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 숲에서
장마가 시작되어 비가 오락가락하는 칠월 초순 주말이다. 어제는 의령 고향 집을 찾아 큰형님을 뵙고 안부 인사를 나누고 왔다. 갈 때는 대중교통으로 가고 올 때는 귀촌한 친구와 함께 돌아왔다. 오가는 차내에는 에어컨이 가동되고 시골 큰형님 댁에는 선풍기가 돌고 있었다. 우리 집에서는 에어컨은 아직 켜보질 않았고 선풍기는 꺼냈으나 날개를 닦지 않아 전원을 끼워보질 않았다.
칠월 첫째 일요일이다. 장마가 소강상태라 낮에는 햇볕이 드러난다는 예보였다. 열흘 전 불모산 성주사를 찾아 경내를 둘러보고 숲속을 누빈 적 있다. 불모산 중턱까지 올랐다가 불모산동 저수지 방향으로 내려서면서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에 옷을 훌훌 벗고 더위를 잊고 나왔다. 이른바 산꾼들 사이 통하는 은어로 알탕(?)을 했더랬다. 철 이르게 유월에 알탕을 하기는 드문 경우였다.
일요일 아침 식후 산행 차림으로 현관을 나섰다. 아파트단지 이웃 동 꽃대감 꽃밭으로 가보니 친구와 아래층 할머니를 뵙지 못했는데 내가 너무 이르게 들러 그런 모양이었다. 반송시장으로 가 노점에서 김밥을 마련해 배낭에 채웠다. 산행 행선지를 장유계곡으로 삼은지라 창원대학 앞 삼거리로 나가 김해 삼계로 오가는 59번 버스를 탔다. 버스는 시내를 벗어나 창원터널을 지났다.
창원터널을 통과한 버스는 장유계곡으로 내려선 첫 정류소 윗상점에서 내렸다. 상점은 전통적인 가게라는 뜻이 아니고 고개를 의미하는데 윗 상(上)에 고개 점(岾)이다. 창원터널 위 삼정자동에서 장유로 넘나드는 고개가 상점이다. 창원터널이나 근래 뚫린 불모산터널의 장유계곡 일대는 식당이나 찻집이 다수 있어 사람이 사는 동네라 시내버스가 경유하니 당연히 정류소도 생겼다.
윗상점에서 일반인들이 더위를 식히려 찾는 계곡으로 가질 않고 불모산터널 진입로 방향 대청육교를 건넜다. 불모산 송신소와 화산 공군부대 레이더기지로 향하는 차도를 따라 걸어 약수산장에 이르렀다. 약수산장은 화산에 흘러내린 골짜기 아래 사방댐 근처에 들어선 외딴집 식당이다. 갓길 주차장에서 화산 기슭으로 오르는 숲으로 드니 참나무가 우거져 삼림욕은 절로 되었다.
화산 기슭은 정상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개설되지 않고 산허리까지 사람들이 오르내린 희미한 길이 보였다. 고압 송전탑이 지니면서 관리 인력이 드나들기도 하는 듯했다. 숲속을 얼마간 누비다 물소리가 들리는 계곡으로 갔다. 계곡이 깊고 이슥한지라 평소도 일정량의 물이 흘렀는데 엊그제 장맛비에 계곡의 물이 시원스레 흘러 바위 벼랑에서 폭포로 쏟아져 하얀 포말을 일으켰다.
포말을 일으키며 쏟아지는 물줄기 가까이 다가가니 한기가 느껴졌다. 숲을 더 누벼볼 생각은 접고 신발과 옷을 벗어두고 투명한 물웅덩이로 드니 몸이 오싹 움츠려졌다. 쏟아지는 폭포수에 머리를 숙여 가까이했더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몸을 돌려 등줄기에 폭포수를 직격으로 맞으니 전신이 후들후들 떨릴 정도였다. 물속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밖으로 나와 서늘한 기운을 잊어야 했다.
맑은 물웅덩이에서 나와 바위에 앉아 몸을 말려 배낭에 넣어간 책을 꺼내 읽었다. 일전 도서관에서 빌려 온 유선경의 ‘감정 어휘’였다. 작은 어울림도서관이 숲속으로까지 이동한 격이었다. 쏟아지는 물줄기가 세차 물소리가 쉼 없이 들려와도 자연의 음향이라 귀에 거슬리지 않았다. 한동안 책장을 넘기다 추워서 옷을 입고 숲을 더 누비다가 물웅덩이로 들어 폭포수를 맞고 나왔다.
배가 고파져 와 준비해 간 김밥을 먹고 남은 책갈피를 마저 넘기고 옷을 챙겨 입고 신발 끈을 묶었다. 하산은 계곡 건너편 비탈진 숲을 헤쳐 나가다 참나무가 삭은 그루터기에 영지버섯이 붙어 자라 허리를 굽혀 땄다. 숲을 빠져나가니 불모산 정상으로 가는 차도가 나왔는데 약수산장이 가까웠다. 대청육교를 건너 아침에 내렸던 윗상점 정류소에서 시내로 가는 좌석버스를 기다렸다. 23.0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