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 꽃단지를 둘러
지난 주말 장마가 시작되어 비가 오락가락하는 유월 끝자락이다. 한 달 한 차례 트레킹을 나서는 문우와 동선을 함께 보낸 날이다. 장맛비가 폭우 수준이 아니라면 정한 나들이는 진행하기로 암묵적 동의가 있었다. 나는 행선지를 의논하면서 더위보다 강수로 인한 걷기에 차질 없는 정도면 좋을까 싶었다. 운전대를 잡아주는 한 지기 수고로움에 나머지 셋은 몸만 얹혀 가면 되었다.
아침 시간에 웃비가 내리지 않아 일정은 차질 없어 순조롭게 출발했다. 운전대를 잡은 지기는 팔룡동 댁에서 시동을 걸고 나를 포함 동행할 셋은 구암동 육교 근처에서 지기가 몰아온 차에 합류했다. 날씨가 맑은 상황이라면 기온이 올라갈 한낮은 무더워 트레킹 구간을 멀게 정할 형편이 못 되었다. 장마로 구름이 낀 날씨라 뙤약볕 더위는 염려하지 않아도 되어 걱정 한 가지는 들었다.
여항산 둘레 숲길을 걷기 위해 서마산에서 교외로 빠져나가 신당고개를 넘은 입곡저수지를 지나다 동선 순서를 바꾸어 법수면 강주리 해바라기 축제장으로 향했다. 한적한 농촌 마을에서 고령의 주민들은 해바라기를 가꾸고 지방자치단체가 후원해 한바탕 축제가 펼쳐질 현장이었다. 해바라기 축제는 올해 열한 번째였는데 코로나로 3년 쉬다 다음 주말부터 열흘간 열릴 예정이었다.
강주리는 남강이 멀지 않은 곳이었으나 야트막한 법수산 자락의 전형적인 농촌으로 논보다 밭이 많은 지리적 특성이었다. 십여 년 전부터 지역 주민들이 마을을 에워싼 밭에다 해바라기를 심어 꽃을 피워 외지에서 관광객이 찾아오게 했다. 관람료에 해당하는 3천 원 입장료는 지역 사랑 상품권으로 대신해 현지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구입하거나 먹거리 장터 쿠폰으로 삼는다고 들었다.
우리가 강주리를 찾아갔을 때는 공식 축제 기간이 아니라 입장료는 받지 않았고 마을회관까지 차량 진입이 가능했다. 마을 뒤 낮은 구릉으로 오르니 여러 구역으로 나뉜 밭에 심은 해바라기가 꽃을 피우려는 즈음인데 모두 다 피면 수천수만 송이가 될 듯했다. 일부 밭뙈기에 심은 참깨나 콩과 같은 농작물을 잘 가꾸었으나 해바라기꽃도 그에 못지않게 정성을 들여 꽃이 피고 있었다.
해바라기 꽃단지에는 군데군데 원두막이 세워지고 풍차도 한 대 돌고 있어 문득 빈센트 반 고흐가 떠올랐다. 해바라기 정물화를 즐겨 그린 유명한 화가가 빈센트 반 고흐 아니던가. 그는 네덜란드 목회자 집안 아들로 태어나 말년은 프랑스 남부 아롤에서 작품활동을 했다. 고흐는 생전에 궁핍과 정신질환으로 불우한 생을 마쳤지만 그의 작품들은 사후에 재평가되어 주목받은 화가다.
우리 일행은 강주리 해바라기 꽃단지를 둘러보고 악양 둑방으로 옮겨갔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둑으로 오르니 남강이 악양루 벼랑을 휘감아 흐르고 강 건너는 의령 적곡의 긴 제방이 원호를 그렸다. 그곳에도 행정 관서에서 파견 나온 인부들이 여러 가지 꽃모종을 심고 있었다. 둑방 쉼터에서 전날 내가 거제 국사봉에 올라 따온 곰취잎으로 족발을 싸서 먹으며 환담이 오갔다.
악양 둑방에서 들판을 가로질러 가야읍을 지나 여항의 진등재 근처 식당을 찾아 맛깔스러운 생선구이와 돼지두루치기로 점심상을 받았다. 식후 식당을 나오니 장마철 날씨답게 성근 빗방울이 들었다. 날씨가 궂을 줄은 예상한 바라 남은 여정은 봉성저수지로 들어가 둘레길에 조성된 수국꽃을 완상했다. 거기 수국은 푸른색이 다수였고 일부는 산수국이었는데 앞으로 더 기대되었다.
저수지 둘레길을 걷고 버드내로도 불리는 별천계곡으로 들어갔다. 버드내는 버드나무가 선 냇가라 ‘유천(柳川)’을 우리말로 부른 지명이고, 별천은 조선 중기 함주 고을 원님으로 부임한 정구가 그곳 계곡에 드니 이태백 ‘산중문답’에 나온 ‘별유천지비인간’과 같이 빼어난 곳이라 붙인 땅이름이다. 넷은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신발을 벗고 계곡물에 발을 담갔더니 시원함이 더했다. 23.0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