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유전자 분석으로 암을 치료한 최초의 사람이거나 이런 방법을 썼음에도 죽은 마지막 사람 중 한 명이 될 것이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사망 전인 2011년 중반 자신의 췌장암의 원인을 밝히기 위한 개인 유전체 분석에 들어가면서 한 말이다. 개인 유전체 분석은 당시로선 혁신적인 의술. 그는 이를 통해 암의 원인 유전자 변이를 찾아내는 데 성공했지만 치료제가 없어 끝내 죽음을 맞았다.
생의 마지막 순간 그의 시도는 절반의 성공에 그쳤지만 결국 의료에서 개인 유전체 분석 시대를 여는 또 다른 혁신의 도화선이 됐다.
잡스가 2011년 당시 자신의 유전체 분석에 들인 돈은 10만 달러(1억 1385만원). 6년 여가 지난 지금, 누구라도 몇 십만원의 돈만 내면 잡스와 똑같은 개인 유전체 분석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개인 유전체 분석 비용이 반도체에서 ‘무어의 법칙’보다 더 가파른 속도로 떨어지면서다. 세계 최대 유전체 분석 장비 업체 일루미나는 지난 1월 새 플랫폼 ‘노바섹(Novaseq)’을 발표하면서 “개인 유전체 분석 비용은 머잖아 100달러 선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했다.
유전자 분석 업체 연구원들이 실험실에서 분석 작업을 하고 있다. ⓒ 테라젠이텍스
유전체 분석을 통해 자신과 가족의 질병 위험과 건강 이상 여부를 파악해 미리 대처하는 정밀의학 시대다.
개인 유전자 분석 서비스(PGS, Personal Genetic Service)는 2000년 중반 미국에서 시작됐다. 23앤미, 파운데이션 메디신, 패쓰웨이 지노믹스는 이 분야의 대표적인 회사들이다. 국내에서는 테라젠이텍스, DNA링크, 제노플랜 등이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PGS 시장 개척자 23앤미는 현재 ‘혈통 분석 서비스(ancestry service)’를 99달러(11만 2700원)에, ‘헬스 및 혈통 분석 통합 패키지 서비스(health+ancestry service)’를 199달러(22만6600원)에 온라인과 약국을 통해 제공 중이다. 통합 패키지에는 유전적 건강 위험(genetic health risk), 보인자(carrier), 웰니스(wellness), 신체 특질(traits) 등에 대한 분석이 포함돼 있다.
혈통 분석은 조상이 어느 대륙에서 왔는지, 유전적으로 어떤 민족 집단에 속하는지(haplogroup), 네안데르탈인 유전자가 핏속에 얼마나 섞여있는지 등을 알려준다. 다문화 사회인 미국은 조상과 혈통에 대한 관심이 높다.
유전적 건강 위험 분석은 특정 질병의 위험을 예측하는 것으로, 파킨슨병, 알츠하이머형 치매, 알파-1 항트립신 결핍증, 유전성 혈전 기호증 등 식품의약국(FDA)의 허가를 거친 검사들이 대상이다. 보인자 검사는 낭포성 섬유종, 겸상적혈구 빈혈증, 유전성 난청, 블룸 증후군 등 40여 가지 희귀 유전질환을 유발하는 원인 유전자의 보유 여부를 알려준다.
웰니스 분석을 하면 술 마시면 얼굴이 얼마나 붉어지는지, 우유를 잘 소화하는지, 카페인을 잘 대사하는지 등을 파악할 수 있다. 신체적 특질 분석을 통해서는 대머리가 어느 부위에 나타날지, 머리카락 곱슬 정도는 어떨지, 아스파라가스 향기를 잘 맡는지, 단맛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등을 알 수 있다.
유전자 분석 결과를 보여주는 리포트 ⓒ 테라젠이텍스
국내 업체들이 제공하는 유전체 분석 서비스 유형은 23앤미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검사 항목은 매우 제한적이다. 이는 보건복지부가 2016년 6월 질병 예방 목적 유전자 검사의 소비자 직접 판매(DTC)를 허용하면서 분석 대상을 12개 항목과 46개 유전자로 적시한 데 따른 것. 12개 항목은 체질량지수, 중성지방 농도, 콜레스테롤, 혈당, 혈압, 색소침착, 탈모, 모발 굵기, 피부 노화, 피부 탄력, 비타민 C 농도, 카페인 대사다.
국내 업체들의 유전체 분석 서비스는 크게 질병 예측성 검사와 헬스 및 뷰티케어 검사로 나뉜다. 전자는 의료기관을 통해, 후자는 약국이나 온라인을 통해 제공한다.
질병 예측성 검사는 각종 암종과 만성질환의 위험률, 약물 및 식품에 대한 반응도, 신체적 특질, 희귀질환 보인자 여부 등을 분석해 발병 등에 따른 위협에 대처토록 한다. 예컨대 유방암이라면 ESR1(에스트로겐 리셉터1), 위암이라면 IL17A(인터루킨)이라는 표지자를 추적해 암 발생 위험을 예측한다. 비만에 대해서는 체질량과 관련 있는 FTO 유전자 변이를 체크한 뒤 고위험군인 경우 맞춤 식단이나 건강 관리법을 함께 알려 준다.
검사 결과는 중점관리, 주의, 관심(보통), 양호 등 3~4단계로 평가하고, 평균 유병률 대비 상대적 위험도를 알려준다. 검사 기간은 5일~8주, 비용은 30만~200만원 선.
헬스 및 뷰티케어는 온라인과 약국을 통해 개인들에게 직접 판매하는 DTC 서비스다. 암과 같은 심각한 질병보다는 체질량지수, 콜레스테롤, 피부노화, 색소침착, 탈모 등 주로 건강 또는 외모와 관련된 유전적 특성을 분석해 맞춤 솔루션을 제공하는 게 목적이다. 검사 기간은 5~10일, 비용은 10만~15만원 선.
개인 유전체 분석은 세계적으로도 우려와 기대가 교차하는 예민한 이슈다. 분석 결과가 부정확하거나 오남용 되는 경우 불필요한 치료를 받거나 또는 반대로 꼭 필요한 치료임에도 이를 기피하는 등 부작용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서다.
유전자 분석 키트 모습 ⓒ DNA링크
분석 방식 자체에도 한계가 있다. 23앤미 등 상당수 업체들은 SNP(단일 염기 다형성) 방식으로 검사를 하는데, 이는 전체 유전자의 극히 일부분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라 분석 결과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질병 발생의 복잡한 메커니즘에서 비롯한다. 당뇨병 등 대부분의 질병은 특정 유전자 이상뿐만 아니라 여러 환경적인 요인, 생활습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어서 유전자 분석 만으론 질병 전체를 설명할 수 없다.
질병은 사후 대처보다 발병을 미리 막는 예방이 최선이다. 개인 유전체 분석은 특정 질병이나 건강 위험을 사전에 파악해 대처토록 한다는 점에서 정밀의료, 예방의료 등 미래의료 구현의 핵심 요소로 주목받는 분야다. 개인 유전체 분석에 대한 오남용 등 우려가 지나치다는 반론도 나온다. 개인 유전 정보를 분석한 사람들을 조사한 결과, 의사와 상의 없이 처방약을 바꾼 경우는 1%도 안 된 반면, 상당수 사람들은 위험도가 높게 나온 질병에 대해 관심을 갖고 식습관을 개선하거나 운동을 시작했다는 보고가 나온 바 있다.
유전자 분석 결과를 담은 리포트의 일부 ⓒ 테라젠이텍스
첫댓글 첨단기술이 생명공학을 어디까지 끌고 갈 것인지 어지럽네요.
정말 어디까지 발전할지
신의 영역에 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