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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진이퇴(難進易退)
나아감은 어렵게 하고 물러남은 쉽게 한다는 뜻으로, 벼슬에 나갈 때 신중히 결정하고 그만둘 때는 신속히 한다는 말이다.
難 : 어려울 난(隹/11)
進 : 나아갈 진(辶/9)
易 : 쉬울 이(日/4)
退 : 물러날 퇴(辶/6)
출전 : 예기(禮記) 표기(表記)
공자는 벼슬길에 나아가고 물러남을 이렇게 말씀하셨다.
子曰: 事君難進而易退, 則位有序, 易進而難退則亂也. 故君子三揖而進, 一辭而退, 以遠亂也.
공자께서 이르기를, "임금을 섬김에 나아가는 것을 어렵게 하고 물러남을 쉽게 한다면 지위에 질서가 있을 것이며, 나아가길 쉽게 하고 물러나기를 어렵게 하면 어지러워 질 것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세 번 읍하고 나아가고 한 번 사양하고 물러나는 것이 어지러움을 멀리하는 것이다"고 말씀하셨다.
子曰: 事君三違而不出竟, 則利祿也. 人雖曰不要, 吾弗信也.
공자께서 이르기를, "임금을 섬기면서 세 번이나 사퇴를 요구해도 물러나지 않은 것은 그 녹을 이롭게 여긴 것이다. 그 사람이 비록 '녹을 구하지 않다'고 하나 나는 믿지 못하겠다"고 하셨다.
맹자는 공자가 "예로써 나아가고 의로써 물러났다(進以禮 退以義)"고 높였다. 주자는 "세 번 사양한 뒤에 나아가고, 한 번 읍하고서 물러났다(三辭而進 一揖而退)"는 뜻이라고 풀이했다.
주자가 일생 지킨 원칙은 난진이퇴(難進易退)였다. 나아감은 어렵게 하고, 물러남은 쉽게 한다는 말이다. 이 말은 예기(禮記)의 표기(表記)에 나온다.
事君難進而易退, 則位有序.
임금을 섬기면서, 나아감은 어렵게 하고 물러남은 쉽게 한다면 자리에 차례가 있다.
易進而難退, 則亂也.
쉽게 나아가서 어렵게 물러난다면 문란해지고 만다.
故君子三揖而進, 一辭而退, 以遠亂也.
그래서 군자는 세 번 절하고 나아가서, 한 번 사양하고는 물러나 어지러워짐을 멀리 한다.
이익이 '성호사설'에서 이 뜻을 부연했다.
國之忠臣, 必在難進之中.
나라의 충신은 반드시 나아감을 어렵게 하는 가운데 있게 마련이다.
難之者為其事之重且大, 恐不能堪也.
이를 어려워하는 사람은 그 일이 무겁고도 커서 능히 감당치 못할까 염려하는 것이다.
小人易進. 易之者非貪冐不忌, 則必佻輕妄作者也.
소인은 나아감을 쉽게 여긴다. 쉽게 여기는 사람은 멋대로 탐욕을 부려 거리끼지 않거나, 틀림없이 경박하여서 망령된 행동을 하는 자이다.
다시 이어진다.
然而世主所取, 必在患失之中, 何也?
그런데 임금이 취하는 바는 반드시 자리를 잃게 될까 근심하는 자들 중에 있으니 어찌 된 일일까?
今人對饌, 僕隷在下, 其知耻謹避者, 常不得哺, 畢竟呼令染指, 即無廉隅希望者也.
지금 사람은 음식을 마주해, 하인들이 아래에 있을 경우, 부끄러움을 알아 피하는 사람은 늘 배불리 먹지 못한다. 결국 부름을 받아 맛보는 것은 염치 없이 바라는 자들뿐이다.
世主之與人爵, 亦猶是也.
임금이 작위를 주는 것도 다를 게 없다.
故弭耳揺尾, 乞狗之態, 吮癕䑛痔, 容悅之臣也.
그래서 귀를 늘어뜨리고 꼬리를 흔드는 것은 빌어먹는 개의 태도이고, 등창을 빨고 치질을 핥는 것은 예쁘게 보이려는 신하이다.
此雖可鄙, 其源繋于上之所造.
이것이 비록 비루하게 여길 만하지만, 그 근원은 위에서 하는 바에 달렸을 뿐이다.
하는 일 없이 자리만 차지한 채 배 불릴 생각에 꼬리만 흔들어대는 것은 위에서 그걸 좋아하기 때문이다.
◼ 항룡(亢龍)의 눈물
항룡유회(亢龍有悔)라는 말이 있습니다. 주역(周易) 건괘(乾卦)에 나오는 말로 높이 올라간 용은 눈물을 흘리며 후회를 한다는 말입니다. 항룡(亢龍)은 하늘에 오른 용이라는 뜻으로, 지극히 높은 지위를 이르는 말이다.
너무나 높이 올라갔기에 더 이상 올라갈 수 없었기 때문이지요. 이제는 내려갈 일만 남았습니다. 그래서 용의 눈에 눈물이 고이는 것입니다.
이번 미국 46대 대통령 선거에서 보여준 트럼프 대통령의 발버둥이 너무나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 '항룡유회'의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계 최강의 대통령쯤 되는 사람의 처사가 겨우 이 정도에 그친다는 것은 미국의 수치일 뿐이 아니라 전 세계에 큰 실망을 안겨 준 것이 사실인 것 같습니다.
그는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법정투쟁을 다짐했습니다. 트위터를 통해 "나는 선거에서 이겼다. 큰 표차이로..." 라면서. "합법적인 투표는 이겼는데, 민주당이 불법적인 투표지까지 개표하면서 승리를 훔쳤다"고 주장합니다. "선거는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연방대법원에서 가려질 것이다"고 버티고 있네요.
달도 차면 기울고, 열흘 붉은 꽃은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정작 자신은 물러날 때를 모르는 모양입니다. 비단 이 문제는 트럼프에게만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모든 공직자나 대소 조직의 지도자 전부에게 해당하는 것이 아닐까요? 이렇게 권력의 맛에 도취된 공직자들이 종종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하고 회한의 뒤끝을 남기는 어리석음을 범하기 쉬운 것입니다.
반면 조 바이든 미국 제46대 대통령 당선자는 승리연설에서 성경의 구절을 인용했습니다. "세울 때가 있고, 수확할 때가 있으며, 씨 뿌릴 때가 있고, 치유할 때가 있다. 지금 미국은 치유할 때이다"고 했지요.
이 말은 지혜의 왕으로 일컬어지는 솔로몬이 썼다고 알려진 '전도서' 구절이라고 합니다. 바이든은 선거기간 동안 첨예하게 찢기고 갈라진 미국의 민심을 추스르기 위해, 성경을 이용해 '치유'를 강조했습니다.
그렇다고 대립과 분열의 정치를 지향한 트럼프의 병폐가 쉽게 치유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무엇보다 진심어린 트럼프의 참회와 패배를 받아들이는 승복(承服)이 전제 되지 않으면 화합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모든 공직자는 선공후사(先公後私)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조선 정조(正祖) 시대는 탕평책(蕩平策)에도 불구하고 정치는 여전히 어지러웠습니다.
선비들이 자리를 탐하기 때문에 정조도 "난진이퇴(難進易退)가 아쉽다"고 탄식했습니다. 이는 "벼슬에 어렵게 나가고 선선히 물러난다"는 뜻입니다.
어떤 자리를 제안 받았다고 해서 앞뒤 가리지 않고 덥석 수락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스스로 그 자리에 적임인지, 인사권자가 잘못 본 것은 아닌지, 그래서 결국 나라와 국민에 해를 끼치게 되고 스스로도 이름을 더럽히는 것은 아닌지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맹자(孟子)가 말한 '행장진퇴(行藏進退)'도 같은 뜻입니다. 공직자는 나아감과 물러섬을 알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처신(處身)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공직자의 최고의 덕목인 것입니다.
그런데 "물러나고 싶어도 어지러운 세상을 그대로 둘 수 없었다"는 이유로 내려오는 것을 거부하는 지도자를 우리는 보아왔습니다.
그런데 그런 지도자 치고 제대로 그 자리를 유지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국민의 강력한 요구에 결국은 무너지고 불행한 최후를 맞이한 것입니다.
트럼프에게 과거 우리나라 대통령들의 비극을 알려주면 어떨까요? 링컨은 "그 사람의 인격을 알려면 권력을 줘보라"고 했습니다. 권력을 맛보면 본성이 나오고, 권력을 쥐면 그의 사람 됨됨이가 오롯이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조선의 재상 이원익은 "나는 평생 이익을 보면 먼저 그것이 부끄럽지 않은지 생각했다"고 술회했습니다. 그는 오랜 동안 권력 핵심에 있었지만, 물러났을 때 누옥(陋屋) 한 채 뿐이었습니다.
그야말로 공직을 자신의 정치적 혹은 개인적 자산으로 활용하려는 '악덕 공직자'들의 귀감이 아닐까요?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하고 눈만 뜨면 자기 자랑을 했다고 합니다. 지난 7월 13일 와싱턴 포스트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7년 취임한 이후 3년 6개월 간 2만 번이나 거짓말과 잘못된 주장을 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워싱턴 포스트의 팩트 체크팀은 "트럼프 취임 267일 째, 거짓이거나 사실을 오도하는 주장이라고 판단한 사례가 누계로 2만55회에 달했으며, 하루에 16건에 해당한다"고 전했습니다.
게다가 어제 그는 또 선거부정이 있었다고 선거부정 소송을 제기 했다고 합니다. 거짓은 무너질 때에 여지없이 무너지고, 진실은 천지도 없앨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만이 많으면 사람을 잃고, 외식(外飾)이 많으면 진실을 잃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잃으면 세상을 버림이요, 진실을 잃으면 자기를 버리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올라가면 내려 올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진실하고, 공심 있으며, 오로지 덕을 쌓아야 합니다. 그러면 일할 곳이 없어 자리를 탐할 일은 없지 않을까요!
◼ 퇴계 '물러남'의 철학, 그 현대적 가치
1. '물러남'의 선비 퇴계
퇴계(退溪)는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역사나 전통문화에의 관심 여부와 관계없이 퇴계라는 인물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가장 손쉽게 우리는 매일 사용하는 천원권 지폐에서 그의 영정을 접하고 있습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학자이기 때문에 관련된 책이나 논문, 인터넷 정보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는 모두 퇴계를 '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퇴계가 학자로서 또 선비로서 충실한 삶을 살아왔기에 퇴계의 삶에는 많은 스토리와 풍부한 가르침이 담겨 있습니다.
할반지통(割半之痛)의 일화가 보여주는 형제간의 우애, 여빈상경(如賓相敬)의 부부관계, 지극한 가족 사랑뿐만 아니라 그 이상으로 이웃을 사랑한 면모, 특히 노비의 생명을 존중했던 여종 학덕의 일화는 우리에게 큰 감동을 줍니다.
이 외에도 귀감이 되는 일화들이 많이 있고 또 잘 알려져 있습니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압축인 내용만 담고자 합니다.
사실 무엇보다 퇴계라는 인물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부분은 바로 그의 호(號), '퇴계'입니다. 바로 '물러날 퇴(退)'자 때문입니다.
사실상 옛 선비들의 호는 거창하기 보다는 일반적이고, 때로는 그다지 좋지 않은(?) 글자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단순히 늙은이라는 뜻으로 옹(翁)자를 쓰기도 하고, 은거한다는 뜻의 숨을 은(隱)자를 쓰는 인물도 있습니다.
우담(愚潭), 우천(愚川) 등과 같이 어리석을 우(愚)자를 쓴 학자들도 있습니다. 겸손하겠다는 의미와 더불어 학문에 더 정진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는 듯합니다.
퇴계의 호에 쓰인 물러날 '퇴(退)'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퇴'자는 좋은 어감을 가지고 있지 않지요. '퇴학, 퇴사, 퇴보, 후퇴, 퇴행'과 같은 단어들 하나같이 부정적인 어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좋은 어감을 가진 것이 하나 있다면 '퇴근' 정도이겠지요.
호는 스승의 자격을 갖출 정도로 명망 있는 사람이, 자기 스스로 짓거나 또는 다른 사람들이 지어서 부르는 이름입니다. 제자들이 스승의 자(字)를 부를 수는 없고 이름은 더더욱 부를 수 없으니 호를 부르게 되는 것입니다.
호는 대개 살고 있는 곳의 지명이나, 가까운 산, 강, 냇물의 이름을 따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또는 집을 지어 이름을 붙이면 그것이 곧 호, 즉 당호가 됩니다.
율곡의 호는 파주의 '율곡리'라는 지명에서 유래한 것이고, 우계(牛溪) 성혼 선생의 '우계' 역시 파주의 시냇물 이름이었습니다.
한훤당(寒暄堂) 김굉필, 신독재(愼獨齋) 김집 선생과 같이 무슨 '당'이나 '재'라는 글자가 들어가는 경우는 대개 집의 이름이 그대로 호가 된 당호입니다.
사실은 호를 직접 짓는다기 보다는 지명이나 당명을 사람들이 부르면서 호가 되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합니다.
퇴계라는 호는 선생이 살던 고향의 시냇물 이름에서 온 것입니다. 그런데 그 시내 이름이 원래부터 퇴계는 아니었습니다. 토끼 토(兎)자를 쓴 토계(兎溪)였었고, 오늘날에는 흙 토(土)자를 써서 토계라고 부르는 곳입니다.
통상적으로는 토계라는 시냇가에 사니까 가만히 두었다면 사람들이 토계선생이라고 부르다가 그것이 호로 자리 잡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퇴계는 그렇게 되기 이전에 시냇물의 이름을 퇴계로 고치고 자호(自號)로 삼습니다.
身退安愚分
몸 물러나니 어리석은 분수 편안하나
學退憂暮境
배움이 퇴보하여 늘그막이 걱정이네.
溪上始定居
시냇가에 비로소 자리 잡으니
臨流日有省
물줄기 굽어보며 날로 돌이켜보네.
(퇴계선생문집 권1)
관직에서 완전히 물러나기로 마음먹고 고향인 토계의 시냇가에 계상서당이라는 작은 집을 짓고 나서 소회를 쓴 '시냇가로 물러나다(退溪)'라는 시입니다.
이 시는 46세 때 쓴 시이지만, 사실 퇴계의 이러한 성향은 어린 시절부터 정해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負石穿沙自有家
돌을 지고 모래를 파니 저절로 집이 되고
前行却走足偏多
앞으로 가고 뒤로 달리니 발도 많구나.
生涯一掬山泉裏
일평생 한 줌 샘물 속에서 족하니,
不問江湖水幾何
강호(江湖)의 물이 얼마인지는 묻지 않겠노라.
(퇴계선생문집 권1)
15세의 청년 시절에 지은 '가재(石蟹)'라는 시입니다. 30년 후의 포부와 전혀 다를 것이 없습니다.
퇴계는 이 마음을 그대로 이어가며 일생을 일관합니다. 물러나기는 커녕 고향을 떠나기 전부터 퇴계는 이미 물러남의 뜻을 품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포부를 안고 있었던 퇴계였지만, 수많은 고민 끝에 결국 과거시험에 응시하여 관직에 나아가게 됩니다. 관직에 나아간 이유는 당연히 입신양명(立身揚名)에 뜻은 아니었습니다.
유교사회였던 조선시대, 진정한 선비라면 관직에 나아가는 목적이 일신의 영달에 있지 않습니다. 물론 벼슬을 하는 것이 개인과 가문에 영광스러운 일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주된 목적은 아니지요.
선비가 관직에 나아가는 이유는 유교의 수기치인(修己治人)의 이념에 따라 세상에 뜻을 펼치고 백성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 일하기 위한 것입니다.
유교사회에서 관직에 나아가는 사람들은 실상이 여하하든, 수기치인을 표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입신양명에만 뜻을 둔 사람도, 심지어 나라를 망쳐먹는 간신배들까지도 표면적으로는 '세상을 위해', '백성을 위해'라는 말로 포장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퇴계는 오히려 수기치인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관직에 나아갔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퇴계는 스스로 관직에 나아간 이유를 "집이 가난하고 홀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매우 솔직한 화법이지요.
오늘날의 방식으로 말하자면, 먹고 살기 위해 공무원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퇴계가 관직에 나아간 것은 큰 뜻이 있어서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왜 그는 큰 뜻과 포부를 펼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먹고 살기 위해 관직에 나아갔다고 말했던 것일까요?
사실 수기치인을 가장 잘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은 영향력 있는 자리에서 큰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퇴계는 높은 관직이 자신이 있을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평생 학문에 정진하는 것, 그리고 관직을 맡더라도 지방의 조그만 고을 수령 정도가 스스로에게 적합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퇴계가 그토록 소망하던 지방관을 역임할 수 있었던 기간은 2년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연배가 올라가고 명망이 높아질수록 조정에서는 퇴계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습니다. 그가 평생에 걸쳐 70번 이상 관직을 사양하거나 사직해야 했던 이유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퇴계는 훗날 관직에 나아갔던 일을 두고두고 후회합니다. 그러나 만일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더라면, 오늘날 그의 호(號)인 '퇴계'를 우리는 접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애초부터 나아가지 않았다면 '물러남'에 대한 갈망은 필요 없을 것이기 때문이지요.
물러나서 숨는 삶을 원했지만, 역설적으로 퇴계는 역사에 큰 자취를 남겼습니다. 퇴계의 후예들은 훗날 중앙정계에서 밀려났지만, 거기에 불만을 가지고 반항하기 보다는, 스스로 물러났던 선생을 롤 모델로 삼아, 향리에서 스스로를 성찰하고 조화로운 공동체를 꾸려가는 데 힘씁니다.
그리고 국난이 닥치면 누구보다 먼저 몸을 던져 나라를 구하는 데 앞장섭니다. 퇴계는 물러남으로써 오히려 미래를 열어간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갈등의 시대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경제적 부와 정치적 민주화를 이루며 상당한 발전을 성취했습니다. 바야흐로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우리나라 비교적 평화롭고 풍요로운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우리는 다양한 문제에 직면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라고 한다면 '갈등'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다양한 갈등이 증폭되어 있습니다.
이념의 차이로 인해 여전히 분단국가로 남아 있는 한반도의 현실이 이 갈등상황을 가장 잘 대변해 줍니다. 남한 내에서도 지역간, 남녀간, 계층간의 갈등이 매우 심화되어 있습니다.
과거에 비해 많이 해소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특정 지역의 사람들은 아무런 이유 없이 서로를 비방하기도 합니다. 단순히 남자라는 이유로 또는 여자라는 이유로 전혀 합리적 원인 없이 혐오 받고 기피당합니다. 이유 없이 부유층에게 반감을 가지고 반대로 저소득층을 무시하고 경멸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여기에 진보와 보수의 정치적 갈등은 때로 도를 넘는 비방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데이트폭력, 여성혐오, 남성혐오, 결혼기피, 이혼율 증가, 명절증후군, 금수저와 흙수저 등등의 신조어들이 오늘날 갈등의 심각성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저의 생각으로는 앞으로 유학, 퇴계학의 관점에서 이러한 문제에 대해 해법을 내어놓을 필요가 있으며 이는 매우 시급한 일이라 생각됩니다.
오늘 여기서는 먼저 노인혐오나 정치적 갈등 등으로 나타나고 있는 이른바 세대갈등에 대한 문제를 다루어볼까 합니다.
논의를 진행하기에 앞서 한 가지 짚어두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왜 이러한 갈등이 끊임없이 생겨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날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갈등이 현대사회만의 문제라고 잘못 이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산업화 이전의 전근대사회에는 이런 일이 없었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일률적으로 그렇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러한 갈등은 과거에도 분명히 존재했습니다. 다만 그 갈등이 오늘날처럼 이렇게 표면화되지 않았거나, 다른 방식으로 나타났을 뿐입니다.
그 방식 중 대표적인 것 하나는 일종의 '억압'입니다. 과거에도 갈등의 잠재요소가 있었지만, 그것을 모종의 방식으로 억압했었기 때문에 그것이 드러나기 쉽지 않았던 것입니다.
젠더갈등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마치 남성혐오, 여성혐오와 같은 젠더갈등이 현대사회의 산물인 것처럼 말해지지만, 사실은 그 이전부터 뿌리 깊게 존재하던 문제였습니다.
가까이는 우리의 과거, 멀리는 유럽이나 기타 대륙의 과거를 보더라도 남녀차별은 만연했습니다. 주요한 권력은 남성이 차지하고 여성에게는 발 디딜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과거시대에는 왜 오늘날처럼 문제시되지 않았던 것일까요? 간단합니다. 일방적으로 남성이 여성을 억압했었기 때문에, 즉 힘의 균형이 한쪽으로 쏠려 있었기 때문에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입니다.
다른 갈등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면 오늘날 계층 간의 갈등이 큰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과거시대라고 계층 간의 갈등이 없었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오늘날보다 더 큰 격차가 있었고 더 큰 문제의 소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표면화되지 않은 이유는 간단합니다. 어떠한 문화권을 막론하고 신분변화가 용이하지 않았던 신분제 사회였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신분변동이 불가능하다면 그것을 벗어나기 위한 발버둥은 실패의 가능성이 큽니다.
많은 현대인들이 이러한 갈등의 원인을 유교에 돌립니다. 예컨대 가부장, 여성차별, 신분차별이라고 하는 차별 삼종 세트의 원흉으로 유교를 지목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 삼종 세트는 유교가 아니라 전근대적 사회, 즉 농경사회와 유목사회의 공통적인 산물이며, 문화권을 막론하고 매우 보편적으로 드러나는 현상입니다.
사회가 복합화되면서 분업이 이루어집니다. 그 과정에서 남자들은 밖에 나가서 일을 하고 여성들은 집안에서 비교적 힘이 들지 않는 일을 했습니다.
때로 일손이 부족할 때는 여성들도 바깥일에 동원되었지만, 주도권은 여전히 남성들의 몫이었습니다. 큰 동물을 사냥하거나, 밭을 갈거나, 말을 모는 험한 일은 남성의 몫이었습니다.
그렇게 완력이 필요한 일 중요한 일을 남성들이 더 원활히 수행할 수 있었기에 그것을 바탕으로 남성들이 주도권을 잡았던 것이고, 주도권을 잡았기 때문에 비주류인 여성과 아동은 상대적으로 억압되었던 것입니다.
잘 들여다보면 이러한 차별의 형성과정에서 유교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유교는 그러한 삼종세트와는 정반대에 있습니다.
유학은 약자를 억압함으로써 갈등을 해결하고자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러한 시도에 대해 제동을 걸고, 정상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문제에 접근하고자 하는 사상입니다.
가령 오륜의 하나인 장유유서(長幼有序)는 아동을 억압하라는 말이 아니라 순서의 선후를 정해놓은 것일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부부유별(夫婦有別)은 부부의 차별을 옹호하거나 부인을 억압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단지 남편과 아내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그래서 서로의 소유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점을 인지시켜줄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부자유친(父子有親)은 부모와 자식의 떼려야 뗄 수 없는 긴밀하고 친한 관계, 즉 천륜으로 맺어져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는 말이고,
군신유의(君臣有義) 임금(상사)과 신하(아랫사람)가 이해관계가 아닌 '의'를 행하는 관계로 맺어진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말입니다.
오륜은 이 인간관계 속에서 갈등이 발생했을 때 인륜으로 해결해야 함을 역설합니다. 오륜은 이러한 철학적 고민의 산물인 것입니다.
3. 세대간의 갈등 - 노인혐오와 요즘 것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역사상 다양한 갈등이 없었던 적은 없지만, 세대 간의 갈등은 특히 오늘날 더 심각합니다. 일례로 노인혐오(혐로)를 들 수 있겠습니다. 노인혐오는 비교적 최근에 발생한 문제로 보여집니다.
2000년대를 전후하여 구세대의 가치관을 가진 노인계층과 서구식 개인주의의 영향을 받은 젊은 세대의 가치관 대립으로 나타난 것이지요. 여기에 정치적 입장 차이, 고령화 시대로 인한 각종 복지문제 등도 사회적 요인으로 작용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저는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노년층이 전 인류 역사를 통틀어 가장 혹독한 노년을 보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전근대시대는 물론, 정보화시대가 도래하기 이전까지만 해도 노인은 젊은 사람을 압도하는 삶의 경험과 지식 덕분에 어떻게든 젊은 층의 존경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오늘날도 삶의 지혜의 측면에서는 연소자가 연장자를 능가할 수는 없지만, 정보의 측면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정보에 대한 접근력은 오히려 젊은 사람이 강합니다. 여기에 사회의 급격한 변동도 젊은 층이 더욱 적응하기 유리하게 작용합니다.
노인들이 과거처럼 지식적 측면에서 존경받지 못하는 이러한 현상은 노인혐오라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는 하나의 원인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노인혐오가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흔하게 나타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급격한 사회변동이 큰 작용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세대갈등의 문제에 대한 노년층의 인식은 청장년층에 비해 그다지 심각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2018년 사회통합 실태조사에서 응답자의 64.4%가 우리 사회 세대 갈등의 심각성에 동의했는데, 10~40대가 50~60대에 비해 세대 갈등이 심각하다고 인식했습니다.
2017년 노인인권 실태조사에서는 청장년층이 노인층보다 세대 간 대화에 어려움이 있으며(청장년층 90.0% vs 노년층 40.4%), 세대 간 갈등이 훨씬 더 심각한 편으로 인식했습니다.(80.4% vs 44.3%)
2017년 세대문제인식 실태조사에서는 청소년층의 72.1%가 세대갈등이 심각하며, 66.6%가 향후 세대 갈등이 심각해질 것으로 판단했다고 합니다.
이를 종합해 보면 세대갈등의 문제에 대해 청년층의 인식이 더욱 심각하며, 반대로 노년층은 그 심각성에 대해 비교적 둔감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쩌면 어르신들의 눈에 비치는 청년들은 그저 아직 철모르는 '요즘 것들'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릅니다.
이와 같은 현상을 요약하자면, "노인들은 젊은이를 멀리 하고자 하지 않으나, 젊은이들은 노인을 기피한다"는 심각한 결론이 도출됩니다.
세상이 변화함에 따라 구성원들의 생각이 변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더욱이 우리나라처럼 짧은 시간에 급격한 변화를 겪은 곳에서는 세대 간의 인식의 차가 더 클 수밖에 없고, 이는 점점 더 가속화 될 것입니다.
만일 지금처럼 젊은이들은 노인을 기피하고, 노년층은 젊은이들을 '요즘 것들'로 치부하고자 한다면, 결코 이 갈등의 골은 메워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더 깊어질 것은 명약관화합니다.
그렇다면 이 세대의 갈등을 어떻게 해소해야 할까요? 세대 간의 갈등 문제를 지적했던 원영희 교수는 다음과 같은 방안을 제시합니다.
첫째, 세대 간 편견을 완화 내지 해소하고 세대별 가치관 및 정체성의 차이에 관해 올바른 이해를 도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세대 이해 교육을 통해 다른 세대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도록 돕는 것이 필요하다.
젊은 세대에게 노화 및 노인의 특성, 노인 세대의 가치관, 살아온 역사적 경험 등을 이해시키는 일이 중요하다. 노인 세대에게는 변화하는 사회를 이해하고 변화에 따른 현시대 다른 세대의 모습을 수용하도록 관련 교육 또한 시급하다.
특히, 세대 간 디지털 격차(digital divide) 완화를 위해 노인 세대의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 및 디지털 역량 배양을 위한 정보화 교육이 필요하다.
또한 각 세대에 대한 편견이나 고정관념 완화를 위해 공익광고 및 동영상 제작, 대중매체의 활용, 노인·노화에 대한 부정적 인식 해소, 그리고 연령주의 철폐 및 세대 통합 캠페인 등이 도움이 될 수 있다.
둘째, 현대 사회에서 다양한 세대가 함께 활동할 수 있는 일상생활 속 공간이 제한적이며 세대 간 소통이나 만남 기회 자체가 점점 줄어들고 있어 세대가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공간 및 기회 마련이 필요하다.
세대 간 긍정적 경험은 세대 공감과 소통의 능력을 배양하고 더 나아가 공동체의식과 시민의식을 향상시켜 올바른 시민성을 길러낼 수 있다.
이와 관련, 여러 세대가 함께 모여 상호작용하고 교류할 수 있는 세대 통합 공간 조성 및 각 세대가 다른 세대를 도와주고 공동 활동과 함께 학습기회를 갖는 세대 통합 프로그램이 활성화돼야 한다.
셋째, 세대 간 형평성 및 지속가능성 제고 등 세대 통합을 위한 정책 개발 및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 세대형평적 일자리 창출, 임금피크제의 활성화, 그리고 다양한 일자리의 세대공유 확산 등을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
또한 주요 사회의제에 대해 각 세대가 함께 참여하는 토론의 장(場)을 마련하고, 중립적 세대합의 기구 신설을 통해 세대 간 이해관계 조정이 가능하도록 정책참여 기회를 확대해야 할 것이다.
세대갈등의 해결방안은 크게 세 가지로 압축됩니다. 먼저 서로 다른 세대를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입니다. 둘째로는 서로 다른 세대가 함께 할 수 있는 상호교류와 소통의 장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는 세대 간 서로의 경제적 이익을 침해하지 않고 함께 이익을 향유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모두 오늘날의 세대갈등 해소를 위해서 절실한 것이며, 정책적으로 적극 추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위의 연구에서는 어떠한 방식으로 타 세대를 이해해 가야 할 것인지, 어떻게 교육을 시행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론은 제시되고 있지 않습니다.
이 시점에서 이러한 갈등의 해소를 위해 저는 유학, 특히 퇴계학이 이러한 문제의 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늘에 퇴계학을 되살려야 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4. 꼰대, 그리고 그 극복방안
'꼰대'라는 말을 알고 계시는지요? 세대 간의 갈등에서 이 꼰대라는 말은 매우 핵심적인 용어로 작용합니다. 사전적 의미로는 "학생들의 은어로 '아버지, 선생님, 노인'을 이르는 말"이라고 합니다.
실질적인 의미는 다양한 층차가 있지만, 대개 "남의 말을 경청하거나, 타인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자기의 경직되고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사람"으로 요약될 수 있겠습니다.
주로 연장자가 연하자에 대해서 이러한 태도를 많이 보이고, 여성보다는 남성에게서 이러한 경향이 많이 나타나기 때문에 꼰대라고 하면 중년 이상의 남성의 이미지가 떠오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은 젊은 층이나 여성들 중에서도 사고가 경직되어 타인을 이해하지 못하며, 자신의 생각만 옳다고 주장하는 이른바 ‘젊은 꼰대’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 '꼰대'는 '갑질'이라는 말과 더불어 수직적 사회문화의 폐단으로 지적되기도 합니다. '꼰대'와 '갑질'의 공통점이 있다면, 둘 다 권력이나 지위를 가진 입장에 있다는 점이지만, 그 내용은 전혀 다릅니다.
'갑질'은 지위와 권력을 이용해 압력을 행사하고 때로 언어적, 물리적 폭력을 동반하는 나쁜 행위이지만, '꼰대'는 단지 권위적이고 완고할 뿐, 상대에게 직접적인 해를 가하지는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른바 꼰대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대개 인성 자체가 나쁜 사람은 아닙니다. 오히려 도덕과 예의를 중시하며 옳은 말을 한다는 점에서 꼰대는 어떤 면에서는 비난의 대상이 될 수는 없을 지도 모릅니다.
비록 그렇기는 하지만 꼰대는 결코 환영받을 사람도 아니며, 여전히 기피의 대상이 되는 것은 면할 수 없어 보입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사람이 나이가 들면서 사고가 경직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인 것 같습니다.
생리적으로 뇌의 기능이 저하되면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능력이 약해지고 자신만의 세계에 갇히기 쉽게 되는 것이지요. 이쯤 되면 "꼰대는 과학이다"고 말해도 될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노력 여하에 따라 충분히 꼰대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마치 나이가 들더라도 운동과 식이요법으로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것처럼, 마음의 건강을 유지하는 노력만 한다면 꼰대가 아닌 향기로운 '어르신'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갑질과 꼰대는 수직적 인간관계의 산물로 지목됩니다. 이러한 수직문화의 배후로 역시 유교문화가 떠오르게 됩니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이 모든 것은 그 반대이거나 오해에 지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유교는 이러한 폐단을 극복할 확실한 대안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 가지 결여하고 있는 것만 제외하면, 사실 꼰대는 반듯한 사람입니다.
이 결여된 요소 하나만 제대로 보충할 수 있다면 꼰대는 분명 존경 받는 '어르신'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겸손'과 '물러남'입니다. 앎은 쉬우나 실천이 어려운 덕목 중 하나가 바로 이 겸손임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에 먼저 퇴계의 삶에서 보이는 지극한 겸손의 실례(實例)를 접해보고, 어떻게 겸손을 실천할 수 있을지 찬찬히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5. 제자에게 예를 갖춘 퇴계의 겸손
명종 무오년(1558년)은 바야흐로 노년에 접어든 퇴계와 두 소장학자에게 평생을 잊지 못할 한 해가 되었을 것입니다.
당사자들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을지 모르지만, 이 해에 있었던 두 번의 묵직한 만남은 훗날 조선 학계 전체의 방향을 형성한 위대한 만남이 되었습니다.
(1) 초봄, 경상도 예안
2월 6일, 율곡 '이이'가 당시 성주목사로 재직하고 있던 자신의 장인 사인당 '노경린'을 만난 다음, 자신의 외가가 있는 강릉으로 가는 길에 예안(현재의 안동시 도산면 일대)을 지나면서 퇴계를 찾아옵니다.
당시 퇴계는 조선 최고의 석학으로 존경받고 있었고, 율곡은 비록 문과에 급제하기 전이기는 하지만, 조선의 미래를 담당할 최고의 수재로 소문이 자자했던 소장 학자였습니다.
이 만남에서 율곡은 퇴계의 학덕을 찬미하는 시를 다음과 같이 올립니다.
공자와 맹자의 학문에서 흘러나와/ 무이산 주자의 빼어난 봉우리를 이루었습니다./ (중략)/ 가슴 속은 우후(雨後)의 달처럼 환하며/ 담소는 요동치는 물결을 그치게 합니다./ 소자는 도를 듣기 구하려는 것/ 반나절 한가로움 훔치려는 것 아니옵니다.
율곡은 퇴계의 학문이 공자와 맹자, 주자의 적통을 이었다는 찬사를 보내면서 가르침을 청합니다. 과거의 선비들이 만나면 직설적인 대화보다는 압축적 언어인 시를 가지고 서로 흉금을 나누었지요.
시를 받으면 그 시의 운자를 따서 화답시를 주는 것이 예의이지만, 퇴계는 이 룰을 깨고, 이 시에 대해서 만큼은 차운하지 않았습니다. 과도하게 칭찬하는 말에 대해 손사래를 치겠다는 의미인 것으로 보입니다.
당초 퇴계를 알현하고 나서 하루만 머물고 떠나려고 했었던 율곡이지만, 비가 와서 시냇물이 불었기 때문에 3일을 머물게 되었고, 그 사이에 이 두 선비는 인생과 학문에 대해 대화도 나누고 시도 몇 수 수작했던 것 같습니다.
비가 눈으로 바뀌고 율곡이 떠나던 날, 퇴계는 다음과 같은 송별시를 전하며 위의 시는 없애줄 것을 요청합니다.
그대 와서 내 정신 시원케 해 주었소/ 명성 아래 헛된 선비 없음을 이제야 알겠으니/ 몇 해 전 먼저 찾아보지 못했음이 못내 부끄러워라/ (중략)/ 지나친 찬사는 모름지기 거두어 내고/ 노력하는 공부 서로 날마다 가까이 하세.
아무리 100년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수재라고는 하지만, 이미 대학 총장을 지내고 은퇴한 대학자가 대학 신입생에게 '먼저 찾아보지 못해 부끄럽다'는 말을 한다는 것은, 오늘날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겠지요.
(2) 11월 초순, 한양
명종의 소환으로 한양에서 관직을 수행하고 있던 퇴계에게 고봉 기대승이 찾아왔습니다. 앞선 계축년에 퇴계는 추만 정지운이 작성한 '천명도(天命圖)'를 정정하면서, 사단칠정을 '사단은 이(理)가 발한 것이고, 칠정은 기(氣)가 발한 것'이라고 규정한 적이 있었습니다.
'천명도'는 성리학의 우주론과 심성론을 이해하기 위해 그 이론을 압축해서 도식화한 한 장의 그림입니다. 오늘날의 감각으로 보면 한 권의 책을 몇 페이지로 압축한 PPT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사실 정추만의 '천명도'는 다른 사람들에게 배포하려는 목적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가 스스로 성리학을 이해하기 위해 만든 일종의 학습 노트였습니다. 이것이 우연히 퇴계의 손을 거치며 학자들 사이에 논란을 일으킨 중요한 저작이 되었던 것입니다.
당시 젊은 유생이었던 고봉도 이 '천명도'를 접했고, 몇 년을 기다린 끝에 논란의 장본인인 퇴계를 직접 만날 기회가 생겼던 것이 바로 1558년의 가을이었습니다.
고봉은 갓 대과를 급제한 신인 관료로, 퇴계는 국립대 총장에 해당하는 성균관 대사성의 직무를 수행하고 있었지요. 고봉은 드디어, 오랜 시간 가슴에 품었던 질문을 당차게 할 기회를 얻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두 인물의 대화 내용은 기록되어 있지 않아 알 길이 없습니다. 다만 첫 만남이 있고 난 다음해 1월, 퇴계가 고봉에게 보낸 편지에서 대략 그 흔적을 추적할 수 있을 뿐입니다.
지난번에 서로 만나고 싶은 소망은 이루어졌지만 꿈속에서 잠깐 만난 것 같아 의심나는 것을 깊이 질문할 겨를이 없었는데도 오히려 서로의 의견이 혼연히 부합되는 곳이 있었습니다.
또 사우(士友)들을 통하여 공이 논한 사단칠정에 대한 설을 전해 들었는데, 나의 의견도 이 점에 대해 그렇게 말한 것이 온당하지 못함을 문제로 여기고 있던 터에 공의 지적을 받고는 엉성하고 잘못되었다는 것을 더욱 절감하였습니다.
첫 만남이 있은 후, 퇴계가 고봉에게 보낸 첫 번째 편지입니다. '깊이 질문할 겨를이 없었다'고 하고, 또 논란의 주제인 사단칠정에 대한 질문을 '사우(士友)들을 통하여' 전해 들었다고 하는 것을 보면, 11월의 만남에서는 고봉이 직접 의문을 제기하지 하지는 않았거나 비중 있게 다루어지지는 않았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어쨌든 이러한 11월의 만남이 있었기에 서로 서신의 왕래가 시작되었으니, 이 만남이 조선의 학술사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가 된 이른바 '사단칠정논변'의 발단이 된 셈입니다.
첫 만남에서 이 두 위인은 즉시 사제의 연을 맺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후로 직접 대면하여 학문을 논할 기회도 많지 않았고, 고봉이 도산으로 퇴계를 예방하려 했던 일도 무위로 돌아갔지만, 왕복한 서신의 내용으로 볼 때, 두 사람은 가장 존경하는 스승과 가장 아끼는 수제자의 관계였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훗날 퇴계가 마지막으로 사직을 하고 낙향할 때, 선조 임금에게 학문이 뛰어난 인물로 율곡이 아닌 고봉을 천거한 것을 보면, 고봉이 퇴계에게 어떤 의미의 제자였는지 가늠할 수 있지요.
그런데 만일 이러한 배경지식 없이, 즉 퇴계와 고봉이 어떤 관계인지 모른 채 그들의 왕복서신을 접한다면 아마도 이 둘을 사제 관계라고 생각할 수 없을 지도 모릅니다.
비록 편지에서 고봉이 퇴계를 '선생(당시로서는 상대에 대한 극존칭)'이라고 칭하고 있지만, 학문적 논의에서 만큼은 한발도 양보하지 않고 대범하고 당당하게 자신의 견해를 전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퇴계 역시 26살 아래의 제자에게 '공(公)'이라는 존칭을 사용함과 동시에, 고봉의 견해를 존중하고 때로는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퇴계의 편지 곳곳에서 이러한 내용을 볼 수 있는데 여기에서는 한 대목만 소개하기로 하겠습니다. 퇴계가 세상을 떠나기 두 달 전인 1570년 10월 15일에 고봉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물격(物格)과 '물리의 지극한 것이 이르지 않는다'는 설에 대해서는 삼가 가르침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이전에 내가 잘못된 설을 굳게 지키고 있었던 까닭은 주자의 '이(理)는 정의(情意)와 계탁(計度)과 조작이 없다'는 설을 굳게 지켰기에 (…) 저번에 도성에서 '이(理)가 저절로 이른다'는 가르침을 받고, 일찍이 반복해서 사색해 보았는데도 역시 의혹이 풀리지 않았었는데, 근래에 주자의 말에 대한 공의 몇 가지 아이디어를 김이정으로부터 전해들은 후에 비로소 나의 견해에 착오가 있었음을 알게 된 것 같습니다. (…) 이제 공의 고명한 가르침에 힘입어 기존의 망령된 견해를 버리고, 새로운 뜻을 얻고 새 품격을 펼치게 되었으니,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인생의 마지막을 앞둔 70세의 노학자는 제자의 가르침을 받아 자신의 견해를 수정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비슷한 연배의 학자끼리도 자신의 견해를 비판받으면 서로 감정싸움까지 이어져서 원수지간이 되는 일도 비일비재한 현대의 학계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요. 하물며 현대의 어떤 학자가 26세 연하의 제자에게 "삼가 가르침을 받아들이겠다(謹聞命矣)"고 할 수 있을까요?
6. 겸손,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동아시아 전통사회에서 겸손은 매우 중요한 미덕이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선비들은 모두 겸손을 몸에 익히고 있었습니다.
맹자에 따르면, 공자의 제자인 자로(子路)는 사람들이 그의 잘못을 지적해 주면 기뻐했고, 우임금은 선한 말을 들으면 그 말을 한 사람에게 절을 했다고 합니다. 순임금은 사람들과 더불어 선을 행하면서 자신을 버리고 남을 따르며, 남들의 선한 면모를 본받기 좋아했다고 하지요.
또 어떤 공자의 제자는 "자신이 유능한데도 불구하고 유능하지 못한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물어보고, 학식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적은 사람에게 물어 보았다"고 전해집니다.
과거시대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겸손은 중요한 미덕입니다. 누구도 겸손한 사람을 욕하지는 않습니다. 겸손한 사람들은 누구에게서나 환영 받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진정한 겸손은 입과 몸으로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속으로는 교만하면서 말로만 자신을 낮추고 행동만 굽실대는 것은 진정한 겸손이 될 수 없는 것이지요.
공자가 교언영색(巧言令色)을 그토록 싫어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속은 다르면서 겉으로 모양만 꾸미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 중에는 "제가 아는/배운/들은 게 없어서…" 라는 겸양의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 사람이 있습니다만, 그것이 정말로 겸양인지, 아니면 겸손한 것처럼 꾸미는 것인지는 대화를 조금만 진행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겸손은 가식으로 꾸며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겸손은 진실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어야 합니다. 당대에나 후대에나 퇴계가 존경받는 원인 중 하나는 바로 이 진실된 겸손함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퇴계는 어떻게 이러한 겸손이 가능했을까요?
첫째, 세상의 지식에 대해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많다는 자각입니다.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할 줄 아는 것이 진정한 앎"이라는 공자의 말은 후대의 유학자들이 자신의 지식에 대한 겸손을 실천할 중요한 단서를 남겨주었습니다.
유학자들은 이것을 '알았다'고 하기 전에 자신이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체크했던 것이지요. 아는 것이 하나 둘 늘어갈수록 모르는 것에 대한 자각이 그만큼 많아진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둘째,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이 틀린 것일 수도 있다는 열린 자세입니다. 공자는 "배우면 고루해지지 않는다"고 하며 배움의 유연성을 강조했습니다.
배움의 효용은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는 것은 물론, 기존의 지식을 점검함으로써 정확한 지식을 얻는 데 있습니다. 지식이 부정확하다면 언제라도 수정하고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일 용기와 열린 자세는 선비들의 기본적인 마음가짐이었던 것입니다.
셋째,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든 배울 것이 있다는 유연한 자세입니다. 공자는 "세 명이 길을 가고 있으면 반드시 거기에는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이 있다"고 했습니다.
한 분야에 뛰어난 사람이라면 나는 그 사람의 장점과 특기를 배울 수 있습니다. 생각 외로 형편없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나의 반면교사가 됩니다.
시정(市井)의 필부에게도 또는 천진한 어린 아이에게도 분명히 배울만한 무언가가 있고, 개나 고양이에게서도 배울 것은 있는 것이지요.
퇴계는 특히, 이 세상의 모든 곳에 도(道)가 있으므로, 어느 시점 어느 곳이든 모두 배움의 자리가 된다고 강조해마지 않습니다.
학문에 대한 퇴계의 이러한 겸손한 태도는, 학문에 임해서는 지식의 지평을 넓히고 성장시켜주는 원동력이 되었고, 생활 속에서는 타인으로부터 존경과 신뢰를 얻는 기반이 되었던 것입니다.
7. 누구나 다 아는 겸손, 왜 어려운가?
우리는 누구나 겸손이 좋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겸손으로 자기 자신을 낮추는 사람은 결과적으로 타인으로부터 더 존경받게 됩니다.
겸손이 무엇인지, 겸손이 어떤 결과를 가지고 오는지 예측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문제는 실천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겸손이 좋다는 것을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할까요?
심리학자 매슬로우의 욕구 단계에 제시되어 있듯 사람은 타인에게서 인정받고 존중받고 싶은 욕구를 자연스럽게 가지고 있습니다. 뒤집어 말하면, 타인의 인정과 존중을 받지 못하는 것은 비참한 일이 됩니다.
그러니 겸손하게 자기를 낮추고 있다가는 인정과 존중을 못 받을 수도 있다는 무의식적 두려움에서 사람은 더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게 되는 것이지요.
또 하나의 이유는 우월감의 추구에 있습니다. 사람은 대체로 자기가 특별한 존재이기를 원하며 거기에서 우월감을 추구합니다.
맹자가 "사람들의 병통은 남의 스승이 되는 것을 좋아하는 데 있다"고 꼬집었듯, 우월감을 획득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 중 하나는 다른 사람에게 가르침이나 지시를 내리는 일입니다.
조금 더 수월하게 우월감을 획득하려면 나이가 어리거나 지식이 적은 만만한 상대를 골라 가르치고 지도하는 것이 좋은 방법입니다. 이와 같이 '남을 가르치는 일'에 맛을 들이기 시작한 순간 겸손은 멀어지고 꼰대에의 길은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이제 여기서 문제의 해결법에 근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매슬로우가 말했듯, 인정과 존중을 받고 우월감을 느끼려 하는 것은 사람의 자연스러운 욕구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능력이나 소유물 등을 뽐내거나 타인을 훈계하면서 존중과 우월감을 얻으려고 하는 행위는 번지수를 잘못 짚은 것입니다. 사실 정말로 우월한 사람은 절대 그런 식으로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지 않으며,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공자가 "남이 알아주지 않음을 근심하지 말고, 남이 알아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하라"고 충고했듯, 우월한 사람이 되기 위해 힘을 쏟을 곳은 자신의 실력을 향상시키는 데 있지 결코 자신을 드러내는 데 있지 않는 것입니다.
남을 훈계함으로써 잠깐의 우월감을 느끼는 것은 마약으로 얻는 잠깐의 쾌락과 같은 일종의 착각과 같습니다. 남을 가르치고 훈계하는 순간 자신이 그 사람보다 우월한 사람이라는 착각에 빠져들고 우쭐해집니다.
꼰대는 그 맛을 잊지 못하고 자꾸만 젊은이를 훈계하는 데 빠져듭니다. 게다가 그 훈계는 자기 자신이 아니라 그 사람을 위해서 하는 것이니 가치 있는 일이며, 조금 더 세상을 산 사람으로서 해야 할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도 착각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을 위해서 훈계를 한다면, 그를 자기 자식처럼 사랑하고 있어야 합니다.
만일 이러한 질문을 받았다고 상정해 봅시다. "정말로 그를 자식처럼 사랑하는가?" 여기에 "그렇다"고 흔쾌히 대답하지 못한다면, 훈계를 하는 그 마음은 단지 우쭐해지고 싶은 욕구가 마각을 드러낸 것일 뿐입니다.
8. 꼰대 탈출
과거 지인 A씨로부터 들은 이야기입니다. 출근길 뒷골목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교복을 입은 학생이 다가오더니 아주 정중히 인사를 하더랍니다. "저, 아저씨. 죄송한데요. 혹시 라이터를 잠깐 빌릴 수 있을까요?"
흡연하는 학생을 무턱대고 훈계했다가는 봉변을 당하는 세상인지라, 담배를 피우고 있는 학생들을 보더라도 그냥 지나가는 것이 상책이지만, 담뱃불을 빌리어 온 경우는 처음입니다.
체구도 왜소한 학생이 겁 없이 혼자 왔기에 혼을 내서 쫓아버릴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그는 그냥 허허 웃으며 라이터를 빌려주고는 한 마디만 했다고 합니다. "학생, 벌써 담배 너무 많이 피우면 키 안 커!" 그랬더니 학생은 또 꾸뻑 예의를 차리며,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고 하고는 담배에 불을 붙여 총총히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대부분 어이없어 하며, 혼쭐을 내주지 그랬냐고 타박했지만, 그의 이유는 나름 타당성이 있었습니다. "꼰대가 되고 싶지 않아서."
A씨의 행위는 과연 타당했던 것일까요? 여러분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취하시겠습니까?
혼쭐을 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도 있을 것인데 그 논리는 대개 이렇습니다. "고등학생이 담배를 피우는 것은 나쁘다. 나쁜 짓을 하는 학생에 대해서 어른으로서 훈계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다. 이런 상황을 방관하는 것은 어른으로서의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다."
옳지 않은 상황을 접했을 때, 이른바 수오지심(羞惡之心)이 발동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심리작용입니다. A씨 또한 순간 어이가 없고 잠깐 화도 났지만, 굳이 그것을 표출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만일 그 학생이 자신의 친척이거나 친구의 아들이라면 혼을 내고 바른 길로 인도하려 노력하겠지만, 생면부지의 학생에게 굳이 훈계를 할 열정은 없었다는 것입니다.
또 훈계를 한들 달라지는 것이 없고 서로 기분만 나쁠 것이기에 웃으며 넘길 수밖에 없었을 것이지요. 이와 비슷한 사안에 대해 맹자는 다음과 같이 충고합니다.
만일 자기 식구가 길거리에서 싸우고 있다면, 머리를 풀어 흩트린 채 집에 있다가도 급한 대로 갓끈만 매고 가서 말리는 것이 옳다. 동네 사람끼리 싸우고 있다면, 머리를 풀어 흩뜨리고 갓끈만 매고 급히 달려가서 말리는 것은 적절하지 않으니, 그냥 문을 닫고 모른 척해도 괜찮다.
맹자의 이 말은 세상에 무관심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내가 책임을 가지고 단속해야 할 것과 그러지 말아야 하는 것을 잘 구분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가족이나 친지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면 적절한 방식으로 바른 길로 인도해야겠지만, 모든 사람에게 그렇게 하려고 할 때, 그는 오지랖 넓은 꼰대가 되고 맙니다. 게다가 대개 그런 꼰대들은 오히려 가장 잘 단속해야 할 자기 자신은 내버려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겸손은 자기 자신의 무지와 불완전성에 대한 자각에서 출발합니다. 이 자각이야말로 향상과 진보의 첫걸음이며 꼰대에서 어르신 또는 선생님으로 거듭나게 하는 촉매제가 됩니다.
젊은이에게 기피 대상이 되는 꼰대의 길로 갈 것인가, 아니면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향기로운 어르신이 될 것인가? 그 열쇠는 겸손에 있습니다.
9. 물러남의 지혜
겸손이 좋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이상적이 아니라고 항변할 수도 있습니다. 세상 물정을 모르는 젊은 것들을 타이르지 않으면 미래가 암담하다고, 또는 일처리를 똑바로 못하는 부하직원들에게 간섭하지 않으면 당장 조직이 잘못될 것이라고 걱정할 수도 있겠습니다.
어쩔 수 없이 하나하나 직접 챙겨야 하지 않겠느냐고, 겸손하지 못하고 이것저것 참견해야 하는 것은 부득이해서 그런 것 아니겠냐고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저의 대학 시절, 매우 엄하고 깐깐한 교수님이 계셨습니다. 일처리에 빈틈이 없고 책임감이 넘치는, 그래서 학교를 홀로 어깨에 짊어진 듯한 사명감으로 강의와 연구, 행정업무까지 담당하던 소장 학자였습니다.
하루는 학과 회의에 정시에 참석하기 위해 급히 학교로 달려가던 중, 그만 교통사고를 크게 당하고 말았습니다. 며칠 동안 의식을 회복하지도 못할 정도의 중상이었지만, 다행히 의식을 되찾았고, 비록 이마에 흉터가 남기는 했지만, 긴 치료 끝에 학교에 복귀하셨습니다.
그런데 경천동지할 일이 발생했습니다. 사람이 180도 변해버린 것입니다. 이전 같으면 불같이 화를 내야 할 상황인데 허허 웃으며 그냥 넘어가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모두 교통사고의 후유증으로 머리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의심했지만, 나중에 설명을 듣고 알게 되었습니다.
교수님 왈, "이전엔 내가 아니면 학과가 형편없이 무너질 것이라 생각해서 죽도록 뛰어 다녔는데, 죽음의 문턱에 갔다 와 보니, 내가 없이도 학과는 잘 돌아가고 있더라."
그러면서 자기 한사람 없다고 조직이 망하는 것도 아니고, 보너스로 얻은 인생 아등바등할 것 없이 즐겁게 살기로 했다고 합니다. 그분은 지금도 항상 미소에 가득 찬 즐거운 생활을 하고 계십니다.
제자들의 기록에 따르면 공자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마음이 없었다고 합니다. "'내 뜻대로 해야 한다는 것'이 없고,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는 것도 없고, '고집하는 마음'도 없고,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마음도 없었다."
공자가 전해주는 겸손의 메시지입니다. 이 겸손은 물러남과 맞물려 있습니다. 물러날 줄 알기 때문에 겸손할 수 있고, 겸손하기에 미련 없는 물러남이 가능합니다.
조선의 대부분의 선비들이 겸손하지만, 퇴계가 특히 겸손했던 것은 바로 ‘물러남’이 당신의 성정과 잘 맞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러남'이 세상을 등지고 일어나는 일에 무관심하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비록 많은 시간을 물러나기를 원했고 물러나 있었지만 퇴계는 세상에 대한 관심을 버린 적이 없습니다.
세상에 대한 관심을 가지되 나아가고 물러남은 자신의 능력과 상황을 고려해서 판단해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상황에 적절하게 물러날 줄 아는 용기는 ‘나아감’이 찬양되는 현대사회에 더 필요한 덕목일지 모르겠습니다.
저의 관견(管見)으로 어르신들이 꼰대를 탈출할 수 있다면, 세대 간 갈등의 절반 이상은 해결될 것입니다. 물론 노년층을 이해하고 공경하려는 젊은이들의 노력도 필요하고 그에 대한 교육도 해야 합니다.
그러나 한 발 물러나서 생각해 보면, 젊은이들을 변화시키려 하기 보다는 노년층이 먼저 변화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젊은이들의 사고방식을 변화시키려는 교육은 또 하나의 반발요소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갈등의 가장 큰 원인은 상호간의 이해 부족에 있습니다. 상대방을 이해하기만 한다면 사실 싸움이 일어날 일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이해가 쉽지 않습니다. 자신이 그 입장에 처해보지 않고 상대방을 이해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녀를 낳고 길러보기 전에 부모의 마음을 온전히 알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노년을 겪어보지 않은 젊은이가 노인을 이해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러나 그 반대도 성립됩니다. 노년층도 젊은이를 이해하기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나도 젊은 시절 다 겪었는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라고 반문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어르신들이 젊은 시절을 겪었다는 것은 반박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그러나 젊은 시절에 겪은 세상이 다릅니다. 지금의 노년층의 젊은 시절과 현재의 사회는 전혀 다른 세상인 것입니다. 그때와 지금은 전혀 다른 환경에서 다른 가치관과 사고방식이 작용합니다.
지금의 기성세대는 와이파이와 블루투스가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젊은 시절을 보내지 못했습니다. 기성세대가 신세대를 이해하기 쉽지 않은 이유입니다. 그리고 지금의 젊은이들이 노년에 이르렀을 때는 더 많은 변화가 일어날 것이고, 그들 또한 꼰대가 될 가능성을 충분히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물러남'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내가 겪지 못한 유년, 청년 시절을 보낸 젊은 세대에 대해 이해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합니다.
자각할 뿐만 아니라, 한발 물러나서 그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아마도 500년 전의 퇴계선생이 이 시대에 살아 돌아오신다면, 그러한 '물러남'의 지혜를 발휘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 難(어려울 난, 우거질 나)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새 추(隹; 새)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근; 난)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진흙 속에 빠진 새가 진흙에서 빠져 나오기 어렵다는 뜻이 합(合)하여 '어렵다'를 뜻한다. 본래 菫(근)과 鳥(조)를 결합한 글자 형태였으나 획수를 줄이기 위하여 難(난)자로 바꾸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새의 이름을 가리켰다. ❷형성문자로 難자는 '어렵다'나 '꺼리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難자는 堇(진흙 근)자와 隹(새 추)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堇자는 진흙 위에 사람이 올라서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지만 여기에서는 '근, 난'으로의 발음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難자는 본래 새의 일종을 뜻하기 위해 만든 글자였다. 그러나 일찌감치 '어렵다'라는 뜻으로 가차(假借)되었기 때문에 어떠한 새를 뜻했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렇다면 새의 일종을 뜻했던 글자가 왜 '어렵다'라는 뜻을 갖게 된 것일까? 혹시 너무도 잡기 어려웠던 새는 아니었을까? 가벼운 추측이기는 하지만 전혀 근거가 없지만은 않아 보인다. 그래서 難(난, 나)은 (1)어떤 명사(名詞) 아래에 붙어서 어려운 형편이나 처지라는 뜻을 나타내는 말 (2)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어렵다 ②꺼리다 ③싫어하다 ④괴롭히다 ⑤물리치다 ⑥막다 ⑦힐난하다 ⑧나무라다 ⑨삼가다(몸가짐이나 언행을 조심하다) ⑩공경하다, 황공해하다 ⑪근심, 재앙(災殃) ⑫병란(兵亂), 난리(亂離) ⑬적, 원수(怨讐) 그리고 ⓐ우거지다(나) ⓑ굿하다(나) ⓒ어찌(나)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쓸 고(苦), 어려울 간(艱)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쉬울 이(易)이다. 용례에는 어려운 고비를 난국(難局),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난문(難問), 어려운 문제를 난제(難題), 전쟁이나 사고나 천재지변 따위를 당하여 살아 가기 어려운 처지에 빠진 백성을 난민(難民), 풀기가 어려움을 난해(難解), 일을 해 나가기가 어려움을 난관(難關), 무슨 일이 여러 가지 장애로 말미암아 순조롭게 진척되지 않음을 난항(難航), 꺼리거나 어려워하는 기색을 난색(難色), 어려움과 쉬움을 난이(難易), 견디어 내기 어려움을 난감(難堪), 바라기 어려움을 난망(難望), 처리하기 어려움을 난처(難處), 잊기 어렵거나 또는 잊지 못함을 난망(難忘), 어떤 사물의 해명하기 어려운 점을 난점(難點), 뭐라고 말하기 어려움을 난언(難言), 병을 고치기 어려움을 난치(難治), 이러니 저러니 옳으니 그르니 하며 시비를 따져 논하는 것을 논란(論難), 남의 잘못이나 흠 따위를 책잡아서 나쁘게 말함을 비난(非難), 경제적으로 몹시 어렵고 궁핍함을 곤란(困難), 뜻밖에 일어나는 불행한 일을 재난(災難), 힐문하여 비난함을 힐난(詰難), 괴로움과 어려움을 고난(苦難), 위험하고 어려움을 험난(險難), 공격하기 어려워 좀처럼 함락되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난공불락(難攻不落), 잊을 수 없는 은혜를 일컫는 말을 난망지은(難忘之恩), 누구를 형이라 아우라 하기 어렵다는 뜻으로 누가 더 낫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서로 비슷함 또는 사물의 우열이 없다는 말로 곧 비슷하다는 말을 난형난제(難兄難弟), 마음과 몸이 고된 것을 참고 해나가는 수행을 일컫는 말을 난행고행(難行苦行), 어려운 가운데 더욱 어려움이 있다는 말을 난중지난(難中之難), 어려운 일은 반드시 쉬운 일에서 생겨난다는 말을 난사필작이(難事必作易), 어렵고 의심나는 것을 서로 묻고 대답함을 일컫는 말을 난의문답(難疑問答), 매우 얻기 어려운 물건을 일컫는 말을 난득지물(難得之物), 변명하기 어려운 사건을 일컫는 말을 난명지안(難明之案), 교화하기 어려운 어리석은 백성을 이르는 말을 난화지맹(難化之氓) 등에 쓰인다.
▶️ 進(나아갈 진, 선사 신)은 ❶형성문자로 进(진)은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책받침(辶=辵; 쉬엄쉬엄 가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隹(추; 꽁지 짧은 새, 진)의 뜻이 합(合)하여 나아가다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進자는 '나아가다'나 '오르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進자는 辶(쉬엄쉬엄 갈 착)자와 隹(새 추)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隹자는 작은 새를 그린 것이다. 그런데 進자의 갑골문을 보면 止(발 지)자와 隹자가 함께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새가 날아가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금문에서는 여기에 彳(조금 걸을 척)자가 더해지면서 지금의 進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進자는 새가 날아가는 모습을 그린 것이기 때문에 '나아가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후퇴 없이 앞으로만 쭉 나아간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왜냐하면, 새는 앞으로만 날 수 있기 때문이다. 밀고 나아간다는 뜻의 '추진(推進)'이라는 단어에 각각 隹자가 쓰인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서 進(진, 신)은 ①나아가다 ②오르다 ③다가오다 ④힘쓰다 ⑤더하다, 그리고 ⓐ선사, 선물(膳物)(신)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나아갈 취(就), 나아갈 진(晉), 나아갈 적(迪),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물러날 퇴(退)이다. 용례로는 앞으로 나아감 또는 일을 처리해 나감을 진행(進行), 일이 진행되어 발전함을 진전(進展), 더욱 발달함이나 차차 더 좋게 되어 나아감을 진보(進步), 내쳐 들어감이나 향하여 들어감을 진입(進入), 앞으로 나아감을 진출(進出), 나아감과 물러남을 진퇴(進退), 학문에 나아가 닦음 또는 상급 학교로 나아감을 진학(進學), 진보하여 차차 더 나은 것이 됨을 진화(進化), 앞으로 나아가는 길 또는 나아갈 길을 진로(進路), 앞으로 나아가 적을 치는 것을 진격(進擊), 일의 진행 속도나 진행된 정도를 진도(進度), 적극적으로 나아가서 일을 이룩함을 진취(進取), 등급이나 계급 또는 학급 따위가 올라감을 진급(進級), 군대가 남의 나라 영토에 진군하여 머물러 있는 일을 진주(進駐), 일을 차차 이루어 감을 진취(進就), 앞으로 나아감을 진거(進去), 밀고 나아감을 추진(推進), 재촉하여 빨리 나아가게 함을 촉진(促進), 벼슬이나 지위가 오름을 승진(昇進), 힘써 나아감이나 씩씩하게 나아감을 매진(邁進), 빠르게 진보함을 약진(躍進), 더하여 나아감 또는 나아가게 함을 증진(增進), 앞으로 나아감을 전진(前進), 여러 사람이 발맞춰 앞으로 걸어 나감을 행진(行進), 뒤지거나 뒤떨어짐 또는 그런 사람을 후진(後進), 급속히 이상을 실현하려는 일 또는 빨리 진행함을 급진(急進), 남이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나섬을 자진(自進), 순서대로 차차 나아감을 점진(漸進), 낡은 것을 고치어 진보를 꾀함을 개진(改進), 정력을 다해 나아감 또는 아주 열심히 노력함을 정진(精進), 다투어 서로 앞으로 나아감을 경진(競進), 배나 비행기를 타고 나아감을 항진(航進), 방향을 바꾸지 않고 곧게 나아감을 직진(直進), 뛰어난 공로에 의하여 특별히 진급함을 특진(特進), 앞으로도 뒤로도 나아가거나 물러서지 못하다라는 뜻으로 궁지에 빠진 상태를 일컫는 말을 진퇴유곡(進退維谷), 나아갈 수도 물러설 수도 없는 궁지에 빠짐을 일컫는 말을 진퇴양난(進退兩難), 나아가면 그 세력이 강성해 당해 낼 수가 없음을 이르는 말을 진불가당(進不可當), 나아간 것은 적고 물러선 것은 많다는 뜻으로 소득은 적고 손실은 많음을 이르는 말을 진촌퇴척(進寸退尺), 더디고 더뎌서 잘 진척하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지지부진(遲遲不進), 한 길로 곧장 거침없이 나아감을 일컫는 말을 일로매진(一路邁進), 배우는 일에 정성을 다해 몰두함을 일컫는 말을 학업정진(學業精進), 거리낌 없이 힘차고 용감하게 나아감을 일컫는 말을 용왕매진(勇往邁進), 아무 사고가 없이 나올 자리에 나오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무고부진(無故不進), 싸움을 질질 끌지 않고 빨리 쳐들어가서 이기고 짐을 빨리 결정함을 일컫는 말을 속진속결(速進速決) 등에 쓰인다.
▶️ 易(바꿀 역, 쉬울 이)는 ❶상형문자로 반짝반짝 껍질이 빛나는 도마뱀의 모양이란 설과 햇볕이 구름사이로 비치는 모양이란 설 따위가 있다. 도마뱀은 아주 쉽게 옮겨 다니므로 '바뀌다', '쉽다'는 뜻으로 되고 햇볕도 흐렸다 개였다 바뀌며 햇살은 어디나 비치므로 '쉽다'는 뜻이 되었다. ❷상형문자로 易자는 '바꾸다'나 '쉽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易자는 日(해 일)자와 勿(말 물)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易자의 갑골문을 보면 그릇이나 접시를 기울여 무언가를 쏟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그릇에 담겨있는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담는다는 뜻이다. 그릇에 담긴 것을 내다 버리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易자에는 '쉽다'라는 뜻도 파생되어 있다. 이때는 '이'로 발음을 한다. 그래서 易(역, 이)는 ①바꾸다, 고치다 ②교환하다(交換--), 무역하다(貿易--) ③전파하다(傳播--), 번지어 퍼지다 ④바뀌다, 새로워지다 ⑤다르다 ⑥어기다(지키지 아니하고 거스르다), 배반하다(背叛--) ⑦주역(周易), 역학(易學) ⑧점(占) ⑨점쟁이 ⑩바꿈 ⑪만상(萬象)의 변화(變化) ⑫국경(國境) ⑬겨드랑이 ⑭도마뱀(도마뱀과의 파충류) 그리고 ⓐ쉽다(이) ⓑ편안하다(便安--), 평온하다(平穩--)(이) ⓒ경시하다(輕視--), 가벼이 보다(이) ⓓ다스리다(이) ⓔ생략하다(省略--), 간략(簡略)하게 하다(이) ⓕ기쁘다, 기뻐하다(이) ⓖ평평하다(平平--), 평탄하다(平坦--)(이)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될 화(化)이다. 용례로는 얼굴빛을 바꾸어 어진 이를 공손히 맞이함을 역색(易色), 나라의 왕조가 바뀜을 역성(易姓), 음양으로 길흉 화복을 미리 아는 술법을 역수(易數), 점치는 일로 업을 삼는 사람을 역자(易者), 점에 관한 책을 역서(易書), 역의 괘에 나타난 형상을 역상(易象), 바꾸어 놓음을 역치(易置), 초벌로 쓴 원고를 고침을 역고(易藳), 사태의 판국을 바꾸어 놓음을 역국(易局), 나라의 정치적 판국을 바꾸어 놓음을 역국(易國), 격한 마음을 누그려뜨려 기색을 즐겁고 편안하게 함을 이기(易氣), 줄을 바꾸어 맨다는 뜻으로 종전의 규정이나 법규를 고치어 바꿈을 이르는 말을 역현(易絃), 솜씨를 바꾼다는 뜻으로 여러가지 방법이나 수단을 써서 탐욕스럽게 남에게서 재물을 뜯어냄을 이르는 말을 역수(易手), 이름을 바꾼다는 뜻으로 시호를 내림을 이르는 말을 역명(易名), 행하여 나가기 쉬움을 이행(易行), 이곳 물건과 저곳 물건을 팔고 삼을 무역(貿易), 근심이 없고 편안함을 안이(安易), 서로 물건을 사고 팔아 바꿈을 교역(交易), 아주 쉬움을 용이(容易), 간단하고 쉬움을 간이(簡易), 까다롭지 않고 쉬움을 평이(平易), 어려움과 쉬움을 난이(難易), 바꾸어 고칠 수 없음 또는 그리하지 아니함을 불역(不易), 변하여 바뀜을 변역(變易), 고치어 바꿈을 개역(改易), 해가 바뀜을 삭역(朔易), 몸가짐이나 언행이 까다롭지 않고 솔직함을 솔이(率易), 글에 담긴 뜻이 얕고 쉬움을 천이(淺易), 제도나 규범이 바뀜을 철역(轍易), 힘들지 않으며 가볍고 쉬움을 경이(輕易), 마음이 편안하고 즐거움을 낙이(樂易), 옮겨 바꿈 또는 옮겨 바뀜을 이역(移易), 더없이 쉬움 아주 쉬움을 지이(至易), 편리하고 쉬움을 편이(便易), 미쳐서 제 정신을 잃음을 광역(狂易), 고양이로 고양이를 바꾼다는 뜻으로 사람을 교체하여도 별다른 성과가 없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이묘역묘(以猫易猫), 쥐로 고양이를 바꾼다는 뜻으로 사람을 교체한 것이 도리어 이전 사람만 못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이서역묘(以鼠易猫), 동이를 중화로 바꾼다는 뜻으로 동방의 풍속을 중화의 풍속으로 변화시킨다는 말을 이이역화(以夷易華), 횡포한 사람으로 횡포한 사람을 바꾼다는 뜻으로 바꾸기 전의 사람과 바꾼 뒤의 사람이 꼭 같이 횡포함을 이르는 말을 이포역포(以暴易暴), 처지를 서로 바꾸어 생각함이란 뜻으로 상대방의 처지에서 생각해 봄을 이르는 말을 역지사지(易地思之), 오랜 세월을 두고 바뀌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만고불역(萬古不易), 깨끗하며 욕심이 없는 마음을 일컫는 말을 평이담백(平易淡白), 오래도록 변화하지 않음 또는 영구히 변하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천고불역(千古不易), 영원히 바뀌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만대불역(萬代不易), 관과 신발을 놓는 장소를 바꾼다는 뜻으로 상하의 순서가 거꾸로 됨을 두고 이르는 말을 관리도역(冠履倒易), 목이 마른 자는 무엇이든 잘 마신다는 뜻으로 곤궁한 사람은 은혜에 감복하기 쉬움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갈자이음(渴者易飮), 사람은 있는 곳에 따라 행동이 달라지니 그 환경을 서로 바꾸면 누구나 다 똑같아 진다는 말을 역지개연(易地皆然), 매사를 소홀히 하고 경솔함은 군자가 진실로 두려워하는 바임을 일컫는 말을 이유유외(易輶攸畏), 머리를 잘라 술과 바꾼다는 뜻으로 자식에 대한 모정의 지극함을 이르는 말을 절발역주(截髮易酒), 나의 자식과 남의 자식을 바꾸어 교육한다는 뜻으로 부자 사이엔 잘못을 꾸짖기 어렵다는 뜻으로 쓰이는 말을 역자교지(易子敎之), 아비와 할아비를 바꾼다는 말로 지체가 좋지 못한 사람이 지체를 높이기 위하여 옳지 못한 수단으로 자손이 없는 양반 집의 뒤를 잇는 일을 일컫는 말을 환부역조(換父易祖), 어려운 일은 반드시 쉬운 일에서 생겨난다는 말을 난사필작이(難事必作易), 한 번 정하여져 바뀌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일정불역(一定不易), 쉽기가 손바닥 뒤집는 것과 같음을 일컫는 말을 이여반장(易如反掌), 달리 고칠 수 없는 근본이 되는 법을 일컫는 말을 불역지법(不易之法), 세월이 흐르면 풍속도 저절로 바뀜 또는 세상이 변함을 일컫는 말을 시이속역(時移俗易), 덕이 있으면 천명을 받아 나라를 다스리게 되지만 덕을 잃으면 다른 덕이 있는 이에게 천명이 옮으므로 혁명이 일어난다는 뜻으로 왕조가 바뀜을 이르는 말을 역세혁명(易世革命), 내 자식과 남의 자식을 바꾸어서 가르친다는 뜻으로 자기 자식의 잘못을 꾸짖기는 어렵다는 말을 역자이교지(易子而敎之), 양으로 소와 바꾼다는 뜻으로 작은 것을 가지고 큰 것 대신으로 쓰는 일을 이르는 말을 이양역우(以羊易牛), 변통할 수가 없음을 이르는 말을 이역부득(移易不得), 하늘을 옮기고 해를 바꾼다는 뜻으로 간신이 정권을 농락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이천역일(移天易日), 횡포로써 횡포함을 바꾼다는 뜻으로 악한 것을 또 다른 악한 것으로 갈아 바꿈 또는 폭군을 내몰았으나 다시 폭군을 맞게 됨을 이르는 말을 이포역포(以暴易暴), 나쁜 풍속이 좋은 쪽으로 바뀜을 이르는 말을 이풍역속(移風易俗), 변하지 않고 바뀌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불천불역(不遷不易), 나뭇가지를 꺾는 것과 같이 쉽다는 뜻으로 대단히 용이한 일을 이르는 말을 절지지이(折枝之易), 남을 헐뜯는 나쁜 말을 하기 쉬움을 일컫는 말을 악어이시(惡語易施), 작은 것으로 큰 것과 바꿈을 일컫는 말을 이소역대(以小易大), 싸우기는 쉬워도 지키기는 어려움을 이르는 말을 전이수난(戰易守難), 식량이 없어 자식을 바꾸어 먹다는 뜻으로 극심한 기근을 일컫는 말을 역자이식(易子而食), 진을 치면서 장수를 바꾼다는 뜻으로 요긴한 시기에 이르러 숙달된 사람을 버리고 서툰 사람으로 바꿈을 이르는 말을 임진역장(臨陣易將) 등에 쓰인다.
▶️ 退(물러날 퇴)는 ❶회의문자로 저무는 해(艮; 日+뒤져올치(夂; 머뭇거림, 뒤져 옴)部)가 천천히(책받침(辶=辵; 쉬엄쉬엄 가다)部) 서쪽으로 물러난다는 뜻이 합(合)하여 물러나다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退자는 '물러나다'나 '물리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退자는 辶(쉬엄쉬엄 갈 착)자와 艮(어긋날 간)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艮자는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사람을 그린 것이다. 그런데 退자의 금문을 보면 辶자와 日(해 일)자, 夂(뒤쳐서 올 치)자가 결합한 형태였다. 여기서 日자는 '시간'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아래로는 발을 서로 엇갈리게 그려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간다는 뜻을 표현했었다. 그래서 금문에서의 退자는 시간이 다 되어 되돌아간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해서에서는 글자가 바뀌면서 본래의 의미를 유추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래서 退(퇴)는 (1)물림간 (2)툇마루 (3)툇간(退間) (4)물리거나 물리침, 등의 뜻으로 ①물러나다 ②물리치다 ③바래다, 변하다 ④겸양(謙讓)하다, 사양(辭讓)하다 ⑤떨어뜨리다 ⑥쇠하다 ⑦움츠리다 ⑧줄어들다 ⑨닿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물리칠 각(却),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갈 왕(往)이다. 용례로는 공공의 지위나 사회적 지위에서 물러남을 퇴진(退陣), 현직에서 물러남을 퇴직(退職), 장내나 무대 등에서 물러남 또는 경기 중 반칙 등으로 인하여 물러남을 퇴장(退場), 물러나서 나감을 퇴출(退出), 직장에서 근무를 마치고 물러 나옴을 퇴근(退勤), 관직에서 물러남을 퇴임(退任), 싸움터에서 군사를 물림을 퇴군(退軍), 뒤로 물러감으로 재지나 힘이 전만 못하게 됨을 퇴보(退步), 물리쳐서 아주 없애버림을 퇴치(退治), 빛이 바람으로 무엇이 낡거나 그 존재가 희미해지거나 볼품없이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을 퇴색(退色), 진보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 감을 퇴화(退化), 학생이 졸업 전에 다니던 학교를 그만 둠 또는 그만두게 함을 퇴학(退學), 후퇴할 길을 퇴로(退路), 현역으로 부터 물러남을 퇴역(退役), 입원했던 환자가 병원에서 물러 나옴을 퇴원(退院), 패하여 뒤로 물러 나감을 퇴각(退却), 사원이 퇴근함을 퇴사(退社), 물러나서 휴식함을 퇴식(退息), 어떤 일에서 스스로 물러감을 자퇴(自退), 일정한 일을 그만두고 물러섬 또는 작별을 고하고 물러감을 사퇴(辭退), 뒤로 물러남을 후퇴(後退), 나아감과 물러남을 진퇴(進退), 쇠하여 점차로 물러남을 쇠퇴(衰退), 직임에서 물러나거나 세속의 일에서 손을 떼고 한가히 삶을 은퇴(隱退), 관계를 끊고 물러남으로 일단 가입한 정당이나 단체 등에서 이탈함을 탈퇴(脫退), 줄어서 쇠퇴함을 감퇴(減退), 적군을 쳐서 물리침을 격퇴(擊退), 싸움에 패하여 물러남을 패퇴(敗退), 조금도 꺼리지 아니하고 용기 있게 물러 나감을 용퇴(勇退), 학업 따위를 끝내지 못하고 중도에서 그만둠을 중퇴(中退), 정한 시간 이전에 물러감을 조퇴(早退), 앞으로도 뒤로도 나아가거나 물러서지 못하다라는 뜻으로 궁지에 빠진 상태를 이르는 말을 진퇴유곡(進退維谷), 삼국 통일의 원동력이 된 화랑의 세속오계의 하나로 싸움에 임하여 물러섬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임전무퇴(臨戰無退), 공을 이루었으면 몸은 후퇴한다는 뜻으로 성공을 이루고 그 공을 자랑하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공성신퇴(功成身退), 성공한 사람은 물러날 때를 알아야 한다는 것을 이르는 말을 성공자퇴(成功者退), 한 번 나아감과 한 번 물러섬 또는 좋아졌다 나빠졌다 함을 이르는 말을 일진일퇴(一進一退), 쾌락이 오래 지속되어 도중에 그치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쾌락불퇴(快樂不退),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고 뒤로 물러나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유진무퇴(有進無退), 결심이 굳어 흔들리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일념불퇴(一念不退), 앞으로 한 치 나아가고 뒤로 한 자 물러선다는 뜻으로 얻은 것은 적고 잃은 것만 많음을 이르는 말을 촌진척퇴(寸進尺退), 나아간 것은 적고 물러선 것은 많다는 뜻으로 소득은 적고 손실은 많음을 이르는 말을 진촌퇴척(進寸退尺), 청렴과 절개와 의리와 사양함과 물러감은 늘 지켜야 함을 이르는 말을 절의염퇴(節義廉退), 군중에서 북을 치면 앞으로 나아가고 징을 치면 뒤로 물러남이라는 뜻으로 초보적인 군사 훈련을 일컫는 말을 고진금퇴(鼓進金退), 나란히 나아가고 나란히 물러선다는 뜻으로 정견이나 절조가 없이 다만 남의 의견을 추종함을 이르는 말을 여진여퇴(旅進旅退)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