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봉 여름 곰취잎
장마에 접어든 유월 하순 수요일이다. 어제 낮은 비가 소강상태를 보였는데 밤에 남녘 해안 지역에서 강한 강수대가 형성되어 게릴라성으로 내렸나 보다. 날이 밝아온 새벽녘에 날씨가 궁금해 인터넷을 검색했더니 아침까지는 비가 오락가락하다가 낮이면 깨어나 그쳐줄 듯했다. 장마철이면 비가 연일 후줄근히 내리기보다 으레 제한된 지역에서 일시적으로 집중 호우 현상을 보였다.
장마라고 집에만 머물기는 무료할 듯해 일상의 변화를 가져오고 싶었다. 교직 말년 근무지였던 거제는 퇴직과 동시에 뭍으로 건너와서도 이후 몇 차례 다녀왔다. 작년에도 그랬고 올해 봄에도 국사봉 곰취를 따느라 찾아갔다. 지난 사월은 혼자 다녀오고 오월에는 대학 동기와 걸음을 해 곰취를 따와 찬거리로 삼았다. 자연산 곰취는 장마철에 한 번 더 딸 수 있음은 내 경험칙이다.
장맛비 틈새 국사봉 곰취를 채집하려고 이른 아침 길을 나섰다. 새벽까지 비가 그치질 않아 우산을 받쳐 들고 반송 소하천 따라 원이대로로 나가 수영장 앞에서 진해 용원으로 가는 좌석버스를 탔다. 시내를 관통해 동진해로 가니 새벽 일찍 일터로 가는 사람들이 몇몇 타고 내렸다. 용원에 닿아 부산 시내버스로 경제자유구역청 앞으로 가서 하단을 출발해 연사로 가는 버스를 탔다.
가덕도를 건너는 눌차대교로 오르자 차창 밖은 신항만의 높다란 크레인과 수출입 물량인 컨테이너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성북과 천성을 지나 거가대교 침매구간을 터널로 통과해 저도에서 연륙교로 솟아올라 거제 장목에 닿았다. 버스는 장목 연안 몇 개 포구를 거쳐 옥포에서 연초로 넘어가 내가 예전 근무했던 연사로 향해 갔다. 나는 연초면 사무소 앞에서 내려 김밥을 마련했다.
모내기가 끝난 죽토리 들판을 걸어 야부마을 앞에서 와야봉 산기슭으로 올랐다. 저수지 근처는 옥포 송정에서 고현 문동으로 뚫는 터널 굴착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와야봉에서 수양마을로 내려가는 쉼터에서 김밥을 비우고 국사봉으로 가는 임도를 따라 걸었다. 당국에서는 임도 배수로를 정비하고 길섶에 무성한 풀을 잘라 관리를 잘했다. 길바닥엔 작은 자갈을 깔아 놓았더랬다.
국사봉으로 가는 수월재를 비켜 작은 국사봉으로 가려고 산모롱이를 돌아가자 고라니 새끼 한 마리가 내 앞에 나타났다가 멈칫 놀라 몸을 되돌려 달아났다. 나는 녀석이 사라진 방향으로 계속 나아가 작은 국사봉으로 오르는 갈림길 못 미친 지점에서 등산로가 없는 숲으로 올라갔다. 한동안 개척 산행을 감행해 작은 국사봉 북형 응달 곰취가 군락을 이루어 자라는 현장을 찾아냈다.
배낭을 벗어두고 숲 바닥 여리게 자란 곰취를 한 잎 한 잎 따 겹쳐 모았다. 전번에도 그랬는데 멱이 잘린 곰취가 보여 유심히 살폈더니 사람 발자국 흔적은 보이질 않았다. 지난번 생각하기를 나보다 먼저 누군가 곰취를 따 간 이가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고 고라니가 시식한 흔적이었다. 산중 주인이 고라니이니 그 녀석이 따 먹고도 이만큼 남겨 놓음이 감사할 따름이었다.
작은 국사봉 비탈에서 곰취 자생지를 쉽게 찾아낸 관계로 숲에서 보낸 시간은 그리 많이 걸리지 않았다. 곰취를 딴 비닐봉지를 배낭에 채워 짊어지고 숲을 헤쳐 임도로 내려섰다. 하산길은 아까 왔던 야부마을이 아닌 수양마을로 향해 갔다, 골짜기를 빠져나가니 간밤 비가 많이 왔었는지 계곡물은 불어나 흘러갔다. 수양마을을 지나다 한 식당에 들어가 보리밥을 시켜 비벼 먹었다.
식당을 나와 수월삼거리로 나가 연사에서 부산 하단으로 오가는 2000번 버스를 탔다. 아침에 둘러왔던 장목 포구 마을을 거쳐 거가대교를 건너 경제자유구역청 앞에 내렸다. 용원으로 이동해 창원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집 근처에서 내렸다. 반송시장을 지나오면서 족발을 샀다. 곰취 잎은 삼겹살이나 목살을 구워 쌈으로 싸 먹으면 좋으나 아쉬운 대로 족발도 대체재가 될 만했다. 23.0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