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내 유년의 명절
출처 중앙일보 :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63829
나의 어린 시절 명절은 외가에 모여 떠들썩해지는 날이었다. 아이들은 오랜만에 만난 외사촌들과 눈을 반짝거리며 눈치껏 서열정리를 했다. 여자 어른들은 부엌에서 음식을 만드느라 부산했고 남자 어른들은 대청마루에서 술상을 놓고 담소를 나누었다. 그러다 무슨 말끝에 벌떡 일어나 언성을 높이는 이는 성질이 붙 같았던 나의 아버지였다. 그는 우리 형제들의 이름을 부르며 “가자!” 고함을 질렀다. 나는 맛있는 음식과 곧 생길 용돈이 날아갈 생각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엄마는 아버지가 그러거나 말거나 달관한 표정으로 능숙하게 전을 부쳤다. 아버지는 사업이 망한 후 다시는 재기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버지의 깊은 열등감은 높은 자존심과 비례했던 듯싶다. 사람 좋은 큰 이모부가 중재자로 나서서 “이 좋은 날, 마음 넓은 자네가 참게나” 하면 아버지는 못 이기는 척 자리에 다시 앉았다. 어릴 적 내가 바라본 나의 아버지는 그렇게 깊고 높고 넓었다. 큰소리가 나면서 잠시 조용했던 집안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다시 왁자지껄해졌다. 손이 큰 외할머니는 음식을 많이 해서 항상 어린 우리가 먼저 먹게 했다. 아이들이 배가 부르면 부엌을 드나들 일이 없었다.
손주들 먼저 음식 먹인 외할머니 잠든 날 깨워 단술 먹이던 할머니 명절이면 떠오르는 그리운 손맛 |
김지윤 기자
도심에 있던 외가와 달리 친가는 시골 깡촌에 있었다. 엄마는 친가에 발길을 끊은 이유가 부당한 시집살이 때문이었다고 토로했다. 과장되고 증폭된 이야기에서는 시어머니가 옛날 동화에 나오는 계모보다 더 악독한 인물로 그려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겐 다정한 할머니였다. 아버지는 엄마 대신 어린 내 손을 잡고 친가에 갔는데 아침 일찍 기차 타고 버스 타고 또 한참을 걸어야 했다. 다리가 아프다고 칭얼거리면 아버지의 등에 업혔다. 멀리 보이던 산등성이의 붉은 노을은 내 기억 속에 박제되었다. 외가의 음식이 고기와 전 위주의 동물성이라면 친가는 나물류와 다양한 김치 종류의 식물성이었다. 생선이 몇 토막 있기는 했지만, 양조간장과 조미료로 요리하는 외가와 달리 친가의 모든 음식은 집에서 담은 조선간장으로 조리되었다. 음식은 내게 너무 짜디짜서 혀를 쏙 빼물어야 했다. 평생 돈을 벌어본 적이 없는 큰아버지와 쫄딱 망한 아버지가 술상을 놓고 정치 이야기로 비분강개하면 나는 똑똑한 어른 남자들이 왜 돈을 못 버는지 의아했다. 친가는 큰엄마와 할머니가 농사를 지어 먹고 살았다. 친가 음식 중 유일하게 단맛을 낸 것은 할머니가 만든 감 말랭이와 식혜였다. 할머니는 식혜를 단술이라고 불렀는데 엿기름 내린 물을 아랫목에 묻었다가 밥알이 동동 뜨면 팔팔 끓였다. 할머니는 자는 나를 깨워서 뜨거운 단술을 마시게 했는데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아마 첫 단술을 어린 손녀에게 먼저 먹이려던 마음이었을 것이다. 생각하면 양가의 할머니가 내게 베푼 것은 사랑이었다.
우리 가족이 서울로 올라온 이후 명절은 우리끼리 보내야 했다. 여러 사유로 외가도 친가도 가지 못했다. 할머니들과 연결되던 나의 명절은 유년의 기억 속에 갇혀버렸다. 나이가 드니 이제 명절에 갈 곳이 없다. 부모 형제도 떠났고 제사를 지내는 풍습도 사라져서 경조사 때나 얼굴을 보던 사촌들과도 데면데면해졌다. 얼마 전 조카의 결혼식에서 만난 사촌은 명절에 함께 했던 어떤 기억도 떠올리지 못했다. 놀다가 나를 계단으로 밀어버린 일, 내 얼굴에 상처가 나서 할머니께 혼난 일, 누워있던 내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내밀던 일, 그 어느 것 하나도 기억하지 못했다. 그러나 할머니가 해주었던 음식이 나오자 대화가 활기를 띠었다. 왜 똑같이 만드는데 그 맛이 안 나올까? 미각은 감정을 담당하는 뇌 부위와 연결된다던데 우리가 변해서일까?
곧 추석이다. 나는 백석의 ‘여우난골족’을 읽다가 어린 시절이 그리워졌다.
“밤이 깊어가는 집안엔 엄매는 엄매들끼리 아르간에서들 웃고 이야기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웃간 한 방을 잡고 조아질하고 쌈방이 굴리고 바리깨돌림하고 호박떼기하고 제비손이구손이하고 이렇게 화디의 사기방등에 심지를 몇번이나 돋구고 홍게닭이 몇번이나 울어서 졸음이 오면 아릇목싸움 자리싸움을 하며 히드득거리다 잠이든다”
내 유년의 명절은 할머니들의 사랑이었다.
김미옥 작가·문예평론가
『행복이 넘치는 곳,
빛명상』
9월 빛역사
1994.09.15 매일신문 초광력 첫 언론보도 기사
1996.09.08 백지로 사라진 불꽃사진
1998.09. 창원성당에서의 공개 강연회
1998.09. D 약국 김 약사님의 치유
2009.09.03~09.07 코타키나발루 빛VIIT여행
2009.09.14 <행복순환의 법칙> 발간일
2011.09.18~09.28 유럽 빛여행(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코르티나담페초 성당의 오르간 소리(2011.09.21~22)
2011.09.26 향기와 빛명상이 있는 그림찻방 출간일
2013.09.26 박우현 교수의 빛만남
2015.09.28~10.09 라파엘 성모상
2019.09.06 국제침향협회(IAA) 사단법인 설립일
추석 보름달
개구쟁이 시절 동네 아이들과 달 따러 갔던 시절, 제각기 도구들을 갖고 뒷산으로 갔다. 지근이는 매미채를 제훈이는 마당 빗자루를 천덕이는 지게 작대기를 점집 부똘이는 색색의 천이 달린 긴 대나무를 이것도 저것도 없는 각설이 친구는 부지깽이를 끝순이는 연탄집게를 들고 나왔다. 허리춤에는 달을 따서 담겠다고 깡통을, 보자기를 꿰차고서 쌀자루에 신주머니도 밀가루 포대도 장바구니까지 끼어 있었다.
쫓다가 쫓아가다가 지쳐서 키가 더 크면 다시 따자 하고 산길을 내려온다. 개울을 만나 세수를 한다. 어어! 달이 개울에 빠져 있다. 달도 우리들에게 쫓기다가 지쳐 개울에 빠져 버렸네. 한순간 아이들은 좀 전까지 달 따야겠다는 마음들은 놓쳐버리고 어서 건져 하늘 드높이 올려주자 하고는 너나 할 것 없이 달을 건져낸다. 그리고 하늘을 바라본다. 그사이 개울에서 나온 달은 토끼까지 잡아갔다. 오늘까지 그 토끼는 방아를 찧으며 추석 차례를 준비한다.
요즈음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개구쟁이 시절에는
동네 아이들과 달 따러 갔지만
어른이 된 지금은
달을 품어 소원을 전한다.
보름달을 한 없이 바라보다
토끼가 절구를 찧는 모습이 비쳤다.
그런 상상은 어디에서 왔을까?
달을 빌어 소원을 전하고
달을 빌어 이야기를 짓는다.
한 번뿐인 삶
육체를 빌어 무엇을 지어야 할까?
출처 : 甲辰年 그림찻방3
빛향기와 차명상이 있는 그림찻방 3
2024년 6월 22일 초판 1쇄 P. 98-101
첫댓글 귀한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유년시절에 소중한 추억들이 평생을 사는데 큰 힘이 된다고 여겨지네요! 할머니와의 음식관련 사연은 누구에게나 있어 가끔 꺼내보며 박장대소를 할 때가 많습니다. 그림찻방에 수록된 추석 보름달을 읽으니 그 시절 순수했던 아이들의 모습은 이제는 다시는 볼 수 없는 명장면처럼 다가옵니다. 달이라는 자연의 대상을 통해 동심, 순수를 되찾고 내 안의 빛마음을 깨우는 귀한 시간을 선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감사드립니다.
어린시절 추억이 그리워집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추석 보름달" 참으로 정겨운 빛의 글
어릴적 그 시절의 참으로 행복하였던 모습을
소환하며 웃음 짓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련한 옛 추억이 떠올려지는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개구장이 시절 동네 아이들과 달 따러 갔던 정겨운 이야기~
달을 빌어 소원을 전하고 이야기를 짓는다~
한 번 뿐인 삶, 육체를 빌어 무엇을 지어야 할까?
귀한 빛글 마음에 담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명절, 누군가에겐 좋은 추억이고 누군가에겐 그렇지 않죠. 풍성한 추석 되십시요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어린시절의 추석달...빛책속의 귀한글 감사합니다^&^
귀한문장 차분하게 살펴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운영진님 빛과함께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정겨운 추석의 글 감사합니다
추억의 추석 이야기가 정겹습니다.
감사합니다.
귀한 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추석이 가까워 옵니다
추석은
마음 한켠에 남아있는
그리운 기억의 달빛 인 듯 합니다...
한 번뿐인 삶
육체를 빌어 무엇을 지어야 할까?
귀한빛글 감사합니다~*
어릴적 외 할머니께서 오렌만에 명절에 들러게되면 조그마한 옹기그릇을 앞에내놓으며 이것 먹어보라 하시며주시며 개암을 따두었다가 주시던 옛일이 떠오르네요.인자 하신외할머니생각이 떠오르네요.감사 합니다.
우리가 가졌던 유년시절의 아름다운 명절 추억이 앞으로 얼마나 더 전해질지 문득 생각나며 안타까워집니다만, 아마 그 때는 또 그 때대로 추억들이 있겠지요.가능하면 아름다운 추억을 많이 만들어주어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드립니다.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