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사는 한 자문관으로부터 저녁 초대를 받았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복도에 생선 굽는 냄새가 솔솔 풍겨온다. 집으로
들어서니 앞치마를 두르고 부엌에서 나와 우리를 맞아준다. 상차림을 보니 준비한 반찬이 대여섯 종류나
된다. 김치, 가지 요리,
소고기 장조림, 병어구이, 멸치 고추 조림에
미역국이다. 한두 가지만으로도 충분할 텐데 이
많은 음식을 어떻게 장만했느냐고 했더니 인터넷이 발달한 덕에 카카오톡으로 한국에서 공수했다고 한다.
외국에서 혼자 살다 보면 음식은 살아있기 위해 대충 먹게
되는데 최근 들어 이런 분위기가 조금은 바뀌었다. 어느 날 이곳에 파견된 자문관들이 모여 몸무게 얘기가
나왔는데 배우자를 동반한 사람들만 살이 찌고 혼자 사는 사람은 심한 경우 5 내지 6킬로 정도가 빠졌다고 한다. 갑자기 살이 많이 빠지는 경우 건강에
이상 신호가 오는 것 아닌가 충격을 받고 자문관들이 살아 있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찌기 위해서 음식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그동안 주로 해먹는 요리로는 사골국, 꼬리곰탕, 갈비탕 등 한번 장만하여 며칠을 먹을 수 있는 요리나
손쉽게 요리할 수 있는 안심 구이 등이었다. 이곳의 쇠고기는 맛은 없고 질기지만 가격은 매우 저렴하다. 이곳 사람들은 고산지대라서 열량 소모가 많으므로 고기류를 많이 먹는 편이고 모든 부위를 먹는다. 그러다 보니 우리도 손쉽게 재료를 구할 수 있다.
이곳에서 요리하는데 다행인 것은 인터넷을 통해 쉽게 레시피를
구할 수 있다는 것과 음식 재료가 새우젓과 같은 젓갈류 등 몇 가지를 제외하고 거의 다 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구하지 못하는 것은 직접 만들기도
한다. 심지어 이곳에 없는 미나리와 쑥 같은 재료는 한국에서 직접 뿌리를 가져와 기르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곳에서 멸치는 구할 방도가 없다. 고추장이나 된장과 같은 장류는 구하거나 만들 수 있지만 한국에서 먹는 맛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중국산 고춧가루를 쓰기 때문일 게다. 또한 콩나물 기르기를
시도했으나 발아가 되지 않고 콩이 썩기만 하고 싹을 틔우지 못했는데 그 이유를 모르겠다.
또한 고산지대라서 기압이 낮아 물이 끓는 온도가 낮아
쫄깃쫄깃한 국수 삶기 비법을 체득하지 못하여 팅팅 불어터진 국수를 먹는다. 그래서 식당에서조차도 밀가루
국수를 쓰지 않고 파스타 면을 사용하기도 한다. 현지 교민은 압력솥을 이용하여 쫄깃하게 국수를 삶거나
라면을 끓이기도 하는데 아직 그 비법을 전수받지 못했다.
요즘 이곳에서 남자들이 여자도 아니고 만나면 맛있게 요리하는
방법을 비롯한 음식에 관한 수다를 떨고 있다. 예를 들면 밥을 해서 냉동실에 보관하였다가 해동해서 먹는
법, 찌개 끓이는 법, 고기 굽는 법, 새우젓 담그는 법 등등… 옛날에 어머님이 남자가 부엌에 들어오면
떨어지는 게 있다고 쫓아내곤 하셨는데 이러다 거시기 떨어지는 것 아닌지 매우 걱정된다. 우렁각시가 있다면
이런 걱정은 없어질 텐데 하고 하늘에서 두레박 타고 우렁각시가 내려오길 기대하고
산다.
오늘은 냄새가 퍼져가는 염치를 무릅쓰고 얼마 전 구해온
청국장을 끓여야겠다.
2013. 10. 25.
저는 에콰도르의 정부기관에 코이카 중장기자문단으로 파견되어 중소기업 및 창업과 관련하여 자문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첫댓글 청국장도 있네요. 맛있게 드시고 건강하시 길 기원합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우렁각시 말고 지상에서 좋은 인연 맺으시 길 ...
아고 아고 내가 가서 우렁각시 해 주고 싶어라.
저, 음식해 놓고 사람 불러들이는 거 무지 좋아합니다.
문제는 각시가 너무 늙었다는 것, 아마 우렁각시는 젊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