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주말]남녀갈등조장?세금 도둑?십자포화 맞는여성가족부,폐지가답일까/☆여가부 폐지 공약, 대선 판도에 영향 줄까?

[보라토끼]

★남녀 갈등 조장? 세금 도둑? 십자포화 맞는 여성가족부, 폐지가 답일까

[아무튼, 주말] 대선정국에 불붙은
여가부 폐지 논란

“여성가족부를 그대로 두는 건 예산 낭비 아닌가요? 양성 평등 시대라면서 왜 여성을 보호해야 할 사회적 약자로 만드는지 모르겠어요. 사회적 약자라해도 보건복지부에서 전담하는 게 낫죠.”

지난 13일 서울 신촌에서 만난 고유찬(19)씨는 여성가족부(이하 여가부)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이날 인터뷰한 10~30대 남성 10명 중 6명은 여가부 폐지에 찬성했다. 3명은 “관심 없다” ”잘 모른다”고 답했고, “아직 폐지는 이르다”는 소수 의견도 있었다. 최근 유승민 전 의원, 하태경 의원 등 국민의힘 대권 주자들이 ‘여성가족부 폐지’를 대선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폐지 여론이 다시 불붙었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도 “여성을 절대 소수자로 몰아놓고 캠페인 하는 방식은 15~20년의 시행착오면 됐다”고 가세했다.

일러스트=유현호

◇여성가족부는 세금 도둑?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여가부 폐지 관련 청원이 수백 개가 쌓여 있다. 그중 “세금 도둑인 여성가족부 폐지를 청원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은 1500명의 동의를 얻었다. 청원자는 “과도한 여성인권 정책으로 인해 남녀 갈등만 심화하고 남녀평등 대신 남성 혐오와 여성 우월주의가 실현되고 있다”면서 여성가족부 예산을 각 부처로 나눠달라고 주장했다. 인도네시아 현지 여성을 위한 ODA(공적개발원조) 사업(연간 5억여원), 국립여성사박물관 건립(올해 예산 3억) 사업도 예산 낭비라는 비판을 받았다.

2021년 여가부 예산을 살펴보면 총 1조2325억원 중 7375억원이 가족, 2422억원이 청소년, 1234억원이 권익, 982억원이 여성 관련 사업에 쓰인다. 여성가족부라기보다 가족여성부라 해도 될 만큼 가족 관련 예산이 많다. 가족 예산에는 한부모가족 아동 양육 지원(3126억원), 아이돌봄 서비스(2607억원) 등이 포함됐다. 불법 영상물을 감시하고 삭제를 돕는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 운영과 경력단절여성 취업 지원도 여성가족부의 주요 업무다.

◇주무 부처에 맡겨라?

여가부 폐지를 주장하는 정치인들도 위 같은 사업의 필요성은 인정한다. 하지만 보육은 보건복지부가, 디지털 성범죄 예방은 경찰청이, 경력단절여성 지원은 고용노동부가 맡는 게 효과적이라는 입장이다. 대학원생 주모(31)씨는 “여가부의 대부분 사업이 다른 부서와 연계돼 있는데 차라리 전문성 있는 다른 부처가 주도권을 쥐고 추진하면 되지 않느냐”면서 “괜히 여가부를 따로 둬 불필요한 성별 갈등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여가부는 “성 평등의 관점에서 새로운 정책을 발굴하는 기능이 있다”고 반박한다. 김대중 정부 시절이었던 2001년 여성부가 신설된 이래로 지난 20년간 여가부의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여성계 숙원이던 호주제 폐지를 이끌어냈고 성폭력·가정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해바라기센터 설립, 직장 내 성희롱 신고 및 구제 절차 법제화, 학교 밖 청소년 지원 체계 마련 등 기존에 없던 정책을 개발해왔다. 연간 약 6만 가구가 이용하고 있는 아이 돌봄 지원 사업과 직장 내 어린이집·육아휴직을 활성화시킨 가족친화기업 인증제도도 대표적인 성과로 꼽힌다.

박근혜 정부 시절 여가부 차관을 지낸 이복실 세계여성이사협회 한국지부 회장은 “고정 업무만으로도 바쁜 대형 부처에선 미혼모나 성폭력 피해자, 학대 아동 등 사각지대를 발견하기 쉽지 않다”면서 “부처 전체가 의지를 갖고 추진해도 될까 말까인데 지금 코로나에 매달려 있는 보건복지부가 성 평등 정책을 주요 업무로 추진할 수 있겠나”라고 했다.

유승민 전 의원은 대통령이 되면 여가부를 폐지하고 대통령 소속 양성평등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공약했다. 이 전 차관은 “김대중 정부 때도 대통령 소속 여성특별위원회로 운영해봤지만, 위원회는 국무회의 의결권도 없고 법안 발의에도 한계가 있어 결국 부처 형태로 돌아갔다”고 했다. 그는 또 “죄명조차 생소했던 직장 내 성희롱 신고 시스템과 피해 절차를 법제화한 것이 여성부였다”며 “일하는 엄마의 관점에서 필요한 정책을 고민했기 때문에 양육 공백이 발생했을 때 아이돌보미가 찾아가는 아이 돌봄 서비스도 만들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정영애 여가부 장관도 14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그동안 고용노동부에서 다루지 않았던 경력단절여성 문제, 보건복지부에서 살피지 못했던 미혼모·미혼부 등 한부모가족 문제를 여가부에서 발굴했다고 반박했다. 정 장관은 “경단녀 문제, 한부모 가족정책, 양육비 이행법 등 기존 복지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던 것들이 바로 여가부의 사업 영역”이라고 했다.

◇잇따른 헛발질에 추락한 신뢰

그럼에도 여가부를 향한 여론은 싸늘하다. 지난 9~10일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 결과 성인 남녀 1014명 중 48.6%가 여가부 폐지에 찬성했다. 남성은 59.1%, 여성은 38.3%가 찬성했다. 실제로 만난 남성들 다수는 여가부 산하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양평원) 교육 영상 논란을 폐지의 근거로 들었다. 지난해 양평원이 올린 ‘잠재적 가해자의 시민적 의무’라는 영상에서 나윤경 당시 원장이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보는) 의심을 기분 나빠하기보다는 자신은 나쁜 남성들과는 다른 사람임을 증명하며 노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한 발언이 문제가 됐다. 20대 남성 김건탁씨는 “저출산이 심각한 우리나라에서 남녀 갈등만 조장하고 있다”고 했다.

남성이지만 여가부 폐지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서울 관악구에 사는 최모(34)씨는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하는 정책이다 보니 성과가 눈에 띄게 드러나진 않겠지만 여가부 지원이 절실한 사람도 있지 않겠나”라고 했다.

실제로 여가부 혁신행정담당관 신경식 과장은 “여가부 예산 중 80%가 가족·청소년 관련 예산이며 남녀 모두가 정책 대상에 포함된다”면서 “여가부 직원 중 약 35%는 남성 직원이고 성폭력 피해자나 한부모 가족, 다문화 가족 지원 사업에서 남성들도 지원받고 있다”고 해명했다. 여가부는 여성 단체 출신들만 일한다는 오해에 대해서도 “대다수가 행안부·인사처를 통해 공식 선발된 직원들이다. 일부 경력 채용은 정부 부처 전체에 있는 제도”라고 말했다. 양평원 영상 등 잇따른 논란에 대해선 “좀 더 정교하고 섬세하게 정책을 추진하겠다. 젠더 갈등 통합과 정책 신뢰 회복을 위해 청년들 목소리를 듣겠다”고 답했다.

여가부에 대한 신뢰가 추락한 시점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추행 사건이었다. 뒤늦게 낸 입장문에서 피해 여성을 ‘고소인’으로 지칭한 데다 이정옥 전 여가부 장관은 “수사 중인 사건”이라며 침묵했다. “여성을 대변하지 못하는 여성가족부가 무슨 쓸모가 있느냐” “여성가족부가 아니라 ‘여당가족부’다” 등의 비판이 쏟아졌다. 고 박원순 시장 성추행 피해자의 법률대리인인 김재련 변호사는 페이스북에 “여성계 인사들의 권력화가 결국 여성가족부 폐지 논의에 힘을 실어준 것”이라고 비판 글을 썼다.

하지만 김 변호사는 여가부 폐지에는 반대했다. 여가부 권익증진국장을 지낸 그는 “몇 가지 사건에서 여가부가 타이밍을 놓치고 미약한 목소리를 낸 건 아쉽지만, 그렇다고 수많은 성폭력·가정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여가부 업무 전체가 의미 없다고 볼 순 없다”면서 “여전히 각 부처에 나눠져 있는 성 평등 관련 업무를 총괄할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다”고 했다. “여가부가 정치화됐던 측면은 있죠. 여가부 스스로 어떻게 폐지론까지 나오게 됐는지 비판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고 혁신 방안과 장기 로드맵을 내놓는다면 접점을 좁혀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경제학자 우석훈 박사는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성별 임금 격차 1위”라면서 “20대 때는 몰라도 결혼, 출산 후 여성 임금이 급격히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여가부가 영원히 존재해야 할 부처라곤 생각하지 않지만, 남녀 임금 격차(33%)가 다른 나라 수준인 20%도 안 되는 상황에서 폐지는 이르죠. 학교에서 여성이 약진하고 노동 참여 속도도 급격히 빨라지다 보니 정서적 반감이 생길 순 있겠지만, 사회 평균치로 봤을 땐 비정규직의 성별 임금 격차나 지방에서의 성별 격차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습니다.”

◇여가부 대신 양성평등부?

폐지는 신중히 접근해야 하지만 조직 개편은 고려해 볼만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정책 추진 기구가 설립된 국가는 2008년 170국에서 2015년 191국으로 늘었다. 여성·성평등 정책을 추진하는 장관급 부처·기구가 있는 나라도 97국에 달한다. 대신 여성을 보호 대상으로 여기기보다 남성과 여성을 동시에 고려하는 양성평등 정책으로 방향이 바뀌면서 기관명에 ‘여성’ 대신 ‘젠더’나 ‘양성평등’의 키워드를 포함하는 국가가 증가하는 추세다. 여성 직장인 백모(29)씨는 “여성만 가족을 돌보는 것도 아닌데 ‘여성’과 ‘가족’을 붙여놓아 구식처럼 보인다”면서 “늘어나는 1인 가구까지 포용할 수 있는 새로운 명칭이 필요하지 않을까”라고 했다.

조경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는 “여가부는 20년간 여성의 사회 참여를 이끌고 성 평등 관점에서의 가족 정책을 내놓으면서 여성 권익을 높이는 데 기여해왔다”면서 “지금까지 여가부가 수행한 기능이 1기 버전이었다면, 갈등을 통합하고 양성평등 관점에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2기 버전으로 넘어가는 전환점이 온 듯하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행정학 교수 역시 “정부 조직은 대부분 국방·외교처럼 기능 중심으로 만들어지는데, 공백으로 남아있는 사각지대를 채우기 위해 국가보훈처나 여가부처럼 대상 중심의 부처를 보충적으로 꾸리는 것”이라면서 “공무원 채용시험에서 여성 채용 목표제를 양성평등 채용 목표제로 바꿔 남성 수혜자가 나왔듯이, 남성 중심의 문화나 제도를 개선하면서 장기적으로 양성평등부로 개편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만하다”고 했다

★여가부 폐지 공약, 대선 판도에 영향 줄까?

[아무튼, 주말] “이낙연 지지율 반등에 女心 작동”
“이대남 구애 전략 계속될 것”

문민 정부가 들어선 14대 대선부터 지난 19대 대선까지 여성 표심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후보를 결정짓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해왔다.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선거인 수도 여성이 남성보다 많고, 실제 표를 행사하는 비율도 18대 대선부터는 여성이 더 높아지고 있다. 최근에는 2030 여성들의 정치적 결집력이 커지면서 선거 판도에 영향을 미쳐왔다.

지난 9일 서울 영등포구에서 열린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 규탄’ 기자회견 모습. /연합뉴스

실제로 대선 출구 조사와 선거 직전 예측 조사 결과 문재인, 박근혜, 이명박, 김영삼 대통령 등 당선된 후보를 지지하는 비율이 남성보다 여성이 더 높았다. 후보 각각의 남녀 지지율은 문재인(39.1%·42.0%), 박근혜(49.1%·51.1%), 이명박(50.6%·51.0%), 김영삼(34.2%·44.5%)으로 나타났다. 특히 18대 대선에서는 남성에게 1순위 지지(49.8%)를 받은 문재인 후보 대신, 여성에게 1순위(51.1%)였던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됐다.

가장 최근 선거인 19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60대 미만 모든 연령층에서 여성의 투표율이 높았다. 그중 격차가 가장 큰 연령층은 25~29세로, 남자 71.1% 여자 79.0%의 투표율을 보였다. 선거권을 가진 사람은 남자가 2102만명(49.5%), 여자가 2141만명(50.5%)이었고, 실제 투표한 사람 비율도 여성(77.3%)이 남성(76.2%)보다 높았다. 18대 대선도 마찬가지로 여성(76.4%)의 투표율이 남성(74.8%)보다 높았다.

그렇다면 최근 쟁점으로 떠오른 여성가족부 폐지, 할당제 폐지 같은 일부 대선 후보의 공약은 여성 표심에 어떤 영향을 줄까? 최근 ‘선거로 읽는 한국 정치사’를 펴낸 김현성씨는 “최근 이낙연 후보가 넉 달 만에 20%대 지지율을 보이며 반등하고 있는데, 여가부 폐지 이슈에 자극받은 여성 유권자들의 정치적 반응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며 “반여성적 공약을 계속 부각할 경우 얻을 건 이대남(20대 남성)이요, 잃을 건 그 외 전부가 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진 국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젠더 갈등 상황에서 20대 남성은 소외감, 불만이 쌓여 강한 폭발력을 지닌 집단”이라며 “오세훈 서울시장과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 당선에 20대 남성이 기여한 것으로 볼 때 이대남을 등에 업기 위한 공약은 계속 나오리라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