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체유위법은 여몽환포영이요, 여로역여전이니 응작여시관하라
통일신라 때 조신스님 이야기
오늘 신도분들이 많이 오셔서 조금 어려운 말로 할 수는 없고
실화(實話) 하나 들려드리겠습니다.
지금부터 약 천 년 전 통일 신라 말기 정도 됩니다.
강원도 낙산사 어느 스님이야기입니다.
20대 중반 쯤 됐던, 법명이 조신(調信)이라고 하는 스님입니다.
관음보살 기도를 계속 해오고 있는데
그곳에 불공드리러 온 젊은 아가씨한테 혼이 뺏길 정도로 반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 아가씨는 알고 보니까 그 고을에 태수
(지금은 군수라고 하지만, 그때는 태수라고 했습니다)
성씨는 김씨, 김 태수 따님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아가씨가 불공을 다 마치고 하루 이틀 쉬었다가 갔는데 떠나고 나면서부터
그 스님은 자기가 스님이라고 하는 본분도 잊어버리고
그 여인을 생각하고 사모하는 정이 너무 깊어졌습니다.
너무도 그 아가씨가 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견디다 못해서 관음보살님 기도 발원 목표를 바꿨습니다.
출가한 신분으로 여자를 욕심 낸다는 것은 있을 수 없지만
그래서 경(經)에는 그 과보로 다음 생에 축생으로 태어난다고 하지만,
‘관세음보살님, 나는 그러한 벌을 달게 받겠습니다.
다만, 금생에 김 태수 따님과 연분을 맺고 싶다’는 소원을
그 날부터 관세음보살님한테 발원하면서 기도에 정진하기를
그렇게 한 두 해가 흘렀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렇게도 그리던 그 낭자가 혼인하게 될
잘생긴 청년과 함께 낙산사에 들렀습니다.
다 알아 듣겠지요?
젊은 스님은 수행 연륜도 짧고 아직은 피끓는 20대 중반이어서 인지,
견딜 수 없는, 누를 수 없는 질투심으로 가슴이 터질 듯 했다고 합니다.
관음보살님한테 원망했습니다.
그렇게도 정진을 하면서 관세음보살님한테 발원을 했는데,
그 낭자가 정혼을 해가지고 청년과 함께 낙산사에 들러서
불공을 드리러 온 것을 보고, 슬픔이 울음으로 폭발이 되어서
한 없이 통곡을 했습니다.
관세음보살님 상 앞에서, 통곡하고 울다가 비몽사몽 잠이 들어서 꿈을 꿉니다.
이제부터는 꿈 속 이야기입니다.
어느 여인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립니다.
‘기도하시는데 방해가 되는 줄 알지만 스님!’, 그래서 뒤 돌아보니까 그 낭자예요.
‘나는 스님을 처음 본 뒤부터 하루도 잊은 날이 없었습니다.
부모를 버리고 집을 버리고 뛰쳐나왔습니다.’
스님이 대답합니다. ‘사모하는 정으로 말하자면 저 역시 같습니다.
그렇지만 아가씨는 이미 정혼한 몸이 아닙니까.’
‘나는 부모님의 명 때문에 억지로 정한 혼사입니다.
그러니 이 몸을 데리고 도망쳐 주세요.’
‘어디로 도망친단 말입니까?’ 하니까 아가씨 말이.
‘어디든 좋습니다. 스님과 저와 단 둘이라면 어디든지 좋습니다.
살 수 있는 곳으로 우선 떠납시다.’
그래서 두 사람은 생각할 여지없이 산 속 길을 걸으면서
칡뿌리를 요기로 삼고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고향의 부모님도 이미 다 돌아가시고 아무도 없습니다.
그저 다 쓰러져가는 초가삼간에서, 입에 풀칠하기도 바빴답니다.
그러나 부부금술은 더 없이 좋았습니다.
그렇게 40년을 살았습니다.
두 부부는 5남매를 낳았습니다.
아이들이 점점 자라자 그들은 좀더 살기 좋은 곳을 찾아서
여기저기 두루두루 돌아다녔다고 합니다.
그리해서 명주(溟洲)의 고개 이름이 해현령(蟹縣嶺)이란 곳을 지나갈 때
열다섯 살 먹은 큰아들이 이름 모를 열병과 배고픔에 시달리다가 죽고 말았습니다.
부부는 통곡하면서 그 아들을 양지 바른 산등성이에 아들을 묻고 다시 떠났습니다.
거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우곡현(羽曲懸)이라는 곳에
초가집을 짓고 정착을 했답니다.
설상가상으로 이번에는 조신 스님 부부가
모두 병을 얻어가지고 드러눕게 되었습니다.
큰아들 밑으로 열두 살 먹은 딸이 있는데
그 딸이 이 동네 저 동네 다니면서 밥을 얻어다가
부모님과 동생들을 구해냈습니다.
그렇게 일곱 식구가 큰 아들이 죽었으니 여섯 식구가 됐지요.
간신히 연명해가면서 비참한 살림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밥을 빌러 다니던 딸이 마을에 갔다가 개에게 물렸습니다.
다리를 절뚝 거리면서 돌아와 몸져 누웠습니다.
자, 이 때 부부의 그 단장(斷腸)의 슬픔은 말할 수 없습니다.
조신의 아내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보, 이제 우리가 모두 살려면 서로 헤어지는 수 밖에 없습니다.
애들이 넷이니까 두 명씩 책임지고 우리가 헤어져야 어떻게 먹고 살지,
우리 여섯 식구는 도저히 안됩니다. 헤어지는 수밖에 없습니다.’
통곡하면서 웁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내가 처음으로 스님 당신을 만났을 때는 사모하는 정이 깊었기에
이러한 고생을 기꺼이 견딜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까지 50년을 그 두터운 사랑으로 버틸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늙어 병들고 가난에 쪼달려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며 살아온 지난 세월이 그저 무상하기만 합니다.
지난날의 그 달콤한 즐거움이 오늘날의 이같은 고통의 씨앗이 됐군요.
우리가 서로 두 명씩 책임을 지고 헤어지는 일이 모두가 사는 일입니다.
내년 이맘때 우리가 여기서 만납시다.
죽지 않으면 다시 여기서 만나기로 합시다.
그래서 두 사람씩 나누어 헤어지고 말았습니다.
‘어디로 가렵니까?’ 하니까. ‘나는 고향으로 갑니다. 나는 남쪽으로 갑니다.’
이렇게 하고 헤어졌답니다.
그 조신 스님은 너무너무도 과거가,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생각나면서
산천이 울리도록 울음보를 터트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면서 꿈에서 깨어나고 말았습니다.
깨고 보니까 5분 정도 지났습니다.
5분 정도 지났는데 자기는 50년을 살았습니다. 원 없이 살았습니다.
법당에서 잠깐 졸다 깨었을 뿐이었습니다.
그 조신 스님은 이미 한 생을 다 산 것처럼 세상일이 싫어지고 싫어졌습니다.
탐욕스러운 마음도 없어져 버리고, 세상에 대한 미련도 다 없어져 버렸습니다.
무상을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날이 밝자 그 스님은 꿈속에서 큰아들 묻은 곳을 찾으려고
해현령으로 달려갔습니다.
꿈 속에서 아들을 묻었던 곳을 파보았습니다.
거기에는 돌로 만들어진 미륵부처님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그 산속에다가 움막집을 하나 지어놓고,
조신 스님은 그 미륵부처님을 모시고 남은 생,
정말로 수행자답게 부처님 제자답게 수행을 잘 했답니다.
그래서 낙산 사성(洛山 四聖). 낙산에서 네 분의 성자가 나왔는데
그 중에 한 스님이 조신 스님입니다. 조신 대사라고.
여러분, ≪금강경≫ 말미에 사구게가 하나 있습니다.
일체유위법은 여몽환포영이요, 여로역여전이니 응작여시관하라.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이겁니다. 세상을 그렇게 봐야 되는 겁니다.
무상을 확실히 깨친, 확실히 본 스님은 정진이 빠릅니다.
옆에도 뒤에도 볼 겨를이 없습니다.
모든 욕심, 업을 짓는 근본이 되는 그런 욕심을 다 내려놓습니다.
여자, 돈, 권력과 지위와 명예도 필요 없는 겁니다. 그런 생각 안합니다.
그저 이 몸, 이 세상에 사람 몸 받아 태어났는데
내가 이 몸을 이 나를 기어이 금생에 제도하고 말리라 하는
크나큰 결심을 가지고 정진하는 겁니다.
그런데 혼자 하는 공부는 위험합니다.
스승 없이 혼자 공부하는 것은 정말로 성과를 얻기 어렵습니다.
아라한 성과를 얻어야 윤회에서 벗어납니다.
아라한 성과 얻기 어렵습니다.
혼자 공부해가지고는 정말로 위험합니다. 아라한 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 조신 스님이 어떻게 공부했는지 몰라도,
반드시 팔정도로 가야 됩니다.
혼자 공부하려면 반드시 팔정도로 들어가서 수행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팔정도 수행이 어렵습니다.
우선 철저하게 계율을 지켜야 합니다.
정말로 계율을 목숨처럼 알고 지켜야 합니다.
스님들은 생명이 계율입니다.
계율이 없이는 절대로 선정에 들어갈 수 없는 겁니다.
계율을 안 지키면 깨진 그릇인 셈이니
절대 깊은 선정에 들어 갈 수 없습니다.
출처:2018년 자재 만현 큰스님 법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