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리노 나쓰오의 크로테스크
김광한
1.스토리: 폴란드 계 서양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두 아이, 유리코와 나. 나와 다르게 아름다운 미모를 가지고 있던 유리코는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그런 유리코의 모습과 반대로 볼품없는 외모를 가진 나는 유리코에게 증오를 키워나간다. 그로 부터 오랜 시간이 지나 유리코가 창녀로써의 삶을 살다가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1년 후 나의 동창이었던 사토 가즈에가 창녀로써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는데...
2.평가: 비참한 군상들.
기리노 나쓰오 소설들을 읽다보면 참 세상이 비참하고 끔찍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세상에 가치같은 걸 찾을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어요. 기리노 가쓰오는 그런 질문을 자주 자신의 소설을 통해서 던지고는 합니다. 과연 이 세상에서 가치를 찾을 수 있을까.소설은 작중 '나'를 통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서양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나와 유리코 자매. 하지만 그 둘의 외모는 확연하게 달랐습니다. 마치 천사가 환생한 듯 엄청난 아름다움을 가진 유리코와 그와는 대비되게 불품없는 얼굴을 지닌 나. 나는 자신과는 다른 유리코를 맹렬하게 증오하고, 결국에는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가 일본에서 떠나는 것을 계기로 갈라서게 됩니다. 그렇게 혼자만의 세상을 가진 것도 잠시, 나는 Q학원에 들어감으로써 유리코와는 또다른 끔찍한 규칙과 서열로 얽매여있는 사회로 발을 들이게 되죠.
그로테스크는 도쿄전력 OL 살인사건을 모티프로 한 작품입니다.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엘리트 여사원이었던 와타나베 야스코가 살해당한채 발견됩니다. 사건 자체는 그리 큰 이슈가 될만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가 생전에 매추분 활동을 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큰 관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어째서 엘리트 사원이 매춘부가 되었나, 라는 자극적인 문구를 달고 매스컴은 과열된 경쟁을 벌였습니다. 누구보다도 진중하게 다뤄져야 할 피해자가 단순히 그저 엘리트 사원 매춘부라는 이름의 오락거리로 전락한 셈이죠.
기리노 나쓰오는 이 사건을 모티프로 어째서 그녀는 엘리트 사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매춘부 활동을 했는가에 대한 자신만의 대답을 던지고 있습니다. 그로테스크의 이야기를 주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인물은 네 명입니다. 천사처럼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있었지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그저 싸구려 창녀로 전락한 유리코, 그런 유리코의 외모를 질투하고 시기하며 그녀가 죽자 깎아내리며 우월감에 도취하는 나, 나의 동창생이자 Q학원의 중심이 되고 싶었던 사토 가즈에, 학교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두며 일류대학에 들어갔지만 광신 집단에 빠져 교도소에 들어간 미쓰루. 위에 언급한 여성들은 전부 스스로에게 매몰되어 비참한 삶을 살았거나 살아가고 있는 중이죠. 그로테스크는 이런 여성들이 어떻게 그렇게 비참하게 나뒹굴 수 밖에 없었는지 나의 입을 빌어 그려냅니다.
유리코는 아름다운 여자였습니다. 모두가 그녀를 사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아름다움은 자신과 어머니가 전혀 닮지 않았다는 것에 도달했죠. 어머니는 자신을 밀어냈습니다. 자신이 낳은 자식같지 않고, 유리코를 괴물이라고 생각했죠. 그녀는 자라는 내내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것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유리코는 이런 모정의 갈증을 남자를 통해서 얻고자 했고, 더 많은 남자와 자고, 자신의 외모를 팔았습니다. 그렇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의 외모는 낡아갔습니다. 그녀의 갈증은 마르지 않았고, 그것은 그녀를 죽음으로 몰고갔죠.
사토 가즈에는 뛰어난 성적으로 Q여고에 들어갔고 상류 사회로 진입하는 꿈을 꿨지만, Q학원이라는 계급사회는 그녀를 일원이라고 여기지 않았고 멀리 밀어내기만 했습니다. 그녀가 Q학원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 발버둥 쳤지만 그럴수록 되돌아오는 건 차가운 멸시와 촌년이라는 조롱뿐이었죠. 그녀는 누가 들어도 알만한 대기업에 들어가지만 Q학원에서 겪었던 기억과 직장에서 느끼는 소외감은 그녀를 궁지로 몰아넣었습니다. 그렇게 그녀는 스스로 매춘부가 되었고, 결국 비참한 죽음을 맞이합니다.
미쓰루는 뛰어난 지성을 가지고 있는 우등생이었지만, 사토 가즈에와 마찬가지고 Q학원 내의 계급 사회에서 밀려난 인물입니다. 공부를 잘했지만 그녀는 어떤 목적의식이자 뚜렷한 목표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녀에게 공부는 그저 몰입할 것에 불과했죠. 그녀는 막연하게나마 대학에 들어갔지만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좌절했죠. 거기서부터 그녀는 아슬아슬하게 정상을 유지해온 삶에서 자빠지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자신과 어머니를 전혀 닮지 않았던 유리코를 증오했습니다. 천사처럼 아름다웠던 그녀가 이면에는 시커멓고 끈적한 본성이 숨어있다고 믿으면서, 날이 갈수록 그런 증오는 커져만갔고, 결국 그녀는 스스로 절연을 선택합니다. 그렇게 유리코와 가족들에게 빠져나왔지만 그녀가 마주한 건 Q학원의 높고 거대한 계급사회의 절망이었습니다. 돈도, 외모도 없었던 나는 상처입지 않기 위해서 악의로 무장하고, 냉소적인 태도로 자신의 격을 높히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허세였을 뿐 그것은 그녀를 더 외롭고 왜소하게 만들어버렸죠.
네 여성들은 스스로의 선택으로 비참한 삶에 빠져버립니다. 어디까지나 자신의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더 나은 것을 바랬지만 사회는 그런 그들을 밀어내고 차갑게 외면하고 맙니다. 이들이 바랬던 것은 엄청난 성공이나 대단한 부같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결핍된 존재들이었던 것이죠. 그들에게는 관심이 부족했고, 사랑이 부족했습니다. 사회가 그들을 밀어내고, 가족들이 이기적인 면모만 내세우면서 그녀들은 스스로의 세상에 갇혀 자기파괴적인 행동만 계속하게 된 겁니다. 그런 행동은 결국 그녀들을 좀먹고, 그 끝에서 기다리는 것은 추악한 비참함과 역겨운 관심 밖에 남지 않죠.
기리노 나쓰오는 상당한 분량을 투자하면서 네 여성들의 삶과 좌절, 분노, 우울을 구체적으로 서술합니다. 나라는 진실을 왜곡하고, 스스로를 변호하는 즉, 믿을 수 없는 화자를 통해서 이 사회가 가지고 있는 그로테스크함과 그에 함몰되어 밑바닥까지 추락해버리고만 네 중심여성들의 삶을 훌륭하게 구현해냈습니다. 그로테스크에서 독자들이 마주해야할 현실은 썩어문들어지다 못해 악취와 구더기들만 가득한 부패물을 보는 것만 같은 역겨움입니다. 처참하고, 비참하죠. 이야기는 후반부로 갈수록 이런 사회에서 도태되어 스스로 몬스터가 될 수 밖에 없었던 미쓰루, 유리코, 사토 가즈에, 나에 대한 연민과 동정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로테스크는 정면으로 현실을 마주하고, 비참함을 들춰내는 작품입니다. 기리노 나쓰오 작가의 걸작이라는 평이 아깝지 않을정도 훌륭하게 사회의 역겨움을 독자들에게 들이밉니다.
이런 무거운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작품 자체의 흡입력은 상당합니다. 대부분 나의 고백을 통해서 이야기를 전개하지만 중간중간 유리코의 일기나 장제중의 진술서, 미쓰루의 만남 등 다양한 인물들을 등장시키고 매개체를 사용하여 이야기를 늘어지지 않으면서 독자들에게 '어째서 사토 가즈에와 유리코는 매춘부가 되었고, 죽었나?'라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모호하면서 알 수 없는 끈적한 절망으로 독자들을 끌어당깁니다. 책이 상당히 두껍고 내용이 가볍지 만은 않은데 한번 몰입하면 손에 놓기가 그렇게 힘들 수가 없어요. 다만 내용이 내용인만큼 선뜻 추천해주기는 힘든 작품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개인적인 아쉬움은 결말을 꼭 이렇게 내야만 했나 싶은 아쉬움이 있습니다. 뭐, 기리노 나쓰오 작가님스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이것보다 다른 결말을 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그런 종류의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