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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여행시의 메모를 아이올리브란 출판사 사이트에 올려 놓았는데 사이트가 폐쇄되는 바람에 10년공부 도로아미타불이 되어 다시 재입력을 해야 되는 수고를 하게 되었다. 세상에 믿을 넘이 한넘도 없다는 말을 다시금 상기하게 되었다. 최근 러시아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관심있는 분들의 일독을 위해 아래에 옮겨본다.
<2008년 7월27일 일요일>
스피커에서 울려 퍼지는 음악소리와 왁자지껄한 소리에 잠을 깨었다. 좁은 차 속에서 좌석에 앉은 채로 잠을 잤더니 온 몸이 들쑤시고 찌쁘뚱 하여 만신창이가 된 기분이었다. 창을 통하여 내다보니 우리 바로 옆에는 소형 차량 몇 대가 주차해 있었고 대형 화물차도 한대 서 있었다. 시계를 보니 4시 5분이었다. 어젯밤 캠프장이라고 적혀 있는 안내 표지판을 믿고 두 군데나 한참 찾아 들어갔으나 젊은이들이 모여서 술 마시고 춤추며 노는 곳이었다. 나라의 장래는 청소년에게 달려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열심히 공부하고 일해야 할 시기에 밤늦게까지 술 마시고 춤추며 허송세월 한다면 이 나라의 장래는 암담하다고 보여진다. 주유소 가장자리 한 켠에 차를 세워놓고 날이 샐 때까지 잠시 눈을 붙이는 동안 정현이는 작은 담요를 펴서 가슴과 하복부를 덮었고 형준이는 뒷좌석에 드러누워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고 있었다. 자동차 유리가 세 명이 자면서 토해낸 입김으로 온통 허옇게 서려 있었다. 바깥이 보이지 않아 우선 휴지를 꺼내 유리창부터 닦았다. 먼 산 너머로 해가 돋아 올라오기 시작하였다.
4시48분, 날이 밝았으니 더 이상 이곳에서 머무를 이유가 없었다. 자동차의 시동을 걸어 다음 목적지인 러시아의 상테 페테르부르크를 향해 출발하였다. 라트비아의 리가에서 시굴다(Sigulda)까지는 고속도로가 놓여져 있으나 그 밖에는 A2-E77으로 국도인데다가 상태 페테르부르크까지는 북동쪽으로 달려야 하므로 해가 눈부셔서 형준이 선글라스를 빌려 끼었더니 훨씬 나아졌다. 아침 안개가 까만 포장도로 위에 사르르 내려 앉아 있었다. 이른 아침이라 도로에는 다니는 차가 없어 속력을 100km/h로 유지하였다.
6시 01분, 휴게소에 잠시 들렀다. 어젯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더니 졸음이 와서 눈꺼풀은 종을 매단 듯 무겁게 느껴져 잠시 쉬어가기로 한 것이다. 두 아들 놈은 아직도 깊은 잠에 빠져 있다. 도로가의 호수가 아침정적에 싸여 있었다. 소나무와 백양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호수의 거울 같은 수면에 나무들이 거꾸로 투영되어 그림엽서를 보는 것 같았다. 호수 물가에는 무성하게 자란 갈대가 곧게 뻗어있고 도로가에는 붉은 꽃을 피운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어 있어 꿀벌들이 잉잉거리며 바삐 날아다니고 있었다.
6시26분, 다시 차에 시동을 걸어 출발했다. 국경으로 향하는 길은 한적한 편이었고 이따금 대형 화물차가 눈에 띄었다. 6시 47분, 국경지방 검문소 앞에 도착하였다. 대형 트럭들이 짐을 가득 실은 채 길가에 길게 주차해 있었고 승용차 5~6대가 3열로 대기하고 있었다. 검문소 앞 신호등에는 빨간 불만 들어와 있었다. 아직 사람이 나와 있지 않은 듯 하였다. 무엇 때문에 시간이 걸리는지 모르겠으나 관이란 습성이 본래 민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전락하기 쉽고 그러한 습관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관습으로 고착되기 일쑤인 것 같다. 우리 차는 두 번째 열의 네 번째 줄에 서 있다가 3번째 열에는 차 한대만 대기하고 있었으므로 조금이라도 시간을 앞당기기 위해서 엔진을 끄고 있다가 다시 시동을 걸어 3번열로 자리 이동을 하였다. 그렇게 하여 아무런 조처도 없이 30~40분을 흘려보냈다.
7시 21분, 직원들이 나왔는지 우리 차례가 되어 여권과 차에 관한 서류를 보자고 요구하였다. 검문소 관리가 차 앞 유리창도 들여다보고 뒷 트렁크도 열어서 내부를 검사하였다. 캠핑장비가 실려 있으니까 대충 들춰보고 OK라고 했다. 박스 안에서는 관리가 우리의 여권을 보고 뭔가 입력을 하고 있었다. 내가 줄을 옮기는 바람에 나보다 뒤에 온 사람이 두 명이나 먼저 들어갔다. 이런 곳에서도 머피의 법칙이 통하는 모양이다. 1차 관문에서 여권과 차량서류들을 받아 나왔으나 몇 발자국 못가서 이번에는 한 줄로 길게 늘어서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벌써 햇볕이 강해져 차 안을 뜨겁게 달구었다. 또 다시 하염없이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중이다. 인천공항에서 출국 수속을 하면서 여행자 보험에 가입하지 않으면 러시아 입국이 혹시나 거절당할까봐 최단기간(10일간)의 여행자 보험에도 가입하였는데 영수증을 찾아보니 여권 보관하는 데는 없었다. 지난번 몬테네그로에서처럼 입국거절을 당하지나 않을까봐 걱정이다. 차에서 내려 앞쪽을 쳐다보니 약 300m 앞에 3차 검문소가 있는데 그쪽에서 [승용차/화물차]용 신호등에 불이 들어오면 들어가도록 되어 있었다. 옆줄에 섰던 러시아 남자가 우리를 보고 “카자흐스탄?”하고 러시아어로 물어보는 것 같았다. 아마 카자흐스탄에 고려인들이 많이 살고 있으므로 우리를 그쪽 사람들로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South Korea에서 왔다니까 알아듣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기차량들은 모두 도어를 열어 놓고 더위를 식히고 있고 어떤 트럭기사는 서류뭉치를 들고 저쪽 검문소까지 걸어가고 있었다.
반대편에는 러시아에서 에스토니아로 나오는 차량은 거의 보이지 않고 가뭄에 콩 나듯 이따금 한 대씩 들어가고 있었다. 08시21분, 내 앞에 섰던 차가 신호가 떨어졌는지 시동을 걸어 달려간다. 줄을 섰던 다른 차들도 뒤를 따랐다. 내 옆줄에 나란히 섰던 러시아 녀석이 번개같이 새치기를 한다. 어디서 물건을 잔뜩 사 오는 것을 보니 국경을 넘나드는 보따리 장사꾼으로 보였다. 40대 초반으로 뵈는 그는 검은 선글라스에 손바닥만한 크기의 작은 핸드백을 어깨에 달랑 메고 있었다. 3차 검문소 바로 앞의 철문 밖에서 차를 세우고 대기하고 있으면 신호등에서 빨간색이 초록으로 바뀌면 순서대로 한대씩 안으로 들어간다.
8시50분, 대기 라인 앞에 차를 세우고 여권과 차량서류를 검사원에게 건네주었더니 여권을 보고는 “트레서, 트레서?” 하면서 되물었다. 아마 3명인가 하는 것 같았다. 또한 우리 차를 한번 씨익 둘러보고는 무슨 말을 하는데 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오필, 오필...”하는 것으로 보아 우리가 타고 있는 차의 모델을 말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Please speak in English"라고 했더니 그도 못 알아듣는지 그냥 웃기만 했다. 검문소에는 남여 2명이 근무를 하고 있는데 남자보고 출입국관리(immigration officer)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대답하였다. 사무실 아래쪽 바닥에는 고무판 위에 날카로운 못이 뾰족하게 나온 기구가 눈에 띄었다. 아마 차량들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비치되어 있는 방지기구로 생각되었다.
우리 검사 라인 왼쪽에서는 "VIP Class"라고 적힌 대형관광 버스가 손님들을 모두 내리게 한 후 검사원 3명이 화물칸, 운전석, 일반좌석 등을 철저하게 검사를 받고 있었다. 가령 운전기사가 마시는 물병까지 들어보면서 그 속에 무엇이 들어 있지 않은지 검사를 하였다. 검사원들도 관광버스부터 먼저 검사를 한 후 승용차쪽으로 오는 것 같았다. 승용차쪽은 검사 레인이 두개지만 한쪽 레인만 오픈하면서 앞뒤로 두 대씩 한꺼번에 수속을 하는 것이었다. 우리 앞쪽의 승용차 검사시엔 뒷 트렁크 속의 짐을 다 꺼낸 후 스페어타이어 두는 곳까지 검사를 하였다. 몸집이 뚱뚱한 여자가 끝에 거울이 달린 긴 막대를 들고서 자동차의 밑바닥까지 훑어보았다. 우리 차도 보네트를 열라고 하더니 엔진 내부를 검사한 후 차 내부도 하나하나 검사하는 것이었다. 여태까지 여러 나라를 다녀 보았지만 국경에서 이렇게 철저하게 검사를 하는 곳은 보지 못했다. 그들이 이렇게 철저하게 검사하는 목적은 도대체 무엇일까? 단지 상부의 지시로 그렇게 따르고 있다면 인력과 시간의 낭비 밖에 더 되겠는가. 20세기로서 이데오르기의 종말이 왔지만 이런 관습은 공산주의 체제의 후유증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또한 공무원들의 사고가 굳어있어 효율적인 정부와는 거리가 먼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검사원이 서류 하나를 더 내라고 하는데 도통 말이 통하지 않았다. 조금 높은 직급의 여자관리는 영어를 한마디씩 알아들었다. 그녀는 누런 재생지 같은 종이를 내라고 하는데 우리는 없다고 했더니 앞에서 받았다고 하는 것이었다. 금테 모자를 쓴 남자직원이 우리에게 다가오더니 여권 등을 넣는 작은 서류가방을 열더니 거기서 서류 한 장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서류는 박스 속에 있는 컴퓨터에 입력을 하는데 옆에서 보니 컴퓨터 모니터가 우리나라 삼성제품이었다. 렌트카(Avis) 서류 하나하나를 빼내어 읽고 넷이서 뭐가 그리 우스운지 희희닥 거리면서 시간을 끌었다. 짐은 2번에 걸쳐 꼼꼼하게 검사를 하였다. 그들은 또 차량의 오리지날 차량등록증을 내라고 하였다. 차량에 관한 모든 서류는 파일 속에 든 것 밖에 없다고 하였으나 차량등록증이 없으면 입국을 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러고는 다음 사람의 수속을 해야 하므로 우리 차는 앞으로 쑥 빼어 한쪽 옆에 세워 두고 상부에 연락을 해 보겠다며 기다리라고 하였다.
한참동안 차 안에서 기다려도 아무런 소식이 없어 차에서 내려 게이트 사무실 박스로 가서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어보니 조금 더 기다리라고 한 뒤 남자 관리는 현장 게이트에서 약 50여m 떨어져 있는 큰 건물 속의 사무실로 갔다 오더니 차대번호(body number)가 적힌 서류가 필요하다면서 우리 차의 앞 유리창 밑에 붙어 있는 바코드상의 번호를 적어 오라고 했다. 잘 보이지도 않은 숫자를 한자 한자 서류에 옮겨 적어 제출하였다. 몬테네그로 출입국관리소에서 차량등록증 원부가 없다고 한번 퇴짜를 맞은 전력이 있어 더욱 가슴이 조마조마 하였다. 차량을 러시아에서 팔아먹을까봐 그렇게 철저히 조사를 하는지는 몰라도 한편 렌트카를 빌려서 다른 곳에 가서 팔아먹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을 생각해 보면 쉽게 판단이 내려질 것이고 또한 어떻게 하는 것이 국가에 이익이 될 것인가를 생각한다면 답은 명백하지 않는가. 하지만 말도 통하지 않는 변방에 와서 일일이 설명을 할 수도 없는 형편이니 답답하기만 하였다. 차대번호까지 찾아 적는 걸 보니 희망은 조금 남아 있는 것 같아 기다려 보기로 하였다.
10시29분, 드디어 여권과 서류들을 도로 내어 주고는 자기들 서류에 싸인을 하라고 한 뒤 스탬프를 찍어주었다. 서류를 받아 들고는 차를 몰고 마지막 게이트로 향하였다.
10시36분, 마지막 게이트에서 재생종이 같은 누런 종이로 된 두세 개의 싸인이 들어 있던 서류를 제출하였더니 콧수염을 기르고 눈매가 날카롭게 생긴 관리가 뭐라고 하더니 가도 좋다고 했다. 국경을 겨우 통과하고 나니 “휴우-!” 하고 나도 모르게 한 숨이 터져 나왔다. 러시아 입국하기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러시아 영사관에 비자신청하려고 이메일을 몇 번이고 보냈어도 함흥차사였다. 뿐만 아니라 자동차로 러시아에 입국하려고 인터넷을 뒤져 정보를 찾아보았지만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했다. 처음엔 개인적으로 직접 비자신청을 하려고 민박집에 부탁하여 초청장을 준비하고 러시아 체재중의 숙박장소도 민박집으로 정하였다. 또 어떤 사이트에서는 러시아 입국시에 여행자보험에 가입해야만 된다고 해서 여행자 보험까지 가입한 것이다. 그러나 막상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입국심사에 필요한 서류는 여권과 비자만이 필요한 것 같았다. 여행자 보험 가입증이나 초청장등은 요구하지 않았다. 차량을 가지고 입국할 때에는 차량등록증 오리지날이 필요한 모양이다. 국경에 도착하여 장장 거의 4시간이 소요 되었지만 어쨌든 러시아에 입국하게 됐으니 다행이었다. 지도상으로 보면 리가에서 상테 페테르부르크로 가는 A2E77번 도로는 라트비아 국경을 지나면 잠시 에스토니아 땅을 거쳐 러시아로 들어가게 되어 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국경검문소가 거의 한곳에 밀집돼 있어 언제 에스토니아 땅을 지나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
출입국사무소가 있는 국경지역을 벗어나니 황량한 벌판이 전개되었고 직선으로 뻗은 2차선으로 된 국도가 끝이 보이지 않았다. 도로 양쪽엔 하늘을 찌를 듯이 곧게 자란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어서 마치 중국쪽에서 백두산으로 들어가는 도로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주변의 경치가 비슷하였다. 하늘에 떠 있는 뭉게구름도 낮게 떠 있어 손을 뻗치면 잡힐 것 같았다.
도로 바닥은 금세 태풍이 핥고 지나간 것처럼 곳곳에 구덩이가 움푹 움푹 패여 벌집모양을 하고 있었다. 타이어가 구덩이에 닿을 때마다 차체가 덜컹덜컹 흔들렸고 마치 다카르의 죽음의 랠리처럼 느껴졌다. 이런 곳에도 사람들이 사는지 뜨거운 아스팔트 위로 걸어가는 사람도 있었다. 아마 이곳에 사는 농부로 보인다. 10시47분, 가다가 잠시 나무 그늘에 차를 세웠다. 새벽부터 달려와 지금까지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배가 몹시 고팠다. 식빵으로 샌드위치를 만들어 요기를 하였다. 주변을 둘러보니 소나무가 집단으로 말라 죽은 부위도 있고 잡목들로 무성한 곳도 있었다. 다시 출발하여 한참 갔더니 도로사정은 점차 나아졌다.
가다보니 제법 큰 도시가 나왔다. 사람들에게 여기가 어디냐고 물어보니 Pskov라고 하였다. 도시 가운데로 강도 흐르고 강에는 배도 떠 다니고 요트도 보였다. 지도를 펴보니 내륙에서 발원한 Velikaja 강이 Pskovskoje Ozero 호수로 흘러 들어가는 길목이었다. 시내엔 버스와 전차도 다녔다. 굴러 다니는 차 중에는 우리나라 60년대의 차 같은 것들도 보였다. 도로에는 신호등이 없는 곳도 많고 있어도 잘 보이지 않은 양 도로가의 기둥에 아주 작게 붙어 있었다. 보행하는 사람들은 활기차 보였다. 그냥 지나쳐 버리면 언제 다시 이곳을 오겠는가? 상테 페테르부르크로 가는 길을 물어야 했으므로 차는 도로에서 공원 안쪽 나무 그늘 아래에 잠시 세우고 카메라를 꺼내 금빛 돔으로 장식된 러시아 정교회 건물을 배경으로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아이들은 차 안이 더운데도 피곤한 탓인지 내리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었다.
시내로 들어갔더니 큰 관공서로 보이는 건물 앞에는 깃발이 나붓기고 있었고 넓은 화단 한 가운데는 어떤 이의 시커먼 청동상이 서 있었다. 시내에서 상태 페테르부르크로 빠져 나가는 길을 알 수가 없어 택시 기사한테 지도를 보여주며 길을 물어 그리로 차를 몰았다.
12시28분, 도중에 주유소가 보여 연료를 보충하려 하였으나 문이 잠겨져 있고 판매하지 않는다고 했다. 문에는 판매하는 시간이 8:20~8:40, 19:30~19:50 으로 적혀 있었다.
12시32분, 거리 표지판을 보니 모두 러시아어로 적혀 있어 글자를 알 수가 없었다. 눈치로 보아 상테 페테르부르크까지는 279km가 남은 것 같았다. 도로가엔 러시아 경찰이 마치 사자가 숲속에서 먹이 감을 노리듯 곳곳에서 스피드건을 들고 과속차량을 노리고 있었다. 12시58분, 도로가에 사람들이 각자의 농작물을 가지고 나와 팔고 있었다. 경찰이 보이지 않은 곳에서는 차량들이 자동차 경주를 방불케 하는 것처럼 질주하였다. 13시31분, 경찰의 단속이 심하여 혼자 달리는 것보다 다른 차들을 앞세우고 뒤에 따라 가는 편이 좋을 것 같아 러시아 차량 3대를 앞세우고 마지막에 붙어서 따라가고 있는데 숲 속에서 경찰이 불쑥 나타나 차를 세우라고 손짓을 했다. 앞서 가는 차들은 그냥 놔두고 뒤에 있는 나를 잡는 것이 이상하였다. 그냥 달아날 수도 없고 하여 할 수 없이 차를 도로가에 세웠다. 유니폼을 입은 경찰이 다가오더니 스피드건을 보이며 국도에서는 제한속도가 60km/h 인데 나더러 90km/h를 냈다며 과속했다고 하였다. 그러고는 면허증과 차량등록증을 보여 달라며 받아쥐고는 숲속에 숨겨 놓은 경찰 백차로 안내하였다.
백차 안에는 조금 직급이 높은 듯한 40대 초반 미남형의 경찰이 한명 버티고 앉아 있었다. 요새 같이 숲속에 들어앉은 백차 안에도 스피드 건이 장착되어 있어 나무 사이로 전파를 쏘아 멀리서 달려오는 차량들의 스피드를 첵크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나를 안내한 경찰은 면허증과 차량서류를 그에게 인계한 후 다시 현장으로 나가 다른 먹이감을 노리고 있었다. 간부로 보이는 경찰은 나에게 러시아어로 말을 하는데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눈치를 보니 벌금을 내면 500$인데 스티커를 끊을까 어쩔까 하는 것 같았다. 못 알아듣는 척하고 잠자코 있었다. 이럴 때는 지연작전으로 시간끌기가 효과적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상한 것은 앞차 셋은 그대로 보내주고 뒤에 따라가던 나만 유독 잡느냐는 것이다. 또한 스피드건으로 90km/h로 찍혀 있는 것이 나의 것인지도 알 수 없는 것이었고 내 생각으로는 시속 60km 보다는 조금 더 스피드를 내었지만 90km까지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말이 제대로 통하지 않으므로 제대로 이의를 제기할 수도 없고 또한 칼자루는 경찰이 쥐고 있는 형편이 아닌가. 그도 답답했던지 경찰차에서 내려서 나를 도로가로 안내 하더니 저쪽에서 과속했다며 손으로 가리키는 것이었다. 시간을 끌면 오히려 내가 불리해 질 것 같았다. 왜냐하면 상태 페테르부르크까지는 몇시간을 더 달려야 하는데 시간이 늦어 어두우면 어디서 어떻게 민박집을 찾아야 할지 난감해 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눈치를 살피니 돈을 요구하는 것 같았다. 지갑에서 5$짜리 지폐 두장을 꺼내 이것이면 되겠느냐고 보여 주었다. 그랬더니 안 된다며 50$을 요구하였다. 이제 흥정은 된 것이니 최대한 디스카운트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지갑 속을 뒤집어 보여주며 돈이 없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잔돈 몇 푼과 유로화 서너 장이 들어있을 뿐이었다. 마지막으로 20유로짜리 지폐를 한 장 꺼내 손에 잡혀 주었더니 그는 못 이기는 척 하면서 잽싸게 받아 챙기고는 고맙다는 듯이 면허증과 서류를 돌려주면서 잘 가라는 인사를 하였다. 알고 보니 2명이 한 조가 되어 사냥을 하는 것 같았다. 내가 마악 출발하려고 하는 순간에도 다른 먹이감이 걸려들어 차를 세우고 있었다.
13시54분, 다시 시동을 걸어 출발하였다. 조심을 한다고 했지만 기를 쓰고 잡으려 든다면 어쩔 수 없이 걸려 들 수밖에 없었다. 도로는 왕복 2차선으로 좁지만 직선구간인데다가 차량의 통행이 적어 웬만한 운전자라면 스피드를 내게끔 돼 있었다. 경찰에게 벌금을 뜯기고 나니 기분은 별로 좋지 않았지만 유료도로비를 낸 셈으로 치고 앞으로는 제한속도를 넘지 않기로 하였다. 한참 가다가 연료계기판을 보니 상테 페테르부르크까지 갈 수 없을 것 같아서 도중에 주유소가 나타나면 기름을 넣기로 하였다. 얼마 가지 않아 도로가에 작은 주유소가 눈에 띄었다. 주유대 앞에 차를 세우고 연료캡을 열고 주유기를 꽂아서 핸들을 당겨도 기름이 들어가지 않았다. 뒤에서 연료를 주입하려고 들어오던 친구가 답답하다는 듯이 카운터에 가서 계산부터 먼저 하고 오라고 하였다. 유럽에서는 주유를 먼저 한 다음에 그 양에 해당하는 연료비를 지불하는 것인데 러시아에선 연료를 얼마 주입할 것인지 정산부터 먼저 하고 연료를 주입하는 모양이었다. 사무실내 카운터에는 팔뚝에 큰 별을 문신하고 이마에 띠를 맨 친구가 있어 비자카드로 연료비를 계산할 수 있는지 물어보니 OK였다. 연료를 20리터 보충하겠다고 했더니 카드로 계산하면서 핀코드를 물었다. 출국시에 카드의 핀코드를 알아놓지 않았으므로 알 수가 없었다. 교원카드며 현대카드를 교대로 사용해 보았으나 핀코드를 맞출 수 없어 결국 연료를 보충하지 못하고 도로 나왔다. 도중에 연료가 떨어지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되었다. 러시아 현지화가 있으면 그것으로 연료를 보충할 수 있을텐데 아직 은행에 들리지 않았으므로 러시아 돈으로 바꾸지 못했다. 주유소에서 나와 다시 상태 페트로부르크를 향해 악설레이터를 밟았다. 다른 차들이 전부 내 앞으로 추월해 나갔다. 경찰차들이 매 2km마다 한 대 꼴로 지키고 있는 것 같았다.
15시10분, 계기판의 연료지침이 1/2 이하로 내려갔다. 이대로 간다고 해도 연료를 보충하지 않으면 목적지인 상테 페트로부르크까지는 갈 수는 없다고 판단되므로 조금 큰 도시가 나타나면 연료를 주입해야 되겠다고 생각되었다. 얼마가지 않아서 도로 좌편에 제법 큰 주유소가 눈에 띄었다. 알고 보니 상테 페테르부르크에서 약 180km 떨어진 조그만한 도시인Luga였다. 이것을 놓치면 안 되겠다 생각되어 맞은편에서 차가 오지 않을 때를 틈타 중앙선을 넘어 주유소로 들어갔다. 사무실 카운터로 가서 쥐구멍만한 창구를 열고 비자카드를 내어 보이며 유로95 20리터를 넣겠다고 했더니 이번에는 핀코드를 물어보지도 않고 결재를 해주었다. 나와서 주유구에 주유기를 넣었더니 펌핑이 되기 시작하였다. 주유대의 유량계로 20.00리터가 되니 펌프가 정지 되었다.
3시20분, 다시 상태 페테르부르크를 향해 출발하였다. 햇살은 약간 따가울 정도였지만 날씨는 쾌청하였다. 이젠 연료도 보충했으니 목적지까지는 충분히 갈 수 있겠다 싶으니 약간 안심이 되었다. 천천히 가더라도 목적지에 도착하기만 하면 백야현상으로 늦게까지 날이 훤하므로 어떻게 되겠지 하는 배짱도 생기는 것이었다. 상테 페테르부르크가 점차 가까워지는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차량들이 점점 많아졌다.
5시10분, 도로공사로 인해 차들이 엄청 밀리기 시작하였다. 아마 상테 페테르부르크에 가까이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지평선 저 멀리 거대한 도시의 파노라마가 부우연 안개 속에 어렴풋이 전개되었다. 그러나 도로표지판도 읽을 수 없고 초행길이라 어디가 어딘지 도무지 분간을 할 수가 없었다. 상테 페테르부르크 이웃에 있는 푸쉬킨 시인지 아니면 인근 위성도시인지 물어보려고 해도 도로가에 사람들도 보이지 않아 물어볼 수도 없었다. 하긴 물어보려고 해도 말이 통하지 않으니 알 수도 없을 것이지만... 조금 기다리니 차들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일단 차들이 많이 가는 방향으로 따라 들어가서 물어보기로 하였다. 시내로 들어오니 엄청 넓은 대로가 나왔다. 일단 현재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도로가에 차를 세워서 두 아들에게 상테 페테르부르크로 가는 길을 물어보라고 하였더니 이곳이 바로 ‘빼째르’ 라고 하였다. 현지에서는 상테 페테르부르크를 줄여서 그냥 ‘빼째르’라고 불렀다. 차량들이 많이 다니는 길을 따라 시내로 들어왔지만 어디가 어딘지 알 수도 없었다. 유일한 희망은 28일부터 숙박이 예약되어 있는 민박집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하는 길 밖에 없었다. 그러려면 일단 시내 중심까지 들어가 표적이 될만한 건물이나 장소에서 전화를 걸어야 하므로 일단 시내 중심까지 들어가기로 하였다. 넓은 대로에는 전차 버스를 비롯하여 크고 작은 차량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어 차선을 바꾸어 가며 운전하기도 쉽지 않았다. 나는 바깥에서 두 번째 차선을 타고 들어가면서 적당한 장소가 나오면 차를 세우려고 속력을 내지 않고 달렸다.
조금 가다보니 큰 로터리가 나왔다. 석주가 가운데 서 있고 주변에는 조각상들이 둘러 서 있었다. 멀리 가면 찾지 못할 것 같아 차를 광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임시로 주차해 놓고 민박집 주인에게 전화를 걸기로 하였다. 막상 전화를 걸려고 하니 공중전화 부스를 찾아야 하고 또 러시아 동전도 준비해야 하는데 얼마짜리가 쓰이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은행에 가서 환전할 시간도 없었기 때문에 러시아 돈도 가진 게 없었다. 어쨌든 방법을 찾아야 했으므로 지나가는 젊은이에게 이동전화를 부탁하는 수밖에 없었다. 전화번호가 적힌 쪽지를 내보이며 젊은 여자에게 부탁했으나 영어를 알아듣지 못했다. 조금 기다렸다가 빠른 걸음으로 지나가는 대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에게 다가가서 전화를 부탁했더니 도와주었다. 자기 핸드폰을 꺼내 민박집에 전화를 걸어 신호가 울리자 내게 넘겨주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민박집 주인은 난감한 표정을 짓는 것 같았다. 사실은 우리가 예약한 날짜보다 하루 먼저 도착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하루 먼저 도착한 것은 부다페스트에서 비가 왔기 때문에 일정을 하루 앞당겨 출발했기 때문이며 이곳에서 하루를 더 머무를 셈이었다. 우리가 예약한 민박집에는 다른 손님들이 들어와 묵고 있기 때문에 같이 투숙하기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우리는 꼭 그 집이 아니더라도 민박집이 몇 군데 있고 해서 연락하면 방이 비어 있는 곳도 있을 것이고 정 안되면 캠핑사이트를 찾아가려고 생각했었다. 단지 연락할 방법이 없고 또 위치가 어딘지 알 수가 없기 때문에 민박집 주인한테서 정보를 알아가려고 한 것이다. 민박집 주인도 일단 찾아온 손님을 냉정하게 돌려보낼 수가 없었던지 내가 있는 위치를 알려달라고 하기에 핸드폰 주인에게 현재의 위치를 말해 달라고 부탁했다. 다시 민박집 주인이 전화를 바꿔달라고 하여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민박집에서 상당히 멀어서 자기가 나오기 어려우므로 차를 타고 대로를 타고 약 10km 더 들어오면 사도바야/신나라 광장이 있는데 그곳에 와서 다시 전화를 하면 나오겠다고 하였다. 이동전화를 빌려준 학생은 영어를 제법 잘 하였다. 우리는 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다시 차를 몰고 대로를 따라 직진하였다.
계기판 마일리지를 보면서 약 10km 직진했더니 로터리로 된 광장이 나왔다. 광장주변 건물 옥상에는 "HYUNDAI"라고 적힌 대형 광고판이 눈에 띄었다. 자동차를 로터리 부근 공사장 안쪽에 주차해 놓고 전화를 빌릴만한 곳을 찾았다. 인근 상점에 들어가 전화를 좀 쓰자고 사정을 했지만 빌려주는 곳은 없었다. 코닥칼라(Kodak colour) 필름현상점이 눈에 띄어 필카로 찍은 필름도 현상해야겠기에 문을 열고 들어갔다. 현상비를 물어보니 필름 1롤에 20R 한다고 하였다. 환율은 1유로에 3.60R이었다. 소요시간은 얼마 걸리느냐고 물었더니 1시간이면 충분하다고 하였다. 귀국하려면 아직 시일이 많이 남았으므로 그 동안 찍은 필카 필름은 이곳에서 현상을 해 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상점 종업원인 젊은 남여와 이야기를 하는 동안 영어가 잘 통하지 않아 종이에 글자를 적어 보이기도 하였다. 그러는 도중에 종업원이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에 전화를 하는 것이었다. ‘옳지 됐다!’ 싶었다. 메모지에 민박집 전화번호를 적어 이곳에 전화를 좀 걸어달라고 하였다. 민박집 주인에게 우리가 사도바야 광장 부근의 전철역앞 코닥칼라집에 기다리고 있다고 했더니 그리로 나가겠다고 하였다. 상점내에 오랫동안 기다릴 수가 없어 문을 열고 나와 밖에서 기다렸다. 반팔 티를 입고 서서 기다리고 있으려니 날씨가 제법 싸늘하게 느껴졌다. 얼마의 시간이 흘러갔다. 지하철 계단을 통해 오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지나가는 사람들 틈에 키가 자그만한 아직 앳된 모습의 청년이 우리에게로 다가왔다. 단박에 민박집 주인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는 만나자마자 오늘 저녁 자기 집에 침대 두개가 나는데 그곳에서 3명이 자면 어떻겠느냐고 해서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노숙을 면한 것만도 얼마나 다행인가. 여차했더라면 지리도 잘 모르는 곳에 있는 캠핑장을 찾아 헤맬 뻔 하였다.
노심초사하던 숙소문제가 해결되고 보니 그동안 쌓였던 긴장이 눈 녹듯이 스르르 풀렸다. 긴장이 풀린 탓인지 어제 밤도 차 안에서 웅크리고 앉아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데다가 장시간 운전으로 몸이 피곤하여 통 움직일 수가 없었다. 민박집 주인을 앞좌석에 태우고골목길을 돌아 그가 운영하는 민박집 아파트로 찾아갔다. 운하 위의 작은 다리를 건너 곧장 달려가니 큰 아파트 건물 입구에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의 청동상 조각판이 붙었는데 그곳이 그의 실제 모델이 된 학생의 하숙집이었다고 한다. 또 거기서 약간 떨어진 곳에는 도스토예프스키가 한동안 살았다는 짙은 황색 칠이 된 아파트도 알려 주었다.
6시 55분, 민박집 앞에 이르러 도로가에 주차를 해두고 가방을 들고 3층으로 올라갔다. 아파트 입구는 No.9라고 적혀 있었다. 그는 오래된 아파트의 3층 방 3개를 세를 얻어 민박집을 운영하고 있었다. 주인장은 러시아어를 공부하기 위해 금년 2월에 들어왔다고 하며 내년 2월에 석사과정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하였다. 어두컴컴한 계단을 올라가면서 보니 천장은 높고 계단은 돌로 되어 있는데 가운데가 푹 꺼져 있는 것으로 보아 한 눈에도 오래된 아파트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죄와 벌’에 나오는 노파 알료나 이바노브나가 사는 집이 연상되었다. 이곳의 주거시설은 대부분 도로가의 4~6층 되는 아파트인데 모양이 대개 비슷비슷 하였다. 아파트를 건설할 당시엔 주민들에게 차가 없었기 때문에 주차시설을 만들어 놓지 않았었는데 지금은 소득수준이 높아져서 대부분 차를 소유하고 있어 주차문제가 큰 이슈로 등장하고 있다고 하였다. 도로가에 차를 주차해 두었으므로 내부에 비싼 물건이 보이면 차 유리창을 파손하고 가져가기 때문에 차 안에는 물건을 남겨 놓지 말라고 하였다. 현관문을 들어서니 내부를 새로 수리도 하고 벽지도 새로 꾸몄다면서 비교적 깨끗한 편이었다. 주인장이 비어 있는 방 한 칸을 정해주어 그 쪽에 짐을 갖다 놓았다.
우리는 시장했으므로 빨리 저녁을 준비해야 했다. 주방을 빌려줘서 두 아들이 저녁식사를 준비하였고 주인장이 밥과 김치를 내 주었다. 아이스 박스에 넣어 두었던 돼지고기가 아이스 팩 덕분에 상하지 않았다. 메뉴로는 밥, 김치, 돼지목살구이, 참기름, 양파, 된장, 맥주, 와인 등으로 오래간만에 맛보는 진수성찬이었다. 차 안에서 자는 둥 마는 둥 밤을 지새우다가 아침은 굶은 채 새벽부터 먼 길을 달려온 데다가 점심이라곤 길가에 서서 샌드위치 한 두 조각으로 때웠으니 한창 배가 고플 시간이었다. 주인장이 내놓은 김치가 푹 삭아서 맛이 들대로 들어있었다. 우리는 갖고 온 김치가 다 떨어져 총각김치 국물마저도 버리지 않고 냄새라도 맡으려고 김치통을 갖고 다니다가 마지막 남은 김치국물 한 방울까지 닦아서 먹었던 것이다. 갈증이 날 때 시원하게 냉장된 맥주 한잔이야말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고귀한 맛을 지니고 있다. 시원하면서도 약간 씁쓰레한 호프 맛이 남아 있는 하이네켄의 독특한 그 맛을 나는 좋아한다. 식사를 하면서 곁들인 레드 와인 한잔도 비록 값비싼 크리스탈 잔이 아니더라도 고소한 목살구이와 잘 어울렸다. 주인장과 함께 식사를 마치고 커피를 한잔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29세의 총각이라고 하는 주인장은 본래 공부에는 별로 흥미가 없었으나 부모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어서 인문계로 진학하여 춘천의 H대를 졸업하였다고 한다. 졸업후 마땅한 취직자리를 찾지 못하여 노가다를 비롯하여 아르바이트를 수도 없이 하다가 이곳까지 흘러 들어오게 됐다고 한다. 공부하러 왔다가 우연한 기회에 민박집을 시작하게 됐고 자신은 친절과 성실한 자세로 손님들을 편안하게 해 드리는 서비스의 제공이 모토라고 했다. 빼째르에 민박집이 댓군데 되는데 어떤 사람은 전화목소리만 듣고도 찾아온다고 한다. 아직 홍보가 제대로 돼 있지 않으나 입소문으로 퍼져 출장 오면서 찾아오는 손님들이 많다고 한다. 아침을 제공하기로 약속했으므로 스케줄에 따라 새벽 2~~3시에 공항으로 나가는 손님이 있으면 그 시간전에 일어나 식사준비를 해 드린다고 한다.
서비스 정신이야말로 기업의 생명이 아닌가. 장차 호텔경영주가 되겠다는 것이 자신의 꿈이라고 하였다. 낡은 아파트를 세내어 벽지를 바르고 바닥은 나무로 된 것으로 깔고 커텐도 새로 달아 실내를 편안한 분위기로 바꾸었다고 했다. 하지만 천정이 높고 넓은 방 안에 침대만 달랑 두개 놓여 있어 손님들이 썰렁해 하지 않을까 걱정을 하였다. 사람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해야 재미도 있고 열정도 생기는 법이라고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내일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있어 동행 가이드를 해 줄 수가 없지만 관광가이드역할도 한다고 했다. 비용은 1일에 150$라고 했다. 옆방에도 서울의 모대학 교직원 일행이 묵고 있는데 사전에 준비를 해 오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고 했다. ‘무엇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고 계획을 세워서 오는 경우가 없이 무턱대고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그래서 자신이 관광스케줄을 잡아 주고 필요시 관광가이드까지 수행해 준다는 것이었다. 에르미타주 박물관도 2~3시간 지나면 다리도 아프고 지겨워서 대부분의 한국사람들은 나온다고 했다. 우리처럼 자료를 준비해서 오는 사람은 처음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어떤 작품이라도 외양만으로는 충분히 이해할 수가 없다. 그 작품의 시대적 배경과 작자의 의도 등은 밖으로는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는 모양이다. 주인장이 우리한테도 가이드가 필요하면 사전에 이야기를 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었다. 또 숙박료는 선불로 받는다고 하면서 어른은 하루에 30유로, 두 아들은 할인해서 1인당 25유로씩 3일간 도합 240유로 라고 하였다. 시내를 관광하려면 러시아 돈이 필요할 것 같아서 110유로를 환전하여 396루불을 받았다.(1유로=3.6R) 시장 볼 게 있으면 가까운 곳에 수퍼마켙이 있으므로 안내해 드리고 식사를 손수 지어서 드시고 싶으면 주방을 제공해 드리겠다고 하였다. 이곳에 한국식당이 있긴 하지만 비싸다고 했다. 라면 한 그릇에 만 오천 원꼴이라고 했다. 그리고 인터넷을 무료로 제공해 드린다고 했다. 모든 외국인은 3일 이내에 외국인 등록을 해야 하는데 우리보고는 어떻게 할 것인지 물었다. 당초에는 이틀만 있다가 가기로 되어 있었으나 하루 일찍 도착하는 바람에 이곳 체재기간이 사흘로 되는데 그게 애매하다고 했다. 사흘이면 72시간인데 우리는 72시간 내에 러시아를 떠날 것이므로 외국인 등록은 필요 없다고 했다. 자기가 외국인 등록대행업무도 겸하고 있는데 1인당 20유로라는 것이었다. 구 소련시절 정보유출을 막기 위해 러시아에 입국하는 모든 외국인들에게 등록을 요구했던 규정을 지금도 운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보여진다. 우리는 현정이와 30일 오후2시에 에스토니아 탈린공항에서 만나기로 약속되어 있으므로 시간 내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이곳에서 새벽에 떠나야 하고 입국한지 72시간이 되는 아침8시까지는 국경을 통과해야 한다. 길도 잘 모르는데다가 표지판도 러시아어로 돼 있고 또 제대로 돼 있는 곳이 거의 없어 운전자가 길을 찾는 데는 어렵게 돼 있다. 시내 도로에도 신호등도 잘 보이지 않고, 모든 게 아직 꾸진 데가 한 두 가지가 아니어서 생각대로 72시간내에 러시아를 탈출할 수 있을지 걱정스럽기도 하였다. 그러나 60유로라는 거금을 절약하는 길이므로 일단 그렇게 하기로 한 것이다. 러시아가 아무리 우주왕복선으로 우주를 왔다 갔다 하고 있지만 우선은 사람살기가 편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장은 민박집의 위치가 관광하기에 아주 편리한 곳이라고 자랑을 늘어놓았다. 볼거리들이 동서로 각각 15km씩으로 흩어져 있고 여기서 조금만 걸어가면 네프스키 대로라고 한다. 러시아의 겉모습만 보려고 하면 그쪽으로 가서 보면 될 것이고 진면목을 보려면 가난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구역으로 가면 된다는 것이었다. 민박집 아파트 인근에 도스토에프스키가 지은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의 실제 모델이었던 학생이 살았던 아파트가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에 있으며 그 아파트의 입구벽면에 그의 청동상이 붙어 있다고 했다. 우리가 민박집으로 차를 타고 들어오면서 잠시 고개를 돌려 쳐다본 기억이 되살아났다. 또한 도스토에프스키가 세들어 살았던 아파트도 이웃에 있다고 하며 내일 같이 나가면서 가르쳐 주겠다고 하였다.
주인장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 후 인터넷으로 집에 우리가 러시아 상테 페테르부르크까지 안전하게 왔다는 소식을 전했다. 독일 베를린에 있는 딸아이에게도 소식을 전했다. 컴퓨터 키보드가 러시아제여서 한글변환은 되는데 자판에 나와 있지 않아 사용하기에 불편하여 영문으로 몇 자 적어 보냈다. 내가 운영하는 카페에도 들어가 보니 구경 잘 하고 오라는 친구들의 애정 어린 댓글도 서너 개 달려 있었다. 조금 후 정현이가 독일에 있는 누나와 연락이 닿았는지 30일 2시에 탈린 공항에서 만나자고 하더라고. 두 아들은 인터넷에 둘러 빠져 있어 빨리 누워 자야 일찍 일어나지 하고 나는 잠이 쏟아져서 먼저 침대로 들어갔다.
첫댓글 마담! 나 몇번이고 이 글을 읽고 있다네. 나 지금부터 세계 곳곳을 돌아 다닌다면 얼마나 다닐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