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년만의 해후
고등학교 동창 둘과 61년 만에 해후(邂逅)했다. 지난 1965년 2월에 졸업을 한 뒤 2026년 4월에 다시 만났으니 61년만의 재회였다. 10대 후반 무렵에 헤어졌다가 여든이 넘은 나이에 마주해도 옛 모습이 선명하게 남아있어 낯설지 않아 신기했다. 재학시절 반장이었던 K가 앞으로 건강이 어찌될지 모르는 상황이기에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추억여행을 한번 하자고 제의했다. 그런 취지를 배경으로 탄생된 자리였다.
지나치게 떠버릴 일이 아니기에 몇몇이 조용히 모여 모교 교정을 거닐면서 지난날을 되새겨보기로 약속한 날이 어제(2026년 4월 18일)이었다. K는 서울에서 나는 마산에서 KTX를 타고 오송역(五松驛)에 도착해 아침 9시 무렵에 만났다. 이 자리에 청주에 사는 친구 K와 L 두 사람이 차를 가지고 배웅을 나왔다. 이들 둘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 한 번도 마주했던 적이 없어서 무척 서먹서먹하리라고 예상했었다. 오랜만에 수인사를 나누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척 신경이 쓰이었다. 하지만 두서없이 떠오르는 옛 얘기를 격의 없이 주고받다보니 금세 60여 년 전으로 돌아가 동화되어 거리낄게 없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같은 반(班)에서 함께 졸업한 친구 54명 중에 14명이 작고하여 현재 40명이 생존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청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녔지만 특별한 연고나 친인척이 하나도 없다. 때문에 서울의 대학으로 진학한 뒤에는 찾을 일이 거의 없었고 어쩌다 일이 생겨도 숙식할 곳이 마땅치 않아 자꾸만 망설여졌다. 그렇게 점점 발길이 뜸해지면서 동창들을 만날 기회가 거의 없었다. 한편 대학원을 마치고 나서 청주대학교의 시간강사를 2년 동안 했었다. 하지만 그 시절엔 꼭두새벽에 서울의 집을 나서 청주로 내려와 강의를 끝내고 서둘러 귀가해야 했던 빠듯한 일정의 되풀이로서 친구들을 만날 시간적 여유가 거의 없었다. 그렇게 지내다가 1980년 봄부터 경남대학교에 적(籍)을 두면서 마산(馬山)으로 이사를 했다, 청주와는 거리가 먼 외진 곳으로 이사하면서 사실상 청주에 거주하는 친구들과 교류가 단절된 상태로 지내다가 지금에 이르렀다.
오송역에서 서울의 K, 마산의 나, 청주의 K와 L 등 넷이서 어울려 동승하고 청주 시내로 들어가는 길에서 이곳저곳을 지나가면서 낯설어하는 내게 열심히 설명해주었다. 하지만 한 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리면서 의례적으로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이다 보니 모교에 도착했다. 60여 년 전의 건물 대신에 신축된 현대식 교사(校舍)가 지리하고 있었다. 한편 교정에 잘 가꿔진 수목들은 더욱 우람해지고 고색창연한 자태를 자랑하며 수런거렸다. 지난 1965년 졸업한 내가 50회 졸업생이었으니 금년 봄 졸업생들이 111회일게다. 일제(日帝) 때부터 지금의 위치에 자리했기 때문에 본관 출입구 좌우로 줄지어 도열한 여러 그루의 향나무를 비롯해 수많은 고목들은 거의가 백년 이상의 노거수(老巨樹)이었다.
토요일이라서 학생들의 수업이 없고 교직원도 출근하지 않는 관계로 적막강산이었다. 하지만 싱그럽게 돋아난 연록의 잎을 위시해 이름 모를 꽃과 수목들이 모교를 찾아간 우리를 한껏 반겨줘 쓸쓸하거나 낯설지 않았다. 본관 출입구의 계단에서 지나가던 젊은이에게 부탁하여 모교 방문 기념사진을 한 장 촬영했다. 그렇게 두 시간 가량 교정 구석구석을 둘러보는 회상 여행을 했다.
푸르른 꿈을 끝없이 꿔야 했을 고등학교 3년 동안이 내 인생에 있어 가장 암담하고 견뎌내기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내일을 기대할 구석이나 꿈을 꿀 수 있는 여지가 없는 암울한 처지를 벗어날 길이 없어 모든 걸 포기하고 싶었다. 그런 참담한 상황에서 버텨내며 지탱하도록 힘이 되고 바람막이 역할을 해준 것은 친구들이다. 2학년 1학기 때부터 학교생활은 등한시하고 내 나름의 생각대로 활동했었다. 그 시절 비행을 저지르거나 엉뚱한 길로 빠지지 않도록 지켜보면서 용기를 북돋으며 감싸주던 친구들은 아직까지도 가장 믿는 정신적인 지주들이다.
청주의 친구 L이 점심을 대접했다. 대청호 쪽으로 한참을 달리다가 상당구청 부근에 자리한 솥뚜껑메기탕 집에서 식사를 마치고 문의(文義) 쪽으로 달려 대전의 신탄진 가까운 지점에 자리한 대청댐 휴게소를 찾았다. 휴게소 입구에 자리한 편의점(CU) 옆의 전문점에서 커피를 구입해 그늘진 벤치에 앉아 지난 얘기를 나누며 꽤나 긴 시간을 보냈다. 상당한 시간이 지났다고 여겨질 지음 가파른 계단 위의 언덕에 자리한 대청댐 전망대로 올라갔다. 왼쪽의 좁다란 계곡엔 대청댐을 축조(築造)하는 과정에서 쌓았던 거대한 석축(石築)이 웅장한 모습으로 나그네를 압도하고 있었다.
대청댐 전망대의 정면에 펼쳐진 잔잔한 수면이 장관이었다. 한편 호수 건너편 왼쪽으로부터 오른쪽으로 청남대(靑南臺)를 찾아 오가는 차량 행렬이 숲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기도 했다. 아울러 오른쪽의 상당히 깊숙한 중턱에 자리한 청남대의 모습이 수줍은 듯 살며시 얼굴을 내밀고 있다. 또한 전망대에서 왼쪽 강 건너편의 산 정상 언저리에 현암사(懸岩寺)*가 산비탈에 걸려 있는 것 같은 아찔한 모습으로 똬리를 틀고 있었다. 이 사찰 이름은 ‘바위 끝에 걸린 절’이라는 뜻으로 현암사라고 부른다는 전언이다. 한편 조선시대의 다양한 지리지(地理志)에 견불사(見佛寺) 혹은 현사(懸寺)라고 적시되어 있단다. 아울러 ‘바위 끝에 걸린 듯 독특한 건축 형태’라고 하여 ‘다람절’이라고도 부른다는 얘기다. 대청호를 둘러싸고 있는 온 산에 앞을 다투며 잎이 피어난 연록(軟綠)의 향연은 상춘객들의 넋을 잃게 만들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이런 내 마음을 매구같이 꿰뚫은 친구가 가을에 단풍이 물들 때 꼭 다시 오라고. 지금보다 열배 이상의 멋이 있어 황홀경을 한껏 즐길 수 있다는 귀띔이었다.
실 컷 즐기다가 내게 구경을 시켜 준다면서 낯 설기 짝이 없는 전원주택 단지를 빙빙 돌고 돌다가 맞춤한 시각에 오송역으로 돌아왔다. 청주의 두 친구는 집으로 돌아가고 나와 서울에 거주하는 K는 역사(驛舍)안으로 들어와 잠시 휴식을 취하다가 오후 5시 지날 무렵에 각자의 집으로 향하는 KTX에 몸을 실었다. 결코 짧지 않은 61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오늘 반가운 고교 동창 둘을 만나 그 시절로 돌아가 풋풋한 대화를 스스럼없이 나눌 수 있어 마냥 행복했다. 흐뭇한 마음에 조금 전에 헤어진 친구들에게 즐겁고 고마웠다는 문자 메시지를 몇 차례씩 되풀이해 날려 보내며 연신 실실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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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암사(懸岩寺) : 충북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대청호반로 149
《한맥문학》, 2026년 8월호(통권 431), 2026년 7월 25일
2026년 4월 19일 일요일
첫댓글 61년만에 만난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셨군요.
반백년 하고도 십년이 지나 만났으니 얼마나 반가웠을까요. 얼굴이 모를법 할텐데 옛 모습이 남아 있더라니 친하게 지낸 친구들었나 봅니다. 그런 친구들과 같이 모교를
방문 하였을때도 감회가 새로웠겠고 마주 앉아 식사를 하고 주변 관광을 하면서 옛이야기도 많았겠습니다. 60년 전으로 추억 여행을 다녀오신 교수님.
모교 나무가 건제하여 되어
아직까지 자리를 지키듯
친구분들과 내내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잘 읽었습니다.
교수님 친구분들과 즐겁고 뜻깊은 시간을 보내셔서 기쁩니다._()_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한 나날 되시길 빕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