉 생황봉 → 4봉 사자봉 → 5봉 오로봉 → 6봉 두류봉 → 7봉 칠성봉 → 8봉 적취봉 → 적취봉 삼거리 → 깃대봉 왕복 → 적취봉 삼거리 → 탑재 → 능가사 → 팔영산 탐방지원센터 → 주차장'의 9km 구간을 5시간 30분 동안 즐길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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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영산[八影山]
높이: 609m
위치: 전남 고흥군 점암면
여덟 개의 암봉으로 이루어진 팔영산은 1봉에서 8봉으로 이어지는 암릉 종주 산행의 묘미가 각별하며 산세가 험준하고 기암괴석이 많다. 정상에 오르면 저 멀리 대마도까지 조망되는 등 눈 앞에 펼쳐지는 다도해의 절경이 일품이다.
팔영산에는 예전에 화엄사, 송광사, 대흥사와 함께 호남 4대 사찰로 꼽히던 능가사를 비롯하여 경관이 빼어난 신선대와 강산폭포 등 명소가 많다. 남동쪽 능선 계곡에 자연휴양림이 잘 조성되어 있다.
인기 명산[86위]
아기자기한 암릉 산행지로 3~4월의 이른 봄 봄맞이 산행지로 인기 있다.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
여덟 개의 암봉으로 이루어진 산세가 험준하고 기암괴석이 많으며 조망이 좋고 도립공원으로 지정(1998년)된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되었다.
예전에 화엄사, 송광사, 대흥사와 함께 호남 4대 사찰로 꼽히던 능가사가 있음. 신선대, 강산폭포 및 자연휴양림이 있음. 정상에서 대마도까지 보일 정도로 조망이 좋다. - 한국의 산하
2023년 8월의 마지막 날인 31일 목요일에는 전남 고흥의 ‘팔영산’을 다녀오기로 했다. 애초 이날은 같은 산악회의 오지 팀과 밀양의 ‘억산’을 오를 예정이었으나, 다른 산보다 큰 비용을 들여 오를 만한 산인가 계속 의문이 들어, 없었던 일로 했다. 그리고 그 대안을, 같은 날 동쪽의 밀양이 아니라 서쪽의 고흥에서 찾았다. 물론 비용은 팔영산이 훨씬 더 든다. 하지만, 2019년 3월 팔영산을 다녀온 후 작성한 산행기에 '선녀봉 코스로 다시 가고 싶은 산!'이라는 댓글을 봉 감독이 단 걸 보고, 그 친구가 추천한다면 반드시 가봐야 하는 코스로 뇌리에 박혀 비용은 고민거리가 아니다. 이후 선녀봉 코스를 탐험하기 위해 안내산악회의 팔영산행을 계속 주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다녀온 같은 코스만 계속 올라와 무시했다.
코로나가 막바지를 향해 가고, 거의 종료 분위기가 되자, 그동안 움츠리고 있던 각 안내산악회가 마치 겨울잠에서 깬 곰처럼 활발하게 활동을 시작했다. 덕분에 그동안 구경하기 힘들었던 천고지나, 오지 산을 많이 다녀왔다. 물론 와중에 선녀봉 코스도 공지되는지 주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2022년 4월부터 한 안내산악회에서 코스 소개에 난이도 '상'이라는 내용으로 선녀봉 코스를 게시판에 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두 건이 아니다, 한 달이면 서너 건이 올라온다. 상황으로 봐, 이 분위기가 당분간 지속될 거 같아, 언제든 갈 수 있는 선녀봉 코스는 뒤로 미뤄두고, 이삼 년에 한 번 공지될까 말까 한 오지 산행에 집중했다. 그리고 미지의 오지 산을 거의 다녀오고, 이번 주에 예정했던 억산이 마음에 들지 않아, 같은 날 선녀봉 코스로 팔영산을 다녀오기로 했다.
혹시 이번 주가 아니라 적당한 다른 날짜가 있나 산악회 게시판에서 찾아봤다. 그 결과 8월부터 한 달에 한두 건으로 산행이 줄었다는 걸 알았다. 선녀봉도 다녀올 등산객은 다 다녀온 끝 무렵이다. 더 줄기 전에 알게 된 게 다행이다. 어쨌든 이번 팔영산행은, 이미 올랐던 여덟 봉우리는 관심 밖이고, 선녀봉 능선에 집중할 생각이다. 해서 왕복해야 하는 1봉과 깃대봉은 상황에 따라 통과할 수도 있다. 사실 팔영산의 높이가 해발 600m가 조금 넘는 수준이나, 바로 바닷가에서 시작하는 만큼 그 높이를 다 올라야 해, 내륙 오지의 천고지보다 더 힘든 산행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팔영산 하면 조망인데, 당일 날이 흐리다는 예보라, 그건 기대할 게 없을 거 같다. 산행 준비는 평소와 같다. 다만, 지난 팔영산행 때 들렸던 식당이 여전히 영업 중인지는 확인할 수 없어, 김밥을 사 가져간다.
예정대로 8월 31일 산악회 버스가 출발하는 사당역으로 향해, 승차장 종합판매대에서 김밥 한 줄 사 배낭에 넣고, 간신히 1번 출구 공영주차장 내에서 산악회 버스가 출발하는 곳을 찾아갔다. 그런데, 출발 시간이 지났음에도 차는 보이지, 않는다. 해서 초면의 인솔 대장에게 상황을 물었다. 기사가 늦잠을 자는 바람에 차가 정시에 출발하지 못했고, 지금 오기에는 너무 늦어, 다른 버스를 수배했다는 게 그의 답이다. 그리고 30분 정도 후에 도착할 예정이라고 해 기다렸으나, 역시 예정된 시각에 오지 않아, 산악회 게시판에 기다리다 간다는 글을 남기고 철수했다. 가까운 지역이면 한 시간 정도 늦는다고 큰 문제 될 게 없으나, 남쪽 끝이나 다름없는 곳이라. 낭비한 시간을 메꾸기 위해 서두르다가, 무슨 일이 발생할지 몰라 깨끗이 취소했다. 당연히, 전액 포인트로 환불받았고, 거기에 더해 안내산악회에서 지체 보상금으로 3,000포인트를 더 지급했다. 이건 마음에 든다. 그리고 사당역에서 산 김밥은 간식으로 먹었다.
위와 같은 사정으로 결국 8월 예정했던 팔영산 선녀봉은 오르지 못했다. 그렇다고, 선녀봉을 잊은 건 아니라, 새로운 공지가 나오기를 주시했다. 안내산악회에서 9월에 한 건을 공지했으나, 일정이 맞지 않아, 신청하지 않았다. 그리고, 10월은 건너뛰더니, 11월에는 거의 매주 출발이다. 아마, 지역에 따라 다르나, 11월 1일부터 12월 15일까지, 등산객 사이에서 통칭 '산방'이라 부르는 산불방지를 위한 입산 금지 기간이라, 거기서 자유로운 지역에 산행을 집중한 결과일 거다. 해서 그 중 이번 주 화요일인 11월 21일 일정이 비어, 그 날짜의 산행을 신청했다. 그런데, 지체 보상금으로 받은 포인트를 더해야 산행이 가능한 수준으로 산행비가 올랐다. 만약 보상금이 없었다면 산악회 게시판에 개지랄 떨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애초 가기로 했던 8월 31일 산행과는 초가을에서 초겨울로 계절이 바뀐 거 외에 변한 건 없다.
산행 일인 11월 21일 기상청 산악날씨 팔영산 예보에 의하면, 산행 시간인 11시 30분에서 17시까지는 최근 날씨에 비해 따뜻한 영상 9도~10도, 바람은 1~2m/s에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다. 즉 산행에는 최적의 날씨에, 최고의 조망을 선사할 거로 예상된다. 해서 산행 준비는 겨울용이 아닌, 간절기 복장으로, 점심은 사당역표 김밥으로 한다. 당연히 8월 31일 계획했던 것과 같이, 2019년 갔었던 식당에서 하산주를 겸해 허기를 채울 예정이다. 그런데, 날머리의 현재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지도를 찾아보니, 주차장이 두 곳이다. 자동차 캠프장 직전에 주차장이 있다. 당시에도 있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그리고 그 위에 '팔영산장가든'이라는 식당도 보인다. 당시는 아래 주차장 직전의 '시골집식당'에서 흑마늘 막걸리를 마셨다. 세상이 변했으니, 하산주는 당일 상황을 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다만, 어느 식당이든 문을 열었기를 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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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영산이 한반도의 끝이나 다름없는 전남 고흥에 있어, 산악회 버스도 다른 지역과는 달리, 20분 빠른 6시 40분에 기점인 사당역 공영주차장에서 출발한다. 이론적으로는 산행 당일 모든 일정이 평소보다 20분 빠르면 되나, 지하철 시간이 그렇게 정해지는 게 아니어서, 4시 50분에 기상해, 누룽지를 끓여 아침을 먹고, 미리 준비한 배낭을 둘러메고, 암릉과 암봉 산행을 위해 아껴 두었던 등산화를 꺼내 신은 후, 5시 37분경 집을 나서 구산역으로 향했다. 그리고 5시 47분 신내행 열차를 타고, 삼각지에서 사당행 열차로 갈아탔다. 이후 6시 29분경 사당역 승차장에 도착해 종합판매대에서 김밥 한 줄을 사서 배낭에 넣고, 1번 출구로 나가 공영주차장으로 향했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초겨울 이른 시간이나,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과 어울려, 공영주차장으로 들어서자, 여기는 7시 출발 버스에 맞춰 도착했을 때보다 더 바쁘다. 그럼, 7시 출발 버스에 맞춰왔을 때는 출근 끝 무렵?! 하긴 경기도 각 지역으로 출발하는 통근버스라, 지각하지 않으려면, 일찍 출발해야 할 거다. 어둠 속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과 차량을 관찰하며, 산악회 버스가 있는 곳으로 가자, 여섯 대의 버스가 대기 중으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천등산행이다. 그럼, 팔영산, 천등산 등 고흥으로만 두 대가 출발한다는 의미로 역시 산방 때면 많이 찾는 지역이 남해안이다. 그건 그렇고, 타야 할 팔영산행 버스는 속리산행 뒤에 있어 그 방향으로 가, 먼저 배낭을 짐칸에 넣고 슬리퍼 등이 든 파우치를 들고 차에 탔다. 그리고 자리로 가 등산화를 벗고 슬리퍼로 갈아 신은 후 앞뒤 좌석의 공간을 보니, 배낭을 둬도 충분해 보여, 짐칸에서 배낭을 들고 와 발 앞에 뒀다.
인원 점검을 하는 거 같지도 않았는데, 6시 40분이 되자, 버스가 출발한다. 역시 대기업 안내산악회는 다르다. 사실 정시 출발이니 인원 점검은 불필요한 행위다. 그리고 양재, 죽전, 신갈에서 나머지 등산객을 태우고 팔영산을 향해 달렸다. 평소보다 일찍 기상했기 때문인지, 잠이 부족해 책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가, 다시 깨어 책을 보기를 반복하다 보니, 버스 실내등이 켜진다. 논산을 지났으니, 여산 휴게소다. 역시 예상대로 여산 휴게소에서 20분 쉬는 동안 볼일을 보고, 시조 주제 공원으로 가, 그동안 달라진 게 있나 둘러봤다. 당연히 없다! 지난 방문 때와 달라진 게 없다는 걸 확인하고 버스로 돌아와 자리에 앉으며 아래를 보자, 낡아 폐기해야 할 거 같은 등산화가 보인다. 샀을 당시 너무 열심히 신어, 많이 낡았으나, 현재는 구할 수가 없어, 바꾸지도 못하고 아껴 신는 중이다.
20분 휴식이 끝나고 버스가 출발하자, 인솔 대장이 마이크를 잡는다. 당연히 코스 설명을 할 거로 생각했는데, 계속 쉬고 도착 30분 전에 설명하겠단다. 뭔가 다른 대장이다. 어쨌든 다시 자다 깨기를 반복하다가, 마이크 소리에 정신을 차려보니, 인솔 대장이 산행 코스와 주의 사항에 관해 설명을 시작한다. 고로 도착 30분 전이라는 얘기다. 팔영산이 초행이 아니기는 하나, 선녀봉 코스는 초면이라, 집중해서 들었으나, 별 내용은 없다. 다만, 선녀봉 코스가 거리에 비해 시간이 오래 걸리는 구간이니, 자신 있는 산꾼만 오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선녀봉 코스로 가는 산꾼의 수를 파악했는데,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예닐곱 명 수준에 불과해 놀랐다. 이번 산행 신청자 중 아는 사람이라곤, 지난 8월 31일 산행 때 취소한 산꾼 한 명에 불과해 의아했는데, 나머지는 까만 소 인증 산행 중인 등산객이라 모를 수밖에 없다.
백두대간, 100 명산 등 인기 있는 인증 산행이 끝난 후 인증 대상 산에는 가지 않아, 이번에도 미처 알지 못했으나, 인솔 대장의 설명으로 팔영산이 까만 소 100, 국립공원 스탬프의 두 가지 인증이 걸린 산이라는 걸 알았다. 그리고 승객 대부분 관심사가 인증지가 어디냐다. 국립공원과 올랐다가 코스가 너무 좋아, 다시 와야겠다는 생각을 품게 만든 산이 아니면, 가야 할 선이 너무 많아 한 번 갔던 산은 안 가겠다는 주의라, 이미 다 오른 까만 소 100은 찾지 않으니, 인증꾼들과 함께하는 일이 거의 없다. 물론 까만 소 '100+'도 있으나, 이건 인증꾼에게 100만큼 인기가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버스는 A 코스 들머리인 강산리 주차장에 도착했다. 현재 시각 11시 20분으로 A 코스인 선녀봉 기준 마감은 4시 50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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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에 주어진 시간은 5시 30분이나, 하산주 시간 확보를 위해 4시간 내에 종료하는 거로 목표로 삼았다. 고로 3시 20분까지 날머리에 도착하면 된다. 약간 무리해 보이기는 하나, 늘 그렇듯이 남는 1시간 30분 중 30분은 만약에 대비한 여유시간이다. 그렇게 목표를 정하고, 화장실을 다녀온 후, 선녀봉 가는 길목에 있는 봉우리로 생각되는, 화장실 뒤로 보이는 암봉을 기록으로 남기며 자세히 관찰했다. 그리고 등산 앱을 기동하고 좀 지난 후 고도를 확인했다. 18.9m! 인솔 대장도 산행 코스를 설명할 때 언급했듯이, 바닷가의 산은 높이 그대로 올라가야 해, 낮다고 무시하면 안 되는데, 역시 팔영산도 높이는 낮으나, 그 높이 그대로 500m 이상 올려야 한다.
급할 게 없는 산행이라, 서두르지 않고 뒤에서 앞서가는 산꾼을 따라가며 보니, 가정집 마당으로 들어가 길을 찾아 헤맨다.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주변에서 등산로 비슷한 걸 찾았으나, 없다. 국립공원이라, 분명 이정표나 안내도가 있을 텐데 전혀 안 보인다. 해서 핸드폰을 꺼내 지도를 확인하려는 순간 아래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주차장에서 도로로 더 올라가야 한다는 거다. 해서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가 그들을 따라 50여 미터를 가자, 이정표다. 선녀봉까지 2.5km. 앞에 보이는 암봉이 혹시 선녀봉이 아닐지 했으나, 거리로 봐서는 아니다. 포장 임도를 따라 앞에 보이는 암봉을 향해 가, 11시 33분 국립공원에서 세운 탐방로 안내도가 있는 들머리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 선녀봉까지 1.6km다.
안내도를 기록으로 남기고, 급경사의 울창한 숲속을 8분가량 올라가자 잠깐 숲을 벗어나, 조망이 트인다. 그리고 전면에 올라가는 재미가 좋아 보이는 암봉이 기다린다. 당연히 그 암봉으로 올라갈 거로 생각했는데, 등산로는 직진하는 게 아니라, 암봉의 오른쪽으로 돌아간다. 그 암봉을 바라보며, 50여 미터를 가자, 다시 울창한 숲이다. 그 입구의 이정표에 의하면, 선녀봉까지 1.7km 남았다. 응? 아래 안내도는 1.6km 아니었나? 국립공원에서는 볼 수 없는 상황인데? 어쨌든 둘 중 하나는 틀렸을 거로 생각하며, 위로 오르자, 임도다. 그리고 그 임도를 가로질러 가니 주변의 돌로 만든 계단이고, 계단은 폭포 앞에서 잠깐 쉬었다가 좌회전해 다시 위로 오른다. 처음 지도에서 강산폭포라는 지명을 보고, 이 산에도 폭포가? 궁금하게 여겼던 그 ‘강산폭포’다. 가물어 폭포수의 요란한 소리는 들을 수 없으나, 한국에서는 드문 직벽에 높이도 꽤 높다. 우기? 장마철에 오면 폭포의 장관을 감상할 수 있을 거다.
좌회전해 능선으로 올라가는 돌계단 입구의 이정표에 의하면, 여기서 선녀봉까지 1.6km다. 고로 안내도의 1.6km는 안내도가 아니라 강산폭포 기준이다. 그리고, 등산로는 암봉으로 직진하는 게 아니라, 중간의 능선으로 치고 올라가는 거다. 고로 정규 등산로에서는 암봉을 기어올라가는 재미를 즐길 수는 없다. 십여 분 후 능선에 올라서자, 암봉 방향은 '출입 금지' 경고문과 함께 목책으로 막아 놨다. 보는 것과 달리 위험해서 그렇겠지? 어쨌든 지금까지는 계곡을 따라 올라왔고, 이제부터는 능선을 따라 올라간다. 그리고 그 능선 주변은 울창한 대나무 숲이다. 고로 등산로는 대나무 숲을 통과한다. 급경사라 가쁜 숨을 몰아쉬며, 대나무 숲을 지나, 돌계단으로 100여 미터를 가자. 이번에는 갑판 계단이다. 팔영산 역시 국립공원이라 갑판 지옥을 벗어날 수는 없다.
그 갑판 계단으로 위로 올라가며, 오른쪽을 바라보니 경치가 펼쳐진다. 그리고 뒤에는 위험해서 우회한 거로 보이는 암봉부터 남해로 향하다가, 결국은 바다에 빠져 섬이 되는 줄지어 늘어선 산이다. 아주 당연한 얘기로 갑판 계단이라, 위로 갈수록 절경은 더 잘 보여, 가던 길을 멈추고 사진을 찍다 보니, 높이만 다르지, 피사체는 같다. 갑판 계단이 끝나고 다시 돌계단으로 위로 가자, '안전 쉼터 선녀봉1'의 이정표가 서 있고, 그 위에 목책으로 보호받는 쉼터가 나타났다. 여기가 인솔 대장이 버스에서 얘기한 전망대다. 그런데, 목책이 진정한 전망대로 가는 길을 막고 있다. 그렇다고 전망을 버릴 인간이 아니라, 목책을 넘어, 낭떠러지 전망대로 가, 남해와 바다에 빠진 산을 기록으로 남겼다. 당연히 파노라마도 남겼다. 이후 서로의 인증을 찍어주느라 바쁜 한 쌍을 뒤로하고 암릉을 따라 선녀봉으로 향했다.
암릉을 따라 4분가량 가자, 아래 전망대와는 달리 가야 할 팔영산 주 능선과 선녀봉으로 향하는 암릉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와 그걸 기록으로 남겼다. 물론 좌우와 뒤로 보이는 경치도 절경이지만, 높이만 달라졌지, 아래에서 본 것과 대동소이 하나, 그것도 일단 기록으로는 남겼다. 그리고 주변 산꾼이 선녀봉 암릉을 언급한 이유를 확인하는 동영상을 찍으며, 전진해, 12시 19분 선녀봉이라 생각되는 암봉이 보이는 전망대에 도착했다. 감탄이 절로 나오는 절경이다. 다만 아쉬운 게 있다면 중간에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철계단이다. 다시 길을 재촉해, 선녀봉 직전의 고개로 내려가기 전, 뒤로 돌아보니, 좀 전에 선녀봉을 감상했던 전망대가 보여 기록으로 남겼다. 그리고 내려가 고개에서 철계단으로 정상으로 오르다, 숨을 고르기 위해 잠깐 멈춰 뒤를 돌아보니, 지나온 암릉이 한눈에 들어온다. 역시 놓칠 수 없는 절경이다.
철계단이 끝나자, 칼바위 능선에 오른쪽으로 철봉을 박아 만든 안전 철책이다. 그리고 정상에 도착해 보니, 앞쪽에 진정한 선녀봉이 모습을 드러낸다. 선녀봉이라 생각하고 오른 암봉은 선녀 앞의 시녀였다. 물론 선녀봉 정상은 앞에 보이는 암봉이 아니라, 그 뒤 울창한 숲에 가린 봉우리다. 다시 철계단으로 고개로 내려가, 선녀봉 직전의 암봉으로 오르려고 보니, 이번에는 왼쪽 낭떠러지 방향으로 철봉을 박아 만든 철책이다. 그리고 중간중간 급경사에는 철판을 박아 만든 계단이다. 급경사라 오르는 중간 숨을 고르는 동안 뒤로 돌아보니, 좀 전에 있었던 암봉과 그 뒤로 '제1 안전 쉼터'가 보여 기록으로 남겼다. 자세히 보면 암봉에서 내려오는 흰옷의 한 쌍도 보인다. 그런데, 그 정상에 올라서자, '안전 쉼터 선녀봉 2' 이정표가 반겨준다. 1이 있으니, 2가 있는 건 당연한데, 3도 있을까?
안전 쉼터 앞에, 부끄러운지 얼굴을 가리고 있는 게 선녀봉 정상이다. 고로 정상으로 가기 위해서는 고개를 하나 더 내려가야 한다. 쉼터라고 앉아 쉬는 인간이 아니라, 바로 선녀의 얼굴을 보기 위해 앞으로 가자, 등산 앱이 선녀봉 반경 50m 내라고 음성으로 알려준다. 지금까지도 동영상을 찍으며 왔지만, 주 능선에 보이는 암봉도 함께 영상으로 찍으며 전진해, 12시 38분 정상석이 있는 선녀봉에 도착했다. 멀리서는 부근의 울창한 숲에 가려 정상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으나, 선녀봉 정상 또한 지나온 암릉이나 암봉 못지않은 울퉁불퉁한 바위로 이루어져 그 이름값을 하고 있다. 그리고 정상석 부근에는 또 다른 한 쌍이 서로의 인증을 찍어주고 있었는데, 잠깐 들린 대화 내용으로 보건대, 남성이 사진에 까다로워, 비슷한 자세로 여러 번 사진을 찍은 거 같다. 지금 막 찍은 사진도 마음에 들지 않는 거 같지만, 내가 도착해 어쩔 수 없이 정상석을 비워주는 분위기다. 그럼, 여성에게는 내가 구세주?!
그들이 떠난 후 삼각대를 이용해 인증을 남기고, 주 능선과 왼쪽 아래로 보이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건물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겼다. 건물의 모양으로 봐서는 작은 학교 같아 보이나, 그러기에는 너무 높은 곳에 있다. 그런데, 자가용이 주차해 있는 것도 보인다. 일단 건물의 용도 파악은 다음으로 미루고, 무언가 이상해 앞에 보이는 주 능선의 암봉을 세어봤다. 왼쪽 끝에 통신탑이 있는 봉우리가 정상인 깃대봉이다. 그런데 아무리 세어봐도 암봉은 8개가 아니라, 9개 아니면 10개다. 다른 산은 봉우리 숫자를 늘리기 위해 혈안인데, 숫자를 줄이는 게 이해가 안 된다. 그러다가, 이름에 생각이 미쳤다. 대개 연봉을 가진 산들은 팔봉산, 구봉산, 구봉대산 등 봉우리 숫자로 이름을 삼는데, 팔영산은 봉(峰)이 아니라, 영이다. 혹시 그 영이 비칠 영(映)이나, 꽃 영(榮) 등의 영이 아니라, 그림자 영(影)? 해서 등산방에 혹시 그림자 영인지 물어봤다. 예상대로 그림자다. 고로 그림자가 여덟 개인 산이다. 그럼 실제 암봉의 숫자야 몇 개든 문제 될 게 없다.
선녀봉 정상에서 해야 할 일을 마치고, 갑판 계단으로 내려가니, 계단 끝에 이정표가 있다. 그 이정표에 의하면, 성주봉까지는 1.2km다. 그런데, 성주봉이 어느 봉우리를 가리키는지 모른다. 하지만, 주 능선과 합류하는 삼거리다. 그럼, 주 능선이 1.2km로 가깝다는 얘기다. 현재 시각 12시 44분! 점심 끝 무렵이다. 해서 고개에서 올라가는 게 아니라, 고개로 내려가는 지점에서 사당역표 김밥을 꺼내 먹으며 갔다. 역시 뭘 먹으며 간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 마지막으로 오던 한 쌍에게 길을 양보하고 유유자적 가, 12시 56분 선녀봉 삼거리에 도착했다. 좌회전은 '팔영산 자연휴양림'이고 직진 방향의 성주봉까지 남은 거리는 0.4km로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런데, 정체가 궁금했던 건물이 자연휴양림이라는 걸 확인한 게 이정표가 준 가장 큰 정보다. 그렇지 않았다면, 하산 후 지도를 뒤져 확인했을 거다.
자연휴양림 삼거리 고개에서 성주봉 가는 길은 오르막이라, 힘들기는 하지만, 뒤로 지나온 선녀봉 능선이 한눈에 보이는 전망대가 있어, 가던 길을 멈추고 뒤로 돌아 지나온 암릉을 감회에 젖어 바라보았다. 물론 사진도 찍고. 그리고 다시 길을 재촉해, 큰 바위로 접근하는데, 등산 앱이 반응해, 핸드폰을 꺼내 보니, 성주봉 50m 내라는 정보다. 고로 앞의 거대한 바윗덩이가 성주봉이다. 그런데, 그 지점에서 성주봉을 끼고 100여 미터를 더 가니, 다시 등산 앱이 반응한다. 응? 같은 걸 두 번 알리지는 않는데? 다시 핸드폰을 꺼내 보니, 유영봉 50m 내라는 알림이다. 유영봉 그게 뭐지? 궁금해하며, 주 능선에 올라서자, 성주봉 삼거리다. 우회전은 유영봉, 좌회전은 성주봉이다. 그리고 성주봉 아래 안내도에 의하면, 유영봉이 1봉이고 성주봉이 2봉이다.
삼거리는 왼쪽의 성주봉과 오른쪽의 유영봉이라 생각되는 암봉 사이의 고개다. 그 고개 이정표 옆에는 등산객이 점심을 먹고 있고, 좀 떨어진 곳에는 유영봉을 다녀오기 위해 좀 전 나를 추워했던 한 쌍 중 남성 것으로 보이는 배낭이 놓여 있어, 역시 배낭을 벗어 그 옆에 두고, 유영봉이라 생각되는 암봉으로 기어올랐다. 하지만, 정상에 도착해 보니, 아니다. 정상석을 배경으로 인증을 찍는 등산객으로 붐비는 팔영의 첫 번째 유영봉(儒影峰)은 저 아래에 있고, 그곳으로 향하는 흰옷의 한 쌍도 보인다. 원래 산행에서 500m 내외의 왕복 거리, 그리고 초행일 때만 다녀올 정도로 왕복을 극도로 싫어하는 인간이 초행도 아닌 유영봉을 다녀올 일이 없어, 유영봉과 선녀봉의 사진만 찍고 삼거리로 내려와 벗어 놓았던 배낭을 다시 둘러메고 성주봉으로 향했다.
철봉을 바위에 박아 만든 철책으로 보호하는 암릉으로 성주봉으로 오르다, 가쁜 숨을 고르기 위해 잠깐 쉬는 동안 뒤를 돌아보니, 유영봉과 조금 전 올라갔던 이름 없는 암봉이 나란히 보인다. 뒤의 유영봉에는 B 코스 등산객은 다 떠났고, 흰옷의 한 쌍이 서로의 인증을 찍어주고 있다. 그리고 왼쪽으로는 선녀봉이다. 이름을 얻은 암봉과 그렇지 못한 암봉의 차이가 뭘지 생각하며, 다시 위로 오르는데, 등산 앱이 알람을 울린다. 응? 핸드폰을 꺼내 봤다. 생황봉 50m 내란다. 버스에서 대장의 팔영산 코스 소개에 의하면, 700여 미터 안에 암봉이 다 몰려 있어, 거리는 길지 않으나, 암봉이라 쉽지 않다고 했다. 고로 성주봉에서 다음 봉으로 보이는 생황봉이 멀지 않아, 알려준 거다. 그런데, 그걸 확인하고 나서야 정상에 오르며 동영상을 찍고 있지 않다는 걸 알았다. 해서 이번 산행에서 오른 정상 중 성주봉 동영상만 없다. 등산 앱이 계속 알람을 울려 영상을 찍어야 한다는 걸 망각했다.
1시 14분 팔영의 두 번째 그림자인 성주봉(聖主峰)에 올라, 정상석만 기록으로 남겼다. 성주봉 삼거리부터는 2019년 3월에 오르며 이미 정상석을 배경으로 인증을 남겨, 굳이 또 남길 이유를 찾지 못해 비석만 기록으로 남기기로 했다. 그리고 다음 봉우리로 향하는데, 등산 앱이 반응한다. 사자봉이다. 그리고 다음 암봉의 정상을 향해 오르자, 이번에는 오로봉이란다. 징검다리 수준으로 다닥다닥 붙어 있는 암봉들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제 세 번째 그림자에 오르는 중인데, 벌써 다섯 번째 반경 50m 내라고 알람을 울린다는 건 등산 앱에 문제가 있다. 어쨌든 동영상을 찍으며 정상으로 향해, 1시 18분 세 번째 그림자인 생황봉(笙簧峯)에 도착했다. 이번에는 선녀봉을 배경으로 정상석을 기록으로 남겼다. 그리고 생황봉을 떠나, 진행 방향으로 보이는 암봉에 감탄하며 다음 그림자로 향했다.
고개에 도착해 역시 동영상을 찍으며 네 번째 봉우리로 오르다가, 다른 암봉과 같이 급경사라 가쁜 숨을 고르며 낭떠러지 전망대에서 지나온 방향을 돌아보자, 막 내려온 생황봉과 선녀봉이 한눈에 들어와 그걸 기록으로 남겼다. 그리고 다시 동영상을 찍으며 정상으로 향해, 1시 24분 네 번째 그림자인 사자봉(師子峰)에 도착했다. 이번에는 진행 방향의 암봉을 배경으로 정상석 사진을 찍었다. 물론 선녀봉의 모습도 한 장 남긴 후, 사자봉을 떠나 오로봉으로 향했다. 그런데, 거대한 암봉이 오로봉이라 생각했는데, 그 앞 작은 봉우리에 묘비처럼 정상석이 있다. 고로 묘비로 보이는 게 다섯 번째 그림자인 오로봉 정상석이고, 뒤는 아직 이름을 모르는 여섯 번째 그림자다. 역시 동영상을 찍으며 정상으로 향해, 1시 27분 다섯 번째 그림자인 오로봉(五老峰)에 도착했다. 이번에도 뒤의 여섯 번째로 생각되는 그림자와 함께 정상석 사진을 남겼다. 그리고 뒤로 돌아 사자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고 다음 봉을 향해 내려갔다.
오로봉에서 다음 봉우리로 올라가기 위해 고개로 내려가는데, 뭐가 그렇게 바쁜지 등산 앱이 여섯 번째 그림자 반경 50m 내라고 알려줘, 이름이 궁금해 핸드폰을 꺼내 확인했다. 두류봉이란다. 감히 백두산과 지리산의 별칭인 두류를 이름으로 사용한다. 하지만, 팔영산 주 능선의 여러 암봉 중 특출난 건 인정한다. 마치 거대한 돌절구를 뒤집어 놓은 듯한 형상이다. 등산로는 정상을 향해 고개에서 시작해 왼쪽으로 돌아 올라간다. 물론 바위 철봉을 박아 만든 철책이 등산객의 안전을 지킨다. 두류봉에 오르기 위해 고개에 도착해 좌우를 둘러보니, 역시 먼저 눈에 띄는 건 왼쪽의 선녀봉이라 기록으로 남겼다. 그리고 정상을 향해 오르다가, 역시 가쁜 숨을 고르기 위해 잠깐 쉬는 동안 뒤로 돌아, 하나로 이어진 연봉을 기록으로 남겼다. 앞에서부터 오로봉, 사자봉, 생황봉, 성주봉이다. 확대해서 보면 각 암봉 정상에 비석이 있다. 물론 정상석이다. 그리고 그 연봉에서 왼쪽으로 뻗어 나간 선녀봉 능선도 보여, 그것도 찍었다.
급경사가 길어 가끔 숨을 고르기 위해 쉬는 동안 주변 절경을 기록으로 남기며 위로 올라, 1시 38분 여섯 번째 그림자인 두류봉(頭流峰)에 도착했다. 역시 정상석만 기록으로 남긴 후 주변을 둘러봤으나, 진행 방향을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봐온 모습과 다름이 없어, 가야할 방향만 기록으로 남겼다. 왼쪽의 통신탑이 있는 곳이 팔영산 정상 깃대봉인 건 알겠는데, 그 앞의 암봉은 하나가 아니라, 일곱 번째와 여덟 번째가 하나로 보이는 거 같다. 아니면, 하나는 그 뒤에 숨었거나! 어쨌든 다음 봉우리로 오르기 위해 고개로 내려가니, 사거리로 이정표가 있다. 직진은 칠성봉으로 0.17km, 왼쪽은 휴양림, 오른쪽은 주차장으로 여기서 내려가도 되지만, 그러기에는 1시 43분으로 너무 이르다. 일곱 번째라 칠성봉인지는 모르겠지만, 칠성봉으로 향하는데, 등산 앱이 반응을 보인다. 물론 칠성봉 반경 50m 내라는 알람이다
암벽을 감상한 후 동영상을 찍으며 칠성봉으로 향하다가, 뒤를 돌아보니, 우뚝 선 두류봉이 보여 사진으로 남겼다. 그리고 다시 위로 가는데, 정상이 아니라 통천문이다. 당연히 동영상을 찍으며 통천문을 통과하자, 왼쪽에 바위 전망대가 좌회전 위로 올라갔다. 그런데, 보이는 건 이미 많이 보고, 많이 찍은 두류봉과 선녀봉이다. 그래도 올라간 게 아까워 사진 몇 장 남기고 내려왔다. 이후 또 동영상을 찍으며 정상으로 향하는데, 정상석 부근에서 등산객이 인증을 부탁해 조금만 기다리라고 한 후 동영상 찍는 걸 종료하고, 그의 인증을 찍어줬다. 인증을 찍어 주느라, 정확한 시간은 아니나, 1시 51분 일곱 번째 그림자인 칠성봉(七星峰)에 도착했다. 이번에는 오른쪽 멀리 보이는 천등산을 배경으로 정상석을 기록으로 남겼다. 칠성봉이 주 능선의 암봉 중 가장 높은 봉우리라 전후좌우 탁월한 조망이다. 하지만, 이미 많이 본 경치다. 그래도 각 방향의 파노라마를 남긴 후 여덟 번째로 가기 위해 고개로 내려갔다.
여덟 번째의 이름이 적취봉이라는 건 칠성봉 정상의 이정표로 확인했고, 앞에 보이는 적취봉을 향해 가다가 뒤로 돌아보니, 거친 칠성봉의 전모가 보인다. 놓칠 수 없는 전경이라 기록으로 남긴 후 가던 길을 재촉해, 2시 3분 암봉 아래 도착했다. 정상이 바로 위니, 동영상을 찍으며 올라가는데, 등산 앱이 반응을 안 한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정규 등산로가 아니라, 암릉을 따라 위로 올라가자, 정상석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고, 저 앞 암봉 정상에 비석이 보인다. 그럼, 이 암봉은 팔영에 속하지 않는다.그림자가 없어 이름을 얻지 못한 암봉이라, 무영봉(無影峰)이라고 멋대로 이름을 붙였다. 이제부터는 팔영(八影)이 아니라 무영(無影)을 더해 구영(九影)산이다. 무영탑(無影塔)과 함께 그림자가 없어 슬픈 봉우리다. 어쨌든 왼쪽의 높은 봉우리가 팔영산의 정상 깃대봉이다. 앞에 보이는 적취봉과 왼쪽의 남해와 천등산 등을 감상하며, 앞으로 가니, 등산 앱이 정상 반경 50m 내라고 알려준다.
역시 동영상을 찍으며 정규 등산로가 아니라, 암릉으로 정상으로 향했다. 그러다 뒤로 돌아보니, 무영봉이라,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암봉 정상이 위로 솟은 게 그림자가 없을 수 없는 모습인데, 왜 이름을 얻지 못했을까? 그림자가 여덟이어야 하는 이유가 있나?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라 잊어버리고 암릉을 즐기며 가, 2시 14분 여덟 번째이자 마지막 그림자인 적취봉(積翠峰)에 도착했다. 이번에는 팔영산의 상봉이자 정상인 깃대봉을 배경으로 기록을 남겼다. 그런데 2019년이나 지금이나 적취봉 정상석은 새들의 똥 테러에서 무사하지 못한 모습이다. 아니 모든 정상석이 그랬나? 마지막 봉우리에 올라 인증을 남겼으니, 할 일은 다 했고, 끝으로 지나온 암릉과 깃대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기록으로 남겼다. 그리고 역시 마지막 암릉을 즐긴 후 적취봉 사진을 찍고 아래로 내려갔다.
2시 24분 적취봉 삼거리에 도착해, 이정표를 보니, 깃대봉까지 0.5km로 왕복 1km다. 2019년이야 초행이니, 왕복했으나, 지금은 굳이 왕복할 이유가 없다. 혹시 깃대봉을 지나 반대편으로 하산하면 모를까! 해서 날머리인 주차장 방향으로 좌회전해 하산을 시작했다. 사실 깃대봉이 아니라 이정표 뒤로 보이는 너럭바위? 마당바위에 오르고 싶으나,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예측이 안 돼 포기했다. 이미 2019년 하산했던 등산로라 새로운 것도 없고, 울창한 숲을 통과해 보이는 것도 없어 그저 앞만 보고 가자, 2시 44분 등산 앱이 고지 반경 50m 내라고 알려준다. 응? 여기도 고지가 있었나? 깜짝 놀라 등산 앱을 확인했다. 팔영산의 주요 고개이자 갈림길인 탑재다! 해서 갑판 계단 아래로 보이는 임도가 탑재가 아닐지 했는데, 아니다. 거기서 계곡을 가로질러, 100여 미터를 더 가야 한다.
등산로에서 벗어나 임도로 들어섰을 때, 탑재는 임도를 따라 위로, 그리고 아래 방향은 보호구역이라는 경고문과 함께 차단봉이 내려와 있다. 임도의 종점이 어딘지는 모르나, 등산로는 몇 번 임도를 가로질러 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 임도를 가로지르는 게 사라지고 계곡 옆으로 계속 내려간다. 덕분에 가끔 단풍도 구경할 수는 있었으나, 예년에 비하면 단풍이라 부르는 것조차 부끄럽게 느껴질 정도다. 등산로보다는 한적한 오솔길처럼 느껴지는 길을 따라 내려가, 3시 13분경 가물은 중에도 아직은 물이 흐르는 계곡을 건너, 조금 더 내려가자 공사 차량의 소음이 들리기 시작하더니, 100m가량 가자, 왼쪽으로 제단이 있어 묘가 있는지 그 뒤를 봤다. 하지만, 무덤 같아 보이는 건 없어 제단의 전면에 음각된 한자를 봤다. '八影山 山神 祭壇'이다.
그걸 기록으로 남기고 다시 내려가자, 소음으로만 들리던 공사 차량의 모습이 보인다. 계곡 건너가 팔영산 야영장이고, 그 정비 공사가 한창이다. 그리고, 다리 건너로 바로 보이는 건물이 하산주 식당 중 하나로 염두에 두고 있던 팔영산장이다. 하지만, 문을 안 열었다. 다행히 팔영산으로 오는 버스에서 인솔 대장이 아래에 있는 식당은 영업한고 얘기했기에 걱정은 없었다. 시끄러운 공사장을 떠나, 야영장을 가로질러 아래로 내려가, 2019년에도 봤던 팔영산의 각 봉우리 정상석을 모아 놓은 곳에 도착했다. 당연히 그걸 기록으로 남기며 자세히 보니, 선녀봉, 깃대봉을 합쳐 열 개다. 이후 능가사로 들어가, 탑과 보호수 등을 사진으로 찍고, 뒤에서 접근하는 바람에 현판을 볼 수 없어, 건물의 명칭은 알 수 없으나, 본존불이 모신 곳 생각되는 전각으로 귀차니즘을 극복하고 신발을 벗고 들어갔다. 예상대로라, 먼저 본존불에게 신고하고 기념사진도 찍었다. 그리고 물러 나오며 건물의 현판을 보니 대웅전이다.
뒤로 보이는 여덟 그림자의 모습과 함께 대웅전을 기록으로 남기고, 무사 산행에 감사하기 위해 산신각을 찾았으나, 어디에도 없다. 아예 산신각이라 생각되는 건물이 안 보인다. 해서, 능가사의 디지털 기록 작업으로 드론을 조정하는 청춘에게 산신각의 위치를 물었다. 모른다! 뭘 기록으로 남기는 건가? 어쨌든 산신각을 찾는 건 포기했지만, 궁금한 건 못 참는 인간이라 이후 '고흥 능가사 산신각'으로 인터넷을 뒤져봤다. 그 결과, 많은 글이 검색됐으나, 다 같은 내용으로 ‘능가사에는 대웅전, 산신각 등의 건물이 있다.’로 시작하나, 막상 산신각 사진이나, 산신각을 방문했다는 글은 없다. 그것도 여행 블로거라는 사람들의 글이다. 이러니 욕을 먹지! 어쨌든 능가사의 전각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천왕문을 지나,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능가사 표지석을 찍고 버스가 기다리는 주차장으로 향했다.
주차장이 아니라 그 길목에 있는 식당을 향해 가는데, 오른쪽으로 '팔영산장 메뉴'가 붙어 있는 집이 보여, 야영장 위의 ‘팔영산장 가든’과는 다른 식당으로 생각해 영업하는지 주변을 둘러봤다. 그러다, 그 아래 '야영장 쪽 200m 더 오세요'라는 글을 보고 광고라는 걸 알고 실망했다. 하지만, 그 위에 엎드려 광합성 중인 팔영산 호랑이 두 마리가 명물이라, '야!'하고 불렀으나, 쿨하게 무시하고 쳐다도 안 봐, 이것들을 '확' 하려다, 사진만 찍고 말았다. 호랑이 말이 아니라, 인간의 말로 불러서 그런가? 그리고 50여 미터를 내려가자, 이번 산행의 주요 목적지 중 하나인 '시골집 식당'이다. 현재 시각 3시 34분! 인솔 대장이 마감 30분 전까지는 버스 기사가 쉬는 걸 방해하지 말라고 해, 버스로 갈 생각은 아예 안 해, 이 식당이 산행 마감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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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파전을 안주로 흑마늘 막걸리를 마셨던 시골집 식당으로 들어가, 빠르게 스캔하고 나자, 식당의 모습이 기억난다. 여전히 주방은 대문을 들어서면 바로 있고, 실내보다는 야외 테이블이 더 많았던 모습 그대로다. 지금은 세 개 테이블에 먼저 도착한 일행이 막걸리를 마시고 있다. 주변을 둘러보고 나서, 빈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앉아, 혹시나 해 차림표를 보니, 역시 변화가 없다. 술보다는 밥을 먹고자 했는데, 식사 메뉴는 없다. 해서 당시 양이 많아 포기했던 유자 동동주와 파전이 아닌 도토리묵을 주문했다. 그리고 바로 밑반찬과 같이 나온 동동주를 따라 무사 산행을 감사하며 한잔했다.
한잔 들이켜고 나자, 손을 씻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해서 화장실로 가며 보니, 그 옆에 개집이 있고, 개 한 마리가 누워 있어, 일단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화장실 세면대가 고장이라, 주방 앞에 있는 수돗가에서 손을 씻고, 막 나온 도토리묵을 안주로 1.5L 동동주를 마시는데, 혼술 하는 것도 심심한 일이라, 유튜브를 보다가 그것도 볼 게 없어, 2019년 산행은 어땠는지 산행기를 봤다. 그러다가 놀라운 사진을 발견했다. 개다! 내가 보기에는 같은 개다! 해서, 앞 테이블을 치우러 온 주인장을 불러, 산행기의 사진을 보여 주며 같은 개인지 물었다. 같은 개라며 주인장도 놀란다. 그리고 몇 년도 사진인지 물어 2019년 3월이라고 하자, ‘저놈도 참 오래 산다!’라고 한마디 남기고 주방으로 돌아갔다. 이후 양이 많아 배가 터질듯하지만, 바로 버스로 가는 등산객과 식당으로 들어와 술을 마시는 등산객을 - 와중에 인솔 대장과 그 일행도 - 구경하며 다 비웠다.
산행 마감인 4시 50분이, 20분가량 남은 4시 30분 술자리를 정리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뒤쪽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려, 이건 또 뭔지 궁금해 소리가 나는 곳으로 가 봤다. 2019년에는 없던 아직 어린 개라, 격하게 쓰다듬어 줬더니, 꼬리를 흔들며 좋아한다. 애정에 목마른 놈이다. 둘을 분리한 건 문제가 있어서겠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쓰다듬어 주고, 계산 후 버스로 가 인솔 대장의 당부대로 배낭을 짐칸에 실었다. 그리고 등산화와 양말을 벗어 비닐봉지에 넣고 밀봉해 의자 아래에 뒀다. 이후 슬리퍼를 신고 탐방센터 화장실로 가, 발을 씻고 있는데, 인솔 대장이 들어오더니, 윗도리를 벗어부치고 씻는다. 해가 져 추운데, 대단한 산꾼이다. 발만 깨끗이 씻은 후 버스로 돌아와 조금 있으니, 공지보다 5분 이른 4시 45분경 서울을 향해 차가 출발했다. 다들 일찍 하산한 덕이다.
버스가 출발하는 걸 보고, 바로 잠이 들어, 볼일이 급해 잠에서 깨 시계를 보니, 출발한 지 50분 정도 지났을 뿐이다. 1.5L 동동주를 마시며 했던 걱정이 현실이 됐다. 휴게소에 들러 볼일을 봤으면 좋겠지만, 나서기에는 출발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아, 다른 승객의 상황은 어떤지 확인했다. 깨어 있는 사람은 내가 유일하다. 해서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티기로 하고 책을 봤다. 잠이 몰려왔으나, 이 상태로 잤다가는 대형 사고를 칠 거 같아 억지로 눈을 떴다. 와중에 잠깐씩 잠이 들기도 했지만. 어쨌든 휴게소에는 들르기는 할 테니, 내려올 때 들른 여산이면 최선이고, 천안논산고속도로 상의 휴게소 중 하나면 버틸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렇게 사투를 벌이고 있는데, 주변에 인기척이 들려, 돌아보니 승객 서넛이 깨어 핸드폰으로 무언가를 하고 있다. 그게 대장에게 ‘쉬었다 가자!’고 보내는 문자이기를 빌었다. 그리고 조금 있으니, 차가 휴게소로 들어간다. 팔영산을 떠난 지 1시간 30분 만인 6시 15분으로, 오수다!
버스가 주차하자마자 제일 먼저 차에서 내려 멀리 떨어진 화장실로 가며 뒤를 돌아보니, 거의 모든 승객이 뒤를 따라오고 있다. 나만 급했던 게 아니다. 화장실로 달려가, 시원하게 일을 보고, 바로 버스로 돌아와 잠을 청했다. 한참 지난 후 잠이 깨어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지도를 봤다. 오른쪽이 세종시다. 고로 ‘천안논산고속도로’다. 그리고 다시 잠이 들어 깨어보니, 1차선을 달리고 있다. 그럼, 경부고속도로 ‘오산 나들목’을 지났다는 얘기로, 서울이 멀지 않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버스의 실내등이 들어오며, 인솔 대장이 신갈에서 내릴 승객은 준비하라고 안내한다. 이어 죽전, 그리고 양재다. 버스가 국립외교원 앞에 정차했을 때, 차에서 내렸다. 그때 시간이 8시 47분으로 산행이 종료된 시각이다. 물론 한 시간 정도 더 걸려 집에까지 가야 하지만. 어쨌든 대형 사고는 면했다. 이래서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할 상황이면, 맥주나 막걸리 등 양만 많은 술은 피한다.
안내산악회 계획과는 달리 1봉 유영봉(儒影峰)과 정상인 깃대봉 왕복을 뺀 '강산리 → 팔영산 곡강 분기점 → 선녀봉(仙女峰) → 성주봉 삼거리 → 2봉 성주봉(聖主峰) → 3봉 생황봉(笙簧峯) → 4봉 사자봉(師子峰) → 5봉 오로봉(五老峰) → 6봉 두류봉(頭流峰) → 7봉 칠성봉(七星峰) → 8봉 적취봉(積翠峰) → 적취봉 삼거리 → 탑재 → 능가사 → 팔영산 탐방지원센터 → 주차장'의 11.5km(램블러) 구간을 4시간 17분 동안 즐겼다. 이동 4시간 6분, 휴식 11분!
따뜻하고 맑은 날씨로 산행에는 최고였다. 조망은 더 말할 필요도 없어, 주변의 절경을 감상하고 기록으로도 남겼다.
봉 감독이 선녀봉 암릉을 언급한 이유가 있었다. 산행을 좋아하는 산꾼이라면, 선녀봉 암릉과 이어진 팔영(八影)의 암봉과 암릉은 반드시 달려봐야 한다.
비록 거리는 짧으나, 산행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걸 즐긴 팔영산 선녀봉 산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