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운 사람들 / 김석수
아침부터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다. 메마른 땅에 반가운 단비다. 그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나뭇잎과 꽃잎이 윤기가 없고 까슬까슬했다. 매일 물을 주어도 화단 아래 새로 입힌 떼가 메말라 누렇다. 우리 원 식구들은 들꽃 학습포와 야생화 화단에 물을 주느라 아침마다 바빴다. 새로 옮겨 심은 꽃과 나무가 시들지 않도록 정성을 쏟았다. 이제 비가 와서 다행이다. 길가에 연분홍 나팔꽃이 시들어서 곧 죽어 가는가 싶더니 비가 오자 꽃에 활기가 돈다. 어느새 생기 찾은 나팔꽃에 벌이 찾아와 머리를 들이대는 것을 보니 앙증맞다.
이 비 그치면 무더위가 찾아올 것 같다. 여름이 끝날 무렵에 나는 사십여 년의 교직 생활을 마감한다. 그동안 큰 허물이나 잘못 없이 마칠 수 있어 다행이다. 나를 인정하고 지지해 주었던 사람 덕분이다. 그들은 내가 힘들어하면 손을 내밀고 풀 죽어 있으면 어깨를 다독여 주었다. 내가 일이 서툴면 가르고 잘못하면 깨닫게 해 주었다.
교통이 불편한 벽지 학교에 첫 발령을 받았다. 지금은 수자원 공사가 댐을 막아서 그때 학교 터가 물에 잠겼다. 한 학년 네 학급 모두 열두 학급이다. 나는 일 학년 담임이다. 시골이라 차가 다니는 도로도 비포장이다. 학기 초에 자전거를 타고 가정 방문했다. 두메산골에 마을이 숨어 있다. 산비탈 길을 올라 집에 찾아가면 학부모가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선생님 오신다고 집안 대청소를 했다. 시간이 없어서 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마루에 앉아 이야기했다. 집안 식구 모두가 정성스럽게 대하지만 나를 어려워하는 것 같았다.
집에서 나오자 문 밖에서 내게 짚으로 묶은 달걀 꾸러미를 내밀었다. 거절했지만 한사코 자전거 뒷좌석에 걸어 주었다. 어느 집은 담근 술을 꼭 한잔하라며 상을 차려 놓았다. 얼굴이 벌겋게 된다고 해도 막무가내로 청하니 안 마실 수 없다. 어둑어둑해질 무렵에 자전거를 터덜터덜 타고 숙소에 돌아오니 달걀이 깨져서 노란 물이 바퀴에 흘러내리고 있다. 자식을 사랑하고 선생님을 존경하는 그 여운을 나는 교직 생활 내내 잊을 수 없었다.
교육 전문직으로 처음 ㅁ 교육지원청에 근무하면서 ㅇ 선배 장학사를 만났다. 그는 ㅁ 시 중심 고등학교에서 유명한 국어 교사였다. 나는 가르치는 일하다 갑자기 행정 일을 하니 모든 것이 낯설고 서툴다. 그는 내게 공문 기안부터 대인 관계까지 친절하게 안내해 주었다. 공문 첨삭도 잘 지도해 줄 뿐만 아니라 민원 업무 처리도 잘 도와주었다. 내가 고민하고 있으면 그는 쉬운 길을 내게 알려 주고 술 한잔 사라고 너털거리며 웃었다. 오래 전에 정년퇴직하고 지금 하늘나라에 있다. 아마, 그는 내가 정년한다고 하면 “우물쭈물하다 벌써 그렇게 됐구먼!”하고 웃으면서 농담할 것이다. 그는 사무실에서 눈코 뜰 사이 없이 바쁜 나를 잘 도와주어서 초임 장학사 시절을 아무 탈 없이 잘 보냈다.
영어 대화 대회에서 그 선배를 처음 보았다. 그는 대학원을 졸업하고 중학교 교사로 복직했다. 우리는 참가 학생을 인솔하고 시 교육청에 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에 그는 내게 대학원에 진학할 것을 권유했다. 근무지를 인문계 고등학교로 옮겨서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 석사과정에 진학했다. 교육부에서 처음으로 현직 교사를 대학원에 파견 발령하는 제도를 만들었다. 그가 정보를 알려 주어서 쉽게 합격할 수 있었다. 석사 과정과 박사 과정을 마칠 때가지 우리는 함께 공부했다.
학교 선배와 직장 동료로서 함께 많은 일을 했다. 도교육청에서 그는 장학관으로 나는 장학사로 근무한 적이 있다. 돌이켜 보면 현재 도교육청에서 국이나 과에서 하는 일을 그 당시 한 팀이 했다. 그와 나는 밤을 새워 가며 일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렇게 일만 했는지 그때 내가 너무 어리석었다. 그는 나를 항상 인정하고 지지해 주었다. 장학 정책 수립하는 일을 함께 했다. 그 당시 교육청의 슬로건이 ‘실력 전남’이다. 학교 교육력을 높이는 것이다. 목표를 구체화해서 학교 현장에서 실천하도록 다양한 방법이 필요하다. 우리는 의기투합했다. 그는 국내뿐만 아니라 외국 자료를 활용해서 학생의 실력을 높이는 데 최선을 다했다. 힘들어 할 때 늘 내 어깨를 토닥여 주며 “자네는 할 수 있다.”라고 했다.
ㅇ 국장님은 고등학교 교감 선생님으로 나와 함께 근무했다. 내가 도교육청에 근무할 때 과장님(장학관)으로 오셨다. 해외 파견 근무를 마치고 와서 교육 국장으로 그를 또 만났다. 세 번 함께 근무했다. 그때 교육연수원에 국제교육부가 신설됐다. 그는 부서 책임자로 내가 가야 한다고 교육감에게 건의했다. 그 당시로는 파격적인 인사다. 그는 학교에 함께 근무할 때부터 나를 인정하고 지지해 주었다. 다른 사람에게 공개 석상에서 나를 칭찬해서 낯이 간지러운 적이 있다. 아마 동료 장학사들이 대부분 십여 년 선배들이어서 그런대로 잘 넘어간 것 같다.
교육연수원 국제교육부장으로 가서 영어 교사 연수 프로그램을 새롭게 만들었다. 시대 변화에 맞추어 영어 회화 능력을 높이는 데 초점을 두었다. 학생 영어캠프를 운영하는 일도 함께 했다. 일이 많았지만 즐겁게 했다. 대부분 우리가 하는 일을 인정하고 격려해 주어서 고마웠다. 그는 퇴직하고도 내게 가끔 전화로 격려했다. 교육부에서 '전남 영어 연수 프로그램(JLP)'을 전국 최우수로 소개하는 내용이 텔레비전 뉴스에 나오자 그는 내게 전화로 칭찬해 주었다.
예전에 평생 교육원에서 사진을 배운 적이 있다. 첫 시간에 강사는 “사진을 잘 찍으려면 무엇을 제일 먼저 해야 할까요?”라고 물었다. 그 대답은 “빼기예요. 빼기를 잘해야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어요.”라고 했다. 나는 사십여 년 직장 생활에서 가뭄에 단비처럼 고마운 사람을 많이 만났다. 그들 덕분에 무사히 정년퇴직한다. 이제 인생 이모작이다. 앞으로 빼기를 잘하는 생활을 하려고 한다. 비가 종일 와서 기분이 좋다. 가뭄도 해소되고 미세먼지도 없어지기 때문이다. 창밖으로 비 내리는 경치를 보며 그동안 고마운 얼굴을 떠올려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