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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혈뇨에서 발단이 된 60일간의 병상일지..
병상에서 고통받는 누군가에게 희망을 잃지말고 인내심으로 절망과 아픔을 극복하기를 소망하며 기록을 남긴다.
창자의 일부를 끊어 내고 병실로 올라오는 환자의 고통스런 비명소리를 회피할 방도가 없다.
마취제 독성을 머금은 채 6~7개의 링켈줄을 주렁주렁 달고 비몽사몽 생과 사의 경계를 넘나든다.
병실은 일시 간호사가 새하얗게 달라붙어 마취에서 깨어난 환자의 상태를 재빠르게 살피며 응급조치한다.
간호사가 물러나면 간병 보호자는 환자가 마취상태로 잠들지 못하게 6시간이상 꼼짝 않고 옆에 지키며 눈꺼플을 뒤집고 잠이 들거나 정신줄을 놓지 않게 빰을 만지고 계속 말을 시킨다.
흡연과 독성의 발암물질이 장기간 방광에 축적되어 생성된 악성종양때문에 기능이 상실된 방광을 제거하고 소장
을 이용하여 대체 방광을 만든 수술로 새생명을 선사받은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수술대기실은 흡사 혼잡한 시장바닥 같다. 수술받은 환자는 거동을 못하는 중환자가 되어 일정기간 금식하며 병상에서 회복하는데, 하루 이틀후 몸상태에 따라 물 미음순으로 취식이 허락된다.
허리에 복대를 단단히차고 수술부위가 벌어지지 않도록 조심 조심 움직인다. 수술때 잘라낸 창자와 방광은 아물지않은 상태이고 내장에 장기들도 헝컬어진상태이다. 이때는 극심한 통증을 참고 장기들이 스스로 움직여서 빨리 재자리를 잡을 수있도록 몸을 움직이거나 무리 하지 않을 정도로 걷는 운동을 해야한다.
진통제 무통주사로 통증은 다소라도 완화 되지만 장이 자리를 잡을 려고 꿈틀거릴때 창자가 뒤틀리는 통증은 상상을 초월한다.
비뇨기전문 병동은 이런 저런 다양한 환자들로 넘쳐난다.
항암치료를 여러차례 받고 수술에 들어가는 사람도 있고, 악성의 종양이 뼛속깊이 전이 되어 치료시기를 놓친 안타까운 사람들도 있다. 래원 환자는 주로 6~70대 남자이고 동나이대 여성도있으며 80대도 있다. 명의라는 의사선생의 명성을 듣고 전국에서 환자가 찾아 온다. 대부분 종양을 늦게 발견하여 완치시기를 놓치고 오는 사람들이다. 수술대에 오르기전 독한 항암치료를 몇차례받고 몇달을 대기했다가 수술을 받는다. 매일 몰려드는 외래환자들의 상태를 살피고, 수술날자를 잡아 차질없이 수술을 진행하여 사람을 살려내는 의사들의 노고와 의술에 존경과 고마움을 느꼈다.
수술은 보통 6~7시간 진행된다고 한다. 수술받은 환자마다 회복 속도는 달리했다. 5~60대는 보름정도면 퇴원했고, 7~80대는 좀 더걸렸다, 퇴원했다가도 이런 저런 부작용때문에 다시 입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암환자가 아닌 나는 대수롭지않은 환부였다고 생각했으나, 수술후 회복이 더뎌 60일넘는 최장수 입원환자가 되었다. 60여일동안 대부분의 날은 금식조치가 되어 몸은 죽을 정도로 지쳤고 마음까지 피폐해졌다.
오늘의 고통을 견디며 내일은 약간이라도 회복에 진전이 있기를 기대하고 어려움을 견뎠으나, 장기간 먹지 못하고 물도 마시지 못하는 고통을 겪으면서 건강의 중요성을 뼈져리게 체험하는 계기가 되었다.
간병하는 가족이나 보호자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나의 경우 쪽잠을 자면서 지극정성으로 간병해준 아내가 없었다면 고통을 참지 못하고 희망의 끈을 놓아 버렸을지도 모른다.
입원이 길어지면서 간병하는 아내도 여기 저기 아픈 데가 생겼다. 평소 복용하던 약도 떨어져 머리가 아프다고 하는데 부산까지 내려가서 약을 타 올 수도 없고 속이 타들어갔다. 아들과 딸은 엄마까지 병나겠다고 간병인을 쓰고 엄마는 집으로 내려 보내라며 성화가 대단했다. 이 상황을 탈피하는 길은 빨리 몸을 회복해야 하는데, 장은 풀리지 않고 물이라도 마셔보면 장에 가스가 차니 위장에서 꾸루룩 꾸루룩 시냇물 소리가 들리고 방귀는 요란하게 나오고 경험하지 못한 격한통증이 찾아왔다.
회복을 할려면 위장을 움직여야 한다. 위와 장을 움직이려면 걸어야 했다. 시도 때도 없이 복도를 걸었다. 간호사들이 지나친 운동은 회복에 역효과라고 자제를 시켰다. 가스가 차 올라 복부에 통증이 오면 핫백을 부탁해서 복부에 마사지를 하며 견뎠다. 이런 노력들이 헛되지 않았던지 차츰 장이 풀리고 소화기능이 차츰 회복되어 금식상태에서 물은 마시라고 허용했고, 미음에서 죽으로 환자식 밥이 제공되었다. 구수한 밥알과 부드러운 반찬이 몸속에 들어 가니 얼굴에 핏기가 약간씩 살아났다. 이미 경험했지만 혹시나 장에서 거부반응이 생길까봐, 밥알과 반찬을 입에 넣고 100번 이상을 씹어서 넘기고 국물은 입속에 한참을 머금었다가 침과 함께 삼겼다.
입원50여일 정도를 넘기며 몸에 달고 있던 피주머니를 재거하고 수일후 소변줄도 제거했다.
몸상태는 비실비실했으나 식사를 조금씩 하는 모습을 보고는 담당의사가 고생이 심하다며 퇴원을 권유했다.
저런 몸으로 퇴원 못한다고 완고하던 아내도 퇴원에 동의한다.
죽더라도 집에 가서 죽고 싶었다. 병원에서 귀신이 되기 싫었다.
요관에 스텐트를 제거 하는 날이다.
무리없이 잘 빠진다는 요관스텐드가 무슨 이유 인지 내몸에서는 요지부동하며 빠지지 않는다.
이런 사례는 처음이라며 옆구리에 구멍을 내는 시술을 하고 전신마취한후 내시경으로 스텐드를 빼내야 한다나... 기가 찼다. 끔직한 전신 마취 수술을 이미 두번이나 받았고, 기력이 바닥상태인데 또 전신마취 수술을 받아야 된다니 아내와 나는 의사 앞에서 그냥 죽자고했다.
옆구리 구멍내는 시술을 받으러 영상의학과로 이동하여 수술대에 누웠다.
그날이 금요일이다, 오늘은 옆구리에 구멍을 내는 시술만 하고 월요일이나 화요일 시간을 잡아서 수술을 한다고 하기에 수술대에 누워 영상의학 교수님께 여기서 스텐트를 빼 달라고 매달렸다.
예정에 없던 시술을 해달라고 매달리는 환자가 안타까웠는지 주치의 교수님을 찾아서 입회시키고 시술 준비를 한다.
간호사의 보조를 받아가며 옆구리에 작은 구멍을 내는 시술을 하고 요도에 내시경을 넣는다. 굵기가 다른 내시경을 교체해가며 장시간 스텐트를 제거하는 시술을 하면서 몇번이나 아프냐고 물었다.
아프지만 아프지 않다고 했다. 재발 스텐트를 빼달라고 간절히 기도를 했다.
수술실 창너머 간절히 기도하는 아내 모습이 얼핏보였다.
죄많은 인생도 아닌데 왜 이렇게 힘든 시련과 고통이 연속되는지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 내렸다.
수술대 머리맡에서 간호사 한분이 눈물을 계속 닦아주었다.
간절한 소망이 통했는지, 성심을 다한 교수님의 훌륭한 의술과 노력 덕분에 요관 스텐트가 빠져나왔다.
일시에 와하는 기쁨의 소리가 터져나왔다.
요관 스텐트빼는 시술로 옆구리에 생긴 상처가 아물기까지는 열흘정도가 걸렸다. 퇴원수속을 밟았다.
약간은 정들었던 간호사가 어르신 재입원 하러 오시면 안되요.. 하며 눈을 빤짝인다.
죽어도 다시 입원하러 안 온다 정기검진때나 올지 몰라도 속으로 다짐했다.
몸에 달라붙은 링켈줄들을 하나하나 제거하니 날라갈것 같다. 환복을 벗어 던지고 싸워장에서 묵은 때를 씻어내며 거울에 비친 내몰꼴을 보니 봉두난발 반백의 머리털은 귀를 덮었고 볼살은 빠져 누런안색의 노인이 서있다.
탄탄하던 종아리와 허벅지 근육은 어딜가고 허물허물 수재비 반죽 같은 살갖이 뼈대에 붙어있다.
똥배는 간데없고 몸무게는 10키로나 줄었다.
9월초 혹서기에 입원하면서 얇은 옷을 입고 왔던 계절은 찬바람에 노란은행잎이 딩구는 계절이 되었다.
아내는 쿠팡을 통해 계절 옷을주문하고 신발도 주문했다.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 두달동안 인생의 막다른 곳 까지 갔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아파트 계단 올라 보니 다리가 후들거린다. 난간을 잡고 오르다가 쉬기를 반복했다.
회복을 빨리해야지 다급한 마음에 시민공원과 뒷산을 힘이 소진 될때까지 걸었다.
2. 장이 안풀려 음식물을 못 먹으니 흰색의 반죽 영양제가 그동안 생명줄역활을했다.
밤 낮없이 시시때때로 번갈아 간호사들이 와서 주사제 처방약 혈압측정 피뽑기를 반복했다.
의사는 아파도 누워 있지 말고 걸어라 한다. 움직이고 걸어야 장이 풀리고 음식을 소화 시키고 회복이 빠르다고 .. 수액 영양제 피주머니 소변줄 진통제 .. 주렁주렁달린 링겔거치대를 끌고 허리에 복대를 감고 뒤틀리는 창자의 고통을 참으며넓지않은 병원 복도를 끊임없이 걸었다.
건강을 잃고 건강을 되돌리려 발악하듯 노력하는 사람들의 처절한 삶의 현장을 병원 복도에서 본다.
줏어 듣고 되뇌이던 와사보생(臥死步生)의 깊은 뜻을 절박하게 실감한다.
내병상은 붉은 글씨 금식이 붙어있다.
물도 입에 못대게 하는 금식. 물 한방울 목구멍으로 넘기면 안되고 풀죽(미음) 한 숫가락도 먹지 못하게 한다.
어느날 방심하고 금식지시를 어겼다가 콧구멍에 콧 줄을 달고 위장에 아주 기분 나쁜 내용물을 모두 배출시키느라 여러 날을 고통을 겪었다. 콧줄을 톻해 배출되는 시퍼런 내용물은 보기에도 끔직하다.
먹은게 없으니 늘어진 피부는 혈관도 숨었다.
이간호사 저간호사 혈관 찾아 주사기 꼿느라 손등 발등 빠꼼한 곳 없다. 혈관 전담 전문의가 왔다.
그도 혈관 찾는데 실패했다. 주사자욱은 피부에 시꺼먼 흔적을 남겼다.
이틀걸러 피를뺀다. 병상침대 실린 채로 혈관 전문수술실에서 오른팔뚝에 혈관 수술을 받았다.
그날 그날 통증도 달리했다. 특정할 수없는 고통이 반복해서 다가 올때도 가급적 진통제없이 견뎠다.
낮에는 시시때때로 명치끝을 찌르는 가스가 차올라 오며 통증을 수반한다.
오래된 간호사는 참고 걸어라한다. 가스는 복부에 통증을 수반하고 명치에서 장을 돌아 돌아 저녁무렵쯤
방귀가 되어 가스로 빠져 나간 다음이면 속이 다소 편해졌다.
장이 자리 잡을려고 뒤틀릴때는 통증이 수반된다.
통증을 언제 까지 참아야 되나 내과에 협진을 요청해달라 했지만, 환자스스로 장을 움직여서 장을 풀어야 된다나.. 무리없이 가볍게 걷거나 운동을 하다 보면 어느 날 장이 풀린다는 대답이다.
매일 체크하는 변은 나오고 있으니 장폐쇄 상태는 아니니까 계속 걷고 움직이라는 대답 뿐이다.
그 날이 언제가 될지 알수도 없고 장에 가스가 차는 고통의 나 날이 계속되다 보니 차라리 편히 죽고 싶은생각도 들었다.
가끔은 심야에 가스가 봄날 아지랭이 처럼 스믈스믈 갈질간질 심장을 타고 올라온다.
진통제도 안 통하고 통증보다 참기가 더 힘든 고통도 경험했다.
과거 어떤 환자는 90일을 입원했다는 전례도 있고, 콧줄을 한달간 달고 다녔던 환자도 있었다고 하였으나
상상하기도 싫었으나, 내몸은 회복이 더뎠다.
새벽마다 x-ray촬영하라며 기사가 찾아온다. 고역이다.
장에 가스가 계속 차있으니 담당교수님도 실망이 가득했다.
x-ray 촬영을 가기전 정신을 가다듬고 입원실 저너머 산그리매가 선명한 관악산을 향해 신령님께 기도했다.
두달이 가까워 오며 몸속에 가스가 있건 말건 담당교수님이 금식을 해제하고 미음에서 연식으로 식사를 진행
시켰다. 고체가 들어가서 소화가 되면 퇴원이 가능 하다는 말을했다. 무른 밥을 부드러운 반찬과 오래오래 앂어넘겼다. 병원생활 두달이 가까워 지면서 아내와 맞상을 하고 소망하던 식사를 했다.
퇴원 .. 그러고 약 한달이 지난 지금까지 하루 1만5천보 정도를 걷고있다.
산을 올라 보니 다리 힘은 반정도 회복된 것같다.
붕장어 큰 놈을 구해와서 구이로 먹고 고와서 먹고있다.
소화도 잘 되고 몸에 흡수도 빨라 회복 속도가 빠른 것 같기도 하다.
때가되면 멀리 여행도 가고 해외 높은 산도 올라 갈 수있겠지 희망에 차있다.
지난 9월 히말리아에 간다고 날자까지 다 잡아 놓고는 불상사가 났으니 회복되는데로 어디 던 가보고 싶다.
지난 토요일 저녁 동창회모임때 친구들의 모습을 보니 무척이나 반가웠으나..
모임에 안빠지는 친구들 몇몇이 보이지 않아 섭섭했다. 건강에 자만하지 말고 건강검진 빠지지 말자.
혈뇨! 혹시나 소변할때나 어떤 이유로던 혈뇨가 발견되면 신체에 큰 병이 이미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하고
즉시 병원에가서 치료를 받기를 권한다.