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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저튼에서 샬럿 왕비의 조카로 나오는 프레데릭 왕자.
사실 프레데릭 왕자는 정확히 말하자면 ‘조카 손자’ 로 샬럿 왕비의 조카딸인 프리데리케의 아들이다.
프리데리케는 샬럿 왕비의 오빠인 메클렌베르크의 카를 2세의 딸로, 10남매 중의 다섯 번째 딸이었다.
1778년생인 프리데리케는 1793년, 언니인 루이제와 함께 프로이센의 두 왕자들과 우연히 만났(다곤 하지만 짜고 치는 맞선이었)다.
독일의 소공국이었던 메클렌베르크 가문에게 이것은 매우 이득이 되는 매칭이었고, 루이제는 프로이센의 후계자 프리드리히 빌헬름과, 프리데리케는 남동생인 루드비히와 결혼했다.
하지만 매우 사이가 좋았던 언니 부부와 달리 남편인 루드비히는 결혼 초부터 다른 여자들과 불륜을 저질러 아내를 무시했고, 프리데리케는 그에 질새라 남편의 삼촌과 맞바람을 피웠다.
그럼에도 둘 사이엔 두 아들이 있었는데 그 중 첫째가 브리저튼에 나오는 프레데릭 왕자다.
전쟁같던 프리데리케와 루드비히의 결혼은 3년만에 루드비히가 죽음으로서 끝나게 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 프리데리케는 고모인 샬럿의 일곱 번째 아들인 사촌 아돌푸스 왕자와 비밀리에 약혼을 한다.
프리데리케의 남편이 죽은 지 얼마 안된 시점이었기 때문에, 겸사겸사 군인인 아돌푸스가 당시 참여하던 전쟁이 끝나면 결혼을 공표하기로 정해졌다.
하지만 결혼을 기다리던 중 프리데리케는 임신을 한 것으로 밝혀졌는데 놀랍게도 아이의 아버지라고 나선 사람은 아돌푸스도, 그렇다고 죽은 전남편도 아닌 졸름스의 프리드리히 공자였다.
불명예스러운 속도위반에 프리드리히 공자와 프리데리케는 서둘러 결혼을 해야만 했지만 그 결혼 역시 불행했다. 프리데리케는 딸을 낳았지만 그 아이는 얼마 가지 않아 죽었고 실망한 프리드리히는 예전의 방탕한 생활로 돌아가 알콜 중독자가 되었다.
그러다 1813년, 샬럿 왕비의 다섯 번째 아들인 어니스트 왕자가 삼촌을 만나러 독일에 왔다가 프리데리케와 사랑에 빠져 버렸다!
프리데리케는 두 번째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했는데, 남편은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작스럽게 죽었다.
이런 너무 ‘편리한’ 죽음 때문에 몇몇 사람들은 프리데리케가 남편을 독살했다고 믿었다.
샬럿 왕비 또한 아들을 농락했던 조카를 너무나 싫어했고, 다른 아들과 결혼했다고 나서니 뒷목을 잡으면서 둘의 결혼을 매우 반대했다.
하지만 사랑에 빠진 두 남녀는 결국 1814년, 에른스트의 첫째 형 조지 왕세자의 허락을 받아 결혼한다.
결혼을 끝까지 반대한 샬럿 왕비는 둘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았고 아들 부부를 독일로 내쫓았다.
그 와중에 프리데리케의 첫째 아들 프레데릭 왕자가 영국에 방문했다.
프레데릭 왕자가 영국에 방문한 이유는 신부를 찾기 위해서였는데 그 대상은 바로 조지 왕세자의 외동딸인 샬럿 공주, 바로 샬럿 왕비의 손녀딸이었다.
샬럿 공주는 프레데릭 왕자에게 관심을 가져서 둘은 몇 번 만남을 가졌지만 별 진전은 없었던 모양이다.
그 후 프레데릭은 갑작스럽게 안할트의 공녀 루이제와 약혼을 발표했고 결혼한 둘은 아들 둘을 낳고 잘 살았다고 한다.
참고로 브리저튼처럼 샬럿 왕비가 프레데릭 왕자에게 영국 귀족 여성과의 결혼을 주선했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
왜냐하면 프레데릭 왕자는 방계이긴 하지만 엄연한 왕자로 불과 자작의 딸에 불과한 다프네와는 너무나 신분차가 났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귀족인 에드위나는 말할 것도 없고, 공작가라 해도 마찬가지다.
설사 둘이 사랑에 빠져 비밀리에 결혼을 한다 쳐도, 왕자와 신분이 낮은 여성과의 결혼은 귀천상혼이라 해서 부인은 왕자비가 될 수 없었고 둘 사이의 자식도 왕족이 될 수 없었다.
샬럿 왕비의 여섯 번째 아들인 어거스터스 왕자 역시 1793년 백작의 딸인 레이디 어거스타 머레이와 결혼했는데, 신분이 낮은 여성과 의회 허락 없이 결혼했다는 이유로 결혼을 인정받지 못했다.
원래 영국은 대륙과 달리 귀천상혼을 하더라도 계승권이 박탈되지 않았었는데, 하필 그 당시 조지 3세의 동생들이 신분이 낮은 여성들과 비밀결혼을 한 게 밝혀지자 화가 난 조지 3세가 1772년 왕실 결혼법을 제정, 왕족이 의회 허락 없이 결혼을 할 시 그 결혼은 무효다! 라고 땅땅 선포를 해서 불똥을 맞아 버린 것이다.
어거스터스 왕자는 결혼을 인정받기 위해 오랜 세월 노력했지만 결국 7년 만에 둘은 강제로 헤어져야 했고, 둘 사이의 두 자녀 또한 왕위계승권을 받지 못했다.
요란하게 결혼한 프리데리케와 어니스트는 이번엔 다행히도 잘 살았던 모양이다.
몇번의 유산을 거쳐 둘은 외아들인 어니스트를 낳았고, 빅토리아 여왕에게 밀려서 영국 왕이 되지는 못했지만 남자만 승계할 수 있었던 독일의 하노버 공국을 물려받았다.(그 후 공국은 왕국으로 승격되서 왕과 왕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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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저튼 원작 소설에는 퀸샬럿 안나와 드라마화하면서 추가된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