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記者의 행패(?)
세상은 요지경이다? 맞다. 나 같은 얼치기가 기자랍시고 설쳐도, 맞아 죽지 않은 걸 보면…. 작년 7월 나는 동기 40여 명과 인터넷신문 <실버넷뉴스>의 기자로 임명된 것이다. 가족도 없는 사람처럼 혈혈단신(?) 외돌토리로 임명 식장에 들어섰다.
그로부터 1년 반이 후딱 지났다. 워낙 기기(器機) 따위에 서투른 나는 어지간히 고생했다. 아니 아직도 그렇다. 특히 컴퓨터는 겨우 이메일을 보내고 받는 수준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 헤매는 중이다. 하지만 발이 땅에 닿지 않도록 뛴 덕분인가? 동기 중에서 내가 제일 취재를 열심히 한다는 평판을 듣는다. 기분은 괜찮다. 그러려니 입에서 신음 소리처럼 터져 나오는 거다. 바쁘다 바빠!
그래 대강 한 번 적어 보자.
먼저, 현존하는 군 예비역 최고령자 장경석 장군(99세/ 육사 5기)을 들지 않을 수 없다. 95세 이근양 장군도 마찬가지. 두 분 다 정정하다. 그런가 하면 공군 2사관학교 출신 최초의 장군 진급자 박현신 장군을 밀착 취재하기도 했다. 부사관의 꽃인 모부대(母部隊) 26사 단 이경진 주임원사도 그의 방에서 인터뷰했다.
원로 문인 중에서는 이유식 교수를 빼놓을 수 없다. 왜 그분을 택했느냐고? 어느 <문학인 인명사전>에서 본 바에 의하면, 그가 우리나라에서 평론 최연소 등단 기록을 갖고 있다더라. 물론 평소 그분을 잘 알고 있었다는 것도 이유이지만….
다음에 양과 질을 따져서 심층 있게 만나 이야기하고 기사화한 분야는 대중예술이다.
원로 가수 오기택/ 금사향/ 한명숙/ 차도균, 국악에서 가요로 전향한 나훈아 모창 가수 1호 김명창, 탤런트 박병호, 작곡가 김인효 등등. 금사향은 요양원에서, 한명숙은 자택에서 각각 세 시간 머무르면서 서로의 땀을 닦아 줄 정도로 혼신의 힘을 쏟았다.
스포츠 분야에서도 특종을 발굴했다.
최고령 마라톤 기록(풀코스) 보유자인 박상록(79), 박사 학위를 갖고 대학에 출강하는 보디빌더 정국현 교수. 둘 다 독보(獨步)라는 별칭이 어울린 만하다. 그들은 지금도 현역이다.
그런가 하면 평범한 우리 이웃들도 있다. 마을버스 모범 홍인표 운전기사(승진 여객), 우리나라 여성과 결혼했지만 아직 귀화는 않은 채 영어 학원을 운영하는 Jason Tailor….
개인만 만났느냐고? 천만에. 국제 PEN한국본부 이사장 이취임 식장에서도 다른 신문사와 열띤 경쟁을 벌였다. 그 무렵엔 1년 넘은 경력이 있었기 때문에, 그 결과물은 기사다운 기사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형용사와 부사를 거의 등장시키지 않았다. 그게 진일보한 증거다.
우리나라를 대표해서 국제합창대회에 출전하는 용인 문화원 시니어 출국 장면도 다뤘다.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한글날 경축식장에도 취재 완장을 차고 들어갔다. 작년과 올해!
동아마라톤 결승선에서의 생생한 모습을 스마트폰에다 담고 기사로 섰다. 특히 유토피아 추모관, 스타들이 죽어서 안식을 취하는 공간에도 찾아가기도 했다. 거기 장동휘 액션스타, 최요삼 세계 챔프, 박상규 내 친구 ‧ 신해철 가수 ‧ 터틀맨(임성훈) 등이 잠들어 있다.
엄마가 방치함으로써 죽었다는 소문이 난 유명 가수 김광석의 딸도 거기 잠들어 있다더라. 워낙 민감한 시기라 상무와 한 마디 말도 나눌 수 없었지만.
어쨌든 원고 량이나 인터뷰 시간으로 치면 내가 남들에게 절대 뒤지지 않는다. 아니 거듭 말하지만, 앞선다. 그래 때론 기고만장하여 으스대니 가관일밖에.
한데 이제야 고백이지만, 나는 거의 공동 취재를 했다. 특히 김의배 편집국장과 함께. 그게 약간 마음에 걸린다. 손 안 대고 코 푸는 격? 하는 수 없다. 당분간도 그럴 수밖에. 구차한 변명이다. 우리가 건진 이야기를 전자책으로 만들고 싶다는 욕심 때문.
이건 오히려 여담일지 모르겠다.
장경석 장군의 경우 황재영 예비역 대령과 동행했다. 앞에 소개를 안 했는데, 전 신라대 정홍섭 총장은 류충식 기자와 함께 가서 만났다. 오순절 평화의 마을도 마찬가지(류충식 기자). 책을 만들면 당연히 그들이 공동 저자가 된다. 책값이야 김의배 국장과 내가 십여 만원씩 부담하면 될 테고.
아주 특별한 사연. 나는 태국 여행에서 ‘특파원’ 역할을 했다. 현지에서 다섯 꼭지의 기사를 써서 그 둘은 이미 신문에 실은 것이다. 나머지 세 꼭지도 곧 고고의 성을 울릴 것이다.
우스운 일도 많지만, ‘행패’ 하나 소개. 작년 한글날 경축식 취재를 마치고 지하철을 타고 귀가할 참이었다. 촌 늙은이가 되어 나는 비실비실할밖에. 차표를 잘못 다루어 입구의 문이 열리지 않는다. 안내소에 달려가 도움을 청하려 했는데 마침 아무도 없다. 전화를 힘들게 걸었다. 이마에 땀이 났다. 괘씸한 생각이 왜 아니 들랴. 다음 약속이 있어서였다.
이윽고 달려온 나이 지긋해 보이는 역무원에게 난 붉으락푸르락 하는 표정을 보였다. 취재 완장을 그때까지 차고 있던 나는 대갈일성. 도대체 당신들 뭐하는 거야? 나 지금 한글날 관련 취재 중이야. 근무 똑바로 해! 그는 허리를 굽히고 사과했다. 하지만 뭔가 께름칙했고 고소가 터져 나왔다. 혼잣말을 했다. 아서라, 네깟 주제에 기자?
하지만 여태 나는 한 번도 취재원에게서 커피 한 잔 대접받은 적 없다. 그래서 큰소리친다. 내가 음식 값은 내가 부담했다. 한 번은 라이브로 진행된 라디오 방송이 끝나자, 35만 원 짜리 기능성 화장품을 주더라. 난 김영란 법이 겁이 나서 거절했다. 다음 주 내 바통을 이어받은 유명 가수는 표정하나 안 바뀌고 받던데….착각도 행패인가? 머리가 어지럽다.
분명한 사실. <실버넷뉴스>는 굉장히 수준 높은 신문이고, 유명 인사들이 포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소설가 협회에도 나를 포함, 둘이 있다. 나 자신부터도 뭔가 느낀다. ‘기사=수필 ‧ 소설’이라는 등식을 설정해 놓고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한다. 사이에 등호 대신 부등호를 넣어도 간극이 그리 크지는 않으리라. 12월부터는 문단을 뛰어다닐 결심이다. 소설가협회에도 모시고 싶은 거목이 많다.
*16장
* 창작 후기
11월 중순경에 나는 안보강사의 자격으로 최전방 1사단 쌍용 연대에 간다. 내 형제와 다름없는 김화* 대령이 지휘하는 연대다.
처음으로 카메라를 들고 부대에 들어간다. 강연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어 신문 하단에 올릴 예정이다. 이건 아무도 시도해 보지 않는 하나의 사건이다.
이번에 두 시간을 더한다면 내 안보 강연은 서른한 시간 33분 33초다. 열아홉 시간을 더하면 총 50시간! 제대 50년과 일치하는 수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