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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9장 여불위의 이상한 투자 (1)
이제 진시황제(秦始皇帝)의 탄생에 대해 이야기할 때가 온 것 같다.
전국시대(戰國時代)는 치열하고 잔인한 싸움의 연속이긴 하였지만 사회적, 문화적, 사상적인 분야에 있어서는 그다지 삭막하지는 않았다.
살아남기 위해서인지 오히려 더 활기차고 진취적인 면을 보여주었다.
동양 사상의 꽃을 피운 백가쟁명(百家爭鳴)이 바로 그 증거라 할 수 있다.
상업 분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전국시대로 접어들며 소위 상인(商人)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한 곳에 머물며 장사하지 않았다.
오늘날의 무역이라고 할 수 있는 타국간의 물자 교류가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이제 웬만한 상인들은 각국을 넘나들며 대규모 교역을 성사시키는 것이 예사가 되었다.
자연 대상(大商)이 출현하게 되었고, 그들은 많은 이익을 남기기 위해 누구보다도 바쁘게 움직였다.
전국시대(戰國時代) 말기로 접어들면서 상인들이 가장 많이 모여드는 곳으로는 두 곳이 있다.
하나는 진나라 수도 함양(咸陽)이요, 다른 하나는 조나라 도읍인 한단(邯鄲)이었다.
특히 한단(邯鄲)은 중원 북방 한복판에 위치해 있어 얼마 전까지 중원 제일 도시인 임치성을 능가할 정도로 번창했다.
미녀들이 들끊었고, 거리마다 음식점과 술집 간판이 즐비했으며, 도시 중심가에 이르면 없는 물건이 없을 정도로 천하 물자의 집산지 역할을 담당했다.
- 진귀한 보물을 구하려면 한단(邯鄲)으로 가라.
이런 말이 나돌 정도로 한단성은 어느새 상인들에게 선망과 꿈의 도시가 되었다.
BC 261년이면 진소양왕 46년이다.
장평(長平) 전투가 일어나기 꼭 1년 전이다.
꿈의 도시 한단(邯鄲) 거리에 한 사내가 나타났다.
나이도 젊고 몸집이 컸으며 눈은 부리부리했다.
호복기사(胡服騎射)가 되기 위해 한단을 찾아온 젊은이인가?
아니다.
사내의 이름은 여불위(呂不韋).
천하 제일의 거상(巨商)이 되는 것이 꿈인 청년 상인이었다.
그에 대한 신상 명세를 <사기>에서 빌려보자.
여불위, 양적(陽翟) 땅 사람으로 대상이다.
일찍이 여러 곳을 다니면서 싸게 사서 비싸게 팔아 천금(千金)의 재산을 모았다.
그가 주로 다루는 품목은 골동품이나 유서 깊은 보물, 그릇, 술잔 등이었다.
고도(古都)에서 골동품을 구입하여 신흥 도시에 내다 팔곤 했다.
그 해 봄, 거리를 거닐고 있는 여불위(呂不韋)는 한단에 처음 온 것은 아니었다.
벌써 수십 번째로 한단성 안에 집도 마련해놓았다.
그러나 그의 본거지는 고향인 양적이다.
양적(陽翟)은 지금의 하남성 우현 일대를 말한다.
한때 한나라의 도읍이기도 했으나 이 무렵에는 조(趙)나라 영토로 편입되어 있었다.
수없이 들락거리는 한단이었지만 올 때마다 번창해가는 거리의 모습에 여불위(呂不韋)는 눈을 휘둥그레 뜰 뿐이었다.
'어지러울 지경이군.'
사방을 둘러보는 중에 무엇인가에 세차게 부딪쳤다.
그는 넘어질 듯 비틀거렸으나 곧 몸의 중심을 잡았다.
"뭐야?"
험악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보았을 때 한 젊은 사내가 눈앞에 서 있었다.
"미안합니다."
사내는 공손히 사죄했다.
비단옷을 입은 것으로 보아 제법 신분이 높은 집안의 자제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어딘지 모르게 궁색해보였다.
옷과 관(冠)도 몹시 낡았다.
사내는 거듭 고개를 숙여 사죄한 후 인파 사이로 사라져갔다.
순간, 청년 실업가 여불위(呂不韋)는 그 사내의 뒤를 밟기 시작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사내의 얼굴이 꽤나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백옥 같은 얼굴에 주홍빛 입술, 귀인의 상(相)이었다.
그러나 그 때문에 여불위(呂不韋)가 그 사내의 뒤를 쫓은 것은 아니었다.
'어쩐지 슬프다.'
그랬다.
잠깐 사이에 본 그 사내의 표정은 적막한 슬픔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것이 여불위의 호기심을 끌었다.
'귀족의 자제인 것만은 분명한데......'
그의 짐작은 맞았다.
사내는 시장 거리를 가로질러 큰길을 따라 한창 걷다가 저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큰 집 안으로 사라져 들어간 것이었다.
하지만 역시 지금은 몰락한 귀족인가?
대문도, 담도 낡고 퇴색했다.
'누구 집일까?'
한 번 일어난 호기심과 궁금증은 좀처럼 가라앉질 않았다.
마침 그 근처에 사는 사람인 듯한 노인 하나가 지나갔다.
여불위(呂不韋)는 노인을 붙잡고 물었다.
"혹 저 집이 누구의 집인지 아십니까?"
"알다마다요. 진왕(秦王)의 왕손 이인(異人)이 사는 집이라오."
노인은 묻지도 않았는데 계속해서 이인의 내력에 대해 설명했다.
8년 전인가 9년 전이었다.
진소양왕(秦昭襄王)은 조혜문왕을 위협하기 위해 민지 땅에서 회담을 연 적이 있었다.
그때 인상여(藺相如)가 조혜문왕을 수행해 민지(澠池)로 나가 기지와 담력으로 진소양왕의 위협을 멋지게 물리쳤다.
뿐만 아니라 진소양왕의 아들인 안국군(安國君)의 자식 하나를 인질로 데려오기까지 했다.
그 인질로 데려온 안국군의 아들이 바로 이 저택의 주인인 이인(異人)이라는 것이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소년 티가 물씬 났는데, 어느새 저렇듯 청년으로 성장했구려. 생각해보면 불쌍한 일이오. 할아버지는 천하를 호령하는 진왕(秦王)이요, 아버지 안국군(安國君)은 진나라 세자인데 그 손자요 아들인 이인(異人)은 저렇듯 여기서 볼모 노릇을 하고 있으니.....매일 거리로 나가 무작정 돌아다닐 만도 하지요."
노인의 혀를 차는 소리를 듣는 동안 여불위(呂不韋)는 깊은 상념에 잠겼다.
'진왕의 손자에 다음에 왕위에 오를 안국군의 아들이라........!'
안국군(安國君)은 원래 진나라 세자는 아니었다.
그 위로 형이 있었는데, 얼마전까지만 해도 그가 세자였다.
그런데 그는 위(魏)나라에서 볼모 생활을 하다가 병에 걸려 죽었다.
위나라는 그 시체를 진(秦)나라에 돌려보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도세자(悼世子)라고 부르고 있다.
그 2년 후 진소양왕(秦昭襄王)은 둘째 아들인 안국군을 세자로 책봉하여 후계자 수업을 시키기 시작했다.
안국군(安國君)으로서는 행운이라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왕손 이인(異人)은........?'
여기까지 생각한 여불위(呂不韋)의 머릿속은 갑자기 바빠졌다.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이야말로 기화(寄貨)로다. 능히 사둘 만하지 않은가?"
이 말은 너무나 유명한 말이다.
기화(奇貨)란 보기드물게 뛰어난 물건이라는 뜻이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현재로서는 돈이 되지는 않으나 잘 가꾸면 엄청난 가치를 지니게 되는 물건을 말함이다.
일반 사람에게는 전혀 상품의 가치가 없다.
그러나 안목이 있는 사람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보물이다.
- 사둘 만하다.
어쨌거나 이 날의 여불위(呂不韋)와 왕손 이인(異人)의 우연한 마주침은 이후 두 사람의 운명을 완전히 바꾸어놓게 된다.
🎓 다음에 계속.............
< 출처 - 평설열국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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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
연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