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칠기삼(運七技三)
이희근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러시아월드컵축구대회가 막을 열었다. 축구에 관심을 가지고 밤잠까지 설치며 관전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지난 2014브라질월드컵 예선전을 중심으로 쓴 것을 소개한다.
브라질에 입성하기 전에 미국에서 가진 나이지리아와의 평가전에서 한국대표팀이 대패하자, 국민들의 실망은 대단했다. 그런 실력으로는 브라질월드컵에서 소기의 성과를 기대하기는커녕 망신만 당할 것이 뻔하다고 걱정했다. 그러면서 선수경력이 있는 나에게 예상을 물었을 때, 모든 경기 결과는 해봐야 안다고 했더니 뻔한 일을 가지고 엉뚱한 소리를 한다고 비아냥거렸다.
승부의 세계에서 승자와 패자를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 영원한 승자도 영원한 패자도 없기 때문이다. 어제의 승자가 오늘의 패자가 될 수도 있고, 오늘의 패자가 내일의 승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이런 사실은 2014 브라질월드컵 예선전에서도 잘 나타났다. FIFA 랭킹 1위이고, 전 대회 우승국인 스페인은 귀국 순위에서도 1위가 되어 제일 먼저 보따리를 쌌다. 또 우승 예상국가들의 대상에 들었던 포르투갈과 영국도 예상 외로 부진하여 일찌감치 보따리를 싸야 했다. 하지만 B조에서 FIFA 랭킹이 최하위여서 최약체로 예상되었던 코스타리카는 제일 먼저 16강에 안착하여 역시 축구공은 둥글다는 것을 입증했다.
축구공이 둥글다는 말은 축구경기에서는 승자와 패자를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다. 기량이나 전적을 감안하여 매겨진 순위(랭킹)도 숫자에 불과하다. 랭킹에 의해 승패가 결정된다면 더 이상 축구경기를 관람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축구에 열광하는 이유는 축구경기란 랭킹에 상관없이 승패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항상 이길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경기를 관람하며 열렬히 응원한다.
축구경기에서 슛한 볼이 골포스트나 크로스바를 맞힌 팀이 경기에서 진다는 말은 (그렇지 않을 경우도 있지만) 오랫동안 통용되는 속설이다. 웨인 루니가 헤딩한 볼이 우루과이의 크로스바를 맞힌 잉글랜드는, 사람들이 예상한 대로 2:1로 패한다. 기량이 월등하더라도 운이 없으면 이기지 못하고 허망하게 무너지는 것이 축구경기이다. 아무리 용을 써 봐도 소용없다. 운칠기삼(運七技三)이기 때문이다.
그럼 운(運)이란 무엇인가? 왜 기량이 월등한데도 질 수도 있다는 말인가? 운이란 그 정체를 정확히 말로 설명할 수는 없으나 경기 현장에서 작용하는 보이지 않는 초인적 실체이다. 실제로 경기에 참가했던 선수들에게 패인을 물으면, 경기를 하는 동안 줄곧 자기도 모르게 평소보다 발이 무거워서 잘 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아무리 힘껏 달려도 몸은 나가지 않고 제자리에서 달리는 기분이다. 반면에 승리한 팀의 선수들은 예상 외로 몸이 가벼워져 펄펄 날아갈 기분이었다고 한다. 아무렇게 발을 뻗어도 공이 와서 발에 맞는다. 흔히 개 발에 땀이 났다고 표현하는데, 이는 운을 가장 잘 표현한 말이다.
운은 선수 간의 믿음과 각오를 새롭게 만들어 주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고, 미묘한 분위기로 이끌어 주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상대방의 기를 제압하여 활동을 무디게 만들고, 동료들의 사기를 진작시켜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강한 힘이 되기도 한다. 경기에서 이기려면 기술도 좋아야 하지만 운도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다.
기(技)는 눈에 보이는 외적인 힘의 총화이다. 선수 개개인의 기량은 물론이고, 지금까지의 팀의 전적과 눈에 보이는 경기 외적인 요소가 기에 속한다. 기가 좋을수록 팀의 색깔은 화려하다. 그러나 화려한 색깔이 승리를 보장해주는 것만은 아니다. 일본과 그리스전이 이를 입증한다. 일찌감치 한 명이 퇴장당한 그리스와의 경기에서 수적으로 우세한 일본은 그리스의 벽을 넘지 못한다. 더구나 그리스는 지난 대회에서 한국에 패했고, 한국보다 랭킹이 우위인 일본은 그리스 선수가 한 명 퇴장 당하는 순간 승리를 장담한다. 그러나 결과는 의도했던 대로 되지 않는다. 운이 없기 때문이다.
운칠기삼(運七技三)이란 말은 승부의 세계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승부를 결정짓는 데는 운(運)과 기(技)가 7:3의 비율로 작용한다는 말이다. 패자가 진 것을 변명하며 합리화하기 위한 가장 좋은 표현이지만, 대부분의 경기에서 현실로 나타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러시아와의 경기에서 이길 수 있겠느냐고 회의를 가지고 물었던 친구들도 러시아와의 경기를 관람하고, 승리할 수도 있었는데 비겼다고 애석해 했다. 또 패하지 않고 비긴 것만도 잘했다고도 말했다. 러시아 팀의 기량이 우리보다는 한 수 위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러시아와의 국가 대항전에서 나타난 기량의 차이가 우려할 정도로 현저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해볼만 하다고 말했다. 운이 좋은 팀이 승리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월드컵경기에서는 예선 리그가 끝나면, 16강부터는 모든 경기가 토너먼트로 진행된다. 한번 져도 기회가 주어지는 리그전과는 달리, 지면 끝장인 녹다운(knock down) 경기이다. 피나는 혈전이 예상되지만, 행운의 여신이 손을 들어주는 팀이 웃을 수 있다. 운칠기삼이기 때문이다.
준결승전에서 세인들의 예상을 뒤엎고 월드컵사상 여러 가지 진기록을 세우며 독일에게 7:1로 대패한 브라질과 독일의 경기는 운칠기삼의 진면목을 보여준 경기였다.
이겼을 땐 환호하고 패할 때 비아냥대는 사람은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다. 질 때도 이길 때도 똑같이 환호와 격려를 보낼 줄 아는 사람이 진정으로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운칠기삼의 묘미를 알고, 승리할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다음 경기에 응원하러 갈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