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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2월초, 예년보다 빨리 설날이 찾아왔다. 민족대이동의 날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재휘의 가족들도 매해 광주에 있는 큰댁에서 명절을 지냈다. 그리고 올해도 예외는 아니었고, 덩달아 우현도 오랜만에 서울본가에서 지내기로 했다.
도로가 밀릴 것을 우려해 우현은 명절연휴보다 이틀이나 빨리 집으로 올라갔고, 재휘 네도 하루 일찍 광주로 내려갔다. 이번 설 연휴는 토요일부터 수요일까지의 황금연휴였기 때문에 느긋하게 광주에 있다가 외가인 천안까지 들른 재휘 네는 연휴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이틀 후. 우현역시 다시 재휘의 집으로 내려왔다.
서울에서 기차를 탔다는 연락을 받고 재휘는 날듯이 역으로 출발했다. 장장 열흘가까이 보지 못했던 우현이었다. 매일같이 얼굴 맞대고 몸 비비며 살다가 한참을 떨어져 지내려니, 정말 보고 싶어서 미친다는 것이 어떤 건지 슬슬 알아가는 중이었다.
한편으로는 이토록 애타는걸 보니, 가끔씩은 떨어져 지낼 필요도 있구나- 라며 새로운 연애 공부를 한 재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들뜬 기분으로 역내에 앉아있던 재휘는 멀리 홈에서 나오고 있는 우현을 발견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붕붕 손을 흔드는 재휘를 발견한 우현 역시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섰다.
“잘 지냈어? 맛있는 거 많이 먹었고?”
-끄덕
“우와- 이게 다 뭐야! 무겁지. 이리 줘”
-도리도리
“왜! 나 짐 하나도 없단 말이야. 빨리”
마지못해 우현이 들고 있던 것 중 하나를 내밀자 재휘가 냉큼 받아들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가벼운 무게에 얼굴을 팍 찡그리며 우현을 째려본다.
“제일 가벼운 거 준거 아니지?”
-도리도리
“그래…? 알았어. 얼른가자. 부모님은 다 나가셨고, 유재호씨가 널 목 빼고 기다리신다”
“……?”
재호형이 왜 나를? 이란 표정으로 자신을 보는 우현에게 재휘가 불만스럽게 말했다.
“몰라. 아무튼 둘이 너무 친해졌단 말이지. 이번에 친척들 순회한번 하면서 군대 간다고 용돈도 많이 받았겠다- 너랑 신나게 노시겠단다. 아니, 지 친구들은 내버려두고 남의 애인을 뺏어다가 논대? 웃겨 정말”
물론 재호가 둘의 관계를 알고 있다는 사실을 여전히 우현은 몰랐지만, 재휘는 이래저래 맘에 안 든다는 듯 궁시렁거렸다. 가만히 그걸 보고 있던 우현은 남몰래 한숨 쉬며 고개를 내저었다.
“일단가자. 으- 춥다”
한참을 불만을 토로하더니 앞장서는 재휘의 뒷모습을 보던 우현의 표정이 순간 침울해졌다. 하지만, 금세 어두운 기색을 지우고 재휘를 따른다. 발걸음이 무겁다.
“으아- 춥다”
찬바람이 얼마나 쌩쌩 불어대는지 후드까지 겹겹이 뒤집어쓴 재휘가 발을 동동 구르면서 집안으로 들어섰다. 이제 조금은 따뜻해져도 좋을 텐데 여전히 한파가 기승을 부린다.
운동화를 냉큼 벗고 따뜻한 실내로 들어선 재휘는 분명 달려 나와 줄줄 알았던 우현의 얼굴이 보이지 않자 고개를 갸웃했다.
외출했나싶어 핸드폰을 꺼내드는데 집안에서 작은 말소리가 들렸다. 자신이 집을 나설 때 집에는 우현과 자신의 형뿐이었으니 당연히 재호의 목소리라고 생각한 재휘가 형의 방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네…… 대… 지마”
누군가가 말을 하고 있었지만, 완전히 닫히지 않은 문사이로 간신히 들리는 소리인지라 무슨 뜻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으니까, ……면 좋겠지”
“……”
“아무튼 선택은 네가 하는 거…”
“으악!”
“……. 유재휘? 뭐하냐 너”
“아, 그게…”
분명 들리는 목소리는 재호였고, 전화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분명히 상대는 우현일거라는 생각이 든 재휘가 호기심에 살금살금 다가가 문에 귀를 갖다 대려는 순간-
재호가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덕분에 도둑질하다 들킨 것 마냥 토끼눈을 한 재휘가 뒷걸음질 친다. 그런 재휘를 굳은 얼굴로 내려다보던 재호가 한숨을 푹- 내쉬더니 재휘의 어깨를 두어번 쳤다.
“힘내라. 울지 말고”
“어? 무슨…”
막 변명거리를 말하려던 재휘는 알아 들을 수 없는 말을 하고는 주방으로 쏙 사라지는 재호의 꽁무니를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방안에서 골똘히 무언가 생각에 잠겨있는 우현을 발견했다.
역시 대화 상대는 우현이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
“성우현?”
“……. …?!”
정말 깊게 빠져있었는지 몇 번을 부르고서야 우현의 고개가 들린다. 그리고는 전혀 재휘가 온 것을 몰랐다는 듯 눈을 깜빡이며 재휘의 얼굴을 멍하니 마주봤다.
“무슨 고민 있어? 왜 그래?”
“……”
“형이랑 무슨 얘기한거야?”
-도리도리
재휘의 첫 번째 질문에는 멍하니 대답 않던 우현이었지만 두 번째 질문에서는 움찔 굳더니 좌우로 빠르게 고개를 젓는다. 그 과장된 행동에 재휘가 다시 입을 열었지만 우현이 자리에서 일어서는 게 빨랐다.
“무슨… 우현아?”
덕분에 타이밍을 놓친 재휘가 다시 우현을 부르자, 이제는 말짱한 얼굴로 돌아온 우현이 웃으며 재휘를 마주봤다. 그리고는 한 번 더 고개를 저었다. 완강하게 그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겠다는 우현의 의지였다.
“알…았어”
무언가를 숨기는 것은 처음인 우현이기에, 재휘는 꽤나 당황스러웠지만 억지로 수긍했다. 왠지 모르게 더 캐물었다간 우현보다 자신이 곤란해질 것만 같았다.
그 이후로도 재휘는 몇 번이나 그때의 이야기를 알아내기 위해 기회를 엿보았지만, 결국 한마디도 꺼내지 못했다. 형에게 물어볼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역시 당사자가 하기 싫어하는 주제를 남에게서 듣는 것이 영 성미에 맞지 않았다. 덕분에 재휘는 혼자 끙끙 앓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정말 중요한 무언가를 놓친 기분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우현은 정기적으로 가던 병원일로 아침 일찍 외출을 했고 집에는 재휘와 재호만이 남았다. 이제 일주일 후에 바로 훈련소에 들어가는 재호는 한동안 집에 있던 것이 질렸는지 최근에는 외박이 잦았다.
오늘역시 어제 나갔다가 오늘새벽에 들어온 참이었다. 술에 떡이 되도록 마시고 들어온 형을 위해서 재휘는 해장국을 끓여야했고, 마침 콩나물을 냄비에 넣던 차에 재호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방에서 비척비척 걸어 나왔다.
“형. 정신 차려. 언제 들어온 거야 대체”
“어… 다섯시던가…”
“엄마가 얼마나 걱정하셨는데. 콩나물국 끓이라고 하셔서 끓이는 중이야. 좀만 기다려”
“아… 입맛 없는데”
“속 버려. 꼭 먹어”
“아아…”
사방으로 뻗친 머리를 대강 빗어 내리며 식탁의자에 주저앉은 재호가 한쪽 팔을 식탁위에 올리고 턱을 괴었다. 그리곤 바쁘게 주방을 오가는 재휘의 뒷모습을 가만히 응시했다.
“왜. 할 말 있음 말로 해. 뭘 그리 애타게 쳐다봐”
“야”
“…? 왜?”
뒤통수를 간질이는 집요한 눈길이 조금 신경 쓰였는지 재휘가 반농담을 던졌다. 그러자 예상한 반응과는 다르게 재호가 잔뜩 깔린 목소리로 재휘를 부른다. 흔치않은 그 진지한 목소리에 의아해하며 재휘가 돌아봤다.
“너…”
“……. 어째 불안한데.”
“뭐?”
“형이… 그렇게 쉽게 말 못 꺼낼 때 마다 무서운 말이 나와서”
“…뭐야? 하하, 그랬나”
“어. 진짜 무섭다”
가라앉으려던 분위기를 웃어넘긴 재휘가 다시 고개를 돌려 냄비뚜껑을 열었다. 마침 타이밍 좋게 열었는지 콩나물이 아삭하게 잘 익었다. 비리지도 않고.
만족스럽게 간을 보는 재휘의 뒤로 재호가 다시 입을 연다.
“너, 별 얘기 못 들었지?”
“…? 얘기?”
조금 싱거운 것 같아 소금을 치면서 재휘가 뒤돌아봤다. 그러자 다시 굳은 표정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 재호가 눈에 들어왔다. 그 무거움에 슬쩍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얘기?”
“……. 못 들었으면 됐고”
“뭔데. 무슨 얘기…”
그 순간 재휘의 머릿속에 ‘어제’의 기억이 떠올랐다. 자신이 집을 비운사이 우현과 재호가 나누던 대화. 결국 하나도 제대로 듣지 못한 채로, 우현에게는 차마 물어보지 못했던 그 말.
“……어제?”
“모르면 됐어”
“뭐야. 사람 속을 찔러봤으면 그 대가를 줘야지. 뭐야, 잔뜩 심각하게 해놓고”
재휘가 눈을 치켜뜨며 은근 언성을 높이자 재호가 다시 재휘를 마주본다.
“유재휘”
“어…”
“난 누가 뭐래도 내 동생이 더 중요해”
“…? 무슨 소리야”
“혹시나 네가 나중에 나를 원망할일이 생긴다 해도, 난 네게 옳은 일이 된다고 생각하면 해”
“……”
“난 네 형이니까. 네 가족이니까. 다른 어떤 것보다도 가장 가까운 나의 테두리 안에 있으니까”
“하고 싶은 말이 뭐야”
“그러니까 날 미워해라”
“대체 무슨 말이냐니까!”
-치지직
알 수 없는 말만 하는 재호를 향해 재휘가 버럭 소리치는 순간 보글보글 끓던 냄비가 넘쳐흘렀다. 국물이 흘러 뿌연 증기를 만들어냈지만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가스 불 옆에 서있던 재휘도, 식탁 앞에 앉은 재호도 무언가를 가늠해보기라도 하는 듯 서로를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결국 먼저 움직인 것은 재호였다. 넘쳐흐르다 못해 이제는 탄내까지 날 것 같은 냄비로 성큼성큼 다가가 가스 불을 껐다. 그리고는 국자를 들더니 제법 많은 양을 국그릇에 담아냈다.
그 하는 모양새를 가만히 지켜보던 재휘가 입을 열었다.
“무슨 소리 하는 거야 형. 나 하나도 못 알아듣겠어”
“못 알아들어도 돼”
“아니, 알고 싶어. 알아듣게 해줘!”
“……. 모르는 게 약이란 말, 무슨 말인지 똑똑하니까 잘 알거다.”
“형!”
완강한 재호의 태도에 재휘가 또 한 번 재촉을 하려던 찰나 재호가 들고 있던 국을 단번에 원샷을 해버렸다. 제법 뜨거울 텐데도 아무렇지 않게 옷소매로 입가를 스윽 닦은 재호가, 눈을 동그랗게 뜬 재휘를 마주본다.
“미워해도 돼. 그리고 한 대쯤은 맞아줄게. 그러니까… 힘내라”
그 말을 마지막으로 그릇을 싱크대에 내려놓은 재호는 방으로 사라졌다. 그 뒷모습을 가만히 보던 재휘가 천천히 오른손을 들어 가슴께를 움켜잡았다. 바로 귓가에서 두근거리는 심장소리가 시끄럽게 울린다.
스스로에 대한 프라이드 하나는 최고인 자신의 형이다. 그런 그가, 사과를 했다.
조금 거친 표현을 썼지만 자신은 알고 있다. 저것이 형의 ‘미안함’의 표현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것은 ‘우현’과 관련이 있었다.
남겨진 재휘는, 잔뜩 졸아버린 냄비를 보면서 묘한 불안감에 몸을 떨어야만 했다.
*놀라지마세요. 완결이 앞으로 세편남았습니다.
분량보다가 저도 깜짝 놀랐답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3일이군요.... 30편을 못채우는걸까요 ㅠㅠㅠ
*재호 미워하지 말아주세요. 착한놈이랍니다...
*오늘은 하루가 너무 짧아서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겠네요. 한주 시작 잘하시길 바랍니다.
읽어주신분들, 댓글달아주신분들, 추천해주신 분들 모두 감사드립니다!
첫댓글 와완결이 버벌써라니요!!! 이제서야 겨우 뽀뽀(?)한것밖에 없는데
-끝까지 가는걸 원하시나요!! 과연 완결까지 진도를 뺄수있을지........ 한번 지켜봐주세요 ㅋㅋ
우아 도대체우현이한테무슨잏인건가요 ㅜㅠ 완결까지세편이라니너무아쉬워요 이젠뭐보는낙으로살아야하나ㅜㅜ
-저도 아쉽네요 ㅠㅠ 이제 대댓글달일도 없고..... 여러분코멘트 읽는것도 즐거웠는데. ㅠㅠ 너무 아쉬워요
아........이럴순없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너무 일찍끝나잖아요ㅠㅠ으헝
-이것도 예정보다 배는 길어진 분량이랍니다 ㅋㅋㅋㅋㅋㅋㅋ 저도 아쉽네요 ㅠㅠ 연재첫시작이 엇그제같은데..
아 진짜 재호 좀 짜증남
달달한 커플 훼방 제대로 놓는듯ㅡㅡ
솔직히 재호 많이 싫었는데 더 싫어질것 같음
우현이랑 재휘 진심 잘 되었으면 좋겠음
-바다님 흥분하셨어요... 워워, 진정하세요. 재호 나쁜놈아니랍니다 ㅠㅠ 우현이랑 재휘는 꼭 행복해질거에요!
대체 재호와 우현이 사이에 무슨 대화가 있었던건가요...??? 완전 궁굼,,,,,,,별 일 없어야 하는데...ㅜㅜ
다음편도 기대하고 있을게요..ㅋㅋㅋ
-재휘를 따돌려야 할 이유가 있었겠죠?.....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 다음편도 꼭 읽어주세요!
둘이 무슨 멀을 했는지... 재호는 오ㅐ 저리 이야기하는지.... 궁금하내요 벌써 완결이라니 아작 우현이 목소리도 못들었는데 ㅜㅜ
-재호와 우현만의 비밀이야기랄까요........ 흑흑 완결이 너무 빨리다가온것 같아요 저도 ㅠㅠ
재호와우현사이에 어떤대화를 했을까요? 궁금해요~~안좋은대화를 했으면어쩌죠~ㅠㅠ
-무슨이야기였을까요...... 재휘랑 우현이에게 나쁜이야기가 아니었어야 할텐데요. 그렇죠? 그럴거에요!
뭡니까? 재호와 우현이 도대체 무슨 대화를 나눈거예요? 너무 궁굼해요....얼른 알려주세요.
설마 재호가 재휘한테는 지켜보겠다고 하면서 우현이한테는 '너 재휘한테서 떨어져' 한거 아닌가요?
그런거면 안되는데...이제 3편 남았다고 하시는데 또 무슨 일이 벌어지는건지...
다음편 기다릴게요.
-재호가 너무 나쁜아이가 되고있네요 ㅋㅋㅋ 불쌍한 우리 재호 ㅠㅠ
재호를 믿어주세요! 정말 착한놈이랍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
벌써요~ㅜㅜ
-넹 ㅠㅠ 순식간에 완결까지 가고 있네요... 끝까지 꼭 읽어주세요!
젬있게 보고가요... 완결이 얼마 안남았다니... 왠지 서운해요...
-저도 소희맘님의 댓글을 볼날이 얼마 안남았다니 아쉬워요. 그래도 완결까지 열심히 달릴테니 재밌게 봐주세요 ^^
흐음....과연 무슨 일???
-재호의 반응이 영 심상치 않죠? 무슨일일지...... 지켜봐주세요 ^^
모지모지모지모지모지!!!!!!!!!!!! 우현이에게 무슨일이 생긴거예요?? 아 궁금!! ㅋㅋ 그나저나 완결이 벌써.... 앙되요 ㅜㅜ
-뭐지뭐지!!!! 뭘까요!!!! 빨리 밝혀져야 할텐데. 완결 얼마 안남았으니...... 아쉬워해주시니 또 한편으론 기쁘네요. 재밌게봐주셔서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