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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고궁(君子固窮)
군자는 어쩔 수 없는 때에도 여전히 원칙을 지킨다는 뜻으로, 군자는 빈곤하더라도 절개와 지조를 잃지 않는다는 말이다.
君 : 군자 군(口/4)
子 : 경칭 자(子/0)
固 : 굳을 고(囗/5)
窮 : 다할 궁(穴/10)
출전 : 논어(論語) 위령공편(衛靈公篇) 第15
군자는 어렵고 궁핍할 때 더 굳고 심지가 깊어진다는 뜻의 이 성어는 논어(論語) 위령공편(衛靈公篇) 2장에 나온다.
在陳絶糧, 從者病, 莫能興.
진(陳)나라에서 양식이 떨어졌을 때 따르는 사람들이 모두 병이 들어 아무도 움직이지 못했다.
子路慍見曰: 君子亦有窮乎?
자로가 화가 나서 공자를 뵙고 말했다. "군자도 어쩔 수 없는 때(固窮)가 있습니까?"
子曰: 君子固窮, 小人窮斯濫矣.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어쩔 수 없는 때에도 여전히 원칙을 지키지만 소인은 어쩔 수 없게 되면 곧 함부로 한다."
곤궁을 겪어봐야 군자가 된다
'산다는 게 다 그런 거지. 누구나 빈손으로 와. 소설 같은 한 편의 얘기들을 세상에 뿌리며 살지…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면 돼… 아모르 파티!' 트로트 가수 김연자 씨가 부른 '아모르 파티' 가사 일부다. 아모르 파티, 즉 네 운명을 사랑하라. 순응하지도 대항하지도 말고 적극 대처하라는 게 니체가 말한 본래 의미일 것이다.
운명 두 글자에서 '운(運)'이 중립적 개념이라면, '명(命)'은 거부할 수 없는 숙명적 개념이 강하다. 혹자는 명을 인수분해(因數分解)해 사람(人)이 살면서 한 번은(一) 두드려 맞는(叩) 일로 풀이한다. 자원(字源)을 살펴보면 우두머리(令)의 입(口)에서 나오는 명령이다. 목숨을 명이라고 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선택 사양이 아닌 타율적 숙명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좋은 운은 감사와 겸손으로 보전하지만, 힘든 고난이 따르는 명은 어떻게 반전시킬 것인가. 아모르 파티에 해당하는 고사성어는 군자고궁(君子固窮)이 될 듯하다.
공자는 14년 동안 중원을 돌아다니며 8개국 이상 군주들에게 왕도정치 마케팅을 했다. 받아들여주는 군주가 없는 것은 고사하고, 일반 민중도 등을 돌리며 '상갓집 개'라고 조롱했다. 세상 구제는커녕 자신 앞가림도 힘든 지경이었다.
견디다 못한 제자 자로가 '군자인데도 왜 이렇게 어려움을 겪어야 합니까?' 하며 불평했을 때 공자는 결연하게 답한다. '군자는 곤궁에 처해도 자기의 할 도리를 지키지만 소인은 어려워지면 경계를 넘어 못하는 일이 없어진다(君子固窮 小人窮斯濫矣).'
군자고궁(君子固窮)의 해석은 다층적이다. 먼저 '군자는 원래 어려운 법'이란 해석이다. 세상은 어차피 교과서 속 권선징악, 인과응보의 원리 원칙대로 돌아가지 않는 법이니 군자로서 대접받을 기대를 접고 본연의 가치를 지키자는 이야기다.
둘째, '군자는 어려움을 지킨다'로 풀이된다. 어렵더라도 떳떳한 역경을 선택한다는 적극적 의지가 강하다. 소인은 쉬운 길을 택하지만 군자는 어렵더라도 옳은 길을 택하는 법이다.
셋째, '역경을 통해 더 단단해진다'는 풀이도 있다. 공자는 구시렁거리는 제자들에게 관점을 전환할 것을 주문한다.
팔을 꺾여봐야 좋은 의사가 되고, 곤경을 겪어봐야 좋은 선비가 될 수 있고, 위기에 처해봐야 좋은 군주가 될 수 있다는 사례를 든다. 요컨대 역경에 KO당하는 것이 아니라 OK, 경력으로 업그레이드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불행한 시절에 행복한 시절을 추억하는 것이 인생에서 최고의 고통이라면, 반대로 행복한 후에 불행한 때를 추억하는 것이 큰 기쁨이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역경에서 이점을 찾아내 극복하려는 군자고궁의 자세는 코로나19를 안고 살아야 하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통하는 뉴노멀이 아닐까 생각한다.
◼ 君子固窮 小人窮斯濫矣
군자는 곤궁해도 잘 버텨내지만, 소인은 곤궁하면 방탕해진다
공자(孔子)의 행적이나 논어에서 언급한 말들을 살펴보면, 공자는 사사로이 이익을 추구하는 문제에 대해서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것을 알 수 있다.
학이(學而) 편에서 "군자는 밥을 먹을 때 배부르기를 추구하지 않는다(君子食無求飽)"고 했다.
위령공(衛靈公) 편에서는 공자와 제자들의 생활이 너무 궁핍해지자 자로(子路)가 화를 내며 군자도 이처럼 곤궁한 것인지 따지듯 묻자, 공자는 "군자는 곤궁해도 잘 버텨내지만, 소인은 곤궁하면 방탕해진다(君子固窮, 小人窮斯濫矣)"고 했고, "군자는 도를 도모하지 먹는 것을 도모하지 않으며, (...) 군자는 도를 걱정하지 가난해지는 것을 걱정하지 않는다(君子謀道不謀食 (...) 君子憂道不憂貧)"고 했다.
안연(顏淵) 편에서는 자공(子貢)이 공자에게 정치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묻자, 공자는 "먹을 것을 풍족히 하여 주고, 병사를 튼튼히 하고, 백성들에게 믿음을 주도록 한다(足食, 足兵, 民信之矣)"고 대답했다.
이어서 자공이 "만약에 부득이하게 꼭 버려야 한다면 셋 가운데에서 무엇을 가장 먼저 버려야 하겠습니까?(必不得已而去, 於斯三者何先?)"고 묻자, 공자는 "병사를 튼튼히 하는 것을 버려야 할 것이다(去兵.)"고 했다.
자공이 "만약에 부득이하게 꼭 버려야 한다면 둘 가운데에서 무엇을 가장 먼저 버려야 하겠습니까?(必不得已而去, 於斯二者何先?)"고 다시 묻자, 공자는 "먹을 것을 버려야 한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모두 죽기 마련이다. 백성들에게 신의를 잃으면 나라가 존립할 수 없다(去食. 自古皆有死, 民無信不立)"고 대답했다.
공자는 정치를 하는 데 있어서 먹는 것을 풍족하게 하는 것과 병사를 튼튼히 하는 것보다 백성들에게 믿음을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역설한 것이다.
이와 같은 취지에서 선비의 덕목으로 먹는 문제보다 바른 마음을 추구해야 한다는 내용의 글이 '맹자'에도 나온다. 맹자는 나라에서 백성들에게 고정된 일자리로서 항산(恒産)을 만들어 줘야 백성들이 하늘로부터 타고난 착한 마음씨인 항심(恒心)을 지킬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맹자는 보통 백성들에게는 고정된 일자리가 있어야만 인간이 본디 타고나는 착한 마음을 지킬 수 있다고 했지만, 학문에 전념하는 선비들은 고정된 일자리가 없이도 언제나 착한 마음을 지켜낼 수 있다고 해 선비와 일반 백성들의 자질이 본디 다르다고 했다.
이것은 맹자의 시대에는 지배계층으로서 군자나 선비가 있고 피지배계층으로서 보통의 백성이 있다는 전제 아래에서 그렇듯 차별적인 인식을 가지고 말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공자나 맹자가 군자는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살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은 아닐 것이다.
대체로 예로부터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사사로이 이익을 추구하며 자신의 신념을 버리고 남에게 굽신거리는 삶을 이어가는 경우가 많았지만, 공자나 맹자는 살아가면서 자신의 학문과 신념을 굽혀 세상에 아부하는 곡학아세(曲學阿世)의 삶을 살지 않았다.
공자가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 夕死可矣)"고 했던 것도 바른 도리에 대한 그의 굳은 신념을 강조하기 위해서 그렇게 말했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공자는 열다섯 살에 '지학(志學)'이라 해 배움에 뜻을 뒀고, 서른 살이 돼서는 '이립(而立)'이라 해 세상에 이름이 나기 시작했고, 쉰 세 살이 돼서 노(魯)나라에서 대사구(大司寇)라는 벼슬에 올랐다.
대사구는 당시 법률을 담당하는 최고 관리로서 이후 시대의 형조판서(刑曹判書)나 오늘날의 법무부 장관과 같은 직위라고 할 수 있다.
공자는 대사구에 취임해 7일 만에 당시 노나라의 정치를 어지럽히고 있던 소정묘(少正卯)라는 자를 처형하고 3일 동안 궁궐 마당에 시신을 걸어두어, 관리들에게 본보기로 삼게 하자 노나라의 정치가 안정됐다.
이것을 지켜본 이웃인 제(齊)나라는 노나라가 잘 다스려지는 것을 보고 두려워해 노나라 군주가 정사에 소홀하게 하려고 미녀들과 값나가는 재물을 보내주었다. 노나라 군주는 미녀들에 휘둘려서 조회를 열지도 않았다.
이를 본 공자는 노나라 군주에게 실망해 바로 사직하고 자신의 이상정치를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얻기 위해서 제자들과 함께 여러 나라를 돌아다녀야 했다. 이것을 이른바 주유천하(周遊天下)라고 하는 것이다.
백성들의 모범이 돼야 할 군자는 정의를 내세워야 한다고 했던 공자나, 먹을거리가 없어도 인간의 선한 마음을 굳건히 지킬 수 있는 것이 선비라고 했던 맹자의 말을 오늘의 우리 공직자들은 가슴 깊이 다시 한 번 새겨야 할 것이다.
◼ 군자와 소인의 가장 큰 차이점은?
君子固窮, 小人窮斯濫矣.
군자는 곤궁함을 굳게 버티지만, 소인은 곤궁해지면 아무 짓이나 한다.
이상을 찾아 떠돌아 다니는 사람, 누군가는 그를 낭만주의자라 부른다. 그러나 눈보라 치는 날 양식은 떨어져 가는데 수많은 식솔을 거느리고 직장을 찾아다니는 사람에게 유랑은 결코 낭만도 멋도 아니다. 그저 가야만 하니까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가는 길이 고달파도 중도에 그만둘 수도 없다. 어떤 난관이 가로막더라도 무조건 돌파해야 한다. 명분 때문에 떠나온 만큼 명분이 생겨야 멈출 수 있기 때문이다.
공자의 유랑생활은 낭만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참고 견뎌야 하는 고난의 시간은 성인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공자가 위(衛)나라를 떠나 송(宋)나라로 향할 때였다. 제자들과 함께 큰 나무 아래 앉아 예법(禮法)에 대해 문답을 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송나라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나무를 부러뜨리고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더니 막무가내로 공자를 죽이려고 했다. 그들은 당시 송나라에서 한창 권세를 휘두르고 있던 사마(司馬) 환퇴(桓魋)의 수하들이었다.
깜짝 놀란 제자들이 공자에게 다급하게 말했다. "빨리 몸을 피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당황한 제자들과는 달리 공자는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그러면서 엄숙하게 말했다. "하늘이 나에게 큰 덕을 내리셨는데, 환퇴 따위가 감히 나를 어찌할 수 있겠는가?"
환퇴가 무슨 이유로 공자를 죽이려 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이 사건은 공자의 방랑생활이 상당히 고달팠음을 말해줄 뿐이다.
공자가 나무 아래서 환퇴의 수하들에게 수난당한 이야기는 '공자성적도'에 '송인벌목(宋人伐木)'이라는 제목으로 생생하게 실려 있다.
이와 비슷한 사건은 또 있었다. 공자가 진(陳)나라에 이르러 광(匡)이라는 지역을 지날 때였다. 공자를 양호(陽虎)로 착각한 광 지역 사람들이 공자 일행을 급습해 행패를 부렸다. 공자의 생김새가 양호와 비슷해서 벌어진 일이었다.
광 사람들은 노나라의 실력자인 양호에게 깊은 원한을 품고 있었다. 당시 광 지역은 노나라 군대가 지배하고 있었는데 포악한 양호가 노나라 사람들을 다른 나라의 포로로 보낸 일이 있었다.
이 때문에 광 사람들은 양호를 보기만 해도 잡아 죽이려고 벼르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양호가 나타났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광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손에 몽둥이를 들고 나타나 양호로 오인한 공자를 죽이려고 했다.
이번에도 역시 공자는 흔들리지 않았다.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침착성을 잃지 않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문왕(文王)께서 이미 돌아가셨지만 그 문화의 전통이 내게 지워져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늘이 이 전통을 없애려 했다면 후손들은 이 문화에 참여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늘이 아직 이 문화를 버리지 않았으니 광 땅의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하겠는가?"
'논어' 자한편에 나오는 얘기다. 공자 자신이 태평성대를 이루었던 주(周)나라 문왕의 전통을 이어받았다는 자존감과 당당함이 들어 있는 발언이다. 이 사건 역시 '광인해위(匡人解圍)'라는 제목으로 '공자성적도'에 실려 있다.
학자들은 '송인벌목'과 '광인해위'가 같은 사건인데 달리 표현되었다고 해석한다. 공자를 신격화하려는 후대의 유학자들이 지어낸 '공자 신화'의 반복이라는 것이다. 신화든 사실이든 두 이야기 속에는 여러 나라를 유랑해야 하는 공자의 고단함이 묻어 있다.
공자의 수난은 위의 두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불행은 항상 예고 없이 찾아온다. 급작스럽게 들이닥친다. 한 번 올 때 결단을 내려는 듯 파도처럼 밀려온다. 가차 없고 냉정하다. 정처 없는 나그네에게는 더 빈번하게 찾아온다.
공자가 진(陳)나라에서 위(衛)나라로 가기 위해 포(蒲) 지역을 지날 때였다. 위나라의 반란군인 공숙씨(公叔氏)와 마주치게 되었는데 그들은 공자 일행을 가로막고 그곳을 지나지 못하게 했다.
그때 마침 공양유(公良孺)라는 제자가 자기 수레 다섯 채를 끌고 나타났다. 공양유는 용감하게 반란군과 맞서 싸우며 이렇게 말했다. "옛날에 내가 스승님을 따라 광 지역에 갔을 때 환란을 당했는데 지금 다시 이곳에서 이런 환란을 당하니 이것이 내 운명인 것 같다. 내가 스승님을 모시고 두 번이나 이런 환란을 당하느니 차라리 나가서 싸우다 죽는 것이 더 낫겠다."
그러면서 필사적으로 길을 뚫고 나갔다. 이에 겁먹은 포 지역 사람들이 길을 비켜 주었다. 공자는 겨우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 모습 또한 '오승종유(五乘從遊)'라는 제목으로 '공자성적도'에 실려 있다.
공자가 수난당한 이야기의 절정은 '재진절양(在陳絶糧; 진나라에서 식량이 떨어지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공자가 초(楚)나라 소왕(昭王)의 초빙을 받고 가는 중이었다. 초나라를 가려면 진(陳)나라와 채(蔡)나라를 지나가야만 했다. 진나라와 채나라는 공자가 초나라에 입국하는 것을 막으려 했다.
공자가 초나라에 등용되어 강국이 되면 인접한 두 나라가 위태로워질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군사를 보내 공자 일행을 포위했다. 시간이 흐르자 식량이 떨어졌다.
설상가상으로 제자들 중에 병에 걸린 환자가 속출했다. 그러나 공자는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태연한 모습으로 시를 읊고 거문고를 연주했다. '재진절양'은 그 상황을 그린 작품이다.
제자들에 둘러싸인 공자가 땅바닥에 앉아 있다. 공자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평소와 다름없이 제자들에게 수업을 하고 있다. 공자가 시를 읊자 제자들이 진지한 자세로 듣는다.
그들을 포위한 사람들이 아니라면 그저 한가롭게 소풍 나온 사람들의 야유회 장면을 그린 것 같다. '재진절양'은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운명을 향해 고개 숙이는 일이 없는 철학자의 평정심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런 공자를 제자라고 모두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위기에 처해서도 한가롭기만 한 스승을 보고 화가 난 자로(子路)가 공자께 툴툴거렸다. "군자도 곤궁해질 때가 있습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군자는 곤궁함을 굳게 버티지만, 소인은 곤궁해지면 아무 짓이나 한다."
'논어' 위평공 편에 나오는 얘기다. 이 상황에 대해 '여씨춘추'에는 좀 더 자세히 묘사돼 있다.
자로와 자공(子貢)이 곤궁함에 대해 불평하자 공자는 이렇게 얘기한다. "곤궁함은 쌀밥이 떨어지고 명아주국을 끓일 쌀가루가 없는 것이 아니라 군자가 도에 궁색해진 것을 일컫는 말이라"고 새롭게 정의한다.
지금 공자가 인의(仁義)의 도를 껴안음으로써 안으로는 자신을 살펴봐서 도에 꺼림칙한 것이 없고 어려운 일을 당해 덕을 잃지 않았으니 지금의 상황은 결코 곤궁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 얘기를 들은 자공은 지금까지 "하늘이 얼마나 높은지도 몰랐고, 땅이 얼마나 깊은지도 몰랐다"는 얘기로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들인다. 결국 이때의 수난은 자공이 초나라에 알림으로써 벗어날 수 있었다.
일련의 사건들은 공자가 69세에 고국으로 돌아올 때까지 14년 동안 계속됐다. 그러나 공자는 천하에 도가 행해지고 봉건적인 예악질서가 회복되기를 바라는 자신의 신념을 결코 저버리는 일은 하지 않았다.
그의 이상과 목적은 이상적인 봉건질서의 주창이었다. 모든 사람이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에서 본분을 다하는 것이 이상적인 사회라 여겼다.
그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공자는 끊임없이 성군(聖君)을 찾아다녔고 정치적 출구를 모색했다. 공자의 이런 모습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그를 비난했다. 이것은 공자가 유랑 중에 견뎌야만 했던 또 다른 환란이었다
◼ 군자고궁(君子固窮)
유사(有史) 이래 언제나 어렵지 않은 때는 없었을 것입니다. 단군 이래 제일 풍요롭게 산다는 요즘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이지요.
우선 전쟁과 평화의 갈림길에 선 남북정상회담과 연이은 북미정상회담 그리고 파도처럼 밀려온 청년 실업률, 또한 한미 FTA 개정 압박과 미국의 관세 폭탄, 또 여야의 극한대립과 무너진 사회도덕 등이 이제 참을 수 없는 경지까지 이른 것 같습니다.
그럼 이 미증유(未曾有)의 어려움을 어떻게 돌파하면 좋을까요? 논어(論語) 위령공편(衛靈公篇)에 '군자는 곤궁에 처해도 의연하다'는 뜻의 '군자고궁(君子固窮)'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원문을 보면 이렇습니다.
在陳絶量, 從者病, 莫能興.
子路慍見曰: 君子亦有窮乎.
子曰: 君子固窮, 小人 窮斯濫矣.
공자와 제자들이 진나라에 있을 때, 양식이 떨어져, 따라간 자들이 쇠약해져 일어나지 못했다. 자로가 화가 나서 공자를 뵙고 말하기를 "군자도 또한 곤궁함이 있습니까?" 그러자 공자는 "군자라야 본래 곤궁할 수 있으니, 소인은 곤궁하면 바로 넘쳐버린다."
군자는 어려움을 이겨냅니다. 내 뜻을 굽혀 세속의 편한 길을 따르느니 떳떳한 역경을 선택한다는 결연함이 담겨 있는 것이지요. 심지어 군자는 역경을 겪을수록 더 강해집니다.
그러나 소인은 다릅니다. 소인은 재물을 잃으면 안절부절 못하고, 목숨이 위태로워지면 혼비백산합니다. 죽음을 모면하기 위해서 무슨 짓이든 하기 때문에, 평소의 모습을 유지하지 못합니다.
넘쳐 버린다는 말은 강물이 강을 따라 흐르지 못하고 범람한다는 뜻입니다. 제 갈 길을 잃어버리는 것이지요.
미국의 커뮤니케이션 이론가인 폴 스톨츠는 '역경지수(Adversity Quotient)'를 자신이 처한 역경에 슬기롭게 대처하며 견뎌내는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역경을 이겨낼 수 있는 인내와 의지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군자는 곤궁에 처해도 의연하다는 '군자고궁'을 보며, 역경이 닥쳐도 더 단단해지고 의연한 자세를 가지는 사람이나 나라가 결국 역경을 극복해 낼 수 있다는 생각해 봅니다.
무슨 일에나 세상에 답이 없는 경우는 없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처해도 결국에는 다 통하게 돼 있는 것입니다. 가장 커다란 문제는 답이 없다고 포기하는 것이지요. 성공할 때까지 도전하는 사람이 군자이고 군자는 어려울 때 빛이 나는 법입니다.
그래서 '맹자(孟子)'는 하늘은 어떤 사람에게 대임을 맡길 때, 먼저 그 심지를 괴롭히고, 다음으로 근골(筋骨)을 힘들게 하며, 몸과 피부와 같은 육신을 배고프게 하고, 그 몸을 텅 비게 만든다고 했습니다.
또한 '주역(周易)'에 '궁즉통(窮卽通)'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궁하면 통한다'는 것이지요. 이 말은 원래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 간다(窮則變 變則通 通則久)"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도 개인이나 단체나 사회나 국가도 좋은 시절이 있었으면 또 어려운 시절이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변해야 합니다. 그 길만이 어려움과 위기를 극복하는 해법일 것입니다.
증자(曾子)는 '대학(大學)'에서 "남이 한 번 해서 잘하면 나는 백 번을 하고, 남이 열 번해서 잘하면 나는 천 번을 한다. 어떤 일도 이 방법을 잘해낸다면 아무리 몽매한 자라도 반드시 총명해질 것이고, 아무리 유약한 자라도 반드시 굳세져서 일을 잘해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기천(己千)' 정신이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결연한 의지를 '다브카(davca)'라고 합니다. 호전적인 적국들에 둘러싸여 있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그리고 척박한 자연환경 속에서, 이스라엘은 최고의 농업국가, 최고의 IT 강국으로 번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이스라엘로 날아든 로켓포 숫자가 많았던 해일 수록 외국인 직접투자(FDI)의 규모가 늘어났다 합니다. 일반적인 예상과는 정반대의 모습 아닌가요?
1991년 이라크 전쟁 당시의 인텔 이스라엘 공장 이야기는 아주 인상적입니다. 이 공장은 작은 규모의 하이테크 경제에 바탕을 두고 있는 이스라엘 경제가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늘 전쟁의 위협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만약 인텔이 위급 상황을 핑계로 가동을 멈추게 된다면 다국적 기업, 투자가들, 그리고 세계 시장에서 인텔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자체의 안전에 대한 우려가 급속히 퍼질 우려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공장 책임자인 프로먼은 미사일 공습이 시작되어도 회사의 문을 열겠으니 지원자에 한해 출근해도 좋다고 발표했습니다. 물론 출근하지 않는다고 해도 불이익은 없다는 말도 덧붙였지요.
어느 날 새벽 화생방 사이렌과 함께 미사일 공격이 시작됐습니다. 새벽 3시 30분 프로먼은 방독면을 쓴 채 공장으로 출근했습니다. 아니 그런데 그 시간에 75퍼센트의 직원들이 나와 일을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다음 날 이어진 미사일 공격 후에는 80퍼센트가 출근했습니다. 공격이 심해질수록 출근율은 더 높아졌다는 놀라운 얘기입니다.
'공격할 테면 해봐라. 우리는 오기로라도 더 성공하겠다.' 이런 이스라엘 사람들의 결연한 의지를 '다브카(davca)'라고 부른다고 하네요. 영어의 'despite'(그럼에도 불구하고)과 비슷한 의미라고 합니다. 우리도 개인이건 기업이건 국가이건, 힘든 여건 속에서 생존하고 번영하기 위해서는 이런 결연한 의지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지금 우리 사회는 극심한 반목, 청년들의 일자리, 전쟁에서 평화로 가는 봄의 길목에 서 있습니다. 이 시기를 돌파하지 못하면 우리는 다시 힘들고 어두운 세상으로 돌아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모든 방면에서 '군자고궁'의 정신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그야말로 맑고 밝고 훈훈한 덕화만발의 세상이 되어 어변성룡(魚變成龍)의 대국으로 성장하게 되지 않을런지요!
▶️ 君(임금 군)은 ❶형성문자이나 회의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뜻을 나타내는 입 구(口; 입, 먹다, 말하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尹(윤, 군)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음(音)을 나타내는 尹(윤, 군)은 손에 무엇인가를 갖는 모양으로 천하를 다스리다는 뜻과, 口(구)는 입으로 말, 기도하다의 뜻의 합(合)으로, 君(군)은 하늘에 기도하여 하늘의 뜻을 이어받아 천하를 다스리는 사람을 말한다. ❷회의문자로 君자는 '임금'이나 '영주', '군자'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君자는 尹(다스릴 윤)자와 口(입 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尹자는 권력을 상징하던 지휘봉을 들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다스리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렇게 직책이 높은 사람을 뜻하는 尹자에 口자가 결합한 君자는 군주가 명령을 내리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君(군)은 (1)친구나 손아랫사람을 친근하게 부를 때에 그 성이나 이름 아래에 붙여 쓰는 말 (2)조선시대, 고려 때, 서자(庶子) 출신인 왕자나 가까운 종친이나 공로가 있는 산하(傘下)에게 주던 작위(爵位). 고려 때는 종1품(從一品), 조선시대 때는 정1품(正一品)에서 종2품(從二品)까지였으며, 왕위(王位)에 있다가도 쫓겨나게 되면 군으로 강칭(降稱)되었음. 이를테면, 연산군(燕山君), 광해군(光海君) 등이다. 이와같은 뜻으로 ①임금, 영주(領主) ②남편(男便) ③부모(父母) ④아내 ⑤군자(君子) ⑥어진 이, 현자(賢者) ⑦조상(祖上)의 경칭(敬稱) ⑧그대, 자네 ⑨봉작(封爵) ⑩군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백성 민(民), 신하 신(臣)이다. 용례로는 세습적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최고 지위에 있는 사람을 군주(君主), 군주가 다스리는 나라를 군국(君國), 임금의 명령을 군령(君令), 임금의 자리를 군위(君位), 학식과 덕행이 높은 사람을 군자(君子), 처방에 가장 주되는 약을 군제(君劑), 임금의 총애를 군총(君寵), 임금의 덕을 군덕(君德), 임금으로써 지켜야 할 도리를 군도(君道), 임금으로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을 군림(君臨), 임금과 신하를 군신(君臣), 남에게 대하여 자기의 아버지를 이르는 말을 가군(家君), 엄하게 길러 주는 어버이라는 뜻으로 남에게 자기의 아버지를 일컫는 말을 엄군(嚴君), 남의 남편의 높임말을 부군(夫君), 남의 부인의 높임말을 내군(內君), 거룩한 임금을 성군(聖君), 어진 임금을 인군(仁君), 재상을 달리 일컫는 말을 상군(相君), 임금께 충성을 다함을 충군(忠君), 포악한 군주를 폭군(暴君), 임금의 신임을 얻게 됨을 득군(得君), 덕행을 베푸는 어진 임금을 현군(賢君), 군자의 세 가지 즐거움이라는 뜻으로 첫째는 부모가 다 살아 계시고 형제가 무고한 것 둘째는 하늘과 사람에게 부끄러워할 것이 없는 것 셋째는 천하의 영재를 얻어서 교육하는 것을 이르는 말을 군자삼락(君子三樂), 임금과 신하와 물과 물고기란 뜻으로 떨어질 수 없는 친밀한 관계를 일컫는 말을 군신수어(君臣水魚), 임금은 그 신하의 벼리가 되어야 함을 이르는 말을 군위신강(君爲臣綱), 임금과 신하 사이에 의리가 있어야 함을 이르는 말을 군신유의(君臣有義), 임금과 스승과 아버지의 은혜는 똑같다는 말을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 임금과 신하 사이에 지켜야 할 큰 의리를 일컫는 말을 군신대의(君臣大義), 군자는 근본에 힘쓴다는 말을 군자무본(君子務本), 군자는 큰길을 택해서 간다는 뜻으로 군자는 숨어서 일을 도모하거나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고 옳고 바르게 행동한다는 말을 군자대로행(君子大路行), 군자는 일정한 용도로 쓰이는 그릇과 같은 것이 아니라는 뜻으로 군자는 한 가지 재능에만 얽매이지 않고 두루 살피고 원만하다는 말을 군자불기(君子不器), 군자는 표범처럼 변한다는 뜻으로 가을에 새로 나는 표범의 털이 아름답듯이 군자는 허물을 고쳐 올바로 행함이 아주 빠르고 뚜렷하며 선으로 옮겨가는 행위가 빛난다는 군자표변(君子豹變), 군자의 덕은 바람과 같아서 백성은 모두 그 풍화를 입는다는 뜻으로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는 말을 군자지덕풍(君子之德風), 임금이 치욕을 당하면 신하가 죽는다는 뜻으로 임금과 신하는 생사고락을 함께 한다는 것을 이르는 말을 군욕신사(君辱臣死) 등에 쓰인다.
▶️ 子(아들 자)는 ❶상형문자로 어린 아이가 두 팔을 벌리고 있는 모양을 본뜬 글자로 아들을 뜻한다. 지금의 子(자)라는 글자는 여러 가지 글자가 합쳐져 하나가 된 듯하다. 지지(地支)의 첫째인 子와 지지(地支)의 여섯째인 巳(사)와 자손의 뜻이나 사람의 신분이나 호칭 따위에 쓰인 子가 합침이다. 음(音)을 빌어 십이지(十二支)의 첫째 글자로 쓴다. ❷상형문자로 子자는 '아들'이나 '자식'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子자는 포대기에 싸여있는 아이를 그린 것이기 때문에 양팔과 머리만이 그려져 있다. 고대에는 子자가 '아이'나 '자식'이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그러나 중국이 부계사회로 전환된 이후부터는 '남자 아이'를 뜻하게 되었고 후에 '자식'이나 '사람', '당신'과 같은 뜻이 파생되었다. 그래서 子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아이'나 '사람'이라는 뜻을 전달하게 된다. 그래서 子(자)는 (1)아주 작은 것을 나타내는 접미어 (2)신문(新聞), 잡지(雜誌) 따위 간행물(刊行物)의 어느 난을 맡은 기자(記者)가 자칭(自稱)할 때 쓰는 말 (3)십이지(十二支)의 첫째 쥐를 상징함 (4)자방(子方) (5)자시(子時) (6)글체에서, 그대의 뜻으로 쓰이는 구투(舊套) (7)글체에서, 아들의 뜻으로 쓰이는 말 (8)민법상에 있어서는 적출자(嫡出子), 서자(庶子), 사생자, 양자(養子)의 통틀어 일컬음 (9)공자(孔子)의 높임말 (10)성도(聖道)를 전하는 사람이나 또는 일가(一家)의 학설을 세운 사람의 높임말, 또는 그 사람들이 자기의 학설을 말한 책 (11)자작(子爵) 등의 뜻으로 ①아들 ②자식(子息) ③첫째 지지(地支) ④남자(男子) ⑤사람 ⑥당신(當身) ⑦경칭(敬稱) ⑧스승 ⑨열매 ⑩이자(利子) ⑪작위(爵位)의 이름 ⑫접미사(接尾辭) ⑬어조사(語助辭) ⑭번식하다 ⑮양자로 삼다 ⑯어리다 ⑰사랑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여자 녀/여(女), 어머니 모(母), 아버지 부(父)이다. 용례로는 아들과 딸의 높임말을 자녀(子女), 며느리 또는 아들의 아내를 자부(子婦), 아들과 사위를 자서(子壻), 아들과 손자 또는 후손을 자손(子孫), 아들과 딸의 총칭을 자식(子息), 남의 아들의 높임말을 자제(子弟), 십이시의 첫째 시를 자시(子時), 밤 12시를 자정(子正), 새끼 고양이를 자묘(子猫), 다른 나라의 법률을 이어받거나 본떠서 만든 법률을 자법(子法), 모선에 딸린 배를 자선(子船), 자손의 여러 대나 자손의 끝까지 또는 대대 손손을 일컫는 말을 자자손손(子子孫孫), 자자손손의 썩 많은 세대를 자손만대(子孫萬代), 자식은 아비를 위해 아비의 나쁜 것을 숨긴다는 뜻으로 부자지간의 천륜을 이르는 말을 자위부은(子爲父隱), 융통성이 없고 임기응변할 줄 모르는 사람을 일컫는 말을 자막집중(子莫執中), 자애로운 어머니의 마음을 일컫는 말을 자모지심(子母之心), 듣고 본 것이 아주 좁고 고루한 사람을 일컫는 말을 자성제인(子誠齊人), 자식은 아비를 위해 아비의 나쁜 것을 숨긴다는 말을 자위부은(子爲父隱), 공자가 구슬을 꿴다는 뜻으로 어진 사람도 남에게 배울 점이 있다는 말을 공자천주(孔子穿珠), 묵자가 실을 보고 울었다는 뜻으로 사람은 습관이나 환경에 따라 그 성품이 착해지기도 악해지기도 함을 이르는 말을 죽은 자식 나이 세기라는 뜻으로 이미 지나간 쓸데없는 일을 생각하며 애석하게 여김을 일컫는 말을 망자계치(亡子計齒), 부모는 자녀에게 자애로워야 하고 자녀는 부모에게 효성스러워야 함을 이르는 말을 부자자효(父慈子孝) 등에 쓰인다.
▶️ 固(굳을 고)는 ❶형성문자로 怘(고)는 고자(古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큰입구 몸(囗; 에워싼 모양)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古(고)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음(音)을 나타내는 古(고; 오래다, 옛날로부터의 습관, 그것을 그대로 지키다, 굳다)와 성벽을 둘러싸서(口; 에워싸는 일) 굳게 지킨다는 뜻이 합(合)하여 '굳다'를 뜻한다. 공격에 대비하여 사방을 경비하다, 굳다, 완고하여 융통성이 없다라는 뜻이다. ❷회의문자로 固자는 '굳다'나 '단단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固자는 囗(에운담 위)자와 古(옛 고)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囗자는 성(城)을 둘러싸고 있는 성벽을 그린 것이다. 固자에 쓰인 古자는 '옛날'이나 '오래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성벽은 외부의 침입을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단단하면서도 오래도록 유지되어야 했다. 固자는 그러한 의미를 담은 글자로 성벽이 오래도록 견고하다는 의미에서 '굳다'를 뜻하게 되었다. 그래서 固(고)는 ①굳다, 단단하다 ②굳어지다, 굳히다 ③완고(頑固)하다, 고루(固陋)하다 ④우기다(억지를 부려 제 의견을 고집스럽게 내세우다) ⑤독점(獨占)하다 ⑥가두다, 감금(監禁)하다 ⑦진압(鎭壓)하다, 안정시키다 ⑧평온(平穩)하다, 편안하다 ⑨스러지다, 쇠퇴(衰退)하다 ⑩버려지다 ⑪경비(警備), 방비(防備), 수비(守備) ⑫고질병(痼疾病) ⑬거듭, 여러 번, 굳이 ⑭굳게, 단단히, 확고히 ⑮반드시, 틀림없이 ⑯진실로, 참으로 ⑰항상(恒常), 오로지, 한결같이 ⑱처음부터, 원래, 본디 ⑲이미 ⑳이에, 도리어 ㉑성(姓)의 하나,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굳을 견(堅), 굳을 경(硬), 굳을 확(確), 굳을 확(碻), 굳을 공(鞏)이다. 용례로는 자기의 의견만 굳게 내세움을 고집(固執), 본디부터 있음을 고유(固有), 한 곳에 움직이지 않게 붙박는 것을 고정(固定), 굳이 사양함을 고사(固辭), 굳게 지킴을 고수(固守), 완고하고 식견이 없음을 고루(固陋), 일정한 모양과 부피를 가진 물체를 고체(固體), 굳게 붙음으로 어떤 상황이나 현상이 굳어져 변하지 않음을 고착(固着), 튼튼한 성을 고성(固城), 뜻을 굳게 먹음 혹은 그 뜻을 고의(固意), 굳게 지님을 고지(固持), 곤궁한 것을 잘 겪어냄을 고궁(固窮), 바탕이 단단하며 일정한 꼴을 지닌 형체를 고형(固形), 굳어지거나 굳어지게 함을 고화(固化), 튼튼하고 굳음을 확고(確固), 굳세고 단단함을 견고(堅固), 굳고 튼튼함을 공고(鞏固), 엉겨 뭉쳐 딱딱하게 됨을 응고(凝固), 굳세고 튼튼함을 강고(强固), 성질이 완강하고 고루함을 완고(頑固), 완전하고 튼튼함을 완고(完固), 말라서 굳어짐을 건고(乾固), 깨뜨릴 수 없을 만큼 튼튼하고 굳음을 뇌고(牢固), 뜻이 독실하고 굳음을 독고(篤固), 어리석고 고집이 셈을 몽고(蒙固), 곤궁을 달게 여기고 학문에 힘쓴다는 말을 고궁독서(固窮讀書), 내 마음의 기둥 곧 신념을 굳게 가지는 일이라는 말을 고아심주(固我心柱), 고집이 세어 조금도 변통성이 없음 또는 그 사람을 일컫는 말을 고집불통(固執不通), 확고하여 흔들리거나 움직이지 아니한다는 말을 확고부동(確固不動),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굳세고 튼튼하다는 말을 강고무비(强固無比), 일의 되어 가는 형세가 본래 그러하다는 말을 사세고연(事勢固然), 확고하여 흔들리거나 움직이지 아니한다는 말을 확고불발(確固不拔), 완고하여 사물을 바로 판단하지 못한다는 말을 완미고루(頑迷固陋), 사세가 그렇지가 아니할 수가 없다는 말을 세소고연(勢所固然), 이치가 본디 그러하다는 말을 이소고연(理所固然), 뿌리가 튼튼해야 가지가 무성하다는 말을 근고지영(根固枝榮) 등에 쓰인다.
▶️ 窮(다할 궁/궁할 궁)은 ❶형성문자로 穷(궁)은 통자(通字), 竆(궁)은 본자(本字), 穷(궁)은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구멍 혈(穴; 구멍)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躬(궁)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❷회의문자로 窮자는 '극에 달하다', '가난하다', '궁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窮자에는 여러 의미가 있지만 이를 종합해 보면 '매우 가난하다'이다. 窮자에는 그 가난한 정도가 잘 묘사되어 있다. 우선 窮자의 갑골문을 보면 宀(집 면)자에 人(사람 인)자, 呂(등뼈 려)자가 결합한 형태였다. 이것은 집에 뼈가 앙상한 사람이 있다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이후 금문과 소전을 거치면서 人자는 身(몸 신)자로 바뀌었고 宀자도 穴(구멍 혈)자로 바뀌면서 '궁하다'라는 뜻의 竆(궁할 궁)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본래 '궁하다'라는 뜻은 竆자가 쓰였었지만, 지금은 이체자(異體字)였던 窮자가 뜻을 대신하고 있다. 그래서 窮(궁)은 ①다하다 ②극에 달하다 ③마치다, 중단하다 ④궁하다(가난하고 어렵다), 궁(窮)하게 하다 ⑤가난하다 ⑥이치에 닿지 아니하다 ⑦외지다, 궁벽(窮僻)하다 ⑧작다, 좁다, 얕다 ⑨궁구(窮究)하다(파고들어 깊게 연구하다) ⑩연구하다 ⑪드러나다 ⑫궁(窮)한 사람 ⑬의지(依支)할 데 없는 사람 ⑭궁려(窮廬: 허술하게 지은 집, 가난한 집) ⑮나라의 이름 ⑯크게, 매우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곤할 곤(困), 다할 추(湫), 다할 극(極), 다할 진(殄), 다할 진(盡), 다할 갈(竭), 가난할 빈(貧)이다. 용례로는 일이나 물건을 처리하거나 밝히기 위하여 따져 헤아리며 이치를 깊이 연구함을 궁리(窮理), 어려움이나 난처함에서 더 이상 벗어날 수 없는 상태나 처지를 궁지(窮地), 곤궁하고 궁색함을 궁색(窮塞), 궁경에 빠진 적군을 궁구(窮寇), 생활이 곤궁한 지경을 궁경(窮境), 몹시 가난하고 궁함을 궁핍(窮乏), 한 해의 마지막 때를 궁랍(窮臘), 딱하고 곤란함을 궁곤(窮困), 속속들이 깊이 연구함을 궁구(窮究), 극도에 달하여 어찌 할 수 없음을 궁극(窮極), 북극 지방의 초목이 없는 땅을 궁발(窮髮), 외따로 떨어져 구석지고 몹시 으슥함을 궁벽(窮僻), 곤궁하게 살아가는 상태를 궁상(窮狀), 생활이 어렵고 궁한 백성을 궁민(窮民), 아주 어렵고 곤란하게 된 사람을 궁객(窮客), 더 할 수 없이 괴로움을 궁고(窮苦), 산 속의 깊은 골짜기를 궁곡(窮谷), 가난하여 살림이 구차함을 곤궁(困窮), 어디까지나 캐어 따짐을 추궁(追窮), 가난하여 궁함을 빈궁(貧窮), 공간이나 시간 따위의 끝이 없음을 무궁(無窮), 몹시 궁함을 극궁(極窮), 더할 나위 없이 곤궁함을 지궁(至窮), 곤궁한 것을 잘 겪어냄을 고궁(固窮), 외롭고 가난하여 궁핍함을 고궁(孤窮), 가난한 사람을 구하여 도와줌을 진궁(振窮), 가난이나 궁핍을 벗어남을 면궁(免窮), 가난한 친구와 친척을 일컫는 말을 궁교빈족(窮交貧族), 궁지에 몰린 쥐가 기를 쓰고 고양이를 물어 뜯는다는 뜻으로 사지에 몰린 약자가 강적에게 필사적으로 반항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궁서설묘(窮鼠齧猫), 피할 곳 없는 도적을 쫓지 말라는 뜻으로 궁지에 몰린 적을 모질게 다루면 해를 입기 쉬우니 지나치게 다그치지 말라는 말을 궁구막추(窮寇莫追), 피할 곳 없는 쥐를 쫓지 말라는 뜻으로 궁지에 몰린 적을 모질게 다루면 해를 입기 쉬우니 지나치게 다그치지 말라는 말을 궁서막추(窮鼠莫追), 곤궁해질수록 그 지조는 더욱 굳어짐을 이르는 말을 궁당익견(窮當益堅), 가난으로 겪는 슬픔을 이르는 말을 궁도지곡(窮途之哭), 막다른 골목에서 그 국면을 타개하려고 생각다 못해 짜낸 꾀를 일컫는 말을 궁여지책(窮餘之策), 막다른 처지에서 짜내는 한 가지 계책을 일컫는 말을 궁여일책(窮餘一策), 쫓기던 새가 사람의 품안으로 날아든다는 뜻으로 사람이 궁하면 적에게도 의지한다는 말을 궁조입회(窮鳥入懷), 궁년은 자기의 한 평생을 누세는 자손 대대를 뜻으로 본인의 한 평생과 자손 대대를 이르는 말을 궁년누세(窮年累世), 온갖 힘을 기울여 겨우 찾아냄을 이르는 말을 궁심멱득(窮心覓得), 가난한 마을과 궁벽한 땅을 일컫는 말을 궁촌벽지(窮村僻地), 가난하여 스스로 살아 갈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을 궁부자존(窮不自存), 아침부터 저녁까지 온 종일 일함을 일컫는 말을 궁일지력(窮日之力), 운수가 궁한 사람이 꾸미는 일은 모두 실패한다는 뜻으로 일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궁인모사(窮人謀事), 성정이 음침하고 매우 흉악함을 일컫는 말을 궁흉극악(窮凶極惡), 궁하면 무엇이든지 한다는 뜻으로 사람이 살기 어려우면 예의나 염치를 가리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궁무소불위(窮無所不爲), 하늘과 땅과 같이 끝간데가 없음을 일컫는 말을 궁천극지(窮天極地), 궁하면 변하게 되고 변하게 되면 두루두루 통해서 오래간다는 뜻을 이르는 말을 궁변통구(窮變通久), 이런 궁리 저런 궁리를 거듭하는 모양을 일컫는 말을 궁리궁리(窮理窮理), 울림을 미워하여 입을 다물게 하려고 소리쳐 꾸짖으면 점점 더 울림이 커진다는 뜻으로 근본을 무시하고 지엽적인 것을 다스림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궁향이성(窮響以聲)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