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령은 커피통의 뚜껑을 열어 보고 한숟갈 밖에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불 위의 커피 포트를 들어 흙바닥에 반쯤 버리고 나이프로 통 속을 긁었다. 녹이 섞인 가루 커피의 마지막 찌끄러기가 포트 속으로 떨어졌다.
순진하고 자신 있는 기대에 찬 태도로 돌 난로 곁에 앉아 커피가 끓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이 대령은 버섯이나 역한 나리꽃이 창자 속에 뿌리를 내리는 것 같은 감정을 경험하였다. 10월이었다. 이 비슷한 많은 아침을 견디어 낸 그로서도 참으로 견디어 내기 어려운 아침이었다. 마지막 내란(內亂)이 끝난 후 줄곧, 그러니까 거의 60년 동안이나 대령은 그저 기다리기만 하였다. 10월은 이 기다림 속에 와 준 얼마 안되는 것 중의 하나였다.
그가 커피를 들고 침실로 들어서는 것을 보고 아내는 모기장을 쳐들었다. 간밤에 천식의 발작이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졸리운 상태였다. 그러나 그녀는 잔을 받기 위해 일어나 앉았다.
[당신은?] 하고 그녀가 말했다.
[난 마셨소.] 하고 대령은 거짓말을 하였다. [한숟가락은 실히 남았던 걸.]
그 순간 종이 울리기 시작하였다. 장례식이 있다는 것을 대령은 잊고 있었다. 아내가 커피를 마시는 사이 그는 그물 침대(해먹)의 한끝을 내려서 도어 뒤의 한끝으로 말아 붙였다. 아내는 죽은 이를 생각하였다.
[그는 1922년에 태어났어요.] 하고 그녀는 말하였다. [우리 아들보다 꼭 한달 후였어요. 4월 7일.]
가빠하는 숨소리 사이사이로 그녀는 커피를 계속 홀짝홀짝 마셨다. 그녀는 빳빳하게 굽은 등골 위에 얹힌 하잘 것 없는 흰 덩치에 불과했다. 그녀의 가빠하는 숨소리가 그녀의 질문을 단정조로 들리게 하였다. 커피를 다 마셨을 때도 그녀는 여전히 죽은 이 생각을 하였다.
[10월에 묻힌다는 것은 끔찍할텐데.] 하고 그녀는 말하였다. 그러나 남편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창을 열었다. 10월이 안뜰에도 진주해 와 있었다. 강렬한 초록색으로 터져나온 초목과 구더기들이 진흙 속에 만들어 놓은 조그만 동산을 바라보며 대령은 다시 창자 속에서 고약한 달을 감촉했다.
[뼛속까지 축축한걸.] 하고 그는 말하였다.
[겨울인걸요.] 하고 부인은 말하였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서부터 양말을 신고 자라고 줄곧 말했잖아요.]
[벌써 일주일째 양말을 신고 자고 있소.]
비는 부슬비였으나 끊임없이 내렸다. 대령은 털 담요를 뒤집어쓰고 다시 그물침대로 들어가고 싶었다. 그러나 계속 들려오는 깨진 종소리가 그에게 장례식을 상기시켜 주었다.
[10월이요] 하고 소근거리는 소리를 하고 그는 방 한복판으로 걸어갔다. 그제서야 그물침대 다리에 매어 놓은 수탉 생각이 났다. 그것은 싸움닭이었다.
찻잔을 주방으로 갖다 놓은 다음 그는 거실의 조각된 나무상자 속에 들어있는 기둥시계의 태엽을 감아 주었다. 천식 환자의 숨쉬기를 위해서는 너무나 비좁은 침실과는 달리 거실은 널찍하였고 커버를 씌우고 또 석고 고양이가 있는 식탁가에는 네 개의 단단한 흔들의자가 놓여 있었다. 시계가 걸린 맞은 편 벽에는 장미꽃은 실은 배속에서 미소년들에게 둘러싸인 망사옷을 입은 여인의 그림이 걸려 있었다.
태엽을 감아주고 나니 7시 20분이었다. 그는 수탉을 주방으로 가지고 가 스토브 다리에 매어 놓고 양철통 속의 물을 갈아 주었다. 그리고 그 옆에 한줌의 밀을 놓아주었다. 한 떼의 꼬마들이 울타리 개구멍으로 들어왔다. 꼬마들은 수탉 곁에 둘러 앉아 잠자코 수탉을 지켜 보았다.
[그 짐승을 그만 쳐다 보려므나] 하고 대령은 말하였다. [그렇게 자주 쳐다보면 수탉 닳는다.]
꼬마들은 꼼짝 않았다. 그 중 한 녀석이 하모니카로 유행가의 곡조를 불기 시작하였다.
[오늘은 그걸 불지 말아라.] 하고 대령은 그에게 일렀다. [시내에서 초상이 났다.] 꼬마는 악기를 바지 호주머니에 집어 넣었다. 대령은 장례식 옷차림을 위해 침실로 들어갔다.
아내의 천식 때문에 그의 흰 양복은 다림질이 되어 있지 않았다. 그는 그래서 결혼 후 특수한 경우에만 입었던 낡은 검정색 양복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좀이 슬지 않도록 나프탈렌을 끼워 신문지에 싸서 넣은 그 양복을 트렁크 바닥에서 찾아 내기에는 꽤나 힘이 들었다. 침대에 몸을 뻗고 여인은 아직도 죽은 이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벌써 아구스틴을 만나 봤을 거예요.] 하고 그녀는 말혀였다. [아마 그 아이가 죽은 후 우리가 놓여있는 처지를 그에게 얘기하지는 않을 거예요.]
[지금쯤 그들은 아마도 수탉 얘기를 하고 있을 거요.] 하고 대령은 말하였다.
그는 트렁크 속에서 굉장히 큰 낡은 우산을 찾아 냈다. 대령의 일단을 위한 자금을 모으기 위해서 열렸던 추첨식 판매장에서 그의 아내가 탄 우산이었다. 바로 그날밤 그들은 비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중단되지 않은 옥외 쇼를 구경하였다. 대령, 그의 아내, 그리고 그들의 아들 아구스틴 -당시엔 여덟살이었다-은 그 우산을 쓰고앉아서 끝까지 쇼 구경을 하였다. 이제 아구스틴은 죽었고 화려한 빛깔의 새틴천 우산엔 좀이 슬고 있었다.
[우리의 곡마단 광대 우산이 어떻게 됐나 보오.] 하고 대령은 늘 쓰던 옛 말투로 말하였다. 그의 머리 위로 조그만 쇠살대로 엮어진 신비로운 조직이 펼쳐졌다. [이젠 그저 별을 헤어 보는 데나 쓸모가 있겠구려.]
그는 미소지었다. 그러나 부인은 우산을 쳐다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매사가 그저 그런 투에요.] 하고 그녀는 소근거렸다. [우리는 산 채로 썩고 있어요.] 그리고 그녀는 죽은 이만을 골똘히 생각할 수 있도록 눈을 감았다.
손어림으로 면도를 하고 난 뒤 -그에겐 퍽 오래 전부터 거울이 없었다- 대령은 잠자코 옷을 입었다. 거의 긴 속내의처럼 다리에 꼭 끼는 그의 바지는 발목께서 나비 매듭끈으로 매어져 있고, 콩팥께에 꿰매놓은 두 개의 도금한 버클에 끼운 같은 재료의 어깨끈으로 허리께에 올라와 있었다. 그는 혁대를 매지 않았다. 낡은 마닐라 종이 빛깔에 똑같이 빳빳한 그의 와이셔츠느 구리 장식단추로 끼우게 되어 있는데 이 장식단추는 동시에 분리식 칼라를 붙여두는 구실을 했다. 그러나 분리식 칼라가 째져 있어서 대령은 넥타이를 맬 생각을 단념하였다.
그는 마치 굉장한 일이라도 하듯이 각개 동작을 하였다. 그의 손의 뼈는 목의 살갗처럼 흰 반점이 나있는 팽팽한 반투명의 살갗으로 덮여 있었다. 에나멜 가죽 구두를 신기 전에 그는 실밥에 묻어있는 마른 흙을 긁어 냈다. 그의 아내는 자신들의 결혼식날과 같은 옷차림을 한 순간의 남편을 보았다. 그때야 비로소 남편이 퍽이나 늙었다는 사실을 역력히 보게 되었다.
[특별한 행사를 위해 정장을 한 것처럼 보이는구려.] 하고 그녀가 말하였다.
[이 장례는 특별한 행사지.] 하고 대령이 말했다. [우리가 여러해 만에 처음으로 갖게 된 자연사(自然死)란 말이오.]
9시가 지나자 날이 개었다. 대령이 막 나가려는데 그의 아내가 그의 코우트 자락을 잡았다.
[머리를 빗어요.] 그녀가 말했다.
그는 각제(角製) 빗으로 빳빳한 강철색 머리카락을 눌러두려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헛된 수고였다.
[내 모습이 영락없이 앵무새꼴이겠는걸.] 하고 그가 말하였다.
부인은 그를 살펴 보았다. 그렇지는 않다고 그녀는 생각하였다. 대령은 앵무새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는 마치 너트나 볼트로 관절을 이어놓은 것 같은 단단한 뼈대의 바짝 마른 위인이었다. 눈의 생기 때문에 허례허식에 잦어있는 것 같이 보이지는 않았다.
[그런대로 괜찮아요.] 하고 그녀는 인정하였다. 남편이 방을 나서는데 그녀는 덧붙였다.
[우리가 혹 끓는 물을 퍼붓지나 않았는지 의사에게 물어봐요.]
그들은 시내 한끝의 종려잎새로 이엉을 했고 회반죽이 떨어져 나가는 집에서 살고 있었다. 습기는 여전하였으나 비는 그쳤다. 대령은 집들이 바짝 붙어 있는 골목길을 따라서 광장 쪽으로 갔다. 큰길을 들어서면서 그는 몸을 떨었다. 눈길이 닿는 데까지 시내에는 꽃이 깔려 있었다. 자기집 대문간에 앉아서 상복을 입은 여인네들이 장례 행렬을 기다리고 있었다.
광장에서는 다시 부슬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당구장 주인이 당구장 문에서 대령을 보고 두 팔을 벌리며 소리쳤다.
[대령님, 기다리세요. 우산을 빌려 드릴테니까!]
대령은 돌아보지 않은 채 대답하였다.
[고맙소. 이대로 괜찮소.]
장례 행렬이 아직 교회에서 나오지를 않았다. 검은 넥타이에 흰옷을 입은 사내들이 나즈막한 대문간에서 우산을 쓴 채 얘기를 하였다. 그 중 한 사내가 광장의 물웅덩이 사이로 껑충껑충 뛰는 대령을 보았다.
[이리로 들어오시오!] 그가 소리쳤다.
그는 우산 밑으로 자리를 만들었다.
[고맙소, 친구.] 하고 대령은 말하였다.
그는 그 초대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죽은 이의 모친에게 조의를 표하기 위해 곧장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제일 먼저 감지한 것은 서로 다른 많은 꽃 향기였다. 이어서 후텁지근한 열기가 일었다. 대령은 침실 속까지 빽빽한 사람들 사이를 뚫고 나아가려 하였다. 그러나 누군가가 대령의 등에 손을 얹고 방 뒤켠으로 그를 밀어서 난감한 표정들이 늘어선 사이를 지나 깊숙하고 탁 트인 죽은 이의 콧구멍이 보이는 곳으로 이르게 하였다.
종려 잎새로 짠 부채로 관(棺)에서 파리를 쫓으며 거기 죽은 이의 모친이 있었다. 검정 옷을 입은 일단의 여인들이 강의 흐름을 지켜보는 것과 똑같은 표정으로 시체를 골똘히 바라보았다. 느닷없이 한 음성이 방 뒤켠에서 들렸다. 대령이 한 여인을 제치고 죽은 이의 모친 옆모습을 마주보고 그녀의 어깨 위에 손을 얹었다.
[얼마나 애통하십니까.] 하고 그는 말하였다.
그녀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그녀는 입을 벌리고 신음소리를 냈다. 대령은 놀랐다. 그는 갑자기 떨리는 소리로 고함치는 무형의 군중에 의해서 시체 쪽으로 밀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는 두 손으로 무엇을 단단히 잡으려고 하였으나 벽을 찾지 못하였다. 시체가 있던 자리에 다른 시체들이 놓여 있었다. 누군가가 그의 귀에 대고 아주 부드러운 목소리로 천천히 말하였다. [대령님, 조심하시오.] 그는 고개를 마구 돌렸고 죽은 이와 맞바로 얼굴을 마주쳤다. 그러나 그는 그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죽은 이가 빳빳하면서도 활기찼고 또 두손에 나팔을 들고 흰 옷을 걸친 것이 자기처럼 어리둥절해 보였기 때문이다. 숨 돌릴 길을 찾아 대령이 고함소리 위로 고개를 들었을 때 그에게는 닫힌 관이 벽 쪽으로 허물어지는 꽃의 비탈을 따라 문 쪽으로 튀어가는 게 보였다. 그는 진땀이 났다. 관절 마디마디가 쑤셨다. 잠시 후 그는 거리로 나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부슬비가 눈꺼풀을 쳤기 때문이다. 그때 누군가가 그의 팔을 잡고 말하였다.
[빨리 와요. 이렇게 내가 기다리고 있지 않아요.]
그는 죽은 아들의 대부(代父)인 사바였다. 정치적 박해를 모면하고 시내에 계속 살고 있는 그의 일당의 유일한 지도자였다. [고맙소, 친구.] 라고 대령은 말하였다. 그리고 말없이 우산 아래서 걸음을 옮겼다. 악대가 장송곡을 연주하였다. 대령은 트럼펫이 빠져 있음을 알고 처음으로 죽은 이가 죽었다는 것을 확신하였다.
[가엾은 이 같으니라구.] 하고 그는 중얼거렸다.
사바는 목청을 가다듬었다. 그는 우산을 왼손으로 돌고 있었고, 손잡이가 머리께까지 올라와 있었다. 대령보다 키가 작았기 때문이다. 행렬이 광장을 떠났을 때 그들은 얘기를 시작하였다. 그러자 사바는 대령을 향해 쓸쓸한 표정을 짓고 말하였다.
[친구, 수탉은 어찌 되었수?]
[어련히 집에 있지.] 하고 대령은 대답하였다.
바로 그 순간에 고함소리가 들렸다.
[저 죽은 이를 데리고 어디로 간담?]
대령은 눈을 들었다. 그는 시장(市長)이 활달한 자세로 바라크의 발코니에 서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프란넬 셔츠를 입고 있었고 면도를 하지 않은 볼은 부어 있었다. 악사들은 장송곡을 중단하였다. 잠시 후 대령은 안젤 신부가 시장에게 고함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우산 위를 두들기는 빗소리 사이로 그들의 대화를 알아 들었다.
[어쩌자는 거죠?] 사바가 물었다.
[뭐, 별 것 아니야.] 하고 대령은 대답하였다. [장례 일행이 경찰 바라크 앞을 통과할 수 없다는 거지.]
[잊고 있었군.] 하고 사바가 소리쳤다. [우리가 게엄령 하에 있다는 것을 나는 언제나 잊어버린단 말이야.]
[그러나 이것은 반란이 아니야.] 하고 대령이 말하였다. [가엾게도 악사가 죽은 것이지.]
행렬은 방향을 바꾸었다. 빈민가에서는 여인들이 말없이 슬픔을 깨물면서 행렬이 지나가는 것을 지켜 보았다. 그러더니 그들은 거리 한복판으로 나와서 칭송과 감사와 작별의 고함소리를 질렀다. 마치 관 속의 죽은 이가 그들에게 귀기울이고 있음을 믿는 것 같았다. 대령은 묘지에서 성치가 못하였다. 죽은 이를 운반하는 사람들에게 길을 비켜주려고 사바가 대령을 담 쪽으로 밀고 그에게 미소진 얼굴을 돌렸을 때 그는 굳어 있는 얼굴을 보았다.
[왠 일이오, 친구?] 사바가 물었다.
대령은 한숨을 쉬었다.
[10월이야.]
그들은 똑같은 거리로 해서 돌아갔다. 날은 개어 있었다. 하늘은 아주 파랬다. 비가 더 오지는 않겠군, 하고 대령은 생각하였다. 기분이 훨씬 좋아졌다. 그러나 여전히 풀이 죽어 있었다. 사바가 그의 생각을 중단시켰다.
[의사한테 가보도록 하라구.]
[난 병이 아니야.] 하고 대령은 말하였다. [10월이 되면 창자 속에 짐승들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것이 문제지.]
[아.] 하고 사바는 말하였다. 그는 자기집 대문간에서 작별인사를 하였다. 쇠창살 창문이 달린 이층의 새건물이었다. 대령은 양복을 벗어야겠다고 조바심하며 집으로 향하였다. 잠시 후 그는 커피 한 통과 수탉에게 줄 옥수수 반 파운드를 사기 위해 길모퉁이의 상점으로 다시 나갔다.
목요일에는 그물침대 속에 누워 있고 싶었지만 대령은 수탉을 돌보았다. 며칠동안이나 날이 개이지 않았다. 2주일 동안에 뱃속의 식물이 꽃을 피웠다. 천식을 앓는 아내의 허파의 거센 소리에 시달리어 그는 며칠밤이나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러나 10월은 금요일 오후에 휴전(休戰)을 허용하였다. 아구스틴의 친구들 -그처럼 양복집의 직공들이며 또 닭 싸움의 팬이었다-은 때를 놓치지 않고 수탉을 점검하였다. 수탉은 좋은 상태였다.
아내와 단둘이 되자 대령은 침실로 돌아갔다. 아내는 회복이 되어 있었다.
[뭐라고들 해요?] 그녀가 물었다.
[아주 열심들이야.] 하고 대령은 알려 주었다. [저 수탉에 돈을 걸려고 모두들 돈을 아껴두고 있소.]
[저렇게 흉칙한 수탉의 무엇을 보고 그러는지 모르겠구려.] 하고 부인은 말하였다. [내게는 기형처럼 보여요. 발에 비해, 머리가 너무 작아요.]
[이 지역에선 제일 가는 놈이라는 걸.] 하고 대령은 대답하였다. [50페소는 실히 나가요. 비밀 문서를 배포한다고 해서 닭싸움터에서 9개월전에 사살(射殺)당한 아들의 유산인 수탉이었다. [값비싼 환상이에요.] 하고 여인은 말하였다. [옥수수가 없어지면 우리는 우리의 간을 떼어 멕여야 할 거요.] 골방에서 흰 즈크 바지를 찾는 사이 대령은 오랫동안 곰곰이 생각하였다.
[그저 몇 달만 참으면 되오.] 그는 말하였다. [1월에 싸움이 있으리라는 것을 벌써 알고 있잖소. 그땐 더한 값으로 팔 수가 있을 거요.]
바지는 다림질을 해야 했다. 여인은 석탄불에 달군 두 개의 다리미와 바지를 스토브 위에 펼쳤다.
[왜 그렇게 빨리 나가려고 그러우?]
[우편물 때문이오.]
[오늘이 금요일인 줄을 깜빡 잊었었군.] 하고 침실로 돌아가면서 그녀는 말을 했다. 대령은 옷차림을 했으나 바지는 입지 않았다. 그녀는 그의 구두를 눈여겨 보았다.
[그 구두는 이제 다 됐어요.] 하고 그녀는 말하였다. [에나멜 구두를 신도록 해요.]
대령은 서글퍼졌다.
[그건 고아 구두 같아 보여.] 하고 그는 항변하였다. [그 구두를 신을 때마다 고아원을 뛰쳐나온 도망꾼 같은 느낌이오.]
[우리는 우리 아들의 고아란 말이에요.] 부인의 말이었다.
이번에도 또 그녀가 그를 설복시켰다. 똑딱선의 기적이 울리기 전에 대령은 항구를 향해 걸어갔다. 에나멜 구두, 혁대 없는 흰 즈크 바지, 구리단추로 목 께서 잠궈진 분리용 칼라가 없는 와이셔츠. 그는 시리아인 모세의 상점에서 똑딱선들이 독에 들어가는 것을 지켜 보았다. 여덟시간 동안 꼼짝 못해서 밧빳해진 나그네들이 배를 내렸다. 늘 같은 사람들이었다. 주문 맡으러 다니는 외교원이거나, 전주일에 떠났다가는 여느때처럼 돌아오는 이 고장 사람들이었다.
마지막 배가 우편선이었다. 대령은 괴로운 불안을 안고 우편선이 독에 들어오는 것을 바라 보았다. 배의 굴뚝에 매여있고 또 유포(油布)로 덮어 씌운 우편낭이 지붕에 보였다. 15년간의 기다림이 그의 직관을 날카롭게 해주었다. 수탉은 그의 불안을 날카롭게 해주었다. 우체국장이 우편선에 올라가 우편낭을 풀고 그것을 어깨에 들어 메는 순간부터 대령은 줄곧 그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는 항구와 평행을 이룬 거리, 가지각색 상품이 진열되어 있는 상점과 매점이 있는 미로(迷路)를 따라서 줄곧 그를 지켜보았다. 그럴 때마다 대령은 공포와는 다르지만 공포와 마찬가지로 가슴 답답한 불안을 경험하였다. 의사가 우체국에서 신문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집에서 혹 끊는 물을 퍼붓지 않았는지를 집사람이 알고 싶어 한다우.] 하고 대령은 말하였다.
그는 윤기나는 검정 머리카락이 머리를 덮고 있는 젊은 의사였다. 그의 흠없는 치아에는 믿기 어려운 구석이 있었다. 그는 천식 환자의 안부를 물렀다. 대령은 우체국장에게서 눈길을 떼지 않고 자세한 보고를 해주었따. 우체국장은 편지를 조그만 방에다 구분해 넣었다. 그의 게으른 동작이 대령의 울화를 돋구었다.
의사는 신문 다발과 우편물을 받았다. 그는 약품광고의 소책자를 한편에 놓았다. 그리고는 사신(私信)을 훑어보았다. 그러는 사이 우체국장은 나와 있는 사람들에게 우편물을 건네 주었다. 대령은 알파벳의 자기 글자에 해당하는 칸막이는 지켜보았다. 파란색 테두리가 있는 항공 편지 한통이 그의 초조함을 더해주었다.
의사는 신문을 개봉하였다. 대령이 조그만 상자에 눈길을 주고 우체국장이 그 앞에서 멈추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이 의사는 주요 기사를 읽었다. 우체국장은 멈추지 않았다. 의사는 신문읽기를 중단하였다. 그는 대령을 바라보았다. 이어 그는 전건(電鍵) 앞에 앉아 있는 우체국장을 바라보고 다시 대령을 바라보았다.
[이제 우린 갑니다.] 하고 그가 말하였다.
우체국장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대령님에게 온 것은 없어요.] 하고 그는 말했다.
대령은 창피한 느낌이 들었다.
[무얼 기다린 건 아니오.] 하고 그는 거짓말을 하였다. 그는 아주 어린애 같은 표정으로 의사에게 고개를 돌렸다.
[아무도 내게 편지를 보내지 않는다우.]
그들은 말없이 돌아갔다. 의사는 신문에 골똘하고 있었다. 대령은 늘 그렇듯이 잃어버린 동전을 찾으려고 되돌아가는 사람의 걸음걸이였다. 눈부신 오후였다. 광장의 편도(扁桃) 나무들이 마지막 남은 썩은 잎새를 떨구고 있었다. 의사네 집 대문에 이르렀을 때 날은 어두워지기 시작하였다.
[뭐 새소식은 없어요?] 하고 대령이 물었다.
의사는 그에게 신문을 몇 장 주었다.
[누가 아나요.] 하고 그는 말하였다. [검열관이 인쇄를 허용하는 행간(行間) 사이의 뜻을 읽어내기는 어렵거든요.]
대령은 중요 제목을 읽었다. 국제 정세 4단을 가로지른 톱기사는 수에즈운하 소식이었다. 제1면은 돈을 치른 부고(訃告) 광고로 메꾸어지다시피 하였다.
[선거의 가망은 없군.] 하고 대령은 말하였다.
[고지식한 생각 마세요, 대령님.] 의사가 말하였다. [우리는 이제 너무 늙어 메시아를 기다릴 처지가 아닙니다.]
대령은 신문을 돌려주려고 했으나 의사가 뿌리쳤다.
[댁에 가지고 가세요.] 하고 그는 말하였다. [오늘밤에 읽고 내일 돌려 주세요.]
7시가 지나자 얼마 안 있어 종탑의 종이 검열관의 영화 등급 매긴 결과를 울려 주었다. 안젤 신부는 이 기회를 이용해서 매일 그가 우편으로 받고 있는 분류표에 의거해서 영화의 도덕적 분류 결과를 알렸다. 대령의 아내는 종소리 열 둘을 세었다.
[누구에게나 보아서는 좋지 않은 거군요.] 하고 그녀는 말하였다. [벌써 1년째 누구에게나 좋지 않은 영화뿐이었지.]
그녀는 모기장을 내리고 중얼거렸다. [세상이 썩었어.] 그러나 대령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눕기 전에 그는 수탉을 침대 다리에 묶어 놓았다. 그는 집안을 잠그고 침실에 살충제를 뿌렸다. 이어 그는 바닥에 램프를 내려 놓고, 그물침대를 걸고 신문을 읽기 위해 누웠다.
그는 광고까지 포함해서 첫 장에서 마지막 장까지 날짜 순서로 신문을 읽었다. 11시에 통행금지를 알리는 트럼펫이 울렸다. 반시간쯤 후 대령은 신문읽기를 끝내고 캄캄한 밤으로 통하는 앞뜰로 난 문을 열고 모기에 둘러 싸여서 벽 샛기둥에다 대고 오줌을 누었다. 그가 침실로 돌아갔을 때 아내는 깨어 있었다.
[제대 군인에 대한 소식은 없어요?] 하고 그녀가 물었다.
[없오.] 하고 대령은 말하였다. 그는 그물침대로 들어가기 전에 램프를 껐다. [처음에는 적어도 새 연금(年金) 대상자의 명단을 발표했었지. 이제 5년째 아무 소식이 없구려.]
자정이 지나자 비가 내렸다. 대령은 가까스로 잠이 들었으나 이내 내장 때문에 놀라 잠이 깨었다. 그는 지붕 한 곳이 새고 있음을 알았다. 귀에까지 모포 담요를 뒤집어 쓰고 그는 어둠 속에서 새는 곳을 찾으려고 하였다. 차가운 땀방울이 등골을 타고 내렸다. 신열이 났다. 그는 젤리를 가뜩 담은 큰 통의 동심원(同心圓) 속에서 떠돌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가 말을 하였다. 대령은 그의 혁명군 간이침대에서 대답을 하였다.
[누구하고 얘기하는 거유?] 그의 아내가 물었다.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의 막사에 호랑이로 위장하고 나타났던 영국인이오.] 하고 대령은 대답하였다. 그는 열에 몸이 달아 오르며 그물침대에서 돌아 누웠다. [그는 말보르 공작이었소.]
새벽녘엔 하늘이 개었다. 미사를 알리는 두 번째 신호에 그는 그물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수탉이 꼬꼬대는 소리 때문에 동요된 어리둥절한 현실 속에 앉았다. 그의 머리는 아직도 동심원 속에서 맴돌고 있었다. 그는 구역이 났다. 그는 앞뜰로 나가 겨우 들리는 속삭임 소리와 겨울의 캄캄한 냄새를 뚫고 변소로 향하였다. 함석 지붕의 조그만 목조 변소의 내부는 지린내 때문에 캄캄하였다. 대령이 변기 뚜껑을 올리자 파리떼가 삼각형의 구름 모양 변기통 속에서 몰려 나왔다.
그것은 허위 경보였다. 잘 다듬지 않은 널빤지로 된 변기 위에 쪼그리고 앉은 그는 마려웠던 것이 꺾이는 것 같은 불안을 느꼈다. 압박감이 가시고 소화관(消化管)이 은근히 아파왔다. [틀림없어.] 하고 그는 중얼거렸다. [또 10월인게야.] 그는 다시 순진하고 자신있는 기대에 찬 태도를 하였고 마침내 내장 속의 버섯도 잠잠히 가라앉았다. 그러자 그는 수탉이 있는 침실로 돌아갔다.
[간밤에 열이 있어서 헛소리를 하던데요.] 하고 아내가 말하였다.
그녀는 일주일이나 걸렸던 발작에서 회복하였고 방을 치우기 시작하였다. 대령은 기억을 되살리려 애썼다.
[열 때문이 아니었어.] 하고 그는 거짓말을 하였다. [다시 거미줄에 관한 꿈을 꾸었던 거요.]
늘 그랬듯이 부인은 발작에서 회복되면서 정신력은 더 왕성해졌다. 아침나절에 그녀는 집안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그녀는 시계와 어린 소녀의 그림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의 위치를 바꾸어 놓았다. 그녀는 깡마르고 단단해서 검은 드레스의 단추를 모두 끼우고 천슬리퍼를 신고 걸을 때면 벽을 뚫고 걸을 수 있는 힘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12시가 되기 전에 그녀는 전의 몸집과 사람 무게를 회복하였다. 누워 있을 때 그녀는 텅 빈 공간에 지나지 않았다. 이제 양치류(羊齒類)와 베고니아의 화분 사이로 돌아 다니는 그녀는 온통 집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아구스틴의 죽음이 일년을 넘겼다면 노래라도 시작할텐데.] 열대(熱帶) 지방이 생산할 수 이는 온갖 먹을 것이 토막으로 잘린 채 끓고 있는 냄비를 휘저으며 그녀는 말하였다.
[노래가 하고 싶으면 해보구려.] 하고 대령이 말하였다. [울화 풀이로 좋을테니.]
점심 후에 의사가 왔다. 대령과 아내가 주방에서 커피를 들고 있는데 의사가 거리로 난 대문을 열고 소리쳤다.
[다들 죽었나요?]
대령은 일어나서 그를 맞았다.
[그런 것 같군요.] 라고 하며 대령은 거실로 들어 갔다. [선생의 시계는 독수리에 시간을 맞춘다고 난 늘 말했지요.]
부인은 검사 준비를 하기 위해서 침실로 갔다. 의사는 대령과 함께 거실에 남아 있었다. 무더웠으나 의사의 티없는 린넬 양복은 새것 냄새를 풍겼다. 준비가 다 되었다고 부인이 알렸을 때 의사는 봉투 속에 든 석장의 종이를 대령에게 건네 주었다. [그게 어제 신문이 내지 못한 소식입니다.] 하고 말하며 그는 침실로 들어갔다.
대령이 가정했던 대로였다. 그것은 비밀 회람을 위하여 등사된 국내 사건의 요약이었다. 국내에 있어서의 무력항쟁의 상태에 관한 폭로였다. 그는 패배한 느낌이 들었다. 비밀 기사를 읽어 온 장구한 세월도 다음 달의 소식보다 더 놀라운 소식이 없다는 것을 그에게 가르쳐 주지 못하였다. 의사가 거실로 들어왔을 때 그는 읽기를 마쳤다.
[이 환자는 나보다도 더 멀쩡한 걸요.] 하고 의사는 말하였다. [그 정도의 천식이라면 난 백살까지는 살 수 있을 겁니다.]
대령은 의사를 노려보았다. 그는 말없이 봉투를 건네주었으나 의사는 그것을 받지 않았다.
[돌리세요.] 하고 그는 소근대듯 말하였다.
대령은 봉투를 바지 호주머니에 찔렀다. 부인이 침실에서 나오며 말하였다. [인제 내 죽게 되면 아주 지옥까지 끌고 가겠어요, 의사선생.] 의사는 말없이 이빨의 에나멜질(質)을 드러내 보였다. 그는 의자를 조그만 탁자 쪽으로 당기고 자기 가방에서 몇 가지 무료 샘플의 단지를 끄집어 내었다. 부인은 곧장 주방으로 들어갔다.
[기다리세요, 커피를 데울 테니까.]
[그만두세요.] 하고 의사가 말하였다. 그는 처방전에 적절한 투약량을 적었다. [나를 독살할 기회는 절대 안 드립니다.]
그녀는 주방에서 웃었다. 쓰기를 마치자 의사는 큰소리로 처방을 읽었다. 자기 글씨를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대령은 정신을 집중시키려고 애썼다. 주방에서 돌아온 부인은 대령의 얼굴에서 전날밤의 상흔을 발견하였다.
[오늘 새벽 저이는 고열이 있었어요.] 하고 부인은 남편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내란에 관해서 두시간 동안이나 횡설수설 했어요.]
대령은 깜짝 놀랐다.
[그건 고열이 아니었소.] 하고 대령은 평정을 되찾으며 우겼다. [그리고 난 병이 나면 당장 그날로 쓰레기통 속으로 투신자살 할 거요.]
그는 신문을 찾으러 침실로 들어갔다.
[말씀 고맙습니다.] 하고 의사가 말하였다.
두 사람은 함께 광장 쪽으로 걸었다. 공기는 건조하였다. 가로의 코울타르가 더위로 녹기 시작하였다. 의사가 작별인사를 했을 때 대령은 이를 악물고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치료비가 어떻게 되나요, 의사선생?]
[현재로서는 없어요.] 하고 의사는 말하고 대령의 어깨를 가볍게 쳤다. [수탉이 이기면 두둑한 계산서를 보내 드리죠.]
대령은 비밀 편지를 아구스틴의 동료들에게 갖다 주기 위하여 양복점으로 갔다. 그곳은 그의 동료 빨치산들이 살해되거나 시내에서 추방되고 난 후에 또 금요일마다 우편물을 기다리는 것밖에 할 일이 없는 사람이 되고 난 후에 그가 들릴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다.
오후의 무더위는 부인의 기운을 돋구어 주었다. 닳아빠진 옷가지가 담긴 상자 옆에 놓인 베고니아 꽃 가운데 앉아서 그녀는 다시 무(無)로부터 새옷을 찾조해 영원한 기적을 마련하고 있었다. 옷소매로 칼라를 만들었고 등과 네모진 천으로 커프를 만들었다. 서로 다른 색깔의 천조각을 붙이긴 했으나 아주 완전하였다. 매미 한 마리가 앞뜰에서 울었다. 해가 기울었다. 그러나 그녀는 해가 베고니아꽃 너머로 지는 것을 보지 못하였다. 대령이 집에 돌아 온 땅거미 무렵에야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이내 두손으로 자기 목을 꼭붙들고 손가락을 꺾어 보고 말하였다.
[내 머리는 판자처럼 빳빳해요.]
[그건 늘 그랬잖소.] 하고 대령은 말했다. 순간 그는 아내의 몸뚱이가 갖가지 색깔의 천으로 덮여있는 것을 보았다. [마치 까치 같구려.]
[당신에게 옷을 입히기 위해서는 반은 까치 노릇을 해야 해요.] 하고 그녀는 말하였다.
그녀는 칼라와 커프만을 빼고서는 세 가지 색깔의 천으로 마련된 와이셔츠를 펼쳤다. 칼라와 커프만은 같은 색이었다. [사육제때 그저 윗도리만 벗으면 십상이겠어요.]
여섯시를 알리는 종이 그녀의 말을 중단시켰다. 침실을 향해 가며 그녀는 [주님이 성모 마리아에게 고하셨다.]고 큰 소리로 기도 하였다. 대령은 방과후에 수탉을 구경하러 온 아이들에게 얘기를 하였다. 그러자 이튿날 몫의 옥수수가 없다는 게 생각나 침실로 들어가 아내에게 돈을 달랬다.
[오십 센트가 남아 있을 뿐인 게요.] 하고 부인이 말하였다.
그녀는 손수건에 싼 그 돈을 매트리스밑에 간수하였다. 그것은 아구스틴의 재봉침이 올린 수입이었다. 아홉달 동안 부부는 그들 자신의 필요와 수탉의 필요로 쪼개어 그 돈을 한 푼 한 푼 써왔다. 이젠 이십센트짜리 두 개와 십센트짜리 하나가 남아 있을 뿐이다.
[옥수수 1파운드를 사요.] 하고 부인은 말하였다. [거스름돈으로 내일 먹을 커피와 치이즈 4온스를 사고요.]
[그리고 출입구에 매달아 놓은 금박코끼리도.] 하고 대령이 이었다. [옥수수만 가지고도 42센트요.]
두 사람은 잠시 생각하였다. [수탉은 동물이니 기다려도 될 거에요.] 하고 부인이 먼저 입을 떼었다. 그러나 남편의 표정이 그녀로 하여금 다시 생각을 하게 하였다. 대령은 팔꿈치를 무릎께 대고 손아귀에 든 동전을 짤그랑거리며 침대 위에 앉아 있었다. [나 때문에가 아니오.] 하고 잠시 후에 남편이 말하였다. [그저 내게만 달려 있는 것이라면 당장 오늘밤에라도 수탉찜을 해먹겠소. 오십페소 짜리를 먹어치우면 소화가 안된들 어떻겠소.]그는 목에 앉은 모기를 잡기 위해 멈췄다. 이어 그의 눈은 부인을 따라 실내를 돌았다.
[마음에 걸리는 것은 저 불쌍한 아이들이 돈을 모으기 때문이오.]
그러자 그녀는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살충제 분무용기를 가지고 한바퀴를 완전히 돌았다. 대령은 그녀의 태도가 어쩐지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상의를 하기 위해 집안 유령이라도 불러들이는 것 같았다. 마침내 그녀는 분무용기를 조각무늬가 있는 벽로장식 위에 올려 놓았다. 그리고 자기의 시럽색 눈에 고정시켰다.
[옥수수를 사요.] 하고 그녀는 말하였다. [어떻게 꾸려갈지 모르겠어요.]
[이건 빵이 마구 늘어나는 기적이구려.] 하고 대령은 다음 주일 동안 식탁에 앉을 때마다 되풀이해서 말하였다. 꿰매고 바느질하고 고쳐 깁는 놀랄만한 그녀의 능력을 가지고 그녀는 돈없이 가정 경제를 꾸려가는 열쇠라도 찾아낸 듯 하였다. 10월이 그 휴전을 연장시켰다. 습기가 가시고 졸음이 대신하였다. 구리빛 태양의 위로를 받으며 부인은 사흘 오후를 복잡한 머리단장에 바쳤다. 어느날 오후 부인이 이 빠진 빗으로 긴 하늘색 머릿단의 매듭을 짓고 있을 때 대령은 말하였다. [장엄 미사가 시작되었군.] 이틀째 되는 오후 무릎에 흰 보자기를 펴놓고 앞뜰에 앉아 그녀는 고운 빗을 사용해서 천식발작 중에 마구 늘어난 이를 가려냈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라벤다 향수로 머리를 감고 그것이 마르기를 기다려서 베레모로 눌러 두뭉치로 목덜미 위에 말아 올려놓았다. 대령은 기다렸다. 밤에는 그물침대 위에서 잠 못 이룬 채 몇 시간이고 수탉의 운명을 근심하였다. 그러나 수요일에 그들의 수탉은 상태가 양호하였다.
같은날 오후 아구스틴의 동료들이 수탉의 승리가 갖다줄 상상 속의 수익금을 헤아리며 집을 나섰을 때 대령도 좋은 상태라고 느꼈다. 그의 아내가 그의 머리를 깎았다. 두 손으로 머리를 매만지며 대령은 말하였다. [내게서 이십년은 떼어 냈구려.] 그의 말이 옳다고 그의 아내는 생각하였다.
[몸이 성할 때면 사자(死者)도 되살릴 수 있어요.] 하고 그녀는 말하였다.
그러나 그녀의 확신은 겨우 몇 시간 계속되었을 뿐이었다. 집안에는 시계와 그림을 제외하고선 팔아먹을 것이라곤 이미 없었다. 목요일밤 더할 수 없이 궁해졌을 때 부인은 상황에 관한 우려를 표명하였다.
[걱정 말아요.] 하고 대령은 그녀를 위로하였다. [내일은 우편이 오는 날이오.]
그 이튿날 그는 의사의 진료실 앞에서 똑딱선을 기다렸다.
[비행기는 참 놀라운 물건이오.] 하고 대령은 그의 눈길을 우편낭에 둔 채 말하였다. [그 하루밤 사이에 유럽에 갈 수 있다는 군요.]
[그래요. 하고 그림이 맑은 잡지로 부채질을 하면서 의사가 말하였다. 대령은 똑딱선 속으로 뛰어들 수 있도록 독킹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일단의 사람들 가운데서 우체국장을 찾아냈다. 우체국장이 맨 먼저 뛰었다. 그는 선장에게서 백납으로 봉한 봉투를 받았다. 그러자 그는 꼭대기 쪽으로 올라갔다. 우편낭은 두 개의 드럼통 사이에 매어 있었다.
[하지만 그건 위험이 따르지요.] 하고 대령은 말하였다. 그는 우체국장을 시야에서 놓쳤으나 다시 과자·음료 손수레의 갖가지 색깔의 병 사이에서 그를 보았다. [인류란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서는 진보할 수 없는 거니까.]
[지금 단계에서조차 그건 똑딱선보다 한결 안전합니다.] 하고 의사가 말하였다. [2천 피이트 상공에서는 날씨와는 관계없이 비행해요.]
[2천 피이트라고요.] 하고 대령은 그 숫자가 의미하는 바를 상상할 수 없어서 그냥 곤혹스럽게 되풀이 하였다.
의사는 흥미있어 하는 기색이었다. 그는 두 손으로 잡지를 펴서 그것이 아주 까딱도 하지 않을 때까지 펴고 있었다. [아주 까딱도 않지요.] 하고 그는 말하였다.
그러나 대령은 우체국장의 거동을 끈기있게 보고 있었다. 대령은 그가 왼손에 유리잔을 들고 거품나는 분홍색 음료를 마시는 것을 보았다. 오른 손에는 우편낭을 들고 있었다.
[또 바다에는 야간 비행기와 계속적으로 접촉하고 있는 정박중의 배가 있어요.] 의사가 말을 이었다. [많은 예비책을 갖추고 있어 그것은 똑딱선보다도 안전합니다.]
대령이 그를 바라보았다.
[자연 그것은 양탄자 같겠군.] 하고 그는 말하였다.
우체국장이 곧장 그들에게로 왔다. 대령은 봉해진 봉투 위에 적힌 이름을 읽으려고 물리칠 수 없는 초조감에 사로잡혀 뒷걸음질 쳤다. 우체국장이 우편낭을 풀었다. 그는 의사에게 신문다발을 주었다. 이어 그는 사신(私信)이 든 봉투를 뜯고 인수물이 정확한가를 확인해 보고 편지의 수취인의 이름을 읽었다. 의사는 신문지 다발을 뜯었다.
[여전히 수에즈운하가 문제군.] 하고 그는 주요 제목을 읽으며 말하였다 [서방측 후퇴.] 대령은 제목을 읽지 않았다. 그는 자기의 위를 억제하려고 노력하였다.
[검열 실시 이후로 신문들은 그저 유럽 얘기뿐이란 말이야.] 하고 그는 말하였다. [최선책은 유럽사람들이 이쪽으로 오고 우리가 유럽으로 가는 것이야. 그래야 자기 나라에서 무슨 일이 일아나고 있는가를 알게 되지.]
[유럽사람들에겐 남미란 콧수염이 있고 기타와 총을 가진 사람이지요.] 하고 신문을 보며 웃으면서 의사가 말하였다. [그들은 문제를 이해하지 못해요.]
우체국장은 그의 우편물을 나누어주었다. 그는 나머지를 우편낭 속에 집어 넣고 다시 그것을 받았다. 의사는 사신(私信) 두 개를 읽을 참이었으나 봉투를 뜯기 전에 그는 대령을 보았다. 이어 그는 우체국장을 바라보았다.
[대령님에겐 없어요?]
대령은 깜짝 놀랐다. 우체국장은 우편낭을 번쩍 들어 어깨에 메고 층계참을 내려서며 고개도 돌리지 않고 대답하였다.
[아무도 대령님에게 편지를 안 씁니다.]
보통 때와는 달리 대령은 곧장 집으로 가지 않았다. 그는 아구스틴의 동료들이 신문지를 넘기는 동안 양복점에서 커피 한 잔을 마셨다. 그는 속은 듯한 느낌이었다. 빈손으로 그날밤 아내를 대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그는 할 수만 있다면 다음 금요일까지 그곳에 머무르고 싶었다. 그러나 양복점이 닫혔을 때 그는 현실을 직면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아내는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 것도 없어요?]
[없소.] 대령은 대답했다.
그는 다음 금요일에 다시 똑딱선으로 갔다. 그리고 매주 금요일마다 그랬듯이 기다리던 편지를 갖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왔다. [우린 이제 기다릴 만큼 기다렸어요.] 하고 아내는 그날 저녁 그에게 말하였다. [십오년 동안이나 편지를 기다린다는 것은 당신 경우처럼 황소의 끈기예요.] 대령은 신문을 읽기 위해 그물침대로 들어갔다.
[우린 우리 순서를 기다려야 하오.] 하고 그는 말하였다. [우리 번호는 1823번이오.]
[우리가 기다리기 시작한 이후에 그 숫자는 두 번이나 복권에 당첨됐어요.]
대령은 평소에처럼 광고까지 포함해서 첫장에서 끝장까지 신문을 다 읽었다. 그러나 이번엔 골똘히 정신을 집중시키지 않았다. 읽으면서 그는 자기의 군인연금에 관해서 생각하였다. 19년전 의회가 법안을 통과시켰을 때 그는 자기의 청구권을 증명하는데 8년이 걸렸다. 이어서 연금 수혜자 명부에 자기 이름을 기입하는 데 6년이나 걸렸다. 그것이 대령이 받은 마지막 편지였다.
통행금지 나팔소리가 난 뒤에야 그는 신문읽기를 마쳤다. 램프불을 끄러 갔을 때 그는 아내가 깨어있음을 알았다.
[아직 그 문서 클립을 보관하고 있소?]
부인은 생각하였다.
[네. 딴 서류와 함께 넣어두었어요.]
그녀는 모기장 밖으로 나와 날짜 순설 배열해서 고무 밴드로 묶어둔 편지 꾸러미를 옷장의 목제 서랍에서 끄집어내었다. 그녀는 군인연금에 대한 조속한 수속을 약속한 법률사무소의 광고를 찾아내었다.
[변호사를 바꾸어 보도록 당신을 납득시키려 내가 허비한 시간에 그 돈을 써버릴 수도 있었던 건데.] 하고 부인은 신문지 오려둔 클립을 건네 주며 말하였다. [그 사람들이 인디언 문제를 보류해 두었듯이 우리 문제를 처박아 두어 아무런 결과도 못 얻고 있는 거라우.]
대령은 2년 전 날짜의 오려둔 것을 읽었다. 그는 도어 뒤에 걸려있는 상의의 호주머니에 그것을 찔렀다.
[문제는 변호사를 바꾸는데 돈이 든다는 것이오.]
[그렇지 않아요.] 하고 부인은 단호한 어조로 말하였다. [그들이 연금을 받게 되면 연금에서 원하는 액수를 공제하도록 편지를 하면 되는 거요. 그래야 이 건을 맡는단 말이우.]
그래서 토요일 오후에 대령은 그의 변호사를 만나러갔다. 변호사는 한가히 그물침대 뒤에 누워 있었다. 위턱에 두 개의 송곳니만 있는 거구의 흑인이었다. 변호사는 나무창이 달린 슬리퍼에 발을 꿰고 먼지 앉은 자동 피아노로 통하는 사무실 창을 열었다. 악보를 놓도록 되어있는 옷엔 관보(官報)에서 오려다가 부기장부에 붙여 놓은 것, 회계 고시 등을 뒤범벅으로 모은 것 등이 마구 처박아져 있었다. 건반없는 자동피아노가 책상 대용을 하였다. 변호사는 회전의자에 앉았다. 대령은 방문의 목적을 알리기 전에 자기 불안감을 표명하였다.
[며칠 사이에 끝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은 미리 알려 드렸잖아요.] 대령이 말을 멈추었을 때 변호사가 말하였다. 그는 무더위 속에서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는 의자를 뒤쪽으로 조정하고 광고 팜플릿으로 부채질을 하였다.
[저의 대리인은 초조하게 굴지 말라고 자주 편지는 보내옵니다.]
[그렇게 해서 15년이 되었어요.] 하고 대령은 대답하였다. [이건 뭐 거세한 수탉 얘기 같아지는 걸요.]
변호사는 행정상의 상세점을 도식적으로 설명해주었다. 그의 볼품없이 늘어진 궁둥이에는 의자가 너무 작았다. [15년 전에는 훨씬 일이 쉬었습니다.] 하고 그는 말하였다. [당시엔 양측 정당의 당원이 낀 시 재향군인회가 있었거든요.] 그의 허파는 숨막히는 공기로 가득 찼고 그는 마치 방금 그것을 발명이라도 한 것처럼 말을 하였다.
[수가 많아야 힘이 세지요.]
[이 경우엔 그렇지도 않았어요.] 하고 대령은 말하였다. 자기의 외로움을 처음으로 깨달으며 말하였다. [내 동료들은 모두 편지를 기다리다가 죽었소.]
변호사의 표정은 바뀌지 않았다.
[법안이 너무 늦게 통과되었던 겁니다.] 하고 그는 말하였다. [누구나 대령님처럼 스무살에 대령이 될 만큼 운이 좋았던 것은 아니었으니까요. 게다가 특별 자금배정이 안 되어서 정부는 예산을 조정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언제나 같은 소리였다. 대령은 그의 말에 귀기울일 때마다 말없는 분노를 느꼈다. [이건 자선을 베풀어달라는 게 아니란 말이요.] 하고 대령은 말하였다. [이건 우리에게 호의를 베풀어달라는 게 아니란 말이오. 우리는 공화국을 구하기 위해 등뼈를 부러뜨렸단 말이오.]
변호사는 두 손을 들었다.
[세상이 그렇습니다.] 하고 그는 말하였다. [사람의 배은망덕(背恩忘德)이란 끝이 없습니다.]
대령은 그 얘기도 알고 있었다. 2백명의 혁명군 장교에게 여비보조와 보상금을 정부측에서 약속하였던 니어랜디아 조약(條約)이 체결된 이튿날부터 들어온 얘기였다. 니어랜디아의 거대한 판야나무 밑에서 주둔한 채 대부분 학교를 중퇴한 청소년으로 구성되었던 혁명군 1개 대대는 석달 동안을 기다렸다. 그 다음 그들은 각자의 여비로 귀향을 했고 고향에서 기다리기를 계속하였다. 거의 60년이 지난 후에도 대령은 여전히 기다리고 있었다.
이러한 기억에 흥분이 되어 그는 초월한 태도를 취하였다. 그는 오른손을 자기 넙적다리-신경조직을 꿰매놓은 뼈다귀에 지나지 않았다-에 올려놓고 중얼거렸다.
[난, 조처를 취하기로 결정했소.]
변호사는 기다렸다.
[예컨대?]
[변호사를 바꾸기 위한.]
새끼 오리들이 졸졸 따르는 어미 오리가 사무실로 들어왔다. 변호사는 오리를 내몰기 위해 바로 앉았다. [좋으신 대로 하시구려, 대령님.] 하고 짐승을 쫓으며 그가 말하였다. [원하시는 대로 하세요. 내가 만약 기적을 낳을 수 있다면 이런 헛간 앞뜰에 살겠습니까.] 그는 앞뜰로 난 도어에 목제 살창문을 질러 놓고 의자로 돌아왔다.
[내 아들녀석은 평생 일을 했어요.] 하고 대령은 말하였다. [내 집은 저당이 잡혀 있어요. 그리고 퇴직연금법은 변호사들에겐 평생연금이 되어 있지요.]
[내겐 그렇지 않아요.] 하고 변호사는 항변하였다.
[마지막 잔돈푼까지 비용으로 나갔어요.]
대령은 자기가 부당한 말을 했다는 생각으로 언짢았다.
[내 말도 바로 그렇다는 거요.] 하고 그는 자기 말을 수정하였다. 그는 와이셔츠 소매로 이마의 땀을 닦았다. [이렇게 무더우니 머리가 제대로 돌아갈 리 있나.]
잠시후 변호사는 위임장을 찾기 위해 온통 사무실을 뒤집어 놓았다. 태양은 윤기나지 않는 판자로 된 방 한복판으로 나와 있었다. 사방을 뒤져봐도 소용이 없자 변호사는 화가 나서 가쁜 숨을 내쉬면서 손발로 엎드려 자동 피아노 아래서 서류뭉치를 집어올렸다.
[여기 있어요.]
그는 대령에게 봉인이 찍혀 있는 서류 한 장을 주었다. [복사를 없애도록 내 대리인에게 편지를 해야겠습니다.] 하고 그는 말을 맺었다. 대령은 서류의 먼지를 털고 그것을 와이셔츠 주머니에 집어 넣었다.
[찢어버리세요.] 하고 변호사가 말하였다.
[아니오. 이건 40년간의 기억이오.] 하고 대령은 말하였다. 그리고 그는 변호사가 계속 보아주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변호사는 그러지 않았다. 그는 땀을 닦기 위해 그물침대로 갔다. 거기서 그는 더위로 아른거리는 공기 사이로 대령을 바라보았다.
[난 문서도 필요하오.] 하고 대령이 말하였다.
[어느 것 말입니까?]
[청구권 증명서.]
변호사는 두 손을 쳐들었다.
[그건 불가능합니다, 대령님.
대령은 놀랐다. 마콘도 지역의 혁명군 경리관으로서 그는 내란을 위한 자금이 든 트렁크 두 개를 노새 등에 밧줄로 매고 엿새나 걸린 참으로 험한 여행길에 나섰었다. 그는 노새를 끌고 니어랜디아에 있는 기지(基地)에 도착하였다. 노새는 조약이 체결되기 반시간 전에 굶어 죽었다. 대서양 연안의 혁명군 병참감이었던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은 자금의 수령을 제의하고 두 개의 트렁크를 양도명세서 속에 포함시켰다.
[그 문서는 더할 나위없이 중요한 거요.] 하고 대령이 말하였다.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 자필로 된 영수증이 들어있어요.]
[그건 사실입니다.] 하고 변호사가 말하였다. [그러나 그 문서는 수천개의 사무실을 거쳐 국방부의 무슨 국(局)에 가있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런 문서는 어떤 공무원이라도 놓칠 리가 없소.] 하고 대령이 말하였다.
[그러나 지난 15년간에 공무원들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하고 변호사가 지적하였다. [한 번 생각해 보세요. 대통령이 일곱 번이나 바뀌었습니다. 대통령이 적어도 각자의 내각을 열 번은 바꾸었고 장관도 자기의 각료를 적어도 백 번은 바꾸었어요.]
[하지만 아무도 그 문서를 집으로 가지고 갈 수는 없었을 거요.] 하고 대령은 말하였다. [바뀐 새공무원들이 누구나 그 문서를 제 문서철에서 보았을 거요.]
변호사는 더 참지를 못하였다.
[게다가 이들 문서가 지금 국방부를 떠나 있다면 명부에 새로 기입이 되어야 합니다.]
[그건 상관없소.] 하고 대령이 말하였다.
[몇백년 걸릴 겁니다.]
[상관없소. 큰일을 기다리는 처지에 자질구레한 일을 못 기다리겠소?]
그는 괘선지 한 장, 펜, 잉크병, 압지(壓紙)를 거실에 있는 작은 탁자로 가지고 갔다. 그리고 아내에게 물어볼 일이 생길 경우에 대비해서 침실문을 열어 놓았다. 아내는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오늘이 며칠이지?]
[10월 27일.]
그는 학교에서 배웠던 대로 숨쉬기를 편히 하기 위해 등골을 꼿꼿이 하고 펜을 든 손을 압지 위에 놓은 채 공들여서 단정하게 글씨를 썼다. 땀 한방울이 편지 위에 떨어졌다. 대령은 그것을 압지로 눌렀다. 그는 흐릿해진 글짜를 지우려고 했으나 더럽혔을 뿐이었다. 그는 짜증을 내지 않았다. 그는 별표를 하고 여백에 '취득 권리'라고 적어 넣었다. 그리고 나서 그 대목 전체를 읽어 보았다.
[명부에 내 이름이 오른 게 언제였지?]
부인은 생각을 하기 위해 기도를 중단하지 않았다.
[1949년 8월 12일.]
잠시후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대령은 한 장을 큰 글씨의 낙서로 채웠는데 그것은 그가 마나우르의 학교에서 배워두었던 것과 같은 것으로서 어린애짓 같았다. 이어 그는 둘째장에 중간까지 쓰고 거기에 서명을 하였다.
그는 그 편지를 아내에게 읽어 주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목 대목에 찬의를 표시하였다. 읽기를 마치자 대령은 봉투를 봉하고 램프를 껐다.
[누군가에게 타이프를 쳐달라고 부탁할 수 있잖아요.]
[아뇨.] 하고 대령은 말하였다. [부탁하러 다니는 일에 이제 질렸소.]
반시간 동안이나 그는 비가 종려잎새 지붕에 치는 빗소리를 들었다. 시내는 홍수 속에 빠졌다. 통행금지 신호가 난 뒤 집안 한 구석이 새기 시작하였다.
[이 일은 벌써 오래 전에 해치웠어야 했어요.] 하고 부인이 말하였다. [매사를 스스로 처리하는 편이 언제나 더 낫지요.]
[매사에 너무 늦었단 법은 없소.] 하고 빗물 새는 소리에 정신을 쏟으며 대령이 말하였다.
[아마 모든 것이 집 저당 기한이 찰 때쯤엔 해결이 날 거요.]
[2년 후에 말이지요.] 하고 부인은 말하였다.
그는 거실 새는 곳을 찾아내기 위해서 램프를 켰다. 그는 수탉 통을 비새는 곳 밑에 가져다 놓고 침실로 돌아갔다. 빈 통에 물 떨어지는 금속성이 뒤따랐다.
[돈 이자를 절약하기 위해서 1월 이전에 우리 건을 해결해 줄지도 모르오.] 하고 그는 말하였다. 그리고 그렇게 확신하였다. [그때쯤이면 아구스틴의 일년상도 끝나고 영화구경을 갈 수도 있을 거요.]
그녀는 숨을 죽이고 웃었다. [난 이제 만화영화를 전혀 기억하지 못해요.] 하고 그녀는 말하였다. 대령은 모기장 너머로 그녀를 바라보려 하였다.
[마지막으로 영화 구경 간 것이 언제였소?]
[1931년이었어요.] 하고 그녀는 말하였다. [그때 <사자(死者)의 유언>을 돌렸어요.]
[싸움장면이 있었던가?]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는 모르고 말았어요. 유령이 소녀의 목걸이를 빼앗으려고 할 때 갑자기 폭풍이 일었으니까요.]
빗소리가 그들을 잠들게 하였다. 대령은 창자가 약간 메스꺼웠다. 그러나 그는 두렵지 않았다. 그는 또 10월을 이겨낼 참이었다. 그는 양모 담요에 몸을 쌌다. 그리고 잠시동안 아내가 -멀리서- 꿈나라를 떠돌며 자갈처럼 숨쉬는 소리를 들었다. 이어 그는 아주 제 정신인 채로 얘기를 하였다.
부인이 잠에서 깨었다.
[누구에게 얘기하는 거예요?]
[얘긴 무슨 얘기.] 하고 대령은 말하였다. [마콘도 회의 때 우리가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에게 항복하지 말라고 것이 옳았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오. 그때부터 모든 것이 망조가 들었거든.]
일주일 내내 비가 내렸다. 11월 2일에 부인은 대령의 말을 듣지 않고 아구스틴의 무덤에 꽃을 갖다 놓았다. 그녀는 묘지에서 돌아와 다시 천식 발작을 일으켰다. 어려운 일주일이었다. 대령이 견디어 내리란 생각을 못했던 4월의 4주일간보다도 더 어려웠다. 의사가 병중의 부인을 보러 왔다가 방을 나오며 소리쳤다. [이런 천식이면 시내 사람 전체를 파묻어 버릴 수 있겠는걸!] 그러나 그는 대령에게만 얘기를 하고 특수 식이요법을 처방해 주었다.
대령도 병의 재발이 있었다. 그는 식은 땀을 흘리며 몇 시간 동안이나 변소에서 애를 썼다. 자기 자신이 썩어가는 듯한 느낌이었고 중요 기관의 양치류가 산산조각이 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겨울이기 때문이야.] 하고 그는 끈기있게 혼잣말을 되풀이 하였다. [비가 그치면 모두가 달라지겠지.] 그리고 편지가 오는 순간에 자기가 살아 있을 것이라는 확신과 함께 자기 말을 진정으로 믿고 있었다.
가정 경제를 꾸려가는 것이 이번엔 대령의 소임이 되었다. 그는 이웃 가게에서 외상을 달라기 위해 몇 번이나 이를 갈아야 했다. [그는 다음 주일까지입니다.] 하고 아무런 자신도 없으면서 말하곤 하였다. [약간의 금액이 지난 금요일에 오기로 되어 있었거든요.] 발작이 끝났을 때 부인은 그를 눈여겨보고 공포에 질렸다.
[가죽과 뼈만 남았구려.] 하고 그녀는 말하였다.
[난 내 몸을 팔 수 있도록 내 자신을 돌보고 있는 참이오.] 하고 대령은 말하였다. [난 벌써 클라리넷 공장에 채용이 되었소.
그러나 실에 있어선 편지를 기다리는 소망이 가까스로 그를 지탱하고 있었다. 잠을 못 자 뼈가 쑤시고 기진맥진하여 그는 자기의 용변과 수탉의 용변을 동시에 돌볼 수가 없었다. 2월의 후반기에 그는 이틀이나 옥수수를 먹지 못한 수탉이 죽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때, 7월에 굴뚝에 매어 두었던 한 주먹 가량의 완두콩 생각이 났다. 그는 콩깍지를 까서 마른 씨앗콩을 한 통 수탉에게 주었다.
[이리 좀 와 봐요.] 하고 부인이 말하였다.
[잠깐만.] 하고 수탉의 반응을 지켜보며 대령은 대답하였다. [거지가 무얼 가리노.]
아내는 침대에서 일어나 앉으려 애쓰고 있었다. 그녀의 황폐한 육체가 약초(藥草) 냄새를 풍겼다. 그녀는 한 마디 한 마디를 또박또박 계획한 대로 정확하게 말하였다.
[당장 저 수탉을 처분해요.]
대령은 이 순간을 예측하고 있었다. 자기 아들이 사살된 이후부터 줄곧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수탉을 간수하고 있기로 작정하고 있었다. 그에겐 생각할 여유가 많았던 터였다.
[지금은 제값을 못 받소.] 하고 그는 말하였다. [두 달 후엔 싸움이 벌어지고 그땐 훨씬 좋은 값으로 팔 수가 있단 말이오.]
[돈 문제가 아니란 말이예요.] 하고 부인은 말하였다. [젊은 애들이 오면 그 수탉을 가지고 가서 마음대로 처리하도록 이르시우.]
[아구스틴 때문이요.] 하고 대령은 준비해둔 이론을 내세웠다. [수탉이 싸움에 이겼다고 우리에게 알리러 왔을 때의 그 녀석 얼굴을 생각해 보오.]
사실 부인은 아들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빌어먹을 수탉 때문에 망한 거라구요.] 하고 부인은 소리쳤다. [1월 3일에 그 애가 집에 붙어 있었으면 그런 재앙을 당하지 않았다구요.] 그녀는 앙상한 집게손가락으로 도어께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그 애가 겨드랑이에 수탉을 끼고 떠났을 때의 모습이 눈에 선해요. 사고를 찾아 닭싸움에 나가는 것을 고만 두라고 난 말했어요. 그는 빙그레 웃으며, 그런 말 마세요. 오늘 오후엔 우리가 돈더미 속에 뒹굴테니까요.] 하고 했어요.
그녀는 기진해서 다시 누웠다. 대령은 그녀를 베개 쪽으로 살짝 밀었다. 그의 두 눈이 자기 것과 똑같은 다른 두 눈과 마주쳤다. [움직이지 않도록 해요.] 하고 그녀의 가빠하는 숨소리를 자기 허파 속에서 느끼며 그가 말하였다. 부인은 잠시 동안 마비상태에 빠졌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 그녀가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의 숨소리는 한결 고르게 되었다.
[우리 처지 때문에 그러는 거예요.] 하고 그녀는 말하였다. [수탉에게 주기 위해 우리 입에서 음식을 덜어가는 것은 죄예요.]
대령은 소매로 이마의 땀을 훔쳤다.
[아무도 석달 안에 죽지 않소.]
[그동안 우리가 무얼 먹는단 말이우?] 하고 부인이 물었다.
[모르겠소.] 하고 대령은 말하였다. [하지만 우리가 굶어 죽을 몸이었다면 벌써 죽었을 거요.]
수탉은 빈 깡통 옆에서 아주 생기가 나 있었다. 대령을 보자 수탉은 거의 사람 목소리같은 후두음(喉頭音)의 외마디 소리를 하며 머리를 뒤로 제쳤다. 대령은 수탉에게 공모(共謀)의 미소를 보내었다.
[삶이란 모진 것이야, 친구.]
대령은 거리로 나섰다. 낮잠 시간 동안 그는 시내를 오락가락 하였다. 아무 생각도 없었고 자기 문제에 해결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다짐하려고도 않았다. 기진맥진 했음을 알았을 때까지 그는 잊혀진 거리를 걸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부인은 대령이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 그를 침실로 불러 들였다.
[왜?]
부인은 그를 보지 않은 채 말하였다.
[시계를 팔아요.]
대령도 그 생각을 했었다. [알바로가 그 자리에서 40페소는 줄 거예요.] 하고 부인은 말하였다. [재봉침을 그가 단박에 샀던 걸 생각해 보우.]
부인이 말하고 있는 사람은 아구스틴이 일하였던 양복점 주인이었다.
[오전 중에 그에게 얘기하면 될텐데.] 하고 대령이 받았다.
[오전 중에 얘기한다, 따위 말은 집어 치워요.] 하고 그녀는 고집하였다. [당장 시계를 그에게로 가지고 가요. 카운터에 올려 놓고 까놓고 말해요 - 알바로, 자네보고 사달라고 이 시계를 가져왔네. 그러면 그는 곧 이해할 거예요.]
대령은 창피한 느낌이 들었다.
[그건 마치 성묘(聖墓 : 그리스도가 부활할 때까지 누워 있었던 곳)를 들고 돌아 다니는 것과 마찬가지요.] 하고 그는 항변하였다. [내가 그런 풍물을 들고 다니는 것을 사람들이 보게 되면 라파엘 에스까료나가 노래를 지어 부르게 되리다.]
그러나 이번에도 아내가 그를 설복시켰다. 그녀는 손수 시계를 버린 신문지에 싸서 그의 두 팔에 안겨주었다. [40페소를 못받으면 돌아오지 말아요.] 하고 그녀는 말하였다. 대령은 겨드랑이에 꾸러미를 들고 양복점으로 들어갔다. 아구스틴의 동료들이 문께에 앉아있었다.
그중의 한 사람이 대령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고맙소.] 하고 그는 말했다. [난 곧 가봐야 하오.] 알바로가 가게에서 나왔다. 젖은 즈크천 한 조각이 홀 안의 두 옷걸이 사이에 펼쳐있는 철사줄에 걸려 있었다. 알바로는 튼튼하고 마른 몸집에 눈이 날카로운 청년이었다. 그도 대령에게 걸터앉기를 청하였다. 대령은 마음의 위로가 되었다. 그는 등받이 없는 의자를 문설주에 기대놓고 앉아서 흥정을 붙일 수 있도록 알바로와 단둘이 있게 되기를 기다렸다. 갑자기 그는 자기가 표정 없는 여러 얼굴에 둘러싸여 있음을 깨달았다.
[공연히 방해가 되는 건 아니요?] 그가 물었다.
그렇지 않다고 그들은 말했다. 그 중 하나가 그에게 몸을 굽혔다. 그는 들릴락 말락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아구스틴이 썼어요.]
대령은 왕래 없는 거리를 바라보았다.]
[뭐라 했소?]
[언제나처럼 같아요.]
그들은 그에게 비밀 서류를 건네 주었다. 대령은 그것을 바지 주머니에 챙겼다. 그리고 나서 그는 잠자코 꾸러미를 두드렸다. 그러자 누가 그것을 보았다는 생각이 퍼뜩 났다. 그느 마음이 조인 채로 두드리길 그쳤다.
[거기 든 게 뭡니까, 대령님?]
대령은 엘난의 꿰뚫어보는 듯한 초록색 눈길을 피하였다.
[아무 것도 아니야.] 하고 그는 거짓말을 했다. [시계를 고쳐 달래서 독일인에게 가지고 가는 참이야.]
[그럴 거 없어요, 대령님.] 하고 엘난을 꾸러미를 빼앗으려고 하였다. [잠깐 제가 봐 드리죠.]
대령을 찔끔 하였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나 눈꺼풀이 자주색이 되었다. 좌중이 모두 성화였다.
[보게 하세요, 대령님. 기계를 볼 줄 알아요.]
[뭐 귀찮게 해주고 싶진 않아.]
[뭐 아무 것도 아녜요.] 하고 엘난이 말하였다. 그는 시계를 잡았다. [독일인은 10페소나 뺏어 먹고 시계는 밤낮 마찬가지일 거예요.]
엘난은 시계를 가지고 양복점 안으로 들어갔따. 알바로는 재봉침을 놀리고 있었다. 뒤쪽ㅇ로는 기타를 못에 걸어 놓은 아래서 한 소녀가 단추들을 달고 있었다. 기타 위에는 '정치 얘기 금지'란 표지가 붙어 있었다. 바깥에 있는 대령은 자기가 잉여의 몸이란 느낌이 들었다. 그는 등받이 없는 의자의 가로장에 두 발을 얹어 놓고 있었다.
[제기랄 것, 대령님.]
대령은 깜짝 놀랐다. [상소리를 할 게 뭐람.] 하고 대령은 말했다.
앨퐁소는 대령의 구두를 살펴보기 위해서 콧등 위의 안경을 조절하였다.
[대령님의 구두 때문입니다.] 하고 그는 말하였다. [되게 새구두를 신으셨군요.]
[상소리를 안 섞곤 말을 못하나?] 하고 대령은 말했다. 그리고 자기 에나멜 구두의 바닥을 보여주었다.
[이건 40년이나 묵은 거야. 그리고 누가 상소리 하는 것을 듣기도 이번이 처음이지.]
[다 됐어요.] 하고 마침 괘종이 울리는데 안에서 엘난이 말하였다. 이웃집에서 한 여인이 칸막이를 두드렸다. 그녀는 소리쳤다.
[그 기타를 집어 치워요! 아구스틴의 토상이 일년도 안됐는데.]
누군가가 너털웃음 소리를 냈다.
[괘종소립니다.]
엘난이 꾸러미를 들고 나왔다.
[아무 것도 아녜요.] 하고 그는 말하였다. [제가 댁에 가서 똑바로 걸어놓도록 하지요.]
대령은 그의 제의를 거절하였다.
[얼마를 줄까?]
[걱정 마세요, 대령님.] 하고 좌중에 앉으면서 엘난이 대다하였다. [1월이면 수탉이 값을 치러줄 테니까요.]
이제 대령은 기다리고 있던 기회를 찾은 셈이었다.
[내 흥정을 하나 하지.]
[무언데요?]
[내가 수탉을 자네들에게 주겠어.] 그는 삥 둘러싼 얼굴들을 살펴보았다. [그 수탉을 자네들 모두에게 주겠단 말이네.]
엘난은 영문을 몰라서 그를 바라보았다.
[난 이제 너무 늙었단 말이야.] 하고 대령은 말을 이었다. 그는 자기 목소리에 설득력이 있는 엄격함을 부여하였다. [내게는 너무 무거운 책임이야. 며칠째 난 그 짐승이 죽어가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어.]
[그 점은 걱정 말아요, 대령님.] 하고 앨퐁소가 말하였다. [그 짐승이 지금 털갈이하고 있는 겁니다. 깃에 열이 있어요.]
[다음달 쯤이면 다시 말짱해집니다.] 하고 엘난이 말하였다.
[어쨌건 난 이제 그 수탉이 필요 없어.] 하고 대령이 말하였다.
엘난의 눈동자가 대령의 눈동자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사정을 이해하도록 하세요, 대령님.] 하고 그는 고집하였다.
[중요한 것은 대령님이 아구스틴의 수탉을 손수 링 안으로 풀어 놓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대령은 생각해 보았다. [알겠어.] 하고 그는 말했다. [그 때문에 나도 지금까지 수탉을 간수해 온 거야.] 그는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더 말을 계속할 수 있다고 느꼈다.
[문제는 아직도 두 달이나 남아 있다는 점이야.]
엘난은 이해가 갔다.
[그것 뿐이라면 문제는 없어요.] 하고 그는 말하였다.
그리고 그는 자기의 처방을 제의하였다. 대령은 받아들였다. 해질 무렵, 대령이 겨드랑이에 싼 것을 들고 집으로 들어서자 아내는 원통해 하는 기색이었다.
[아무 소득도 없었우?] 아내가 물었다.
[없었소.] 하고 대령은 대답하였다. [그러나 이제 문제는 없소. 젊은이들이 수탉 모이를 떠맡기로 했소.]
[잠깐, 우산을 빌려 드리리다.] 사바는 사무실 벽에 달린 벽장을 열었다. 그는 엉망인 내부를 드러냈다. 승마용 장화가 쌓여있고 고삐와 등자(藤子), 그리고 박차가 가득 찬 놋쇠통 등등. 우산 대여섯개와 부인용 파라솔 등이 위켠에 걸려 있었다. 대령은 어떤 파국(破局)의 잔해를 연상하였다.
[고맙소.] 하고 대령은 창에 기댄 채 말하였다. [개이길 기다리겠소.] 사바는 벽장을 닫지 않았다. 그는 선풍기 바람이 미치는 곳에 놓인 책상에 앉았다. 이어 그는 서랍에서 솜에 싼 피하 주사기를 끄집어 내었다. 대령은 비 사이로 잿빛 편도(扁桃)나무를 바라보았다. 텅빈 오후였다.
[이 창문에서 보니 비가 달라 보이는걸.] 하고 대령은 말하였다. [마치 딴 고을에 비가 오는 것 같구려.]
[어디서 보나 비는 비죠.] 사바의 대답이었다. 그는 주사기를 끓는 물에 넣기 위해 유리 책상 위에 올려 놓았다. [이 고장은 악취를 풍겨요.]
대령은 어깨를 움찔 올렸다 내렸다. 그는 사무실 한복판으로 걸어갔다. 화려한 색깔의 바탕에 가루가 붙어있고 초록색 타일을 깐 방이었다. 뒤켠에는 소금자루, 벌집자루, 말안장 등이 어지럽게 쌓여 있었다. 사바는 아주 멍청한 눈으로 대령을 보고 있었다.
[만약 내가 당신 입장이라면 난 그런 투로 생각하지는 않을 거요.] 하고 대령은 말하였다.
그는 앉아서 책상 다리를 하고 책상에 몸을 굽히고 앉아있는 사나이를 조용히 골똘히 바라보았다. 통통했으나 살이 축 늘어지고 몸집이 작은 그 눈속에 두꺼비의 슬픔을 담고 있었다.
[의사에게 한 번 보여봐요.] 하고 사바가 말하였다. [장례날부터 줄곧 상심해 왔어요.]
대령은 고개를 들었다.
[난 아주 성한 몸이우.]
사바는 주사기를 담근 물이 끊기를 기다렸다. [나도 그렇게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고 그는 투정을 하였다. [대령님은 위장이 무쇠 같으니 다행입니다.] 그는 검은 반점이 점점이 박혀 있는 털 많은 자기 손등을 골똘히 쳐다보았다. 그는 결혼 띠 바로 곁에 흑보석이 달린 반지를 끼고 있었다.
[그건 그러우.] 하고 대령은 시인하였다.
사바는 사무실과 가옥의 다른 부분을 잇는 도어 사이로 자기 아내를 불렀다. 그리고 나서 자기의 고통스러운 식이요법을 설명하였다. 그 다음 와이셔츠 주머니에서 조그만 병을 끄집어내어 콩알만한 흰 정제를 책상위에 올려 놓았다.
[어딜 가나 이걸 지니고 다녀야 한다는 것은 고민이예요.] 하고 그는 말하였다. [마치 주머니 속에 죽음을 넣고 다니는 것 같아요.]
대령은 책상 가까이로 갔다. 그는 사바가 맛을 보라고 할 때까지 그의 손바닥 안에 있는 정제를 살펴보았다.
[커피에 넣는 거지요.] 하고 그는 설명하였다. [설탕이 안 든 설탕이죠.]
[물론.] 하고 대령은 말하였다. 침에 슬픈 단맛이 스며들었다. [그건 마치 종 없이 나는 종소리 같은 거구려.]
아내가 주사를 놓아 준 후 사바는 두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팔꿈치를 책상 위에 올려 놓았다. 대령은 자기 몸뚱이를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다. 부인은 선풍기를 끄고 그것을 금고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벽장 쪽으로 갔다.
[우산은 죽음과 관계가 있어요.] 하고 그녀는 말하였다.
대령은 부인에게 정신을 쓰지 않았다. 그는 편지를 기다리기 위해 네시에 집을 나섰으나 비 때문에 사바의 사무실에서 비를 피하게 된 것이다. 똑딱선의 기적이 울렸을 때도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죽음은 여자라고 누구나 그래요.] 하고 부인이 말하였다. 그녀는 뚱뚱한 몸집에 남편보다도 큰 키였다. 윗입술에 털날 점이 있었다. 그녀의 말투는 선풍기 소리를 연상케 하였다. [그러나 난 죽음이 여자라곤 생각치 않아요.] 하고 그녀는 말하였다. 그녀는 벽장을 닫고 다시 대령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난 그 죽음이 발톱 달린 짐승이라고 생각해요.]
[그럴 수도 있어요.] 하고 대령은 시인하였다. [때로 아주 이상한 일이 일어나거든요.]
그는 우체국장이 방수천 비옷을 입고 똑딱선으로 뛰어오르는 것을 생각해 보았다. 변호사를 바꾼지도 한달이 되었다. 그는 답장을 기다려도 좋은 처지였다. 사바의 아내는 죽음에 관한 얘기를 계속하다가 대령의 멍청한 표정에 주목하였다.
[걱정거리가 있군요.] 하고 그녀가 말했다.
대령은 똑바로 앉았다.
[그렇소.] 하고 그는 거짓말을 하였다. [벌써 다섯시가 되었는데 수탉에 주사를 맞히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하고 있는 중이요.]
그녀는 난감하였다.
[마치 사람이기라도 한 듯이 수탉에게 주사를 맞히다니요!] 하고 그녀는 소리쳤다. [그건 모독이예요.]
사바는 더 참을 수 없었다. 그는 상기된 얼굴을 쳐들었다.
[잠시 입을 닥쳐요.] 하고 그는 아내에게 명령하였다. 그리고 사실 그녀의 입에 두 손을 갖다대었다. [당신은 벌써 반시간 동안이나 주책없이 성화를 부리고 있어.]
[천만에.] 하고 대령은 항변하였다.
부인은 도어를 쾅 닫았다. 사바는 라벤다 향수에 적신 손수건으로 목을 훔쳤다. 대령은 창가로 다가갔다. 줄기차게 비가 내리고 있었다. 다리가 긴 병아리 한 마리가 인기척 없는 광장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수탉이 주사를 맞는다는 것 사실입니까?]
[사실이우.] 하고 대령이 말하였다. [내주부터 훈련이 시작되우.]
[정신나간 짓입니다.] 하고 사바가 말하였다. [그건 대령님께 어울리지 않는 일이예요.]
[동감이우.] 하고 대령은 말하였다. [그러나 그렇다고 수탉의 목을 조를 수는 없잖소.]
[그건 똥고집에 지나지 않아요.] 하고 창쪽으로 향하면서 사바가 말하였다. 대령은 그가 풀무 같은 소리로 한숨짓는 것을 들었다. 그의 친구의 눈이 그로 하여금 딱한 느낌을 갖게 하였다.
[어떤 일에나 너무 늦었다는 법은 없어요.] 하고 대령이 말하였다.
[턱없이 굴지 말아요.] 하고 사바는 고집하였다. [그건 일거양득입니다. 우선 두통거리를 없애게 되고 또 한편으로 9백 페소를 주머니에 넣게 된단 말이요.]
[9백 페소나!] 하고 대령은 소리쳤다.
[9백 페소요.]
대령은 그 액수를 눈에 그려보았다.
[수탉값으로 그렇게 많은 돈을 치른다고 생각하우?]
[생각하는 게 아니예요. 난 아주 확신하고 있어요.]
그것은 대령이 혁명 자금을 돌려준 이후 머리 속에서 생각해본 가장 많은 액수였다. 사바가 사무실을 나섰을 때, 대령은 창자가 뒤틀리는 것을 강렬하게 느꼈다. 그러나 그것이 날씨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우체국에서 그는 곧장 우체국장에게로 갔다.
[나는 급한 편지를 기다리고 있소.] 하고 그는 말하였다. [항공우편이요.]
우체국장은 조그마한 칸막이 속을 훑어보았다. 읽기를 마치자 그는 편지들을 제 상자 속으로 도로 넣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손에 묻은 먼지를 털고 의미있는 얼굴을 대령에게로 돌렸다.
[오늘은 틀림없이 오기로 되어 있소.] 하고 대령은 말하였다.
우체국장은 어깨를 쓱 올렸다.
[틀림없이 오기로 되어 있는 것은 죽음뿐입니다, 대령님.]
그의 아내는 옥수수죽 한 접시를 준비하고 그를 맞았다. 수저를 입에 갖다 대는 사이사이로 오랫동안 뜸을 들이면서 그는 잠자코 먹기만 하였다. 맞은 편에 앉은 부인은 그의 얼굴의 변화를 눈치챘다.
[무슨 일이우?] 그녀가 물었다. [난 연금에 의존하는 고용원 생각을 하고 있소.] 하고 대령은 거짓말을 하였다. [50년 후에 우리는 6피이트 땅밑에 평화롭게 잠들어 있을 거요. 한편 불쌍한 친구는 자기 퇴직연금을 매주 금요일마다 기다리며 제 몸을 죽여가고 있을 거요.] 그녀는 자기 죽을 계속 먹었다. 그러나 잠시 후 자기 남편이 아직도 정신이 딴 곳에 가 있음을 깨달았다.
[옥수수죽이나 잡수시우.]
[아주 맛있구려.] 하고 대령이 말하였다. [어디서 났오?
[수탉한테서요.] 하고 부인은 대답하였다. [젊은이들이 옥수수를 굉장히 많이 가직 왔기 때문에 수탉이 우리와 나누어 먹기로 한 거라우. 삶이란 그런 거지요.]
[맞는 소리요.] 대령은 한숨을 쉬었다. [삶은 지금껏 발명된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거요.]
그는 난로 다리에 매여있는 수탉을 바라보았다. 어쩐지 딴 짐승처럼 보였다. 부인도 수탉을 바라보았다.
[오늘 오후에 막대로 아이들을 몰아내야 했다우.] 하고 그녀는 말하였다. [녀석들이 수탉에게 붙이려고 암탉 한 마리를 가져 왔어요.]
[처음 있는 일은 아니오.] 하고 대령이 말하였다. [여러 곳에서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에게 비슷한 것을 했었오. 자식을 보라고 그에게 어린 색시들을 데려다 주었으니까.]
그녀는 그 농담을 재미있어 하였다. 수탉이 목구멍 소리를 내었다. 그것은 마침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처럼 실내에 울렸다. [때로 난 저 짐승이 얘기를 하려는 게라는 생각이 나요.] 하고 부인이 말하였다. 대령이 다시 수탉을 쳐다보았다.
[저 수탉은 제 몸무게 나가는 금값과 맞먹어요.] 하고 그는 말하였다. 그는 옥수수죽 한 숟가락을 먹으며 계산을 하였다. [저 녀석이 우릴 삼년은 먹여 줄거요.]
[희망을 먹고 살 수는 없어요.] 부인이 말하였다.
[희망을 먹을 수는 없으나 그것이 사람을 지탱시켜 줄 수는 있소.] 하고 대령은 대답하였다. [그건 내 친구 사바의 신통한 경제같은 거요.]
그는 그날 밤 머리 속에서 액수를 지우려고 애쓰며 잠을 잘 이루지 못하였다. 이튿날 점심때 부인은 옥수수죽을 두 접시나 끓여 주었고 아무 말없이 고개를 숙인 채 자기 몫을 먹었다. 대령은 아내의 저기압이 전염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웬 일이오?]
[아무 것도 아니우.] 부인이 말했다.
이번에는 아내가 거짓말을 할 차례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아내를 위로해 주려 했다. 그러나 부인은 막무가내였다.
[별 일 아니우.] 하고 그녀는 말하였다. [그 사람이 죽은지 두 달이나 되는데 내가 여태껏 그 집안을 찾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던 참이우.]
그래서 그녀는 그날 밤 그 집 식구들을 보러 갔다. 대령이 그녀를 죽은 이의 집까지 바래다 주었다. 그리고 확성기를 타고 흘러 오는 음악에 끌리어 영화관으로 향하였다. 사무실 도어께에 앉아서 안젤 신부는 자기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구경을 하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알아내기 위해 출입구를 지켜보고 있었다. 불빛의 홍수, 귀따가운 음악, 아이들의 함성이 근방에 육체적 저함감을 일으키게 했다. 꼬마 하나가 목총(木銃)으로 대령을 위협했다.
[수탉은 어떻게 되었소?] 하고 그는 명령조로 말하였다.
대령은 두 손을 들었다.
[아직 그대로야.]
네 가지 빛깔로 된 포스터가 영화관 전면을 온통 덮고 있었다. <한밤의 처녀>. 그것은 한쪽 다리를 허벅지까지 맨살로 드러낸 야회복을 걸친 여인의 그림이었다. 대령은 근방을 오락가락 하였다. 그러나 멀리서 번개와 천둥소리가 났다. 그는 아내를 데리러 되돌아갔다.
그녀는 죽은 이의 집에 있지 않았다. 집에도 없었다. 대령은 통행금지까지엔 얼마간의 시간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괘종시계는 멈춰 있었다. 그는 폭풍우가 시내로 다가옴을 느끼면서 기다렸다. 다시 나가볼 차비를 하는데 아내가 돌아왔다.
그는 수탉을 침실로 데리고 갔다. 대령이 괘종시계의 밥을 주고 시계를 맞춰 놓기 위해 통행금지 신호가 울리기를 기다리는데 그녀는 옷을 갈아입고 거실로 물을 마시러 갔다.
[어디 있었소?] 대령이 물었다.
[왔다 갔다 했어요.] 하고 부인이 대답하였다. 그녀는 남편을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유리잔을 세면대에 올려놓고 침실로 돌아갔다. [그렇게 빨리 비가 올 줄 알았나요.] 대령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통행금지가 울리자 그는 시계를 열한시에 맞춰놓고 케이스를 닫고 의자를 제자리에 갖다 놓았다. 아내는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당신은 내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소.] 하고 대령이 말하였다.
[무슨 물음?]
[어디 있었느냐 말이오?]
[나는 얘기하면서 거기 눌러 있었우.] 하고 그녀는 말했다. [집밖으로 외출한 것이 아주 오랜만이었우.]
대령은 자기 그물침대를 걸었다. 그는 집안을 잠그고 방에 훈증 소독을 했다. 이어 램프를 바닥에 내려 놓고 누웠다.
[알겠오.] 하고 그는 쓸쓸히 말하였다. [딱한 처지 중에서도 제일 고약한 것은 그것이 우리에게 거짓말을 하게끔 한다는 점이오.]
그녀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난 안젤 신부에게 갔었어요.] 하고 그녀는 말했다. [우리의 결혼반지를 잡히고 돈을 빌려 달라고 부탁하러 간거라우.]
[뭐라고 합디까?]
[성스러운 물건을 교역하는 일은 죄라나요.]
그녀는 자기 모기장 속에서 얘기를 계속하였다. [이틀전에 난 괘종시계를 팔려 했었우.] 하고 그녀는 말하였다. 야광판이 달린 신식 괘종을 할부제로 팔기 때문에 아무도 살려고들 안 해요. 캄캄한 속에서도 볼 수 있는 시계를 말요.] 40년간이나 같이 살고, 굶주림과 고통을 같이 했지만 그것으로도 아내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대령은 시인했다. 그는 그들의 사랑 가운데서도 무엇인가가 늙어버렸다고 느꼈다.
[그림도 사려고들 하지 않아요.] 하고 그녀는 말하였다. [거의 누구나 비슷한 그림을 가지고 있어요. 난 터키인한테까지 가보았다우.]
대령은 쓰라린 심정이었다.
[그러니 이제 우리가 굶주린다는 것을 모르는 이가 없겠구려.]
[난 지쳤어요.] 하고 부인이 말하였다. [남자들은 집안 살림을 알지 못해요. 며칠씩 냄비를 끓이지 못하고 지낸다는 것을 이웃들이 알까봐 나는 몇 번이나 돌덩이를 끓이기도 했다우.]
대령은 모욕감을 느꼈다.
[그것이야말로 창피한 일이오.] 하고 그는 말하였다.
부인은 모기장 밖으로 나와 그물침대께로 갔다. [나도 이 집 구석에서 허세와 겉치레를 팽개치려우.] 하고 그녀는 말하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노여움으로 험해지기 시작했다. [나도 체면 치에와 체념에 질렸단 말이우.]
대령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선거가 끝날 때마다 당신에게 약속하였던 알록달록한 새들을 이십년간이나 기다렸어요. 그러나 우리가 얻어낸 것은 아들의 죽음뿐이었어요.] 하고 그녀는 말하였다. [그저 아들의 죽음뿐이었단 말이우.]
대령은 이런 책망에는 익숙해져 있었다.
[우린 우리의 의무를 수행한 거요.]
[그리고 저들은 상원(上院)에서 이십년간이나 한달에 1,000페소의 보수를 받을 것이니 저들의 의무를 다한 셈이고요.] 부인의 대답이었다. [내 친구 사바를 봐요. 이층집에 사는데도 돈이 너무 많아 간수할 곳이 없잖아요. 이 고을에 처음 나타났을 땐 목에다 뱀을 감고 약을 팔았는데……]
[그러나 그는 당뇨병으로 다 죽어가고 있어요.]
[그리고 당신은 허기로 다 죽어 가고 있어요.] 하고 부인은 말하였다. [당신은 먹고 살 수 없다는 걸 깨달아야 해요.]
번개가 그녀의 말을 중단시켰다. 천둥이 거리에서 폭발하여 침실로 들어가더니 마치 돌무더기처럼 침대 아래로 굴러갔다. 부인은 염주를 잡기 위해 모기장 쪽으로 펄쩍 뛰었다.
대령은 빙그레 웃었다.
[입을 닥치지 않으면 당신을 그렇게 혼나는 법이오.] 하고 그는 말하였다. [하나님은 내편이라고 내가 늘 말했잖소.]
그러나 실에 있어 그는 쓰린 심정이었다. 잠시 후 그는 불을 끄고 번갯불에 찢기는 어둠 속에서 생각에 잠겼다. 그는 마콘도 생각을 하였다. 대령은 니어랜디아의 약속이 이행되기를 10년이나 기다렸다. 낮잠 시간의 졸음 속에서 그는 먼저 앉은 누런 열차가 역에 들어서는 것을 보았다. 객차의 지붕에까지 올라탄 남녀와 짐승들이 더위로 숨이 막혀 있었다. 그것은 바나나 열병이었다.
24시간 안으로 그들은 시내를 온통 변모시켰다. [난 떠납니다.] 하고 그때 대령은 말하였다. [바나나 냄새가 내 속을 온통 훑고 있어요.] 그리고 그는 1906년 6월 27일 수요일 오후 2시 18분에 돌아가는 열차편으로 마콘도를 떠났다. 니어랜디어에서의 항복한 이래 그가 잠시 동안의 평화도 누리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는데 거의 반세기의 시간이 걸렸던 것이다.
그는 눈을 떴다.
[그렇다면 더 이상 생각할 필요가 없소.] 하고 그가 말했다.
[무얼말이우?]
[수탉 말이요.] 하고 대령은 말하였다. [내일 나는 수탉을 친구 사바에게 900페소에 팔겠소.]
거세당한 짐승의 고함소리가 사바의 고함소리에 섞이어 사무실 창을 통해 들려왔다. 두시간이나 기다린 끝에 대령은 10분만 더 기다리기로 스스로에게 다짐하였다. 그러나 그는 20분을 더 기다렸다. 그가 막 떠날 셈으로 있을 때 사바가 사무실로 들어서고 뒤이어 한 떼의 일꾼들이 따라 들어왔다. 그는 대령을 쳐다보지도 않고 그 앞을 왔다 갔다 하였다.
[날 기다리고 있는 거요, 친구?]
[그렇소, 친구.] 하고 대령이 말하였다. [그러나 지금 바쁘면 뒤에 오리다.]
사바는 도어 저쪽에 있어서 대령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내 곧 돌아오리다.] 하고 그는 말하였다.
정오는 숨막혔다. 사무실이 거리의 아지랑이로 아른아른 하였다. 무더위로 정신이 몽롱해진 대령은 부지중에 눈을 감았고 곧 아내의 꿈을 꾸었다. 사바의 아내가 까치발로 들어왔다.
[깨지 마세요.] 하고 그녀가 말했다. [사무실이 영 지옥이어서 휘장을 내리려는 거예요.]
대령은 멍청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창을 닫고 그늘진 데서 그녀는 말하였다.
[꿈을 자주 꾸세요?]
[이따금씩요.] 하고 잠들어 버린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대령은 대답하였다. [거의 언제나 나는 거미줄에 걸려 있는 꿈을 꾼다우.]
[난 밤마다 무서운 꿈을 꿔요.] 하고 여인은 말하였다. [이제 꿈속에서 만나는 낯모르는 사람들이 누구인가 하는 것을 겨우 알게 되었어요.]
그녀는 선풍기의 플러그를 꽂았다. [지난 주일에 한 여자가 내 침대머리에 나타났어요.] 하고 그녀는 말하였다. [나는 누구냐고 그녀에게 가까스로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그 여자는 난 열두해 전에 이 방에서 죽은 사람이요,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어요.]
[그러나 이 집은 지은 지가 이년도 채 안되는데요.] 하고 대령이 말하였다.
[그건 그래요.] 하고 여인은 말하였다. [그러니까 죽은 이들도 잘못을 저지르는 거죠.]
선풍기 소리가 그들을 굳혀 놓았다. 꿈 얘기와 영혼재현(靈魂再現) 수수께끼 사이를 내왕하는 여인에 시달리고 또 졸음에 시달린 대령은 초조한 느낌이 들었다. 작별을 고할 틈을 노리고 있는데 사바가 십장(什長)을 데리고 사무실로 들어섰다.
[스프를 네 번이나 데웠는데요.] 하고 여인이 말하였다.
[열 번이라도 데우구려.] 하고 사바가 말하였다. [그러나 바가지만 긁지 마오.]
그는 금고를 열고 지시사항에 적힌 서류와 지폐뭉치를 십장에게 건네 주었다. 십장은 돈을 세어 보기 위해서 휘장을 열었다. 사바는 사무실 뒤쪽에 있는 대령을 보았으나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그는 십장과 얘기를 계속하였다. 두 사람이 막 사무실을 나가려는 순간에 대령이 정색을 하며 바로 앉았다.
[무슨 볼 일이 있어요, 친구?]
대령은 십장이 자기를 보고 있음을 알았다.
[아무 것도 아뇨.] 하고 그는 말하였다. [그저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거요.]
[빨리 하시우.] 하고 사바가 말하였다. [지금 바빠 죽겠어요.]
그는 도어 손잡이에 손을 댄 채 멈칫거렸다. 대령은 자기 생애 가운데 가장 긴 5초가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는 이를 악물었다.
[수탉에 관한 거요.] 하고 그는 중얼거렸다.
사바가 문 열기를 마쳤다. [수탉 문제라.] 하고 그는 빙긋 웃으며 말하였다. 그리고 십장을 홀 쪽으로 떠밀었다. [하늘이 내려앉는 판인데 내 친구는 그 수탉 걱정을 하고 있군.] 그리고 나서 그는 대령에게 말하였다.
[좋아요, 내 곧 돌아오리다.]
대령은 사무실 한복판에 꼼짝 않고 서 있었다. 홀 끝에 있는 두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마침내 들리지 않게 되었다. 그는 일요일의 낮잠 속에 마비된 시내 주변을 산책하러 나갔다. 양복점에는 아무도 없었다. 의사의 사무실도 닫혀있었다. 시리아인의 가게에 진열된 상품을 지켜보고 있는 이라곤 아무도 없었다. 강은 한 장의 강철판이었다. 부두가에는 한 사나이가 모자로 얼굴을 가린 채 네 개의 드럼통 위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대령은 시내에서 몸늘 움직이고 있는 것이 자기 뿐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집으로 갔다.
아내가 점심을 정식으로 차려 놓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외상으로 장만했다우. 당장 내일 갚겠다고 약속했어요.] 하고 그녀는 설명하였다.
점심을 먹는 동안 대령은 그녀에게 지난 세 시간 동안의 사건을 들려주었다. 그녀는 그의 얘기를 귀를 기울이며 초조해 했다.
[대가 약한 것이 당신의 사고예요.] 하고 마침내 아내가 말하였다. [고개를 높이 쳐들고 들어가서 우리 친구를 한 옆으로 데리고가 내가 수탉을 그대에게 팔기로 작정했네, 하고 말해야 될 때 당신은 구걸이라도 하듯이 쭈삣쭈삣 한단 말이예요.]
[당신 말을 들으면 삶이란 산들바람 같구려.] 하고 대령은 말하였다.
그녀는 기운이 넘치는 듯이 처신하였다. 그날 오전 그녀는 집안을 말끔히 치웠고 아주 별난 차림을 하였다. 남편의 낡은 구두를 신고 기름바른 천의 앞치마를 두르고 헝겊조각을 머리에 쓰고 양쪽 귀에 이슴매로 묶었다. [당신은 장삿속이 전혀 없어요.] 하고 그녀는 말하였다. [물건을 팔 때도 살 때와 똑같은 얼굴을 해야 돼요.]
대령은 그녀의 몰골에서 무엇인가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다.
[가만히 그대로 있어 보오.] 하고 미소를 지으며 그는 아내를 가로막았다. [당신은 퀘이커·오우트 광고에 나오는 사람과 똑같구려.]
그녀는 머리에서 헝겊조각을 벗었다.
[나는 농담하고 있는 게 아니예요. 나는 당장 수탉을 우리 친구에게 가지고 가서 반시간 내에 900페소를 가지고 돌아오겠어요. 무슨 내기라도 걸겠어요.]
[당신은 머리가 어떻게 되었소.] 하고 대령이 말하였다. [당신은 벌써 수탉에서 생긴 돈을 걸고 있는 거요.]
그가 그녀의 마음을 돌리는 데는 무진 애를 써야했다. 그녀는 금요일의 고통이 없는 향후 3년 동안의 예산을 머리 속에서 정리하는데 오전을 소비하였다. 그녀는 대령의 새구두를 잊어버리지 않고 그들이 필요로 하는 필수품의 일람표를 만들었다. 그녀는 침실 거울 앞에 자리를 마련하였다. 그녀의 계획의 순간적인 좌절이 수치심과 노여움이 뒤섞인 감정을 불러 일으켰다.
그녀는 잠시 낮잠을 잤다. 그녀가 일어났을 때 대령은 앞마당에 앉아 있었다.
[무얼 하고 있어요?] 그녀가 물었다.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오.] 하고 대령이 대답하였다.
[그렇다면 문제가 풀렸어요. 우리는 50년 후에나 돈을 기대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러나 실에 있어 대령은 바로 그날 오후에 수탉을 팔기로 작정하였다. 그는 사바가 사무실에서 혼자 선풍기 앞에서 주사맞을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였다. 그는 대답을 준비하여 두었다.
[수탉을 가지고 가우.] 하고 그가 나갈 때 아내가 충고하였다. [수탉을 실제로 보게 되면 기적이 일어날 테니까요.]
대령은 이에 따르지 않았다. 아내는 절망적인 걱정을 안고 앞문까지 남편을 따라갔다.
[군대 전체가 사무실에 있더라도 상관없어요.] 하고 그녀는 말하였다. [팔을 꽉 움켜 잡고 900페소를 받을 때까지는 꼼짝 못하게 해요.]
[우리가 강탈하려 한다고 생각할 것 아니오?]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수탉 임자라는 것을 잊지 말아요.] 하고 그녀가 다그쳤다. [당신이 그에게 선심을 쓰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도록 해요.]
[알았소.]
사바는 의사와 함께 침실에 있었다. [지금이 기회예요.] 하고 사바의 아내는 대령에게 말하였다. [의사가 농장으로 여행할 차비를 차리도록 하고 있거든요. 목요일까지는 돌아오지 않을 겁니다.] 대령은 두 개의 상반되는 힘들과 싸웠다. 수탉을 팔아버리겠다는 결심을 하긴 했으나 그는 한 시간쯤 늦게와서 사바를 못 보게 되었으면 좋았을 게라는 생각을 하였다.
[기다려도 좋아요.] 하고 그는 말하였다.
그러나 여인이 고집하였다. 그녀는 대령을 침실로 안내하였다. 그녀의 남편은 셔츠만을 입은 채 생기 없는 눈으로 의사를 골똘히 쳐다보며 왕좌 같은 침대에 앉아 있었다. 의사가 환자의 오줌이 들어있는 유리관을 데우고 고약한 냄새를 맡고 사바에게 괜찮다는 몸짓을 하는 동안 대령은 기다렸다.
[우리는 저 이를 쏘아 죽여야 해요.] 하고 대령을 향해 의사는 말하였다. [당뇨병은 부자들을 처치하기에는 너무 더디거든요.]
[선생은 그놈의 인슐린 주사로 날 처치하려고 최선을 다해왔어요.] 하고 사바는 말하였다. 그는 그의 연약한 궁둥이를 움찔해 보였다. [그러나 난 만만치 않은 놈이오.] 그리고 대령을 향해 말하였다.
[들어 오시오. 오늘 오후 찾으러 나갔더니 대령님 모자조차 보이지 않던걸요.]
[나는 모자를 쓰지 않소. 누구에게나 모자를 벗어 보일 필요가 없도록 말이오.]
사바는 옷을 벗기 시작하였다. 의사는 뽑은 피가 들어있는 유리관을 자켓 주머니에 집어 넣었다. 이어서 그는 가방 속에 물건들을 챙겼다. 대령은 그가 떠날 차비가 다 되었다고 생각하였다.
[내가 선생 처지라면 저 친구에게 10만 페소짜리 청구서를 보내겠소.] 하고 대령은 말하였다. [그래도 저 친구는 별 걱정이 안 될 거요.]
[난 벌써 암시를 했답니다. 100만페소를 말입니다.] 하고 의사가 말하였다. [당뇨병에는 가난이 제일 좋은 요법입니다.]
[처방에 감사합니다.] 하고 사바는 그의 푸짐한 배를 승마용 바지에 처넣으려 하며 말하였다. [그러나 난 그 처방을 받아들이지 않겠어요. 부자가 된다는 파국을 선생에게 면제시켜주기 위해서 말이오.] 의사는 자기 이빨이 가방의 크롬염료(染料)로 물들인 자물쇠에 비쳐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초조한 내색 없이 시계를 바라보았다. 사바는 장화를 신다가 갑자기 대령에게 향하였다.
[저 수탉은 어떡하고 있는 거요.]
대령은 의사도 대답을 기다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이를 악물었다.
[별 일 없어요.] 하고 그는 중얼거렸다. [난 그 수탉을 팔러 온 거요.]
사바는 장화 신기를 마쳤다.
[좋아요.] 하고 그는 아무런 감정도 없이 말하였다. [그건 대령님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 가운데서 가장 지각 있는 일입니다.]
[난 이제 너무 늙어서 이런 꽤 까다로운 일이 벅차오.] 하고 의사의 헤이릴 길 없는 표정 앞에서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말하였다. [내가 이십년만 더 젊었더라도 사정은 전혀 다를 터인데 말이오.]
[대령님은 언제나 이십년은 더 젊을 겁니다.] 하고 의사가 대답하였다.
대령은 숨쉬기를 회복하였다. 그는 사바가 무슨 소리를 더 하기를 기다렸으나 사바는 아무 말 없었다. 사바는 지퍼 달린 가죽 자켓을 입고 침실을 떠날 차비를 하였다.
[괜찮다면, 그 건은 내주에 얘기하기로 하지요.] 하고 대령은 말하였다.
[내가 말하고 싶었던 것도 바로 그겁니다.] 하고 사바가 말하였다. [대령님에게 400 페소를 치를 손님이 있습니다. 그러나 목요일까지는 기다려야 해요.]
[얼마라구요?] 의사가 물었다.
[400 페소.]
[그보다는 훨씬 값 나간다고 얘기하는 것을 들은 일이 있는 걸요.] 하고 의사가 말하였다.
[그전엔 900 페소를 얘기했잖소.] 하고 의사의 의아해함에 힘 입어 대령이 말하였다.
[그 수탉은 이 지방에선 제일 가는 거요.]
사바가 의사에게 대답하였다.
[다른 때 같으면 누구라도 1,000 페소는 치르러 들거요.] 하고 그는 설명하였다. [그러나 요즈음엔 아무도 경기장에서 닭싸움을 시키려 들지 않아요. 경기에서 총알을 맞고 죽어나올 위험성이 늘 있거든요.] 그는 짐짓 실망한 양 대령에게로 향하였다.
[내가 얘기하고 싶었던 건 바로 그겁니다, 대령님.]
대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소.] 하고 그는 말하였다.
대령은 홀까지 그를 따라갔다.
대령은 사바의 아내가 붙드는 바람에 거실에 눌러 있었다. 그녀는 '갑자기 사람에게 닥쳐오고 무언지 모르겠는 것'에 대한 치료법을 그에게 물었다. 대령은 사무실에서 의사를 기다렸다. 사바는 금고를 열고 돈을 주머니마다 집어넣고 대령에게 넉장의 지폐를 내밀었다.
[60 페소요.] 하고 그는 말하였다. [수탉이 팔리면 해결하기로 하지요.]
대령은 의사와 함께 부둣가의 가게 옆을 걸어갔다. 그곳은 오후의 서늘함 속에서 생기를 되찾고 있었다. 사탕수수 대궁을 실은 배가 해류를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대령은 의사가 이상하게도 혼자만에 골똘해 있음을 알았다.
[어디가 어때요, 선생?]
의사는 어깨를 움찔해 보였다.
[그저 그래요.] 하고 그는 말하였다. [내가 의사를 봐야겠어요.]
[겨울 탓이오.] 하고 대령이 말하였다. [겨울이 내 내장을 훑어가요.]
의사는 직업적인 관심이 전혀 배제된 표정으로 그를 살펴보았다. 연신 그는 상점 앞에 앉아있는 시리아인들에게 인사를 하였다. 의사 사무실 문가에서 대령은 수탉을 파는 것에 대한 의견을 표명하였다.
[난 달리 할 수가 없소.] 하고 그는 설명하였다. [저 짐승은 사람의 살을 뜯어먹고 있소.]
[사람의 살을 뜯어먹고 있는 유일한 짐승은 사바요.] 하고 의사는 말하였다. [그는 틀림없이 수탉을 900 페소에 다시 팔아 넘길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오?]
[그렇게 확신하고 있어요.] 하고 의사는 말하였다. [그건 그가 시장과 맺었던 저 유명한 애국적인 협정만큼이나 유리한 거지요.]
대령은 곧이 듣기를 거절하였다. [그 친구는 무사하기 위해서 그 협정을 맺었어요.] 하고 그는 말하였다. [그래서 시내에서 눌러살 수 있는 거요.]
[그래서 또 그는 시장(市長)이 몰아낸 그의 동료들의 재산을 본값의 반값으로 살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고 의사는 대답하였다. 그는 문을 두드렸다. 봉창에 열쇠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어 그는 대령의 곧이 듣지 않는 얼굴을 향했다.
[그렇게 고지식하게 굴면 못써요.] 하고 그는 말했다. [사바는 자기 무사함보다는 돈에 더 관심이 있으니까요.]
대령의 아내는 그날 밤 쇼핑을 갔다. 대령은 의사의 계시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서 시리아인 상점까지 그녀와 동행하였다.
[젊은이들을 당장 찾아내어 수탉이 팔렸다는 것을 알려줘요.] 하고 그녀가 말하였다.
[그들에게 희망을 남겨주어서는 안되니까요.]
[수탉은 내 친구 사바가 돌아와야만 팔리는 거요.] 하고 대령이 대답하였다.
그는 알바로가 당구장에서 루레트를 돌리고 있음을 알았다. 그곳은 토요일밤이면 찌는 듯 하였다. 더위는 와지끈 틀어놓은 라디오의 떨리는 소리 때문에 더욱 강렬해 보였다. 대령은 큼지막한 검정색 유포(油布·기름묻힌 천) 위에 칠해 놓았고, 탁자 한복판의 상자 위에 올려 놓은 기름등잔불에 비치는 영롱한 색깔의 숫자를 재미있어 하고 있었다. 알바로는 23에 걸고 계속 잃기만 하였다. 어깨 너머로 놀이를 눈여겨 본 대령이 9번 회전에 11이란 숫자가 네 번이나 나타나는 것을 관찰하였다.
[11에 걸어요.] 하고 그는 알바로의 귓전에 소근거렸다. [그게 제일 많이 나오는걸.]
알바로는 탁자를 꼼꼼히 살펴보았다. 그는 그 다음번 회전때 걸지 않았다. 그는 바지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고, 또 한 장의 종이를 끄집어 내었다. 그는 그 종이를 탁자 밑으로 해서 대령에게 건네주었다.
[아구스틴에게서 온 겁니다.] 하고 그는 말하였다.
대령은 비밀문서를 자기 주머니에 넣었다. 알바로는 11에 많은 돈을 걸었다. [조금씩 걸고 시작해요.] 하고 대령이 말하였다.
[그건 좋은 징조일지도 몰라요.] 하고 알바로는 대답하였다. 옆에 있던 한 떼의 도박꾼들이 다른 숫자에 걸었던 돈을 빼고 거대한 채색 바퀴가 이미 돌기 시작한 연후에 11에 걸었다. 대령은 가슴이 답답해왔다. 난생 처음으로 그는 도박의 매력과 동요와 쓰디쓴 맛을 통감했다.
5가 이겼다.
[미안해요.] 하고 수치심을 느끼며 대령이 말하였다. 그는 어쩔 수 없는 죄악감을 가지고 알바로의 돈을 거두어가는 나무로 된 갈퀴를 눈여겨보았다. [공연히 상관없는 일에 참견을 해서 그리 됐단 말이야.]
[걱정마세요, 대령님. 사랑을 믿으십시요.]
맘보곡조를 연주하던 트럼펫이 갑자기 중단되었다. 돈을 걸던 노름꾼들이 손을 위로 쳐들고 흩어졌다. 대령은 소총의 차갑고 분명하며 비정한 공이치기가 갑자기 등 뒤에 당겨짐을 감지하였다. 그는 주머니 속에 비밀문서를 가지고 있는데 경찰의 습격을 받아 꼼짝없이 걸려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그의 손을 놀리지 않은 채 반쯤 몸을 돌렸다. 바로 그때 그는 생전 처음으로 자기 아들을 쏘아죽인 사내를 아주 가까이에서 보았다. 사내는 소총 총신을 대령의 배에다 겨누고 바로 앞에 있었다. 그는 몸집이 작았고 인디안 토박이 얼굴이었고 살결은 햇볕에 타 있었고 숨결에서는 젖내가 났다. 대령은 이를 갈고 손가락 끝으로 소총 총신을 가만히 밀었다.
[실례하오.] 하고 그는 말하였다.
그는 둥글고 조그만 박쥐 눈과 눈을 맞댔다. 순간 그는 자신이 이 두눈에 의해서 삼켜지고, 바수어지고, 소화되어 이내 쫓기운다고 느꼈다.
[나가셔도 됩니다, 대령님.]
12월임을 알기 위해 그는 창문을 열 필요가 없었다. 그는 주방에서 수탉의 아침 먹이로 과일을 자를 때 그것을 뼛속에서 느껴 알았다. 문을 열자 곧 앞마당의 정경이 그의 느낌을 확인해 주었다. 그것은 풀과 나무가 있는 아주 훌륭한 앞마당이었다. 그리고 바깥에 변소가 땅 위 1미리쯤에서 맑은 공기 속에 떠돌고 있었다.
그의 아내는 아홉시까지 잠자리에 누워 있었다. 그녀가 주방에 모습을 보였을 때 대령은 이미 집안을 정돈하고 수탉 주위에 둥그렇게 모여 있는 아이들에게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때는 스토브로 가기 위해 돌아가지 않으면 안되었다.
[저리 비켜!] 하고 그녀는 소리쳤다. 그녀는 짐승 쪽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저놈의 망조 든 새를 언제나 처리할꾸.]
대령은 수탉에 대한 아내의 저기압을 바라보았다. 수탉에 대해서 화를 낼 만한 것은 없었다. 수탉은 훈련을 받을 차례가 되어 있었다. 수탉의 목과 덮힌 털이 있는 보라색 넙적다리, 톱니같은 볏하며 짐승은 날렵한 몸매의 무방비 상태의 태도였다.
[창밖이나 내다 보고 수탉은 잊어버려요.] 하고 어린이들이 떠나자 대령이 말하였다. [오늘 같은 아침엔 사진이라도 찍고 싶은 기분이구려.]
그녀는 창밖을 내다 보았으나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았다. [나는 장미꽃이나 심고 싶어요.] 하고 스토브로 돌아가며 그녀는 말하였다. 대령은 면도를 하기 위해 걸쇠에 거울을 걸었다.
[장미를 심고 싶으면 심도록 하구려.] 하고 그녀는 말하였다.
그는 자기의 동작을 거울 속의 동작에 맞추려고 하였다.
[돼지가 다 먹어치워요.] 그녀의 말이었다.
[그렇다면 더욱 좋소.] 하고 대령은 말하였다. [장미를 먹고 살찐 돼지는 맛이 그만일 거요.]
그는 거울 속에서 아내를 찾았다. 그리고 아내의 표정이 여전함을 눈치챘다. 불빛을 받고 그녀의 얼굴은 스토브와 같은 재료로 형성된 것 같이 보였다. 두눈을 아내에게 고정시킨 채 쳐다보지도 않고 대령은 여러해동안 그랬듯이 그저 만져가며 면도를 계속하였다. 오랜 침묵 속에서 부인은 생각하였다.
[그러나 난 심고 싶지 않아요.] 하고 그녀가 말하였다.
[좋아요.] 하고 대령이 받았다. [그렇다면 심지 말구려.]
그는 신수가 좋은 느낌이었다. 12월이 그의 창자 속의 식물들을 말려버렸다. 그는 그날 아침 새 구두를 신으려다가 실망했다. 그러나 몇번인가 신으려 했다가 그것이 헛수고였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신식에나멜 가죽 구두를 신었다. 그의 아내는 변경을 눈치챘다.
[새 구두를 신지 않으면 영영 길들이지 못하잖아요.] 하고 그녀가 말하였다.
[이건 절뚝발이를 위한 구두요.] 하고 대령은 항변하였다. [한달쯤 신어서 길든 구두를 팔도록 해야 할 거요.]
그는 그날 오후 편지가 오리라는 예감에 기운이 나서 거리로 나섰다. 아직 똑딱선이 올 시간이 아니어서 그는 사무실에서 사바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는 월요일에야 돌아온다는 얘기였다. 이러한 차질을 예측하진 못했으나 그는 태연하였다. [조만간에 그는 돌아오지 않을 수 없지.] 하고 그는 스스로에게 타일렀다. 그리고 항구로 향하였다. 그것은 아직도 오염되지 않은 명증성의 놀라운 순간이었다.
[일년 내내 12월이어야 하는 건데.] 하고 시리아인 모제의 상점에 앉아서 그는 중얼거렸다.
[마치 유리로 만들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 거야.]
시리아인 모제는 이 생각을 거의 잊어버린 아랍어로 번역하기 위해서 애를 써야만 하였다. 그는 귀에까지 매끄럽고 늘어진 피부에 둘러싸인 침착한 동양인이었다. 그의 동작은 물에 빠진 사람들의 서투르고 굼뜬 데가 있었다. 실상 그는 방금 물 속에서 구조된 사람 같아 보였다.
[그건 그 전에도 그랬죠.] 하고 그는 말하였다. [지금도 마찬가지라면 난 8백 97세일 겁니다. 그리고 대령님은?]
[일흔 다섯이오.] 하고 두눈으로 우체국장을 쫓으며 대령은 말하였다. 그때 비로소 그는 곡마단을 발견하였다. 그는 알록달록한 물건들이 쌓여있는 한복판 우편배의 지붕 위에 천막이 쳐 있는 것을 알아보았다. 다른 똑딱선 위에 쌓여있는 뱃짐 가운데서 야생동물을 찾고 잇는 사이 그는 잠시동안 우체국장을 놓치고 말았다. 그는 야생동물들을 찾지 못했다.
[저건 곡마단이오.] 하고 그는 말하였다. [십년만에 처음으로 찾아온 거요.]
시리아인 모제가 그의 보고를 확인하였다. 그는 아랍어와 스페인말이 섞인 말로 아내에게 얘기를 하였다. 그녀는 상점 뒤쪽에서 대답을 하였다. 그는 스스로에게 논평을 가하고 대령에 대한 걱정을 번역하였다.
[고양이를 감추세요, 대령님. 꼬마 아이들이 곡마단에 팔아넘기기 위해서 훔쳐갈 테니까요.]
대령은 우체국장을 쫓을 기세였다.
[그건 야생동물 쇼가 아니오.] 하고 그는 말하였다.
[그게 문제가 아니요.] 하고 시리아인이 대답하였다. [곡마단의 곡예사들이 뼈를 분지르지 않기 위해 고양이를 먹는 겁니다.]
그는 부두의 상점에서 광장으로 우체국장을 따라갔다. 그곳에선 투계장의 함성이 그를 깜짝 놀라게 하였다. 지나가던 사람이 그의 수탉에 관해 뭐라고 한 마디 대령에게 말을 걸었다. 그때야 비로소 그날이 시합날이라는 것이 생각났다.
그는 우체국을 지났다. 잠시후 그는 투계장의 소란한 분위기 속에 잠겼다. 그는 투계장 한복판에서 무방비상태로 혼자 있을 자기 수탉을 보았다. 그의 며느리 발톱은 누더기에 싸여 있었고 두 발의 떨림 속에서는 공포 비슷한 것이 역력해 보였다. 그의 적수는 청승맞은 잿빝의 수탉이었다.
대령은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 비슷한 공격이 연거푸 계속되었다. 열렬한 환호성 한복판에 털과 발과 목의 순간적인 싸움이 벌어졌다. 울타리의 널빤지에 떨어져나가 부딪친 적수가 재주를 넘더니 다시 공격 태세가 되었다. 그의 수탉은 공격하지 않았다. 그는 모든 공격을 물리치고 똑같은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나 이제 그의 발은 떨리지 않았다.
엘난이 울타리를 타넘어가 두손으로 수탉을 집어올려 스탠드에 있는 관중들에게 보여주었다. 박수갈채와 함성이 요란스럽게 터졌다. 대령은 박수의 열기와 싸움의 치열함 사이에 불균형이 있음을 눈치챘다. 그에게는 그것이 수탉들조차도 의식적으로 또 자진해서 힘쓰는 어릿광대 놀이처럼 여겨졌다.
약간 모멸기 있는 호기심에 끌리어 그는 원형의 투계장을 살펴 보았다. 흥분한 관중들이 투계장을 향해 스탠드 쪽으로 돌진해 갔다. 대령은 뜨겁고 걱정스럽고 끔찍하리만큼 생기에 찬 얼굴들의 혼란을 관찰하였다. 그는 기억의 한 끝에서 지워져 버린 한 순간을 -불길한 예감으로- 다시 되새겼다. 그러자 그는 울타리를 뛰어넘어 투계장 쪽으로 가서 엘난의 조용한 눈을 맞바라 보았다. 그들은 껌벅거리지 않고 서로 바라 보았다.
[안녕하십니까, 대령님.]
대령은 그에게서 수탉을 빼앗았다. [안녕하오.] 하고 그는 중얼거렸다. 짐승의 따뜻하고 깊은 가슴의 고동이 그를 몸서리치게 하였기 때문에 그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가 수중에 이렇게 살아있는 것을 쥐어본 적이 없었다고 생각하였다.
[대령님이 댁에 안 계셔서요.] 하고 당황해서 엘난은 말했다.
새로운 갈채가 그의 말을 중단시켰다. 대령은 겁이 났다. 그는 아무도 쳐다보지 않고 박수갈채와 고함소리에 기가 질린 채 겨드랑이에 수탉을 끼고 다시 길을 뚫고 거리로 나갔다.
시민 전부-하층계급사람들-가 학교 아동들이 뒤따라 오는 가운데 지나가는 그를 지켜보기 위해 뛰쳐 나왔다. 목에 뱀을 감은 채 탁자 위에 서있는 한 흑인 거인이 면허도 없이 광장 한 모퉁이에서 약을 팔고 있었다. 항구에서 돌아오는 한떼의 사람들의 그의 연설에 귀 기울이기 위해 멈춰 서있었다. 그러나 대령이 수탉을 끼고 지나가자 그들의 주의는 그에게로 옮겨갔다. 집으로 가는 길이 그렇게 길어본 적은 없었다.
그에겐 유감이 없었다. 오랫동안 시가는 10년의 역사에 의해 황폐화된 채 일종의 혼수상태에 빠져있었다. 그날 오후 -편지가 없었던 또 하루의 금요일- 사람들은 잠에서 깨어났다. 대령은 다른 시대를 기억하였다. 그는 자기자신이 아내와 아들과 함께 우산을 쓰고 비가 오는데도 중단되지 않은 쇼를 구경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는 꼼꼼히 몸치장을 한 당의 지도자들이 자기 집 안마당에서 음악의 리듬에 맞추어 부채질하던 것을 기억하였다. 그는 자기 내장 속에서 나는 저음의 북소리의 고통스러운 메아리를 되새겼다.
그는 항구와 나란히 나있는 거리를 따라 걸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도 오래전의 소란스러운 휴일선거일의 군중을 발견했다. 그들은 곡마단이 짐 푸는 것을 지켜보았다. 천막 안쪽에서 한 부인이 수탉에 관해 무엇인가 소리쳤다. 그는 마치 투계장의 함성의 찌꺼기가 그를 뒤쫓고 있기나 한 것처럼 여전히 흩어진 목소리를 들으며 골똘히 생각에 잠긴 채 집을 향해 걸어갔다.
문간에서 그는 아이들에게 말하였다.
[모두들 집으로 가거라.] 하고 그는 말하였다. [따라 들어오면 두들겨서 보낸다.]
그는 문을 잠그고 곧장 주방으로 갔다. 그의 아내가 숨이 막힌 해 침실에서 나왔다.
[그들이 수탉을 억지로 빼앗아 갔다우.] 하고 흐느끼며 그녀가 말하였다. [나는 내가 살아있는 동안 수탉은 집밖으로 내보내지 않겠다고 말했어요.] 대령은 수탉을 스토브 다리에 매어 놓았다. 그는 아내의 광란의 목소리에 쫓기어 깡통 속의 물을 바꾸어 놓았다.
[그들은 우리의 시체를 밟고 그것을 가져 가겠다는 거였다우.] 하고 그녀는 말하였다. [그들 말로는 그 수탉이 우리 것이 아니라 시민 전체 것이라는 거였어요.]
수탉 일을 다 마치고 나서야 대령은 아내의 찡그린 얼굴을 향했다. 그는 그 얼굴이 자기에게 후뢰도 동정도 불러 일으키지 않음을 발견하고 놀랐다.
[그들은 정당한 일을 한 거요.] 하고 그는 조용히 말하였다. 그리고 나서 자기 주머니를 들여다보며 그는 헤아릴 길 없으리만큼 상냥하게 말하였다.
[수탉은 팔지 않소.]
그녀는 그를 침실까지 따라갔다. 그녀는 그가 완전히 사람이라고 느꼈으나 마치 영화 스크린에서 본 듯 손닿을 수 없는 것처럼 느꼈다. 대령은 골방에서 청구서 두루마리를 끄집어 내어 주머니에 든 청구서를 거기 첨가하고는 전체를 계산해보고 그것을 다시 골방 속에 챙겨 넣었다.
[내 친구 사바에게 갚을 29 페소가 있구려.] 하고 그는 말하였다. [나머지는 연금이 나오면 갚지.]
[연금이 나오지 않으면?]
[나올거요.]
[하지만 나오지 않을 경우엔?]
[그러면 못갚는 거지.]
그는 새 구두를 침대 밑에서 발견했다. 그는 상자를 찾으러 골방에 가서 헝겊으로 신창을 닦은 뒤 그의 아내가 일요일밤에 가지고 왔을 때처럼 상자 속에 구두를 넣었다. 아내는 꼼짝 않았다.
[구두는 돌려줘요.] 하고 대령은 말하였다. [그러면 내 친구에게 13 페소가 더 가는 셈이요.]
[구두를 물려 받지 않을 거예요.] 하고 그녀는 말하였다.
[물려줘야 해요.] 하고 대령은 대답하였다. [난 딱 두 번 신었을 뿐이오.]
[터키인들은 그런 것을 이해 못해요.] 하고 부인이 말했다.
[이해를 해야 하오.]
[그들이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들은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잠자리에 들었다. 대령은 전등을 뜰 수 있또록 아내가 기도를 끝내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영화의 등급 매기기의 종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세시간 후였다- 통행금지 종소리를 들었다. 그의 아내의 자갈 같은 숨소리도 싸늘한 밤공기로 고통스러웠다. 조용하고 화해적인 목소리로 아내가 말을 걸어 왔을 때 대령은 여전히 뜬눈이었다.
[깨어 있었구려.]
[그렇소.]
[이치를 따르시우.] 하고 부인이 말하였다. [내 친구 사바에게 내일 얘기를 해 봐요.]
[월요일이 되어야 돌아올 거요.]
[더욱 좋아요.] 하고 부인이 말하였다. [그렇다면 무슨 얘기를 할까 하는 것을 사흘동안 생각할 수 있지 않아요?]
[생각하고 자시고가 없소.] 하고 대령이 말하였다.
쾌적한 신선함이 시월의 고약한 공기를 대체하였다. 대령은 물새떼의 시간표 속에서 다시 십이월을 깨우쳤다. 두시를 쳤을 때도 그는 여전히 잠들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아내도 여전히 깨어 있음을 그는 알았다. 그는 그물침대에서 자기 위치를 바꾸려고 하였다.
[잠을 못드는구려.] 하고 아내가 말하였다.
[그렇소.]
그녀는 잠시 생각하였다.
[우리는 그럴 처지가 못되우.] 하고 그녀가 말하였다. [일시불로 400 페소가 얼마나 되는가를 생각해 봐요.]
[오래지 않아 연금이 나올 것이오.] 하고 대령은 말하였다.
[당신은 똑같은 얘기를 십오년째 계속하고 있어요.]
[그러기 때문에 이젠 정말 곧 나오게 될 거요.] 하고 대령이 받았다.
그녀는 잠자코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다시 얘기를 시작했을 때 대령에게는 시간이 조금도 지나간 것 같지 않았다.
[내 생각으론 돈이 나올 것 같지 않아요.] 하고 부인이 말하였다.
[나올거요.]
[만약 안 나오면요.]
그는 대답할 목소리를 찾지 못하였다. 수탉이 첫 번째 울었을 때 그는 현실로 돌아왔으나 다시 짙고 안전하며 가책없는 잠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그가 눈을 떴을 때 해는 이미 중천에 와있었다. 그의 아내는 잠들어 있었다. 대령은 꼼꼼하게 아침 활동을 두시간 늦게 되풀이 하였고, 아내가 아침식사 하기를 기다렸다.
잠이 깨었을 때 아내는 말수가 거의 없었다. 그들은 아침 인사를 나누었으나 식탁에 앉아 말없이 식사를 하였다. 대령은 한 잔의 블랙 커피를 홀짝이고 치즈 한쪽과 과자 한 쪽을 먹었다. 그는 양복점에서 오전을 보냈다. 하시에 그는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는 베고니아꽃 사이에 앉아 옷을 꿰매고 있었다.
[점심 때요.] 하고 그가 말했다.
[점심은 없어요.]
그는 어깨를 움찔해 보였다. 그는 어린 아이들이 주방으로 몰려오지 못하도록 앞마당 담장에 난 개구멍을 메우려고 하였다. 홀로 돌아오니 식탁엔 점심이 차려져 있었다.
점심을 먹는 사이 대령은 아내가 울음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틀림없는 이 사실이 그를 놀라게 하였다. 그는 아내의 성품을 잘 알고 있었다. 심지가 굳은 데다가 사십년의 모진 고생이 더욱 더 굳게 만들었다. 아들의 죽음도 그녀에게서 눈물을 한 방울 후려내지 못했었다.
그는 힐난조의 표정을 직접 그녀의 눈길에 고정시켰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고 옷소매로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 식사를 계속하였다.
[당신은 인정이 없어요.] 하고 그녀가 말하였다.
대령은 아무 말 없었다.
[당신은 고집불통이고, 완고하고, 인정머리가 없어요.] 하고 그녀는 되풀이 말했다. 그녀는 나이프와 포크를 접시에 겹쳐 놓았으나 이내 미신에 따라서 그 위치를 바로잡아 놓았다.
[한평생 쓰레기만 먹었는데 지금와선 수탉만한 대접도 받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어요.]
[그건 달라.] 하고 대령이 말했다.
[마찬가지예요.] 하고 아내가 대답하였다. [내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해요. 지금 내가 걸려있는 것은 병이 아니라 느릿느릿한 죽음이란 말이예요.]
대령은 점심 식사를 마칠 때까지 잠자코 있었다.
[수탉을 팔아서 천식병이 없어진다고 의사사 보증을 한다면, 난 단박에 팔아치우겠소.] 하고 그는 말하였다. [그러나 보증이 없으면 안 파는 거요.]
그날 오후 그는 수탉을 투계장으로 데리고 갔다. 집에 돌아 오자 아내는 막 천식 발작에 걸려든 찰나였다. 그녀는 머리채를 등뒤로 풀고 두팔을 벌린 채 허파에서 나는 숨소리 위로 숨을 잡으려는 듯 홀 안을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그녀는 초저녁까지 홀 안에 있었다. 그러더니 남편에게 말도 건네지 않고 잠자리로 들어갔다.
통행금지 잠시 후까지 그녀는 기도를 하였다. 그러자 대령이 불을 끄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녀가 가로막았다.
[나는 캄캄한 속에서 죽고싶지 않아요.]
대령은 등을 마루 위에 두었다. 그는 기진맥진한 느낌이었다. 그는 만사를 잊어버리고 한 자리에서 44일간 잠들었으면 싶었다. 그래서 1월 20일 오후 3시에서, 즉 수탉을 풀어놓은 바로 그 순간에 투계장에서 깨어났으면 싶었다. 그러나 그는 아내가 잠못 이루는 바람에 위협받는 듯한 느낌이었다.
[언제나 같은 얘기예요.] 하고 아내가 잠시 후에 말을 시작했다. [딴 사람들이 먹을 수 있기 위해 우리는 굶주림을 견디어 내는 거요. 사십년 동안 내내 같은 얘기인 거라우.]
아내가 얘기를 중단하고 깨어있느냐고 물어볼 때까지 대령은 잠자코 있었다. 그는 깨어있다고 대답하였다. 부인은 부드럽고 유창하고 용서없는 어조로 계속 말했다.
[우리만 빼놓고 누구나가 수탉에 걸어 이길 거예요. 판돈 걸 동전 한 푼 없는 것은 우리뿐일 거라구요.]
[수탉 임자는 20퍼센트를 받을 권리가 있소.]
[선거에서 그들을 위해 등골이 부서지도록 일했을 때 당신은 한자리 얻을 권리가 있었던 거요.] 하고 부인이 대답하였다. [내란 때 목숨일 건 후에는 참전군인 연금을 받을 권리가 또한 있었던 거지요. 지금 누구나 그의 장래가 보장되어 있지만 당신은 혼자서 굶어 가고 있어요.]
[나는 혼자가 아니오.] 하고 대령은 말하였다.
그는 설명해 주려고 해 보았다. 그러나 잠이 몰려왔다. 그녀는 남편이 잠들어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까지 시나브로 지껄이고 있었다. 이어 모기장을 뛰쳐 나와 캄캄한 거실 속을 왔다 갔다 하였다. 거기서도 계속 지껄였다. 대령은 새벽에 아내를 불렀다.
[한 가지 할 일이 있소.] 하고 대령은 아내를 막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수탉을 파는 것 뿐이라우.] 아내의 말이었다.
[시계도 팔 수 있소.]
[살 사람이 없어요.]
[내일 알바로에게서 70페소를 받을 수 있을까 알아보겠소.]
[그렇게 안 줄 거예요.]
[그러면 그림을 팝시다.]
부인이 다시 얘기를 했을 때 그녀는 다시 모기장 밖으로 나와 있었다. 대령은 약초 냄새가 풍기는 그녀의 숨내를 맡았다.
[그걸 살 사람이 없어요.] 하고 그녀는 말하였다.
[두고 봅시다.] 하고 목소리에 아무런 변화의 낌새도 보이지 않고 대령은 부드럽게 말하였다. [자, 이제 잠을 잡시다. 내일 아무 것도 팔 수 없으면 다른 것을 생각해 봅시다.]
그는 눈을 뜨고 있으려 했으나 잠이 그의 결심을 깨뜨렸다. 그는 시간도 없고 공간도 없는 한 실체의 밑바닥으로 떨어졌다. 그곳에선 그의 아내의 말도 전혀 다른 뜻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잠시 후 그는 누가 어깨를 흔들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대답을 해요.]
대령은 이 말을 잠들기 전에 들은 것인지 후에 들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동이 트고 있었다. 일요일의 또렷한 초록빛 속에 유리창이 선연히 드러났다. 그는 열이 있다고 생각했다. 눈이 얼얼하고 머리를 또렷하게 하기 위해 무진 애를 쓰지 않으면 안되었다.
[아무것도 팔 수 없으면 어떻게 하지요?] 아내는 되풀이 하였다.
[그렇다면 1월 20일이 되어야지.] 하고 완전히 잠에서 깨어나 대령이 말하였다.
[그날 오후에 20퍼센트를 지불할 거요.]
[수탉이 이길 경우의 얘기지요.] 하고 부인이 말하였다. [그러나 질 경우엔? 수탉이 질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당신은 안 해 봤어요.]
[저건 질 줄 모르는 수탉이오.]
[그러나 진다면?]
[그것을 생각하기 시작하려면 아직도 44일이 남아있소.] 하고 대령은 말하였다.
부인은 울화통이 터졌다.
[그러면 그 동안엔 무얼 먹는단 말이지요?] 하고 그녀는 물었다. 그리고 대령의 플란넬 파자마의 멱살을 잡았다. 그녀는 그를 세게 흔들었다.
이 순간에 당도하기까지 대령에게는 75년간 -순간순간 따져서 대령의 75년의 생애-의 세월이 걸렸다. 그가 대답을 하는 순간 그는 순수하고 분명하고 또 무적임을 느꼈다.
[제기랄 것!]
첫댓글 바보...--; 자료실에 올려야지;;;
대령이 나오네 백년이랑 이어지는건가 ㅡㅡ^
잉크값 날리거나 눈 나빠지는 것보다 책을 사서 보는 게 나을 듯
그러게요 -_- 워드로 저장하려니깐 36쪽이예요 ㅠ.ㅠ;
자료실에 올렸어요.. 교수님이 빨간색으로 쓴건 특별히 더 중요할 것 같은데 이렇게 복사해서 올리는 것 보다 더 나아요~
이 책 절판됐음...--; 그리고 도서관에도 없음.-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