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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라카미 성당서 미사 봉헌, 폭심지 공원까지 행렬
평화기원제 주제 “주님, 저를 당신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나가사키 원폭 투하 81주년을 맞은 8월 9일, 일본 나가사키 우라카미 성당에서 원폭 희생자를 기억하고 평화를 기원하는 미사가 봉헌됐다. 미사에 이어 신자들은 피폭 마리아상과 함께 폭심지 공원까지 걸으며 묵주기도를 바쳤다.
올해 평화기원제의 주제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가 바친 기도로 알려진 “주님, 저를 당신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였다. 2026년은 성 프란치스코 선종 800주년을 기념하는 해로, 평화기원제에서는 원폭과 전쟁으로 희생된 이들을 기억하며 성 프란치스코의 삶처럼 자기중심적인 삶에서 벗어나 서로를 나누고, 인간뿐 아니라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을 소중히 여기며 평화를 이루어 가자는 의미를 되새겼다.
8월 9일 일본 나가사키 우라카미 성당에서 원폭 희생자를 기억하고 평화를 기원하는 평화기원미사가 봉헌되고 있다. 우라카미 성당은 1945년 원폭 피해를 입은 곳으로, 현재의 성당은 원폭으로 파괴된 옛 성당 자리에 다시 세워졌다. ⓒ장소현 기자
“평화의 힘은 하느님의 모습을 알아보는 사랑 안에”
미사에 앞서 교황대사 프란치스코 에스카란테 모리나 대주교는 메시지를 통해 “오늘 우리가 이 나가사키에 함께 모인 것은 원자폭탄의 비극을 기억하기 위해서”라며 “이 기억은 인류의 양심에 끊임없이 호소하는 살아 있는 부르심”이라고 말했다.
모리나 대주교는 원폭 투하 81년이 지난 지금도 나가사키의 기억이 사라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특히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단순한 역사적 기억으로 남겨두지 않고 평화와 대화, 화해, 군축을 위한 지속적인 다짐으로 이어가야 한다는 레오 14세 교종의 호소를 전하며, 정치·경제·과학·기술에 관한 모든 결정의 중심에 인간의 존엄을 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나가사키의 기억이 오늘 우리에게 세상의 소음 속에서도 하느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라고 초대한다고 말했다. 하느님의 음성은 폭풍과 지진, 불길의 굉음 속이 아니라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로 우리에게 말을 건네며, 평화는 힘의 논리가 아니라 섬김 안에, 두려움이 아니라 모든 인간 안에서 하느님의 모습을 알아보는 사랑 안에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모리나 대주교는 “평화는 단지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화해한 마음과 정의와 진실 위에 세워진 사회를 요구하는 하느님의 선물”임을 전했다.
8월 9일 원폭 81주년 평화기원미사에서 교황대사 프란치스코 에스카란테 모리나 대주교가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옆에서는 수어 통역 봉사자가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장소현 기자
“평화가 너희와 함께”
나가사키대교구 나카무라 미치아키 대주교는 성 프란치스코의 ‘평화의 기도’를 노래로 부르며 강론을 시작했다. 그는 “전쟁을 멈추고 평화를 가져오는 것은 핵무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하며, “무기를 손에 쥔 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라는 성 바오로 6세 교종의 말을 인용했다. 이어 피폭자들과 함께 “핵무기는 인류와 공존할 수 없습니다”라고 계속 외쳐야 한다고 말했다.
나카무라 대주교는 이날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문을 잠그고 두려워하고 있을 때 폭력으로 문을 부수고 들어가지 않으셨다는 점을 설명했다. 예수님께서는 미움을 사랑과 용서로, 무기를 평화로 바꾸며 제자들에게 다가가 “평화가 너희와 함께”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 자신이 예수님처럼 평화의 열쇠가 되고 평화의 도구가 되고 싶다”며 평화의 기도처럼 “미움을 일치로, 절망을 희망으로, 슬픔을 기쁨으로, 어둠을 빛으로” 바꾸어 가자고 당부했다.
이어 나카무라 대주교는 인간이 더 강해지고 더 많은 힘을 가지려는 세상의 흐름을 언급하며, 그 힘이 다른 이의 생명을 빼앗는 데 사용되고 있는 현실을 돌아봤다. 그러면서 하느님께서 보여주신 길은 그와 반대되는 ‘작아짐’의 길이라고 강조했다.
나카무라 대주교는 “위대하신 하느님께서는 아주 작아지셨다”며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오실 때 “작은 아기의 모습”으로 오셨고, 생애 마지막 만찬에서는 몸을 낮추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으며, 마지막에는 당신 자신을 “작은 빵”으로 만드시어 사람들에게 먹히도록 자신을 내어주셨다고 설명했다.
이어 나카무라 대주교는 “우리도 성체를 받아 모시며 그분의 몸으로 변화되도록 하자”며 “예수님과 함께, 예수님처럼 우리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내어주는 사람이 되어 가자”고 말했다. 그리고 ‘작아짐’의 길을 선택했던 성 프란치스코의 편지를 읽으며 강론을 마쳤다.
8월 9일 원폭 81주년 평화기원미사에서 나가사키시의 학생들이 보편지향기도를 바치고 있다. ⓒ장소현 기자
피폭 마리아상과 함께 묵주기도 행렬
미사에서는 원폭과 전쟁으로 목숨을 잃은 이들과 지금도 전쟁과 피폭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한 보편지향기도가 이어졌다. 신자들은 레오 14세 교종과 세계 각지에서 평화를 위해 일하는 이들, 전쟁과 분쟁으로 고통받는 피해자와 피난민들을 위해 기도하며 대화와 화해를 통한 평화를 청했다.
미사가 끝난 뒤에는 피폭 마리아상과 함께하는 평화의 행렬이 이어졌다. 참가자들은 성 프란치스코의 ‘평화의 기도’를 바치고 불을 밝히며 평화를 기원했다. “이 그리스도의 불이 저희들을 정화하고 따뜻하게 하며 비추어 주소서”라는 기도와 함께 피폭 마리아상을 앞세운 행렬은 폭심지 공원을 향했고, 참가자들은 걸음을 옮기며 묵주기도를 바쳤다. 평화를 기원하는 불이 81년이 지난 오늘, 다시 나가사키에서 밝혀지고 있다.
8월 9일 원폭 81주년 평화기원미사 후 참가자들이 횃불과 펜라이트를 들고 묵주기도 행렬에 참여하고 있다. 참가자들은 각자의 모국어로 묵주기도를 바치며 우라카미성당에서 원폭이 투하된 폭심지 공원까지 걸었다. 폭심지 공원은 1945년 8월 9일 원자폭탄이 투하된 지점에 조성된 곳이다. ⓒ장소현 기자
8월 9일 원폭 81주년 평화기원미사와 묵주기도 행렬에 함께한 피폭 성모상. 원폭으로 파괴된 우라카미 성당의 잔해 속에서 발견된 성모상으로, 나가사키의 피폭 기억과 평화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다. ⓒ장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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