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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의 땅을 여행하라! 지구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북위 66.5도에서 시작된 십 년간의 여행 『북극여행자』. 일간지 환경ㆍ여행 담당 기자인 저자다 10년에 걸친 북극 여행기를 담아낸 책이다. 이 여행은 핀란드 로바니애미의 산타 마을 바닥에 흰 페인트로 그려져 있던 북극선에서 출발했다. 그 길목에서 북극권의 북극곰과 범고래, 북극제비갈매기와 퍼핀 그리고 고독한 야생동물과 압도적 자연을 만났다. 또한 형형색색의 자일리톨 껌을 사느라 열차를 놓쳤던 핀란드에서의 에피소드에 이르기까지 동물과 사람, 그들과 공존하며 ‘전 지구적 오지랖’을 떨치고 다닌 여행기를 만나볼 수 있다. 북극의 구석구석을 유머러스하게 소개하는 한편, 기후변화의 어두운 그림자까지 슬그머니 담아냈다. 북극권을 여행하기 좋은 시기, 현지 여행 정보 구하는 방법 등 오랜 기간 쌓아온 여행 지식을 풀어냈으며, 친환경 숙소, 원주민을 중심에 둔 여행 방법 등 북극을 지켜낼 수 있는 여행법을 소개했다.
저자 : 최명애
저자 최명애는 2001년부터 십 년간 《경향신문》에서 일했다.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가장 좋아하고 반경 삼 미터 이내의 식물은 모두 말라 죽게 만드는 능력을 지녔으나, 기자 생활의 절반을 여행과 환경 분야를 담당하며 보낼 운명이었다. 대학에서는 국문학과 사학을 전공했고, 영국 런던대학 킹스칼리지런던 지리학과에서 관광·환경·개발 과정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11년 가을부터 같은 대학에서 한국생태관광을 주제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서산 천수만에서 수천, 수만 마리의 철새가 ‘제 이름을 부르며 날아가는’ 장면을 목격하고는 큰 감동을 받아 자연과 사람이 어우러지는 생태관광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 후 동물원의 북극곰부터 순천만 흑두루미, 백령도 물범, 울산 장생포 고래, 알래스카 북극고래, 캐나다 북극곰, 아이슬란드 고래 등을 찾아다니며 여행하고 또 취재해왔다. 『어디에도 없는 그곳 - 노웨어』 『수첩 속의 풍경』 『대한민국 대표 숲 33』 등을 공저했다. 핀란드 북부의 작은 마을에서 북극선을 처음 본 2002년부터 장장 십 년간, 매년 부지런히 북위 66.5도 안팎 나라들을 여행해왔다. 이 책은 북극권의 북극곰과 범고래, 북극제비갈매기와 퍼핀 그리고 또 많은 고독한 야생동물과 압도적 자연을 만난 여행기다. 세상 모든 여행자들이 파괴적이고 소비적인 여행이 아닌 자연과 공존하고 성장할 수 있는 여행을 하기를, 그리하여 ‘전 지구적 오지랖’을 가진 여행자가 좀 더 늘어나기를 바라는 그는 지금도 다음 북극 여행을 꿈꾸고 있다.
프롤로그
러시아·핀란드
우리의 여행은 북위 66.5도에서 시작됐다_상트페테르부르크, 로바니에미
아이슬란드
잠들지 않는 북극의 도시 _레이캬비크
빙하 멀미가 날 지경이야 _남부 빙하지대
물범이 찾아오는 공포의 호스텔 _후세이
고래 관찰, 찰나에서 영원으로 _후사비크
요정과 트롤의 땅으로 _내륙지방
이래봬도 뼈대 있는 민족 _스코가르
스웨덴
카를, 구스타프, 바사가 너무 많다! _스톡홀름
폐허 속에 남은 중세의 마을 _고틀란드
노르웨이
세계에서 가장 비싼 도시를 마일리지로 다녀오는 법
_오슬로
저 사기꾼이 바이킹의 후예라고? _트롬쇠
스발바르
북극점까지 1338킬로미터 _롱위에아르뷔엔
북위 78도의 노르웨이령 러시아 타운 _바렌츠부르크
오합지졸 빙하 탐험대 _롱위에아르 빙하
캐나다
처칠까지 가는 도로는 없다 _위니펙에서 톰슨까지
북극곰을 부탁해 _처칠 북극곰 투어
퇴락한 우주과학도시 _처칠 탐험
알래스카
알래스카에서 만난 백 년 전의 조선 여인 _앵커리지
당신은 북극의 투발루 _시시마레프
이렇게 많은 멸종위기종을 먹어보긴 처음이야 _포인트호프
지구에서 가장 수상한 마을 _위티어
해달의 시간은 아다지오로 흐른다 _코르도바
이곳은 북극의 수도 _페어뱅크스
저예산 독립 여행자의 헝그리 크루즈 _알래스카 B급 크루즈
힘겹게 강물을 거슬러 올라와 통조림이 된 연어들 _시트카
에필로그
북극곰의 편지
에코 트래블 가이드
“북위 66.5도, 지리학자들은 이 선 너머를 북극이라고 말해요.”
이 여행은 핀란드 로바니에미의 산타 마을 바닥에 흰 페인트로 그려져 있던 북극선에서 출발했다. 그 후 십 년간 부지런히 북극선을 타 넘었다. 그 길목에서 악마적으로 생긴 양 떼, 정수리를 쪼아대는 북극제비갈매기, 앞머리를 곱게 기른 말 그리고 먹이를 구걸하는 북극곰과 석유를 뒤집어쓴 해달을 만났다. 핀란드에서는 형형색색의 자일리톨 껌을 사느라 열차를 놓쳤고, 알래스카에서는 흰돌고래 수프를 먹으며 그 귀여운 얼굴이 떠올라 눈물을 훔쳤다. 북극권 동물과 사람, 그들과 공존하며 ‘전 지구적 오지랖’을 떨치고 다닌 이 여행기는 때로는 웃음이 터지고, 때로는 황량하고 애달픈 북극의 나라를 묵묵히 떠올리게 한다.
평생에 한 번은 가봐야 할 마지막 남은 천혜의 땅
세상 모든 여행자들의 로망, 북극
‘진짜’ 북극은 어디부터 어디까지일까
북극을 정의하는 기준은 다양하다. 기후학자들에게는 7월 평균 최고 기온이 10도 이내인 북쪽 지역이고, 생물학자들에겐 나무의 북방한계선 이북 지역이다. 지리학자들이 정의내린 북극선은 북위 90도인 북극점으로부터 남쪽으로 23.5도 아래, 즉 북위 66.5도를 따라 지구 한 바퀴를 도는 가상의 위선이다. 이 선이 북극권과 ‘북극권이 아닌 곳’을 나눈다. 북극이라고 하면 보통 압도적인 크기의 빙하와 도저히 생명이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척박한 환경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북극에도 북극 나름의 지역별 차이가 있다. 한여름에도 이끼만 겨우 끼는 툰드라 지대가 있는가 하면 멕시코 만류의 영향으로 포근한 기후를 보이는 북위 69도의 노르웨이 트롬쇠도 엄연히 북극이다. 하지만 저자는 보통의 여행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북극곰, 점박이물범, 범고래, 퍼핀 같은 동물은 여기가 북극임을 제 온몸으로 증명한다. 여행 중 어느 길목에서 이 동물들과 마주쳤다면, 거기가 북극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망설임은 그만 두고 진짜 북극으로 떠나라
이 이야기는 일간지 환경·여행 분야 담당 기자인 저자의 10년에 걸친 북극 여행기이다. 그 긴 시간 동안 저자는 성실히 직장을 다니는 ‘생활인’으로 사는 동시에 틈만 나면 북극으로 달려가 ‘북극 여행자’가 되었다. 대부분의 북극 여행을 함께한 저자의 남편은 책 속에서 ‘북극곰’으로 묘사된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지나 도착한 핀란드 로바니에미의 산타 마을에서 이 둘은 생애 처음으로 북극선을 목격한다. 그것은 즐겁게 떠드는 관광객들의 발밑에 얌전히 놓여 하얀 페인트 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 작은 순간이 10년 동안 북극을 들락날락한 계기가 되었다.
돈이 많거나 시간이 많아서 다닌 여행은 결코 아니었다. 영혼은 북극 여행자일지언정, 성실한 생활인으로서의 위장을 유지해야 했기에 자잘한 직장 휴가와 기적처럼 찾아오는 명절 연휴를 악착같이 찾아 썼다. 어떻게 해도 일정이 나오지 않았을 때는 마침내 결혼을 해버리고 신혼여행 휴가를 받아 떠났다. 항공사 마일리지로 전환되는 신용카드 포인트를 모으기 위해 ‘카드깡’도 서슴지 않았다.
동남아나 유럽이 익숙한 여름휴가지로 자리 잡은 반면, 아직 북극은 우리에게 낯선 여행지임이 틀림없다. 그렇다고 해서 전문적인 여행가만이 갈 수 있는 곳도 아니다. 만면에 웃음을 띠고 관광객을 맞이하는 현지인들에게 좋은 대접을 받은 후 편안한 호텔에 들어가 푹 쉬고 싶은 마음만 접어두면 누구나 북극 여행자가 될 수 있다. 북극으로 무작정 떠난 서투른 초보 관광객이 잔뼈 굵은 북극 여행자가 되어가는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이 책은 북극 여행을 꿈꾸는 이들에게 든든한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어색함과 낯섦은 여행길의 미덕
여행이란 묘하게 사람을 바꾸어놓는다. 어엿한 성인인 척 살아가던 사람이 낯선 여행지에서 엉엉 울어버리기도 하고, 한없이 여렸던 사람이 의외의 괴력과 털털함을 발휘해 고난을 헤쳐 나가기도 한다. 상투적인 말이 되어버렸지만 ‘또 다른 나를 만난다’는 것이 여행의 매력임은 사실이다. 그런데 그 여행지가 북극이라면 어떨까. 아무리 제정신을 차리려고 애써도 어딘가 어수룩해지고야 마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핀란드 헬싱키 역에서 몇 대 다니지도 않는 열차를 기다리던 중 형형색색의 자일리톨 껌에 감동하여 쓸어 담다가 열차를 놓친 일이나, 10년이나 북극권을 여행했지만 ‘트롬쇠’니 ‘란들만날라우가르’니 ‘키르큐베자르클라우스투르’니 하는 이름들은 아직도 제대로 된 발음을 할 수 없다는 고충이나, 길을 다 합쳐도 22킬로미터밖에 안 되는 캐나다 처칠에서 렌터카를 빌리려다 머쓱해진 일 등 저자가 우수수 털어놓는 이야기들은 낯선 여행지에서 ‘뭣 좀 해보려다’ 맞이하게 되는 익숙하고도 민망한 순간이다. 이런 순간들을 마주쳤을 때, ‘역시 우리나라가 최고지’ 하며 스스로 ‘아웃사이더 모드’를 가동한다면 진정한 미덕들을 흘려보내는 셈이다. 모름지기 한 번쯤은 예정에 없던 장소에 휑하니 남겨져 식은땀을 흘려봐야 진짜 여행자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 아니겠는가.
슬그머니 담아놓은 기후변화 시대의 어두운 그림자
여행은 힘이 세다는 저자의 믿음처럼, 여행은 여행자의 삶과 생각을 바꾸어놓는다. 특히나 북극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단단히 각오를 해야 한다. 아무리 즐거운 휴가를 보낼 요량으로 떠났다 하더라도 돌아올 때는 마음 한구석에 슬며시 깊은 생각이 자리 잡을 것이다. 바로 슬픈 기후변화 시대의 모습이다.
그저 북극이 좋아서 북극으로 달려갔던 저자는 문득 걱정이 생겼다. ‘나의 여행이 야생동물의 삶터를 훼손하고 현지 주민의 삶을 상품화시키는 데 일조하는 것은 아닐까?’ 저자의 걱정은 포경 기지에 잠입해 괜히 흘겨보고, 영화 <프리 윌리>의 주인공 범고래 케이코의 흔적을 좇으며 분명해진다. 한국에 돌아온 뒤에도 걱정은 그치지 않았다. 고래 탐조선과 포경 기지가 공존하는 아이슬란드, 평생 바다 얼음 위에서 일하며 살아가다 얼음이 얇아져 바다에 빠져 죽는 에스키모들, 사람들에게 먹이를 구걸하던 하얗고 큰 북극곰, 귀여운 얼굴로 배영을 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기름에 전 채 죽어가던 코르도바의 해달들. 전체 폭이 겨우 400여 미터인 알래스카의 섬 시시마레프의 해안선이 지난 30년간 20여 미터나 깎여나간 것을 목격하며 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고작 집 안 보일러의 온도를 낮추는 일이라는 사실이 저자는 씁쓸했다.
제대로 된 북극 여행을 꿈꾸는 사람을 위한 길잡이
묵묵히 북극에 올랐다가, 조용히 내려오라
지나온 여행길에 나의 흔적은 없어야 한다
여행은 정말로 힘이 셌다. 한 사람의 평범한 관광객이 북쪽의 추운 나라들을 여행한 끝에 ‘전 지구적 오지랖을 가진 여행자’가 되는 과정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비단 북극에서뿐만이 아닌 태국의 코끼리 공연장에서, 아프리카의 오랑우탄 보호구역에서, 코스타리카의 열대우림에서 그리고 또 다른 세계 여러 여행지에서 여행자들은 현지에 미치는 자신의 영향을 최소화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이미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많은 여행자들은 자신의 여행이 각종 산업 개발로부터 현지의 자연을 지켜내고 현지 주민들의 삶의 여건을 개선할 수 있도록 애쓰고 있다. 이를 두고 환경과 여행의 행복한 공존을 도모하는 ‘에코 트래블(Ecotourism)’이라고 말한다. 이 책에서는 파괴적이고 소비적인 여행이 아닌 공존하고 함께 성장해가는 여행을 하고자 하는 여행자를 위해 ‘북극 여행자를 위한 에코 트래블 가이드’를 부록으로 실었다.
북극 여행자를 위한 에코 트래블 가이드
요즘 세상에 해외여행은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북극권의 많은 지역이 아직 여행 지도의 여백으로 남아 있는 것이 현실이다. 북극권을 여행하고 싶지만 현실적인 정보가 부족해 고민하는 이들을 위해 저자가 지난 10년간 여행하며 쌓아온 여행 지식을 풀어놨다. 북극권을 여행하기 좋은 시기, 현지 여행 정보 구하는 방법, 교통편과 숙소 마련하기, 여행지에서 할 일 등을 소개했다. 이에 더해 민감하고 부서지기 쉬운 북극을 지켜나갈 책임 있는 여행자들을 위해 친환경 숙소, 원주민을 중심에 둔 여행 방법, 로컬 푸드 이용하기, 야생동물 기념품 문제 등의 이야기도 함께 실었다. 북극권 자체가 생소할 수 있기에 여행지를 중심으로 소개하는 대신 북극권 전체를 묶어 개략적인 이해를 돕고자 했다.
★추천의 글
기후변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북극은 더이상 낯선 땅이 아니다. 이 여행기는 북극의 구석구석을 유머러스하게 소개하는 한편, 기후변화의 어두운 그림자도 슬그머니 담아내고 있다. 일간지 환경 담당으로 항상 발로 뛰어온 최명애 기자의 예리한 필봉이 제대로 된 북극 여행을 꿈꾸는 이들에게 많은 도움을 줄 것으로 믿는다.
- 최열 환경재단 대표
오후에는 카메라를 메고 물범을 보러 갔다. 여름 한 철 얼음이 풀리는 툰드라의 들판은 발을 딛을 때마다 폭신폭신했다. 우레탄으로 만들어진 조깅 코스보다 밟는 느낌이 좋아 깡충깡충 뛰고 싶었지만 애써 참았다. 사회적 지위와 체면 때문만이 아니다. 툰드라의 식물들이 그 열악한 환경에서 간신히 살아남아 여름 한 철 살아보겠다고 꽃 피우고 번식하는데, 그걸 꺾거나 짓밟으면 안 된다. 나중에 소개하겠지만, 진짜 북극인 스발바르에서 그렇게 배웠다. ‘개념 있게’ 앞 사람 발자국을 그대로 밟으며 가려고 했지만, 인적은 까마득히 없었고 바닥엔 트랙터 자국만 패어 있었다. 산과 들판, 하늘과 바다. 그 경계가 만나는 지역은 알 수 없는 기상 현상으로 뿌옇게 흐려져 몽환적으로 보였다. 들판의 끝에 도착하니 검은 모래사장과, 푸른 하늘을 거울처럼 비추는 라군이 나타났다.
- 본문 60쪽 「아이슬란드 - 후세이」
고틀란드에는 한 개의 도시와 여러 개의 마을이 있다. 그 하나의 도시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된 아름다운 중세도시 비스뷔다. 비스뷔는 스페인 남부의 중세도시 톨레도보다 특이하고, 스위스 꽃의 도시 루체른보다 화려하고, 프랑스 남부의 성곽 마을 보나보다 사랑스럽다. 즉 그때까지 내가 알던 유럽의 그 어떤 중세도시보다 아름다웠다. 네덜란드 문화사학자 요한 호이징가의 『중세의 가을』을 벽돌로 써낸다면 그것은 비스뷔의 모습을 하고 있을 것 같았다. 낮은 언덕 위에 성이 있고, 자갈을 깐 구불구불한 골목들이 그물처럼 이어지고, 길을 잃고 고개를 들면 쓸쓸하게 무너져내린 중세의 건물들이 문득 나타나는 도시. 모퉁이를 돌 때마다 ‘세계가 지금보다 5세기가량 더 젊었을 때……’ ‘피비린내와 장미향이 뒤섞인 삶……’ 같은 호이징가의 아름다운 문장들이 허공에 금박으로 나타났다 스르르 사라지는 것처럼 보였다.
- 본문 120쪽 「스웨덴 - 고틀란드」
순록들은 똥개마냥 한낮에도 마을을 어슬렁거렸다. 먹을 것도 없을 것 같은데, 하여간 무언가를 열심히 뜯어 먹고 있었다. 군데군데 털도 빠져 있고, 얼굴도 까칠해 보였다. 나중에 들으니 여름에 이끼라도 먹어둬야 몸에 지방을 축적해 겨울을 날 수 있다고 한다. 스발바르 순록들은 십 킬로그램까지 지방을 몸에 축적할 수 있도록 진화했단다. 겨울엔 눈을 ‘뜯어’ 먹는다. “눈에도 약간의 양분이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안쓰러웠다. 참으로 힘든 삶 선택하셨다.
- 본문 164쪽 「스발바르제도 - 롱위에아르뷔엔」
버기 사이를 어슬렁거리던 북극곰은 결국 아무런 수확 없이 떠났다. 야생동물에게 사람이 먹는 음식을 줘서는 안 된다고 폴라베어 인터내셔널 활동가에게 귀 따갑게 잔소리를 들은 관광객들은 콩고물 하나 던져주지 않았다. 엉덩이를 흔들며 사라지던 곰은 멀찌감치 툰드라 덤불 위에 벌렁 드러누웠다. 배를 긁으며 낮잠이라도 잘 모양이었다. 그날 오후에 만난 또 다른 북극곰도 낮잠을 자고 있었다. 쪼그리고 엎드려 자는 모습이 인형처럼 귀여웠다. 그게 끝이었다. 그날 오후 늦게까지 우리는 고든 곶의 지형지물을 외울 만큼 뺑글뺑글 돌았지만 더는 북극곰을 보지 못했다. 전 세계 북극곰의 수도 처칠, 그중에서도 북극곰이 떼로 몰려다닌다는 고든 곶에서. 나는 조용히 카메라를 무릎에 내려놓았다. “어린이대공원 썰매한테 처칠 친구들 안부라도 전해주려고 했는데…….” 인간 북극곰이 대답했다. “그러게, 영 면목없게 됐어.”
- 본문 221쪽 「캐나다 - 처칠 북극곰 투어」
나는 포인트호프 도착 네 시간 만에 ‘다 이루었다’는 기분이 되었다. 그러나 여행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마을로 돌아오자 에드나가 친절하게도 “저녁이나 먹고 가라”며 근처 집으로 불쑥 들어갔다. 전형적 에스키모 가옥, 즉 조립식주택에는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냄새가 가득했다. 주름이 잔뜩 잡힌 할머니가 누구냐고 묻지도 않고 “부엌에 백조 수프 끓여놨으니 먹어라”라고 말한 뒤 다시 텔레비전에 시선을 고정했다. 우리 집에도 없는, 사십 인치는 넘어 보이는 최신형 완전 평면 텔레비전이었다. 아이들은 소파에서 뒹굴며 닌텐도와 플레이스테이션을 주먹으로 부수고 있었다. 현관에는 털부츠 대신 구멍 숭숭 뚫린 ‘크록스’ 슬리퍼가 뒹굴었다. 맙소사, 정말이지 세계는 하나였다.
- 본문 267쪽 「알래스카 - 포인트호프」
‘캐라스 비앤비’의 버사 캐라스는 버스 정류장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얗게 센 단발 파마머리에 동그란 안경을 끼고, 몸집도 마음도 넉넉해 보이는 할머니였다. 영화 〈미세스 다웃파이어〉에서 로빈 윌리엄스가 둔갑한 주인공 할머니를 좀 닮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느릿느릿 말해서 좋았다. 한국에서 전화로 이 집을 예약했는데, 이 사람 좋은 할머니는 “혹시 렌터카 업체 전화번호 있으세요
첫댓글 최명애 지음 / 출판사 작가정신 | 2012.0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