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격 있는 대화-호의를 베풀면 마음이 흔들린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끝까지 싸우겠다.”
1974년 미국 사회를 충격으로 몰아넣은 패티 허스트가 한 말이다.
미국의 언론 재벌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의 손녀이자 상속녀인 그녀는 대학 2학년 때, 약혼자와 함께 있다가 게릴라 단체인 공생해방군(SLA)에 납치됐다. 그로부터 두 달 뒤, 그녀가 게릴라들과 함께 소총을 들고 은행을 터는 장면이 CCTV에 잡혔다.
재벌 부모와 약혼자를 비난하고 게릴라처럼 행동하던 그녀는 납치된 지 19개월 만에 체포되어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 과정에서는 세뇌를 받은 데다 살아남기 위한 방편이었다고 변론했지만 재판부는 사회적 충격을 감안해서 35년형을 선고했다. 유명인사들이 석방탄원서를 제출해 7년으로 감형되었고, 대통령의 특별사면을 받아 결국 15개월 만에 가석방된 그녀는 다시 사교계로 돌아왔다.
패티 허스트의 사례는 작은 호의를 베풀어줄 경우, 납치나 인질 피해자가 오히려 범인들에게 동화되어 이들을 옹호하는 ‘스톡홀름 증후군’의 대표 사례로 꼽히고 있다.
‘스톡홀름 증후군’과는 반대로 인질범이 인질에게 동화되는 ‘리마 증후군’이 있다. 1997년 페루 리마에서 반정부조직 요원들이 일본 대사관을 점거하였다. 그들은 127일 동안 400여 명의 인질들과 함께 지내면서 인질들에게 자신들의 어려움과 상황을 토로했다. 그렇게 차츰차츰 인질들에게 동화되어 가족과 안부 편지를 주고받고, 미사를 개최하는 등의 이상 현상을 보여서 붙은 심리학 용어다.
‘스톡홀름 증후군’이나 ‘리마 증후군’ 이면에는 ‘호의’가 개입하고 있다. 인간은 ‘호의’를 베풀어주면 쉽게 잊지 못한다. 특히 스트레스가 심한 상황이나 경제적으로 어려울 경우, 그 효과는 극대화된다.
인류는 오랜 세월 ‘상호성의 원칙’에 입각해서 살아왔다. 누군가에게 호의를 받았다면 그에 대한 보답을 해야만 한다. 법률적으로 반드시 그래야 한다는 강제 조항은 없다. 그러나 사회적 동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지킬 수밖에 없다. 법보다 더 무서운 것이 바로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기 때문이다.
상호성의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면 전쟁이나 분란이 줄어든다. 그래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러한 정서를 장려하고 조성한다.《흥부전》의 제비도 은혜를 갚고,《이솝 이야기》의 생쥐도 자신을 용서해준 사자의 목숨을 구해준다. 그렇다면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은혜를 입으면 어떻게 해야겠는가?
대화의 달인들은 심리전에 능하다. 그들은 일단 아무 대가 없이 호의를 베푼다. 사전 작업 내지는 밑밥 깔기라고 할 수 있다.
“오늘은 제가 사겠습니다. 드시고 싶은 걸로 마음껏 드세요.”
“마음의 선물입니다. 별다른 뜻은 없으니 부담 갖지 마세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뭐부터 시작하면 되나요?”
일단 호의를 받아들이고 나면, 무언가를 줘야 한다는 강박감에 사로잡히게 되고, 부탁을 해 올 경우 거절하기가 힘들어진다.
말하기에도 전략이 필요하다. 일단 내 말이 먹힐 환경이나 상황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 호의는 나에 대한 호감을 상승시킴과 동시에 상대방의 마음을 꽁꽁 사로잡을 강력한 밧줄이다.
*위 글은 한창욱님의 저서 “품격 있는 대화” Chapter4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이는 말’ 중 “2. 호의를 베풀면 마음이 흔들린다”를 옮겨 본 것입니다.
*참고로 한창욱님은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여러 해 동안 기자생활을 하다가 투자컨설팅 회사에서 전문위원으로 일하였으며, 첫 작품 “나를 변화시키는 좋은 습관”이 베스트셀러가 된 이후, 대청호가 내려다보이는 평화로운 마을에 ‘마음연구소’를 열었고, 이곳에서 독서와 명상 등으로 삶의 의미를 찾고 있으며, 저서로는 “나를 변화시키는 좋은 습관”, “완벽하지 않기에 인생이라 부른다”, “나는 왜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거는가”, “나를 이기는 5분 습관”, “마음을 슬쩍 훔치는 기술”, “펭귄을 날게 하라”, “서른, 머뭇거리지 않기로 결심했다”, “진심으로 설득하라”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