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2011년 수가계약 의미와 전망정형근 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은 여유가 있었다.
수가협상 시한 마지막 날인 지난 18일 오후 5시경.
정 이사장은 건강보험공단 국정감사장에서 수가협상 진행경과를 묻는 한 국회의원의 질의에 “난산 중”이라고 말했다. ‘난산’이지만 반드시 ‘출산’할 것이라는 확신의 냄새가 뭍어났다.
그리고 6개 단체가 자율타결에 합의하는 성과를 이뤘다. 유형별 수가협상 시행 4년차 만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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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28일 서울시내 한 호텔에서 회동한 단체장들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
"칼자루는 공단이 쥐었지만 얻을 것은 얻었다"◆분위기=“처음부터 칼자루는 건강보험공단이 쥐고 있었다.” 의약단체 협상단의 일원이었던 한 임원은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고 의약단체가 ‘해피’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의사협회가 건정심행을 선택하기는 했지만 6개 단체들은 만면에 웃음을 띠었다.
협상시한을 3시간여 넘긴 뒤 가까스로 도장을 찍고 늦은 귀가 길에 오른 의약단체 한 관계자는 “얻을 것은 얻었다”며, 피곤 섞인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올해 협상은 태생적으로 발목이 잡혀있었다. 지난해 건정심에서
부대합의 된 약제비 절감목표 탓이었다.
저마다 핑계거리는 있지만 병원과 의원은 약값절감에 실패했다는 점을 인정하고 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약국, 치과, 한방은 자칫 들러리로 밀리지 않을까 우려했다.
약제비 모니터링 결과를 어떤 방식으로 대입시키느냐에 따라 각 단체가 나눠가질 ‘파이’가 결정될 판이었기 때문이다.
재정운영위 가이드라인, 수가 인상률 평균 2.5%이내
인상폭 치과>의원>한방>약국>병원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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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정운영위원회는 협상시한 수일을 앞두고 최종 가이드라인을 정했다. |
건강보험공단 재정운영위원회가 가이드라인으로 정한 조정률은 평균 2.5% 이내였다. 이 기준을 전후로 최대한 유형간 격차를 확대한다는 전략이었다.
유형간 순위와 격차는 이미 SGR모형 연구결과를 통해 결정돼 있었다. 치과>의원>한방>약국>병원 순으로 연구결과 값은 적용하지 않고 유형별로 인상순위만 참조키로 했다.
실제 계약된 인상률도 치과 3.5%, 한방 3.0%, 약국 2.2%, 병원 1.0%로 일치했다. 의원에 건강보험공단이 최종 제안한 수치도 약값 모니터링 결과를 감안하면 3.0%로 순위에 부합했다.
재정운영위원회는 이참에 지불제도 개선을 위한 기반도 마련하고 싶어 했다. 재정운영위원회 한 관계자는 “총액계약제를 위한 공동 노력한다는 합의가 있다면 파격적으로 인상해 줄 수 있었다”고 말했다.
6개 단체 자율타결 63회에 걸친 회의와 만남의 산물◆경과와 쟁점=올해 실질적인 수가협상은 지난달말부터 시작에 약 20여일간 진행됐다. 하지만 크고 작은 회의와 만남이 있었다.
건강보험공단은 의약단체와 실무회의 8회, 협상단 회의 5회, 단체장 간담회 1회 등 14회의 만남을 가졌고, 유형별로 총 36회의 협상을 벌였다.
재정운영위원회와 재정운영위원회 소위원회도 각각 6회와 7회 회의를 진행했다. 유형별 수가협상에서는 병원이 8회, 약국과 한방 각 7회, 의원과 치과가 각 6회 테이블에 마주앉았다.
각 단체들은 저마다의 처지에 맞게 전략과 주장도 제각각이었다.
재정운영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병원협회는 제도 발전을 위한 4자 협의체 구성을 제안했다. 외래.경증환자 상급병원 쏠림현상, 약가제도 등 제도개선을 논의하기 위해 정부와 건강보험공단, 가입자, 공급자가 참여하는 협의체를 운영하자는 것이었다.
의사협회는 변명을 늘어놨다. 약품비 절감을 못한 것은 리베이트 쌍벌제 등 정부정책 때문이었다고 했다가, 약품비 절감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올해 약품비 절감 노력에 대해 재평가하고 결과를 그대로 적용해 수가를 삭감하는 것은 안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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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은 의사협회(좌)와 공단(우) 협상대표단. |
의협, 약값절감 결과반영 반대…금융비용 쟁점 안돼 치과, 한방, 약국은 약품비 절감결과 합의 이행여부를 주시했다. 우선 약품비 절감 결과가 통보됨으로써 공단이 병.의협과 삭감률을 감안해 협상할 것으로 내다봤다.
결국 먼저 합의에 도달한 단체는 상대적으로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의식이 확산됐다. 협상시한을 넘기도록 단 한 개 단체도 계약서에 사인하지 못한 이유다.
치과의사회는 총진료비가 매년 12~13%정도 증가하는데 반해 치과 점유율이 계속 감소하므로 수가 인상 등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두 번이나 협상장을 박차고 나왔던 한의사협회는 한약 복합제 급여화 등에 목을 맸다. 약사회는 재정절감 등을 위해서는 대체조제 활성화, 일반의약품 확대 등 급여제도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융비용 합법화가 적지 않은 부담이 됐지만 소문만큼 우려할 사항은 아니었다.
건강보험공단은 국민들의 수용 능력이 최우선적으로 고려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의약계가 경영상 어렵다면 비급여 수입을 포함해서 경영수지자료를 공개하는 등 투명성이 확보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또 지속가능한 건강보험을 위해 진료비를 예측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총액계약제 공동연구 부대합의 제안은 이 과정에서 나왔다.
건보공단, 병원 포기-의원 포섭전략…결과는 거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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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가계약은 협상시한을 넘긴 지난 19일 새벽에 이뤄졌다. |
◆성과=계약은 인상폭이 가장 큰 치과를 시작으로 약국, 한방, 약국 순으로 이어졌다. 건강보험공단은 당초 병원을 포기하고 의원을 잡는다는 전략을 폈다는 후문이었지만, 결과는 의원을 놓치고 병원을 잡았다.
병원은 건정심으로 가면 수가 인상률 ‘마이너스’ 후폭풍을 맞을 것을 우려 ‘벼랑 끝 전술’을 펼 수밖에 없었다.
의원은 건강보험공단과 0.5% 인상률 간극을 메우지 못해 건정심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의약단체 한 임원은 “건강보험공단이 핸들을 잡았고 성과도 얻어냈다. 환산지수 공동연구를 수행하기로 한 것은 올해 약제비 절감 목표만큼이나 향후 의약단체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약제비 절감 약속도 부대합의에 담겼다. 대신 ‘디스인센티브’를 없애 건강보험공단과 병원이 하나씩 주고받았다.
무엇보다 건강보험공단의 자체 평가처럼 “유형별 계약제 도입 4년차를 맞아 7개 단체 중 6개 단체와 자율계약을 체결함으로써 유형별 수가계약을 정착시키고 계약자치의 기반을 구축하게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건강보험 재정악화 속에서 의약단체들 또한 기대 이상의 인상률을 얻어내거나 수가인하 압박을 방어해 냈다.
물론 시민단체는 시선은 따갑다. 시민단체 한 전문가는 “건강보험공단이 자율타결에 매몰돼 수가를 또 퍼줬다. 무엇보다 약품비 절감에 따른 패널티를 제대로 부여하지 않은 것은 원칙을 무시한 최악의 수였다”고 혹평했다.
한 단체 관계자는 “병원 협상결과가 건정심에서 약제비 모니터링 결과대로 의사협회에 패널티를 부과하는 데 장애물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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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제비 모니터링 가집계 결과. |
의료계 "수가 포기해도 총액계약제 부대합의 안돼"◆남아있는 쟁점=의사협회는 건정심행을 선택하면서 외롭고 힘겨운 싸움에 직면하게 됐다. 무엇보다 작년 부대합의 이행압박이 거셀 게 뻔하다.
건강보험공단 재정운영위원회는 수가계약을 승인하면서 부대결의를 통해 이 점을 분명히 했다. 원칙대로라면 의사협회의 운신의 폭은 좁다.
작년 합의에 따른 기준 인상률은 2.7%, 여기다 약제비 모니터링 결과 -1%를 반영하면 1.7% 인상률을 수용해야 한다. 건강보험공단이 최종안으로 제시한 2%보다도 0.3% 적은 수치다.
의사협회 관계자는 “차라리 수가 인상폭을 적게 하더라도 부대합의는 받을 수 없었다. 건강보험공단은 총액계약제 징검다리를 만들기 위해 교묘한 수를 던졌고 다른 단체들이 말려들었다”고 주장했다.
한 개원의 협의회장도 “수가는 포기해도 총액계약제 부대합의는 안된다”며, 의료계의 바닥정서를 전했다.
그렇다면 의사협회 건정심 전략은 뭘까? 경만호 회장은 “건정심에 가더라도 승부수는 있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는 후문이다. 경 회장이 협상기간 중 진수희 복지부장관을 만났던 것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일단 예측 가능한 것은 작년 부대합의 내용에 대한 해석논란이다.
의료계 한 관계자는 “6개월치 약제비 모니터링 결과를 1년치로 환산해서 적용한다는 어떤 언급도 적시하지 않았다”면서 “만약 반년치만 적용하면 인하폭은 반감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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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정운영위 6기 위원 재구성상의 문제점을 제기하고 있는 시민사회단체들의 기자회견. |
집단행동 배수진 일차의료활성화-수가논의 연계 의료계의 경영개선을 위해 노력한다는 합의 미이행 부분도 쟁점이 될 수 있다.
다른 관계자는 “정부는 의료계에 약품비 절감만을 강요했지 다른 합의사항인 경영개선 노력, 의원의 경우 일차의료활성화를 위해서는 아무런 조치도 이행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전국시도의사회 또한 이 부분에 관심이 크다.
지역 의사회 관계자는 “23일경 시도의사회 연석회의를 가질 예정이다. 일차의료활성화에 대한 복안 없이 저수가만 강요한다면 우리도 물러설 수 없다”고 불만을 제기했다.
다른 관계자는 “일차의료를 활성화한다고 해놓고 저수가 압박으로 오히려 일차의료를 죽이려하고 있다”고 볼멘소리를 냈다.
결국 의사협회는 부대합의 내용에 대한 해석논란과 함께 집단행동을 배수진으로 일차의료활성화와 수가논의를 연계시키는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관측된다.
정부가 의사협회를 건정심이 아닌 자율타결로 이끌고 싶었던 것도 이런 점을 부담스러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