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우리 아버지 (눅 15:11-24)
11 또 이르시되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12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13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 14 다 없앤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그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15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에게 붙여 사니 그가 그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16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17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18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19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21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22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이 시간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라는 제목입니다. 하나님은 누구십니까? 우리의 아버지십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만 불러도 우리는 어마어마한 특권을 누립니다. 그걸 알았기에 마귀가 예수님을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라 하면서 시험했겠습니까?
2010년 8월 탈무드의 저자 마빈 토카이거가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그는 기독교100주년 기념관에서 강연하면서 유대인의 가정에서의 아버지의 이미지와 역할에 대해서 소개했습니다. 가정교육이 잘되고 있는 유대인의 가정에서 아버지는 네 가지 이미지를 갖고 있다고 하면서, 첫째는 공급자(Supplier), 둘째는 보호자(Protector), 셋째는 인도자(Guider), 넷째는 교육하고 훈육하는 자(Instructor)라 하였습니다.
육신의 아버지도 이런데 우리의 하늘 아버지는 어떠하시겠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마7:11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하셨습니다. “하물며”라는 말씀이 여러 곳에 나옵니다. 지상의 부모는 천상의 하늘 아버지의 그림자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의 탕자 비유를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가 어떠하신 분이신지 살펴보며 함께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아버지이실까요?
1. 좋으신 아버지이십니다.
12절에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돌아올 분깃을 가리키는 헬라어 ‘에피발로 메로스’는 유산을 뜻합니다. 당시 유대의 풍습으로 볼 때 세상을 떠나지도 않은 부모에게 유산을 요구하는 것은 유대인들의 전통과 상식으로는 용납할 수 없는 요구였습니다.
십계명의 제5계명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 했고, 출 21:17에는 "자기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했는데 죽지도 않은 아버지에게 유산을 요구하는 것은 아버지를 죽은 자로 취급하는 것으로 인정되어 죽임을 당할 수도 있는 행동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어떻게 합니까?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둘째만이 아니라 맏아들에게까지 나누어주었습니다.
그 뿐입니까? 아버지의 재산을 창기와 함께 삼켜버린 패륜아를 용서하고 받아준 것만도 큰 건데, 버선발로 달려가 맞이하고 송아지 잡아 잔치했습니다. 여기서 보여주는 메시지는 하나님은 좋으신 아버지십니다. 죄로 말미암아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을 버리지 않으시고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늘의 모든 것을 상속해주셨습니다. 그래서 막14:36에 예수님은 죽음을 앞에 두고 "아빠 아버지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만큼 절박한 순간에 좋으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큰 힘이 되십니다.
2. 부요의 아버지이십니다.
상속 받은 둘째가 그 돈을 가지고 먼 나라로 가서 허랑방탕하여 다 낭비하고 맙니다. 사업하다 실패한 것도 아니고 창기와 함께 허랑방탕하며 써버렸으니 이건 용서할 수 없습니다. 때 마침 흉년이 들어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에게 붙여 살면서 돼지를 치지만 배가 고파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그것마자도 주는 자가 없었습니다.
이 때 탕자의 마음속에 아버지가 생각났습니다. 17절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탕자가 어려울 때 생각나는 아버지는 풍족하신 아버지였습니다. 내 아버지 집에는 품꾼들조차 잘 먹고 잘 산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부요의 하나님이십니다. 학2:8에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시50:12에는 “세계와 거기에 충만한 것이 내 것임이로다” 했고, 전5:19에는 재물과 부요를 능히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라고 했습니다. 예수님도 부요하셨으나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고후8:9). 구제의 삶을 사셨습니다.
육신의 부모는 한계가 있습니다. 사업한다고 부모의 노후대책까지 가져가지 마십시오. 자녀들이 부모의 사랑을 받는 것이 습관화되어 부모가 기어 다녀도 부려먹는 자녀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는 마음껏 의지해도 됩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더 기뻐하십니다. 히11:6에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했습니다.
3. 회복의 하나님이십니다.
20-24절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
아버지는 돌아온 아들에게 제일 좋은 옷을 입혔습니다. 이것은 죄를 탕감해 주는 것뿐만 아니라 아들로서의 모든 권리를 회복시키는 행위입니다. 손에 가락지는 도장으로서 물질에 대한 권리를 의미합니다. 또 신을 신겼습니다. 이젠 아들이지 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들은 품꾼의 한 사람으로 봐달라고 했지만 아버지는 모두를 회복시켰습니다.
아들이 한 일은 아버지께로 돌아간 것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되 더 열심히 경외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심은 모든 것들이 결실을 맺여 30배 60배 100배가 됩니다. 그래야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지는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이도 합니다.
4. 아들의 권리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25-28절 “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이 왔을 때에 풍악과 춤추는 소리를 듣고 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 대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건강한 그를 다시 맞아들이게 됨으로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그가 노하여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
둘째에게 잘해줬더니 큰 아들이 시험에 들었습니다. 29-30절에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그러나 오해였습니다. 31-32절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큰 아들은 아버지의 부요가 넘치는데도 자기가 누려야 되는 줄도 모르고 품꾼처럼 살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가 아버지께로 돌아가리라.” 한 탕자의 결심은 그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시16:11에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했습니다. 하나님 앞의 삶이 중요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살자. 이것이 오늘 말씀의 핵심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살면 만사형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하나님을 좋으신 아버지, 부요의 아버지, 회복의 아버지로 믿고 날마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아버지의 은혜를 풍성히 누리는 가장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