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질기의
호질기의(護疾忌醫)를 직역하면 ‘병(疾)을 숨기고(護) 의원(醫)을 기피(忌)한다.’는 뜻이다. 이 같은 취지에서 ‘문제가 있음에도 타인의 충고를 무시함.’ 또는 ‘자신의 결점을 덮어둔 채 고집을 꺾지 않으려 함.’ 등과 같은 상황에 쓰인다. 정직하지 못하고 답답한 정치와 사회 현실을 빗대서 교수신문이 2008년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하기도 했었다.
우리 선조 중에서 가장 뛰어난 명의(名醫)로 알려진 이는 허준(許浚)이다. 허준과 유사한 중국의 명의는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 인물로 편작(扁鵲)이다. 그는 다 죽어가는 괵(虢)나라 태자를 살려냄으로써 죽은 사람도 살렸었다는 소문이 세상에 널리 퍼졌다. 이 편작과 제환공(齊桓公 : 田午 : BC ? ~ BC357년) 사이의 고사(故事)에서 비롯되었다.
해당 고사를 전하는 출전(出典)은 ⟪한비자(韓非子)⟫의 ⟨유로(喩老)⟩, 사마천(司馬遷)이 저술한 ⟪사기(史記)⟫의 ⟨편작창공열전(扁鵲倉公列傳)⟩, 북송(北宋)의 주돈이(周敦頤)*가 집필한 ⟪주자통서(周子通書)⟫, 송(宋)나라 유청지(劉淸之)가 지은 ⟪소학(小學)⟫의 ⟨제5편 가언 광경신(第五篇 嘉言 廣敬身)⟩ 등이다. 한편 유의어로서 휘질기의(諱疾忌醫)가 있다. 이상의 출전에서 전하는 고사의 줄거리를 간추려 정리하는 것으로 이의 진면목과 조우한다.
고대 중국의 북송 시절 주돈이가 ⟪주자통서⟫에서 이렇게 질타했다. 이를 통해 ‘호질기의’가 비롯되었다.
/ 요즘 사람들은 잘못이 있어(今人有過 : 금인유과) / 타인이 바로 잡아 주는 것을 반기지 않는다(不喜人規 ; 불희인규) / 이는 마치 병을 안으로 감추며 의원을 기피해(如護疾而忌醫 : 여호질이기의) / 자신의 몸을 망치면서도 깨우치지 못하는 것과 같도다(寧滅其身而無悟也 : 영멸기신이무오야) /
위와 같이 그 당시의 세태를 신랄하게 꼬집어 비판하며 실제적인 예로서 ⟪사기⟫의 ⟨편작창공열전⟩에 나오는 얘기를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그 고사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편작이 제환공(齊桓公)을 여러 차례 만나며 질병에 대해 더덜이 없이 곧이곧대로 조언을 했으나 끝끝내 받아들이지 않다가 마침내 사망에 이르렀다.
⟪한비자⟫의 ⟨유로⟩에서도 편작에 관련된 고사를 전하고 있는데 그 내용을 요약해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편작과 제환공의 만남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 편작이 채환공을 보고(扁鵲見蔡桓公 : 편작견채환공) / 잠시 서 있다가 말했다(立有間 : 입유간) /”
라고 했다. 위에서 “채환공(蔡桓公)”이라는 표현은 중대한 오류가 분명하다. 왜냐하면 각종 역사적 자료를 견주어 검토했을 때 “채환공”이 아니라 ‘제환공(齊桓公 : 전오(田午) : BC ? ~ BC357년)’이라야 아귀가 들어맞기 때문이다*.
편작은 제환공을 열흘 간격으로 수차례 만나 질병에 대한 조언을 했으나 얼토당토않은 핑계를 대면서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만남을 거듭하며 지적했던 병세이다.
첫 번째 만남에서 “군주께서는 질병이 살가죽 즉 피부(腠理 : 주리)에 있으니 방치하면 깊어질까 염려 되옵니다”라고 했다. 두 번째 만나서는 “군후(君侯)의 병이 근육 즉 살 속(肌膚 : 기부)에 번져 있으니 그대로 두면 더욱 심해질 것입니다.”라고 일렀다. 세 번째는 “군후의 병이 장기(臟器)에 퍼졌으니 속히 치료하지 않으면 머지않아 큰일을 당할 것.”이라는 경고를 거듭했다. 네 번째는 ‘편작이 제환공을 보고 아무 말도 없이 돌아갔다’. 편작의 행동이 하도 괴이해서 사람을 시켜 그 연유를 들어봤더니 이런 말을 했다.
“질병이 살갗(腠理)에 있으면 탕약과 다림질로 다스리고, 근육 즉 살 속(肌膚)에 있으면 침석(鍼石)에 이르고, 병이 장기(腸胃 : 장위)에 있으면 화제(火帝 : 뜸 불)에 이를 수 있으며, 병이 골수(骨髓)에 이르면 손 쓸 도리가 없는데 지금 제환공은 병이 골수로 번져 신(臣)이 처방할 도리가 없답니다.”라고 말했다.
그로부터 닷새가 지나 제환공의 병세가 급속히 악화되어 편작을 수소문했으나 그는 이미 진(秦)나라로 피신해 버렸다. 고집불통으로 편작의 말을 귓등으로 홀려 버리며 듣지 않고 쓸데없는 오기를 부리다가 그렇게 허무하게 세상을 하직했다. 결국 누구나 잘못은 범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잘못을 인정하고 시정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다만 이미 범한 잘못을 완강하게 부정하면서 되풀이 하여 잘못을 범한다는데 심각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우리 속담에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막지 못한다.”라는 말이 있다. 또한 ‘견고한 제방도 하찮은 개미구멍 하나 때문에 무너진다.’고 하여 제궤의혈(堤潰蟻穴)이라고 경고하지 않던가? 또한 예로부터 “바른 군자는(正人君子 : 정인군자) / 자신의 부족함을 감싸지 않는다(不護己短 : 불호기단).”고 일렀다. 게다가 시작이 미미하여 하찮더라도 방치한다면 감당할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위험 요소가 도처에 널려있다. 이 같은 관점에서 작은 일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무시했다가 크나큰 화를 자초하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일이 없어야겠다. 따지고 보면 개인이나 단체를 비롯해 나라에는 잡다하고 사소한 난제가 널려있다. 때문에 그들을 외면한 채 수수방관하다가 뜻하지 않는 크나큰 낭패에 직면해 낙담하지 않도록 자성하는 혜안이 필요하다. 그럴지라도 투미한 내게는 그런 현명한 지혜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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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돈이(周敦頤) : 유교(儒敎) 사상가로서 존숭(尊崇)하는 의미로 ⟨주자(周子)⟩라고도 불렀다. 하지만 성리학(性理學)을 집대성한 주희(朱熹)를 지칭하는 ⟨주자(朱子)⟩와 혼동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 편작견채환공(扁鵲見蔡桓公) : 여기서 ‘채환공(蔡桓公)’은 잘못된 표현이다 왜냐하면 채(蔡)나라 군주 중에서 채환공(蔡桓公)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채환후(蔡桓侯)는 존재했었지만 편작(扁鵲)이 태어나기 280년 전 쯤에 사망했기 때문에 그를 만났다는 기술(記述)은 어불성설이다. 또한 채나라는 편작이 태어나기(BC401년) 전인 BC447년에 멸망했기 때문에 편작이 채나라 인물을 만났다는 것은 중대한 오류이다. 그리고 편작의 생몰기간(BC401 ~ BC310년)을 고려할 때 채환후(蔡桓侯 : BC ? ~ BC695년)는 전혀 관계없다. 그렇다고 제나라에 존재했던 두 환공 중에 제환공(齊桓公 : 녹보(祿甫) : BC ? ~ BC643년)도 해당되지 않는다. 따라서 제환공(齊桓公 : 田午 : BC ? ~ BC357년)이 편작과 관련되어 고사에 등장한 인물로 추정된다.
《수필과비평》, 2026년 8월호(통권298호), 2026년 8월 1일
2024년 10월 18일 금요일
첫댓글 좋은글 잘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