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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진리의증인
메시지408(마태120) 구원에 실패한 부자 청년
“16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7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18이르되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19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20그 청년이 이르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21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22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마태복음 19:16-22)
서론: 어느 날 한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청년은 “어느 계명을 지켜야 합니까?”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청년이 “나는 이 모든 것을 다 지켰는데 아직도 무엇이 부족합니까?”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청년은 재물에 대한 욕심 때문에 근심하며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은 구원을 추구하는 부자 청년의 잘못된 방법과 물질에 대한 탐심입니다. 부자 청년은 율법과 행위로 구원을 받으려고 했고 영생보다 재물을 사랑했기 때문에 구원에 실패한 것입니다.
이 시간에는 “구원에 실패한 부자 청년”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부자 청년은 율법과 행위로 구원을 받으려고 했기 때문에 구원에 실패했습니다.
어느 날 한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물었습니다. “무슨 선한 일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느냐?” 선한 일! 이것은 율법과 행위를 의미합니다. 이 사람은 구원의 원리나 구원의 방법을 묻는 것이 아니라 율법과 행위로 구원을 받는다는 전제하에 구체적인 율법의 행위를 물은 것입니다. 율법과 행위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유대인들의 구원관입니다.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태어나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키고 선한 일을 하고 공적을 쌓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너희는 내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레위기 18:5). 인간이 율법을 완전하게 지키면 율법을 통해서도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절대로 율법을 완전하게 지킬 수 없다는 데에 문제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연약하고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율법을 완전하게 지킬 수 없기 때문에 율법과 행위로는 구원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이 구원을 받는 방법이 무엇이냐? 세상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내 죄를 지시고 내 죗값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는 역사적 사실을 믿으면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자 청년은 예수님께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유일한 구원의 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율법과 행위로 구원을 받겠다고 한 것입니다. 인간이 죄에서 구원받는 데 가장 치명적인 장애물이 무엇이냐? “죄에서 구원받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선한 일을 하고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적선사상(積善思想)과 공적사상(功績思想)입니다. 그래서 율법과 행위와 공로를 강조하고 거기에 집착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과 행위로는 절대로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율법과 행위로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율법의 이율배반적인 속성을 몰라서 그렇습니다. 율법의 이율배반적인 속성이 무엇이냐? 율법은 인간을 의인으로 만드는 법이 아니라 인간을 죄인으로 만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율법을 완전하게 지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많이 지키고 죄를 적게 짓는다고 의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백 가지의 율법 중에 아흔아홉 가지를 지키고 한 가지만 어겨도 율법은 죄인으로 규정합니다. 사람들이 율법의 이율배반성을 모르기 때문에 율법과 행위로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께서 “전에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다.”고 탄식하신 것입니다(로마서 7:9-10). 바울 사도도 율법의 이율배반적인 속성을 깨닫기 전에는 자신이 선하고 의롭다고 생각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가말리엘이라는 대학자에게 율법을 공부했고 바리새파에 속했습니다. 바리새파는 정복자들의 종교적 탄압과 헬라와 로마의 이방 문화로부터 이스라엘의 종교와 율법을 지키기 위해 일어난 무리입니다. 바리새파는 그들의 종교와 율법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릴 정도로 종교와 율법에 열심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태어나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키면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 율법을 지킨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다메섹(시리아의 다마스커스)으로 가는 길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거듭나는 은혜를 체험한 후 비로소 율법의 이율배반적인 속성을 깨달았습니다(사도행전 9장). 바울 사도가 율법의 이율배반성을 깨닫고 나니 죄가 아닌 것이 없었습니다. 전에는 자기가 의로운 줄 알았는데 율법의 원리를 깨닫고 나니 그가 행한 것이 다 죄였습니다. 그래서 “전에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다.”고 탄식하신 것입니다. 부자 청년은 예수님께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구원을 얻을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이 청년도 회심하기 전의 바울 사도처럼 율법과 행위로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율법과 행위로는 절대로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율법을 지켜서 구원받을 수 있다면 예수님께서 무엇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겠습니까? 부자 청년은 율법과 행위로 구원받으려고 했기 때문에 구원에 실패했습니다. 구원의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밖에 없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믿음이 진실하지 못한 위선자는 참된 기쁨과 만족과 평화를 누리지 못합니다.
신앙의 목적은 죄에서 구원받고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는 것입니다. 구원과 영생의 기쁨은 예수를 영접한 순간부터 시작됩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이 땅에서도 신령한 기쁨과 만족과 평화를 누리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해도 마음에 기쁨과 만족과 평화가 없다면 신앙생활을 잘못하고 있든지 이단종파에 빠졌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부자 청년은 참된 기쁨과 만족과 평화를 누리지 못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나름대로 열심을 냈지만 기쁨과 만족과 평화를 누리지 못한 것입니다. 부자 청년이 왜 참된 기쁨과 만족과 평화를 누리지 못했느냐? 신앙이 진실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본문과 병행구절인 누가복음 18:18,에 의하면 이 부자 청년은 관리입니다. 관리는 회당을 관리하는 사람으로 종교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도덕적으로 흠이 없고 지혜를 두루 갖춘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에서 관리는 선망과 동경의 대상입니다. 그리고 이 청년은 돈이 많은 부자입니다. 이 사람은 건강 물질 명예 등 사람들이 원하는 것들은 다 소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청년은 마음에 기쁨과 평화가 없고 참된 만족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청년이 왜 평화와 기쁨과 만족을 누리지 못했느냐? 신앙이 진실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거짓과 위선으로 인간은 속일 수 있어도 자기 양심은 속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양심은 내 안에 있는 하나님의 재판관이기 때문입니다. 이 청년이 진실하지 못한 위선자라는 것을 무엇으로 알 수 있습니까? 예수님과 청년의 대화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묻자,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청년이 “어느 계명을 지켜야 하느냐?”고 묻자 예수님은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청년은 “.......내가 이 모든 것을 다 지켰사오니 아직도 무엇이 부족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계명을 말씀하셨느냐? 부자 청년이 인색하고 이웃을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십계명은 사랑의 계명입니다. 십계명의 1계명부터 4계명까지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계명이고 5계명부터 10계명까지는 인간에 대한 사랑의 계명입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에 대한 계명을 잘 지켰는지 지키지 않았는지는 하나님만 아실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는 계명이나,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는 계명이나, 하나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계명과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계명은 인간의 형식주의와 위선 때문에 인간은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가장 악하고 불의한 위선자가 인간의 눈에는 거룩하고 의롭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계명은 하나님만 아실 수 있습니다.
반면에 인간에 대한 계명은 인간의 안목으로도 어느 정도 판단할 수 있습니다. 인간에 대한 계명은 드러나지 않을 수 없고 인간의 눈에 띄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다 지켰다는 청년에게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란 말은 ‘네가 율법을 완전하게 지키고 싶으면’이란 뜻입니다. “네가 진짜 율법을 완전하게 지키고 싶으면 네 제물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전지하신 예수님은 부자 청년의 인색함과 재물에 대한 탐심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부자 청년에게 “네 재물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부자 청년처럼 믿음이 진실하지 못한 위선자는 참된 기쁨과 만족과 평화를 누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양심이 그 사람을 심판하고 정죄하기 때문입니다. 거짓 없는 진실한 믿음을 가져야 참된 기쁨과 만족과 평화를 누리신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 부자 청년은 영생보다 재물을 사랑했기 때문에 구원에 실패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자 청년에게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시자, 청년은 재물 때문에 근심하고 돌아갔습니다. 예수님께서 다른 사람에게는 “네 재물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부자 청년에게는 재물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라고 말씀하셨을까요? 돈과 물질에 대한 탐심으로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재물을 소유하고도 신앙생활을 잘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재물 때문에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작은 왕국의 왕에 버금가는 재물과 권세를 소유했습니다. 또 예수님께 무덤을 제공한 아리마대 요셉도 부자였고 니고데모는 이스라엘의 공회의원으로 돈과 권력을 소유했던 사람입니다. 이 사람들은 재물과 권력을 가지고도 신앙생활을 잘했습니다. 그러나 부자 청년은 재물에 대한 탐심으로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자들에게 재물을 나누어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말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그 사람에게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 진짜 믿음인지 형식적인 믿음인지 인간은 알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는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과 전지하신 예수님만 판단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자기 믿음에 겸손해야 합니다. 절대로 자기 믿음에 자만하면 안 됩니다. 자만하는 사람은 구원이 의심스러운 사람입니다. 제가 아는 목사와 장로와 권사 중에 “저런 사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 생각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는 새벽마다 약 50분 정도 기도를 하는데 고맙고 감사해서 가슴이 저리도록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도 있고, 영적으로 맞지 않고 구원이 의심되어서 답답하고 숨이 막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기 믿음 자랑하며 온갖 못된 짓 다하면서 회개도 하지 않고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못하는 인간이 구원받고 천국에 갈 수 있을까요? 목사나 교인이나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진실하고 겸손해야 합니다.
부자 청년은 영생보다 재물을 사랑했고 천국보다 이 세상의 영화를 사랑했습니다. 영생과 천국보다 재물을 사랑한 사람이 어떻게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진짜 구원받은 사람은 재물이나 명예나 세속적인 것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영접한 후 그의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었습니다. 부자 청년의 신앙은 하나님과 재물이라는 두 주인을 섬기는 신앙입니다. 부자 청년은 하나님과 재물 중 어떤 주인을 선택했습니까? 재물을 선택했습니다. 그래서 구원에 실패했습니다. 천국과 영생보다 재물을 사랑한 사람이 어떻게 구원받고 천국에 들어가겠습니까? 천국과 영생보다 재물을 사랑하는 사람은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첫째, 부자 청년은 율법과 행위로 구원받으려고 했기 때문에 구원에 실패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율법이나 인간의 행위로는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구원의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밖에 없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믿음이 진실하지 못한 위선자는 참된 기쁨과 만족과 평화를 누리지 못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신앙이 진실하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베풀고 사는 사람이 참된 기쁨과 만족과 평화를 누린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부자 청년은 천국과 영생보다 재물을 사랑했기 때문에 구원에 실패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도 여러분에게 주신 물질의 축복이 신앙생활에 장애물이 되지 않도록 지혜롭게 잘 관리하시고 잘 활용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3, 4,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