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카페 프로필 이미지
THIS IS TOTAL WAR
카페 가입하기
 
 
 
카페 게시글
서양사 비잔틴 제국 비잔티움 제국의 역사 -2-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O-di 추천 0 조회 673 06.08.05 22:02 댓글 11
게시글 본문내용
 
다음검색
댓글
  • 06.08.06 05:33

    첫댓글 무플 방지 위원회에서 나왔습니다!!(탕~) 장난이구요.. 로마 후기는 보지 않아서 그렇지만 문제가 심각하군요..

  • 06.08.06 11:57

    디오황제를 높게 평가하긴 하지만... 개혁의 결과가 않좋았던것이 아쉽고 만년의 생이 나쁘게 끝난것이 너무 불쌍할정도죠... 하나밖에 없는 딸과 아내가 자신의 후계자라고 할수있는 동방정제 갈레리아누스의 친구에게 죽음을 당한후에 어떤 충격을 받았을런지... 위인의 만년도 훌륭한 사람은 정말 찾기힘든듯합니다

  • 06.08.08 13:14

    디오 황제 노년이 정말 안됐죠..... 에휴....

  • 06.08.06 13:21

    디오의 업적과 평가에 대한 것은 좀더 신중해야 겠지요. 저는 일단은 로마제국의 복원이란 점에선 디오의 개혁은 깊은 통찰력이 약간 결여되 보이는 단기적이거나 의도한 바와는 다른 결과를 낳아버린 개혁이라 봅니다. 그가 시도한 것중 비잔티움으로 이어지고 오래 살아남는 것이 있긴 하지만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어서라기 보다는 그것을 이어받은 권력자들의 이해와 생각을 크게 반영한 결과라 봅니다. 그렇다고 해서 디오를 비판하기만 할 수 없는 것이 당시 제국의 상황이 AD2세기로 돌려 놓기에는 안팍의 상황이 너무나 달라졌다는 점 입니다. 이런 것들을 생각해볼때 디오에 대한 평가는 콘스나 유스보다는 좀더 신중해야 하지 않을까...

  • 06.08.06 23:19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개혁은 고대 로마제국을 "보편제국"으로 만들어가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도 보아야 할 것입니다. 강력한 중앙집권화를 실현하고 단일 법, 단일 명령, 단일 조세가 제국 전역에 시행하기 위해 노력하고, 통합을 위한 노력을 한 점은 높이 평가해야 합니다. 유스티니아누스 1세도 "보편제국"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 시작은 바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였다는 점은 정말 중요한 점일 것입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고대 로마를 복원하려는 것보다 시대의 흐름을 알고 그에 따라 "보편제국"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은 매우 중요합니다.

  • 06.08.09 02:45

    보편국가라 말씀하셨지만 그 이전 로마제국은 보편국가가 아니란 말씀이신지? 단일한 법, 단일명령을 드셨는데 이것이 진정 이전의 로마제국과 그리도 달랐는지 설명좀 해주십시오. 조세제도의 경우 비잔티움의 조세의 특징은 너무나 복잡했다는 것으로 압니다.

  • 06.08.09 13:55

    디오클레티아누스는 기존의 로마 제국의 속주Provincia를 개혁했습니다. 과거 로마 제국의 속주는 그 크기가 넓고 많은 자치를 허용받았습니다. 그러나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원로원 속주를 폐지시키고 속주에 편입되지 않았던 이탈리아를 8개의 속주로 바꾸어 다른 속주처럼 편성시킵니다. 즉, 이전에 있던 황제 속주, 원로원 속주, 본국 이탈리아 등 여러 지방 통치 단위를 일원화 시켜 단일 명령권 안에 들게 했다는 것이죠. 또한 이전의 로마 제국은 속주를 총독Proconsul이 민정과 군정을 같이 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이를 개혁하여 군이 주둔하는 속주에 장군Dux이라는 직책을 만듭니다.

  • 06.08.09 14:03

    그래서 그 후부터는 민정과 군정이 분리되었으며, 이렇게 통치조직을 세분화 시킨 덕분에 가장 말단의 행정단위인 마을까지도 황제의 단일 명령권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미 로마제국은 212년에 제국내 모든 자유인에게까지 시민권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이후에도 이전에 속주민이었던 시민들은 본국의 시민과는 많은 차별을 받고 있었습니다.(우리나라가 근대화되면서 법적으로는 신분제도를 철폐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사회에서는 오랫동안 남아있던 것과 비슷하죠.) 이러한 차별을 없애는 측면에서도 앞서 말했던 통치 체제 일원화가 큰 기여를 합니다. 또한 이는 단일 법이 모든 행정단위에 동등하게 적용되게 했습니다.

  • 06.08.09 14:12

    마지막으로 조세 제도는 이전의 로마 제국은 속주정부의 자율권을 중시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는 3세기의 인플레이션으로 이전의 화폐제도가 붕괴됩니다. 이때는 각 속주별로 납부 액수를 정하는 것은 각 속주 정부의 관할이어서 자의적인 해석에 따라 그 액수가 천차만별이 되었습니다. 또한 이전의 로마 제국은 인플레이션에 적응하기 위해 세금의 액수가 증가 되어야 했고, 이에 정규적인 세금은 그대로 둔채 비정규적인 세금들을 증설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비정규 세금은 침공 위협이 큰 속주일수록 더 커지는 형태가 되었습니다. 즉, 조세제도가 형평성에 어긋나는 현상이 발생한 것입니다.

  • 06.08.09 14:18

    속주별로 조세제도의 차이가 심해지자,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과세의 기준을 새로이 정해 전 제국에 걸쳐 시행합니다. 토지나 재산은 유굼Iugum이 기준이었고 생물일 경우에는 카푸트Caput가 기준이 되었습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미리 제국 전체의 1년 예산을 산출하여 1명의 시민이 부담할 세금액수를 유굼과 카푸트를 기준으로 결정했죠. 그리고 앞서 말했던 통치 체제 일원화는 이탈리아의 시민들만 직접세를 면제 받던 권리를 없애고, 모든 속주에 동등한 조세제도를 시행시키게 함으로써 전 제국에서 단일한 조세제도가 시행되도록 했던 것입니다.

  • 06.08.06 23:24

    물론 몇몇 사람들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고대 로마의 혼을 없애버렸다고도 합니다. 하지만 그는 중세 국가가 가장 중요시했던 "보편주의"를 가장 먼저 실시한 사람이었고, 그것을 이용해 로마 제국의 위대함을 다시한번 보여주었습니다. (중세에는 이러한 보편제국-혹은 보편국가-를 추구했던 3가지 세력이 있는데 바로 중세 로마제국과 신성로마제국, 교황청이 그것입니다.) 고대 로마의 면을 완전히 사라지게 했다고 해서 과연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를 비판할 수 있을까요? 그것이 과연 잘못된 일일까요? 추억에 빠져 시대에 역행하는 행동이 과연 옳은 걸까요? 과거로의 회귀도 중요하지만 새시대를 여는 것은 더욱 어렵고 중요합니다.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